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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보라
i[de
보라! see!||이데는 호라오($3708: 보다, 주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감탄사로 사용되며, '보라! see! behold!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9회 사용되었다(마 23:20; 마 25:22; 마 25:25; 마 26:65; 막 2:24; 막 3:34; 요 1:29; 요 3:26; 롬 2:17; 갈 5:2 등).|(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형상
ijdeva
외경, 모양, 용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데아(Pind., Hdt. 이래)는 '모양, 외형, 용모'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이데아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마르에(4578: 광경, 출현, 보여진 것, 환상, 시력, 단 1:13; 단 1:15), 드무트(1823: 닮음, 유사함, 창 5:3)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얼굴, 모양'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이데아는 신약성경에서 마 28:3에 한번 천사의 '외형'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개인의
i[dio"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 것, 개인적으로.||형용사 이디오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① '자신의 것'(요 10:3; 요 10:12; 눅 10:34; 히 9:12; 히 13:12; 행 28:30; 살전 4:11; 벧후 1:20; 롬 10:3; 약 1:14; 딤후 4:3; 벧후 3:3; 딛 1:12; 요 8:44; 고전 4:12; 눅 6:41).|② '자기의 재산, 가족, 집, 나라 등에 속하는 것'(행 4:32; 눅 18:28; 행 13:36; 눅 2:3; 행 1:19; 행 25:19; 요 1:11; 요 13:1; 행 4:23; 행 24:23; 딤전 5:8; 요 1:11; 요 16:32; 요 19:27; 고전 77:2; 엡 5:22; 딛 2:5; 벧전 3:1; 벧전 3:5; 엡 5:24; 딛 2:9; 롬 8:32; 요 5:18; 막 4:34).|③ '자기의 본성, 성격, 목표, 행위와 조화하거나 그로부터 기인된, 타당한', 행 1:7; 고전 3:8; 고전 15:38; 마 25:15; 고전 15:23; 유 1:6; 행 1:25; 갈 6:9; 딤전 2:6; 딤전 6:15; 딛 1:3).|④ 소유 대명사 대신 사용됨(마 22:5; 마 25:14; 요 1:41).||(b) '사적인', 부사로 '각자에', '개별적으로'(고전 12:11).|① '떨어져서, 따로'(마 14:13; 마 17:19; 마 20:17; 마 24:3; 막 6:31이하; 막 7:33; 막 9:2; 막 9:28; 막 13:3; 눅 9:10; 눅 10:23; 행 23:19).|② '개인적으로, 사적으로'(막 4:34; 갈 2: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무식한 자
ijdiwvth"
보통사람, 문외한 layman, 무식한 unlettered, 배운 것이 없는 uneducated, 미숙한 unskill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디오테스(Hdt. 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공직자와 구별되는 `사적 개인', 예를 들면 관리와 비교되는 일반 시민을 가리킨다.||(b) 전문가와 구별되는 `문외한, 비전문가', 예를 들면, 판사, 철학자와 구별되는 보통사람, 제사장과 구별되는 평신도, 지식인과 구별되는 무식자를 가리킨다.||(c) 회원, 소속인과 구별되는 `외부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이디오테스는 70인역본에서 잠 6:8에 한번 나오며 `사적인 개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이디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 문헌의 (b)와 (c)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4:13에서 이디오테스는 `교육을 받지 못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b) 고전 14:16에서 이디오테스는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 특히 방언의 은사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c) 고전 14:23, 고전 14:24에서 방언을 말하는데 있어서 `비입교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그들은 불신자들(아피스토이), 즉 비기독교인들로서 간혹 기독교인들의 모임에 참여한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대중적인 예배는 알기 쉽게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황은 이러한 사람들이(디오타이) 완전한 교회 교인이 아니라는 점, 즉 그들은 개종자나 초심자들이었다는 관점(예: Arndt 의 관점, 371)을 전혀 지지하고 있지 않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Flender; H. Schlier).
때에
ijdouv
보라!, 자!.||이두는 지시불변화사이며, '보라!, 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매우 자주 히브리어 쉰네를 모방하여 사용된다. 그리고 독자나 듣는 자에게 말하는 내용에 주의하라고 명함으로써 문제에 독특한 활기를 불어 넣는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00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두매
!Idoumaiva
이두매 Idumea||#1. 에돔의 지역과 역사.||이두마이아는 '에돔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며, 히브리어 에돔의 헬라 형태이다. 이 지명 형태는 에돔 본토라기보다는 서부 팔레스타인의 한 지역에 대한 언급이다.|70인역본과 요세푸스의 저작에는 사해의 남서 지역에 있는 에돔의 이두매로 표기되어 있다. 출애굽 당시 에돔은 아라바(Arabah.)의 양쪽면까지 뻗어 있었고, 그 서쪽 지역은 가데스까지 이르렀다(민 20:16).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였으나 에돔과 유다는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B.C. 58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에돔 사람들은 그 재난을 이용하여 남 유다의 중심부인 헤브론 남부로 들어오고, 네게브(Negev) 사막과 세펠라(Shephelah) 사막까지 그들의 경계로 하였다. 에돔 사람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정복할 때에 도와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구약에서 몇 몇 선지자의 통렬한 비난의 주제가 되었다(애 4:21; 겔 25:12; 겔 35:3; 옵 1:10 이하 등). 에돔은 B.C. 300년경 붉은 바위를 쪼개어서 그들의 수도인 페트라(Petra)를 건설한 나바테안 아랍인들에 의해 정복 당했다. B.C. 165년 유다 마카비(Judas Maccabaeus)는 이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B.C. 126년에 결국 존 힐카누스(John Hyrcanus)가 정복하여 안디바(Antipater)를 총독으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강요했다(Jos, Ant., 13, 258). 안디바는 헤롯 대왕의 할아버지였다. 그 후에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는 헤롯 대왕을 이두매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그의 나라의 이러한 종속성 때문에 헤롯은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2. 신약성경.||이두마이아는 신약성경에서 막 3:8에 한번 나온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참조: W. White; A. Robert).

