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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가까운
ejgguv"
가까이 nea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엥귀스(Homer)는 엔($1722: ∼에)과 귀온(%1: 손, 팔) (즉 손닿는 곳에)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a) 공간적으로 '가까이에'(Thuc.,),|(b) 시간적으로 임박하다는 의미의 '가까이에'(Epict.),|(c) 숫자를 셀 때, '거의'(Xen.; P. Oxy.),|(d) 유사한(plat.),|(e) 친족인(Related , plat.),|(f) 비유적으로 '영적 태도', 또는 '지적 접근'을 의미한다(Epict.).||#2. 70인역본의 용법||엥귀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롭(가까운 친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엥귀스는 '이웃'(출 32:27; 시 15:3)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의인 사이의 관계(시 33:18)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엥귀스는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엥귀스는 공간적 의미로 '가까이(에)'를 나타낸다.|① 독립적으로, 요 19:42. 눅 19:11; 요 3:23; 요 6:19; 요 6:23; 요 11:18; 요 11:54; 요19:20; 행 1:12. 여격과 함께, 행 9:38; 행 27:8.|② 비유적으로, 엡 2:17에서 엥귀스는 관사와 함께 `가까이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가까운데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해 있는 자들, 즉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먼데 있는 [자들]"은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어서 신정(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즉 이방인들을 가리킨다(참조: 사 57:19).|엡 2:13에서 엥귀스는 동사와 함께 가깝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 또 그 복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랍비들은 드물지 않게 '가깝게 만들다'라는 말을 '개종자로 만들다'라는 말과 동일한 것으로 사용했다.|롬 10:8에서 "말씀이 네게 가까와 …있다"(신 30:14의 인용).||(b) 엥귀스는 시간적 의미로, 임박하여 곧 일어날 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마 24:32; 마26:18; 막 13:28; 눅 21:30, 31; 요 2:13; 요 6:4; 요 7:2; 요 11:55; 계 1:3; 요 22:10.|빌 4:5에서 엥귀스는 하늘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마 24:33; 막 13:29에서 "문 앞에"라는 말이 추가되어 나타난다.|히 6:8에서 엥귀스는 저주받는데 가까이 있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8:13에서 '엥귀스는 아파니스무'는 '곧 사라질 것이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W.L.Lome).|(참조: J.H.Thayer; Walter Bauer; H.Preisker).
엥귀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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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엥귀테론은 엥귀스($1451: 가까운)에서 유래했으며, 엥귀스의 비교급 중성이다. 부사적으로 사용되어 '더 가까이'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엥귀테론은 신약성경에서 롬 13:11에 한번 나온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살아나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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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다, 일어서다, 죽은 자를 일으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게이로(Homer 이래)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a) 타동사로 '깨우다'(잠에서), 자동사 수동에서 '잠깨다, 일어나다',||(b) 타동사로 '자극하다, 일으키다, 각성시키다, 분발시키다', 자동사 수동에서 '각성하다, 분발하다',||(c) 타동사로 '일어서게 하다, 세우다', (건물 등을) '세우다, 일으켜 세우다', 자동사에서 '일어서다, 오르다',||(d) 타동사로 '죽은 자를 일으키다', 자동사 수동에서 '죽은 자로부터 되살아 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게이로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히브리어 쿰(일어나다, 일어서다), 우르(깨우다), 아마드(일어서다) 등을 번역하여 바로가 깬 것(창 41:4; 창 41:7),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운 것(삿 2:16; 삿 2:18), 가브리엘이 깊이 잠든 다니엘을 일으켜 세운 것(단 8:18)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게이로는 신약성경에서 144회 나오며, 주로 사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에 사용되었다.