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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무릎
gonuv
무릎 kne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고뉘(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무릎' knee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고뉘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히 12:12을 제외하면 고뉘는 '무릎을 꿇다, ~앞에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의 구절에서 동사와 함께 사용되었다.||(a) 무릎을 꿇는 것은 윗 사람 앞에서의 경외심 혹은 왕 앞에서의 신하의 예, 말하자면 그의 힘과 주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막 15:19에서 프로스퀴네오($4352)와 함께 나타나는데, 여기서 이 단어는 의미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b) 롬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여기서 무릎을 꿇는 것은 어떤 우상에게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와 경의를 의미한다.||(c) 롬 14:11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최고의 재판관으로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d) 빌 2:10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수님을 그의 우주적 권위와 중요성에 있어서 만물의 주이심을 시인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하시고".||(e)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구절은 의미심장하며, 이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총을 받은 자가 자신은 죄인이고 버려진 상태이며 동시에 그 선물을 받기에는 전적으로 과분하다는 점을 시인하는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은 신앙의 초기 단계를 표시하는 방향 전환, 즉 회개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f) 무릎을 꿇는 것은 단지 기도의 자세와 관련된 것이며, 기도의 열성과 간절함을 강조한다.|①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② 눅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③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④ 행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⑤ 행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⑥ 엡 3:14; 엡 3:15, "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g)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여기서 연약한 무릎은 실망의 자세이다. 성도는 두려움으로 떠는 무릎을 그치고 장부답게 서야 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chlier; H. Schonweiss).
꿇다
gonupetevw
무릎을 꿇다, ~앞에 굴복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고뉘페테오(Polyb., Heliod.)는 고뉘($1119: 무릎)와 핍토($4098: 떨어지다, 넘어지다)에서 유래했으며,||(a) '무릎을 꿇다, ~앞에 무릎 꿇다, ~앞에 굴복하다',|(b) '탄원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고뉘페테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17:14에서 간질병자 소년을 위한 아버지의 간구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b) 막 1:40에서 문둥병 치유를 위한 문둥병자의 간구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있나이다".||(c) 막 10:17에서 한 사람의 영생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d) 마 27:29에서는 경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chlier; H. Schonweiss).
글자
gravmma
문자, 글자 letter, 문서 a docum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그람마(Aeschyl., Hdt. 이래)는 그라포($1125)에서 유래했으며, 그라페($1124)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본래 '새기거나 조각된 것'을 의미했으며, 그 다음에 '기록된 것'이란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a) '명각' inscription.|(b) '그림' picture.|(c) 기록하기, 기록하는 행위와 결과, 기록하는 행위 자체,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d) 알파벳의 개개의 '문자'. 책의 글자들, 상징.|(e) 편지, 문서, 공문서, 법령과 같이 기록된 것,|(f) 문법, 초보적 지식, 학습, 문헌.|(g) '거룩한 문서' 혹은 '성경'이라는 개념은 헬라 시대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개념은 성전의 문서들, 마술에 관한 서적, 그리고 연금술에 관한 문헌과, 신성한 것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황제의 편지와 교령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그람마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대체로 히브리어 세페르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간혹 카타브 어족이나 나다바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기록, 문서, 편지, 책' 등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그람마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그람마는 구체적인 의미로 8회에 걸쳐(모두 복수) 사용되었다.|① 갈 6:11에서 그람마는 쓰여진 알파벳 글자를 의미한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눅 23:39TR에서도 마찬가지이다.|② 행 28:21에서 그람마는 기록된 정보를 의미한다: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여기서 문자에 의한 의사 전달이나 소통을 가리킨다.