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게 되는
e[noco"
죄가 있는, ~에 복종하는, ~할 책임있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노코스는 에네코($1758)에서 유래했으며,||(a) '굳게(단단히) 잡은' held fast, '죄가 있는' quilty, '~에 복종하는, 종속된' subject to, '~할 책임있는, 면할 수 없는' liable to, '어떤 것이나 형벌을 받을 만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에노코스는 70인역본에서 1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담(1818: 피), 담 베노쉬(피가 머리로 돌아가는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에노코스는 70인역본에서 주로 피흘리는 죄를 범한 행동 때문에 사형(죽음) 선고를 받은 사람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창 26:11에서 사라를 범하는 자에 대한 형벌로서 '죽음'을 나타내며, 출 22:2에서 강도에 대해 피흘린 죄 있는 것을 나타내며, 레 20:9-27에서 남색, 근친상간, 동성애, 점 등의 경우에,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 35:27에서 피의 복수에 대해, 신 19:10에서 '살인죄'에 대해, 수 2:19에서, 정탐군들이 라합 앞에서 취한 피의 서약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사야 54:17에서 에노코스는 이스라엘과 법적인 쟁론을 함으로써 죄를 범한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노코스는 고전 헬라어 용법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온다.||(a) 히 2:15에서 에노코스는 종살이(종이 신세)로 '잡혀 있는' 것을 나타낸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 구절은 에노코스가 법적 의미를 함축하지도 않고 비유적 의미도 지니지 않고 나타나는 유일한 곳이며, 문맥상 분명히 부정적 의미로 종살이에 '잡혀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 종살이는 사망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다. 사망의 주인은 마귀인데, 예수님께서 이 사망의 세력을 깨뜨리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인간과 같이 되셔서 고난을 당하셨고 사망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탄과 사망의 세력이 종국적으로 패패했으며, 인류가 구속되었다.||(b) 에노코스는 막 14:64(병행구 마 26:26)에서 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여기 최고 법정의 신문에서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로 기소된다(이에 어울리는 옷을 찢는 제스츄어). 레 24:10-16; 민 15:30 이하에 따르면 신성모독죄는 사형에 처해진다. 법정의 위원들은 예수님이 마땅히 죽을만하다는 법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만, 산헤드린의 결정은 유죄의 결정으로만 받아들여야지 집행의 선고로 이해해서는 안된다(참조: 민 15:1). 형사 소송 절차에서 형을 선고하는 권한이 유대인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집행의 선고는 빌라도에게 달려 있었다. 이야기가 마가의 기사 세계에서 마태가 묘사하는 세계로 이동할 때 마가의 본문과 비교하여 마태의 본문에서 더 강한 양식화(stylization)가 나타난다. 마가는 아마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한 기사적 보고를 제공한다.||(c) 에노코스에 여격이 뒤따르는 경우는 마 5:21 이하에만 나타난다.|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여기서 여격은 적절한 심판 법정을 가리킨다. 확실히 믿을만한 이 대조법에서(마 5:21a; 마 5:22a) 예수님은 철저하게 무제한적인 이웃 사랑의 윤리를 제시한다.|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무자비한 행동에 대한 최후 심판정이 된다.|크리시스는 지방 법정을 의미하며, 그 과정은 지방 법정(크리시스)에서 최고 법정(쉬네드리온)에 이르고, 그 다음에 지옥(게헨나)에 이르며, 여격으로 언급된다. 범죄의 정도가 약한지 큰지는 법정의 성격과, 그에 수반되는 형벌의 가혹성에 반영되어 있다(참조: A. Schlatter; D. Hill).|범죄에 대한 이 진술에서 일관성 없는 클라이막스와 법정 소송 절차는, "미련한 놈"(fool)을 불신앙자들을 경멸하여 지칭하는 말로 이해할 때 분명해진다(참조: 시 14:1; 시 94:8 등). 요지는 인간 관계를 해치는 자는 인간의 심판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지럽히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d) 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여기서 떡과 포도주를 합당치 않게 취하는 자는 그 안에 임재해 있는 주님의 살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말씀으로 끝난다. 주님은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셨다; 반대적인 행동 곧 자기 이웃에 대해 사랑이 없는 행위(참조: 마 5:21 이하)는 결국 죄가 된다. 여기에서도 에노코스란 말은 생사 문제에 대해 사용된다.||(e) 막 3:29에서도 에노코스는 형벌을 뜻하는 속격과 함께 사용되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이 논박할 여지가 없는 예수님의 말씀은 막 14:64을 배경으로 할 때 올바른 관점에서 이해된다. (인간에 대한) 모든 잘못과 심지어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독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다. 오직 성령을 거스르는 모독은 사함받을 수 없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려 하는 구체적 형태의 준비로 주어지는 것이다)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파멸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모든 메시지의 으뜸인 예수님의 선포와 일치한다. 심판은 확실히 무시되지 않고 내려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결정의 자유는 문제가 되지 않은 채로 있기 때문이다.||(f)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본문은 내용상 5:17-마 5:19과 부합한다. 고전 11:27에서 이 단어의 법적 용법은 신학적, 상징적 개념의 수준에 이른다. 여기서 율법 위반자에 대해 에노코스를 사용한다. 비록 모든 개개의 죄가 대수롭게 않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죄들은 그 일을 행한 사람을 전적으로 유죄케하므로 '심판'(judgment)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참조:R. Kratz; F. Thiele;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