iJdrwv"
땀 swea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히드로스(Homer 이래)는 이도스(%439: 땀)에서 유래했으며, '땀' swea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히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2:44에 한번 나오며, '땀'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세벨
!Iezavbel
이세벨 Jeszbel.||#1. 구약성경.||이에자벨은 히브리어로 이제벨이며, 그 이름의 뜻은 보편적인 유럽인의 이름인 '아그네스'(Agnes, '순진한 처녀')와 같이 '정숙한'(또는 순결한)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매우 부적당한 이름이다.|이에자벨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세벨'로 음역했다.||(a) 이세벨은 시돈 왕의 딸이다.||이세벨은 베니게 종족 출신이다. 성경에서는 그녀의 아버지를 시돈왕 엣바알로 부르지만 사실상 베니게 전역의 왕이었다. 그는 선왕을 암살하고 36세에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왕상 16:31). 그는 32년 동안 통치하였다.||(b) 이세벨은 아합왕과 불법적 결혼을 했다(왕상 16:31). 비록 모세의 율법은 레반트(the Levant, 동부 지중해의 여러 섬과 연안 제국)의 가나안 사람들과 히브리인 간의 결혼을 엄히 금하고 있지만 이세벨과 아합은 불법적 결혼을 했다. 그의 이름이 고대인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성경에 언급되는 곳마다 그녀의 영구적인 불명예와 악명을 나타낸다.||(c) 이세벨은 우상숭배로 여호와를 대적했다. 성경은 그녀의 남편 아합왕의 배도가 그녀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녀는 아합으로 하여금 바알을 숭배하게 하고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울 숭배를 위한 신전을 세웠다(왕상 16:32; 왕상 16:33; 왕상 18:18).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수백명을 지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녀의 신앙을 따르게 했다(왕상 18:19). 그래서 나라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배도하게 되었다.||(d) 이세벨은 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이세벨의 선동과 아합의 동의에 의해 이스라엘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모든 지도자들을 몰살하려는 조직적인 프로그램이 착수되었다. 분명히 수백명의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였다(왕상 18:1-4). 동시에 바알 선지자들은 탁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 중에는 궁전에 거하면서 이세벨의 상에 먹는 자들도 많았다(왕상 18:17-19).|이세벨은 엘리야가 갈멜 산상에서의 대결 이후 그 모든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를 다짐했고(왕상 19:1-2),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도망했다(왕상 19:3-4). 이세벨은 그 일을 성공하지 못했다.||(e) 이세벨은 음행과 술 수가 많았다(왕하 9:22).||(f) 이세벨은 음모를 써서 나봇을 죽였다(왕상 21:10-14; 왕상 21:5-16). 아합의 연약한 성격의 가장 나쁜 면을 실증해 주는 이 사건은 이방 왕실의 딸로서의 이세벨의 진정한 모습을 밝히 드러내 준다. 즉 음모와 배신과 속임수와 불의를 합법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점들을 보여 준다. 살인과 도적질을 행하면서도 모세 율법의 세목을 빈틈없이 지킨 이 사건은 공직에 있는 자로서 공공의 신뢰를 배신하는 데 대한 하나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g) 엘리야가 이세벨의 죽음을 예언하고(왕상 21:23; 왕하 9:10) 예후가 그 예언을 성취시켰다(왕하 9:7, 30-36).||#2. 신약성경.||이에자벨은 신약성경에서 계 2:20에 한번 나온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여기서 이세벨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세벨을 상기시켜 주는 제 2의 이세벨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여선지자로 가장했던 한 여인의 상징적 이름이다.|그녀는 종교를 위장해서 도덕 폐기를 주장하며, 부도덕과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유혹적인 여선지자인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그 교회 내부에 있는 어느 집단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그 명칭이 배교를 나타내는데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었음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EB; NBD).
