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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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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의 밖에, ~을 제외하고는.||부사 엑토스는 에크($1537)에서 유래했으며,||(a) '밖에(으로), 외부'를 의미한다. 마 23:26에서 '외부'를 의미한다.||(b) '~의 밖에'를 의미한다.|① 고후 12:2에서 "몸 밖에"는 즉 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나타낸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② 고전 6:18에서 "몸 밖에"는 몸에 '속하는(혹은 관계하는) 것'을 나타낸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c) '~외에, ~을 제외하고'를 의미한다.|① 행 26:22에서 말한 것 '외에는'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② 고전 15:27에서 그를 '제외하는 것'을 나타낸다: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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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얼굴을 돌리다, 피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트레포(Hdt.이래)는 에크($1537)와 트레포(%53: 돌리다, 돌아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관절이 '삐다, 접질리다',|(b) '돌리다, 돌아서다, 외면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가령 강에서 강의 지류로 물길을 돌리는 것에나 어떤 사람을 어느 길에서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크트레포는 70인역본에서 암 5:8에 한번 나오며, 하나님께서 어두움을 아침이 되게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트레포는 신약성경에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히 12:13에서 에크트레포는 '관절이 삐거나 탈구된 것을 나타낸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기 위하여 낙심한 자들에게 그들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라고 고무하고 있다(참조: Arndt, 245). 경한 부상("저는 사람들")은 싸매어("고침 받을")진다면(뼈의 어그러짐과 같은) 중한 부상은 면하게 될 것이다. 병고침에 대한 언급은 에크트레포가 '~에서 돌리다, 외면하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보다 오히려(Hippocrates의 저술에서처럼) '관절을 삐게 하다', '탈구시키다'라는 전문적인 의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b) 목회 서신에서 에크트레포마이(중간태)는 교리적인 또는 윤리적인 탈선의 개념이 가장 먼저 나타트고 있다. 딤전 1:6에서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생겨나는 기독교인의 사랑의 삼요소를 소홀히 한 결과로서 거짓 교사들은 "헛된 말로 빗나간 것"이다.|딤후 4:4에서 에크트레포는 '~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바울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사욕을 좇아서, 새로운 것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많은 선생들을 찾을 때가 올 것이라고 디모데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귀를 막고 외면하거나(엑트라페손타이) 거짓된 신화의 세계를 좋을 것이다. 어떤 과부들은 게으른 험담꾼이 되어 버렸으며(참조: 딤전 5:13) 사탄에게로 돌아가 사탄의 종이 되어버린 자들도 있었다(딤전 5:15). 이것은 이 과부들의 부도덕성을 암시하는 것인 듯하다.||⒞ 딤전 6:20에서 디모데는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미묘하고도 끊임없는 변론과 "망령되고 허한 말을 피하라"고 명령 받고 있다(Weymouth). 디모데는 이 거짓된 지식과 헛된 이론에 의거한 이 불경한 변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쏟은 사람들은 "믿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M.J.Harris).
양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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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하다, 교육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엑트레포는 에크($1537)와 트레포($5142: 기르다, 양육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장성하기까지 기르다, 양육하다, 기르다, 자양분을 주다',|(b) '가르쳐 길들이다, 교육하다, 기르다, 가르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엑트레포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엡 5:29에서 (a)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b) 엡 6:4에서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만삭되지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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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 untimely bir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크트로마(Aristot.)는 에크티트로스코(%934: 유산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 '조산, 유산'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아이가 살든, 죽든, 항상 '조산'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크트로마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온다(민 12:12; 욥 3:16; 전 6:3).||#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크트로마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5:8에 한번 나온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에크트로마라고 부른다. 그는 늦은(tardy) 출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비정상적인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영적인 관점에서 그가 예수님의 생애 동안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당한 시기에 태어나지 아니한 자이다. 사도로서의 그의 소명은 그리스도를 본 것을 전제로 하는데 정상적이 아니었다. 그는 40일 후에 주님을 보았으며, 그 자신이 새로운 삶과 소명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 용어는 바울의 대적들이 바울의 사도 자격의 부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 것 같으며 바울은 이 용어를,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과거와 관련해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문맥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 문맥에서 강조점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신 것의 비정상적인 성질에 있기 때문이다.|이그나티우스는 이 용어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며(Romans 9.2) 유세비우스는 박해 때에 신앙을 고백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용어를 적용한다(Ecclesia. stical History 5. 1. 45).|(참조: J. Schneider).
