원어해설 337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겸손하다
tapeinovw
낮게 하다 make low, 평평하게 하다 level, 천하게 하다 humble.||#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타페이노오는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5세기) 이래로 사용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a) 이 단어는 '작게 만들다, 굴욕을 주다, 미약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예: 의기나 용기, 국가나 정부의 세력, 시민의 유명(renown에 대하여).||(b) 이 단어는 '비천하게 하다, 상하게 하다, 좌절시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예: 운명 또는 생명을 주어로 하여).||(c) '어떤 사람을 복종케 하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이성 따위의 ) 규칙에 복종케 하다, 억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d) 이 단어는 헤아우톤을 수반하는 재귀형과 중간태(이러한 용법은 주전 1 세기에 정신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는 '자기 자신을 낮추다, 자신을 천하게 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이러한 용법은 대개의 경우 오직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주전 1세기의 가다라의 필로데무스(Philodemus of Gadara)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위로를 얻고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고, 플루타크(PIutarch)는 제사와 기도를 드릴 때 머리를 가림으로써 신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관습에 대해서 언급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타페이노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65회 나오며, 20여개의 히브리어군의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히브리어들의 의미를 모으면, '억압하다, 괴롭히다, 낮추다, 비천하게 하다, 굴욕을 당하다, 짓밟다, 욕보이다, 낮은, 중요하지 않은, 무력한, 버림받은, 절하다, 굽실거리다, 학대하다, 슬프게 하다, 겸손하다, (여성)을 욕보이다, 강간하다, 영혼을 낮추다'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타페이노오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이 단어는 '낮게하다, 천하게 하다, 구부리다'(잠 10:4; 사 40:4; 집회서 40:3), 중간태에서 '가난하게 되다'레 25:39), '내려 앉다, 초라하게 하다'(전 10:18)를 의미한다.||(b) 이 단어는 '굽히다, 억압하다, 괴롭히다'(창 15:13; 창 31:50; 출 1:12; 신26:6; 삿 12:2; 삼상 12:8; 삼하 7:10; 대상 17:9; 사 51:23; 시 10:10; 시 94:5), '약화시키다, 뒤집어 엎다'(삿 16:5,6; 삿 16:19; 대상 20:4; 대하 13:18), '파괴(파멸)시키다, 없애다'(삼상 26:9; 말 2:12), '(여성을) 욕보이다, 강간하다'(창 34:2; 신 22:24,29; 삿 19:24; 20:5; 삼하 13:12,14)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중간태, 수동태로는 '자기를 낮추다, (고개를)숙이다'(창 16:9; 에 6:13; 시 39:2), '영혼을 낮추다, 겸비하다'(레 16:29; 시 35:13 이하)를 의미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것을 나타낸다(대하 33:12; 대하 34:27; 대하 33:23; 렘 13:18;단 10:12). 사람들은 금식함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지만 사람들 앞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잠 13:7에서는 '스스로 가난(초라)하게 하다'를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초라하게 하나 재물을 가지고 있다. 70인역본은 도덕적 종교적 의미를 표현한다: 재물 앞에(위해) 스스로 가난한 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자기 비하를 칭찬하지 않는다. 선지자들은 금식의 습관을 비평하며,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적절한, 곧 겸손한 마음 가짐을 강조한다(욜 2:12 이하; 사 58:5 이하).||(d)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삼상 2:7; 겔 21:31). 이러한 것은 이스라엘과 그의 원수들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사 2:11은 이러한 원리에 대해 진술한다. 선지자들은 예루살렘과 시온에 대해 이러한 원리를 적용시켜 언급한다(사3:8). 시75:7은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은 낮추시고 어떤 사람은 높이신다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병이 교만한 사람을 낮추고 사망이 그를 진토에 이르게 하는데 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자신을 낮추는 자를 거절치 않으신다(시 44:25; 시 25:l7). 하나님은 개인들로 자기와 올바른 관계에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낮추실 경우가 있다(시 116:6). 그러므로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게 되는 것은 구원을 의미할 수 있다(시 119:71). 인간에게 있어 실로 불가결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명령에 대해 순종할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낮추시지만 그러나 겸손한 자가 회개할 때는 고난이 그친다(왕상8:35-36).||♥ 쿰란 및 랍비 문헌||(a) 쿰란 종단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을 '가난한 자' 라고 불렀고, 공동체 규정에서 고결한 겸손은 이 공동체의 큰 미덕인 인애, 진실, 올바른 생각, 성실, 일치 그리고 인내와 나란히 둔다.(lQS 2:24; 4:3; 5:3,25). 그러나 이 태도는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에 대한 증오와 나란히 병행된다(1QS 9:22; 11:1).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이다. 1QS 3:8은 '그의 죄악은 의와 겸손의 영에 의하여 속죄될 것이다'고 말한다. 