||(a) (a)의 의미에서|① 타동사로, 막 4:38; 행 12:7.|② 자동사로, 마 1:24; 마 25:7; 막 4:27.|③ 비유적으로, 롬 13:11; 엡 5:14.||(b) (b)의 의미에서.|① 타동사로, 비인칭 목적어와 함께, 빌 1:17; 인칭 목적어와 함께, '역사 속에서 나타나거나 일으키다': 행 13:22(다윗); 행 13:23.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하다", 마 3:29과 병행구 눅 1:69.|② 자동사로, '일어나다' stir oneself, 막 13:8과 병행구절; '일어나다' rise up, 선지자에 대해: 마 11:11; 눅 7:16; 요 7:52; 마 24:11; 마 24:24; 막 13:22; 심판 때에 고소자에 대해: 마 12:42과 병행구절.||(c) (c)의 의미에서|① 타동사로, 요 2:19 이하; 인격 목적어와 함께, '일어나도록 도우다, 세우다', 마 12:11에서 동물; 행 10:26; 막 1:31; 막 9:27; 행 3:7에서 병자; 약 5:15에서 '건강하게 하다'를 암시한다(참조: Jos. Ant., 19, 294).|② 자동사로 '일어나 강해지다' 마 17:7; 행 9:8; '온전히 일어서다' 마 8:15; 마 9:6 이하; 막 2:12; 또한 속격, '일어나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다" 요 13:4; 마 8:26과 병행구절; 약화된 셈어적 의미에서, 행동의 개시를 표시한다. '시작하다': 출 5:8; 대상 10:12; 대상 22:19; 대하 21:9; 대하 22:10; 마 9:19; 요 11:29; 명령법에서 자주 나온다: "일어나 ... 데리고", 마 2:13; 마 2:20, 혹은 보다 직접적으로 막 14:42과 병행구; '일어나다', 요 14:31; 막 2:9; 막 2:11; 막 3:3; 눅 6:8; 요 5:8; 계 11:1.||(d) (d)의 의미에서 '죽은 자를 일으키다', 혹은 수동태 '일어나다,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다'는 개인의 부활과 관련하여, 긍정적으로 마 9:25; 마 10:8; 마 11:5과 병행구; 막 5:41과 병행구; 막 6:14과 병행구; 눅 7:14; 요 5:21; 요 12:1; 요 12:9; 요 12:17; 히 11:19에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인격과 결합할 때 이 부활은 메시야 시대 및 모든 죽은 자의 장래 부활의 표징이다. 마 27:52도 참조하라.|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하여 우리는 케뤼그마에 대한 그 중요성이 이미 예수님의 예언에서 암시됨을 본다(마 16:21; 눅 9:22; 마 17:9; 마 17:23; 마 20:19; 막 14:28과 병행구. 에게이레인은 마태가 사용하기를 즐겨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부활 기사에서 반영되며(막 16:6; 마 28:7; 눅 24:34; 요 21:4), 사도들의 설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행 3:15; 행 4:10; 행 5:30; 행 10:40; 행 13:30; 행 13:37; 롬 4:24 이하; 롬 6:4; 롬 6:9; 롬 7:4; 롬 8:11; 롬 8:34; 롬 10:9; 고전 6:14; 고전 15:4; 고전 15:12 등; 고후 4:14; 고후 5:15; 갈 1:1; 엡 1:20; 골 2:12; 살전 1:10; 딤후 2:8; 벧전 1:21).|하나님께서는 부활로써 십자가에 달린 그를 인정하셨으며, 그를 영화롭게 하셨고(사도행전, 또한 롬 7:4; 빌 2:9-11; 엡 1:20 이하). 그리하여 구속에 힘을 부여하신다(특히 롬 4장과 롬 8장; 고전 15장). 만일 헬레니즘과 다르게 신약성경이 아니스타나이($450)와 아니스타스다이보다 에게이레인과 에게이레스다이를 더 즐겨 사용한다면(그러나 물론 아나스타시스보다 에게르시스를 더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그 용어들이 하나님의 행동의 구체적 성질을 더 잘 밝혀주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자기 부활의 개념은 요한의 신학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요 2:19; 요 2:21; 요 10:17; 요 10:18).||비록 바울이 텅빈 무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에타페, 고전 15:4; 에타페멘, 롬 6:4), 고전 6:13 이하; 고전 15:47; 고전 15:50; 빌 2:6; 빌 2:9에 따르면 그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물질적 견지에서 생각하지 않고, 만물 가운데서 특히 교회에서 우주적 인격(인성)으로 높임 받으신 분의 소마 프뉴마티콘('신령한 몸')으로 생각한다(참조: 골 1:18 이하).||(e)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들의 부활은 특히 바울에 의해 해결되지만, 그 주요한 내용에 있어서 그것은 초기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의 일부분을 형성한다(롬 6:4-11; 갈 2:20; 골 2:12 이하; 엡 2:1; 엡 2:5; 고후 4:10 이하; 벧전 1:3). 당연히 이것은 의롭다함으로 얻은 생명과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된다(롬 5:18).|롬 6장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놓인 구원 역사의 새로운 상황을 묘사한다. 새 생명은-아직 감취어져 있으나-믿음의 실재(고후 4:7 이하; 고후 5:7; 골 3:3)이다. 그런데 이 생명은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붙잡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참조: 롬 8:16; 롬 8:23; 갈 3:2; 갈 4:6; 고후 1:22), 마술적인 변화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식으로 믿음의 실재인 것이다. 