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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비옴
uJetov"
호우, 큰비, heavy show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에토스(Homer 이래로)는 휘오(%100:비가 오다)에서 유래했으며, '큰 소나기, 호우'를 의미한다. 리델(Liddell)과 스코트(Scott)가 지적한 대로, 옴브로스(계속 오는 비)와 반대로 큰 소나기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에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게솀(비, 소나기, 창 7:12; 창 8:2; 암 4:7 등), 마타르(비, 시 147:8; 욥 5:10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에토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온다.|행 28:2에서 휘에토스는 불쾌한 비를 나타난다: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그러나 반면에 행 14:17에서 하나님의 좋은 선물로 나타낸다: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하늘로부터 주어졌으며(행 14:17),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다(약 5:18).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연관되어 있다(히 6:7).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목적 수행을 위해 비를 멈추게 한다(계 11:6).|(참조: L.L.Morris; J.H.Thayer).
아들들이 되게 함
uivoqesiva
양자삼기 adop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오데시아(Diod., Dind., Diog.)는 '양자 삼음', 즉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입적하는 것을 의미하는 전문 법률 용어이다. 고대 헬라 세계에서 양자법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공적으로 시행되었다. 양자는 상속자가 없을 때, 상속자가 되며, 법적 후손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양자가 되었다고 해도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유언과 관련된 양자는 그의 양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는 것이다. 70인역본에는 이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휘오데시아는 신약성경에서 5회 바울서신에만 나온다.||(a) 휘오데시아는 하나님께서 기타 모든 민족에 우선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자신 사이에 기쁘게 수립하신 그 관계를 나타낸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롬 9:4).||(b) 휘오데시아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의 본질과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자신들의 영혼 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롬 8:15; 갈 4:5; 엡 1:5).||(c) 휘오데시아는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귀환하신 후 장차의 삶에서 기대되는 그 복된 상태를 포함한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양자 될 것을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해 줄, 하나님의 아들들의 최고 최상의 상태를 기다리는 것이다(참조: 롬 8:19).|(참조: J.H.Thayer; E.Schweizer).
권위자
uivov"
아들 s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오스(Homer 이래)는 인간의 아들과 동식물의 소생을 포함하는 아주 광범한 의미의 '아들'을 의미한다.|나아가서 휘오스는 직접적인 부모가 아니더라도 조상들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후손'(descendant)을 의미할 수도 있다(Homer,11., 2,727). 예컨대 '손자'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등이다.|가족 관계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해 관계의 개념이 되기도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집단의 회원 자격이 아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Homer: the Achaians의 아들들)은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마지막으로 휘오스는 속격과 더불어 어떤 사물이나 개념이 서로에 의존되어 있거나 서로에 소속되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예: 빛의 아들들, 어둠의 아들들 등등).||#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80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벤(아들, 손자, 어떤 집단의 구성원)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휘오스는 70인역본에서 사람의 아들이나 짐승의 새끼, 자손, 어떤 특정 집단의 구성원,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단 7:13이하에서 사람의 아들(인자), 즉 메시야를 나타내며, 또한 선지자를 인자로 표현한다(겔 2:1; 겔 2:3; 겔 3:1 등).||#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7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1. 하나님에 대한 언급없이 표현된 휘오스.|(a) 휘오스는 아들과 부친의 관계(막10:46), 모자 관계(마20:20), 부모와 자식의 관계(눅1:13)를 말할 때 사용되었다.||(b) 휘오스는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예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1:21이하와 눅 1:31; 눅 2:7에서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아들로 언급되었다. 족보에서는(마 1:16; 눅 3:23) 혈통적 후손보다 법적인 것을 더욱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막 6:3의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언급은 아마도 요셉이 죽은 후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 생각된다. 병행구 마 13:55; 눅 4:22; 요 6:42에서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원의 참된 신비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계 12:5의 아들은 공동체(그리스도교회)의 아들인 것처럼 보인다.||(c) 마 2:15에서 예수님은 세계의 구원자로 예정된 한 아들이었다: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는 호세아 11:1 인용절("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에서 그 거룩한 주의 가족이 애굽에서 돌아온 것을 이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성취라는 차원에 있어서 이것을, 장차 올 것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였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호세아가 분명히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어릴 때에 애굽으로부터 돌아온 것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의 성취인 것이다. 