히에라볼리
@Ieravpoli"
히에라볼리 Hierapolis(지)||히에라폴리스는 '거룩한 도시'라는 뜻이며, 리쿠스(Lycus) 강이 내다보이는 남서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이다.|이 도시는 리쿠스의 넓은 계곡 맞은편에 있는 라오디게아의 북쪽 약 10㎞에 위치하고 있다. 리쿠스강 유역에 있는 3개의 도시가 신약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이 3개의 도시는 풍요하고 자의식이 강한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및 히에라볼리이다. 히에라볼리는 치유 효과로 유명한 온천들 주위에 건설되었다. 온천수는 이 도시의 계단식 대지 가장 자리 위로 흘러 멋진 못들과 석회 표면의 폭포들을 이루었다. 그 결과로 생긴 흰 절벽들은 파묵칼레(pamukkale), 목화성(cotton castle)이라는 현대의 지명을 얻게되었다.|이 도시의 이름은 이곳에 위치한 온천과 관련하여 유래한 것 같으며, 그것을 신의 임재와 관련된 현상으로 보았다. 이 자연적 특성이 히에라볼리를 고대 이교도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 도시는 섬유 무역으로 번영하였다.||신약성경에서 히에라폴리스는 골 4:13에 한번 나온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히에라폴리스의 교회는 아마 바울의 에베소 선교 기간에(행 19:10), 에바브라에 의해 창립되었을 것이다. 계 3:16에서는 골로새의 찬물과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물을 대조하며, 히에라폴리스의 유명한 뜨거운 물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90년경)는 빌립이 이 교회에서 사역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한다. 요한도 여기서 사역한 것 같다.|(참조: E. M. Blaklock; NBD).
제사장
iJerateiva
제사장 직 또는 직무 priestly office or servi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히에라테이아는 히에라튜오($2407:제사장이 되다,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제사장의 활동, 제사장의 직`을 뜻하며, 이 단어 역시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2. 70인역본의 용법.||히에라테이아는 70인 역본에서 16회 나오며, 주로 카한(제사장이 되다, 제사장으로 시무하다)의 역어로(15회) 사용되었으며, `제사장직, 제사장의 직무 또는 사역'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출 29:9; 출 40:15; 수 18:7; 호 3:4[에포드의 역어로]).||#3.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라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난다. 눅 1:9에서 이 단어는 `제사장의 직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 직무는 성전에서 분향하는 일이다. 히 7:5에서 이 단어는 레위 후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히에라튜마
iJeravteuma
제사장직 priesthoo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히에라튜마는 히에라튜오($2407: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다, 제사장이 되다)에서 유래했으며, `제사장직 priesthood '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70인역본에 3회 나오며, 세속 문헌에는 사용되지 않았다.|출 19:6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제사장들]의 나라"로 되어 있다(참조: 출23:22).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암시한다(참조: 민 11:29; 사 61:6). 70인역본에서는 이 히브리어를 매우 자유롭게 번역하며 제사장의 측면을 더 강하게 나타낸다.|마카베오이서 2:17은 출 19:6을 암시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하신 왕적인 지위와 제사장적인 지위를 언급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라튜마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2:5; 벧전 2:9에서만 나온다. 여기에서 구원과 위엄이 산 돌이신 그리스도를 기초로하여 세워진 공동체에게 전이된다. 그런데 이 공동체는 신성한 제사장의 사역을 위하여 영적인 성전으로 세워졌다. 이 공동체는 영적인 희생제사를 바치기 때문에 제사장직이다. 제사장의 집단인 이 공동체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나, 제사장이라는 특권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제사장으로서 교제하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는 왕의 것이고, 왕을 섬기며, 복음 증거의 사역에서 왕의 영광에 참여하므로 왕같은 것이다(벧전 2:9).*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다
iJerateuvw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다 to discharge the priestly offi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히에라튜오는 히에류스($2409:제사장)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다, 제사장이 되다(혹은 가지다)'를 의미하며, 보다 후대에 이르기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다.||#2. 70인역본의 용법.||히에라튜오는 70인 역본에서 대부분 카한(제사장이 되다, 제사장으로 시무하다)의 칼과 피엘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예: 칼, 삼상 2:28; 대하 31:19; 피엘, 출 28:1,3,4,37; 레 16:32; 민 3:3,4).||#3. 신약성경의 용법.||(a) 히에라튜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8에서만 나온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참조: G.Schrenk).||(b) 클레멘트일서에서 이 단어는 레위인의 사역(43:4)에 대해 사용되며, 저스틴은 이교 제사장들의 사역을 나타낼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Apologyl. 62.2).
