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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바라는 것
ejlpiv"
소망 hope, 기대 expect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엘피스(Homer 이래)는 엘포(%34: 바라다, 기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대, 희망, 소망'을 의미한다.||(a) 일반헬라어에서 엘피스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망'(hope)이라는 단어와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흉사(두려움)나 길사(소망)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미래사에 대한 예상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좋은, 밝은, 기쁜'과 같은 형용사와 더불어 소망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다.||(b) 플라톤은 인간 존재는 단순히 현재를 수용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소망(희망)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 계획이다. 엘피스는 좋은 소망에 대해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에게 있어 소망은 절망 가운데 위로를 뜻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이 소망의 근거를 학문적 탐구에 두었던 현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만적이고 불확실한 것이 되기도 한다.||(c) 플라톤에게 있어서, 소망 안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향한 충동이다. 소망은 현재의 삶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비종교는 사후의 복된 삶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소망에 기초하며, 소망은 믿음과 진리 그리고 에로스와 더불어 진정한 삶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비종교들이 약속하는 신격화와 불멸은 인간의 허무한 몽상이었다.||(d) 세상적인 소망도 중요하다. 제우스는 소망을 주며, 아우구스투스는 옛 소망을 완성하며 새 소망에 불을 붙인 자로 찬양을 받는다. 그렇지만 스토아 학자들은 소망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예를들어 에픽테투스는 이 어군을 기대의 의미로만 사용하고 소망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인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멀리해 버린다(R.Baltmann).||#2. 70인역본의 용법||엘피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이상 나오며, 17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데, 주로 히브리어 바타흐 어군, 티크와를 번역한다. 엘피스는 70인역본에서 '소망, 신뢰, 안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엘피스는 신약성경에서 5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엘피스의 의미.|신약성경에서 엘피스(및 동족어)는 헛된 기대나 두려운 예상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항상 어떤 좋은 것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수많은 구절들에서 엘피스는 인간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소망이 지향하고 있는 구원의 객관적인 유익을 나타낸다(갈 5:5; 골 1:5; 딛 2:13). 이 동사나 명사가 수식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곳에서는 대개 종말론적 성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롬 8:24; 롬 12:12; 롬 15:13; 엡 2:12 등).|신약성경의 모든 증거들은 약속된 그리스도의 도래를 통해 구약성경의 소망이라는 특유한 표현으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구속자 안에서 세상의 구원의 날은 하나님의 위대한 "오늘"로 나타났다. 전에는 미래였던 것이 이제 구속자 안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가 되었으니 곧 의롭다 함이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그의 자녀라는 관계요, 성령님의 내재하심이요, 이스라엘과 열방의 신자들로 구성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된 것이다. 구원의 현존은 요한복음에서 실현된 종말론 가운데 가장 강하게 강조된다. 따라서 엘피스(elpis)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 때문에 신약의 소망은 내용과 근거에 있어서 모두 새 형태를 취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기다린다.||(b) 소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기독교인의 기본 요소를 형성한다(살전 1:3; 고전 13:13). 이 요소들 중 어떤 한 요소라도 다른 두 요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으면 믿음 자체도 공허하고 무익한 것일 뿐이다(참조: 고전 15:14, 고전 15:17).|이 때문에 이것은 산 소망이라는 중생으로 묘사될 수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엡 2:12에 의하면 이전에 우리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다. 물론 이방에도 형이상학적인 미래에 관한 사상이 있었으나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위와 해방을 주는 소망에 대한 사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것이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c) 소망의 본질적 특징은 세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① 소망의 내용-소망은 절대로 자기 중심적이 아니고 항상 그리스도와 하나님 중심적이다. 그 본질은 개인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의 통치로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가" 되시는 것이다(참조: 고전 15:28). 부활은 엔 사르키(en sarki: 육체 안에)나 또는 카타 사르카(kata sarka: 육체를 따라)로 생명을 되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통하여 엔 프뉴마티(en pneumati: 성령 안에서)와 카타 프뉴마(kata pneuma: 성령을 따라)로 받은 생명의 완성이다(참조: 롬 8장). 