즉 지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 그것도 호세아가 언급하고 유대인들이 역사상의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본래의 출애굽 사건은 외견상 무의미하게 보였으나 사실상 인류를 위하여 가장 뜻깊고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 바로 그 사건의 예시적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Colin Bown).||(d) 휘오스는 예수님과 믿는 자들을 묘사한다. 마 7:9과 히 12:5이하에는 믿는 자들을 아들처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있다. 마 17:25 - 마 17:26에서는 믿는 자들은 임금의 아들이다. 여기서 강조하려 한 것은 율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전과 희생 제사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믿는 자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할 수 있으나 유대인 선교가 항상 가능할 수 있는 회당에서의 교제의 계속을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마 5:9에서 "화평케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가장 높은 영예이며 가장 귀중한 은혜의 선물이다.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단어들은 그 모두가 하나님의 결정에 의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 수 없다. 그에게 그 이름이 주어짐으로써만 아들이 되는 것이다(A.Schlatter; 참조; 신 14:1; 호 2:1). 마태복음 중의 중요한 여러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또는 암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사실에 의거해 볼 때 이 일곱번째 복은 한층 더 의의가 깊다고 하겠다. 세례 받을 때, 시험 받을 때, 베드로의 신앙 고백, 변화산상의 사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제자의 파송 등이 이러한 부분들에 해당된다(마 2:15; 마 3:17; 마 4:3, 마 4:6이하; 마 8:9, 마 8:29; 마 11:25이하; 마 14:33; 마 16:16; 마 17:6; 마 21:37이하; 마 26:63; 마 27:40, 마 27:43, 마 27:54; 마 28:19).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볼 때 이 일곱번째 복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① 이스라엘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으며 다만 이스라엘 중의 화평케 하는 자들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② 또한 인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예수님과 동일한 신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e) 예수님은 최고의 선이 되시는 아들이시다.|눅 7:12에서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으로 당신의 연민을 나타내 보이셨다: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눅 14:5은 안식일일지라도 치료를 행하여야 하는 급박성을 말하면서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진 경우를 상징하고 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f) 예수님은 신자들이 최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분이시다.|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반목은 종말적인 환란의 표시이다: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3).|② 참된 제자의 도리는 아들이나 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g) 전이된 의미로, 요 19:26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를 그의 모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h) 휘오스는 아브라함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가리킨다.|① 눅 15:21이하에는 용서가 탕자를 참된 아들로 만들어 주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② 눅 19:9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이 구원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언급한다.|③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 갈 4:22이하).|④ 막 27:9; 눅 1:16; 고후 3:7이하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다.||(i) 휘오스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마 12:27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을 바리새인들의 "아들들"이라고 칭하신다.|행 23:6에서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한다.|벧전 5:13에서 마가는 베드로의 아들로 언급되었다.||(j) 휘오스는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나라의 아들들'(마 8:12; 개역, "나라의 본 자손들"), '평화의 아들'(눅 10:6; 개역 "평안을 받을 사람"), '빛의 아들들'(눅 16:8), '이 세대의 아들들'(눅 16:8), '부활의 아들들'(눅 20:36; 개역, "부활의 자녀"), '악한 자의 아들들'(마 13:38), "마귀의 아들"(행 13:10), "불순종의 아들들"(엡 2:2), "멸망의 아들"(요 17:12), '신랑의 방에 있는 아들들'(막 2:19; 개역, "혼인집 손님들"), "우뢰의 아들"(막 3:17) 등이다.||2) 하나님의 휘오스로서 예수님.|(a)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다. 그 때문에 비난자들은 예수님을 조롱했다(마 27:43).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이 칭호 이상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너희의 아버지" 하나님을 구분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천명하셨다.||(b) 예수님은 다윗 왕권 계승자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① 승귀의 통치. 롬 1:3-롬 1:4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 공동체의 메시야적인 왕으로서의 영원한 왕권을 수여받은 다윗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 구절에서의 "하나님의 아들"은 기능을 나타낸다.|②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활. 행 13:33에 의하면 예수님은 아들로서 일으키심을 받으셨다. 이 구절의 핵심은 부활이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하나님의 독특한 개입 행위와 함께 아들의 왕적 통치의 시작이 된다.