예레미야
@Ieremiva"
예레미야 Jeremiah(인)||#1. 구약성경.||이에레미아스는 히브리어 예레미야 후의 음역이며,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는 9명의 사람이 이 이름으로 등장하며, 여기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 관해 언급한다.||선지자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며(렘 1:1), 아비아달의 후손으로 추정되며(왕상 2:26) 베냐민 지파 내에 있는 아나돗 태생이다.|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제 13년 B.C. 627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 같으며(렘 1:4-9), 그의 사역은 40년간 지속되었으며, 그 기간은 유다의 왕, 즉 요시야,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통치 기간이었다(렘 1:2-3)(B.C. 627-586).|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B.C. 586년 파멸되는 그 기간에 계속 살았다(왕하 25:8; 렘 52:12). 그는 바벨론인들에게서 정중한 대접을 받았으며,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의 통치자로 임명된 그달랴에게 보호를 받도록 위탁되었다(렘 39:11-14). 그달랴는 약 두달 후에 살해되었다. 그 후 즉시 예레미야는 남은 자들에게 의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 갔다.|예레미야는 애굽의 다바네스에서 마지막 예언을 했다(렘 43:8, 11-13). 렘 44장에서 그는 자기 백성에게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것과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경고의 메시지를 그들이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진노하시도록 자극하였기 때문에 그 민족이 세계 만민들 중에서 저주와 수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백성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본 다음에도 애굽에서 예레미야의 메시지와 경고를 듣고 감화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늘의 여왕 숭배를 중단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재앙이 자기들에게 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예레미야는 아직도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는 애굽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는 예레미야서를 기록했으며, 거기에 그의 역사와 사역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2. 신약성경.||이에레미아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마태복음에만 등장한다.||(a) 신약성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마 2:17; 마 16:14; 마 27:9에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마 23:37 병행구절과 히 11:37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사자와 증인들을 돌로 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둘 다 예레미야에 대한 것이다. 마 23:37에서 복수형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를 돌로 쳤다는 것(대하 24:20-22)에 대해 언급한 것일 가능성을 시사해 주며, 히 11:37("돌로 치는 것")에서 톱으로 켜는 이사야의 순교로 이어지는 언급은 첫번째로 예레미야를 고려하게 한다.||(b) 마 2:17에서 렘 31:15의 인용은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라는 말씀으로 소개된다.||(c) 마 27:9에서도 동일한 문구가 나온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이 말씀이 예레미야서(렘 32:9)를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슥 11:12-13의 인용이다.|벵겔(Bengel)은 "예레미"라는 이름은 필사자가 주석으로 붙였다고 생각했으며, 웨슬레(John Wesley)는 벵겔 주석(Gnomon)에 근거하여 '예레미야란 말은 후에 필사시에 원문에 덧붙인 말로서 많은 번역문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고 말했다. 아담 크라크(Adam Clarke)는 '원문에는 디아 투 프로페투(선지자를 통하여)라 되어 있는 것 같으며, 선지자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그러나 원문상의 문제는 "예레미야"란 말이 실제 현존하는 가장 오랜 헬라어 사본을 포함하여 모든 헬라어 사본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리슨(Morison)은 이것이 '처음에 출판된 복음서 원판'에서 생긴 인쇄상의 과오라고 말한다(R. Earle).||(d) 오직 마 16:14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재현을 발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이 기록은 후기 유대 문헌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종말론적 사명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인상적이다. 그가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첫째로 Christian 5 Esr 2:18, Josephus Gorionides, 1, 21의 기록에서, 그리고 아마도 Vitae Prophetarum addition 중 예레미야 편에 추가된 부분에서 발견된다. 이들 세 경우 모두 아마도 마 16:14에 예속된다. 그다지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 16:14이 마지막 때에 앞서서 예레미야가 돌아올 것이라는 후기 유대교의 종말론의 다른 증명되지 않은 기대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예레미야의 언급에 대한 보다 더 단순한 설명도 많이 있을 수 있다. bBB, 14b Bar에 의하면 정경에서 예레미아서의 위치는 후반부에 있는 선지서들의 첫머리이다. 마태가 "선지자 중의 하나"(마 8:28) 또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눅 9:19) 대신에 더 분명하게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마 16:14)라고 표현할 때, 그는 분명히 한 예로서 선지자 중의 첫 번째 선지자의 이름을 소개한 것이며, 아마도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그를 후기 선지자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따라서 마 16:14의 예레미야에 대한 언급은 입증된 바 없는 그의 돌아옴에 대한 기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경 중에서 예레미야서의 위치에 기인한다(J. Jeremias).|(참조: J. Jeremias; PEB).
히에류스
iJereuv"
