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고
ejklevgw
골라내다 pick out, 선택하다 choo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동사 에클레고(Hdt. 이래)는 에크($1537: ~로부터)와 레고($3004: 모으다, 셈하다, 열거하다, 말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골라내다, 집어내다, 선택하다'를 의미한다.|선택에 있어서 첫째로 어떤 특정한 것을 선택하기 위한 여러 대상들이 있고 둘째로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그를 강제하는 어떠한 상황들에 의해서라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결정을 내린다. 셋째로 선택을 하는 사람을 적어도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는 선택 받는 사람 또는 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더욱이 선택의 행위(따라서 이 단어군)는 선택자에 의한 판단, 곧 그가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다. 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주요한 것이 객관적 표준들인가 또는 주관적 감정들과 주관적 고려 사항들인가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b) 이 단어와 에클로게($1588)는 군사, 정치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또는 특정한 직분을 가지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사용되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택에 있어서 고려될 때 사려 분별과 경험, 사회에 있어서의 적당한 위치, 또는 충분한 부, 용기와 적합성 등이 각 경우의 필요 조건들이었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자신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또한 동시에 그에게 의무를 주는 것은 선택 그 자체이다. 개인들의 선택이거나 또는 한 집단의 선택이거나 관계 없이 선택은 하나의 구별로 간주된다(드물지만 이 단어는 특별한 가혹성을 함축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선택은 대개 어느 정도는 귀족적 엘리트에 대한 개념과 일치한다. 한편 선택은 선택 받는 자가 소속된 공동체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의 복리와 관련된 모종의 의무나 과제를 수반한다. 적합한 기관들을 통해 폴리스(polis)는, 특별한 재능들을 소유한 개인에게,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그 재능들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한다.||(c) 이 단어(군)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① 특정한 좌석들의 선택에 대하여(Plat. Tim 24c),|② 지적으로나 미적으로 선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Plat., Sym, 198d),|③ 일반적인 문헌들이나 특정한 작품에서 특별한 구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Athenaeus, 14, 663 등) 사용되었다.(참조: L. Conenen; G. Schrenk).||#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클레고는 70인역본에서 약 140회 나오며, 대부분 바하르(택하다, 뽑다, 더 좋아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땅이나 장소(성전)를 선택하는 것(창 13:11; 신 12:5 이하), 적절한 재료를 고르는 것(사 40:20), 신중한, 동시에 좋아함과 욕구에 의한 선택(창 6:2), 왕(삼상 8:18; 삼상 10:24; 삼상 16:8 이하; 삼하 6:21), 제사장들(신 18:5; 삼상 2:28), 종(사 43:10)과, 백성의 대표자로 야곱과 아브라함의 선택(사 41:8), 제시한 재앙을 택하는 것(삼하 24:12), 여호와와 다른 신들 중에서(수 24:15) 여호와를 '결정하거나 택하는 것'(수 24:22),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생활과 행악자들 세계에서의 생활 사이의 근본적이며 종교적 '결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삼하 19:39에서는 '좋아하다', 욥 29:25에서는 '결심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에클레고는 바라르(구별하다, 뽑다, 선택하다, 정결케 하다, 닦아내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사람을 선택하는 것(대상 16:41), 패역한 자들을 '가려내는 것'(겔 20:38),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단 11:35; 단 12:10)을 나타낸다.|에클레고는 바라(선택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왕을 '택하는 것'(삼상 17:8)을, 라카흐(취하다, 받아들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잠 24:32), 카발(받아들이다, 택하다)의 역어로 제시된 재앙을 '택하는 것'(대상 21:11), 카바츠(모으다)의 역어로 장로들을 '모으는 것'(욜 2:16), 투르(탐구하다, 찾다)의 역어로 장막칠 곳을 '찾는 것'(신 1:33)을 나타낸다.|그리고 에클레고는 잠 17:3에서 히브리어 해당어 없이 '골라냄, 마음의 연단'을 나타낸다(참조: L. Coenen).||#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클레고는 신약성경에서 22회 나오며, 눅 9:35를 제외하고 항상 중간태로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① 눅 10:42과 눅 14:7에서 에클레고는 둘이나 혹은 더 많은 가능성 중에서 선택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닌다.|② 눅 6:13에서 에클레고는 보다 더 많은 수효 중에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③ 막 13:20에서 에클레고는 마지막 때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여기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은 문자적으로 자기가 '택하신 택한 자들(혹은 선민)'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그분의 사랑하는 자로 따로 구별하신 자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메시야 왕국에서 시민이 되게 하신 자들이다. 