|③ 예수님의 세례(침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침례)에 대한 진술은 종말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다윗의 왕권을 계승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나님의 기쁨은 종말적인 왕을 선택하신 사실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의 사역은 다윗 가문에게 약속하신 통치로 이해되며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④ 아들의 나라로 세상에서 공동체의 분리. 골 1:13이하에서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워진 존재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죄의 용서는 믿는 자들을 어둠의 세력에서 구해내서 영광받으신 주님의 다스림 안으로 옮기워 놓는다. 이러한 개념은 쿰란 공동체의 사상과 유사하다.|⑤ 예수님의 변형. 막 9:7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다시 종말론적인 왕으로서의 예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정이 연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⑥ 시편과 연결 구절들에 나타난 아들. 시 110편과 막 12:35이하는 다윗의 아들의 통치와 하나님의 우편에 앉는 것을 연관시킨다(히 1:5이하). 히 5:5-히 5:6은 대제사장 사상을 연결시키기 위해 시 2:7과 시 110:4을 결합한다.||(c) 하나님의 아들의 종말적인 역할과 절대자 호 휘오스.|① 인자, 그리스도론의 관계. 살전 1:10은 하나님의 아들의 종말론적인 역할을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시켜 설명한다. 아마 여기서 바울은 원래의 인자 사상을 이렇게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계 2:18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계 1:13이하의 인자와 같은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인자라는 원래의 칭호가 영광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변형된 것을 보게 된다.|막 14:62은 거꾸로 인자를 시 110:1과 연결하고 있다(시 8:6; 시 110:1을 연결하고 있는 고전 15:25이하와 엡 1:20이하).|② 고전 15:28. 이 구절에서 휘오스는 묵시적인 문맥에서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은 종말적인 완성을 가정하지 않은 그리스도론을 배격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유니테리언적인 개념을 피하면서 아들을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두 하나님 교리를 불식시킨다.|③ 막 13:32. 이 구절의 주제는 다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이다. 이 땅에서의 사역 기간 중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속된다. 그러나 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지만 종말론적인 완성의 때는 알지 못한다. 이 구절에서는 "아들"이 핵심 단어가 아니며, 아마도 여기의 아들은 "인자"라는 칭호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눅 12:8; 마 13:41; 요 1:51, 인자와 천사들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④ 마 11:27. 이 구절은 아들과 아버지를 연합시킨다. 이 구절의 강조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간의 앎이라기보다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선택과 인정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고, 그래서 아들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승인 아래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독특한 중보자로서의 지위가 강조되어 있다.|⑤ 요한 문헌. 절대자 호 휘오스의 계시적인 근거는 요 3:35; 요 5:19이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아들 안에서 아버지를 본다. 그래서 아들을 믿는 것은 곧 아버지를 믿는 것이다. 요 8:35-요 8:36은 종의 일시적인 머무름과 아들의 영원한 거주를 대조하고 있다(갈 4:7, 참조: 히 23:5-히 23:6; 롬 8:15이하).||(d)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 갈 4:4 - 갈 4:5; 롬 8:3이하; 요 3:17; 요일 4:9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주어는 항상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사용된 히나 절은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이 보내어졌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혜 또는 성령을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선재하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 아들은 하나님과의 친밀성에 있어서 천사들이나 선지자들과는 구별이 된다. 이러한 범주는 헬레니즘 유대교에서 발견되어지는 것과 같지만, 헬레니즘 유대교에는 없는 역사적인 일회성과 종말적인 긴급성이 있다. 이러한 범주들은 공간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시대적인 것들이다.||(e) 하나님의 아들의 동정녀 탄생과 기적의 수행.|① 눅 1:35은 동정녀 탄생을 휘오스 데우(하나님의 아들)와 연결시키고 있다. 인간 아버지가 없는 자로서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설명하면서 그 아들을 다윗의 줄기와 연관시킨다. 이 용법에는 어떤 병행구도 없다.|② 기적의 수행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막 5:7에서 귀신은 예수님을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다. 막 1:24에 기록되어 있는 귀신들린 사람의 외침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상의 뿌리가 구약의 카리스마적인 인물(아마도 데이오스 아네르와 관련되었을 것이다)에 있음을 보여준다. 귀신들을 내어쫓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이 사상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f)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인의 고난. 마 27:43에는 대제사장들이 시 22:8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조롱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지혜서 2:18의 고난받는 의인의 반열에 선 하나님의 아들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졌기 때문이다. 고난받는 의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종이며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한 후에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는다. 여기에서의 일반적인 견해는 고난을 당하는 것과 아들됨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C.Brown; C.Colpe).
