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ejpiqumiva
충동, 욕망, 갈망.||#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Hdt. 이래)는 에피뒤메오($1937)에서 유래했으며, '충동, 욕망, 갈망'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처음에 문학에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속에 윤리적으로 나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세가지 격정 곧 두려움, 쾌락, 슬픔과 마찬가지로 에피뒤미아도 재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이생의 악에서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주로 타아와 하마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a) 도덕적으로 평범한 욕망(예: 신 12:20 이하, 네가 원하는 만큼),||(b) 칭찬할만한 욕망(예: 창 31:30, 인간의 아버지 집에 대한 사모),||(c)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욕망(민 11:4; 민 11:34; 신 9:22 등)을 나타낸다.|만일 열번째 계명(출 20:17)이 이런 욕망을 금지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단순히 행위의 순종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말, 생각, 모습, 노력 그리고 소망 가운데서의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전체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요구하신다(신 6: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는 신약성경에서 3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디미아가 중립적이거나 좋은 의미로 나오는 경우는 눅 22:15; 빌 1:23; 살전 2:17; 계 18:14 뿐이며, 다른 곳에서는 나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에피뒤미아가 '나쁜 욕망'(evil desire), 혹은 '정욕'(lust)이라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곳에서 신학적으로 더욱 중요하다.||(b) 공관복음에서 에피뒤미아는 나쁜 의미로 나타난다.|① 마 5:28에서 성적 욕망과 정욕에 대해 언급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② 막 4:19에서 이 단어는 부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여러가지 재산들과 가치들에 대한 욕망에 대해 사용되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이 두 구절들에서 예수님이 에피뒤미아를 상당히 파괴적인 죄로 여기셨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말씀을 결실치 못하게 만든다(막 4:19, 여기에서 이것은 저지를 당하지 않으면 언제나 뻗어 나가려고하고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에 비유된다). 이것은 결혼을 파괴시킨다(마 5:28).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은 욕망이 "오직" 마음의 생각과 원망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지, 행위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욕망을 결코 가볍게 보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악한 욕망은 악한 행실과 같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악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c) 바울은 에피뒤미아를 인간을 지배하는 죄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육체", 곧 하나님을 떠난 죄에 가득찬 존재 속에 있는 휘몰아치는 힘으로 본다.|① 갈 5:16에 따르면 에피뒤미아는 육체의 욕심을 추구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행동하도록 인간을 충동질한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보면, 이것은 자기 생의 중심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자신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인간 속에 깊이 뿌리내린 성향을 나타낸다. 욕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성령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욕망을 이겨낼 능력을 지닌다(롬 8:9 이하). 왜냐하면 성령이 욕망 대신에 그의 삶을 결정하는 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엡 4:23).|② 엡 2:3에서 바울은 육체와 정욕을 지닌 이러한 경향을,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몰아내는 능력들과 같다고 본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③ 엡 4:22에서 "옛 사람"의 능력은 에피뒤미아로 나타내어진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d) 바울 서신에서 욕망은 모든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즉 성적 욕망, 물질적인 향유,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내는 것(롬 1:24; 딤전 6:9; 딛 3:3; 갈 5:16-21) 등이다. 이 욕망들은 사람의 주의를 방향 지음으로써 인간을 완전히 욕망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욕망의 충동에 내어맡긴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죄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롬 6:12에 나타나 있는데, 이 인식은 자주 바울의 문서들에서 상기된다(엡 2:3; 딤후 3:6; 딛 3:3). 이 욕망들이 한 인간을 좌우하고 그를 사로잡는다. 그가 이 욕망의 매력과 유혹의 노예가 되는 반면(엡 4:22), 그의 "마음" 곧 그의 전 인격의 중심(롬 1:24)은 이 욕망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의지의 모든 결정, 그리고 심지어 가장 좋고 가장 숭고한 인간의 감정과 능력들까지도 이 욕망에 의해 좌우된다. 하나님의 뜻과 규정에로 향하고 하나님께 종속되고 그에 의해 결정되는 삶만이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제시해 준다(롬 6:12 이하; 엡 4:22 이하; 딛 2:12 이하).||(e)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바울은 인간의 욕망 속에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면이 있으므로 율법이 욕망에 대해 말할 때, 이 욕망 그 자체가 실제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욕망은 인식적인 죄가 되어(롬 7:7 이하) 극악무도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린다. 내가 율법을 알기 전에는 욕망이 본능적인 것이었지, 아직 의식적으로 바라는 의지는 아니었다.||(f) 요한의 기록들에서 욕망의 근원은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욕망은 단순히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궁극적으로는 악마에게서 나온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여기에서 세상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적대 영역을 의미하며, 인간은 이 영역 속에서 "이 세상의 왕"이 지니고 있는 권세를 인식한다. 이 세상의 왕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요일 2:16), 곧 감각 및 그것들의 본성 안에 있는 관능에 호소하는 외적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그것으로 우리의 "사랑"을 얻고자 한다. 그는 인간 안에 잠재해 있는 증오의 생각들과 거짓말하려는 인간의 경향들을 일깨운다. 왜냐하면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이다(요 8:44).||(g)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욕망이 "이 세상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이 욕망도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무상한 것이다. 욕망에 의존하여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욕망에 의해 결정되도록 허용하는 사람은 그 욕망과 더불어 "멸망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할" 것이다.||(h) 공동서신에서 에피뒤미아의 용법은 중립적이거나 바울 및 요한 문서에서와 같은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육체"와 육체의 정욕을 의미한다(벧전 2:11; 벧후 2:10). 이것은 정욕과 연락과 술취함과 방탕(벧전 4:3)과 허탄(벧후 2:18) 안에 있는 다른 여러가지 감각의 욕망들과 관련된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의 지배를 받도록 하기위해 인간을 유인하고 부추기고 유혹하는 하나의 능력이다(약 1:14; 벧전 1:14; 벧후 2:18). 이것은 인간에게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야비하게 인간을 예속시킨다. 이것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때가 되면 인간은 자기 뜻을 그 욕망에 굴복시켜 그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된다(약 1:14). 그런 일이 생겨나게 되면, 이 욕망은 죄에 가득찬 행동을 "유발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만든다(약 1:15). 그리하여 마침내 "사망"(롬 7:5)과 "썩어짐"(벧후 1:4)에 이르게 한다.|에피뒤미아가 인간의 본성과 이처럼 결부되어 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그가 언제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벧전 4:2) 삶을 산다면, 그는 이 욕망을 이길 수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