가증한 것이 종말에는 너무나 끔찍한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마지막 신앙인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유혹이나 픅력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만일 하나님 자신이 미리 개입하시고 인자의 출현을 통해서 그 행태를 끝장 내지 않으시면 그렇다는 것이다.||(b) 요한복음.|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선택에 대해 말씀하신다(요 6:70; 요 13:18; 요 15:16; 요 15:19).|요한복음에서 용법은 공관복음의 용법과 비슷하다. 유다가 어찌하여 선택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특별한 문제이다(요 6:70). 그가 제자 중에 포함된 것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다(요 13:18-19). 유다가 떠났을 때에는 선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요 15:16 이하). 선택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요 6:70 등). 그러나 선택의 배후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다(요 6:65). 선택은 믿음과 순종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다를 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요 13:17). 선택의 목표는 사랑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요 15:16-17). 어느 곳에서도 유다가 디아볼로스로 예정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만 배반 자체는 하나님이 예견하시고 결정하신 것이다. 선택의 참된 목적은 유다가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왜냐하면 선택이란 세상에서부터의 선택이며,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하고 그들과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요 15:18 이하). 선택은 그리스도로부터 기원될 때만 열매 맺을 수 있다. 선택은 열매 맺는 섬김의 근거이며 원천이다. 이 본문들에서 특별히 사도들에게 하나의 전체 공동체에 대한 폭넓은 언급을 적용시키고 있다. 가장 극심한 갈등이라도 주님의 결정 안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유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도 심판과 은혜 안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완전히 해결된다.||(c) 사도행전.|사도행전에서 에클레게스다이는 많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선택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1) 이 단어는 직무자의 선택에 대해 사용되었는데,|① 예수님에 의한 사도들의 선택(행 1:24),|② 공동체에 의한 집사들의 선택(행 6:5),|③ 사도들, 장로들 그리고 전체 공동체에 의한 안디옥으로 갈 대표들의 선택(행 15:22; 행 15:25)을 나타낸다.||2) 이 단어는 또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말한 계시의 역사에 대한 개요(행 13:17)에서 조상들의 선택(참조: 마카베오이서 1:25과 파테르)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는데 안디옥에서 그는 진지하게 이스라엘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3)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도들의 회의를 향한 베드로의 연설에서 이방 선교의 길을 열기 위해 자기를 선택한 것(행 15:7)에 대해 사용했다.||(d) 바울 서신과 야고보서의 에클레게스다이: 공동체의 선택.|① 고전 1:27~29에서 사용된 엑셀렉사토(과거 중간 3인 단수)의 삼중 용법은 인간적으로 연약함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공평한 뜻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의하여 지혜와 강함과 명예를 부끄럽게 하신다. 삼중의 히나($2443)와 호포스 메($3704 $3361)는 그 공동체를 형성하시는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뜻의 목적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선택의 목적은 하나님 한 분만이 최상이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 용어는 선택에 대한 이기적 관심들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것을 포함한다.|② 엡 1:4에서 그 강조는 영원한 선택이라는 것에 있으며, 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됨이고, 그 결과는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성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③ 약 2:5은 고전 1:26 이하와 병행구절이다. 여기서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구별에 대한 반론이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들을 받으신다는 공동체의 경험에 놓여 있다. 그들은 오직 택하심에 의해서 부요해진다. 그 두 개의 대격은 선택에 달려 있는 선물을 나타낸다. 엡 1:5 이하에서처럼 에클레게스다이와 함께 주어지는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은 가난한 자는 하나님 또는 사람 앞에서 아무런 공로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는 바울 서신과 야고보서 모두에서 에클레게스다이에 의해 분명하게 표현된다.|(참조: G. Schre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