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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사모함
ejpipovqhsi"
동경, 사모, 열망.||#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포데시스(Appian, Gall.)는 에피포데오($1971: 간절히 바라다, 사모하다, 욕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사모, 동경, 열망, 갈망'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포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고린도후서에만 나온다.||(a) 고후 7:7에서 '사모'나 '열망'을 의미한다: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우리는 여기서 이 열망의 대상을 추측해야 한다. 아마도 바울을 다시 보기를 열망한 것이다. 그들은 사도와 한번 더 함께 가지는 좋은 교제를 열망한 것이다(참조: A. Plummer).||(b) 고후 7:11에서 사도 바울의 은총과 재방문을 사모하고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의 개선과 증진을 열망한 것이다(참조: A. Plumm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사모하는
ejpipovqhto"
사모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포데토스(Appian, Iber. 43)는 에피포데오($1971: 간절히 바라다, 사모하다, 욕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대단히 바라는, 사모하는, 열망(갈망)하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포데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4:1에 한번 나오며 '사모하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jpipoqiva
열망, 갈망, 사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포디아(Suidas)는 에피포데오($1971: 간절히 바라다, 사모하다, 욕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열망, 갈망, 동경, 사모'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포디아는 신약성경에서 롬 15:23에 한번 나오며, '열망'을 의미한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포류오마이
ejpiporeuvomai
~으로 나오다, 여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포류오마이(Ephorus Cumanus)는 에피($1909)와 포류오($4198: 가다)에서 유래했으며, '~로 나오다(나가다), 여행하다'를 의미한다. Polyb에 의하면 단순히 장소의 대격과만 자주 사용되었으며, 두 가지 의미, 하나는 지역, 도시 등'으로 가다', 지역, 도시 등을 '통과하다', 또 하나는 적대적인 '침략을 하다, 침략하다, 진격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포류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레 26:33에서 아하르(뒷부분)의 역어로 '뒤따르다'를 나타내며, 겔 39:14에서 아바르(지나가다, 가로지르다)의 역어로 그 땅에 '순행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포류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눅 8:4에 한번 나온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랍토
ejpiravptw
~에 꿰메다, 꿰메어 붙이다.||동사 에피랍토는 에피($1909)와 랍토(%573: 바느질하다, 꿰메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꿰메다, 꿰메어 붙이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막 2:21에 한번 나온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걸쳐놓다
ejpirivptw
~에 던지다, 맡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립토(Homer 이래; PTebt.)는 에피($1909)와 립토($4496: 던지다, 내던지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내)던지다, 던져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립토는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샬라크([내]던지다, 집어던지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12회).||#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립토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립토는 문자적 의미로, 눅 19:35에서 나귀 위에 옷을 던지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b) 에피립토는 비유적 의미로, 벧전 5:7에서 하나님께 염려를 맡겨버리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내던지다'라는 의미에서 '넘겨주다, 맡기다'는 의미로 발전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유명한
ejpivshmo"
주목할만한, 유명한, 악명 높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세모스(trag., Hdt. 이래)는 에피($1909)와 세마(표시 sign)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a) 본래의 의미로 '~에 표시가 있는, 인이 찍힌, 새겨진'(Hdt., Thu., X., Polyb.)||(b) 비유적 의미로, '주목할만한, 주의를 끄는, 유명한', 좋은 의미로는 '저명한, 유명한'(Hdt.), 나쁜 의미로는 '소문난, 유명한, 악명 높은'(Eur., Plu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비유적 의미로 나온다.||(a) 롬 16:7에서 에피세모스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을 나타낸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b) 마 27:16에서 에피세모스는 나쁜 의미로 '유명한' 즉 '악명 높은'을 나타낸다: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시티스모스
ejpisitismov"
양식 공급, 식량, 음식.||#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시티스모스(X., Polyb., Herodian)는 에피시티조마이(%574: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양식(마초) 공급(Xen., Plut.),|(b) '식량, 양식, 음식'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시티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9:12에 한번 '식량이나 음식'을 의미한다: "날이 저물어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방문하다
ejpiskevptomai