인간의 겸손은 하나님의 응징을 따르는 것이다(1QH 17l:22). 1QS 3:8은 '그의 육신은...그의 영혼을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겸손하게 복종시킴으로써 깨끗케 된다'고 말한다.||(b) 묵시문학은 하나님의 보상과 도우심의 약속이 임할 종말론적 태도로서 겸손을 나타낸다(Test. God.5:3; 2Esd. 8:47-54).||(c) 랍비들에게 있어서도 겸손은 사람들이 얻으려고 애써야 할 미덕의 높은 경지였다(참조: SBI 191-194). 겸손의 정신은 유대인의 특징적 표식으로 간주되었다.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고귀한 이론적 주장과 거만한 랍비 및 바리새인 등의 행위 사이의 불일치를 밝힌다(마 23:1 이하; 눅 18:9-14).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겸손하였지만,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죄인, 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을 하나님의 은혜와 대등한 것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하나님과 그들 자신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낮게하다, 자기를 낮추다, 비천하게 하다, 겸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타페이노오는 하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에 관한 종말론적 돌입에 관련된 선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문서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과는 다른 용법이다.|세례(침례) 요한의 사역(눅 3:1이하)은 하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것으로, 그리고 사 40:3 이하의 예언과 일치하는 것으로 기술된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눅 3:5).|그래서 오신 그분은 겸손의 길을 걸으셨다(마 11:29, 아래에서 설명). 그러므로 그분은,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눅 14:11; 마 18:4; 참조: 막 10:15; 벧전 5:5; 잠 3:34; 25:7), 바리새인과 논쟁을 통해서(눅 18: 14),|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대한 책망을 통해서(마 23:12) 자기를 낮추는 자(타페이눈 헤아우톤)는 결국 하나님에 의하여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었다(수동태가 사용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그분은 똑같은 금언을 사용하되(참조:삼상 2:7; 삼하 22:28; 겔 21:26; 집회서 7:11) 거기에 종말론적 상황에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최후의 심판에서 교만한 자들을 꺾을 것이라고 위협하셨다(A.Dthle, RAC Ⅲ 748).||(b) 겸손에 관한 가르침이 나오는 마 18:1 - 마 18:5은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가 윤리적 성취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자들 가운데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라는 요구는 자기의 실제 모습보다 더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어린아이 같이 자기가 실제로 얼마나 낮은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낮은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린 아이'라는 말의 사용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연상시켜 준다. 이러한 성격의 겸손과 낮음은 기쁨이요 환희이다(참조:J.Schniewind).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하늘의 왕적 통치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c) 마태복음에 있어서 구세주의 초대가 차지하는 중심적 지위는 바울 서신에 있어서 빌 2:6 - 빌 2:11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가 차지하는 그것에 상응한다. 자기를 비움(7절)에서부터 시작되어 자기를 낮추심(8절)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높임을 받으심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묘사에서 하나님께서 역사(歷史)를 주관하신다는 구약성경의 선포의 큰 줄기들이 그 선포들이 성취되는 시점에 이르러 한 곳에 합류되고 있음을 본다.|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낮추심은 주님의 지배 아래 있는 새로운 삶을 열어 놓았다(10절 이하). 이것이 타페이노프로쉬네, 즉 겸손(3절), 봉사할 용의, 그 본을 받는 것의 근거이다. 빌 2:5에서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다.|자기를 낮춘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음과 같이 이중적으로 정의되었다. 한편으로 주님은 죽음, 그리고 십자가라는 극단적인 치욕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셨다.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기 어려운 약속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으셨다(참조:시 22:25; 25:18; 31:17; 90:3; 119:50, 92,150; 특히 사 53:7-12)(H.W.Wolff).||(d)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주님을 따르는 일로 이해하였다. 주님께서는 높아지심으로써 바울에게 힘을 주셨는데, 이는 스스로 낮아지심으로써 성취한 것이다(빌 4:12 이하). 그리하여 바울은 "비천에 처하는 비결"을 알았다. 이것은 아마도 배고프고 곤궁하고, 물질이 없어 당하는 고통과 그밖의 고난을 의미할 것이다(참조:고후 11:23 - 고후 11:29; 고후 12:7 - 고후 12:10). 여기에는 아마 육체노동이 포함될지도 모르는데,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것이 어떤 숨겨진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가 아니냐라는 생각을 은근히 표현하였지만, 바울은 그 일을 함으로써 자기는 값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가르치는 활동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대꾸하였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후 11:7).