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파네이아
ejpifavneia
나타남, 출현 appearance, 계시 revel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에피파네이아는 에피파네스($2016)에서 유래하였으며, '나타남, 출현 appearance'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주전 4세기 이후의 작품들(소크라테스 이전부터)에서 발견되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에피파네이아는 몸의 보이는 표면으로서 사람의 '외관이나 용모'(Diod.s.,3,29,6), 적(敵)의 돌연한 출현(Polyb.,1,54,3), 군대의 '최전방(선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b) 에피파네이아는 유명한 사람의 '명성, 고명(高名), 훌륭함(뛰어남)'을 나타내며(Hdt.,Ⅱ, Ⅶ, Ⅷ), 영광스러운 출현, 즉 존중, 고귀, 위엄(Pseudo-Plato, Alcibiades 1,l24c)에 대해 사용되었다.||(c) 대략 주전 350년 경에 이미 칼키스의 이세우스(Isaeus of Chalcis)는 사람 혹은 사물이 야기하는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에피파네이아를 사용하였다.||(d) 따라서 예수님 당시에 이 단어는 어떤 다른 신(deity)의 도우려 나타남을 뜻하는 거의 전문 용어화 되었다(참조: M.Dibelius and H.Conzelmann).||(e) 신의 출현은 주로 신전에서 나타나므로, 린도스(Lindos)의 신전 연대기(BC l세기 시작)의 합본에 에피파네이아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신의 현현(epiphany)이 제의에서 그의 탄생, 그의 즉위와 그가 행하는 단순한 이적의 축제, 혹은 그의 귀국의 축제로서 거행되었다(참조: E.Pfister, Pauly Wissowa, Supplement 4, 277 -323). 그것은 신의 인격적 출현에서 뿐만 아니라, 신의 권능과 섭리를 계시하는 기이한 사건에서도 경험된다(Diod.Sic., Plut. 등). 이처럼 에피파네이아는 신화 속에서의 신의 출현이라는 의미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속에서의 신의 출현을 의미한다.(R.Bultmann/ D.Luhrmann; B.Girtner).||#2. 70인역본의 용법||에피파네이아는 70인역본에서 12회 사용되었다. 에피파네이아는 삼하 7:23(여기서 한번만 히브리어 야레[두려워하다]의 역어)에서 하나님의 두려운 행위를 뜻한다. 마카베오이서, 삼서의 군사적인 문맥에서 '강력한 도움의 출현 및 행위'를 뜻하며, 즉 하나님의 돕는 분으로서의 임재와 능력의 징후가 되는 행위들과 사건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2:21; 3:24; 5:4; 12:22; 14:15; 15:27; 마카베오삼서 2:9; 5:8,51). 삼하 7:23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그리고 에피파네이아는 에 5:1에서 '장려, 화려', 암 5:22에서 '장대함'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요세푸스는 에피파네이아를 '명성(fame)'이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또한 '두려움을 베푸는 개입'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필로는 이 명사를 '외관, 명성, 장려' 등 이란 의미로 사용했다.(R.Bultmann; D.Luhrmann; J.H.Thayer).||#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파네이아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역사의 종말에 지상에 오실 주의 출현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살후 2:1-살후 2:12에 따르면, "불법의 사람"의 출현(적그리스도)이 주의 가시적 출현에 선행한다. 사실상 그는 이미 활동하고 있으나(살후 2:7), 그의 파루시아는(살후 2:9) 더 이상 밝혀지지 않은 그 어떤 권세에 의해 지금 방해 받고있다(살후 2:6; 살후 2:7). 주 예수께서 "그의 강림하시는 날에"(테 에피파네이아 테스 파루시아스) 그를 멸하실 것이다(살후 2:8). 에피파네이아와 파루시아는 여기서 이사일의(二詞一意)로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 곧 에피파네이아는 오실 그리스도의 강하고 효과적인 활동을 강조하며. 파루시아는 그의 재출현의 사실을 더욱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주가 재림하실 때의 결정적인 요소는 그가 행하실 바이다. 그의 출현, 심판 및 종말론적인 그의 왕국 건설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 대망되는 주의 심판의 날은 두려우면서도 영화로울 것이다.|구원사에는 두 가지 가능한 결과가 있기 때문에, 신앙의 싸움에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아야 할 필요성은 이것에 대한 확증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딤전 6:12의 사상이 어떻게 딤전 6:14의 사상을 선행하고 있는지를 참조하시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시험을 견디는 자는 누구든지 강하면서도 조명하는 주의 간섭에 대해, 그리고 "그의 나타나심"에 대해 "사모하는" 자들에 속한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에피화네이아라고 불리어지는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명칭 속에 내포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강한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그의 기대된 에피파네이아와 관련하여 퀴리오스(주)를 하나님 이다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딤후 1:10에서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과 같이 기독교인들이 에핍하네이아를 구주의 가시적 지상 출현에도 사용하였다. 후대의 저스틴 마터의 변증론에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Apology,I,14, 3 및 40,1).(R.Bultmann; D.Luhrmann; C.Brown).【이 어군의 함축적인 용법은 성경에서 발견되는데, 이때 이 어군은 구약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와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관한 문맥에서만 사용되었다. 완전히 성경적인 의미에서 계시를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결코 창조와 관련하여 사용되지 않는다. 에피파네이아로 표현된 계시 사건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계시의 구원론적 성격에 있다. 따라서 이 단어들은 역사와 무관한 지식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의 구원론에 속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고려하여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은 맹목, 방향 결핍 및 파멸로부터의 구원과 비교해 볼 때, 사소한 것이다. 하나님의 강하신 구원 간섭은 이미 발생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B. Girtner)】. →$2014 에피파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