|③ 눅 16:6에서 그람마는 '채무 증서'를 의미한다: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④ 요 7:15에서 그람마는 '학식'을 의미하며, 그 요지는 예수님께서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행 26:24에서 베스도는 바울의 학문을 깔본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학식이나 학문이란 성경에 관한 지식을 말한다.|⑤ 요 5:47에서 그람마는 모세의 '글' 곧 율법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므로(요 5:46),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타)도 믿지 않을 것이다.|⑥ 딤후 3:15에서 거룩한 '기록'을 의미하며, 성경에 적용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b) 바울은 종종 그람마와 프뉴마를 대조시킨다.|① 롬 2:27; 롬 2:29: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여기에서 그람마는 논증할 수 있도록 기록된 것으로서의 율법이다. 증명할 수 있는 할례의 표시와 달리 율법은 율법의 준수를 보장하지 않는다. 율법으로 말미암아('율법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범죄자들이 된다. 이런 점에서 그람마는 단순한 글자 이상을 의미한다. 즉, 그람마 규정, 규범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참된 유대인, 즉 율법을 이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할례, 즉 영적 할례가 필요하다(롬 2:28 - 롬 2:29). 서로 대립되는 사르크스(육)와 카르디아(마음), 엔 토 프하네로(보이는 것 안에)와 엔 크륍토(감추인 것 안에)는 엔 그람마티(율법의 글자에 의한) 할례와 엔 프뉴마티(인격적 삶의 결정적인 개입에 의한) 할례 간의 차이에 대응한다.|그람마는 프뉴마가 하는 것을 할 수 없다. 기본적인 대조는 성경과 성령 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기록된 규정(prescription)인 율법과 성령간에 있다. 롬 7:6은 이 점을 분명히 해 준다.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단순한 그람마로서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섬기게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한다.|그리스도와 성령이 없으면 율법은 무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람마와 프뉴마가 절대적으로 대조된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지 기록된 것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그것만으로 새 생명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② 고후 3:6 - 고후 3:7은 양자의 관계에 더 많은 빛을 던져준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여기에서 그람마는 옛 언약과 연관되며 프뉴마는 새 언약과 연관된다. 렘 31:33에 근거하여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록된 율법은 우리를 정죄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마음에 새기신 율법은 생명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한 것이지 단순히 성경의 잘못된 사용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심판할 목적으로 율법으로서의 성경을 주셨으며 이제는 생명을 얻게 하실 목적으로 성령을 주셨다. 고후 3:7에서 그람마타(복수형)는 돌에 새긴 글자들(의문)을 의미하며, 따라서 분명히 율법의 돌판들을 가리킨다. 또한 이 글자들은 율법을 가리키므로, 바울은 단지 글자를 영에, 혹은 불충분한 글을 참된 의미에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가져다 주는 옛 계시 문구를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생명을 가져다 주는 새 계시에 대립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베일을 제거하실 때에 비로소 옛 율법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 드러날 것이다(고후 3:14; 고후 3:16). 그리스도께서 완고히 거부당하실 때 하나님의 목적은 감추어진다(고후 3:14).|③ 그람마/ 그랍헤. 바울이 그람마와 프뉴마를 구별하는 것은 성경 그 자체를 경시하려함이 아니다. 그람마는 성문율(법)으로서의 율법을 가리키는 반면에 그랍헤는 바울이 성경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우리에게 가까운 말씀(참조: 롬 10:8)은 그람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입증된 성경이다. 비록 우리가 단순한 율법의 글자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의 권위가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 규정되므로 우리는 여전히 성경의 권위 아래 있다. 새 언약은 성령에 의해 생명을 주는데, 이는 기록되지 않은 율법이 기록된 율법을 대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기록된 율법의 내적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Schrenk; C.Brown; R.Mayer).
서기관
grammateuv"
서기관, 성직자, 비서, 성서 학자, 모세 율법 교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그람마튜스(Thu., Xenoph. 이래)는 그람마($1121: 글자)에서 유래했으며,||(a) 아테네와 그 외의 나라에 있던 비서와 기록 계원에서부터 성직자에 이르기까지의 공직자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그람마튜스 삽헤스(문자적으로 '정확한 기록자')는 학자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나(아리스토텔레스)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올레드로스 그람마튜스:귀찮은 서기관 Dem),||(b) 은유적으로 '기억, 기록자'(플라톤)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그람마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8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소페르와 소테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소테르는 '간역자'나 '패장'(출 5:6), '70인의 장로'(민 11:16), '유사들'(신 20:5), 그리고 '재판관'(대상 23:4)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소페르는 '왕의 개인 비서'(삼하 8:17), '군사 명부를 관리한 군대 서기'(렘 37:15),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스 7:6; 느 8:1)에 대해 사용되었다. 