제사장 priest.||#1. 고전 헬라어 문헌.||(a) 히에류스는 히에로스($2413: 거룩한)에서 유래했으며, '제사장(priest), 희생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sacrificer), 예언자, 점장이(diviner)'를 의미한다. 호머(Homer)의 작품에서 이 단어는 만티스(%1041: 예언자, 점장이)라는 단어와 병행하여 나타난다. 제사장은 거룩한 것을 취급하는데 숙련된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또한 신들에 관련된 일에 관한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예언자나 점장이이기도 하였다. 선견자와 제사장은 특별히 내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특별히 신과의 관계나 중재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희생 제물은 반드시 제사장에 의하여 바쳐질 필요는 없었다. 가족의 희생 제사는 가장이, 부족의 희생 제사는 부족장이, 그리고 시(市)의 희생 제사는 시장이 각각 집전하였다. 예컨대 이소크라테스(Isocrates)는 '그들은 제사장의 신분과 마찬가지로, 왕의 신분도 모든 사람에게 속하여 있다고 믿는다'는 이상론을 내세운 바 있다(2, 6).|그러나 대규모의 중요한 제의 장소에서는 지속적으로 일을 돌보아주는 것을 필요로 했으므로 가문의 전통보다는 성전의 전통에 따라 생활하는 전문적인 제사장직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제사장이라는 직업이 있었으며, 뚜렷한 특권 계급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일부 제사장직은 세습적이었다.|제사장이 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거룩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해야 하는 명백하고도 고유한 일은 희생 제물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희생제를 드리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히에류오는 동시에 '살해하다, 죽이다'라는 의미도 가지게 된 것이다(Procopius Gazaeus. 2, 25).||(b) 스토아주의에서의 제사장직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제논(zeno)에게 있어서 제사장은 지식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지식과 신앙심은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제사장에게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현자만이 진정으로 제사장이 될 소양을 갖추고 있으며, 현자만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에픽테투스는 참된 견유학파의 철학적 사역에 대하여 제사장을 비유로 사용하였다.||(c) 헬라 유대교(필로)의 제사장직에 대한 형태.|① 필로는 스토아 학파의 현자에 대한 이상에 영향을 받았다. 필로에게 있어서 제사장은 로고스나 이성(reason)을 상징한다. 필로는 '히에류스는 로고스이다'라는 말을 매우 좋아하였다. Deus Imm., 131-135에서 히에류스가 호 데이오스 로고스(신의 로고스)라고 우회적으로 해석한다. Som, Ⅰ, 215에서 필로는 영혼의 성전에서 참된 사람은 제사장처럼 자신을 다스린다고 말하고,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이나 '영혼에 투영된 신의 능력'이라고 한다(Congr., 97; agric., 9, 108; Rer. Div. Her., 231).||② 필로는 제사장 직무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였다(Ebr., 126). 그는 그것을 그의 최고 철학적 이상, 그의 금욕적 개념으로 생각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이상화한다(참조: H. Wensckewitz). 제사장은 완전히 무흠한 생활을 솔선 수범해야 한다(Spec, Leg., 1. 102). 육체적으로 무흠한 것은 영적인 완전 무결의 상징이다(Spec, Leg., 1. 80). 레위인들은 그들이 올바른 로고스를 따르고, 타락할 수 있는 영역과 관계를 끊고, 마음의 순결을 지키고, 감각적인 세계와 정욕에 얽혀드는 것을 피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진실한 제사장 상을 대표한다(참조: Det. Pot. Ins., 62ff; Sacr. AC. 128f). 따라서 필로는 이미 죄의 길을 걷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제사장이라고 한다. 필로에게 있어서 모든 의로운 현자는 제사장들이다(Spec, Leg., 1. 243).||③ 유대에는 율법에 따른 제사장 신분이 있었으며, 제사장직을 위한 예비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참된 제사장은 유대인이라기보다는 현자이다(Rer. Div. Her., 82f).||#2. 구약 및 이스라엘 역사의 제사장.||히에류스는 70인역본에서 약 900여회 나오며, 히브리어 코헨(제사장)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코헨은 아람어 카힌(선견자, 점쟁이)의 동족어이다.||(a) 가장 초기의 자료에서 이스라엘 제사장의 직무는 원래 제사라기보다 신탁의 전달이었다. 제사장의 신탁 예언, 제비에 의한 신탁이 모세 시대와 사사 시대에 이미 보여진다(출 17:9; 출 33:7-11; 삿 17:5 이하; 삿 18:30; 삼상 14:41; 삼상 28:6). 신 33:8-11에서 레위인들의 기본 임무는 우림과 둠밈을 관리하는 것이다(참조: Ez 21:21의 활의 신탁). 그 다음으로는 여호와의 정의와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마지막에야 비로소 희생 제사 임무가 언급된다. 모든 가장은 희생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참조: 창 8:20; 창 31:54).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특별한 특권 계급을 나타내지 않는다. 시내산 계시 이전에 제사장이 존재했다(출 19:22; 출 19:24). 모세는 레위인이며 제사장 직무를 이행했다. 아론도 레위인이다(출 4:14).|모세의 장인이자 미디안의 제사장(출 2:18 이하; 출 3:1)인 이드로는 시내산에서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공동 식사를 나누고 모세에게 율법의 규례에 관하여 조언했다(출 18:12 이하).|레위인 제사장이란 공식적 표현은 신명기에서 처음 발견된다(참조: 신 17:9). 레위인들이 특히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신 10:9; 삿 17:13), 그들만이 진정한 제사장직에 부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출 32:25 이하; 신 33:8 이하).|레위인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았으며(신 10:9; 삿 17:7; 삿 19:1). 부족의 조직에 속했으며, 신성한 율법의 전통을 돌보았다(신 27:14-26; 신 31:24 이하; 신 33:10). 모세는 레위 족속에 속한다.|제사장직은 레위 족속에 속한 모세로부터 시작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이 위임한 권세로서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을 성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다(출 28:1). 그리하여 그들은 희생 제사를 관할하는 의무를 맡아 수행했다(레 9장). 오직 아론의 가계와 그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출 28:1; 출 28:43; 출 40:12-15; 민 16:40; 민 17장; 민 18:1-8; 신 10:5; 왕상 8:4; 스 2:36). 아론의 자손은 특별한 법적 하자가 없는 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레 21:16).|아론은 레위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은 오로지 레위인 안에서 계승되었다. 모든 합법적인 제사장들은 예외 없이 레위인이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취한 후에 전체 레위 지파가 구별되었다. 그들은 장자들을 대신하여 성소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민 3:5 이하). 레위인은 세 그룹으로 구성되었다(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 그들에게는 각각 특수한 임무가 부여되었다(민 3:14-38).|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론의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했을 때(민 16장)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아론의 제사장직은 더욱 확고해졌다. 성막이나 성전의 제단에 봉사하는 자,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는 자는 모두 아론의 가계에 속한 자가 아니면 안되었다. 