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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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Jonah(인).||#1. 구약성경.||요나는 히브리어 요나(3124: 비둘기)의 음역이며, '비둘기'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도 '요나'로 음역했다.||(a)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이며, 갈릴리 북부 스불론 지파의 출신이며, 선지자이다(요 1:1). 요나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살았으며, '여로보암 2세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왕하 14:25).||(b) 요나는 사역 초기에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으나 사역 후기에는 니느웨로 보냄을 받았다. 요나서는 니느웨 사역에 대한 기록이다.|간단히 열거하면|① 요나는 니느웨 성읍의 멸망을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았으나(요 1:2),|②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행 배를 탔다(욘 1:3).|③ 그의 잘못된 행위가 폭풍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바다에 던져졌다(욘 1:11-15).|④ 그는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으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욘 1:17; 욘 2:1; 7-9), 구원을 받았다(욘 2:10).|⑤ 요나는 동일한 명령을 다시 받고(욘 3:1-2), 니느웨로 가서 멸망을 선포했다(욘 3:4).|⑥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욘 3:5-8),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릴 뜻을 돌이키시고 용서해 주셨다(욘 3:10).|⑦ 요나는 하나님의 니느웨에 대한 용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노를 품고(요 4:1-3),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고대하며 지켜보았다.|⑧ 하나님은 박넝쿨로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자비를 요나에게 가르쳐 주었다(욘 4:6-11).|⑨ 요나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마 12:39 이하; 마 16:4; 눅 11:29; 눅 11:30).||(c) J. A. Motyer의 연구에 따르면 요나의 이야기에서 네가지 문제가 간단한 의문을 일으킨다.|① 첫째, 그의 투쟁의 동기가 무엇인가(욘 1:3 이하)? 대부분의 견해는 그가 종교적인 배타주의자여서, 이스라엘의 특권을 이방인들과 공유하는 것을 보기 싫어 도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견해는 요나서를 속죄일에 통독하도록 정한 바벨로니아 탈무드에 나타난 것과 같이,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하나님 백성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강조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Meg. 31a; 참조: M. D. Goulder).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강조하려던 점이다. 요나는 그렇게 해서 그의 백성을 위험하게 만들기 보다는, 그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 출 34:6, 7(욘 4:2)을 인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에 대한 언급을 빠뜨렸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② 둘째, 요나서는 그의 놀랄만한 경험에 그 자신의 주석을 기록했다. 그의 기도에서 물고기의 뱃속은 "스올의 뱃속"(욘 2:2; 지옥 Hell)이 된다. 스올이 흔히 어둡고 위협적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은 것에 대한 은유이다는 점을 인식해볼 때, 여기에서의 은유의 사용은 "구덩이"(욘 2:6)의 언급과 더불어 예수님의 이 사건 인용에 대한 구약성경 배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③ 셋째, 우리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무슨 주제들에 관해 전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기록된 바로는 다가올 심판의 선포가 전부였다(욘 3:4). 회개를 하도록 만든 것은 이 말의 힘이며, 그 말의 배후에 깃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었다. 기록에 나타나 있는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경험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④ 넷째, 회개의 요구는 인정되었고 하나님은 이에 완전한 만족을 표하셨다(욘 3:10 이하). 이것은 그가 원하신 바이며, 따라서 실제로 용서를 하였다.||#2. 신약성경.||요나는 신약성경에서 9회 사복음서에만 나오며, 선지자 요나에 관해 사용되었다. 요나의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요나의 표적"에 관한 조망에서만 나타난다(마 12:38-마 12:40; 병행구 눅 11:29 이하; 눅 11:32; 마 16:4). 요나의 생애 중 일어난 두 사건,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간 지낸 일과 니느웨에서 회개를 전한 일이 언급된다.|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는데, 이는 분명히 그들을 니느웨와 대비시키려고 의도한 것이다. 그들은 마음과 생활이 "사악하고", 육적, 영적으로 "음란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구한 표적을 주님께서 거절하신 것은 그들의 영적인 우둔함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마 16:1에는 그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 추측컨대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히 오는 어떤 것, 예수님 자신이 그 일에 아무런 연루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확증하는 어떤 것-즉 사 7:10에 주어진 것같은 표적을 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에 대해(참조: 마 11:4) 이것은 그들 눈 앞에서 그 자신의 일을 계속 행하는 데도 알지 못하는 지독한 맹목이었다.|이 문맥에서 그는 삼중의 비교를 제시한다.||(a) 첫째, 예수님은 그 자신과 요나를 공공연히 비교시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마 16:4; 눅 11:30). 특히 전자에서 그는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후자에서 시제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요나가...됨과(에게네토) 같이 인자도...그러하리라(에스타이)". 말하자면, 요나의 이야기를 다시 검토해 보면, 그는 하늘이 보내신 설득자(persuader)였고(앞에 언급한 첫째 범주의 표적) 분수령(watershed), 즉 한번 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음을 그들은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자에 관해서도(두번째 범주의 표적), 나중에 언젠가는 그들로 하여금 인자도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며, 그 안에서 역시 좋든 나쁘든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b) 둘째로, 예수님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머문 요나의 경험과, 앞으로 그 자신 "땅속에" 머물게 되는 것(밤 낮 사흘)을 비교한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 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이 요나 표상의 표적으로서 예수님의 지위가 명백해지는 그런 빛에 비추어서 다가오는 사건을 예언했을 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명백한 죽음의 경험으로부터의 부활은 바로 그들이 한때 불신앙에서 구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알아볼 수 없었던-예수님이 완전히 예견했듯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 될 것이다(참조: 눅 16:31). 마태가 묘사한, 지옥같은 상황에 있는 요나와 실제로 "땅속에" 있는 예수님과의 비교는 특별히 적절한 것이다.||(c) 예수님이 비교한 표적에서 세번째 요소는 요나의 설교와 그 결과, 그리고 그 자신의 설교와 그 결과 사이에 있는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병행구 눅 11:32). 여기서 비교는 유력한 이유가 된다. 회개를 요구하는 자가 더 위대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따르는 심판은 더욱 중대할 것이다. 선지자의 지위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은 여기서 마 23:34에 나오는 그대로 그의 신성에 적합한 명예를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참조: J. A. Motyer; A. S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