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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감당하는
iJkanov"
충분한 suffici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히카노스(Hdt. 이래)는 히카노(%826: 도달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에 도달하는, ~에 이르는'|(b) '충분한, 족한, 매우 족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히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히카노스는 매우 큰 모임이나 오랜 시간 또는 어떤 자질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① 막 10:46에서 큰 모임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② 눅 8:27에서 오랜 시간에 대해 사용되었다: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③ 마 3:11에서 자질이나 자격에 대해 사용되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b) 히카노스가 신학적 의미로 사용된 구절들 가운데 마 3:11이 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겟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침례)요한이 메시야의 신들메도 들기를 "감당치" 못하겠다는 말은 세례(침례)요한의 종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례(침례)요한은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었으나,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이제껏 누구도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없었던 절대적인 주님이시며,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역사하실 것이다.|마 8:8; 눅 7:6의 백부장도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위엄을 고백하였다. 고전 15:9에서 바울은 사도 직분에 대한 그의 자격 부족을 인정하였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참조: 고후 2:16). 그러나 바울이 사도직에 대하여 자신이 개인적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하나님을 모든(자격의) 충분성의 근원으로 인정하는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후 3:5-6; 참조: 고전 7:25; 고후 4:1; 갈 2:7; 고전 15:10; 골 1:12).||(c)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수난 기사에서, 제자들이 검 두 개를 꺼내 보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히카논 에스틴(눅 22:35이하; 한글개역, "족하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의미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견해는 필요한 모든 것은 검 두 개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 제자들의 일반적인 이해 부족, 이 경우의 특수한 오해, 아니면 무기에 의존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책망이 암시되어 있다고 해석하였다. 이 경우에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논의를 종결 짓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다른 가능한 해석은 예수님께서 그러한 무기의 부적합성을 역설적으로 지적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해석은 예수님께서, 두 개의 검을 꺼낸 제자들의 사랑과 충성심을 인정하면서도 제자들에게 덧없는 무기를 의존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히카논 에스틴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계속하여 교제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보니페이스 8세는 이 구절을 알레고리적으로 사용하여 세속적인 권세와 영적인 권세(두 개의 검)가 모두 교황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다(Unam sanctam 1302).|(참조: K. H. Tengstorf; Walter Bauer; J. H. Thayer).
만족
iJkanovth"
능력, 역량.||#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히카노테스(Plat.)는 히카노스($2425: 충분한, 할 수 있는, 자격 있는)에서 유래했으며, '충분함, 능력, 역량, 자격'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카노테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3:5에 한번 나온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여기서 하카노테스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역량'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von Meding).
합당하게 하다
iJkanovw
충분하게 하다, 적합하게 하다, 자격을 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히카노오(Dion.)는 히카노스($2425: 충분한, 적합한, 할 수 있는, 자격 있는)에서 유래했으며, '충분하게 하다, 할 수 있게 하다, 적합하게 하다, 자격을 주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히카노오는 신약성경에서 바울 서신에만 2회 나온다.||(a)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바울이 사도직에 대하여 자신이 개인적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하나님을 모든 (자격의) 충분성의 근원으로 인정하는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일군으로 '적합하게' 또는 자격있게 하셨다.||(b)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히카노오는 '적합하게나 자격있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Tengstorf).