즉 그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며 하나님에 의해 설정된 것으로서, 완성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실재이다(롬 8:19 이하; 고후 4:16-18; 빌 3:11 이하). 이 사상은 비록 매우 사실주의적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이미 일어났음을 암시하지는 않는다(딤후 2:18은 이 견해를 이단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참조: 빌 3:10 이하; 롬 8:11 등).||(f) 죽은 자의 미래의 부활에 대해(막 12:26; 눅 20:37; 행 26:8; 고전 15:15-52; 고후 1:9; 고후 4:14; 참조: 사 26:19; 단 12:2). 신약성경에서 부활 생명의 정체에 대한 질문은 유대교에서보다 더 명료한 영적 대답을 얻는다.|막 12:23과 병행구에서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악의가 있으나 영성화하는 경향에 아직 영향받지 않은 랍비 신학에 부합한다. 예수님의 영적 개념(막 12:25과 병행구)은 반대로 아주 새롭다. 비록 예수님은 복된 자의 연회에 대해 언급하긴 하지만 그것을 서술하지는 않는다(막 14:25과 병행구; 마 8:11; 눅 13:29; 참조: 잔치에 대해 말하는 비유들). 바울은 특별히 성적 교섭 뿐만 아니라 먹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고전 6:13). 사르크스는 파괴되고 소마는 변화될 것이다(고전 15:42 이하; 고전 15:50 이하; 고전 15:40 이하에 대해 참조: 마 13:43).|(참조: A. Oepke; Walter Bauer; J. H. Thayer).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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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남, 부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게르시스(Pre-Socr. 이래)는 에게이로($1453: 일어나다, 잠깨다, 깨우다)에서 유래했으며, '깨움, 깨어남, 일어남, 회복(병에서), 부활'을 의미한다. 죽은 사람이 깨어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Menander of Ephesus in Jos., Ant. 8).||#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게르시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쿰(6965: 일어나다, 고수하다)의 역어로, 사람의 '일어섬'(시 139:2), 보초를 '서는 것'(삿 7:19)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게르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27:53에 한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정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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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정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엥카데토스(Pla., Dem.)는 엔($1722: 안에, 위에, 말미암아)과 카디에미($2524: 내려보내다)의 파생어에서 유래했으며, '고용되어 숨어서 기다리는, 숨어서 기다리는'을 의미하며 실명사로 '숨어서 기다리는 사람, 스파이'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엥카데토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욥 31:9에서 아라브(693: 숨어서 기다리다, 잠복하다)의 역어로 그런 의미를, 욥 19:12에서 햐나(2583: 기울다, 구부리다)의 역어로 '진치다'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엥카테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0:20에 한번 실명사로 나온다: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수전절
ejgkaivnia
수전절 feast of dedication||#1. 구약성경.||명사 엥카이니아는 엔($1722)과 카이노스($2537: 새로운, 신선한)에서 유래했으며, '봉헌, 성별' dedication, consecreation을 의미한다.|엥카이니아는 70인역본에서 하누카(2598: 봉헌, 헌신)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봉헌식'에 대해 사용되었다(느 12:27; 단 3:2; 에스드라하 6:16, 17).||#2. 신약성경.||명사 엥카이니아는 신약성경에서 한번 요 10:22에 나오며, '수전절', 즉 '헌당식의 절기'를 의미한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수전절은 겨울철 기슬르월 25일에 시작되는 8일 동안의 유대의 명절이다.|이 명절은 B.C. 164년 유다 마카비의 셀류쿠스군에 대한 승리와 그가 더럽혀진 성전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봉헌한 일을 기념하는 것이다(마카베오상 4:53). 헬레니즘의 일반적인 오염을 정화시키는 일도 포함되었다. 수전절은 "빛의 명절"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이는 깨끗한 기름이 담긴 작은 항아리가 8일 동안 빛을 공급해 준다는 전설에 기초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M. Wolf).
