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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메고 나오다
ejkkomivzw
메고 나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코미조(Hdt. 이래)는 에크($1537)와 코미조($2865: 가지고 가다, 나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메고 나오다, 운반해 나오다', 마을 밖의 장지로 가기 위해 시체를 운반해 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Polyb., Plut.).||#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엑코미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7:12에 한번 시체를 '메고 나오는 것'을 표현한다: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찍어 버리다
ejkkovptw
자르거나 베어버리다, 근절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콥토(Hdt. 이래)는 에크($1537)와 콥토($2875: 때리다, 치다)에서 유래했으며,||(a) 문자적 의미로, ① 잘라(또는 베어)내다, 나무를 '베어 버리거'나(Hdt., PFay.) 반석(돌)을 '잘라내는 것'에 대해(Hsq, 2, 2),|② (문, 자물쇠 등에 대해) '부수어 열다'(Lys., Polyb.)는 의미로 사용되었다.||(b) 비유적 의미로 ① '내몰다'(Xen., Hist 등), '몰아내다, 쫓아버리다',|② '근절하다'(exterminate), '제거하다, 없애버리다'(Hdt., Lucia)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콥토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비유적 의미를 함축하여 사용되었다.||(a) 에크콥토는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해 '베어 버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② 눅 13:7; 눅 13:9,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③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④ 롬 11:22에서 이방인에 대한 경고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⑤ 롬 11:24에서 이방 기독교인의 이전 상태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b) 에크콥토는 범죄한 지체에 대하여 '잘라 버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②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으니라".|위의 두 구절에서 범죄하는 지체를 자를 것에 대한 요구는 제자가 되는데 요구되는 결정의 신중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범죄하는 지체를 벌하는 원리는 랍비 문헌에서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사법적인 형벌보다는 오히려 자기 징계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종말론적인 배경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의 사상은 만일 이생에서 지체를 잃는 것, 또는 심지어 이생 자체를 잃는 것이 영원한 손실을 피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면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참조: 마 16:26).(G. Stahlin)||(c) 에크콥토는 고후 11:12에서 기회를 '끊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Stahlin).
귀를 기울이다
ejkkrevmamai
매달리다 hang fro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엑크레마마이는 에크($1537)와 크레만뉘미($2910: 매달다)에서 유래했으며, '매달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엑크레마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눅 19:48에 한번 나온다: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여기에서 엑크레마마이는 문자적으로 그의 입술에 '매달린다'라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클랄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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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 놓고 말하다, 누설(폭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클랄레오(Eur., Demosth., Philo. 등)는 에크($1537)와 랄레오($2980: 말하다, 이야기 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거리낌 없이 말하다, 털어놓고 말하다',|(b) '누설하다, 폭로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클랄레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23:22에 한번 '누설이나 폭로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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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내다, 비추다 shine for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클람포(Aeschyl. 이래)는 에크($1537: ~로부터)와 람포(빛내다, 비추다)에서 유래했으며, '빛을 내다, 비취다'를 의미하며, 태양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에클람포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밝히다'(삼하 22:29), 빛나거나 '빛을 내다'(겔 43:2; 단 12:3; 집회서 26:17; 48:4)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클람포는 신약성경에서 마 13:43에 한번 나온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여기서 이 단어는 '비취거나 빛을 낸다'를 의미하며, 단 12:3을 인용한다. 교회 안에 아무리 많은 위선자들과 악한 자들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인들은 불의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이 구별되어질 그 날과 아버지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때를 생각하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Barnes not).