휠레
u{lh
숲, 수풀, 재목.||#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휠레(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숲, 수풀, 화목, 재목',|(b) '재료, 물건'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휠레는 신약성경에서 약 3:5에 한번 나오며, '숲이나 수풀'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마스
uJma'"
너희를 you.||휘마스는 2인칭 대명사 휘메이스($5210)의 대격이며, '너의' you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35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메이스
uJmei'"
너는 you.||휘메이스는 2인칭 대명사 쉬($4771: 너 you)의 복수 주격이며, '너는, 당신은' you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36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후메내오
@Umenai'o"
후메내오 Hymenaeus (인)||휘메나이오스는 '결혼의 신에 속함'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딤전 1:20; 딤후 2:17). 그는 바울이 그의 믿음이 파산하였다고 비난한 이단자(딤전 1:20; 딤후 2:17)이다. 아마도 그는 기독교 교회 안으로 파고 들어온 그노시스주의에 물들었던 것 같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메테로스
uJmevtero"
너희의, 너희의 것.||휘메테로스(Homer 이래)는 휘메이스($5210)의 2인칭 복수 소유 대명사 '너희의' your, '너희의 것' yours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너희가 소유한' possessed by you.|① 실명사와 함께, 요 8:17; 고후 8:8; 갈 6:13.|② 실명사적으로, 눅 16:12.||(b) '너희에게 주어진[할당된]' allotted to you, 행 27:34; 롬 11:31; 요 7:6; 눅 6:20.||(c) '너희에게서 비롯되는, 기인하는' proceed: 요 15:20(고전 16:17).||(d) 목적어적으로 '너희에 대한', 고전 15:3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민
uJmi'n
너에게 you.||휘민은 2인칭 대명사 복수 휘메이스($5210)의 여격이며, '너희에게' you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8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휨네오
uJmnevw
축하하다 celebrate, 찬양하다 praise, 노래하다 s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휨네오(Hes., Hdt. 이래로)는 휨노스($5215: 노래, 찬양)에서 유래했으며,||(a) 찬양의 '노래를 부르다', 인격이나 사물을 대격으로 하여, 예를 들면, 합창으로 신들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찬양하다',||(b) '엄숙히 단언하다(증언), 역설(강조)하다, 낭송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 용법||동사 휨네오는 70인역본에서 6개의 히브리어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동사는 히브리어 할랄(피엘형, 찬양하다)의 역어로(삿 16:24; 대하 29:30[2회]; 느 12:24; 시 22[21]:22), 자마르(피엘형,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다 혹은 찬양하다)의 역어(대상 16:9; 사 12:5)로, 야다(히필, 고백하다, 찬양하다)의 역어(느 12:24; 사 12:4; 25:1), 야다(히필, 알려지게 되다)의 역어(대하 23:13), 라난(기뻐 외치다)의 역어(잠 1:20; 8:3), 쉬르(노래하다)의 역어(시 65[64]:13; 137[136]:3; 사 40:2)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외경에서도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휨네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찬양'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26:30(병행구, 막 14:26)에서 휨네오는 할렐, 시편 부르기를 묘사한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b) 행 16:25에서 휨네오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을 나타낸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c) 히 2:12에서 휨네오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찬양을 묘사한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참조: G.Delling; K.H.Barfels).
휨노스
u{mno"
노래, 찬양송, 찬송.||#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휨노스(Homer 이래로)는 어원이 확실하지 않으며, '노래하는 것, 노래'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어떤 특수한 운율적인 형식은 없다. 그보다 휨노스는 가장 다양한 시 형식들을 총괄하는데 사용된 보편적인 단어이며, 처음부터 내내 휨노스는 노래로 불리워진 시 뿐 아니라 낭독된 시를 의미하였다. 언제나 일반적인 의미와 예배적인 의미가 분명하게 구분된 것은 아니다.|대체로 휨노스는 '신들에 대한 노래', 특히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의미하며, 아마도 인간들에게 바친 찬양이란 의미의 에파이노스와는 구분되는 것 같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휨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8회 나오며, 할랄(찬양하다)의 피엘형(대하 7:6; 느 12:24)와 테힐라(찬양, 느 12:46; 40[39]:3; 65[64]:1; 100[99]:4; 119[118]:171; 148:14)과 표제에서 현악기를 가리키는 것처럼 여겨지는 음악 용어인 네기나(시 6:54[53]; 55[54]:61[60]; 67[66]; 76[75])와, 그리고 쉬르(노래, 느 12:46; 사 42:10)와 테필라(기도; 시 72[70]:20)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오경에도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휨노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골 3:16과 엡 5:19에만 나오는데 '찬양'이란 의미를 지닌다.|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께 바치는 교회의 노래 속에 살아있으며 그 노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한다.|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여기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주제로 된 찬양이 주님께 바쳐진다.|(참조: J.H.Thayer; K.H.Barfels; G.Delling).