제사장의 직무는 주로 세가지였다.|(1) 여호와 앞에 있는 성소와 제단에 봉사하는 일(민 16:40; 민 18:5).|(2)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대하 15:3; 렘 18:18; 겔 7:26; 미 3:11),|(3)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우림과 둠밈을 통해, 출 28:30, 스 2:63), 이 밖에도 소송을 취급하고, 전쟁시에는 양각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메는 일, 문둥병자를 식별하는 일 등을 임무로 하였다.|제사장들은 지켜야 할 율법이 있었다(레 10:8 이하). 제사장들은 법적으로 순수한 유대 혈통을 이은 처녀라야 하는 엄격한 조건으로만 결혼할 수 있다(레 21:7; 레 21:14; 스 10:18; 스 10:19).|제사장들의 성별도 대제사장의 성별식과 같았으나 그보다 간략했으며(출 29장; 레 8장), 기름을 붓지 않았다. 대제사장은 기름부은 제사장이었다. 제사장들은 몸의 여러 부분에 기름과 피를 뿌렸다(출 29:21; 레 8:30).|예복은 제사를 집행할 때만 입었다. 제사장은 베로 만든 고의를 입고 겉옷에 띠를 띠고 관을 썼다(출 28:42; 출 29:8; 출 29:9; 레 8:13).|제사장직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이 성직 제도에 세 계급 즉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이 있었다. 이 제도는 포로 시대 후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 갔으며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에 걸쳐 있었다.||(b) ① 한편 군주 통치 이전 시대의 제사장들은 에브라임 미가 신당과 같은 성소와 관련해서만 찾을 수 있다(삿 17장). 이 미가의 제사장은 레위인이었으며, 그는 자기의 신상과 함께 단(Dan)으로 이끌려 갔다(삿 18장). 단 지파의 제사장직은 삿 18:30에서 모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합법화되고 있다.|실로(Shiloh)에 있는 언약궤의 성소에서 엘리의 가족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했으며, 그 직무는 희생과 번제물을 드리고 신탁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삼상 1:3; 삼상 2:27 이하). 실로에 있는 엘리의 가족이 내리막길로 치달은 후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언급이 놉(Nob)에서 나타난다(삼상 21:27; 삼상 22:9-23).|선지자 사무엘은 제사장의 일을 보았다(삼상 9:13-25). 제사를 드린 성소는 실로, 놉, 기브온, 브엘세바, 헤브론, 단, 아나돋, 벧엘 등이었다.||②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예루살렘을 빼앗아 수도로 만든 후로 예루살렘은 여러 세기 동안 제사 중심지가 되었다. 제사장들의 수가 증가하여 다윗은 24반으로 편성했다. 큰 절기의 행사에는 전부가 참가하지만, 보통 때는 한 반이 한 주일씩 봉사하고, 안식일 저녁의 희생 제사가 드려지기 전에 교대했다(대상 24:1-19; 왕하 11:19). 솔로몬이 죽고 나라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주전 922) 후는 북 왕국의 벧엘이 예루살렘과 대립했으며 왕이 제사장을 겸했다(왕상 12:33; 왕상 13:1-4).||③ 요시야의 개혁과 함께 높은 곳들의 성소(산당)는 없어지고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사의 중앙집중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요구는 622년 요시야의 개혁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모세 전통을 대표하는 레위인들과 선지자들 양자 모두에 의해 옹호되어 온 것, 즉 형상, 제의적 방종, 죽은 자에 대한 제사, 주술의 금지가 근본적으로 요구된다. 해결책은 우상숭배의 완전한 폐지와 산당의 제사장들의 완전한 축출에서 찾아진다. 이 목적을 위해 시온에 있는 여호와의 전이 유일한 합법적인 제사 중심지로 선언된다. 예루살렘 밖의 레위인들은 사독 가문을 옹호하여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정당성이 도전 받는다. 이후로부터 그들은 성전에서 더 낮은 임무만을 맡게 된다(왕하 23:5-9).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크나큰 위험도 수반한다. 여호와의 율법에 지시되어 있는 교훈은 희생 제사에 의해 무색해진다. 선지자들의 태도는 제사 의식에 대한 비평과 함께 그 지위에 날카로운 빛을 던진다. 하지만 프로페티즘(prophetism)이 이 전반적인 제사 제도의 발달을 저지할 수 없었으며, 다만 이 영역 내에서 여호와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여호와 신앙에 대한 가나안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일에 있어서 제사장 직무와 일치한다.||④ 포로기 이후의 재건으로 사독 후손에 대제사장직이, 아론의 후손에 일반 제사장직이, 레위 후손에 성전 지키는 일이 요구되었다(대상 24장).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에스라는 토라에 기초하여 공동체의 확고한 재건을 이룬다. 제사장직의 임무는 여호와의 법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임무는 또한 서기관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서기관은 제사장과 나란한 지위를 가진다. 서기관은 제사장을 율법의 지배 아래 둔다. 율법은 기록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학자들의 해석도 역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만약에 모든 더 이상의 발달이 히에류스(제사장)와 그람마튜스(서기관)의 제휴로 특징지워진다면 우리는 또한 서기관의 권위가 제사장의 권위를 능가해감을 주목해야 한다. 제사장은 성전 직무의 기관으로서 그 중요성을 유지한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적으로 높임받는 귀족 신분의 제사장 계급은 산헤드린에서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토라를 선포한다. 그들은 종교적 가르침과 감독을 책임진다. 그들은 심지어 제사장들도 가르친다. 제사장들은 단지 제의의 직무자일 뿐이다. 이리하여 서기관들은 제사장들의 경쟁자가 된다. 조만간 제사장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된다. 제사장직에 대한 낮은 평판이 이 과정에 기여한다.|이와 같이 에스라가 희생 제사 직무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책임 맡게 됨에 따라 성경 전문가 집단이 대두하여 제사장 직분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아보스(Aboth) 6:6의 '제사직과 왕직보다 율법을(익히는 것이) 더 위대하다'라는 구절과 '율법에 관심있는 비유대인은 대제사장과 같다'(B. Sanh. 59a)라는 구절에 반영돼 있다.||(c) 예수님 시대에는 사회적인 격차가 대제사장과 일반 제사장으로 양분시켰다. 후자는 포로에서 돌아온 4반열(24반열 중에서)을 다시 24반열로 나누어 편성했다(대상 24장; 눅 1:5; 눅 1:8). 나누어진 반열별로 한 번에 일주일씩 차례로 성전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나머지 시간동안 제사장들은 주변 땅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제식의 순수성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며, 회당 예배 시간에 율법을 낭독하고 상세히 설명하는 일을 자주 행했다. 제사장 직위는 세습적이었다. 성결과 결혼에 대한 엄격한 규례가 그들에게 실행되었다(레 21). 레위인들은 성전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대상 6:16-33)로 나뉘었으며, 마찬가지로 24반열로 임무 분할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제단에 접근하지 못했으며(민 18:3), 여호수아 21장에 보면 그들은 레위인들의 성읍들에 살았다.||#3. 신약성경에서 히에류스(제사장).||명사 히에류스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며, 복음서에서 11회 사용되었다. 