잊다
ejklanqavnw
(완전히) 잊어버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클란다노(Homer 이래; Philo.)는 에크($1537)와 란다노($2990: 눈에 띄지 않다)에서 유래했으며, '(완전히) 잊어버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클란다노는 신약성경에서 히 12:5에 한번 나온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클레고
ejklevgw
골라내다 pick out, 선택하다 choo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동사 에클레고(Hdt. 이래)는 에크($1537: ~로부터)와 레고($3004: 모으다, 셈하다, 열거하다, 말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골라내다, 집어내다, 선택하다'를 의미한다.|선택에 있어서 첫째로 어떤 특정한 것을 선택하기 위한 여러 대상들이 있고 둘째로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그를 강제하는 어떠한 상황들에 의해서라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결정을 내린다. 셋째로 선택을 하는 사람을 적어도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는 선택 받는 사람 또는 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더욱이 선택의 행위(따라서 이 단어군)는 선택자에 의한 판단, 곧 그가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다. 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주요한 것이 객관적 표준들인가 또는 주관적 감정들과 주관적 고려 사항들인가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b) 이 단어와 에클로게($1588)는 군사, 정치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또는 특정한 직분을 가지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사용되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택에 있어서 고려될 때 사려 분별과 경험, 사회에 있어서의 적당한 위치, 또는 충분한 부, 용기와 적합성 등이 각 경우의 필요 조건들이었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자신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또한 동시에 그에게 의무를 주는 것은 선택 그 자체이다. 개인들의 선택이거나 또는 한 집단의 선택이거나 관계 없이 선택은 하나의 구별로 간주된다(드물지만 이 단어는 특별한 가혹성을 함축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선택은 대개 어느 정도는 귀족적 엘리트에 대한 개념과 일치한다. 한편 선택은 선택 받는 자가 소속된 공동체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의 복리와 관련된 모종의 의무나 과제를 수반한다. 적합한 기관들을 통해 폴리스(polis)는, 특별한 재능들을 소유한 개인에게,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그 재능들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한다.||(c) 이 단어(군)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① 특정한 좌석들의 선택에 대하여(Plat. Tim 24c),|② 지적으로나 미적으로 선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Plat., Sym, 198d),|③ 일반적인 문헌들이나 특정한 작품에서 특별한 구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Athenaeus, 14, 663 등) 사용되었다.(참조: L. Conenen; G. Schrenk).||#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클레고는 70인역본에서 약 140회 나오며, 대부분 바하르(택하다, 뽑다, 더 좋아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땅이나 장소(성전)를 선택하는 것(창 13:11; 신 12:5 이하), 적절한 재료를 고르는 것(사 40:20), 신중한, 동시에 좋아함과 욕구에 의한 선택(창 6:2), 왕(삼상 8:18; 삼상 10:24; 삼상 16:8 이하; 삼하 6:21), 제사장들(신 18:5; 삼상 2:28), 종(사 43:10)과, 백성의 대표자로 야곱과 아브라함의 선택(사 41:8), 제시한 재앙을 택하는 것(삼하 24:12), 여호와와 다른 신들 중에서(수 24:15) 여호와를 '결정하거나 택하는 것'(수 24:22),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생활과 행악자들 세계에서의 생활 사이의 근본적이며 종교적 '결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삼하 19:39에서는 '좋아하다', 욥 29:25에서는 '결심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에클레고는 바라르(구별하다, 뽑다, 선택하다, 정결케 하다, 닦아내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사람을 선택하는 것(대상 16:41), 패역한 자들을 '가려내는 것'(겔 20:38),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단 11:35; 단 12:10)을 나타낸다.|에클레고는 바라(선택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왕을 '택하는 것'(삼상 17:8)을, 라카흐(취하다, 받아들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잠 24:32), 카발(받아들이다, 택하다)의 역어로 제시된 재앙을 '택하는 것'(대상 21:11), 카바츠(모으다)의 역어로 장로들을 '모으는 것'(욜 2:16), 투르(탐구하다, 찾다)의 역어로 장막칠 곳을 '찾는 것'(신 1:33)을 나타낸다.