돌보다, 택하다, 방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에피스켑토마이는 에피($1909:…위에)와 스코페오($4648:주시하다, 관찰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일반 헬라어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관찰하다, 주의하여 보다, 지켜보다'를 의미하며, '시찰하다, 감시하다, 감독이나 관리하다, 돌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들의 행위로서 이 단어는 '은혜스럽게 하감하다, …돌보다,…지키다, 보호하다' 를 의미한다.||(b) (어떤 것을) '심사숙고하다, 검사하다, 시험하다, 조사하다'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문서나 덕목을 찾거나 조사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c) '방문하다'(visit)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친구나 의사가 병자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 역본의 용법||(a) 70인 역본에서, 에피스코페오는 대부분 히브리어 파카드 어근의 변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종종 이 단어는 바카르(자세히 조사하다)의 역어로 나타난다. 에피스코페오는 여러가지 히브리 단어들에 대해 단지 5회 사용되었다. 에피스겝토마이는 약 150회 나오는데, 그중에 48 번은 민수기에 나오며 특히 민 1-4장에서 지파들과 가족들을 계수함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찾다(look for), 조사하다'(삼상 14:l7), '방문하다'( visit; 삿 l5:1), '조사하다, 점검하다' inspect(민 1:44; 한글개역:"계수하다"), '돌보다'( 렘 23:2)라는 의미를 나타낸다.||(b) 에피스켑토마이는 땅(신 11:l2)과 자신의 선택하신 백성(룻 l:6; 습 2:7; 시 80:14[15]), 그리고 예를 들어, 사라와 같은 개인들(창 21:1)을 돌보시고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사용된다. 이 단어는 언약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어서의 신실하심에 대한 표현이다. 자비로 방문하는 것은 '받아들이다'(accept)(창 21:1)를 뜻하며, 심판으로 방문하는 것은 '벌하다'(punish)(출 32:34; 10:12; 욥 35:15)를 뜻한다. 심판으로 방문하는 것도 하나님의 자비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보셨을 때 반드시 그들을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된 구절들은 대부분 예언서들에 나오는데, 특히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나온다.||(c) 에피스코페오는 민 4:27; 느 7:1에서처럼, '지명하다, 임명하다' 를 의미한다. 민27:l6에서는 하나님에 의한 임명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구절의 '감독 위임을 위한 임명'이 초기 기독교 직무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에피스코포스라는 용어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d) 에피스코페오는 삼상 20:6에서 '놓치다 miss'나 '빗맞다, 부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e) 종종 에피스켑토마이는 '행복한 주시'라는 헬라식 의미로 나온다(시 27:4[5]; 1O6:5).||#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스켑토마이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에피스켑토마이는 또한 임명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찾다, 고르다'를 의미하기도 한다(참조: 민 27:16; 느 7:1). 예를 들면 행 6:3에서 그렇다. 이 구절에서 보면, 교회가 처음으로 선택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서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만이 선택의 대상으로 고려되었다.||(b) 에피스켑토마이는 사랑의 행위로서, '찾아보거나 방문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의미는 마 25:36; 마 25:43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고난 당하는 자와 옥에 갇힌 자라는 인물이 되셔서 사람들 앞에 서신다. 주님은 그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다. 주님을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구원이냐 유죄냐 하는 판결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 분을 보고 주님의 필요로 하는 바를 우리의 관심사로 삼느냐 아니면 주님을 간과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약 1:27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표현한다. 여기서 야곱은 유대인의 가장 좋은 전통과 우리 이웃을 위한 실천적 사랑에 대한 주님의 요구를 채용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한다.||(c) 에피스켑토마이는 살펴보기 위하여 찾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행 7:23에서 모세에 대해 사용된다. 그는 자기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기 위해 찾아볼 생각을 가진 것이다. 행 15:36에서 바울이 바나바에게 한 말은 말로나 실질적으로 유사하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그들이 세운 교회들을 위해 계획한 방문은 그들의 사도적 직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방문이라는 성격을 가진다.|에피스코페오는 히 12:14이하에서 이런 의미를 지닌다. 은혜를 얻지 못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도록 살펴보는 것'은 교회의 모든 성원들의 영원한 복지를 위한 책임감을 표현하는데, 이런 행동은 지도자들만이 행할 일이 아니라 회중 전체의 일이다.|벧전 5:2의 표기에 에피스코푼테스를 도입한 것도 이와 동일한 효과를 위해서이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떼를 돌봄으로 하나님의 양떼를 지키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벧전 2:25에서의 목자이자 에피스코포스(감독)가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을 본 받아 행해야 할 것이다.|앞의 두 가지 예들(b, c)에서 이 단어들은 모두 행동으로 옮겨지는 똑같은 사랑의 관심과 동정심을 갖는 보살핌을 강조한다. 이 단어들의 구약성경의 의미, '징벌하다'는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다른 용어로 대치되었다.||(d) 하나님의 방문의 개념, 특히 은총으로 하나님이 방문하신다는 개념은 70인 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 예를들어 70인역본의 시 8:4은 히 2:6에서 기독론적으로 해석된다. 여기에서 에피스켑토마이는 하나님의 사랑하시고 찾으시는 배려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기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은혜스러운 방문, 돌보심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또한 눅 7:16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생활사에 은혜롭게 개입하심으로써 자기 자신이 주님되심을 나타내신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에서 죽은 청년을 살리셨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의 방문, 곧 그의 돌보심에 감격하였다.|눅 1:68; 눅 1:78에서도 이러한 구약성경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찰될 수 있다. 단 여기에서 방문은 명백히 메시야적 개념이며 그리스도의 오심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찬양하였다.|행 15:14에서 야고보에 따르면 이제 은혜의 방문은 이스라엘에서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된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이다. 이 구절에서 구원사에서의 이 용어의 전체적인 내용은 '(자비로) 방문하다' 라는 번역을 지지해 준다.|(참조: Walter Bauer; L.Coenen; Beyer).