왜냐하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15:45). 엘피스의 범위에 있어서 그 내용은 구원(살전 5:8)의 (갈 5:5)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 참조: 고전 15:22이하), 영생(딛 1:2; 딛 3:7),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과 닮게 됨(참조: 요일 3:2이하), 하나님의 영광(롬 5:2; 골 1:27; 참조: 고후 3:12)으로 정의된다.|② 소망의 근거-이 소망은 선행(율법 Law)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으로 지정된다: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1:1),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그리스도께서는 소망의 사회에 있어서 외인이 아니다. 그는 신자들이 복음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사신 주님으로 인정하는 분이며, 그들이 그 분의 임재를 성령을 통해 알고 있는 분이다. 곧 그들의 소망은 "강림하신 그 분의 미래"에 있는 것이다(Kreck).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은사로 주심과 함께 우리가 기독교 사회로 전향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까지 주신다(참조: 롬 8:32).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참조: 고전 15:20이하). 이 도래하신 자는 높임을 받으신 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들을 그 분께 양도하셨고 또한 이 분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참조: 엡 1:22).|③ 은사로서의 소망의 본질-엘피스 아가데(좋은 소망)로서 소망은 믿음과 마찬가지로 성부의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살후 2:16).|따라서 소망은 우리가 부름을 받는 구원의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부르심에서 소망의 목표는 그 풍성함 가운데 밝혀진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8).|그리고 소망은 이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하나되게 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넘치는 소망을 받는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처음 익은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참조: 롬 8:23). 성령이 신자들 안에 거하심은 신자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다.(참조:롬 8:11).||(d) 기독교인들의 소망의 특성들.|① 소망은 항상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확실하며 확고한 기대이다. 소망은 재림의 최전면에 있는 그 긴박성과 심판들에 대해 못 본채 하지 않고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본다.|롬 4:18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람"으로 표현되었다. 즉 미래에 대해 인간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소망을 굳게 세웠다는 것이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교회는 고통 중에 있는 모든 크티시스(피조물)와 동일한 것을 느끼며 몸의 구속을 소망한다(롬 8:20 - 롬 8:23).|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들이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기독교인은 소망 가운데 영광을 돌린다. 곧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찬송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② 소망은 우리 구주되신 주님에 대한 인내와 훈련과 확신에 찬 기다림과 기대이다. 소망을 가진 자들은 위로를 받고 확신을 갖는다(살후 2:16). 롬 5:4; 살전 1:13; 히 6:11의 주요한 강조점은 끈기있는 인내이다. 반면에 빌 2:20; 히 3:6; 벧전 1:21에서 소망은 확고한 확신의 요소를 지닌다. 소망은 개인의 깨끗함의 동기가 된다(요일 3:3). 소망은 우리가 흔들림이 없이 소망에 대한 우리의 고백을 든든히 붙잡을 것과(히 10:23), 우리에게 우리의 소망에 대해 설명해주기를 요청하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대답할 준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벧전 3:15). 그러나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의 소망은 즐거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롬 12:12). 소망은 용기와 힘을 주며 마치 투구가 머리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속사람을 보호한다(살전 5:8). 닻을 내릴 때 배가 안전한 것과 같이 우리의 생활은 성소로 들어가신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묶어두는 소망에 의해서 안전하게 된다(히 6:18이하).||(e) 바울은 골 1:4, 골 1:5에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 살전 2:19에서 "우리의 소망", 고후 1:7에서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에 대해 언급한다. 이 모두 그리스도와 관련된 소망이다.|(참조: Walter Bauer; R.Baltmann; E.Hoffmann).
엘루마
!Eluvma"
엘루마 Elymas.||엘뤼마스는 일반적인 추측에 따르면 아랍어 엘리몬, 즉 '현명한'에서 유래했거나 보다 그럴듯한 델리취(Delitzsch)의 견해에 따르면 아람어 일리마(강한)에서 유래했을 것이다.|엘리마는 신약성경에서 행 13:8에 한번 나온다: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중에 만난 유대 마법사이며, 거짓 예언자로, 구브로의 로마 총독인 서기오 바울의 수행원이었다(행 13:6-행 13:12). 누가는 서기오 바울을 "지혜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서기오 바울은 바울과 바나바가 종교와 도덕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그 앞에 불러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자 했다. 사도 시대에는 많은 떠돌이 교사들과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몇몇은 큰 명성을 얻어 마침내는 큰 대학에서 가르치도록 요청 받기도 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엘리
ejloi?