겐 족속 중에는 야베스에 거하는 소페림 가문들이 있다. 레위 서기관들은 제사장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을 기록하였으며(대상 24:6), 서기들은 성전 수리 작업에도 관여했다(왕하 12:10; 대하 34:13).|이렇게 해서 그람마테이스 투 히에루(성전 서기관)의 지위가 발전되었으며 그 명칭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안티오쿠스(Antiochus) 3세의 칙령에서였다(요세푸스 Ant. 12, 142; 참조: 11, 128). 이미 기록된 토라 사본과 다른 부분의 성서를 제공해주는 것은(서기관) 레위인들이 해야할 임무였으므로(신 17:18; 렘 8:8), 아마도 여호사밧의 개혁에(대하 17장) 서기관들이 관여했던 것 같다. 적어도 "문서 예언자들"은 각각 한 명 이상의 서기를 고용했다(렘 36:4, 렘 36:18, 렘 36:32). 공직자로 임명된 서기관들은 왕에게 자문하는 일에서부터(대상 27:32) 군대를 소집하는 일에 이르기까지(왕하 25:19) 여러 방면에서 종사하였다. 왕의 서기관이 있었으며(렘 36:12), 유명한 서기관 사반이나 요아나스가 있었다(왕하 22:3-13; 대하 34:8-21).|이 단어는 외경에서는 특히 집회서에서 '서기관'이란 의미로 자주 나타난다(38:24-39:11; 51:23).||#3. 신약성경의 용법||그람마튜스는 신약성경에 64회 나오며 공관복음에서 약 60회 정도 나타난다.||(a) 신약성경 시대의 서기관.|그람마튜스는 '시의 관리, 에베소의 성읍의 사무원'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행 19:35). 그렇지 않을 경우 신약성경에서 그람마튜스는 '토라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랍비, 서품을 받은 신학자'를 지칭하는 유대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람마튜스와 같은 의미의 다른 두 단어들, 즉 노미코스($3544: 법률가)와 노모디다스칼로스($3547: 율법 교사)가 있다.|공관복음서에 서기관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 당시 그들이 유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단순한 사무원이나 필사자와는 달리 그들은 교사요(마 7:29; 막 1:22) 교법사요, 율법 박사였으며, 그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산헤드린의 구성원이기도 하였다(마 16:21; 마 26:3). 백성의 서기관(마 2:4)과 바리새인의 서기관(막 2:16)이란 말은 그람마튜스라는 용어가 약간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해주는 문구이다. 서기관들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 분야에 종사하였다.|① 시민법과 종교법의 연구 및 해석; 그리고 세목들의 일상생활에의 적용방법 결정; 유명한 서기관들이 결정한 사항은 구전 율법이나 전통이 되었다.|② 일반적으로 역사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들에 관한 성경 연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마 17:10)라는 말씀은 서기관의 교리에 속하는 것이다.|③ 가르침; 주변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유명한 서기관들은 각각 독자적으로 가르침의 체계를 발전시켰다(마 17:11; 막 8:11).|④ 개종시키는 것(마 23:15).||또한 서기관들은 제사장 계층의 사두개파 사람들(마 2:4; 마 21:15)이나 바리새인들(마 23장)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전자에서 그들은 율법 박사 및 성경학자들이었으며, 후자 역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마 23:2). 서기관들은 따라서 그들을 노미코이(교법사들), 그리고 노모디다스칼로이(율법 교사들, 가말리엘처럼, 행 5:34)라고 정의 내리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바리새파학자들은 랍비 유대주의로 되어버린 사상의 지도자들이었다. 그 경우에 그들은 맨 처음에 현인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랍비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졌다. 랍비들은 폐쇄적인 질서 체제를 이루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춘 학자들, 즉 성직수임식을 행함으로써 모세의 공적인 직무 정신을 계승한 학자들을 제외하고는(SBⅡ 654f.; 참조: 마 23:2) 어느 누구도 서기관 집단의 합법적인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고 가르침과 설교와 재판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들로서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막 12:38-막 12:39).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에 접근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난하셨다(마 23장). 바리새 공동체의 지도자격인 저명한 랍비들은 산헤드린의 일원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정죄하는 것을 도왔다(마 26:57). 마태가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이 바리새인이었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데 반면에, 마가는 "바리새인들"이라는 말 대신에 "바리새인의 서기관들"(마 9:11; 막 2:16), "바리새인의 제자들"(마 9:14; 막 2:18), 혹은 오직 "서기관들"(마 9:34; 마 12:24=막 3:22; 마 22:41=막 12:35)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서기관들은 관원들과 장로들과 연합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박해하고(행 4:5) 스데반을 죽였다(행6:12).|서기관들 중에는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어지만(마 8:19),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 아래 있는 전통적인 규례에 순종치 않는다고 비난하였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 예를 들어 전통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과 (막 2:16),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손을 씻는 규례를 무시하는 것(마 15:2; 막 7:5)을 맹령히 비난하였다(마 21:15). 