||(e) 바울은 교회를 방문할 때 최후 수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인한 색다른 비하(humiliation)를 두려워 한다: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 낮추실까 두려워 하고". 그들의 죄를 계속 행하는 자들의 변화(회개)가 없으면 그렇다는 것이다(고후 12:19 - 고후 12:21). 이 비하는 그가 그 공동체에서 당하는 멸시 뿐만 아니라 죄로 타락한 회중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명예와 신망에 대한 위협(손상)으로 되어 있다.||(f) 약 4:10에서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라는 말은 잠 3:34("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에 근거하고 있다. 높이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 자신을 복종시키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이 문맥은 이 복종이 정화시키는 회개의 행위로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벧전 5:6에서 하나님께 대한 복종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문맥이 보이는 대로는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믿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이 단어의 헬라어 용법과 성경의 용법의 근본적 차이는 이미 시사되었다. 인간을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헬라 세계에서, '낮음'은 '부끄러운 것', '행동과 생각에서 회피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을 신(神) 중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및 동료 인간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해주는 사건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참조: H.H.Esser; W.Grundmann). → $5011 타페이노스
낮아짐
tapeivnwsi"
굴욕 abasement, 비하, 겸비 humili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타페이노시스는 타페이노오($5013)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감소'(몸의 부기가 주는 것, 죽음에 의해 사람이 감소하는 것), '약하게 하는 것, 약화시킴'(예: 어두움을 약화시키는 것), '비하, 의기소침'(사람, 또는 마음에 대하여)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주전 5~4세기의 플라톤 이래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비하 humiliation' 의 과정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타페이노시스는 70인역본에서 40회 나오며, 4개의 히브리어군의 단어들을 번역하고 있는데, 주로 오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오니는 '고생, 가난, 빈곤'을 뜻하는데 고통의 상태나 고통을 낳는 징벌을 표현한다. 나머지 히브리어들의 의미를 종합하면 '압박, 욕보임, 짓밟음, 낮음, 비천, 겸손,불모'등을 의미한다.||(a) 따라서 타페이노시스는 '천함, 곤란한 처지나 상태, 낮음' 그리고 이런 처지의 결과인 영혼의 상태로서 '슬픔, 비통, 고통'을 의미한다. 이런 어려운 상태는 이스라엘의 상태(신 26:7; 시 136:23; 삼상 9:16; 애 4:8) 혹은 개인의 상태(창 16:11; 창 29:32; 창 31:42; 창 41:52; 삼상 1:11; 삼하 16:12; 시 9:14; 시 90:3; 시 25:18; 시 119:50;92; 시 119:153; 시 31:8; 잠 16:19)이다.||(b) 사 53:8에서 타페이노시스는 여호와의 종(Servant)에 관하여 표현한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여호와의 종은 압박을 다하셨다. 이것은 그가 높임을 받으신 이유이다(사 53:7,10 이하).||#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시스는 신약경에서 4회 나오며, '비천, 비하, 낮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누가복음에서 타페이노스는 마태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에 관한 종말론적 돌입에 관련된 선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문서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과는 다른 용법이다. 누가복음은 서두에 이미 이 주제를 도입하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마리아 찬가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구약성경적 표현으로써 찬양하고 있다(삼상 1:11; 참조: 시 113:5-9). 눅 1:48에서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계집 종", 즉 여자 노예는 낮은 신분의 사람으로 해석된다.|(참조: 눅 1:38).||(b) 약 1:10 이하는 부자와 대조하여 '낮아짐', 곧 '비하'를 언급한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부한 형제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면 이 절들은 물질적인 부요를 의지하는 개종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다음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부한 형제가 누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은 그가 낮아진다는데 있다. 이러한 비하의 과정은 부한 자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겪는 가치의 재정립이다.|(A.F.Harper의 야고보서 주석 참조).||(c) 행 8:33은 사 53:7 이하를 70인역본으로부터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가리키는 구절로 해설한다.||(d) 바울은 빌 3:21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 속에서 오실 주님이 우리의 낮은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만드시리라는 소망에 의지하였다.|(참조: H.H.Esser; W.Grundmann).