에피스큐아조
ejpiskeuavzw
준비하다, 필요한 것을 갖추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큐아조(Aristoph., Thuc. 이래)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스큐아조(%1025: 준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준비하다, 필요한 것을 갖추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큐아조는 신약성경에서 행 21:15에 한번 나오며 '여행에 필요한 것을 갖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머물게 하려 하다
ejpiskhnovw
~에 장막을 치다, 거주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케노오(Polyb.)는 에피($1909)와 스케노오($4637: 천막을 치다, 살다, 거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천막(장막)을 치다, ~에 주거를 정하다', 비유적으로 '~에 거주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케노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2:9에 한번 나온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그리스도의 능력은 우리에게 장막이기도 하다(A. Plummer). 그리스도의 능력은 아무에게 임하여 그 안에서 역사하여 그에게 도움을 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덮이다
ejpiskiavzw
그늘 지게 하다 overshadow, 덮다 cov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키아조(그늘지게 하다)는 스키아조(%92: 가리다)의 강조형으로 호머에서 이미 나타나며, '그림자를 던지다, 그늘지게 하다, 덮다'를 의미한다.|이 용법은 주로 부정적이다. '그늘 지우다'는 '어둡게 하다'를 의미한다. 예를들면, 다리우스는 아시아와 유럽을 그늘 지웠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정치적 힘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키아조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온다. 잠 18:11과 출 40:34-출 40:35에서는 '힘의 표현'이며, 시 91:4에서는 보호의 개념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키아조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온다.||(a) 공관복음에서는(마 17:5, 병행구 막 9:5; 눅 9:34),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덮었던 빛난 구름이라는 구약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 영역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구름의 그림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를 상징한다.||(b) 눅 1:35에서는 그림자를 지우는 구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없다. 대신에 거기서는 에피스키아조(덮는다)의 주체가 하나님임을, 더 추상적이지만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여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동사는 셰키나 즉, 여호와의 임재를 상기시켜 준다(참조: D.Daube, The New Testament and Rabbinic Judaism; 그는 랍비적 교훈에 비추어서, "그러므로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룻 3:9]라는 룻의 말과 그 말을 비교한다).||(c) 행 5:15에서 에피스키아조는 베드로의 그림자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여기서 에피스키아조는 하나님의 치유 능력의 발휘를 나타낸다.|(참조: S.Schulz; H.C.Hahn).
에피스코페오
ejpiskopevw
돌보다, 택하다, 방문하다.||동사 에피스코페오는 동사 에피스켑토마이($1980)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1980 에피스켑토마이를 참조.