열어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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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하다 make new, 신성하게 하다 consecra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카이니조(pollux.Ⅰ,Ⅱ)는 헬라어 성경 이외에는 드물게 사용되며, '새롭게 만들다, 새롭게 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엥케이니조는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새롭게하다'(사 16:11; 삼상 11:14; 대하 15:8; 시 51:10; 집회서 36:5), '봉헌하다'(신 20:5; 왕상 8:3; 대하 7:5; 마카베오일서45:36, 54; 5:1)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엥카이니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히브리서에만 나온다.||(a) 히 9:18에서 엥카이니조는 '취임하다, 봉헌하다(바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여기서 엥카이니조는 언약과 관련하여, '새로운 것이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 언약이 그 효력을 발생하는 위치에 처음으로 나아가는 것, 말하자면 언약이 발족하는 것을 묘사한다. 아무도 희생적으로 죽지 않았을 때는 짐승이 대신 죽임을 당했고, 그 짐승의 피는 죽음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언약을 비준하는데 이용할 수 있었다. 언약의 피는 그 언약을 비준하는 피이다. 구원사에 있어서 하나의 법령으로서의 옛 언약은 새 언약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의해 그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출 24:6이하).||(b) 히 10:20에서 엥카이니조는 '길을 열다'를 의미한다(Arndt 214):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참조: 삼상 11:14; 시 51:12). 이 단어는 성소에 들어가는 새로운 길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최초로 친히 그 길을 밟고 지나가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참조: Walter Bauer; J.Behm).
엥카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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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잃다, 낙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카케오(Polyb., BGU 1043, 3)는 엔($1722: 안에, 말미암아, ~에)과 칼레오($2564: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 어떤 것에 '지치다, 싫증나다, 용기를 잃다, 낙담하다, 축늘어지다, 쇠퇴(약)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엥카케오는 70인역본(심마쿠스역)에서 4회 나오며, '싫어하다'(창 27:46; 민 21:5; 잠 3:11)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용기를 잃거나 낙심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후 18:1; 고후 4:1; 고후 4:16; 갈 6:9; 엡 3:13; 살후 3:1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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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다, 비난하다 accuse.||#1. 고전 헬라어 문헌||엥칼레오는 칼레오($2564: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 세속 헬라어에서 최초의 의미는 '마땅히 해야할', 즉 요구할 또는 청할 권리로서 '요구하다'이며, 후에 '주장하다' 또는 '어떤 사람을 고발(고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대개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법적 소송 절차를 나타내는 문맥에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엥칼레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출 22:8[9]에서 아마르(말하다)의 욕어로, 슥 1:4에서 카라 엘(외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잠 19:5에서 프아흐(숨쉬다, 불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 이 히브리어 동사는 주로 거짓말을 '내뱉는다', 아주 기만적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내쉬다, 불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엥칼레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고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행 19:38; 행 19:40; 행 23:28; 행 23:29; 행 26:2; 행 26:7).|이 단어의 유일한 신학적 용법은 롬 8:33에 나타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에서 바울은 사탄이나 또는 다른 자들이 심판날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는데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일소시켜 버린다.|(참조: J. I. Packer; K. L. Schmidt).
남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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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다, 버리다, 뒤에 남겨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카탈레이포(Hes., Thu. 등)는 엔($1722: 안에, 위에)과 카탈레이포(두고 가다, 뒤에 남기다)에서 유래했으며,||(a) '~에 두고 가다, 뒤에 남겨 두다',|(b) '포기하다, 버리다, 버려두다, 저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엥카탈레이포는 70인역본에서 약 190회 나오며, 아자브(5800a: 떠나다, 저버리다, 남겨두고 가다, 포기하다; 창 24:27; 민 10:31; 신 31:6), 바가드(898: 말 2:10; 말 2:16)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카탈레이포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엥카탈레이포는 '버리거나 포기하다'를 의미한다.|① 막 15:34; 병행구 마 27:46(참조: 시 21:1, 70인역본)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② 고후 4:9; 딤후 4:10; 딤후 4:16; 히 13:5(참조: 수 1:5, 70인역본).||(b) 롬 9:29에서 엥카탈레이포는 '뒤에 남겨 두다'를 의미한다: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참조: 시 15:10, 70인역본).||(c) 히 10:25에서 '포기하거나 폐하다'를 의미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엥카토이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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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에 거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카토이케오(Hdt., Eur., Polyb. 등)는 엔($1722: 안에, 위에)과 카토이케오($2730: 거주하다, 자리잡다)에서 유래했으며, '~ 중에 거주하다, 자리잡다, 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카토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8에 한번 나온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참조: Walter Baeur; J. H. Thayer).