그들은 죄를 사해주신다고 주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적인 말이라고 속으로 의논함에 의해 모욕을 당하였다(마 9:3; 막 2:7; 눅 5:21). 치유의 기적을 무시하면서, 그들은 확실히 하늘로부터 오는, 즉 셈어의 관용적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다른 표징을 구하였다(마 12:38).||(b) 서기관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난.|서기관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난. 이것을 이해하려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구별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학자가 아니다.|누가복음(눅 11:46-눅 11:52; 눅 20:46)에서 행해진 서기관들에 대한 비난은 독특한 것이며, 이는 그들의 학식과 그로 인한 사회적인 권리 및 특권들과 특별히 관련되어 있다.|마 5:20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공동으로 공격받은 후, 마 5:21-마 5:28에서 다시 이 신학자들만이 비난받는다. 비난의 주요 이유는 그들이 겸손하지 않으며(마 23:5이하), 이기적이며(막 12:40a), 신실하지 않으며(막 12:40b) 그들이 설교한 바를 실천하지 않기(눅 11:46) 때문이다. 교리상 그들의 결의론은 사랑의 율법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참된 뜻에 어긋난다(참조: 막 7:9이하). 예수님께서는 마 5:21이하의 대조법에서 하나님의 참된 뜻의 진정함을 밝히신다.|서기관들은 학문의 연구 소산으로서 해당 사업과 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과부와 고아들의 수탁자로 임명을 받았으며(2 Esd. 2:20f.). "지출 경비"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께 비난을 당한 것은 이런 식으로 그 희생자들의 가산을 가로챘기 때문이다(막 12:40; 눅 20:47, J.D.M.Derrett, Jesus's Audience, 1973, 57).||(c) 바울의 견해.|행 23:9에서 보면 바리새 서기관들은 부활의 교리에 관한 바울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자신도 임명받는 서기관(중죄인을 다스릴 때 그가 관여했다는 사실에서 추론됨, 행 26:10)이었던 바울은 서기관들, 곧 유대 신학자들이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거부하는 행위를 사 19:12; 사 33:18(푸 그람마튜스? 저[서기관]더러 …어찌 하겠느뇨?) 말씀의 성취로 보았다. 그의 주석에 의하면 그 말씀들은 서기관의 논법에 의해 나타내어진 것으로서의 인간 지혜의 무익성과 역설적인 하나님의 선택 방법(고전 1:10)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d) 그리스도인 서기관.|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인 서기관은 계속해서 하나님 율법의 학자이자 교사로 활약한다(마 13:52; 마 23:34; 참조: 마 5:19; 마 16:19; 마 18:18; 마 23:8-마 23:12).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회의 필요에 따라 다시 활용된다. 마태복음은 특히 성경에 비추어볼 때, 기독교인 서기관의 활약성을 제시해준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J.Jeemias; N.H.Thayer; J.Jeremias; N.Hillyer).
새긴
graptov"
기록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그라프토스(Eur., 이래)는 그라포($1125: 기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록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그라프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2:15에 한번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묘사한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참조: Wala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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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writing, 성경.||#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그라페(Hdt. 이래)는 그라포($1125)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그라페의 첫째 의미는 '기록이나 기록된 글자', 혹은 보다 광범위하게 '쓰는 행위 및 기교'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쓰거나 새겨진 것', 즉 '명각(inscription), 명문'을 의미한다.||(b) '사본, 그리기, 그림, 예술',||(c) 따라서 그라페는 '편지(letter), 기록이나 기록의 일부, 문서(document, 예: 족보, 계약서), 목록, 법령, 고소' 등과 같이 '기록된 진술'을 의미한다.||(d) 더 나아가 문학적인 의미에서 '발표된 작품'을 의미한다.||(e) 또한 그라페는 '기록된 법률, 법령서'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그라페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언제나 '(거룩한) 기록, 기록된 법령, (각기 다른 언어들의)글자 모양, 편지' 등의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단어 카타브(katab)의 여러 어형의 번역으로 사용되었다. 그라페는 단 한번만(대하 24:27) 미드라쉬(주석)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그라페는 신약성경에서 51회 나오며, 단수의 경우든 복수의 경우든 거의 언제나 독립적으로 사용되었고 전적으로 성경을 뜻하는 용어로만 사용되었다.||(a) 그라페는 그 단어만으로 특정한 성구를 가리킬 때도 있다(막 12:10; 막 15:28; 눅 4:21; 요 13:18; 요 19:24; 요 19:36이하; 행 1:16; 행 8:35; 롬 11:2; 딤후 3:16; 약 2:8, 약 2:23).||(b) 복수형 하이 그라파이(성경)는 성경의 모든 부분을 통괄하여 지칭한다(마 21:42; 마 22:29; 마 26:54; 막 12:24; 막 14:49; 눅 24:27, 눅 24:32, 눅 24:45; 요 5:39; 행 17:2, 행 17:11; 행 18:24, 행 18:28; 롬 15:4; 벧후 3:16). 