소원
iJkethriva
탄원, 간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히케테리아(Aeschyl., Hdt. 이래)는 히케테스(%368: 보호를 요청하는 자, 탄원자)에서 유래했으며, '보호의 요청, 탄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위급한 간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히케테리아는 신약성경에서 히 5:7에 한번 일반적인 의미로 '간구'라는 의미로 나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습기
iJkmav"
습기 moisture.||명사 이크마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습기'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눅 8:6에 한번 나온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고니온
!Ikovnion
이고니온 Iconium(지)||#1. 이고니온의 역사.||이코니온은 '형상이 닮은'이란 뜻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고니온'이라고 음역했다.|이고니온은 소아시아의 한 저명한 도시며 루가오니아 지방의 수도였으며, 현재의 지명은 '코니아'(Konya)이다.|고대 전승에 의하면 이고니온은 대홍수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대홍수 이후에 재건되었다. 이고니온 사람들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아데나(Athena)가 진흙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들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한다. 이 때문에 그들 도시의 이름이 이상에 대한 헬라어 에이콘($1504: 형상)에서 유래되었다 믿었다.|이고니온은 고원 지대의 가장 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물이 풍부하고, 생산적이고, 부유한 지역으로, 상업과 농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다.||#2. 신약성경.||신약성경에서 이고니온은 6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5회, 디모데후서에 1회 사용되었다(행 13:51; 행 14:1; 행 14:19; 행 14:21; 행 16:2; 딤후 3:11).||(a) 바울은 이고니온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여 성과를 얻었으나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핍박함으로 도망했다.||(b) 그래서 바울 등은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바울을 돌로 쳐 거반 죽게 하였다(행 14:19).||(c) 바울 등은 다시 이고니온 등을 방문하여 환란에 관해 제자들을 격려했다(행 14:21).||(d) 행 16:2에서 디모데는 이고니온 사람으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였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e) 바울은 딤후 3:11에서 이고니온 등에서 당한 핍박에서 주께서 자기를 건지신 것을 언급한다: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당했는가를 생각해 본다.|(참조: PEB; NBD 등).
즐겨
iJlarov"
즐거운 cheefu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힐라로스(Aristoph., X. 이래)는 힐라오스(%369: 호의를 가진, 기분좋은)에서 유래했으며, '즐거운' cheerful, '기쁜' joyous, '어떤 것을 선뜻 행하는'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일광, 노래들, 메시지 그리고 특히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후대에 이 단어는 '은혜로운'을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힐라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촌(7522: 호의, 친절, 기꺼이 받아들임, 욕구, 희망)의 역어로, '은혜'(잠 19:12)를 나타낸다.|70인역본에서 이 단어의 통상적인 용례는 '유쾌한 표정'이나 통치자의 '은총'을 나타낸다(욥 33:26; 잠 19:12 등).||#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힐라로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9:7에 한번 나온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여기서 힐라로스는 관용의 '즐거움'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단어의 의미는 마음의 후함에 가깝다(참조: 롬 12:8). 이 즐거움은 빌 2:14의 원망 및 시비와 날카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으면 이러한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된다(참조: 벧전 4:9-벧전 4:1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Bultmann).
힐라로테스
iJlarovth"
즐거움 cheerful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힐라로테스(Diod.)는 힐라로스($2431: 즐거운, 기쁜)에서 유래했으며, '즐거움, 기쁨, 유쾌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힐라로테스는 70인역본에서 잠 18:22에 한번 라촌(7522: 호의, 친절, 기꺼이 받아들임, 욕구, 희망)을 번역하여 '은총'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힐라로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2:8에 한번 '즐거움'이란 의미로 나온다: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여기서 힐라로테스의 즐거움에는 마음의 후함을 함축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Bultmann).