대제사장 혹은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특히 서기관과 비교할 때 제사장은 신약성경에서 지극히 미미한 역할만 할 뿐이다.|이 단어에 대한 언급은 별문제로 하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제사 의식과 제사장에 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놀랍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참조: 시 110과 마 22:44)이나 제자들을 제사장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의 이미지를 제사장의 직무보다는 오히려 세속 세계에서 취하신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프로페티즘(prophetism)의 완성을 보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의에 대해 선지자들과 같은 비평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한편 예수님의 말씀 전체는 제사장보다는 선지자적 형태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는 선지자의 영을 받아 그의 말씀을 새로운 고지로 높이신다.||(a) 공관복음의 용례에서는 마 8:4; 막 1:44; 눅 5:14; 눅 17:14(참조: 레 13:49)의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예수님은 모세 율법에 정한 규례를 인정하신다. 그는 공중 보건이나 의식상의 정결의 보호와 관련된 문제에서 제사장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으신다. 그는 규례를 준수하도록 분명히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역시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신다. "저희에게 증거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제사장에게 가지는 의의를 나타낸다. 이 사역은 예수님의 권위를 생생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제사장 자신이 직접 확인함으로써 이 증거에 참여해야만 한다.||(b) 두 개의 다른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과 관련하여 그의 자유를 얼마나 지지하는지를 토라의 본보기로써 보여준다. 그것들은 족쇄 같은 율법주의의 철폐를 암시한다. 마 12:4과 병행구에서 다윗과 그 일행들이 위급한 때에 제사장의 특권을 위반한다(참조: 레 24:5-9; 삼상 21:7). 마 12:5 이하에서는 성전에서 제사장의 사역은 안식일을 정규적으로 정당하게 위반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위의 두 구절은 모두 제의적 율법의 중시와 율법보다 우월한 것 사이에서 전통적인 초기 그리스도교의 종합을 예증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에서 계명의 위반은 성경에 근거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더 크신 분, 즉 신정국의 왕과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 계심을 본다.||(c) 제사장 주제는 누가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눅 10:31 이하에서는 제사장 계급에 대하여 엄중히 비판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단으로 일컬어지는 사마리아인들이 사랑을 보임으로써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 나음을 보여준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밖의 다른 곳에서는 요 1:19에서만 연관되어 나온다. 누가복음의 서두, 눅 1:5에서는 예로부터 행하던 제사 현장에서 새로운 계시를 받는 히에류스가 언급되어 있다. 행 6:7에서는 많은 제사장들이 믿음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바는 복음에 의한 제사장들의 변화를 누가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d) 계 1:6과 계 5:10; 계 20:6에서 기독교인들은 "왕들과 제사장들"로 불리우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인간에게서 선발되었다. 따라서 출 19:6의 약속은 이행되었으며, 하나님 자신이 성전인 고로 이 새 반열에는 어떤 성전도 더 이상 필요없다(참조: 계 21:22; 계 20:6).(참조: J. Baehr; G. Schrenk).||(e) 기독교의 신앙이 구약의 예배 형식보다 우월하며 사실상 구약의 예배 형식을 대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열정으로,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결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새롭고, 진정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한다(히 5:5-10).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제사장직을 능가하여(히 7:15-17),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히 7:15-17), 과거의 제사 체계에서 상실한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히 7:18).||①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 자신의 맹세에 기초한다(히 7:20-22).|②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영속적이다(히 7:23-25).|③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들이 했던 것처럼 죄의 정화를 받을 필요가 없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공유한다(히 7:26-28).|④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참된 성소(모세의 장막은 이 참된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다)가 있는 하늘에서 지속된다(히 8:1-7).|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성취이다(히 8:8-13).|⑥ 예수님의 제사장직으로 드리는 제사는 반복할 필요가 없고, '단번에' 드려졌다(히 7:27; 히 9:12).|⑦ 이 제사의 제물은 죄를 제거할 수 없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서, 이 피를 통해 신자들은 거룩함을 얻는다.|⑧ 그 결과는 제사장 계급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온전하게 정상적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히 10:11-22).|⑨ 예수님의 제사장직으로 말미암는 약속들과 소망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에 의해 보장된다(히 9:28; 히 10:23).|⑩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용서는 우리의 사랑과 의의 역사를 위한 가장 고귀한 동기를 부여한다(히 10:19-25).|⑪ 하나님의 백성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효력은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에 의해 보증된다(히 7:25). 비록 바울은 그의 기록에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주된 주제로 삼지 않았지만(아마도 그의 사역이 주로 이방인들 즉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그들의 새로운 위치에 대한 지식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 정경이라는 하나님의 선물 중에 히브리서의 풍성한 통찰력이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G. E.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참조: NBD[CLC]).