동하게 하다
taravssw
함께 뒤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타랏소(Homer 이래)는 '함께 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동요시키다, 교란(혼란)시키다, 어지럽히다'. 수동태로는 '혼란(무질서)에 빠뜨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타랏소는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4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과 변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고전 헬라어 용법과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겔 32:2,13; 시 46:6[45:7]; 사 8:12등).||#3. 신약성경의 용법||타랏소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 고전 헬라어의 의미와 동일하다.||(a) 요 5:4, 요 5:7에서 타랏소는 물이 '동요하는 것'을 나타낸다: 5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베데스다(Bethesda) 연못 속에 있는 그 물은 아마도 간헐천으로써 때때로 휘저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물이 동하는 그 시간에 한 천사가 그 물에 치유의 효험을 부여한다고 일반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분의 비유적 표현에서 인간의 참된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율법(유대교)이 얼마나 부적절한가가 여기에 그려져 있다. 인간의 가장 강렬한 투쟁도, 활동을 마비 불능케 하는 죄에서 그를 구해낼 수 없다'(J.H.Mayfield).||(b) 타랏소는 감정적 흥분이나 혼란 같은 동요를 표현하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행 17:8에서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흥분했을 때, 즉 무리를 내적으로 선동했을 때 사용되었다: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② 행 15:24에서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혼란을 야기시키었을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③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여기서 분사 호이 타랏손테스는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그들의 의식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아마도 단순히 갈라디아의 교회들이 변형된 다른 복음의 결과로 인하여 그들의 이해와 행위들에 있어서 소란을 겪게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교회의 활력적인 조직을 파괴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는 혼란이다.|④ 갈 5:10의 총칭 단수는 위와 같은 거짓 교사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서 그들이 뿌린 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⑤ 요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타랏소는 엠브리마오마이와 나란히 사용되어서, 생명 그 자체와 사망을 극복하신 주께서 예수님의 인격 안에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과 소망이 그토록 많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보셨을 때, 그에게 덮쳐왔던 원통하여 일어나는 분하고 노한 분노의 물결을 의미한다.||(c) 타랏소는 수동태에서 항상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두려워하다'와 같은 감정적 동요를 함축하고 있다.|① 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기서 타랏소의 수동 과거가 사용되어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감정적 동요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정신에 두려움이나 공포로 타격이나 충격을 가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 야기되는 정신적 충격이라 하겠다.|② 타랏소는 신현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아무개의 정신에 두려움이나 큰 공포로 타격을 준다.|마 14:26(병행구, 막 6:50)에서 제자들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눅 1:12에서 제사장 사가랴가 향단 위편에 나타나 선 천사를 보았을 때, 눅 24:38에서, 제자들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서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런 타랏소를 경험했다.|③ 타랏소의 다른 뜻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표현에 내포되어 있다.|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마음이란 '자아'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이제 이 세상의 세력들과 하나님의 계시 사이에 갈등이 야기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립되어서 내적인 충격과 근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심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써 극복된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야말로 사망을 이긴 집(요 14:1 이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요 14:27에서 신자는 종말론적인 평화에 대한 약속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공포와 근심에 머물 필요가 없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벧전 3:14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④ 요 12:27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감정적인 경험을 언급하고 있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파송 받으신 자인 그리스도께서 두려움과 근심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떠맡기 위하여,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그 자신이 극도로 겸손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H.Muller).
동요
tarachv
동요, 소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라케(Hdt. 이래)는 타랏소($5015)에서 유래했으며,||(a) 소동, 소란, 혼란, 동요를 의미하며,|(b) 비유적 의미로 '법석, 소란, 정신적 동요, 선동, 반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타라케는 신약성경(TR)에서 2회 나온다.||(a) 막 13:8 TR,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b) 요 5:4 TR,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타라코스
tavraco"
동요, 혼란, 소동.||#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라코스(Xen., Plut.)는 타랏소($5015)에서 유래했으며, '동요, (마음의) 흥분, 혼란, 소동, 소란'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타라코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괴로움'(삿 11:35), '두려움'(욥 24:17), '환란'(삼상 5:9), '분요'(사 22:5)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타라코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2회 나온다.||(a) 행 12:18에서 타라코스는 당황하는 어떤 '소란이나 소동'을 나타낸다: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b) 행 19:23에서 타라코스는 폭도의 기질이 발휘된 군중의 '소동'을 나타낸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참조: Walte Bauer; J.H.Thayer; Ralph Earle).
