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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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하다, 덮개를 벗기다, 나타내다, 드러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아포칼륍토는 칼륍토($2572: 덮다, 감추다)와 아포($575: ~로부터)에서 형성되었으며, 헤로도투스 이래로 고전 헬라어에서 사용되는데, 그 의미는 '덮개를 벗기다'에서 '이전에 감추인 것을 나타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a) 아포칼륍토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거의 예외없이 히브리어 동사 갈라, 특히 '벗기다(strip)'라는 뜻의 니팔형과 '드러내다,폭로하다'라는 뜻의 피엘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도 이 단어는 창 8:13에서 문자적으로 방주의 뚜껑을 제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민 5:18에서는 머리를 푼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이 단어는 본래 레 18:6 이하와 레 20:11 이하의 법규에서 처럼, 그렇지 않았더라면 덮여있을 성기를 성적 결합을 위하여 노출시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런즉 벗김의 목적은 멀리서 관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렬한 형태의 만남으로 들어가는데 있으며, 여기에는 개개인의 인격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 개념을 가장 두드러지게 채택한 사람은 에스겔이었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말을 사용하였다(겔 13:14; 겔 16:36 이하, 겔 16:57; 겔 21:29; 겔 22:10; 겔 23:10, 겔 23:l8; 겔 23:29).|상징적이면서도 여전히 일상적으로 사용된, 아포칼륍토는 '계시하다, 알리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수 2:20; 삼상 20:2; 삼상 20:13; 삼상 22:8; 삼상 22:l7에서 인간의 언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고 마카베오일서 7:31에서 인간의 계획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b) 대체로, 아포칼륍토가 70인역본에서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일반적인 용법이 지배적이다. 이 단어는 민 22:31과 민 24:4; 민 24:16에 기록되어 있는 발람의 예언적 경험의 설화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발람 선지의 내면적 눈을 여시고 그에게 참된 실재관을 제공해 주셨는데,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기를 바라는 발람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존자의 지식을 주시어 그로 그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계시가 희귀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전에 자기를 알지 못했던 사무엘에게 계시하셨으며(삼상 3:7; 참조: 삼상 3:1), 사무엘의 선지자적 권위는 그 후의 일련의 계시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무엘은 분명히 완전히 깨어 있었으며 무아경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삼상 3:9 이하). 삼상 9:15과 삼하 7:27에는 귀가 열림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사무엘과 다윗은 하나님의 훈계와 약속을 들을 수 있었다. 시편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시 119:18). 자기의 종인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신적 파이데이아($3809: 교훈) 즉 자기의 은밀한 조언을 계시하신다(암 3:7).|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지식, 신의(神意)와 비밀들을 전달하는데, 요컨대 이 지식은 무한한 것이다. '지혜의 근원이 누구에게 계시되었느뇨?'(집회서 1:6). 지식의 전달과 함께 하나님의 행위가 계시된다, 삼상 2:27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노예 시기에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의 계시를 회고하는 것이다. 사 52:10과 사 53:1은 하나님의 "팔", 곧 권능의 계시를 말한다. 사 56:1에서 하나님은 자비하심을, 그리고 시 98:2 이하에서 자신의 의(義)와 구원을 계시하시는데, 세상의 종말 때에 이것을 보게 될 것이다. 70인역본의 언어는 옛 언약 하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계시 활동의 분명한 모습을 제공해 준다.||#3. 유대교에서의 계시||(a) 유대교는 더 이상 직접적인 계시를 기대하지 않는다. 초점은 율법, 예언서, 성문서들에서 나타난 과거의 계시에 있는 것이다. 구전(口傳)은 단지 해설으로서의 의미만 지닐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알려지고 있고 앞으로도 알려질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새로운 계시가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시의 일부는 새로운 설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b) 묵시는 개시의 대용어이다. 묵시의 유형은 위경(僞經)이다. 계시들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신적인 초월성이 강조된다. 새 시대는 이미 존재한다. 악이 절정에 달할 때 새 시대는 능력을 가지고 동틀 것이다. 선견자들에게 있어서는 환상 속에서 이미 베일이 제거되었다. 선견자들은 싸우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러한 환상을 제시해 준다. 묵시의 주제들의 중요성. 세계사에 대한 개념, 그리고 계시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로 인해 묵시는 중요하게 된다.||(c) 헬레니즘 유대교는 한편으로는 변증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더욱 내재주의(immanentism)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필로와 지혜서(예: 13:3 이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목적론 속에서 하나님을 식별한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비록 용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또한 측은한 것이다. 헬라 철학에서처럼 필로에게서도 아래로부터 위로의 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필로는 범신론의 위협을 피하기가 어렵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계시된 율법과 자연법을 동일시하는 견해가 발전한다.|헬레니즘 유대교에서 아포칼륍토와 아포칼륍시스라는 용어는 드물게 사용되었다. 필로는 이 두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4. 신약성경의 용법||(a) 아포칼륍토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타난다. 눅 2:35에서 아포칼륍토는 생각을 드러낸다는 일상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b)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의 전달자이다. 마 11:25 이하와 병행구절인 눅 10:21 이하에서 예수님은 계시자로서 우리를 상면하시니, 거기서 그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계시하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를 찬양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율법에 조예가 깊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이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가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병행구: 눅 10:22). 옛 언약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탁월한 것이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계시가 전달하는 지식을 향한 첫 단계로서만 여겨질 수 있다.