마 26:56은 하이 그라파이 톤 프로페톤 즉 "선지자들의 글"을 언급하고 있다.||(c) 단수형은 또한 성경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서도 사용된다(요 20:9; 행 8:32; 벧후 1:20).||(d) 때로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는 것에 필적하는 방식으로 인용된다.|① 가령 에이펜 헤 그라페, 즉 "성경이 말했다"(요 7:38; 참조: 사 44:3; 사 55:1; 사 58:11; 요 7:42, 참조: 미 5:2).|② 레게이, 즉 "말하다"(롬 4:3; 참조: 창 15:6; 롬 9:17; 참조: 출 9:16; 롬 10:11; 참조: 사 28:16; 갈 4:30; 참조: 창 21:10이하; 딤전 5:18; 참조: 사 25:4; 약 4:5), 이 구절에서는 경건에 속하지 않는 기록이 인용되어 있다(참조: M.Dibelius and H.Greeven, James, Hermeneia, 1976, 220-24).|③ 그 밖의 다른 표현들로는 "경에 기록하였으되(페리에케이 엔 그라페)"(벧전 2:6; 참조: 사 28:16),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플레로데)(요 17:12; 참조: 시 41:9); "성경으로 응하게 하다(텔레이오데)"(요 19:28; 참조: 시 22:15), "성경을 믿었더라"(에피스튜산)(요 2:22; 참조: 시 196:10; 사 53:12; 시 16:10은 행 2:31 및 행 13:35에서 부활을 예언한 말씀으로 해석되고 있다) 등이 있다. 요 10:35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우 뒤나타이뤼데나이 헬 그라페)"라고 말하고 있다.||(e) 갈 3:8에 나오는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는 구절에서는 성경이 의인화되고 있다(참조: 창 12:3; 창 18:18, 이 두 구절에서는 실제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이와 유사하게 갈 3:22은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명백하게 갈 3:10이하에서 개진된 논증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있다.|약 2:8은 카타 텐 그라펜, 즉 "경에 기록된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참조: 레 19:18), 고전 15:3이하는 복수형 카타 타스 그라파스, 즉 "경에 기록된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참조: 레 19:18), 고전 15:3이하는 복수형 카타 타스 그라파스, 즉 "성경대로"(참조: 시 53:5 - 시 53:12; 시 16:8이하)이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다.||(f) 때때로 경(scripture)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수식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롬 1:2에서 그라파이 하기아이(즉, 성경들), 롬 16:26에서 디아 …그라폰 프로페티콘, 즉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g) 딤후 3:6이하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삶과 사역의 기초가 되는 유대 경전을 계속해서 공부하라고 권고하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데오프뉴스토스)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딤후 3:16절에 나오는 데오프뉴스토스라는 형용사는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신'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가령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기록하였다는 식의 특정한 영감설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이 단어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중단되었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이 단어는 시적 영감과는 아주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로부터 데오(theo)라는 말이 의미하고 있는 바, 신적인 요소를 제거해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신약성경(NEB)은 이 구절을 "every inspired scripture"(모든 영감받은 성경)라고 번역함으로써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성경의 어떤 부분은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다른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성경에 들어 있는 모든 기록이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에 비로소 제 구실을 하게 된다.||(h) 벧후 3:16에서 벧후 3:15와 함께 보면 사도 바울의 편지를 구약 경전과 동일한 반열에 드는 것으로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i)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가 보내신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미 복음을 약속하셨다(롬 1:2). 그러나 구원의 시대인 지금은 그 복음이 주어져 있고 성취되었으며(예: 마 26:54, 마 26:56; 눅 4:21; 요 13:18; 요 19:24, 요 19:36) 완성되었다(요 19:28). 성경은 폐기될 수 없다(요 10:35; 참조: 마 5:17).|바리새적 유대교에서와 같이 성경은 자주 의인화 되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성경이 말도 하고(요 7:42; 롬 9:17; 갈 4:30; 약 2:23; 약 4:5), 하나님의 대신에 상고될 수도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다(행 17:11).|또한 성경은 예견도 하고 예언도 하며(갈 3:8; 벧후 1:20) 심판도 하고 격려도 할 뿐 아니라(갈 3:22; 롬 15:4) 신앙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요 2:22).|심지어 성경은 사람을 완성시키는 수단이라고 여겨지지까지 하였다(딤후 3:16이하). 또한 성경은 연구의 대상으로서 읽혀지고 해석되었다(마 21:42; 병행구. 막 12:10; 눅 20:17; 눅 24:27, 눅 24:32; 요 5:39).|또 성경은 대화의 근거를 발생시키고 대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참조: 행 17:2).|또 성경은 논증하고 논박하는데도 사용되었으며(행 18:28),|그러나 한편으로는 왜곡될 수도 있었다(벧후 3:16).