|그리고 에클레고는 잠 17:3에서 히브리어 해당어 없이 '골라냄, 마음의 연단'을 나타낸다(참조: L. Coenen).||#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클레고는 신약성경에서 22회 나오며, 눅 9:35를 제외하고 항상 중간태로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① 눅 10:42과 눅 14:7에서 에클레고는 둘이나 혹은 더 많은 가능성 중에서 선택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닌다.|② 눅 6:13에서 에클레고는 보다 더 많은 수효 중에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③ 막 13:20에서 에클레고는 마지막 때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여기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은 문자적으로 자기가 '택하신 택한 자들(혹은 선민)'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그분의 사랑하는 자로 따로 구별하신 자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메시야 왕국에서 시민이 되게 하신 자들이다. 가증한 것이 종말에는 너무나 끔찍한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마지막 신앙인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유혹이나 픅력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만일 하나님 자신이 미리 개입하시고 인자의 출현을 통해서 그 행태를 끝장 내지 않으시면 그렇다는 것이다.||(b) 요한복음.|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선택에 대해 말씀하신다(요 6:70; 요 13:18; 요 15:16; 요 15:19).|요한복음에서 용법은 공관복음의 용법과 비슷하다. 유다가 어찌하여 선택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특별한 문제이다(요 6:70). 그가 제자 중에 포함된 것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다(요 13:18-19). 유다가 떠났을 때에는 선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요 15:16 이하). 선택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요 6:70 등). 그러나 선택의 배후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다(요 6:65). 선택은 믿음과 순종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다를 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요 13:17). 선택의 목표는 사랑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요 15:16-17). 어느 곳에서도 유다가 디아볼로스로 예정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만 배반 자체는 하나님이 예견하시고 결정하신 것이다. 선택의 참된 목적은 유다가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왜냐하면 선택이란 세상에서부터의 선택이며,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하고 그들과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요 15:18 이하). 선택은 그리스도로부터 기원될 때만 열매 맺을 수 있다. 선택은 열매 맺는 섬김의 근거이며 원천이다. 이 본문들에서 특별히 사도들에게 하나의 전체 공동체에 대한 폭넓은 언급을 적용시키고 있다. 가장 극심한 갈등이라도 주님의 결정 안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유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도 심판과 은혜 안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완전히 해결된다.||(c) 사도행전.|사도행전에서 에클레게스다이는 많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선택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1) 이 단어는 직무자의 선택에 대해 사용되었는데,|① 예수님에 의한 사도들의 선택(행 1:24),|② 공동체에 의한 집사들의 선택(행 6:5),|③ 사도들, 장로들 그리고 전체 공동체에 의한 안디옥으로 갈 대표들의 선택(행 15:22; 행 15:25)을 나타낸다.||2) 이 단어는 또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말한 계시의 역사에 대한 개요(행 13:17)에서 조상들의 선택(참조: 마카베오이서 1:25과 파테르)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는데 안디옥에서 그는 진지하게 이스라엘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3)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도들의 회의를 향한 베드로의 연설에서 이방 선교의 길을 열기 위해 자기를 선택한 것(행 15:7)에 대해 사용했다.||(d) 바울 서신과 야고보서의 에클레게스다이: 공동체의 선택.|① 고전 1:27~29에서 사용된 엑셀렉사토(과거 중간 3인 단수)의 삼중 용법은 인간적으로 연약함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공평한 뜻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의하여 지혜와 강함과 명예를 부끄럽게 하신다. 삼중의 히나($2443)와 호포스 메($3704 $3361)는 그 공동체를 형성하시는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뜻의 목적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선택의 목적은 하나님 한 분만이 최상이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 용어는 선택에 대한 이기적 관심들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것을 포함한다.