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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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다, 조롱하다, 속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엠파이조(Hdt, Soph., Eur.)는 엔($1722)과 파이조($3815: 아이처럼 놀다)에서 유래했으며,||(a) '~에서 놀다, ~를 가지고 놀다, 이리저리 춤추다',|(b) 그 다음에 '조롱하다, 비웃다, 놀리다',|(c) '속이다, 사취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경시, 비웃음, 조롱들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 중의 하나이다. 한편, 비웃음을 정당화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오만, 반감, 적대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엠파이조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조롱하다, 속이다'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엠파이조는 신약성경에서 공관복음서에서만 13회 나온다.||(a) 엠파이조는 마 2:16에서 '속이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현인들은 헤롯을 한 수 앞지른다. 따라서 헤롯은 '속은' 줄 알았다.||(b) 눅 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여기서 사람들이 비웃음은 앞일을 예측하지 않고 행동한 건축가를 향한 것이다. 신중치 못한 건축자는 연약함 때문이든, 성급함 때문이든, 오만함이나 단순한 무자격 때문이든 그가 시작한 것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웃음을 사게 된다.||(c) "삼일" 수난 예언에서 엠파이조는 조롱이라는 기본틀 내에서 단순한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4; 병행구 마 20:19; 눅 18:32). '침뱉는 것'이 포함되어 그 인상을 강화시킨다. 마가와 누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의 조롱에 관한 낱낱의 행위들을 선언하신다. 한편 마태는 엠파이조를 낱낱의 채찍질과 십자가에 못박힘을 수반하는 '조롱의 사건' 전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다.||(d) 수난 기사 자체에서 막 15:20(병행구 마 27:31)는 예수님에 대한 군병들의 '장난스런 행태'를 강조하기 위해 엠파이조를 사용한다: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저들은 예수님에게 즉석에서 만든 왕의 표를 제공하고 왕이라고 희롱하며 절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그에게 침을 뱉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롱하는 경배를 하였다. 이 낱낱의 행위들은 모두 '비웃음'이라는 한 개의 단어로 묶어지는 것이다.||(e) 누가는 엠파이조를, 유대인(눅 22:63-눅 22:65)과 헤롯(눅 23:11) 앞에서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이 받으신 조롱에 관한 기록에서 이 포괄적인 역할로 사용되었다.|① 눅 22:63-눅 22:65,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② 눅 23:11,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화려한 복장은 예수님의 '왕권의 주장'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희롱의 옷으로 헤롯은 이 사람은 위험스럽다기 보다는 차라리 웃음거리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었다"(Blinzle 290).||(f)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조롱하는 인용 구절에서 마가와 마태는 엠파이조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소의 행위를 묘사한다.|① 막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② 마 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자라고 비웃었으나, 이제는 두 악당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거짓 왕이 되었다고 비웃는다. 여기서 유대교의 수난의 경건에서처럼 의인들에게 대한 폭력은 비웃음으로 나타난다. 폭력은 계시의 수단에 반대하는 죄악된 오만함이며 잔인한 모욕의 형태로 표현된다.|③ 누가는 또 다른 70인역본의 단어 에크뮉테리조($1592)로 대체하는데, 눅 23:35(시 21:8, 70인역본)과 유사한 시편 구절로부터 이 단어를 취하였다. 에크뮉테리조($1592)는 '비웃는 자들의 내적인 태도'를 한층 더 표현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G. Bertram, TDNT Ⅳ, 799). 눅 23:36에서 엠파이조는 군병들의 행동을 묘사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가지고 장난치는 유희를 하였다. 이 '황제놀이'(참조: Miller)는 그들 주변에 있는 자들이 범죄자들을 조롱하는 원배경을 조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험은 명백히 방어할 수 없는 자에게 공공연한 조소를 가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 동기는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구약성경의 "의인"(과 유대인 순교자들)에 비추어 더 깊이 있게 고찰함에서 얻게 되었다.|(참조: F. G. Untergassmair; G. Bert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