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알고 이해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행 18:24; 마 22:29; 병행구. 막 12:24; 눅 24:25; 요 20:9). 그런데 이러한 비난은 물론 쌍방에서 모두 할 수 있었던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Schrenk; C.Brown; R.M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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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다, 쓰다 wri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그라포는 호머(Homer) 이래 사용되었으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를 의미한다. '석판 위에 일종의 글자인 기호를 새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호머 작품).||(b) '그리다'를 의미하며, 지도 위에 줄을 긋는 것(Hdt.), 수학적 도형을 그리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C. 3세기의 학자들).||(c) '쓰다, 기록하다'라는 통상적인 의미로 널리 사용되었다.||(d) '적어두다, 작성하다'.||(e) '규정하다, 명령하다'를 의미한다.||(f) 그리고 문자로 기록된 고소장을 제출하는 습관 때문에 그라포는 고소하다라는 의미의 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그라포는 70인역본에서 약 300회 나오며, 거의가 히브리어 카타브(쓰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그라포는 70인역본에서 출 39:30에서 대제사장이 예배시에 쓰는 관에 인을 새기는 것, 왕상 6:29에서 내외소 사면 벽에 형상을 새기는 것(왕상 6:29), 신 27:3에서 돌 위에 기록하는 것, 사 22:16에서 처소를 쫓아 내는 것을 나타낸다.||(b) 그라포는 두루마리나 책에 기록하는 것을 나타낸다(말 3:16; 렘 26:18; 단 21:1; 시 139:16 등). 구약성경에서 기록하는 것은 계시의 중요한 표시이다. 출 24:12 등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기록하신다. 그리고 출 24:4에서는 모세가, 수 24:16에서는 여호수아가, 삼상 10:25에서는 사무엘이 기록한다.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야 한다(신 27:18).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문설주에 기록해야 한다(신 6:9).||(c) 70인역본에서 이 용어는 기록된 율법을 뜻하는 표현이다(왕상 2:3; 단 9:11; 토빗 7:12; 대하 35:26 등). 이 용어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경우에는 법률적으로든 종교적이로든 기록된 것의 절대적 유효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그라포는 신약성경에서 약 180회 나오며, 그 중에서 절반 정도가 성경을 표현하며, 그 중에서 70회가 증거로서 성구를 인용할 때 사용되는 도입구에 나타난다.||(a) 게그랍타이(3인 단수 완료 수동)의 특별 용법.|① 카도스 게그랍타이는 '기록된 것과 같이'를 의미한다(막 1:2; 눅 2:23; 행 7:42; 행 15:15).|② 호티 게그랍타이는 '왜냐하면 …때문이다'를 의미한다(갈 3:13).|③ 호스 게그랍타이는 '기록된 것과 같이'를 의미한다(막 7:6; 눅 3:4; 행 13:33; 고전 10:7).|④ 후토스 게그랍타이는 '이렇게 기록되었다'를 의미한다(마 2:5).|⑤ 게그랍타이 호티는 '∼라고 기록되었다'를 의미한다(마 4:6; 막 11:17).|⑥ 게그랍타이 가르는 '왜냐하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기록되었다'를 의미한다(마 4:10; 행 1:20).||(b) 그라포는 몇몇 구절에서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 8:6, 요 8:8에서 예수님은 모래에다 그림을 그리셨다: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눅 1:63에서 사갸랴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판 위에다 썼다: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눅 16:6이하에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채무 증서는 다르게 기재된다: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바울은 편지 내용이 정말 자기가 쓴 것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특히 편지의 끝 부분에서 친필로 문장을 썼다(갈 6:11; 살후 3:17; 몬 1:19; 고전 16:21; 골 4:18). 또 추천의 편지, 총독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황제에게 몇 가지 적어 보내려는 의도 등이 언급되고 있다(행 18:27; 행 23:25; 행 25:26).||(c) 신약성경 기자들은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말하였는데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하여(고후 2:4), 메시지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하여(눅 1:3이하; 빌 3:11; 요일 2:21; 요일 5:13; 계 19:9), 기억나게 하기 위하여(롬 15:15; 벧후 3:1), 권면하기 위하여(고전 4:14; 고전 5:9, 고전 5:11; 벧전 5:12), 증언하기 위하여(요 21:24; 벧전 5:12), 믿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요 20:30이하) 글을 때때로 썼다고 한다.||(d) 그라포는 요한계시록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은 그 자체로서 성례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약속된 것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글에 어떤 것도 덧붙이거나 빼지 말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고 들어야만 한다(계 1:3; 계 22:18이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로 말하자면, 이것들은 인자 자신이 구술하고 환상을 보는 자가 받아 적은 것이다(계 1:10이하; 계 2장, 계 3장).|계 5:1에서 일곱 인으로 봉해진 묵시록은 안팎으로 기록되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어린양의 생명책에는 장차 구원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계 13:8; 계 20:15; 계 21:27).