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치 아니함
ajsevbeia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음, 불경건, 신을 믿지 않음.||#1.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대부분의 경우에서 아세베스 어군(곧 아세베스, 아세베이아, 아세베오)의 의미와 내용의 언어학적 용법과 범위는 유세베스 어군(유세베스, 유세베이아, 유세베오)과 병행한다. 예를들면, 이 부정어 어군은 국가를 유지시키는 질서에 반하는 행위들(Aristoph, Thes.,356-367), 보호를 요청하는 자들을 내어주는 것(Hdt.,1,1159), 법률에 불복종하는 것(Plat.Leg.,Ⅸ,868d), 총명, 지혜, 견해에 대해 악평하는 것(Plat.Phileb.,28a), 조약의 수호자들인 신들을 멸시하는 것(Polyb.,18,54), 친구들 관계에서 약정을 어기는 것(Apophth.Lac., Agesilaos) 등을 의미한다.||(b) 헬라 도시 국가에서 규례와 신들에 대한 숭배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이 아세베스는 아디코스(불의, 죄)와 나란히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들에 대한 공경심의 결여와 제의적 의무에 대한 경시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도시 신들에게 예배하기를 거절하거나 제사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아세베이아이다. 일반 대중의 신앙에서 볼 때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철학자들은 에세베이스(불경한자)이다. 에픽레투스에게 있어, 신들의 선물과 능력을 영화롭게 하지 않거나 신이 정해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아세베이스이다.||(c) 도시 국가 및 도시 국가의 공식적인 예배가 쇠퇴하면서, 철학자들은 아데오테스(공식적인 신들에 대한 거부)와 아세베이아(법령 위반)를 구별하였다. 이러한 구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공식적인 신들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데오이(불경건한 자들, 신을 믿지 않은 자)의 부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아세베스(법령 위반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목회서신과 베드로전서에는 행동으로 유세베이아를 이방인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그리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가하는 행악자라 하는 비난을 반박하라고 신자들을 권고하는 내용이 나온다(벧전 2:12).|그리고 헬라 세계에서 신들에 대한 예배가 차츰 차츰 시들해져 가고 대신 철학적 이상과 윤리-도덕적 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감에 따라, 철학자는 무신론자가 될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들이 옛날의 그 신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묘사되었다(참조:Lampe,44 이하). 하지만 옛날의 신들을 부인하고 있다 하여 고소를 당했다는 것은, 그들이 아세베이아로 고소당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세베스라는 단어는 종교도 없고 도덕도 없는 사람만을 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기 때문이다(참조: Liddell - Scott 255).|아세베이아는 아세베스($765)에서 유래했으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확립된 질서들을 멸시 내지 위반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음, 불경건, 신을 믿지 않음'이란 의미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a) 70인역본에서 이 어군은 언제나 단순한 태도가 아닌 행동을 의미하며, 또한 제의적이나 특별한 종교적 행위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경향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이 문제가 된다(암 1:2). 70인역본에서는 부정적인 이 어군이 유세베스 어군보다 더 자주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유세베스 어군이 하나님께 대한 적절한 경외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미약한데 반해, 아세베스 어군은 악인의 특징인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경멸을 매우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b) 아세베이아는 아디키아(부정, 불의)와 동의어이며, 하마르티아(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회 질서와 사회정의는 예배와 불가분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세베이아는 때때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범죄 행위들이다(시 5:10; 시 65:3; 잠 28:3 등). 거짓 증인들은 아세베이아(아무에 대해 부정, 부당하게 증언하는 것)를 말한다(시 19:16).||(c) 요세푸스는 이 용어들을 매우 자주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으며, 때로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불의, 부정)를 구별한다. 필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부인(아데오테스)을 아세베이아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는 아세베이아를 모든 악의 근원인 욕망과 결합시킨다. Leg.ALL.,Ⅲ,9에서 아세베스를 디카이오스(의로운)와대조시킨다는 점에서 볼 때, 필로는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불의,부정)를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세베이아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타나온다.||(a) 롬 1:1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인간은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 즉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종살이하고 있다고 묘사하였으며, 그는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에게 신적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그에게 머물러 있다고 말하였다(롬 1:25). 그리고 바울은 당대의 모든 종교행위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볼 때 지혜로와 보일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예배의 영역에 있어서든 상호 인격적 관계에 있어서든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 및 그의 거룩한 뜻과의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70인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되지 않고있는데(앞의 고전 헬라어 문헌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빛에서 볼 때 양자가 모두 하마르티아(죄 sin)이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개념은 실로 마귀의 권세의 작용을 의미하는 다른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아세베이아 보다 우월한 개념이다.||(b) 롬 11:26은 사 59:50의 인용문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c) 딛 2:12에 의하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도록 하기 위하여 불경건한 생활에서 떠나도록 인도한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여기서 불경건이 유세베이아의 반대어로 나오는 것 같지만, 이 단어에는 고의적인 명령 위반도 포함되어 있다.||(d) 딤후 2:16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한 상태를 아세베이아로 표현하고 있다. 양심은 이것이 교훈의 도덕적, 종교적 결과이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e) 유 1:15; 유 1:18에서 거짓 교사들은 그들의 삶과 가르침 때문에 아세베이스이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참조: W.Gunther; J.H.Thayer; W.Foer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