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eijkwvn
형상 imag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이콘은 에이코($1503: 유사하다, 같다, ~로 보이다)에서 유래했으며, '여러가지 형상'을 의미한다.||(a) 문자적 의미로, '예술적인 표상' 예를 들면 화폐에 그리거나 조각한 형상(Hdt. 마 22:20), '신(god)의 형상'(Ditt., P.Oxy., 계 13:14 이하), 자연적인 '어떤 영상'(reflection)(Eur.), '환영'(Plat.).||(b) 은유적 의미로, '정신적인 심상, 심성'(Plat.)이나 '덕성'(Epiar.), '유사, 비슷함'(Plat.),||(c) 복사(copy)라는 의미에서 '어떤 산 형상'(living image), '닮은 것'(likeleness), '체현, 화신'(embodiment), '표명, 현시'(manifestation)(Ditt.).(참조: H. Kleinknecht).||#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이콘은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첼렘(6754: '형상, 닮음', 비유적으로 '허상', 11회)의 역어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창 1:26; 창 1:27; 창 9:6), 사람의 형상(겔 23:14; 시 74:20), 인간의 자기와 '닮은' 아들(창 5:3), 그림자나 허상(시 39:6), 우상(왕하 11:18; 겔 7:20; 겔 16:7), 독종의 형상(삼상 6:11)을, 첼렘(6755: 우상, 형상, 16회)의 역어로 한 큰 '형상'(단 2:31 이하; 단 3:1 이하)에 대해 사용되었다.|그리고 에이콘은 데무트(1823: 닮음, 유사함, 1회)의 역어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 세멜(5566: 형상, 우상, 3회)의 역어로 조각상, 우상(신 4:16; 대하 33:7; 겔 8:5)에 대해, 페셀(6459: 우상, 형상, 2회)의 역어로 '우상'(사 40:19; 사 40:20)에 대해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은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이콘은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에이콘은 문자적 의미로 유형적 형상(material image; 동전 위의 화상: 막 12:16 병행구절; 이교의 우상: 요한계시록, 아마도 롬 1:23)과 함께 이 단어의 은유적인 사용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부터(고전 11:7)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묘사하기까지(롬 8:29)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에이콘은 바울의 은유적 용법에서(Schmidt 164: McCasland 85-88; Eltester 130-66; Schwanz 17) 원형과 복사물과의 관계와 그들의 서로에 대한 관계의 방식에 따라 세 가지 개념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2)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 (3) 그리스도의 형상인 신자들.||(a) 에이콘은 유형적 형상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막 12:16(병행구절 마 22:20; 눅 20:24)에서 에이콘은 동전 위에 새겨진 가이사의 형상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Artemidorus Onirocriticus ⅳ. 31). 그것은 명rkr의 표제,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어서 동전 위에 지배자의 인물을 나타낸다.|② 요한계시록의 10개절 모두에서 짐승을 위한 "우상"(계 13:14)으로 만든 이교의 우상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우상에 대한 경배가 요구되고(계 13:15; 계 14:9; 계 14:11; 계 16:2), 배교자들에 의해 행해지고(계 19:20), 굳게 선 자들에 의해서 거절 당한다(계 15:2; 계 20:4).|에이콘의 가장 오래된 용법은 조상(彫傷)들(Herodotus ⅱ. 130, 143)을 나타내는데 주로 사용되었으며, 신상들에 대해 사용한 것은 늦은 시기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Plato Lg. 931a) 빠르게 널리 받아 들여졌다(참조: Preisigke, Worterbuch s.v.). 70인역본에서 에이콘은 거의 제의적으로 경배받는 신상들에 대한 용어로 사용되었고(단 3:1, 2, 3, 5, 7, 10, 12, 14, 15, 18 등), 요한계시록에서 앞에 언급한 것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아마도 단 3장으로부터 직접 그의 제재를 끌어왔을 것이다. E. Lohmeyer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Offenbarung [HNT] 116), 요한계시록의 묘사가 황제 숭배의 절차를 암시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b) 신약성경에서 원형(original)은 항상 형상이 있는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으로 묘사된 것은 원형을 가시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따라서|① 히 10:1에서 에이콘은 단순한 스키아($4639: 그림자)와 뚜렷이 구별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은 실체의 참된 형태가 아니라 그 그림자일 뿐이다.|② 롬 1:23에서 바울은 금 송아지에 대한 언급을 사람과 세 가지 종류의 동물에 대한 언급으로 바꾸어서(70인역본의 시 106:20) 인용한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인간들, 새들, 동물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에이콘(형상)으로, 그 복제물을 호모이오마("우상")로 기술한다.||(c)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에이콘 투 데우)으로 묘사되었다: 고후 4:4; 골 1:15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를 때 강조점은 에이콘(형상)과 원형(original)의 동일성에 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신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참조: 빌 2:6). 따라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요 14:9; 요 12:45). 바울에게 있어서 에이콘 데우(하나님의 형상)는 분명히 그가 창 1:27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고전 15:45 이하에 의하면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다. 둘째 아담은 필로에게는 로고스($3056)이고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사변적인 관심이 없다. 고후 4:3 이하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언급한 것은 바울의 선포의 특성은 '가리워진' 것이라고 비난하는 고린도인들을 대항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의 "가리워진" 특성은 청중들의 길잃은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 신"에 의해 마음이 혼미해져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변론의 정착은 계시의 견지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묘사하는데서 보여지는 것이다.|바울에게 있어서 요지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행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개념은 또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밝혀 준다.|골 1:15에서도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계신자이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계시적 기능과 함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의미를 가진다.||(d)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① 고전 11:7에서 바울은 창 1:27을 남성에게 적용시켜 일상적인 행동의 어떤 실제적인 결과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잠시 후에, 그는 창 5:3에 의거하여 우리가 지금 지상의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장차 하늘의 인간의 형상을 지닌다는 사실과 대조시킨다. 여기에서 그 개념은 하나님의 에이콘으로서의 우리의 존재가 에이콘으로서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회복된다는 것이다.||② 롬 8:29은 하나님의 충성된 신자들에 대한 영원한 선택의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에서 우리 존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형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의해 독특한 강조점이 부여된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은 창 1:27의 참되고 본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다. 따라서 이 사건을 육체의 부활에의 참여로 한정하는 것은 마치 과정에 대해서 단지 현재의 조건만을 이해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에 시작되는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미래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Schwanz). 에이콘을 프로토토코스($4416: 처음 난)와 함께 사용하는 것은 골로새서의 찬양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정과 공통적인 뿌리를 가지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참조: 골 1:15; 골 1:18). 그러나 롬 8:29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되는, 믿는 자들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 사건의 묘사로서 우주론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contra Kurzinger).||③ 고후 3:18의 진술은 롬 8:29에 매우 근접해 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은 "그 같은 형상으로"(그의 형상으로) 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롬 8:29에서처럼 에이콘은 여기에서 "모사" copy 가 아니라 오히려 원형 그 자체, 즉 주의 본성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바울은 믿는 자들도 또한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 속에서 보는" 영광 중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주의 본성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따라서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의 삶의 관심사는 이미 그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새로와진 새존재를 덧입는 것이다(골 3:10).|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상의 이런 회복은 언제 일어나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종말론적인 미래에 일어날 것이다(고전 15:49 하반절, 그리고 롬 8:29). 그러나 이 미래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고후 3:18; 골 3:10), 따라서 이 회복은 또한 도덕적 행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에이콘의 첫 회분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그것은 비록 아직도 받을 것일지라도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참조: G. Kittel; H. Kuh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