구속하려 하다
iJlavskomai
자비롭다, 속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힐라스코마이(Homer 이래)는,||(a) '달래다, 조정하다',|(b) '화해시키다, 속죄하다',|(c) '은혜롭게 만들다, 은혜롭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힐라스코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살라흐의 역어로 '자비롭다, 은혜롭다, 은혜롭게 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출 32:14; 애 3:42; 왕하 5:18).||#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힐라스코마이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8:13에서 하나님께 자비를 부르짖는 것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b) 히 2:17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임무는 하나님 앞에서 죄들을 속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화목제
iJlasmov"
달램, 화해, 화목제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힐라스모스(Plut.)는 힐라스코마이($2433)에서 유래했으며,||(a) '달램, 조정, 화해',|(b) '화목제물'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힐라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히브리어 킵푸르(보상, 죄값, 속죄; 레 25:9; 민 5:8), 슬리하(5547: 용서; 시 130:4; 단 9:9)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제의적 속죄와 하나님의 용서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힐라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화목제물'을 의미한다.||(a)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b)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속죄소
iJlasthvrion
속죄하는 것, 속죄소||#1. 고전 헬라어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중성명사 힐라스테리온은||(a) '속죄하는 것, 화해시키는 것'|(b) '화해의 수단, 속죄소'를 의미한다.|(c) 중성명사는 70인역본에서 약 24회 나오며, 주로 캅포렛(속죄제, 속죄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5:16이하; 출 31:7; 레 16:2이하; 민 7:89). 이 단어의 의미는 속죄의 장소가 아니라 속죄를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속죄를 행하는 것'. 겔 43:14에서 토 힐라스테리온은 번제단을 가리킨다(아마도 뿌려진 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이 용어는 캅포렛을 가리킨다. 하지만 70인역본 및 관련 문헌들 외의 문헌에서는 '봉납' oblation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어로 더 자주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중성명사 힐라스테리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로마서(롬 3:25)와 히브리서(히 9:5)에만 나온다.||(a)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바울이 여기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캅포렛을 사용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히 "죄를 속죄하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계시하고 구원을 가져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 자신이 행위의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요지는 인간의 달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죄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는 문구는 힐라스테리온(화목제물)이라는 말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신앙의 대상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며, 우리가 그 분을 믿을 때 그는 우리의 힐라스테리온이 되시며, 화해라는 말의 주제이시다(참조: "세우셨으니"라는 문구는 하나님의 선택보다는 사도의 설교를 언급하는 것 같다). "그의 피로 인하여"라는 문구는 믿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힐라스테리온을 설명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신자들의 힐라스테리온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신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힐라스테리온으로서의 예수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이전의 죄를 간과하셨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으며 바로 이 점에서 캅포렛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외적인 순종이 아닌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보다 더 높은 캅포렛이라는 것이 바로 롬 3:25의 요지이다. 이 속죄는 동물의 피가 아닌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 인한 것이고, 그의 피는 지성소에서 숨겨진 상태로 뿌려진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뿌려졌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바울은 캅포렛의 개념을 인격화 그리고 영적화 하였으며, 이는 제의적인 예배나 또는 할례를 인격화·영적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참조: 롬 12:1; 골 2:11). 만약 바울이 실제적인 캅포렛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는 그것을 예수님께 다시 적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되고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분이다.||(b) 히 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여기서 장막 안에 있는 지성소에 관한 묘사에서 힐라스테리온은 '속죄소'를 의미한다.|(참조: H. G. Link; C. Prown; F. Buchsel).
그리 마옵소서
i{lew"
자비로운 mercifu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힐레오스(Homer 이래)는 '호의적인, 자비로운, 은혜로운'을 의미하며, 특히 통치자들과 신적 존재들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힐레오스는 70인역본에서 33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살라흐(용서하다, 관용하다, 민 14:20; 왕상 8:30; 대하 6:21; 렘 5:1)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용서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힐레오스는 힐라라(2486: 결코 아니다, 당치 않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창 43:23; 삼상 14:45; 삼하 20:20; 대상 11:19).||#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힐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마 16:22의 힐레오스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이에 대해 베드로가 반발한 기록에 부정 감탄사로 나온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에서 힐레오스 소이, 퀴리에를 직역하면 '주여, 당신에게 자비를'이다. 이 말은 에이헤 호 데오스(신이여)라는 말로 이해된다. 성경상의 병행구들에 대해서는 창 43:23; 삼하 20:20; 대상 11:19을 참조하라.||(b) 히 8:12은 렘 31:31-렘 31:34의 인용문 끝에 온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은 새 언약이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주장, 곧 이것은 에레미야가 예언했던 그 언약이며, 따라서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 8:13)라는 주장으로 결론을 맺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G. Link; C. Brown).
