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을 받다
blasfhmevw
중상하다, 비방하다 slander, defame, 모독하다 blasphem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블라스페메오(Pla., 이래)는 일반적으로 '나쁘게 평하거나 말하다, 비방·훼방하다'(blaspheme)를 의미한다.|고전헬라어에서, 신(deity)에 대한 그릇된 표현(예를 들면 신인 동형론적[anthropomorphic] 어법에 의해)이 신성모독으로 기술되기도 하였다(예: Plato). 신의 권위에 대한 의심도 그러하다.|(참조: H.W.Beyer).||#2. 70인역본의 용법||블라스페메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반항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이방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이 모욕받는 것을 언급하였다. 예를 들면, 앗수르왕과 비교하여 여호와를 무능한 자로 내리 깍아 "훼방한다"(왕하 19:4[야카: 비난하다]; 왕하 19:6, 22[가답: 모욕하다, 훼방하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할 때 여호와께서 모독을 받는다(마카베오이서 10:34). 사 52:5에서 (나하츠) 포로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간단없이 모독 당함에 대한 관원들의 슬픔은 여호와의 구원적인 간섭의(참조: 사 52:6) 기초적 역할을 한다.|대체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들을 향한 어떤 소망과 도움의 원천이라든지 두려움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서도 그들은 일반적으로 훼방자들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족하다(단 3:29[96], 아람어 샬라 또는 샬루).||#3. 신약성경의 용법||블라스페메오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사람이 목적어로 언급되거나 전제로 될 때 블라스페메오는 일반 헬라어의 용법과 같이 '헐뜯다, 중상하다, 비방하다'는 단순한 의미를 지닌다: 고전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딛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고전 10:30에서 블라스페메오는 '비난하다'를 의미한다: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b) 종교적 용법으로, 블라스페메오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롬 2:24=사 52:5), 비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약 2:7), 거짓 교사들이 천적 권위들은 물론(유 1:8-유 1:10→988 블라스페미아; 벧후 2:10-벧후 2:12), 교회와 그 믿음을(딤전 1:20; 벧후 2:2)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통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유사하게 블라스페메오는 삽입구의 진술에 사용되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구원(선)(롬 14:16), 하나님의 이름과 [기독교인의] 가르침(딤전 6:1)이나 하나님의 말씀(딛 2:5)이 비기독교 중에서 비방을 받거나 평판이 나쁘게 되어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게 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를 받는다.|블라스페메오는 '모독하다'(blasphemy)라는 실제적 의미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그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나 예수님과 성령이다. 행 19:37에서 대상은 여신 아데미이다(참조: Josephus Ant. ⅳ. 207; philo Spec. Leg. ⅰ. 53). 하나님에 대한 모독은 계 13:6; 계16:9; 계 16:11; 계 16:21에 명백히 언급되어 있다.|그러나 마 26:65에서 블라스페메오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하나님에게 '모독적인 말을하다'를 의미한다: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요 10:36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참조: 왕하 19:6; 마카베오이서 10:34; 12:14).||(c) 때때로 블라스페메오는 세속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가 결합되어 나타난다.|롬 3:8에서 우리가 '비난을 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벧전 4:4에 따르면 자기 뜻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을 때 하나님이 중상을 당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세속적·종교적 용법은 막 15:29; 마 27:39; 눅 22:65; 눅 23:39에서 나타난다. 블라스페메오는 특히 예수님에 대한 조소와 그의 메시야직의 주장에 대한 조롱을 표현한다. 동시에 이 동사는 이 행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힌 자와 하나님 자신이 조롱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d) 훼방이나 모독의 죄는(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의하면) 인자를 거스리는 훼방까지 포함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다(마 12:31, 병행구, 막 3:28; 눅 12:10). 오직 성령 훼방죄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마 12:32, 병행구, 막 3:29; 눅 12:10). 많은 해석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행위들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인식한 자이며, 분명히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마귀에 대한 신앙으로 잘못 전하는 자"라는 견해이다. "이 말씀은 인간 내에 존재한 악마적이며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 곧 하나님께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에 대한 극히 심각한 경고"이다. 이것은, 약함과 의심 중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압도되었던 자, 자신이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분에 대하여 매우 잘 알고 있는 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E.Schweizer ). 이러한 자는, 문맥이 나타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은혜의 하나님과 만난 후에 이러한 일을 고의적으로 행하는 훼방자이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 받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훼방하는 자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하나님을 거스려 말하는 자 즉 하나님께 대하여 단지 어리석게 잘 알지 못하고서 훼방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운 사역을 익히 잘 알면서도,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적 인(seal)으로써 은혜의 사역을 명약관화하게 확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오히려 훼방이 아닌 감사를 드려야 할 자이다'(A.Schlatter).|레인(W.L.Lane)은 신 32:38(끝부분)에 대한 시프레(Sifre)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거룩하신 분께서는 모든 일을 사하시나 그 이름의 모독(profanation, 즉 훼방 blasphemy )에 대해서는 즉시 보복하시는도다". 이어서 레인(Lane)은 여기서 주석을 달고 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구속을, 사탄에 의한 작용의 소치로 돌린 서기관들이 안고 있던 위험이었다. 귀신들의 축출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서기관들이 비난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과 위대하심에 대한 거부나 마찬가지였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행위의 기원을 귀신에게 돌린 것은, 영(spirit)에 대한 곡해를 무심코 드러낸 것으로서, 그들은 진리에 대항하여 빛을 어둠이라고 부르기를 택하였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문맥에서, 성령에 대한 훼방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발현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과 은혜에 대한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거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훼방은 신자가 회개와 믿음에로 나아오기 전에 행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렌스키의 해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죄와 훼방, 심지어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까지도 사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이다 여기에는 사죄의 가능성이 없다. 다른 모든 훼방들은 회개를 불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회개를 낳는 것은 성령의 특수 사역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영원히 성령과 그의 사역을 거절하거나 추방하는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신적 능력으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이 상태에 접근했는가를 보실 수 있었다. 우리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그처럼 분명히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누가 아무리 훼방한다 해도 그가 이 성령 훼방죄를 범했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다. 이 선고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 여기 예수님의 말씀과 히브리서 말씀(히 6:4-히 6:6)은 우리가 하나의 경고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누가 이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범했을까 두려워하는 자는, 또는 자신들이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고 두려움에 괴로워하는 자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누구도 이 죄를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범할 수는 엇다. 이 범죄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오셔서 그의 신적 능력과 구원의 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명확히 인정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성령을 훼방하여 대답할 때 그는 그를 변화시키는 능력까지도 영원히 무효로 만든다. 그러면 그의 상태는 이 변할 수 없는 마귀와 지옥의 상태가 된다(R.C.H.렌스키).|(참조: Walter Bauer; O.Hfius; H.Wahrisch; C.Brown; H.W.Be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