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ejgkravteia
자제 self-control.||명사 엥크라테이아(Xen., Pla. 이래)는 엥크라테스($1468: 강한, 지배하는, 억누르는, 자제하는)에서 유래했으며, '확고성'과 '자제'라는 어감을 지닌, 자신이나 어떤 것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적 문제에 관련된 억제, 참을성, 견실이란 의미의 자제(self-control)도 의미한다.|소크라테스는 엥크라테이아를 윤리학에서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처음으로 소개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개념을 채용했다. 플라톤에 있어서 엥크라테이아는 감각적 충동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스토아 학파에서는 엥크라테이아가 인간 자유의 표시로써 간주되었다. 충동, 특히 성적 충동과 음식과 음주의 향락을 삼가는 것은 참된 인간이 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신-피타고라스 학파는 이원론적인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그들에 따르면, 육체는 영혼이 신에게 갈 수 있도록 금욕을 통하여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금욕주의는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을 제의적인 예배에 적응하도록 함으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 필로(Philo)는 엥크라테이아를 충동과 열정을 초월하는 덕이라고 격찬하였다(Spec. Leg.).||예수님 당시의 에세네파 사람들(Essenes)은 독신을 권장하였고,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금욕하며 살았는데, 예를 들면 소유와 음식에 대한 금욕과 철야 등이다(Josephus, War).||#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엥크라테이아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서 3회 나오며, '억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집회서 18:30; 8:21; 마카베오사서 5:34).||#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엥크라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바울은 행 24:24 이하에서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 믿음'에 대하여 그 다음에 의와 '절제'에 대하여 말한다. 이 말씀에서 "절제"는 아마 불의 (간통)의 결과인 지방 행정 장관 벨릭스의 결혼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금욕주의적 경향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참조: 행 2:44 이하; 행 4:32).||(b)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바울은 엥크라테이아를 "성령의 열매"로 묘사한다. 여기에서 자제 혹은 절제는 분명히 간음(포르네이아), 불순, 방탕, 우상숭배(갈 5:19)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행동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인 엥크라테이아는 결코 우리들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이 복음에 의탁함으로써 성령의 선물로 새로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의 엥크라테이아가 단지 성적 측면에만 관련되느냐 혹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파악해야할 것은 바울이 성적 금욕주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금욕주의가 결코 이원론적으로 고정되지 않고(위의 고전 문헌) 본유적 가치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c)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여기서 절제는 지식의 사용에 관여한다. 절제란 모든 행사를 적절(법)하게 행하는 내적이며 외적인 자기 조절을 의미한다(E. R. Fuhrman).|여기서 엥크라테이아를 금욕주의적 의미로 이해하면 안된다. 이 용어는 오히려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어 있으나, 그러나 그 능력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자기 실현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벧후 1:5; 벧후 1:6)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가 곤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내를 위한 선결 조건이다.(H. Baltenswei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