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것
ejlpiv"
소망 hope, 기대 expect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엘피스(Homer 이래)는 엘포(%34: 바라다, 기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대, 희망, 소망'을 의미한다.||(a) 일반헬라어에서 엘피스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망'(hope)이라는 단어와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흉사(두려움)나 길사(소망)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미래사에 대한 예상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좋은, 밝은, 기쁜'과 같은 형용사와 더불어 소망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다.||(b) 플라톤은 인간 존재는 단순히 현재를 수용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소망(희망)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 계획이다. 엘피스는 좋은 소망에 대해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에게 있어 소망은 절망 가운데 위로를 뜻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이 소망의 근거를 학문적 탐구에 두었던 현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만적이고 불확실한 것이 되기도 한다.||(c) 플라톤에게 있어서, 소망 안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향한 충동이다. 소망은 현재의 삶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비종교는 사후의 복된 삶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소망에 기초하며, 소망은 믿음과 진리 그리고 에로스와 더불어 진정한 삶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비종교들이 약속하는 신격화와 불멸은 인간의 허무한 몽상이었다.||(d) 세상적인 소망도 중요하다. 제우스는 소망을 주며, 아우구스투스는 옛 소망을 완성하며 새 소망에 불을 붙인 자로 찬양을 받는다. 그렇지만 스토아 학자들은 소망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예를들어 에픽테투스는 이 어군을 기대의 의미로만 사용하고 소망은 미래에 대한 주관적인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멀리해 버린다(R.Baltmann).||#2. 70인역본의 용법||엘피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이상 나오며, 17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데, 주로 히브리어 바타흐 어군, 티크와를 번역한다. 엘피스는 70인역본에서 '소망, 신뢰, 안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엘피스는 신약성경에서 5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엘피스의 의미.|신약성경에서 엘피스(및 동족어)는 헛된 기대나 두려운 예상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항상 어떤 좋은 것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수많은 구절들에서 엘피스는 인간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소망이 지향하고 있는 구원의 객관적인 유익을 나타낸다(갈 5:5; 골 1:5; 딛 2:13). 이 동사나 명사가 수식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곳에서는 대개 종말론적 성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롬 8:24; 롬 12:12; 롬 15:13; 엡 2:12 등).|신약성경의 모든 증거들은 약속된 그리스도의 도래를 통해 구약성경의 소망이라는 특유한 표현으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구속자 안에서 세상의 구원의 날은 하나님의 위대한 "오늘"로 나타났다. 전에는 미래였던 것이 이제 구속자 안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가 되었으니 곧 의롭다 함이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그의 자녀라는 관계요, 성령님의 내재하심이요, 이스라엘과 열방의 신자들로 구성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된 것이다. 구원의 현존은 요한복음에서 실현된 종말론 가운데 가장 강하게 강조된다. 따라서 엘피스(elpis)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 때문에 신약의 소망은 내용과 근거에 있어서 모두 새 형태를 취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기다린다.||(b) 소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기독교인의 기본 요소를 형성한다(살전 1:3; 고전 13:13). 이 요소들 중 어떤 한 요소라도 다른 두 요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으면 믿음 자체도 공허하고 무익한 것일 뿐이다(참조: 고전 15:14, 고전 15:17).|이 때문에 이것은 산 소망이라는 중생으로 묘사될 수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엡 2:12에 의하면 이전에 우리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다. 물론 이방에도 형이상학적인 미래에 관한 사상이 있었으나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위와 해방을 주는 소망에 대한 사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것이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c) 소망의 본질적 특징은 세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① 소망의 내용-소망은 절대로 자기 중심적이 아니고 항상 그리스도와 하나님 중심적이다. 그 본질은 개인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의 통치로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가" 되시는 것이다(참조: 고전 15:28). 부활은 엔 사르키(en sarki: 육체 안에)나 또는 카타 사르카(kata sarka: 육체를 따라)로 생명을 되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통하여 엔 프뉴마티(en pneumati: 성령 안에서)와 카타 프뉴마(kata pneuma: 성령을 따라)로 받은 생명의 완성이다(참조: 롬 8장). 왜냐하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15:45). 엘피스의 범위에 있어서 그 내용은 구원(살전 5:8)의 (갈 5:5)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 참조: 고전 15:22이하), 영생(딛 1:2; 딛 3:7),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과 닮게 됨(참조: 요일 3:2이하), 하나님의 영광(롬 5:2; 골 1:27; 참조: 고후 3:12)으로 정의된다.|② 소망의 근거-이 소망은 선행(율법 Law)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으로 지정된다: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1:1),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그리스도께서는 소망의 사회에 있어서 외인이 아니다. 그는 신자들이 복음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사신 주님으로 인정하는 분이며, 그들이 그 분의 임재를 성령을 통해 알고 있는 분이다. 곧 그들의 소망은 "강림하신 그 분의 미래"에 있는 것이다(Kreck).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은사로 주심과 함께 우리가 기독교 사회로 전향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까지 주신다(참조: 롬 8:32).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참조: 고전 15:20이하). 이 도래하신 자는 높임을 받으신 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들을 그 분께 양도하셨고 또한 이 분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참조: 엡 1:22).|③ 은사로서의 소망의 본질-엘피스 아가데(좋은 소망)로서 소망은 믿음과 마찬가지로 성부의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살후 2:16).|따라서 소망은 우리가 부름을 받는 구원의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부르심에서 소망의 목표는 그 풍성함 가운데 밝혀진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8).|그리고 소망은 이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하나되게 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넘치는 소망을 받는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처음 익은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참조: 롬 8:23). 성령이 신자들 안에 거하심은 신자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다.(참조:롬 8:11).||(d) 기독교인들의 소망의 특성들.|① 소망은 항상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확실하며 확고한 기대이다. 소망은 재림의 최전면에 있는 그 긴박성과 심판들에 대해 못 본채 하지 않고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본다.|롬 4:18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람"으로 표현되었다. 즉 미래에 대해 인간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소망을 굳게 세웠다는 것이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교회는 고통 중에 있는 모든 크티시스(피조물)와 동일한 것을 느끼며 몸의 구속을 소망한다(롬 8:20 - 롬 8:23).|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들이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기독교인은 소망 가운데 영광을 돌린다. 곧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찬송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② 소망은 우리 구주되신 주님에 대한 인내와 훈련과 확신에 찬 기다림과 기대이다. 소망을 가진 자들은 위로를 받고 확신을 갖는다(살후 2:16). 롬 5:4; 살전 1:13; 히 6:11의 주요한 강조점은 끈기있는 인내이다. 반면에 빌 2:20; 히 3:6; 벧전 1:21에서 소망은 확고한 확신의 요소를 지닌다. 소망은 개인의 깨끗함의 동기가 된다(요일 3:3). 소망은 우리가 흔들림이 없이 소망에 대한 우리의 고백을 든든히 붙잡을 것과(히 10:23), 우리에게 우리의 소망에 대해 설명해주기를 요청하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대답할 준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벧전 3:15). 그러나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의 소망은 즐거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롬 12:12). 소망은 용기와 힘을 주며 마치 투구가 머리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속사람을 보호한다(살전 5:8). 닻을 내릴 때 배가 안전한 것과 같이 우리의 생활은 성소로 들어가신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묶어두는 소망에 의해서 안전하게 된다(히 6:18이하).||(e) 바울은 골 1:4, 골 1:5에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 살전 2:19에서 "우리의 소망", 고후 1:7에서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에 대해 언급한다. 이 모두 그리스도와 관련된 소망이다.|(참조: Walter Bauer; R.Baltmann; E.Hoff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