|② 엡 1:4에서 그 강조는 영원한 선택이라는 것에 있으며, 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됨이고, 그 결과는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성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③ 약 2:5은 고전 1:26 이하와 병행구절이다. 여기서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구별에 대한 반론이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들을 받으신다는 공동체의 경험에 놓여 있다. 그들은 오직 택하심에 의해서 부요해진다. 그 두 개의 대격은 선택에 달려 있는 선물을 나타낸다. 엡 1:5 이하에서처럼 에클레게스다이와 함께 주어지는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은 가난한 자는 하나님 또는 사람 앞에서 아무런 공로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는 바울 서신과 야고보서 모두에서 에클레게스다이에 의해 분명하게 표현된다.|(참조: G. Schrenk)
없어지다
ejkleivpw
잊다, 쇠하다, 없어지다, 그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엑클레이포(Trag., Thu.)는 에크($1537)와 레이포($3007: 남겨두다, 두고가다)에서 유래했으며,||(a) 타동사로는 ① '빠뜨리다, 잊다', ② '(장소)를 떠나다, 죽다'(Soph., Polyb. 등).|(b) 자동사로는 '쇠(퇴)하다, 없어지다, 그리고 그치다, 멈추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엑클레이포는 70인역본에서 약 180회 나오며, 47개의 히브리어와 그 변형, 즉 카라($3615), 타맘($8552) 등을 번역하여 육체, 마음, 식물들이 '쇠잔하는 것'(창 47:15, 18; 시 69:4; 시 71:9; 73:26; 84:2), '멸망, 진멸 하는 것'(시 71:13; 렘 44:12; 렘 44:18; 애 3:22), '기도로 마치는 것'(시 72: 20), 날을 '보내는 것'(시 78:33), 시간이 다하는 것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엑클레이포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6:9에서 재물이 '없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b) 눅 22:32에서 믿음이 '약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c) 히 1:12에서 연대가 '다하는 것' 곧 '끝나는 것'을 나타낸다: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빼내심을 얻은
ejklevkto"
정선한, 선택된 choice, select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클렉토스(Pla. 이래)는 에클레고($1586: 골라내다, 선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고르고 고른, 정선한, 선택된' choice, selected를 의미한다. 파피루스에서 이 단어는 가장 질이 좋은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에클렉토스는 70인역본에서 100회 이상 나오며 20여개의 히브리어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70인역본에서 에클렉토스의 일반적 의미는 겔 19:12; 겔 19:14에서 이스라엘의 선택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정선된 산물들, 예를 들면, 식물, 동물, 광물 등에 사용되었으며, 사람에 대해서는 선발된 군대에 대해 사용되었다.||(b) 에클렉토스의 종교적 용법은 세가지 형태를 나타낸다.|① 이 단어는 신성하거나 순수한 것을 나타낸다. 아 6:10에서 사람에 대해 '순결한'을 나타내며, 시 18:26; 삼상 22:27에서 하나님의 '순결'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이 단어는 제의적으로 '성별된'이란 의미를 지닌다. 출 30:23에서 '순결한' 기름, 신 12:11에서 하나님께 바친 제물, 삼하 21:6에서 심판에 바쳐진 사람들에 대해, 사 28:16; 사 54:12에서 성전을 세우는 돌에 대해 사용되었다.|③ 이스라엘의 선택에 대해 사용된 경우에는 땅에 대해서(슥 7:14),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토빗 13:13)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필로가 사용),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에 대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도 사용했다(사 43:20; 시 106:5).||#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클렉토스는 신약성경에서 22회 나오며, 오직 종교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① 에클렉토스는 막 13장의 종말론적 설교(막 13:20; 막 13:22; 막 13:27 병행구절 마 24:22; 마 24:24; 마 24:31; 이 본문은 누가복음에는 없다)에서 나타난다.|천사들이 사방에서 모으는 택하신 자들이란 온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다(막 13:27). 주제는 그들이 겪게 될 마지막 위협, 그들의 보존, 그들의 마지막 구원이다. 큰 환란의 묘사 중에 나타나는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막 13:20) 그 날들을 감하신 것은 그들의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의 역사이다. 이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단지 모든 육체 뿐만 아니라 택하신 자들의 구원도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만 그 날들을 감함으로 그들이 보존될 수 있다. 