가지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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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고 나가다, 가지고 가다, 인도하다, 산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페로(Homer 이래)는 에크($1537)와 페로($5342: 데리고 가다, 낳다)에서 유래했으며,||(a) '메고 나가다, 가지고 가다',|(b) '데리고 가다, 인도하다',|(c) '내다, 산출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페로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5:6; 행 5:9; 행 5:10에서 매장하기 위해 '메고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행 5:15에서 병고치기 위해 '메고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b) 눅 15:22에서 옷을 '내어 오거나 들어내다'를 나타낸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c) 딤전 6:7에서 무엇을 '가지고 가다'를 나타낸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d) 막 8:23에서 '인도하다(데리고 가다)'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e) 히 6:8에서 '산출하거나 내다'를 의미한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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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하다, 피하다, 벗어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퓨오(Homer 이래)는 에크($1537)와 퓨고($5343: 달아나다, 도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에서 도망하다, 도망하여 안전을 구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퓨고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16:27에서 '달아나거나 도망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행 19:16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b) 고후 11:33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c) 나머지 구절들에서 '피하다, 모면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눅 21:36에서 모든 일에 대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② 롬 2:3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③ 살전 5:3에서 최후의 멸망에 대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④ 히 2:3에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에 대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⑤ 히 12:25에서 경고하는 자를 거역하는 자에 대해: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놀라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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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게 하다, 무섭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포베오(Thu., Pla. 등)는 에크($1537)와 포베오($5399)에서 유래했으며, '놀라게 하다, 무섭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포베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0:9에 한번 나온다: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F. G. Carver는 에크포베오가 그들로 깜짝 놀래어 제 정신을 잃게 하라는 강한 표현이라고 한다. 벵겔은 마치 아이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놀라게 하는 것에 비교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어떤 위협을 하여 놀라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심히 두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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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무서워하는(두려워 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크포보스(Aristot., Physiogn; Plut. 등)는 에크($1537)와 포보스($5401)에서 유래했으며, '두려움이나 공포로 타격 받은, 심히 놀란, 심히 무서워하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크포보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9:6에서 '심히 무서워하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베드로 등은 심한 두려움으로 타격을 받은 상태이므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b) 히 12:21에서 '심히 두려워하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그때 모세의 마음은 '공포로 가득차' 떨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크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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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출하다(내다), 싹이 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퓌오(Homer 이래)는 에크($1537)와 퓌오($5453: 낳다, 생기다, 맺다, 산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에서 산출하다(내다, 낳다), 싹이 나다, 발육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퓌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마 24:32; 병행구 막 13:28에서 잎사귀를 '내는' 것을 나타낸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몰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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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따르다 pour ou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엑케오(Homer 이래)는 에크($1537)와 케오( 붓다, 쏟다)의 합성어이며, `붓다, 쏟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액체를 붓는 것에 대해, 제의적으로, 술을 붓는 것, 정결 의식에 대해 사용되었다. 때로는 `피흘리다, 죽이다, 살인하다'를 의미한다.|한 유대 비문은 이 동사를 무죄한 순교자의 피흘림에 대해 사용한다. 이 동사는 또한 딱딱한 물체들을 흩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고 비유적으로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다. 에크퀸노는 에크케오와 함께 존재하는 헬라주의적 헬라어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엑케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4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파크(붓다, 쏟다,따르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엨게오는 물(출 4:9; 삼상 7:6), 국(삿 6:20), 흙(레 14:41)을 쏟거나 붓는 것을 나타내며, 정결 의식들에 사용되며(민 19:17; 출 30:18) 또는 특별히 자주 희생 의식의 한 부분으로, 또는 가장 빈번하게 살인이라는 뜻의 동의어로서 피를 쏟거나 흘리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참조: 창 9:6; 창 37:22; 신 19:10; 시 13:3). 하나님께 제물을, 대개는 물을 부어드림에 대해서도 사용되며(예: 삿 6:20; 삼상 7:6). 또는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부어 바치는 데도 사용된다(사 57:6).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노를 쏟다'는 표현이다(예: 시 79:6; 사 42:25; 겔 7:8).