다소
Tarseu+"
다소에 속하는, 다소의||형용사 타르슈스(Strabo, Plut.)는 타르소스($5019: 다소, 길리기아 지방의 한 도시)에서 유래했으며, '다소에 속하는, 다소의'를 의미한다.||형용사 타르슈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 2회 나온다.||(a) 행 9:11에서 '다소의' 사울을 언급한다: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b) 행 21:39에서 '다소의' 유대인을 언급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타르소스
tarsov"
다소 Tarsus||타르소스는 '기쁨'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 3회 나온다(행 9:11; 행 11:25; 행 22:3).|타르소스/ 다소는 길리기아의 수도이며 바울의 출생지이다. 다소는 유속이 빠른 키드누스 강변에 세워졌으며 지중해에서 10마일, 납과 은 광맥이 있는 타우루스("은") 산맥에서 남쪽으로 30마일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소아시아의 산맥의 녹은 눈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강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평원 위에 다소가 자리잡고 있다. 해수면 위로 70피트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 아래에 항구 호수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지중해 선박이 접근하기 용이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이 독특한 수로 때문에 다소 내륙은 해상 무역이 번창하였다.|B.C. 41년에 이 내륙 호수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마크 안토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세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유브라테스로부터 시작되는 고대 무역로가 안디옥 및 다소에서 동쪽으로 50마일 되는 동 지중해의 대로와 결합하여 길리기아 중앙을 통과하여 북으로 돌아 다소산맥을 통과 소아시아의 고지에 이른다. 다소인들과 그 이웃들은 B.C. 1,000년에 이 고지대로 가는 자연 상태의 협소한 통로를 넓히기 위해 암벽을 깎아서 뚫는 위대한 공학적 업적을 달성했다. - 이것이 바로 길리기아성문(일련의 좁은 골짜기)이다. 이 성문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 통로 중 하나이다. 육지의 대로와 바다의 길로 인해 다소는 동과 서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전설에 의하면 다소의 건설은 이러하다. B.C. 850년경 앗수르인들이 다소에 들어왔다. 블랙 오벨리스크에 의하면 다소가 살만에셀에게 정복되었다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 아래서 다소는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 크세노폰(B.C. 430-355년)은 다소를 "위대하고 번영한 도시"라고 불렀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다소를 점령하자 다소에 항상 있어왔던 헬라적 요소들이 더욱더 조장 되었다.|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B.C. 171년 길리기아에 체류했다. 그는 동양적 영향보다 헬라적 요소를 고무하기 위해 다소를 헬라 자치 도시로 만들었다. 그는 통치 초기 시대에 셀류키드 왕조의 관례를 따라 다소에 산업과 상업을 육성시키려고 유대 식민자들을 이주시키고 헬라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었다.|폼페이가 B.C. 64년에 길리기아 속주(Province)를 재편성하였을 때 다소는 로마 정부의 사령부가 되었다. 안토니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모든 다소 주민에게 하사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고 자치권을 주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특권을 더욱 확실히 보장했다. 다소에서 화폐가 주조되었고, 이웃의 길리기아 성읍들은 이러한 면에서 동과 서의 혼합과 갈등을 실증한다.