엘리 Eloi.||엘로이는 히브리어 '엘리'보다 아람어 '엘로이'에 더 가깝다. 이 단어의 의미는 '나의 하나님'이다.|신약성경에서 막 15:34에만 2회 나온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마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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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myself.||인칭 재귀 대명사 에마우투는 에무($1700)와 아우토스($846)에서 유래했으며, '나 자신의'를 의미하며, 속격, 대격 단수로 사용된다.||에마우투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요한복음(16회), 바울서신(14회), 사도행전(6회), 마태복음(1회), 누가복음(1회)에서만 사용되었다.||(a) 에마우톤은 직접 목적어로서 동사의 뒤에 나온다(요 8:54; 요 14:21; 요 17:19; 행 20:24; 행 26:2; 행 26:9; 롬 11:4; 고후 2:1; 고후 11:7)나 앞에(눅 7:7; 고전 4:3; 고전 4:4; 고전 9:19; 고후 11:9; 갈 2:18; 빌 3:13).||(b) 오직 요한복음서에만 다음과 같은 전치사구가 나타난다.|① 아포 에마우투, '스스로' of myself(요 5:30; 요 7:17; 요 7:28; 요 8:28; 요 8:42; 요 10:18['자발적으로', 자진하여']; 요 14:10).|② 엑스 에마우투, '내 독단으로, 내 마음대로'(요 12:49).|③ 여기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진술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요 5:30; 요 7:28; 요 8:28; 요 8:42; 요 12:49; 요 14:10). "내가 스스로 ...아니로라"는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본성과 특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하신다(J. Blank).||(c) 그 밖의 전치사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에이스 에마우톤(고전 4:6; to myself, '나 자신에게'), 페리 에마우투 '나 자신에 대하여'(요 5:31; 요 8:14; 요 8:18; 행 24:10[타 페리 에마우투], 프로스 에마우톤 '나에게'(요 12:32; 요 14:3; 몬 1:13['나와 함께', 한글개역, "내게"]), 휘프 에마우톤, '내 권위 아래'(마 8:9; 병행구 눅 7:8), 휘페르 에마우투(고후 12:5, 페리 에마우투 대신 쓰임; BDF §231. 1).||(d) 에마우투는 명사와 함께 소유의 속격으로 나온다: 고전 10:33의 '메 제톤 토 에마우투 쉼포론'("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에서 "나의" 즉 " 나 자신의"는 "많은 사람의"(토 톤 폴론)와 대조된다.||(e) 고전 7:7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나(I myself) 같기를", 즉 결혼하지 않은 채로 살기를 원한다(아가모스, 8절). 여기서 이 재귀 대명사가 나오는 이유는 언급되는 것이 주절(main clause)의 주어이기 때문이다(델로). 이 재귀 대명사는 판타스에 견인되어 대격이다.|(참조: G. Schneider).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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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다, 들어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바이노(Homer 이래)는 엔($1722)와 바이노(%227)에서 유래했으며, '계속 걷다, 들어가다, 올라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바이노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배에) 올라가거나, (배에) 올라 타는 것'을 나타낸다. 마 8:23; 마 9:1; 막 4:1; 막 8:10; 눅 5:3; 눅 8:22; 요 5:4; 요 6:17; 요 6:22; 요 6:24등.|(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엠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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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 넣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발로(Homer 이래)는 엔($1722: 던지다)과 발로($906)에서 유래했으며,||(a) '던져 넣다',|(b) '보내다'(어떤 곳으로),|(c) '기초를 놓다',|(d) '복종시키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발로는 신약성경에서 눅 12:5에 한번 나오며, 하나님에 대해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가 있는 자로 묘사한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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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담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밥토(Aristoph., X. 이래)는 엔($1722)과 밥토($911: 담그다)에서 유래했으며, '~안에 담그다' to dip in, 중간태로, '자신을 위해 잠그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밥토는 신약성경에서 3회 마 26:23; 병행구 막 14:2에 사용되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요 13:26에서도 나타난다.|탁상 위에 여러 개의 작은 접시들이 놓여 있고, 그 중에 동일한 작은 접시에 예수님과 유다가 동시에 손을 넣는 것은 배신자의 특별한 표식이었다(마 26:2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엠바튜오
ejmbateuvw
들어가다 enter int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바튜오는 엠바테스(%393: 들어가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a) '들어가다'(Eur., Aesch., Soph.), '유업으로 들어가다(유업을 물려 받는 것)'(Pap.), 신들이 '거룩한 장소에 오다'(Soph., Eur.), 귀신이 '사람 안에 거하다'(Dio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b) 분명히 엠바튜에인(분사)는 성소에 들어가서의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참된 신비에 대한 전문 용어이다. "본 것을 의지하는 것"(하 에오라켄 엠바튜온)은 입교시에 그가 본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들'(visions), 즉 입교자가 처음에 환상으로 거룩한 곳들을 보고 그 다음에 실제로 거기로 들어가는 것이다.||(c) '시험하기 위해 접근하다', 즉 '조사하다'를 의미한다(Philo).||#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엠바튜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할(5157: 상속하다, 차지하다, 소유로 하다), 할라크(2505: 나누다, 할당하다, 분배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기업을 나누는 것'을 나타낸다. 외경 마카베오서에서는 군사적인 침략이나 점령에 대해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일서 12:25; 13:20; 14:31; 15:4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바튜오는 신약성경에서 골 2:18에 한번 나온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여기서 엠바튜오는 (b)의 의미일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도취적 환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탐구한다. 이런 거짓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환상에서 보는 것을 고통스럽게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도취와 금욕으로 성취하려는 것은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참조: 골 2:1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Preisker).