|백마를 타고 있는 메시야는 자기 몸에 자기만이 읽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이름과, 왕 그리고 주라는 칭호를 써 붙이고 있다(계 19:12; 계 19:16).|이와 유사하게 큰 음녀도 자기 이마에 비밀스러운 이름을 써 붙이고 있다(계 17:5).|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주인공, 즉 어린 양과 짐승은 자기 추종자의 손과 이마에 표를 해 두는데 반하여, 유대인들은 이 곳에다가 하나님의 유일성을 고백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성구를 기록한 양피지를 착용하는 습관이 있었다(계 14:1; 참조: 계13:16; 계 22:4; 신 6:4; 신 6:8). 고난을 이겨낸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며, 오히려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돌을 받게 된다(계 2:17; 참조: 계 20:4).|새 예루살렘 성의 문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의 비문으로 새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전의 기둥에는 하나님과 인자와 거룩한 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계 3:12; 계 12:12).|(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Schrenk; C.Brown).
허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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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여자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그라오데스(chrysipp.: Stoic; Strabo.)는 그라우스(%579: 늙은 여자)와 에이도스($1491: 보이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늙은 여자 같은, 늙은 여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그라오데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4:7에 한번 나온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여기서 늙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헛된 가르침이 들어있는 미신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문구이다. 모팻(Maffat) 성경에는 '헛된 신화'로 번역되었다(J. G. Goul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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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다, 망보다, 정신차리고 있다. 경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그레고레오는 후기형이며, 에게이로($1453, 일으키다, 깨우다)에서 형성되었으며, `깨어있다, 지켜보다, 주의하다, 경계하다, 망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그레고레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마드(서다)의 역어로(느 7:3), 샤가드(지켜보다, 망보다)의 역어로(렘 5:6; 렘 38(31):28; 애 1:14; 단 9:14)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그레고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주시하다, 깨어있다(마 24:43; 막 13:34; 눅 12:37; 눅 12:39 등).||(b) 정신을 차리다, 주의를 기울이다(마 24:42; 마 25:13; 막 13:35; 고전 16:13; 살전 5:6; 계 3:2; 골 4:2).|(참조: J. H. Thayer; C. Brown).
연단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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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하다, 훈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귐나조(Aeschyl. 이래)는 귐노스($1131: 벌거벗은)에서 유래했으며, '벌거벗고 연습(운동)하다, 연습하다, 훈련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귐나조는 70인역본 외경 마카베오이서 10:15에서 한번 나오며, 어떤 형태로 '괴롭힌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귐나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딤전 4:7에서 경건에 '전념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히 5:14에서 분별력의 '훈련'에 대해 사용되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c) 히 12:11에서 의의 '훈련'에 대해 사용되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d) 벧후 2:14에서 탐욕의 훈련(아마도 풍자적으로)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H. Weigelt).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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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훈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귐나시아(Pla. 이래)는 귐나조($1128: 벌거벗고 연습하다, 훈련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연습, 훈련' exercise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귐나시아는 70인역본 외경 마카베오사서 2:20에 한번 나오며, '순교'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귐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4:8에 한번 나온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여기서 귐나시아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바울은 헬라의 운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금욕주의를 공격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Weight).
