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e[scato"
극도의, 맨끝의, 마지막의, 가장 가치없는, 가장 작은||**** %9 에스카톤|(명사) 끝, 마지막, (부사) 끝으로, 마침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스카토스(Homer. 이래)는 엑스(∼밖으로, ∼로부터)에서 유래한 최상급형이며,||(a) 원래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하였다.||(b) 공간적으로 에스카토스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를 의미하였다(Hesiod, 지구의 맨 가장 자리).||(c) 시간적으로 에스카토스는 일련의 마지막 사건들을 의미한다(Hdt.).||(d) 물질적으로 '극단적인 것'을 의미하였으며, 계급 서열에서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말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가장 지혜로움) 대개는 가장 낮은 곳을 의미하였다(가장 비천한 자들).||(e) 실사적으로 토 에스카톤은 공간과 시간적인 면에서의 끝을 의미한다(Hdt.). 정관사 없이 에스카톤(eschaton)은 에스카토스(부사)와 똑같이 부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모두 '마침내'이다(Xen.).||「참고: 헬라어에서는 에스카토스는 계속해서 이어져왔다고 생각되는 상황들의 마지막 점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맨 끝'(extreme)이 처음에 '땅 끝'으로 나타나는 헬라인의 자연주의적 사고와 일치한다(Dem. Ep. 4, 7; Xen., Vect. 1, 6; Theocritus, 15, 8). 질적인 면에서 에스카토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극도의 증대'를 의미하는데, 가장 고귀한 것들은 왕들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Pindar). 극악한 부정(Plato.), 극도의 위험(Gorgias)이란 표현도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에서 에스카토스는 사상의 논리적 진행의 결말을 나타내며, 따라서 이것은 사고의 과정들의 체계화에 기여한다(An. 3, 10, 433a, 16). 사람들 중의 계급 서열의 용어로서 에스카토스(eschatos)는 프로토스(첫째)의 반대를 의미한다. 즉, 가장 낮고 가장 가련한 자들(Dio Cass., Dio Chrys.)이다. 시간적인 차원은 특별히 마지막이라고 예상되는 때(마지막, 즉 결정적이며 최종적인 판결), 그리고 하나님을 "처음이요 나중"(프로토스 카이 에스카토스)이라고 부르는 포괄적인 명칭에서 표현된다(Ps. Arist., Mund. 401a, 28). 그러나 이것은 가장 발전되지 않은 의미이다. 헬라 사상에는 발전된 종말론적 시간의 이해, 즉 역사 과정의 미래적 목표, 또는 종말에 대한 이해가 없다」|(참조: H.-G.Link; G.Kittel).||#2. 70인역본의 용법||(a) 에스카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50회 나오며, 주로 아할(∼후의, 뒤에) 어군을 번역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마지막, 마침내, 결과, 끝'이란 의미를 나타낸다(호 3:5; 사 2:2; 사 41:23; 미 4:1; 렘 23:20; 렘 30:24; 렘 40:39; 겔 38:16). 이것은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 선지자의 미래 지향적 사고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문구가 대개 구원에 대한 말들에 나타나거나 또는 이 말들의 앞에 나온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구원에 대한 모습들이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제시된다 할지라도 여호와 자신이 말씀하신 "끝날에"라는 포괄적 구원 시대에 대한 기대는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공통적이다.||(b) 랍비 유대교에서 종말(케츠)에 대한 예측은 메시야의 도래에 집중된다(에스드라하12:32; 참조: SB Ⅲ 671; Ⅳ 1003, 1006).||#3. 신약성경의 용법||에스카토스는 신약성경에서 5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에스카토스는 공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4:9; 눅 14:10에서 말석(호 에스카토스 토포스)은 일련의 장소에서 맨 마지막이나 맨 뒤의 구석에 있는 자리로 여겨진다.|행 1:8; 행 13:47에서 "땅 끝까지"(헤오스 에스카투 테스 게스)는 우주적인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b) 에스카토스는 서열과 순위에 관해 '마지막의, 가장 적은, 가장 하찮은, 비천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의미는 먼저 된 자와 나중된 자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에 나타난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마 19:30; 마 20:16; 눅 13:30). 이 금언은 대조적인 병행구에서 정반대로 형성되었는데 아마도 원래 의미는 "인간의 운명은 하룻밤 사이에도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참조: J.Schniewind ).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이 금언은 제자 직분의 보상들에 대한 논의의 결론으로써 종말론적으로 철저화 되었다(막 10:28-막 10:31 병행구).|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이 대조는 사람들의 계급 계승이 관습적임을 제시해 준다. 먼저 된 자들은 사회에서 고귀한 자들, 곧 왕과 통치자들이요, 나중 된 자들은 가장 낮은 자들, 곧 종들과 버림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요점은 장차 임할 시대에는 이런 우선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상의 권력구조가 뒤바뀌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나중 되고 가장 낮은 자들의 편에 서실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가난한 추종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된다.