감독의 직분
ejpiskophv
방문, 감독.||#1. 일반 헬라어 문헌||명사 에피스코페는 에피스켑토마이($1980)에서 유래했으며, 처음으로 70인 역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 에피스코페는 Luc. Dialogi Demorum,20,6에서 오직 한번 나타나며, 그 의미는 '방문'(visit)이다.||#2. 70인 역본의 용법||명사 에피스코페는 70인 역본에서 47회 나오며, 주로 파카드(보살피다, 찾다, 방문하다 등)의 역어로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봄, 힐끗 봄, 일견, 응시, 정관': 지혜서 16:18에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분이 한번 보시기만 하여도 산과 땅의 밑바탕이 흔들릴 것이다". 욥 5:24에도 '응시나 정관'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b) '문의, 신문, 조사, 검사, 시험': 욥 31:14; 지혜서 3:13; 욥 7:18.||(c) '돌봄, 보살핌, 보호': 욥 10:12; 욥 29:4; 잠 29:31; 마카베오삼서 5:42; 지혜서 2:20; 욥 6:15.||(d) '점호 muster': 한글 개역에는 "계수함"이라고 번역했다: 출 30:12; 민 1:12; 민 7:2; 민 14:29; 민 26:18,47.||(e) 참된 신학적 의미는 에피스코페가 '방문 visitation'(은총, 심판, 형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이다.|① 예언서에서는 방문이 주로 심판과 형벌을 위한 방문이다. 휠씬 약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사법적인 징계라는 의미로 나타난다(레 l9:20), 그렇지만 대부분 에피스코페는 사람이 집행하지 않는다. 민 l6:29에서 사람들의 일반적인 운명, 모든 사람이 당하는 죽음이 에피스코페로 묘사된다. 그러나 신 28:25에서처럼, 심판 때의 하나님의 방문에 대해 사용되었다. 불순종한 민족들은 하나님의 방문(심판)을 받을 것이다(렘 6:15). 그들의 우상은 방문의 날(한글역: "벌하시는 날")에 깨뜨려질 것이다(사 lO:3). 최후의 방문(심판)에 천둥과 지진이 동반될 것이다(사 29:6).|② 많은 실례에서 심판의 날은 단순히 정죄와 형벌의 날과 동일시되는 한편, 에피스코페에는 용서나 사면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집회서 18:20에는 "심판대에 나가기 전에 먼저 반성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찾아 오실 때 용서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방문은 놀라운 은혜의 경험을 수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방문(은총)은 창 50:24 이하("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와 사 23:l7("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에서처럼 자비와 은혜 가운데 방문일 수도 있다.||(f) 에피스코페는 어떤 직무의 임명, 섬기는 직무의 맡김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민 3:32; 민 4:16; 대상 23:3. 시 109:8에서도 '직무나 직분'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스코페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타나며, 그 중에 누가의 기록에 2회(눅 19:44; 행 1:20), 서신에 2회(딤전 3:1; 벧전 2:12) 사용되었다.||(a) 신약성경은 방문의 시간(카이로스 테스 에피스코페스)과 방문의 날(헤메라 에피스코페스)에 대한 종말론적 개념을 받아들인다.|① 눅 l9:44에서 예수님은 은혜로운 방문의 시간을 그 자신이 예루살렘에 오는 것과 관련시킨다. 그러나 예수님은 백성들이 이 방문의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을 보시고 우셨다. 그 결과는 구원의 상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멸망이다. 따라서 이 방문은 심판의 방문이 된다.|② 벧전 2:I2에서 사 10:3에 기초한 '방문의 날'(개역: "권고하시는 날")이라는 표현은 이방인들 중에서 기독교인들의 행위에 관한 경고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방인들은 기독교인들의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악행하는 자들이라고 비방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선행을 통하여 진실을 보인다면 그들은 그 방문의 날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 개념은 기독교인들의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그 방문이 은혜의 방문이 된다는 것이거나 이방인들은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심판의 날에 그 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일 것이다.|③ 어떤 역본들은 벧전 5:6에 에피스코페를 추가시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방문/에피스코페]의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에서 은혜의 방문은 우리의 비하와 고난의 때를 승귀와 기쁨의 때로 변화시키는 행동을 의미한다.||(b) 신약성경은 에피스코페를 '직무'(office)라는 의미로 사용한다.|① 행 1:16이하에 따르면, 베드로는 유다의 운명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그는 시 109:8에 의거하여 '대신하는 사람'을 역설했다. 여기에서 사도의 직분은 에피스코페로 묘사된다.|② 딤전 3:1에서도 에피스코페는 "감독의 직분"에 대하여 사용된다. 여기서 에피스코페는 누구나 열망할 수 있는 하나의 한정된 직분을 지칭하기 위하여 맨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제 이 직분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관심은 그 의무들로부터 이 직분에 요구되는 개인적 자질들로 옮겨 간다. 곧 개인적 수양과 질서가 잡힌 가정(여기에서 독신 생활에 대한 문제는 전혀 관계 없다)과 교육 자질과 개인적 교제와 주위의 비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의 좋은 평판인 것이다.|[참조: 이러한 묘사에서 단독 지역 교회에서 일하는 몇 명의 감독들을 나타내는 행 20:28과 빌 1:1에 모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딛 1:7에서 한 사람의 감독(단수)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에 대한 언급은 다른 모든 직분 맡은 자들을 통제하는 단일 감독의 군주적인 감독 제도에 대한 이론을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이 감독 제도는 제 2세기와 제 3세기에 성공한 것인데, 그것은 어느 정도는 탁월한 은사들을 소유한 개인들 때문이며, 또한 어느 정도는 더 견고한 조직에 대한 요구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우리는 에피스코페의 이중적 용법에 근거하여 사도와 감독을 동일한 것으로 추론해서는 안된다. 초기 기독교회는 이 두 직분의 차이를 분명히 하였다. 행 1:20에서 이 단어를 선택, 사용되었는데 이는 유다 대신 다른 사람이 사도로 선택된 사실에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며, 반면에 딤전 3:1의 이 용어는 에피스코포스에서 유래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L.Coenen; Beyer).