헐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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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다, 초라하게 입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귐네튜오는 귐노스($1131: 벌거벗은, 초라하게 입은)에서 유래했으며, '헐벗다, 초라하게 입다, 가볍게 입다'를 의미한다(Dio Chrys). 다른 후기 문서에서 병사가 장비를 '가볍게 갖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Plut., Dio Cass.).||#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귐네튜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4:11에 한번 나온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여기서 귐네튜오는 옷을 초라하게 입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벌거벗다
gumnov"
벌거벗은 nak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귐노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벌거벗은' naked을 의미하며,|① '옷을 입지 않은' unclothed(Anth. pal., x.),|② '남루하게, 또는 초라하게 입은'(Dem.),|③ '옷을 도적 맞은'(Applian), '강제로 옷을 벗기운'(P. Tay),|④ 'dnt옷을 입지 않은, 부분적으로 옷입은'(Aristoph.)을 의미한다.||(b) 비유적으로 '벌거벗은'이란 의미로,|① '감추어지지 않은, 드러낸, 폭로된, 분명한'(Diod.),|② '몸의 형태가 없는'(Plat. Crat.),|③ '내적 인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Leg. All.)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귐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극도의 무능함이라는 의미로 발견된다(사 58:7; 겔 16:22). 이 사실은 욥 26:6의 비유적 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죽은 자들의 영역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체를 숨길 수 없고 단지 하나님께 완전한 무력함을 나타낼 뿐이다. 귐노테스(헐벗음 nakedness)는 신 28:48에서만 발견된다.|후기 유대교에서도 귐노스는 이중 의미로 발견된다. 이 단어는 요세푸스(Josephus)와 특히 필로(Philo)에 의해 사용된다. 유대 묵시 부분들에서 이 단어는 '노출된' uncovered, '신체를 덮을 것이 없는' without a covering for the body이란 의미가 주요 개념이 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귐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1. 귐노스는 일반 세속적 헬라어 용법과 동일하다.||(a) 막 14:52에서 완전히 '벗는 것'을 나타낸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막 14:51에서는 완전히 벗은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있었다.||(b) 행 19:16에서 '강제로 벗기운' 것을 나타낸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c) 귐노스는 '헐벗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②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③ 마 25:43; 마 25:44,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④ 약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d) 귐노스는 요 21:7에서 '외투(상의)를 입지 않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2. 귐노스는 나머지 구절에서 비유적 의미로 이 어군 중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a) 고전 15:37에서 귐노스는 알갱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바울은 현재의 몸이 부활한 몸으로 바뀌는 것을 예증할 때 씨앗을 장래의 식물이나 꽃과 대조 시킨다. 심기운 것은 벌거벗은 영혼이 아니라(우리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현재의 몸이므로 씨의 알갱이는 단순히 형체 없는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장래의 형체를 아직 부여 받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b) 고후 5:3에서 귐노스는 입을 육체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① 바울은 죽음과 그리스도의 강림 사이에 "벗음"으로, 즉 육체가 없는 존재로 특징지워지는 중간 상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구속의 삶이 과거의 육체에 하늘의 육체로 덧입을 것이다. 바울은 죽음을 회피하였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그의 "벗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② 귐노스는 구속받지 못한 자들의 운명을 표현하는 것일지 모른다. 저주받은 자들은 영광의 육체를 받지 못한다. 이 개념은 후기에 사마리아의 기도문에서 발견되는 것이다.|③ 현대 독일 학자들은 대부분 바울은 여기서 이 고린도에 있었던 영지주의 사상들과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소유한다는 것, 심지어 원한다는 것까지도 부정하였다(고후 5:2). 영지주의자들의 목표는 모든 형태의 육체의 벌거벗음, 곧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적나라한 자아의 부활이었다(참조: R. Bultmann, Theology of the NT, I, 202).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육체가 없어지는 것을 구속의 목표로 바라지 않는데, 이는 그에게서 하나님과의 친교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새로운 하늘의 의복을 갈망하였다. 그래서 옷을 벗음, 즉 죽음은 몸이 없는 것을 말하는 벌거벗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육체 가운데서 새 존재로 귀결되는 것이다.||(c) 히 4:13에서 귐노스는 '감추어지지 않는, 노출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d) 귐노스는 ① 계 3:17에서 '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즉 내적 빈곤을 의미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②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여기에서는 파수꾼 레위인들이 파수 근무지에서 자다가 발견되면 그들의 옷을 불사르던 예루살렘 성전의 관습을 암시하는 듯하다(Middoth 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벌거벗음
gumnovth"
벌거벗음, 빈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귐노테스는 귐노스($1131: 벌거벗은)에서 유래했으며,||(a) '벌거벗음' nakedness(Cornutus 30.),|(b) '헐벗음, 결핍, 빈곤'(ps. -Dionys.)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귐노테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롬 8:35에서 귐노테스는 '벌거벗음', 즉 빈곤을 의미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b) 고후 11:27에서도 귐노테스는 '헐벗음, 곧 빈곤'을 의미한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c) 계 3:18에서 귐노테스는 '영적 빈곤'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H. Weigelt).
어리석은 여자
gunaikavrion
작은 여자, 어리석은 여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귀나이카리온(Diocles Com.)은 귀네($1135: 여자)에서 유래한 지소형이며,||(a) '작은 여자' a little woman.|(b) 경멸의 뜻으로 '어리석은 여자' a silly woman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귀나이카리온은 신약성경에서 딤후 3:6에서 한번 경멸의 뜻으로 '어리석은 여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