이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하여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거짓 메시야들과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막 13:22)는 그 환란의 한 국면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결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 택하심은 여전히 멸망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자가 오신다는 것(단 7장)과 인자에 의해 택함 받은 자들을 모을 것(에녹일서 62:2)이라는 사상은 있으나 심판의 사상은 분명히 하지 않은(contra 1Enoch 62:2; T. Mos. 10:10) 계시의 전통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여, 기독교의 계시는 인자의 재림(parousia)에 대한 위로의 약속 안에서 그 최고점에 도달하는데, 인자의 천사들은 "사방에서" 택하신 자들을 모은다(막 13:24-27; 참조: 슥 2:10, 70인역본; 에녹일서 57[Greek]; 살전 4:13-18).||② 마 22:14에서 엑클렉토스는 매우 난해하다. 이 말씀은 마 21-22장의 비유들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초대는 많은 사람에게 하였으나 불순종하여 초대에 응하기를 거절한 사람, 초대에 응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택함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으로의 초대를 따르고 믿음의 삶에서 그들의 부르심을 깨달은 자들이다(참조: 계 17: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는 말씀은 아마도 속담적인 표현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들 가운데 생명으로 선택받은 사람은 적었다. 유대 민족의 절대 다수가 악한 죄 가운데 빠졌으며, 그들은 생활을 통하여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방인들도 구원의 초대를 받았다(사 45:22). 많은 민족들이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임을 보여준 경우는 극히 적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혼인예복이 없이 지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마 22:14에 언급된 말씀은 이 비유의 전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이며 예복을 입지 않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단지 부르심만 받았지 선택받지 못했거나 위선자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 당시에 부르심을 받았던 인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배척했다는 의미이다(반즈 주석, 마태복음).||③ 누가복음에서 에클렉토스는 눅 18:7에서 믿는 자들의 종말론적 칭호로 나타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즉각적으로 옳음을 밝힐 것이라는 약속, 즉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간섭(눅 18:7-8)은 아마도 그 비유의 원래의 의도와 일치한다. 누가복음에서 재림이 지체되는 문제(눅 18:7 하반절)의 극복을 위한 결정적인 것은 택하신 자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에 대한 전망(view)이 인자가 오시기 전에 요구되는 시험(testing)과 연결된다(눅 18:8 하반절)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은 누가복음에서 "택함을 받은" 아들(눅 9:35) 또는 하나님의 매시야(눅 23:35; -->에클레고마이)로 되풀이하여 묘사된다.||(b) 바울 서신.|바울은 에클렉토스를 비교적 드물게 사용한다(롬 8:33; 롬 16:13; 골 3:12; 딤전 5:21; 딤후 2:10; 딛 1:1).|① 롬 8:33 이하의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상황을 표현하는 문맥에서 에클렉토스를 언급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바울은 비록 믿음으로 부르신 은혜로운 성격을 강조하고(참조: 갈 1:6; 갈 4:9; 롬 1:6), 예정(predestination)에 대해 이야기 할지라도(롬 8:29 이하; 고전 2:7) 여기(롬 8:33)에서만 믿는 자들을 택하신 자들이라고 부른다. 택하신 자들은 그들에 대한 고소도 비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대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롬 8:31-39). 믿는 자들에 대한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되는 구원의 역사에 대한 찬송에서 믿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상태는 보이지 않는다.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이는 그들이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시작되고 끝나는 구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② 롬 16:13의 루포의 믿음을 보여주는 "주 안에서 선택하심"이란 문구에서 선택에 대한 바울 신앙의 토대, 각 신자들이 선택된다는 사상을 보게 된다.||③ 골 3:12에서 에클렉토스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참조: 골 3:1-4; 롬 6:1-11), 새 생명의 실현으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면제된(골 3:6) 자들의 새로운 종말론적 상태와 관련된 권면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 옷입고". 