오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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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올려 놓다, ~안으로 오르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비바조(Thu. 이래)는 엔($1722)과 비바조(%384: 오르다)에서 유래했으며, '안에(위에) 놓다, 올려 놓다, ~ 안으로 오르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비바조는 신약성경에서 행 27:6에 한번 배에 '오르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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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를 주목하다, 깊이 생각하다.||#1.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블레포(Soph. 이래)는 엔($1722: 안에, 위에)와 블레포($991: 보다)에서 유래했으며, '보다, 바라보다, 주목하다, 깊이 생각하다(숙고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엠블레포는 70인역본에서 약 25회 나오며, 어떤 것을 '보는 것'(삿 16:27; 사 5:30; 사 8:22; 대하 20:24), '생각하는 것'(사 5:12; 사 51:1이하; 집회서 2:10; 집회서 36:15; 마카베오이서 12:45).||#3. 신약성경의 용법||엠블레포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엠블레포는 일반적으로 흥미나 관심 혹은 사랑을 가지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막 10:21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젊은이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 19:26에서 이 주제를 놓고 제자들과 토론할 때, 예수님은 그들을 보았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병행구, 막 10:27).|눅 20:17에서 예수님께서 포도원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청중들을 똑바로 보셨다.|눅 22:61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그를 만나는 것에 관한 통렬한 기록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똑바로 보셨다"(눅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막 8:25에서 엠블레포는 예전에 소경이었던 자가 예수님에 의한 두 번의 안수를 받고 치유된 후 세상을 분명히 보는 것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행 22:11에 의하면 다소 사람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광채로 인하여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행 1:11에서 하늘로 바라보거나 주목하는 것을 나타낸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b) 요 1:36에서 요한이 예수님을 본 것("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과 요 1:42에서 예수님이 요한을 본 것("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 어떤 특별한 통찰력 혹은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c) 마 6:26에서 엠블레포는 비유적으로, '깊이 생각하다, 숙고하다, 혹은 ∼을 유의하다'를 의미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참조: Walter Bauer; W.L.Liefeld).
엄히 경계하다
ejmbrimavomai
매우 분노하다, 엄히 경고하여 명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브리마오마이(Aeschyl 이래)는 엔($1722)과 브리마오마이(%385: 화가 나서 씨근거리다)에서 유래했으며,||(a) '노하여 흥분하다, 매우 분노하다',|(b) '엄히 훈계(경고) 하다, 엄히 경고하여 명령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브리마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9:30에서 눈 뜬 소경에 대해 '엄히 경고하여 명령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아마도 어떤 기회가 바리새인들에게 주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참조: 9:34).|막 1:43에서 고침 받은 문둥병자에 대해 '엄히 경고하여 명령하셨다':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b) 막 14:5에서 '심히 책망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매우 노하여 책망한 것이다.||(c) 요 11:33; 요 11:38에서 마음의 '격앙'을 나타낸다: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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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를'||에메는 메($3165)의 연장형이며, 신약성경에서 88회 사용되었다.
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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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내다, 토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메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구토하다, 토해내다, 토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메오는 신약성경에서 계 3:16에 한번 나온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는 직역하면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려고 한다'이다. 이것은 극도로 혐오하여 거부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미지근한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부인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A. Bengel)
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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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심히 발광하다, 격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마이노마이(Jos., Ant. 17, 174)는 엔($1722)과 마이노마이($3105: 발광하다, 격노하다, 광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대해 심히 발광(광포)하다, ~에 대해 격노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마이노마이는 신약성경에서 행 26:11에 한번 나온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기독교도에 대해 심히 강포하고 격노하여 박해했다. 롬 26:25에서 바울은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 그가 미쳐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에 대하여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바른 정신을 차렸을 때에 베스도는 그를 미치광이로 보았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A. Bengel)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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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Emmanuel.||#1. 구약성경.||엠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사 7:14과 사 8:8에 나오는데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시다)"라는 뜻이다. 이사야와 아하스 왕 시대와 관련하여 그 이름은 지금 시리아와 사마리아로부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는 위기가 "이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없어진다는 약속과 더불어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이 아이와 이 이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사이에서 자비롭고 구원을 위해 임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표징이다. 그 이름은 최소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최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 이름은 특별한 아이의 출생과 명명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일반적인 언명일 수도 있고, 혹은 이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이 아이에게서 밝혀진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신의 이름일 수도 있다. 똑같은 아이로 여겨도 좋을 사 9:6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 이 후자의 해석을 정당화해 준다. 이 아이는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이시다(TDN).||#2. 신약성경의 용법.||임마누엘은 신약성경에서 마 1:23에 한번 나온다. 마태는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탄생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고 요셉에게 약속한 천사의 약속을 사 7:14의 성취로 본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주되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tofford wright; C.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