|요한복음에서 이 명사는 사용되지 않고 이 동사가 요 12:38에서만 사용되었다 할 지라도(사 53:1에서 인용), 예수님이 하나님 계시의 전달자라는 주제는 공관복음서에서보다 휠씬 더 강력하게 설명되어 있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도 그가 행하신 기적도 유대인들을 믿게 하지는 못하였다'(Hoskyns). 그는 성부를 알려준 유일한 성자이다(참조: 요 1:18). 그는 그가 성부에게서 들은 바를 세상에서 말씀하고 계신다.|(참조: 요 3:32; 요 8:26; 요 15:15).||(c) 신약성경의 계시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첫째로 내용 지향적이지만 계시의 행동과 사건 역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눅 10:22 이하(참조: 마 13:16)에서 밝혀 준다: 제자들은 계시를 받은 것이다. 구약성경의 진술은(참조: 민 22:31; 삼상 9:15 등) 계시가 하나님의 영향으로 눈과 귀가 열리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신약성경도 다를 바 없다. 눈에 맞게 보여지는 것,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있다(참조: 딤후 1:1O; 딛 2:11; 딛 3:4). 귀의 열림과 맞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히 1:1 이하). 하나님의 계시는 지상 세계에서 인지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에 알맞게 사도들은 그들이 듣고 본 것을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손으로 만진 것을 전파하였다(행 4:20; 요일 1:1). 이 본 것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심, 생명의 말씀이다(요 1:14; 요일 1:1). 제자들은 축복 받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갈망하였으나 거부되었던 것을, 그리고 천사들이 보기를 고대하던 것을 듣고 보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이다(벧전 1:12; 참조: 마 13:I6; 눅 10:22 이하). 하나님의 영광을 인지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듣고, 보는 것은(요 11:40) 불신앙의 듣고 보는 것과 다르니, 사실 그것은 전혀 듣거나 보는 것이 아니다(이것을 밝혀 주는 사 6:9 이하가 신약성경에서 6회나 인용되다: 마 13:13 이하; 병행구, 막 4:12; 눅 8:1O; 요 12:39 이하; 행 28:26 이하; 롬 11:8).|이전의 계시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새 계시에 대한 지식은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신앙 자세의 특색이다.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그 이전의 계시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다(벧전 1:11 이하; 참조: 롬 1:2), 그런즉, 믿지않는 유대인이 구약성서를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베일이 덮여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개종해야만 제거될 수 있다(참조: 고후 3:14 이하).||(d) 계시의 중심 내용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하늘에 계신 성부께서 베드로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계시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l7). "혈육"은 이 지식을 그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계시되어진 바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바를 그들의 선포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여야 했다.|마 10:26과 병행구인 눅 12:2에서 아포칼륍토는 복음 전파와 박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감추인 것이 실제로 덮여서 그런 상태로 있던지, 혹은 일급 비밀이든지, 그것이 무엇이든, 그 덮개는 열려지거나 벗겨질 것이며, 폭로될 것이다. 이 말은 일반적 의미로서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그들의 모든 비밀과, 한편 제자들과 복음의 비밀을 모두 두고 한 말씀이다. 즉 박해를 하는 자나 박해를 받는 자에게 있어서 그 사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며, 심판날이 그 기록을 바로 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담대하게 전파해야 한다. 지금 제자들은 어떻게 되든 조금도 두려워 말아야 한다(참조: R.C.H.Lenski; R.Earle).|이렇게 하여 제자들의 설교에서 계시의 사건이 계속된다.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듣는다(참조: 눅 1O:16; 마 1O:40; 요 12:44; 요 13:20).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증거할 진리의 영을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신다. 그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들을 완전한 진리로 인도할 것이다(요14:26; 요 15:26; 요 16:13). 계시의 사건은 예수님의 지상 실존에서 종결되지 않았다.||(e) 고전 2:10에서 성령이 사도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장본인으로서 나타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엡 3:5(롬 16:25)의 진술도 사도들의 메시지의 계시적 성격을 구체화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일치한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다른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전 14:30; 빌 3:15; 참조: 고전 l4:26). 이것은 하나님이 에베소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실 것을 구하는 바울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다(엡 1:17). 제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이해케 한다.|(참조: 엡 2:18; 요 16:13).||(f) 말씀을 통한 계시와 아울러 하나님의 행위 속에서의 계시도 있다. 바울이 율법 아래 갇힌 사람의 입장에서 계시되어야 할 믿음(피스티스)의 메시지에 대해 말할 때에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 자체의 사상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사건의 사상이 있다(갈 3:23). 복음에는 구원을 포함한 하나님의 큰 선물 곧 "하나님의 의"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로써 죄인이 의롭게 된다(롬 1:17; 롬 3:21).|이 계시는 물론 다른 계시, 곧 하나님의 진노의 계시와 대조되는데, 그것은 죄악된 인간성에 임하여 그를 죄 속으로 훨씬 더 깊이 가라앉게 한다(롬 1:18 이하).|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그것이 회개치 않은 자를 가혹하게 칠 것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한 증오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에 의해 예기되었다. 고전 3:13에서도 주의 날에 계시될 "불"을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심판의 불 뿐만 아니라, 순결케 하는 불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날(살후 2:2) 이전에, 하나님의 지성소를 장악할 적 그리스도의 권세의 계시가 있을 것인데, 주께서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그것을 폐할 것이다(살후 2:3; 살후 2:6; 살후 2:8).|강림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 및 하늘의 영광의 계시와 결부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러한 영광 때문에 그 시대의 고통을 망각해 버리고 만다(롬 8:18 이하).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마지막 계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의 영광의 계시이니,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고통과 여러가지 유혹을 당하나 , 이 계시 안에서 분깃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모든 소망을 이 구원과 은총에 두어야 한다(벧전 1:5 이하; 벧전 5:1; 참조: 벧전 4:13).|(참조: W. Mundle; A. O. Ep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