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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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하려고 애쓰다, 편의를 도모하다, 기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레스코(Homer이래)는 '어울리다', '적합하다'를 뜻하는 어근 아르(%857)에서 유래했으며, 원래 의미는 '긍정적인 관계를 세우다'이다. 따라서 '화해하다, 화목하다', 그 다음 미학적으로 '기쁘게 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a) '호의를 가지고 있다',|(b) '즐거운 태도를 가지다',|(c) '기쁘게 하다'와 같은 뉘앙스를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레스코는 70인역본에서 6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토브(좋다, 유익하다, 기쁘다, 호의적이다, 행복하다, 옳다, 선을 행하다 등)와 그 파생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레스코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그 중 14회는 바울 서신에 나머지 3회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에 사용되었다.|마 14:6; 병행구, 막 6:22에서 아레스코는 헤로디아의 딸이 그의 음모를 이루기 위해 헤롯 왕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롬 15:1, 롬 15:2, 롬 15:3에서 바울이 세 번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다. 바울은 자칭 '강한'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 즉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였다(롬 15:10). 헤아우토이스 아레스케인(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어군은 "인간 존재가 전도(inversion)된 것과 하나님을 회피하는 것을 나타낸다"(O.Michel). 연약한 자가 꺼려하는 것은 강한 자가 지워준 짐이다. 만일 연약한 자가 지식에 결함이 있다면 강한 자는 사랑에 부족한 경향이 많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식자들에게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경고할 필요성을 느끼었다(고전 8:1). 바로 덕을 세우는 이 사랑을 바울은 주장한다(참조: 갈 6:2). 그래서 제멋대로 자기를 신뢰하는 자세에 대하여 바울은 각 사람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 이웃을 기쁘게 하여야 한다고 답변한다(롬 15:2). 이것은 다른 사람의 찬동이나 인정을 바라는 자세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참조: 엡 6:6) 하나님의 뜻을 이웃에 대한 사랑의 형태로 - 연약한 → 형제 Brother의 경우에 -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의 행동의 근본적인 방향은 바울이 아레스코로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살아가지 않으셨던 그리스도 자신의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롬 15:3; 우크 헤아우토 에레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꺼이 순종하였던, 구약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종의 자세를 취하셨다(시 69:9). 그러므로 아레스코(aresko)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릇된 것이든 타당한 것이든 간에,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특징 지워주는 용어였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그 자신의 경험으로 알았다. 자신의 개종을 통하여 바울은 인간의 호의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왜냐하면 그는 주의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여 살기를 바란다.|살전 2:4에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속적인 감찰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뜻을 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인간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외적인 것을 볼 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A.E.Airhart)|고전 10:33에서 바울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살았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바울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표 및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다같이 기쁘게 하며 살아가기를 추구하였다. 즉, 그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살았다(고전 10:33). 이와 같은 사상이 이 동사가 사용되지 않은 롬 12:17이하나 고전 9:22과 같은 다른 구절에서도 나타나 있다.|살전 4:1에 의하면 기독교 회중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딤후 2:4에서 아레스코는 군인의 사명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참조: 고전 9:7; 빌 2:25; 몬 1:2).|현재 복무 중인 군인은 민간의 생활에 휘말려 들지 않고, 오로지 그의 지휘관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세상적인 행복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일로부터 자기 자신이 이탈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점이 독자에게 큰 감명을 준다.|이와 마찬가지로 고전 7:32에 보면 결혼에 관한 염려에 묶이지 않는 미혼자는 그의 모든 정력을 그리스도의 승인과 인정을 얻어내는데 기울일 수 있다. 그에 반해 "육신에 있는 자들은(호이 데 엔 사르키 온테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여기에서 육신(살)은 인간적인 생각에 이끌리는 자기 중심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영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존재와 정반대인 것이다(참조: 롬 8:4이하, 롬 8:9, 롬 8:11, 롬 8:13, 롬 8:16). 그것은 마음을 육신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의된다(롬 8:7). 그 끝은 사망이다(롬 8:6, 롬 8:13).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게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다"(살전 2:15).|(참조: H. Beitenhard; W. Foer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