감독
ejpivskopo"
감독자, 감독.||#1.고전 헬라어 문헌||(a) 일반 헬라어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감독자 overseer, 감시인 watcher'을 의미하며,|① '보호자protector, 후원자patron',|②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은 감시, 감독과 관련있는 여러가지 직무(분)에 대해 사용되게 되었다. 종교적인 용법은 신들에게 사용되는 경우이다.||(b) 에피스코포스는 신(神)에 대해 사용되었다. 헬라의 신들은 의인화된 힘들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원초적 힘의 관여자이다. 따라서 헬라의 신들은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그들의 보호하에 있는 피조 세계의 부분들, 예를 들면 작은 숲, 도시, 백성 그리고 개인과 관계가 있다. 신들은 보호를 부탁한 인간들이나 사물들을 지키고 다스린다. 신들은 그들을 돌보며, 심지어 그들을 위하여 다른 신들이나 세력들과 싸우기도 한다. 사회의 생활 영역은 신들이 그들을 다스린다는 사실로부터 그들의 신성과 그들의 구속력을 받아들인다. 이런 보호자의 성격과 활동 때문에 신들은 에피스코포이(감독자들)로 지칭된다. 그들은 조약들을 지키고, 도시를 돌보고 시장을 보호한다. 그들은 범죄(예를들면 부모를 거스르는 범죄나 무덤을 훼손하는 범죄)에 주목하고 범죄자들을 벌하였다. 팔라스 아테네(Pallas Athene)는 아테네인들을 지키고, 아르테미스(Artemis)는 임신한 여자들을 지켜준다.|제우스와 신들은 심지어 가장 비밀스런 세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행과 악행을 주시한다. 특별한 영역들은 각기 다른 신들 아래에 있다. 예를들면 제우스와 팔라스 아테네는 도시들을 다스린다.||(c) 공직의 한 명칭으로서 일리어드 10,38과 24,729(Hector)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국가에 책임있는 공직자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아테네인들은 국가 관리, 예를들면 아데네인들에 의해 아테네 연맹의 다른 도시들에 보냄 받은 감독자들에 대해 에피스코포이를 사용하였다.|에피스코포이는 또한 비밀 경찰이나 사법적 기능을 지닌 관리나 그리고 한 경우에는 조폐소의 관리와 같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에피스코포이는 지방 관리나 단체들의 관리들에 대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정확한 책임은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 종교적인 연관이 있는 경우에도, 예를들면 로데스에 있는 성소를 위한 어떤 단체의 에피스코포이는 제의적 책임을 지니지 않고 기금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업무를 행하였다.|로마의 사제(pontiff)는 베스타의 처녀들을 감독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한에서만 에피스코포이이다. 한가지 흥미있는 용법은 공공 건물의 건축과 관련하여 수리아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에피스코페를 가진 자들은 건축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아마도 자금을 관리하는 감독자들이었다. 수로 공사와 성전 건축과 연관된 비슷한 예들이 있다.||(d) 에피스코포이는 감독자, 감시인, 정찰병으로서의 사람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시체를 지킴, 배나 사업이나 시장이나 건물을 감독하는 것, 젊은 부부를 돌보는 것, 집을 다스리는 것 등 이다. 이와 관련된 다른 의미들로는 '보호자, 탐정, 밀정, 정찰병'이 있다.||#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에피스코포스는 70인 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파키드(감독, 통치자, 관리)의 역어로 9회 사용되었다.||(a) 에피스코포스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감찰하시는 절대적인 에피스코포스이시다. 70인 역본은 욥 20:29에서 엘을 에피스코포스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을 에피스코포스로 일컬은 것은 하나님의 사법적인 기능을 분명히 언급하는 것이다. 필로는 선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느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숨겨질 수 없다는 동일한 사상을 지닌다. 특별히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신다(참조: 지혜서 1:6; 행 1:24).||(b) 에피스코포스는 70인 역본에서 분명하게 지칭된 직책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감독, 십장'(overseer)에 대해 사용되었다. 특정한 경우에 (삿 9:28; 민 31:14) 권세의 지위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 관리들이 에피스코포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단어는 이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 능력의 행사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사 60:17).|그리고 에피스코포스는 국고 감독자들(대하 34:12,17), 제사장과 레위인들(느 11:9,14,22), 성전의 관리들(왕하 11:l8)에 대하여 시용되었다. 