|다소에는 그 밖의 그레코로만 도시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이 있었다. 스트라보(B.C. 63년)는 다소인들의 교육과 철학에 대한 열정은 아테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인들을 능가하였으며, 더욱이 길리기아 생도들은 토착민이었지 위의 두 도시의 경우에서처럼 타지에서 온 자들이 아니었다고 기록하였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스토아 철학자 아데노도루스(B.C. 74년-A.D. 7년)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고문이자 교사로서 길리기아 태생이었는데, 그의 지도 아래 다소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부의 본보기가 되었다. B.C. 15년 아데노도루스가 황제와의 오랜 관계를 유지한 명성을 지닌 채 다소로 내려왔을 때 다소의 몇몇 민주적 절차들을 복원하라는 임무가 이 유능한 철학자이자 지도자에게 떨어졌다. 어쨌든 다소는 많은 시민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을 발전시켰다(행 21:39). 그러나 요한 크리소스톰은 일세기 후 다소에 관한 그의 기록에서 이곳의 비 헬라적인 특성을 비난하고 거리를 걸을 때 여자들이 베일을 쓰는 동양의 관습을 비평했다.||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으며 개종 후 약 10년간을 그곳에서 지냈다(행 9:30; 갈 1:21). 그 10여년 동안에 그는 복음이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측면들이 있음을 깨달을 기회를 가졌음에 틀림없다. 이 경험이 그로 하여금 안디옥의 바나바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며(갈 1:22이하; 행 11:25) 후에 그의 헬라 선교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다소에서 바울은 그의 전도 사역 동안에 생계를 유지하게 하였던 길리기아의 직물제조업을 익혔다(행 18:3, 행 20:34; 살전 2:9; 살후 3:8). 바울이 인용한 구약성경 구절들은 Seput Septuagint(B.C. 270년 그리스어역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며, 이는 그의 유대교의 헬라와의 관련성을 증명해준다. 바울이 아람어를 즐겨 사용한 것은 그가 동쪽의 방언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행 20:40).|다소의 복합적인 문화는 바울에게 영향을 끼쳤다.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교육 방침 때문에 바울은 다소의 대학에 다닐수 없었으며, 한편 청년기 바울에게 바리새적 교육이 영향을 주었다(행 22:3).|여자에 대한 그의 사상은 여자에 대한 다소의 동양적 태도를 반영한다(고후 11:3-6). 바울은 수건을 사회가 여자들에게 부여한 보호이자 영예로 생각하였다(고후 11:10). 바울은 자유민 태생의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가문은 분명 안토니의 칙령에 따라 로마시민권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행 22:28이하에서 바울이 그의 신원을 밝혔을 때 로마 당국자들의 태도가 변했다.|오늘날 다소는 아나톨리아 터키의 테르소스(Tersoos)로서 2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오늘날 키드누스강은 이 마을을 통과하지 않는다. 옛날의 하상(강바닥)은 침니로 막혔으며, 항구 호수인 레그마(Rhegma)는 오늘날 30마일 너비의 거대한 늪지대가 되었다. 고대 도시의 유적이 오늘날 마을 아래 15-20피트에 있다. 수 마일 떨어진 광활한 지역에서 목화밭과 울창한 초목지대에 서 있는 옛 성벽 조각을 볼 수 있다. 테르소스의 직공의 거리는 바울과의 관련성을 생생하게 상기시킨다. 많은 고대의 베틀 추, 굴대, 램프, 주화, 작은 입상들이 다소에서 최근에 발굴되었다. 염소털은 아직도 타우루스 산맥에 사육되는 가축 떼에서 얻는다. 이 염소털로 짠 길리기아의 모직물은 그 강도와 내구성 때문에 항상 명성을 떨쳤다. 다소 대학 아래에 로마 시대의 전차 경주장에 속했던 거대한 둥근 천장이 있다. 이 마을 남동쪽 변두리에는 헤티 굴드만이 발굴한 Gozlu kule의 거대한 흙 무덤이 있다.|(참조: HBD).