휘몬
uJmw'n
너희의 your.||휘몬은 2인칭 대명사 복수 휘메이스($5210)의 속격이며, '너희의' your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0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파고
uJpavgw
떠나가다, 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휘파고(Homer. 이래)는 휘포($5259: ~에 의하여, ~아래, 밑에)와 아고($71: 인도하다, 데려오다[가다], 끌어오다, 가져오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래로 인도하다' 또는 '아래로 데리고 오다, 가버리다, 물러가다, 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파고는 신약성경에서 7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휘파고는 어떤 사람 앞에서 '떠나 가버리다'는 의미에서 '가버리다'를 의미한다(마 4:10; 마 16:23; 막 8:33; 눅 4:8; 요 6:69; 마 8:13; 마 19:21; 마 20:14; 막 2:9; 막 7:29; 막 10:52; 막 5:34; 약 2:16; 요 18:8; 막 6:33; 요 11:44; 막 6:31).||(b) 휘파고는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다' go를 의미한다(마 9:6; 마 20:4; 마 20:7; 막 2:11; 막 11:2; 막 14:13; 눅 19:30; 요 6:21; 요 7:3; 요 9:11; 요 11:31; 계 13:10; 계 17:8; 계 17:11; 막 26:18; 마 5:41; 눅 12:58; 요 11:8; 계 14:4; 요 21:3; 마 18:15; 마 5:24; 마 8:4; 마 19:21; 마 21:28; 마 27:65; 마 28:10; 막 1:44; 막 6:38; 막 16:7; 요 4:16; 요 9:7; 계 10:8; 마 8:32; 눅 10:3; 요 15:16; 눅 8:42).||(c) 휘파고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7:33; 요 16:5; 요 16:10; 요 16:17; 요 8:14; 요 13:33; 요 14:28; 요 13:36; 요 14:4; 요 14:5; 요 16:5; 요일2:11; 마 26:24; 막 14:2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복종
uJpakohv
순종, 복종 obedience.||#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파코에는 휘파쿠오($5219: 복종하다, 듣다)에서 유래했으며, '복종'을 의미한다. 일반 헬라어에서는 주후 6세기부터 나타난다.||#2. 70인역본의 용법||휘파코에는 70인역본에서 삼하 22:36에 한번 주의 온유, 곧 '순종'을 나타낸다: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파코에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복종(순종)이란 의미를 나타낸다.|롬 5:19에서 아담의 불순종과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히 5:8이하에도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본이 되었다.|사도 바울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최고의 권위이다(고후 10:5).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순종은 믿음의 순종이다.|바울은 기쁘고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직분을 받은 사도로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았다(롬 1:5; 롬 16:26). 그는 롬 15:18과 롬 16:19에서 이와 같이 순종케하는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므로 사도에 대한 복종을 포함한다(고후 7:15; 고후 10:5이하; 몬 1:23). 그것은 의에 이르게 하는 설교(롬 6:16이하)와 진리에(벧전 1:22) 대한 복종이다.|벧전 1:2과 벧전 1:14절에서도 이러한 순종에 대해 언급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순종하는 자식"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순종이 그들의 전(全) 생활을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W.Mundle ).
순종함을 받다
uJpakouvw
말을 듣다 listen, 순종한다 obe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파쿠오(Homer 이래로)는|(a) '듣다, 대답하다',|(b) '복종하다, 따르다',|(c) '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휘파쿠오는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온다. 휘파쿠오는 주로 히브리어 사마(듣다, 경청하다, 복종하다)를 번역하는데,순종은 사람에게(창 16:2; 22:18), 지혜에게(시락서 4:15; 24:22), 그리고 하나님에게(예: 렘 3:13, 25)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사50:2; 66:4 등에서 휘파쿠오는 히브리어 아나(대답하다, 응답하다)를 번역한다. 이 말은 사65:24에서 인간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파쿠오는 신약성경에서 2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행 12:13에서 휘파쿠오는 '문에 응답하다(영접하러 나오다)'는 의미로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b) 휘파쿠오는 '복종하다'는 의미로 아내, 자녀, 종(엡 6:1; 엡 6:5; 골 3:20; 골 3:22), 귀신, 자연(막 1:27; 막 4:41), 선한 능력이나 악한 능력에 일반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인간(행 6:7; 롬6:12; 롬 6:16-롬 6:17; 살후 1:8), 공동체(빌 2:12; 참조: 행 5:32)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G.Kit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