여리고
@Iericwv
여리고 Jericho.||여리고는 '예리호'와 관련이 있으며, '향기의 장소'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여리고의 종려 나무와 발삼 나무를 칭송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 이름이 '향기나는 장소'를 뜻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셈족이 숭배한 달의 여신을 시사하고 있는 '달의 성읍'을 뜻한다고 추측한다. 이곳은 구약성경에서 '종려의 성읍', '종려 나무의 성'으로 불리웠다(신 34:3; 삿 1:16; 삿 3:13; 대하 28:15).|여리고는 사해 북쪽 연안에서 멀지 않은 곳, 예루살렘과 요단강 사이에 위치했으며, 예루살렘 동북동쪽으로 28km, 요단강 서쪽으로 11km 지점이다(민 22:1; 민 26:3). 여리고의 위치는 지진, 전쟁, 기타 참화로 늘 변했다.|구약 시대에 여리고는 '델 에스 술탈'이며 '엘리사의 샘'(쓴물을 단물로 만들어준)이 오늘도 여전히 솟아 오르고 있다(왕하 2:19-22). 길갈에서 서북 3km,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첫번 진쳤던(수 5:8-10) 비옥한 오아시스였다.|신약 시대의 여리고는 '툴룰 아부 엘 알라이'였으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여러 번 그리로 지나셨다. 구약 시대의 여리고에서 약 3km 남쪽이고 오늘의 여리고에서 서쪽으로 약 1.6km이다.|현대의 여리고는 '엘리하'란 촌이며, 엘리사 샘에서 동남 2.5km 지점이다.||#1. 구약성경.||모세가 죽기 전에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이곳을 바라 보았다(신 34:1-3).||여호수아가 여리고 지역에 정탐군으로 보내었고 기생과 라합이 그 정탐군을 숨겨 주었다(수 2:1-3; 수 6:25).||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군대가 먼저 이 곳으로 갔다(수 4:12; 수 4:13).||여호와께서 여리고를 여호수아에게 주기로 약속했으며(수 6:1-3), 여호수아는 이곳을 함락했다(수 6:20; 수 6:21; 수 24:11).||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재건축하는 자가 자식을 잃을 것이라고 저주했다(수 6:26).||여리고는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되었고(수 18:12; 수 18:21) 겐 사람이 거주했다(삿 1:16).||사사 시대 동안에 모압 사람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려고 여리고를 정복했다(삼하 10:4; 삼하 10:5; 대상 19:5).||그 후에 여리고가 암몬 지배 아래 들어갔을 때, 다윗이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맺은 부왕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새 왕 하눈을 위로하려고 사절단을 보냈는데, 하눈이 그 조객의 수염 절반을 깎아 수모를 주었으므로 사절단은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무르게 되었다(삼하 10:1-5; 대상 19:1-5).|아합 시대에(B.C. 9세기)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했는데, 여호수아의 저주대로 그 기초를 놓을 때 맏아들을 잃었고 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엘리야와 엘리사가 여리고를 방문하였으며, 그의 선생 엘리야가 곧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왕하 2:4-5).||여리고에 일단의 선지자의 생도가 거주했으며, 이곳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왕하 2:5; 왕하 2:15-18) 이곳의 나쁜 물을 고치는 첫번 이적을 행했다(왕하 2:20-22).||이스라엘 사람이 선지자 오뎃의 권고대로 유다 포로들을 이곳에서 놓아 주었다(스 2:34; 느 7:36).||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 여리고 사람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였다(느 3:2).||#2. 신약성경.||(a) 여리고는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언급되었다(눅 10:30).||(b) 예수님께서 여리고의 소경들을 고쳐 주셨다(마 20:29-31; 마 20:34; 막 10:46; 막 10:52; 눅 18:35).||(c) 세리장 삭개오가 이곳에 거주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 19:1; 눅 19: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ZTB; H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