이 명령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같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 받는 사람, 새 생명으로 인도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참조: 엡 1:4; 벧전 2:9). 이들은 거룩하고 사랑 받은 자들이니, 이로써 그들도 사랑을 보여야 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④ 목회 서신에서는 선택의 사상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에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라는 언급이 한번 있을 뿐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딤전 5:21).천사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의 동료로 다른 피조물 가운데서 선택한 자들로서, 그리고 우주를 다스리는 가장 높은 사역들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법정을 구성한다(참조: 막 8:38). 이 천사들 앞에서 교회의 직임자들은 자기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딤후 2:10의 에클렉토스는 본문이 사도의 의미를 고난의 본보기로 언급하는 바, 종말론적 기대의 관점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여기에 정해진 분량의 고난이라는 종말론적 개념이 암시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참조: 계 6:11; 골 1:24).|딛 1:1에서 에클렉토스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관용적 명칭이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c) 베드로전서.|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적대적인 환경의 한 가운데 있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선택의 사상은 그 자체 다른 어떤 신약성경의 책들보다 능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① 바로 서두부터 두 세계의 긴장 속에 놓여 있는 신자들의 특별한 상황이 '택함받은 흩어진 나그네'라는 문구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벧전 1:1). 원전에는 1절에 '...택함 받은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되어 있고 2절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외인들이라는 신분은 선택의 반대면이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에 기초하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룩한 구원에 순종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벧전 1:2).||② 벧전 2:4-10에서 선택에 대한 언급들은 기독론적으로 닻을 내리고 신령한 봉사의 자리에 서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이 지적되어 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에게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와(벧전 2:4)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참조: 에녹일서 53:6) 세워져서 "거룩한 제사장"(벧전 2:5)이 되라는 권면은 시온에 둔 선택된 돌, 즉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돌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벧전 2:6-8; 시 118:22; 사 8:14 이하)이신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증거로써 정당성을 인정 받는다.||③ 벧전 2:9에서 원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선택에 관한 말씀이 교회에게로 이전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사 43:20 70인역본)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출 19:6, 70인역본)요, 그의(하나님의) 소유된(RSV 난외주)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참조: 사 43:21)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참조: 호 1:9 이하; 호 2:23; 롬 9:25 이하).||(d) 요한의 기록.|① 요이 1:1에서 택하심을 입은 부녀로 불리우는 요한이서의 수신자는 어떤(혹은 특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이해된다: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참조: 딛 1:1; 클레멘트일서 1:1).||② 요이 1:13에서 기자가 그의 서신을 끝맺으면서 인사한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도 그가 세운 교회의 신자들을 가리킨다(참조: 벧전 5:13).||③ 계 17:14의 다만 매우 조심스럽게만, 주로 종말론적 문맥에서, 오로지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교회에 의해 전수된 선택의 신앙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에클렉토이(선택한 자들)는 승리한 어린양, 즉 만왕의 왕을 따르는 자들에게 사용되었다: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선택의 개념과 일치하며, 선택은 부르심과 자동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 충성(fidelity)은 선택 사건의 필수적 동기임을 나타낸다(참조: 마 22:14).|(참조: G. Schrenk; L. Coenen; I. Eckert).