민 4:16에서 이 단어는 성전 직무(분)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필로는 '영혼을 아는 자'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요세푸스는 '도덕의 수호자'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c) 다메섹 규정 법칙 (The Damascus Rule)과 쿰란 공동체 규정(The Community Rule of Qumran, 예를 들어 lQS 6:12, 20)에 나오는 메바케르(그 공동체의 '감독자')는 후기의 감독(bishop) 직분에 대한 예시를 찾아 볼 수 있다. 메바케르는 아마 파키드와 동일한 직책이었던 것같다(IQS 6:14). 이 메바케르는 율법을 알고 있는 자였으나 제사장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진영'(the camp)과 전체 구성원에 대한 모든 중요한 결정권이 맡겨졌다. 그는 분명히 군주체제적인 특징들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자를 그 공동체에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징벌을 가할 수 있었다. 그는 재판관들과 함께 그 공동체의 복지 자금을 통제하였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외부인들과의 법적 관계와 상거래를 재가하였다(CD 13:6이하; 14:9-12).|동시에 구약성경의 비유를 따라 그의 직분은 목자의 직분에 비교된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들을 사랑하며, 목자가 자신의 양을 돌보는 것과 같이 그들을 모든 고통 가운데에서 인도할 것이다. 그는 그들을 얽매는 모든 속박들을 풀어줄 것이다'(CD l3:9).|이 모든 기능들이 후에는 공동체 규정(IQS)에서 한정적인 인물로 나오는 제사장들의 지도자에게도 이전되고 반면에 비(非)제사장적 감독들은 행정관 역할로 축소된다는 것은 감독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1QS 6:l4, 20). 전체 구성원들의 하나의 모임인 회중을 뜻하는 에다의 의장으로서의 독립적인 존엄성은 제사장들을 통솔하고 복종시킴으로 그 독립성을 보였으나 아마도 점차로 제사장들의 의장에게로 양도되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은 제사장적인 감독의 출현을 예시하는 것이다.|이 해석은 다메섹 문서(the Damascus Document)가 훈련교법서(the Manual of Discipline)보다 더 초기의 것이라고 가정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일치되고 있지 않으나 유력한 견해는 기존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에피스코포스는 5회 나오며, 벧전 2:25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른 구절에서는 기독교 공동체 내의 기능이나 직무를 가진 개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행 20:28; 빌 1:1; 딤전 3:2; 딛 1:7).||(a) 벧전 2:25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포이멘)와 감독(에피스코포스)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일견하여 에피스코포스는 단지 포이멘(목자)을 강화하고, 따라서 양떼를 지키는 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을 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목자의 사역을 묘사하는데 있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 두 사상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연결되고 있었으며(민 27:17) 신약성경에서 다시 나온다(행 20:28).|더 나아가서 이 단어는 영혼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지혜서 1:6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필로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 것처럼, 인간의 영혼에 숨겨진 것을 보신다.|그리스도는 또한 믿는 자의 영혼을 돌보기 위하여 최고의 자기 희생으로 자기 자신을 주시는 분이시다(참조: 히 12:15). 그의 감시는 사랑의 염려와 관심, 곧 기꺼이 짊어지는 책임을 나타낸다. 이 말은 절대로 개인적 세력 강화의 의미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미는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염려에서 기인한 그리스도의 자신을 버리시는 섬기심에 나타나는 것이다.|이 이유 때문에 포이멘과 에피스코포스가 그렇게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는 말은 그 안에 헬라어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에피스코포스로서의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모든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맥이 구원 역사(歷史)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지적하는 에피스코포스는 이렇게 공동체와 관계된 그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예수님에게 돌린 고귀한 직함이다.||(b) 다른 구절들에서 에피스코포스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에피스코포스는 순회하는 카리스마적인 복음의 전도자, 사도, 선지자에 대하여 결코 사용하지 않고 정착한 회중, 곧 특정한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신앙 생활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목자적인 감독에 대한 필요는 히 l2:15에도 분명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원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워지는 의무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감독은 특별한 직분의 과제가 되었다. 