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하다
a{ptomai
만지다, 대다, 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하프토마이는 하프토($681)의 중간태이며, '대다, 달다, 먹다, 공격하다'를 의미한다.|5세기전 고전 작가들에게서 이 단어는 여인과의 성관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며 또한 '잡다' seize, '공격하다, ~에 관여하다'(concern oneself with, 곧 작품이나 철학 따위에 관여하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해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가 어떻게 만짐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료를 하는가를 반어적으로(ironically) 말한다. 아스클레피우스나 세라피스(Serapis), 또는 다른 어떤 신들을 막론하고, 그들에 의한 만짐으로써 치료가 되는 여러 설화들은 대개 주후 2세기와 3세기부터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하프토(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125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나가('~에 대다, 달다, 이르다, 치다'), 하하즈(굳게 잡다, 겔 41:6에 1회), 셀라 야드(손을 뻗다, 욥 1:12에 1회), 아랍어 셰레트(~에 지배하는 권능을 소유하다, 단 3:27에 1회), 카라브(접근하다, 손대다, ~의 뒤를 쫓다, 민 3:10; 민 3:38, 겔 42:1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중간태 하프토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3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전 7:1에서 성관계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골 2:21에서 부정한 음식을 만짐에 대해 사용되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고후 6:17에서 사 52:11을 인용하여 이교도의 귀신 숭배적인 부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눅 7:39에서 예수님은 부정한 여인의 만짐을 피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요 20:17에서 예수님은 부활 후에 자신을 마리아가 만지는 것을 금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b) 막 1:41에서 주님은 자신의 육신의 손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지심과 동시에 문둥병자의 심령 깊은 곳을 불가시적으로 또한 만지심으로써 그의 부정을 제거하셨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막 7:33이하에서 예수님은 어눌하고 귀먹은 자를 고치실 때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련의 행동들은 이 사람에게, 자신 앞에 서 있는 분에게서 고침을 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치는 행동 자체는, 결함이 있는 인체의 기관이 아닌 전인으로서의 이 사람에게 전해진 '열리라'는 해방의 말씀으로, 완성되었다(W. L. Lane, The Gospel of Mark).||(c) 막 3:10이하; 막 6:56에서는 병고치심에 대한 위대한 기사는 만지심을 수반하는 기적들이다. 병자들은 "능력이 예수께로 나오는"(눅 6:19) 것을 실감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하였고(막 3:10), 또는 옷이나(마 9:20이하, 병행구, 막 5:27-막 5:30; 눅 8:44이하) 심지어는 옷가라도 만지고자 하였다(막6:56; 마14:36). "부정한" 질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나(막 5:27), 또는 질병에 걸려 걸을 수 없었던 갈릴리 사람들처럼(막 6:55)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진 자들은 병이 나아 온전하여졌다(마 14:36). 왜냐하면 그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영광과 생명의 형체를 만졌기 때문이었다.|막 5:30과 눅 8:45 이하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만지므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아셨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마가와 누가는 현대적인 사고와는 맞지 않는 어떤 것을 선언한다. 즉 믿음으로 주님을 만지고자 하는 고유적 힘이다. 예수님께서만이 병자 안에, 자신을 만지고자 하는 믿음을 일깨우실 수 있으시다. 믿지 않는 자는 단지 피상적으로 예수님을 만질 뿐이며(막 5:31)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자유 의사로 만져주시는 자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참여하여(막 9:27) 하나님 자신께서도 그에게 돌이키신다. 여인들은 오래된 유대 관습에 따라 서기관들이 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라고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마 19:13이하, 병행구, 막 10:13-막 10:16; 눅 18:15이하) 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기사는, 항간의 신앙에서 자주 발견되는 만짐의 마술적 능력에 대한 개념의 여지는 전혀 없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