택함
ejkloghv
선택, 선택되어진 것.||#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클로게(Pla., PTebt.)는 에클레고($1586; 골라내다, 선택하다)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선택' seletion이란 능동적 의미가 두드려진다. 예를 들면 통치자들, 관리들, 즉 특별한 직책을 가진 공직자들의 선택에 대해 사용되었다(Plato). 그 강조점은 선택의 결과에 있지 않고 선택의 행위에 있으며, 선택의 근거는 특별한 목적을 위한 적합성이다. 선택의 원칙이 첨가되는데, 출생, 업적, 수입 등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관계가 명백할 때는 선택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는다.||(b) 이 단어는 파피루스와 비문들에서 '찾아냄' seeking, '골라냄, 선택함' selecting을 의미한다(밭, 신랑, 선물에 대해 사용되었다).||(c) 이 단어는 '선택되어진 것'이란 수동적 의미를 지닌다(Polyb.).||#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클로게는 70인역본에서 사 22:7(아굴라역), 사 37:24(삼마쿠역, 테오도숀역)에만 나온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클로게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도행전.|행 9:15에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택함을 받은 도구라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이 선택된 것은 이방인들, 왕들, 이스라엘의 자녀들에 대한 사도적 임무를 위한 것이다.||(b) 바울 서신.|① 롬 9:11에서 바울은 에클로게를 족장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사용한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남아 있다는 의심에 답변한다(롬 9:6 이하). 성경이 이것을 증거한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꼭 이삭이 약속을 받은 자였으며(롬 9:7-9; 참조: 창 21장),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택의 자유로운 행동은 장자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한 것에 나타난다(롬 9:10-13; 참조: 창 25:23; 말 1:2 이하). 택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롬 9:11)이 이삭의 아들들의 출생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그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구원 역사에서 그들의 역할을 정한다. 이것은 개인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긍휼히 여기시거나 강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구원의 새로운 공동체의 부르심에서도 나타난다(롬 9:14-29).||② 롬 11:5에서 에클로게는 이스라엘 전체에서 신실한 남은 자를 택하시는 은혜로운 선택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롬 9:30-롬 10:21) 하나님께서는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 즉 선택하신 백성(롬 11:2)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일찍이 엘리야 때에 그랬듯이(왕상 19:10; 왕상 19:14; 왕상 19:18),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그리고 롬 11:7에 의하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에게서 '택하심'을 본다. 그런데 이 택하심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은 이스라엘의 완악해짐조차도 구원 역사에 의미를 가진다: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롬 11:11).|이스라엘의 선택은 종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방 기독교가 감람나무 이스라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롬 11:17-24). 그러므로 언젠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③ 롬 11:28에서 에클로게는 족장들 안에서 백성 전체를 선택한 것을 나타낸다: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RSV는 '하나님의'를 부가함)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일지라도 당분간 하나님과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의 대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분간 이 모두가 버림을 받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목적을 거부하는 이 기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을 넓히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말은(당분간)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은총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④ 데살로니가전서의 서두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택에 대한 믿음은 우주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와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이방 세계에서 온 데살로니가교인들의 믿음으로 인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이) 형제들"의 택하심에 감사한다(살전 1:4). 이 택하심은 성령의 역사를 수반한 사도의 설교에서 분명해지며(살전 1:5; 참조: 갈 2:8; 갈 3:2-5; 고전 2:4 등),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음에서 증명된다(살전 1:6-10; 살전 1:2 이하).||(c) 베드로 서신.|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의 선택과 부름을 언급하고, 구원을 '신뢰'한다.|베드로후서는 구원을 "선의 본성"(벧후 1:4)에 참예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베드로후서는 한편으로는 "부르심과 택하심"(벧후 1:10)을 입은 자들이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윤리적 노력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클로게라는 용어와 연관하여 종말론적 관점을 유지한다. 베드로후서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택하심의 시련에서 찾는다(벧후 1:10 하반절; 벧후 1:11).|신자들은 택하심을 확고히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진지하게 행해야 한다. 이것은 결연한 정결화, 능력을 활용하는 열심, 하나님과 그의 약속들에 대한 경험을 포함한다(참조: 벧후 1:3 이하).|(참조: J. Eckert; G. Schrenk; L. Coenen).