이 전환은 행 20:28에서 보게 된다.|이 구절에서 에베소 장로들(프레스뷔테로이)에게 행한 바울의 연설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프레스뷔테로이와 에피스코포이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여기에서,|① 모든 프레스뷔테로이는 예외없이 에피스코포이로 불리워진다. 그들은 신분상으로는 장로들이며, 책무상으로는 감독들이다.|② 그들의 책무는 양들을 돌보는 일이다(참조: 벧전 2:25; 벧전 5:2이하).|③ 한 교회에는 여러 명의 에피스코포이가 있으며. 그들 중에 아무도 상위권이 없다.|④ 그들의 감독에 대한 소명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것이 선택이나(참조: 행 1:21이하; 행 6:3이하) 사도에 의한 임명을 배제하지는 않는다(행 14:23). 그렇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그들의 감독직의 수임과 권위의 기초가 되는 성령의 역사(役事)이다.|⑤ 문맥에 따르면, 그들의 기능은 공동체의 존재가 오로지 달려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기초하여 회중을 세심하게 감시하고 염려하는 감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c) 에피스코포이는 직무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① 행 20:28에서 확실한 것은 바울이 교회에서 책임있는 사람들의 사역과 직무를 단순히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다른 회중과는 구별되는, 프레스뷔테로이와 에피스코포이로 불리어 질 수 있는 한정된 그룹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부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직무는 이미 실질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그 직무는 아직도 영구적인 명칭이 되지 않았으나 곧 그러한 명칭이 될 것이다.|② 빌 1:1에서 "감독들"도 비록 이 특별한 직무가 일반적인 기능의 견지에서 예외로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지 행동이 아닌 직무가 고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③ 딤전 3:1이하에서 에피스코페($1984)는 추구할 수 있는 독특한 직분이며, 이 직분을 얻으려면 자격이 구비되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는 단순히 자격을 열거하고 직책의 임무들은 열거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성령에 관한 그 이상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적인 필요로 말미암아 이것이 발전되었지만, 그 직책의 자격은 매우 진지하게 진술되어 있다. 즉 에피스코포이는 도덕적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일부일처의 결혼 생활을 해야 하며 가정 생활에 규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하며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비 그리스도인의 세계의 표준에 따라서도 비난 받을 만한 점이 없어야 한다.|④ 딛 1:5이하의 병행구절에서 장로들의 자격 요건도 이와 비슷하며, 딛 1:7절에 에피스코포스가 갑작스럽게 프레스뷔테로스 대신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똑같은 기능이 있다는 사실, 즉 순회 사역자, 곧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가 없을 때 회중을 인도하고 대표하며,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 고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⑤ 딤전 3:2과 딛 1:7에 단수가 사용된 것은 개 교회에 단 한 명의 감독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유형으로서의 감독에 관한 언급이다. 감독의 직무의 핵심은 힘보다는 오히려 섬김이다. 술취하지 아니하고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권위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다.|[참조: 여기에서 단독적인 지역 교회에서 일하는 몇 명의 감독들을 나타내는 행 20:28과 빌 1:1에 모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딛 l:7에서 한 사람의 감독(단수)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에 대한 언급은 다른 모든 직분 맡은 자들을 통제하는 단일 감독의 군주적인 감독 제도에 대한 이론을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이 감독 제도는 제 2세기와 제 3세기에 성공한 것인데, 그것은 어느 정도는 탁월한 은사들을 소유한 개인들 때문이며, 또한 어느 정도는 더 견고한 조직에 대한 요구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⑥ 딤전 5:l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 특히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몇 몇 장로들을 선발한 것은 초기의 구별에 대하여 암시하는 것 같으며, 이 구별은 결국에는 감독이 수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만다.|(참조:Walter Bauer; L.Coe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