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정, 또는 원통함을 쏟는다(삼상 1:15; 시 142:2). 한가지 특별한 용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 영을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욜 2:28-욜 2:29; 겔 39:29; 슥 12:10).||#3. 신약성경의 용법||엑케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엑케오는 `쏟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9:17(눅 5:37)에서 포도주가 `쏟아지는 것'을 나타낸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② 요 2:15에서 돈이 `쏟아지는 것'을 나타낸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③ 행 1:18에서 유다의 창자가 `흘러나온 것'을 나타낸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b) 엑케오는 `피를 흘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22:20에서 (순교자들이) 폭력으로 살해 당한 것을 묘사한다: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롬 3:15에서도 역시 갚는 의미이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마 23:35; 병행구, 눅 11:50에도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c) 엑케오는 행 2:17, 행 2:18에서 성경을 `부어 준 것'을 묘사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딛 3: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d) 롬 5:5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신자의 마음에 부어진 것을 묘사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e) 엑케오는 계 16:1-계 16:17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쏟으시는 것을 나타낸다. 엑케오는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는 것을 표현하는데 8회 나온다.||(f) 피 흘림에 관한 이 두 가지 구약성경 의미들, 곧 살인 또는 순교와 희생이란 의미는 → 주의 만찬의 제정에 관련된 예수님의 중대한 말씀에서 함께 나온다. 막 14:24에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에크퀸노메논)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병행구, 마26:28), 눅 22:20에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로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순교자, 곧 무죄한 살인의 희생자시오, 또한 "많은 사람을 위한 희생 제물도 되신다. 몇 개의 구약성경 구절들이 이러한 말들로 언급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는 말씀은 출 24:8을 반영한다. 곧 시내산의 고대 언약을 제의화한 희생제가 이제는(렘 31:31-렘 31:34에 예언된 바와 같이) 예수님의 희생의 죽으심에 의해 인쳐진 새 언약으로 대치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구절은 사 53:11, 사 53:12을 반영한 말이다. 곧 그들의 피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종의 죽으심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인 것이다. 사 53:12에는 하나님의 종이 자기 영혼을 "버려"(poured out) 사망에 이른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의 부으심은 "많은 사람"의 피를 씻겨주는 희생이었고 또한 그들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 관계로 안내하였다. 성만찬의 잔에서 상징되는 것은 바로 이 부으심이었다.|(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R. T. France; J. Beam).
엑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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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나오다, 쏟아져 나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엑퀴노는 케오(%1059: 붓다, 쏟다)에서 유래했으며,|(a) '흘러나오다, 쏟아져 나오다'|(b) 상징적으로 '주다, 수여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엑퀴노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온다(마 23:35; 마 26:28; 막 14:24; 눅 5:37; 눅 11:50; 눅 22:20; 행 1:18; 행 10:45; 롬 5:5; 유 1:1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크코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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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떠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코레오(Soph., Hdt. 이래)는 에크($1537)와 코레오($5562)에서 유래했으며, '~에서 떠나다, 출발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21:21에 한번 '도망하다'는 의미에서 '~에서 떠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혼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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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두다, 죽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크프쉬코(Hippocr., Jambl.)는 에크($1537)와 프쉬코($5594: 숨쉬다, 호흡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숨을 거두다, 마지막 숨을 거두다, 죽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크프쉬코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숨을 거두다', 즉 '죽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5:5에서 아나니아에 대해,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b) 행 5:10에서 삽비라에 대해,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c) 행 12:23에서 헤롯에 대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임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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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하는, 자발적인, 의도적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헤콘(Homer 이래)은||(a) '기꺼이 하는, 의도적인'|(b) '자발적인, 강요받지 않는'을 의미하며, 부사적으로 사용된다.||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의지는 오직 선한 것만을 꾀할 수 있고 악행은(환경에 기인한)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토아 철학에 있어 신에게의 자유로운 복종은 도덕성의 본질이며 신이 부과한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운명에서 자유로와지는 것을 포함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헤콘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여기서 요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결의에 의해 죄를 짓는데 반해, 다른 피조물은 그들의 뜻에 상관없이 무익한데 굴복한다는 것이다.||(b) 고전 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여기서 헤콘의 의미는 '기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감람
ejlaiva