일루리곤
!Illurikovn
일루리곤 Illyricum||일뤼리콘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일루리곤이라고 음역했다. 일루리곤은 그리스의 북쪽 발칸 반도의 서부에 있는 로마 영토이다.|지금은 주로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가 차지한 이 지역은 고대에 아드리아해와 동알프스 산맥, 다뉴브강, 살다하강과 세라우니아 산맥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스트라보(Strabo)에 의하면(7:317), 그 해안은 훌륭한 항구들을 자랑하였고 해안의 평야들은 햇볕이 잘 들고 비옥했지만 내륙은 산이 많고 추웠다.|헬라인들은 첫째로 광산 때문에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으나 그 곳 사람들의 성품이 사납고 약탈적이어서 식민지를 확장하지 못했다.|B. C. 2000년에 그 곳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민족에게 점령당했다. 헬라인들은 B. C. 6세기에 처음으로 그 곳을 식민지화했다. 마게도니아의 왕들은 4세기에 일루리곤의 부족들과 전쟁을 벌였으나 3세기에 이르러서야 스코드라 왕국이 세워졌다. 헬라 식민지에 대한 침략과 그리스와 로마 선박에 대한 해적 행위 때문에 로마인들은 튜타 여왕이 이끄는 일루리곤 사람들과 두 번의 전쟁(B.C. 229-228과 B. C. 219년)을 벌였다.|167년 겐디우스의 패배 이후에 그 곳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서 이탈리아, 마게도니아, 그리고 알프스 남쪽의 골(Gaul)에게 번갈아 가며 지배를 받았다.|시저는 B.C. 59년에 그 곳의 지방 총독이었다. 옥타비안(Octavian)은 B. C. 35-33년 그 곳의 여러 부족들을 정복하였다. B. C. 27년에 그는 그 곳을 원로원의 영지로 삼았다. B. C. 11년에 그 곳은 판노니 족 사이에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당시 그 영토는 다뉴브 강까지 뻗어 있었다. 마지막 반란이 A. D. 9년, 3년 간의 전투 끝에 디베료(Tiberius)에 의해 진압되어 확고한 제국의 땅이 되었다.||신약 성경에는 일루리곤이 한 번 언급되어 있다. 다소 모호한 진술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라고 말하였다. 바울이 의미하는 바가 일루리곤이 동방 세계의 서쪽 경계선이고 그가 그 곳에 이르기까지 말씀을 전파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실제로 그 곳에서 말씀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바울이 말씀 전파한 지역을 나타내는 "이 지방에"(롬 15:23)라는 말은 마게도니아보다 더 넓은 지역을 말하는 것일 것인데 아마도 일루리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더욱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한 것은 복음이 그 곳에 전파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바울이 그 곳에 갔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헬레스폰트 해협에서 아드리아해의 한 항구인 딜하키움으로 이어지는 엑나티아 길을 통해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때 일루리곤의 남쪽 지방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참조: S. Casson, Macedonia, Thrace and Illyria (1926), passim, Vulic in Pauly Wissowa s. v. "Illyricum"; Fluss in Pauly Wissowa suppl. V, "Illyrioi.")
가죽 줄
iJmav"
가죽 끈 a tho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히마스(Homer 이래)는 '가죽 끈' 또는 '가죽 줄'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히마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보트(꼰 '끈, 줄')를 번역하여 '줄'(욥 39:10; 사 5:18)을, 세로크를 번역하여 신의 '들메'를 나타낸다(사 5:27). 히마스는 마카베오사서 9:11에서 줄로 손이나 발을 묶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히마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사용되었다.||(a) 행 22:25에서 히마스는 죄수들을 결박하는 '가죽 줄'에 대해 사용되었다: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b) 막 1:7에서 히마스는 신을 발에 묶는 가죽 끈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병행구, 눅 3:16; 요 1:27). 먼지 투성이의 (주인의) 신 끈을 허리를 굽혀 푸는 일은 종들 중에도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이다. 요한은 오시는 구원자와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자기는 이러한 종노릇 조차 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W.E.Vine).
옷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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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히마티조(PLond. )는 히마티온($2440: 겉옷, 외투)에서 유래했으며, '옷을 입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히마티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막 5:15(병행구, 눅 8:35)에서 히마티조는 '옷을 입다'를 의미한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