고생하다
ejkluvw
풀어지다 become loose, 지치다 become weary, 연약해지다 become wea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에클뤼오(Homer. 이래)는 '풀어지다, 지치다, 약하여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에클뤼오는 19개의 다른 히브리어 동사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대개 '힘을 잃다, 마음을 약하게 하다, 꽉 쥔 손이 느슨해지다, 또는 손을 연약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 20:3; 수 10:6; 수 18:3; 삼하 4:1; 대하 15:7; 사 13:7; 사 29:9; 렘 4:31; 애 2:12, 애 2:19; 겔 7:17 등.|그러나 욥 19:25에서 그 단어는 가알(구속하다, 근족으로 행동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에서는 그 단어가 분사의 명사적 용법 즉 '구속자'(redeemer)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히브리어에서 고엘은 친척 대속자를 일컬을 때 사용된 말이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피의 복수자였고 곧 살해 당한 희생자의 피를 구속해야 하는 자이며 가족의 소유를 되사서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고 친척의 과부를 맡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변호자요, 복수자요, 압제자에서 구출하는 해방자이다. 이 구속자가 누구인가? 구원자 그리스도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클뤼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고전헬라어와 70인역본의 용법과 같이 사용되었다.|에클뤼오는 광야의 굶주린 무리에 대해(마 15:32; 막 8:3), 피곤하지 아니하면 좋은 추수를 거두리라는 기독교인들의 확신에 대해(갈 6:9), 징계는 아들됨의 표적이므로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치 않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히 12:3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하신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격려하였다. 여기서 에클뤼오는 '힘을 잃거나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나타낸다. 히 12:5은 잠 3:11을 인용하고 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참조: C. Brown; J. H. Thayer).
씻기다
ejkmavssw
깨끗이 닦다, 닦아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맛소(Soph., Eur., Hippocr., Aristot.)는 에크($1537)와 맛소(손을 대다, 다루다)에서 유래했으며, '닦아내다, 깨끗이 닦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맛소는 신약성경에서 5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만 나온다.||(a) 에크맛소는 머리털로 발을 '씻는 것'을 나타낸다, 눅 7:38; 눅 7:44; 요 12:1; 요 12:3.||(b) 에크맛소는 수건으로 발을 '닦는 것' (물기를 없애는 것)을 나타낸다, 요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비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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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하다, 비웃다, 조롱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뮉테리조는 에크($1537)와 뮉테리조($3456: 경멸하다, 비웃다, 코를 비죽이다)에서 유래했으며,||(a) '코를 비죽이거나 코방귀 뀌다' turn up one's nose, 이 의미에서.|(b) '멸시하다', '조소하다, 조롱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크뮉테리조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악(3932)을 번역하여 '비웃는 것'(시 2:4; 시 22:7)을 나타내며, 라엑(3934)을 번역하여 '조롱하는 자'(시 35:16)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뮉테리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눅 16:14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물질 중시를 경고하시는 말씀에 대해 비웃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바리새인들은 맘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다. 예수님께서 비록 가난하시지만 가난과 부에 대해서 가르치신 사실과 부와 경건이 상충된다는 사상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멸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참조: 눅 16:15). 그들은 우선적으로 계시의 전달자를 거부하는 자만심에 찬 우월감을 나타내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조롱은 심리적인 묘사가 아니라 오히려 (구약에서처럼) 제자직에 반드시 따르는 것이다. 실례로 예수님에 대한 조롱은 메시야적 사명과 그 사명에 따르는 고난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b) 눅 23:35에서 관원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이 수난 기사에서 시 22:7-8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일반적 현상에 역사적 구체성을 부여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Bertram).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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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피하다, 물러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뉴오(Xen., Diod. 등)는 에크($1537)와 뉴오($3506: 고개를 끄덕이다, 손짓으로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a) '옆으로 돌리다(피하다)' turn aside,|(b) '물러가다' withdraw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크뉴오는 70인역본에서 약 8회 나오며, '돌이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삿 18:26; 왕하 2:24; 왕하 23:1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뉴오는 신약성경에서 요 5:13에 한번 나오며, 예수님이 스스로 '피하신 것'을 나타낸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예수님은 혼란이나 혼잡을 언짢아 하신다. H. Alford는 '남의 주목을 꺼리다'나 '관찰하지 않은 채 지나가다'라고 번역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크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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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다, 깨다 become sob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네포는 에크(1537: '~로부터')와 네포($3525)에서 유래했으며, (술취한 후에) '술에서 깨어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크네포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술에서 깨어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9:24; 삼상 25:37; 욜 1:5; 집회서 31:2).||#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네포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5:34에서 한번 나온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여기서 에크네포는 비유적 의미로,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다, 정신 차리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J.H.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