감람나무 olive tree, 감람(열매) olive(fruit).||#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엘라이아(Homer이래로)는 감람나무와 그 열매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엘라이아는 히브리어 자이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감람나무는 느리게 발육하므로 감람을 키우거나 그 열매를 맛보는 일은 흔히 안정되고 유복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감람나무의 무성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시 52:8; 시 128:3). 특히 이스라엘(렘 11:16; 호 14:6; 합 3:17)에 대한 적절한 비유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엘라이아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타난다.||(a) 약 3:12에서 엘라이아는 자연 법칙에 반하는 행위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서 감람나무의 열매를 의미한다. 모순된 행동은 부도덕한 만큼이나 부자연한 것이다.||(b) 감람나무는 비유적 의미로 2회 나타난다. 롬 11:17이하의 바울의 유명한 비유에서 엘라이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낸다.|롬 11:17이하: "또한 가지 얼마나 꺾여졌는데(믿지 않는 이스라엘인들) 돌감람나무인 네가(이방인 신자)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잔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은 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이방인(신자)은 유대인의 뿌리 덕택으로 그늘의 축복을 같이 나누는 것에 불과하다. 이방인 신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적 뿌리인 족장들의 성별에 참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이 설명은 렘 11:16과 호 14:6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말씀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지속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제휴하시는 셈이다. "결국 구원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물려받는 역사의 지속성에서만 발견되어져야 한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성도가 된 것이다.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게도 희망은 있다.|다음 롬 11:19-롬 11:22의 설명의 목적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안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예방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들의 계속적인 믿음만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신자 사이의 지속성을 유지시켜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불신앙(롬 11:20) 상태로 떨어졌을 때 그들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만일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견고히 서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아니하면(롬 11:22; 비교: 롬 8:17; 골 1:21, 골 1:23)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지켜주지 않으실 것이다.|바울은 롬 11:23-롬 11:24: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믿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인을 향한 이방인 신자들의 태도는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금석이 된다고 고펠트(Goppelt)는 지적한다.|"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한 은혜가 전혀 소망없이 보이는 잃어버린 자, 즉 끊긴 가지인 옛 언약의 백성들도 구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는 바른 신앙 안에 설 수 없다. 믿음 안에 거하려면 충심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원해야 하며(롬 10;1) 모든 조건이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있게 하사 다시 접붙이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바울의 주장에서 강조되는 바는 본성에 거스렸다(para physin)는 사실에 있다. 원예에서는 결코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재배된 가지를 항상 야생 대목에 접목시키고 그 반대로는 결코 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기가 묘사하고 있는 특별한 종류의 접붙임이 본성을 거스린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시인함으로써 그를 비판하는 자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 그러나 만약 본성을 거스려 하나님께서 돌감람나무를 자신이 친히 재배하는 나무에 접붙였다면, 그분은 능히 원 가지를 다시 접붙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 계획 안에서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실 수 있다.(W.M.Greathouse)|바울이 고의적으로 타고난 출생을 넘어서서 행한 것은 가지들이 잘려나간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본래 상태로 접붙여주실 능력을 갖고 계시다"라는 믿음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기적이다.|계 11:4에서는 하나님의 두 증인이 이 땅의 주 앞에서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묘사되었다. 이 구절은 슥 4:2-슥 4:14을 인용한 것인데, 이곳에서의 두 감람나무는 등대에 기름을 보급해 주는 것으로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두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나타낸다.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합쳐진 지도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두 증인은 신실한 교회의 증거, 특히 기독교 순교자들의 증거를 나타낸다. 그리고 스가랴의 환상을 인용한 요지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참조: 슥 4:6) 그들의 신실한 증거가 증오로 가득찬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더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J.G.Baldwin, Haggai, Zechariah, Malachi, TC, 1972, 118이하; R.H.Charlles, Op., 282이하).||(c) 감람산(혹은 라틴어 올리베툼[olivetum]: 감람원 olive-orchard)은 오늘날도 여전히 감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산마루이다. 이곳은 동쪽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는 여행자들이 거쳐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개선 입성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언급되었다(마 21:1, 병행절, 막 11:1; 눅 19:28). 성전 지역을 내려다보면 이곳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슬퍼하셨던 일(눅 19:29-눅 19:44), 그리고 성전의 멸망이 다가옴에 관해 가르치셨던 일(마 24:1-마 24:3, 병행절, 막 13:1-막 13:4; 눅 21:5-눅 21:7)들을 알게 된다. 이 산마루 근처 어딘가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마지막 주일(눅 21:37) 밤을 보냈다. 아마도 그들이 마지막 주일(눅 21:37) 밤을 보냈다. 아마도 그들이 마지막 만찬(막 14:26, 막 14:32) 후에 찾아갔던 겟세마네(기름짜는 기구 oil-press, 즉 감람원 olive-orchard이었던 것같다)라고 불리우는 장소였을 것이다. 이곳은 그들이 정규적으로 만나던 곳이었다(요 18:1-요 18:2). 겟세마네는 예수님께서 구속을 위해 자신이 고난을 당할 것을 마지막으로 결단한 현장이며, 동시에 그가 체포된 현장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일이 일어난 곳도 감람산이었다(눅 24:50-눅 24:51; 행 1:12). 슥 14:4을 인용하고 있는 행 1:11은 이곳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현장이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참조: R.T.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