접붙이다
ejgkentrivzw
접붙이다, 이식하다 to graf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엔켄트리조(Aristot.)는 엔($1722: ~안에, 위에, ~와 [함께])와 켄트리조(%104: 접목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접목하다, 접붙이다'를 의미하며, 식물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엥켄트리조는 70인역본에서 지혜서 16:1에서 '자극하다, 격려하다'는 의미로 단 한번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나무에 접붙인다는 의미로 쓰인 예가 랍비들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Yeb.63a). 하나님은 두 개의 가지를 아브라함, 룻 그리고 나아마 에게 접붙이셨다. 따라서 유대교에로의 개종자들은 아브라함을 뿌리로 한 나무에 접붙여진 것으로 여겨졌다(Philo, Exsec.6; 참조: SBⅢ291).||#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켄트리조는 신약성경에서 6회, 로마서 11장에만 사용되었다.|롬 11:16이하에서 바울은 엥켄트리조, 즉 접붙인다는 묘사를 사용한다. 여기서 언급된 그 과정은 때때로 실제로 실행되는 접붙이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 되어진다. 실제의 접붙이기에서는 돌감람나무 위에 참감람나무에서 꺽은 가지를 접붙임으로써 그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돌감람나무는 일종의 다른 야생 올리브(oleaster)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감람나무를 다시 젊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접목을 하는 일은 고대 세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다(Philo, Exsec.6; 참조: M.Black, op. cit.,145). 이 묘사가 적용되게 하려면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자들인 이방인들이 돌감람나무여야한다. 바울의 묘사와 실제로 인정된 원예술간의 긴장은 아마 자연에 모순되는 이 하나님의 일의 기적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의도된 것인 것 같다(파라퓌신, paraphysin, 24절).|바울에게 있어 접붙여진 가지는 유대교로의 개종자가 아니라 하나의 몸으로서의 이방인 기독교인들이다. 이 구절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계약의 백성에게로 흡수시킴으로써 이룩하신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또한 이방인들이 거만해지지 않도록 이들에 대해 경고하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겸손히 자손들의 종속됨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뿌리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18절), 주목해 보건대 17절에서,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라는 독본이 더욱 적절한 것으로서 증명되는 것 같다. 이방인들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낮게 평가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① 만일 뿌리가 거룩하다면 가지도 그러하듯이(16절),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과의 관련에서 볼 때 신에게 바쳐졌기 때문이다.|② 하나님은 다시 원 가지들을 접붙이시는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E.M.Embry).
엥카우카오마이
ejgkaucavomai
자랑으로 여기다, 찬양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카우카오마이(Aesop.)는 엔($1722: ~안에, ~로 말미암아, ~에게)과 카우카오마이($2744: 자랑하다, 뽐내다)에서 유래했으며, '자랑으로 여기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엥카우카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할랄(1984: 자랑하다, 찬양하다)의 역어로 '자랑하다'(시 52:3; 시 97:7), 샤아크(7580: 큰 소리 내다, 으르렁거리다, 포효하다)의 역어로 '고함치다'(시 74:4), 샤바흐(7623: 칭찬하다, 찬양하다)의 역어로 '찬양하다'(시 106:47)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카우카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살후 1:4에 한번 '자랑하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여기서 "우리가 친히"라는 말에는 '너희의 예기(기대)와는 반대로'라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바울이 특별히 기뻐한 것은 그들의 "인내"와 그들의 "믿음"이었다.|그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인내하여 나갈 수 있었다(A. E. Airhart).|(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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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accsation, 비난 charge.||#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엥클레마는 엥칼레오($1458)에서 유래되었으며, '요구, 비난, 고소', 또는 '고발, 기소'를 의미한다. 70인역본에서 엥클레마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엥클레마는 신약성경에서 2회, 행 23:29에서 바울에 대한 송사에 사용된다: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행 25:16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참조: J.I.Packer; K.L.Schmidt).
엥콤보오마이
ejgkombovomai
허리를 동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콤보오마이는 콤보스(%877: 띠, 매는 끈)에서 유래한 콤보오(%878: 매다)에서 유래했으며, '자신을 동여매다, 자기 허리를 동이다'를 의미한다. 엥콤보마는 노예들의 하얀 스카프(혹은 앞치마)로, 옷의 허리띠에 동여매었다. 노예는 이것으로 자유인과 구별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콤보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한번 벧전 5:5에 나온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너희는 스스로 너희의 노예의 옷차림(엥콤보마)으로 너 자신 겸손으로 허리를 졸라매어라, 즉 겸손을 옷입음으로 서로 순종을 보여라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