|반면에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후보자라고 간주하는 자들, 곧 귀족들과 부자들과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된다(눅 13:28이하; 마 8:11이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지금 현재에 이런 모든 가치의 종말론적 전도를 예기하고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선임권을 둘러싼 제자들의 분쟁에 대해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는 회상의 형식으로 답하신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막 9:35).|고전 4:9에서 '가장 하찮은 비천한'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그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죽음에 넘겨지고 세상의 웃음거리이자 찌꺼기인 것처럼 가장 하찮고 비천한 자들임을 자랑하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고린도의 열성주의자들에게 응수한다. 그러나 영원토록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까지" 그렇게 하신 것이다.|고전 15:8이하에서 "지극히 작은"이라는 말과 "맨 나중에"라는 말의 결합은 바울이 그 특성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로 제시해주는 것이다.||(c) 에스카토스는 시간에 관해, '최소의(least), 최후의, 마지막의'를 나타낸다.|① 마 20:8; 마 20:12; 마 20:14에서 호이 에스카토이("나중 온 자")는 일하러 맨 나중에 온 자들이다. "먼저 온 자 나중 온 자"라는 이 격언의 의미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눅 13:30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맨 나중에 초대받은 자들이 그 기회가 올 때 최초로 들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즉시 입장을 허락받을 것이지만 타인들과 또한 맨 먼저 초대받았던 자들은 그 때 너무 늦게 오게 되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10:30; 마 20:16에서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선하심을 통해 맨 나중에 초대받은 자들에게도 맨 처음에 초대받은 자들과 동일한 몫이 할당된다. 그러나 후자는 자기들이 더 나은 것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② 히 1:2에서 에프 에스카투 톤 헤메론은 "마지막 날에"를 의미한다. "마지막 날"이라는 문구로 표현된 종말에 대한 예언적 기대는 투톤 즉 "이"이라는 지시사가 추가되어 ("이 마지막 날에") 초대 기독교인들의 현재와 연관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드러났다. 예수께서 아들이자, 창조의 주로 즉위하심으로써 시대의 전환점이 왔다. 히브리서는 초대 기독교의 현재를 종말의 시작으로 이해한다.|베드로전서도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말하며(벧전 1:20; 참조: 막12:6) 요한일서는 이 서신의 수령자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강하게 인식시켰다(요일 2:18).|신약성경 기자들에게 비추어진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종말의 특징들 중에는 성령을 부어주심과(행 2:17; 참조:욜 2:28-32), 도덕적 부패의 증대(딤후 3:1이하), 그리고 기롱하는 자들과(벧후 3:3; 유 18) 적그리스도들의 나타남(요일 2:18)이 포함된다.|그렇지만 마지막 날은 또한 기다려진다. 계 15:1의 마지막 재앙, 고전 15:26의 마지막 원수, 고전 15:52의 마지막 나팔, 그리고 요 6:39-요 6:40; 벧전 1:5의 마지막 때의 부활, 심판, 구원이다.||(d) ① 고전 15:45에서 바울은 아담 그리스도 유형론(typology )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참조: 롬 5:12-롬 5:21; 고전 15:21이하) 첫사람 아담을 "마지막 아담"(에스카토스 아담) 그리스도와 대조시킨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이곳에서 개인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인류 전체의 대표자들로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아담"은 숫자적으로나 연대적으로 마지막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 속에서 창조된 새 인류의 새로운, 즉 두 번째 대표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담 안에서 요약된 첫 번째 인류와는 대조된다(참조: C.Colpe). 따라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의 창조자를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의 종말론적 원형(prototype)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② "처음이요 나중이라"(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라는 문구는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의 자신에 대한 칭호로만 발견된다(계 1:17; 계 2:8; 계 22:13; 참조 사 41:4; 사 44:6; 사 48:12). 이 신적 술어를 높임 받은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완성자의 기능들을 지닌 하나님의 속성과 동등한 지위를 그에게 돌리는 것임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G.Kittel; H.-G.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