지옥에 던지다
tartarovw
타르타로스에 포로로 잡아 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타르타로오(Acusilaus Hist., Philod)는 타르타로스(%677)에서 유래했다. 이 타르타로스는 음울하고 어두운 지하 지역의 이름으로서 고대 헬라인들은 이곳을 악한 사자(死者)들의 거처이며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형벌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유대인들의 게헨나(Gehenna)에 상당한다. 따라서 타르타로오는 '타르타로스로 밀어 내리다', '타르타로스에 포로로 잡아두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타르타로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4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탓소
tavssw
배열(치)하다, 정리하다, 지명하다, 임명하다, 지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탓소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 흔하게 나온다. 이 동사는 '지정하다, 지시하다, 명령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에서,||(a) '배열(치)하다, 정돈(리)하다'(예: 종교적 축제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Plat.Leg.,Ⅶ,799a), '결정하다'(예: 입법자는 악한 것이나 선한 것을 규정하거나 결정한다, Leg.,Ⅴ.778a),||(b) '지명하다, 임명하다'(어떤 사람을 어떤 직무에 임명하는 것, Aristot.; 어떤 것을 지명하는 것, Plat. Leg.,ⅩⅡ,952; 하나님이 의인을 위한 보호 천사를 지명하는 것, Gr.En.100:5)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동사는 결정이나 지시가 말하는 사람에게 속한 공인된 권세와 권능을 암시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탓소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13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했는데 주로 숨(두다, 위치시키다, 세우다, 지정하다, 임명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탓소는 '규정하다, 금하다, 정하다, 세우다',|중간태로는 '명령하다, 처분하다, 결정하다, 만들다', 시선을 '돌리다', 마음을 '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a) 탓소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통상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이 동사는 행 15:2에서는 '결정하다'를 의미한다. 마 28:16에서는 '지시하다'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간태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의 책임과 권위로 '지시하거나 명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행 22:10에서 '정하다'를 나타낸다: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여기에서 수동태로 나오는 것을 주의하라. 하나님께서 바울에 대한 봉사의 생애를 정한 것이다.|행 28:23에서 바울과 유대인들이 서로(공동으로) 날짜를 '정하고' 함께 모여 바울의 강론을 들었다. 사도 바울은 온 종일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아이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했다.|행 13:48에서는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될 각 개인을 정하신 것을 의미한다. 고전 16:15에서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로 성도 섬기기로 [작정하였다].|롬 13:1에서 세속의 권세는 하나님에 의해 정해지며 세속 권세에는 신자들이 존경해야만 하는 권위가 있다. 본 절에서 엑수시아이란 단어는 관직에 있는 자들에 대해 보통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이 단어에는 또한 권위나 권세라는 더욱 일반적인 의미가 있다. 권세는 로마 제국을 포함하지만 공의 시행에 대한 강조와 함께 지방 자체의 권위도 포함한다. 통치 세력이 이교를 조장하거나, 이러한 세력이 자체의 권위를 남용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세력에는 자체가 이행하는 일에 대해 신적 위임이 부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체에 대한 의무들이 그러해야만 하듯이 존경을 받아야만 한다.||(b) 사도 교부들의 저작에는 이 동사가 4회 사용되었다. 클레멘트일서 20:2에서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별들의 진로, 클레멘트일서 40:1- 2에서 예배 의식의 정한 시간, 바나바 서신 18:1에서 천사들이 빛의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폴리캅의 순교 l0:2에서 순교자가 통치자에게 한 말은 롬 13:1을 반영한다.|(참조: J.H.Thayer; G.Delling; J.I.Packer).
황소
tau'ro"
황소 ox||#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우로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황소' bull, ox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타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a) 타우로스는 행 14:13에서 제사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b) 타우로스는 제사의 효력에 관하여 사용되었다.|①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② 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c) 타우로스는 마 22:4에서 오찬 준비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타우타
tau'ta
이, 저것.||타우타는 지시 대명사 후토스($3778: 이것 this)의 중성 복수 주격 또는 대격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80여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와 같이
taujtav
이와 같이||타우타는 $3588과 $846의 중성 복수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와 같이', '같이' 등으로 번역했다(눅 6:23; 눅 6:26; 눅 17:30; 살전 2:14).
타우타이스
tauvtai"
타우타스|이, 이런 these, those.||이 단어는 $3778의 복수 여격과 대격으로 기능하며, 영어로 'these, those'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 '이런~'으로 번역했다.
타우테
tauvth/
타우테스|이, 이것||이 단어는 각각 $3778의 여성 단수 여격, 대격, 속격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 이것'이란 의미로 번역했다.
묘지
tafhv
매장 buria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페(Soph., Hdt. 이래)는 답토($2290: 매장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매장, 장례'를 의미하며, 혹은 매장지와 관련하여 납골단지(cinerary ur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Sophocles ). 심지어 이집트의 파피루스들에서는 "미이라"(mummy)와 결부되어 쓰기도 하였다. 이 단어는 토장(inhumation ) 혹은 화장(cremation ) 그 어느 편에도 적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타페는 70인역본에서 17회 나오며, 카발(매장하다), 게부라(묘, 매장), 케벨(묘)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타페는 '묘'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나 어떤 때에는 '매장'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는 신약성경에서 마 27:7에 한번 나온다: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나그네들의 매장을 위하여 특별히 두는 것은 선한 일로 여겨졌다. 비록 다른 목적을 위해 이미 오염되었던 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별로 관계가 없다.|(참조: Walter Bauer ; C.J.He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