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석
kalov"
선한, 좋은, 아름다운, 고상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칼로스(Homer 이래)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 칼리아(Kalya: 건전한, 강력한, 강한, 탁월한)와 기원상 관련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a) '조직상 건강한, 적합한, 유용한, 쓸모있는'을 의미하며, 알맞은 피난처(Homer), 건강한 몸(Plato), 순수한 금속(Theognis), 흠없는 희생 제물(Xenophon), 알맞거나 편리한 장소(Xenophon),||(b) 미학적으로 '아름다운'을 뜻하며, 따라서 '마음에 드는, 매력적인, 사랑스러운'이란 의미도 지닌다.||(c) 사람의 내적 성질에 적용될 때 이 단어는 '도덕적으로 선한'이란 의미를 가진다(Sophocles, Pindar).||칼로스의 개념은 헬라 사상의 역사 과정에서 '탁시스' 질서와 '쉼메트리아'(symmetria: 대칭, 균형)와 연결되어 총괄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칼로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외적 현상이든 내적 성향이든 간에 건전함, 건강, 완전함, 질서의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헬라 세계에서는 이 용어를 특히 신의 세계에 적용한다(W. Grundmann, kalos, TDNT, Ⅲ537).||#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칼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25회 나오며, 15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칼로스는 야페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예: 창 12:14; 창 29:17; 창 39:6; 창 41:2), '아름다운'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부분 토브('유용한, 선한'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유용한'(예: 창 2:9), 더욱 자주 '도덕적으로 선한'을 의미한다(잠 17:26; 잠 18:5 등).|칼로스가 도덕적 선으로 나타나는 곳에는 토브의 역어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로스는 창조 기사에서 질서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가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창 1:4; 창 1:10; 창 1:12; 창 1:21; 창 1:25; 창 1:31), 미학적인 의미는 대체로 결여되어 있다.||(b) 대부분의 경우에 칼로스는 구약성경과 유대의 윤리적 체제에서 '도덕적 선'을 의미하며 아가도스($18)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민 24:1; 신 6:18; 신 12:28; 대하 14:1; 잠 3:4; 사 1:17; 암 5:14 이하; 미 6:8 등). 칼로스는 타락 기사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창 2:17; 창 2:18; 창 3 5 이하; 창 3:22).||(c) 칼로스가 아가도스와 병행하여 사용될 때, '사랑스러운', 또는 '기뻐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시 135:3). (참조: G. Bertram).||#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칼로스는 신약성경에서 9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칼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선한'을 뜻하기 위해 아가도스($18: 선한, 좋은, 104회)만큼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신약성경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일이다.||(a) 공관복음서의 용법.|① 세례(침례) 요한의 설교에서 "좋은 열매"에 대한 비유를 본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10; 병행구 눅 3:9). 열매가 단수라면 그것은 새로운 삶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개개의 선한(혹은 악한) 행위들을 더 이상 하나 하나 헤아릴 수 없다(KRV Study Bible).||② 예수님의 '나무와 열매에 대한 비유'에서도 '좋은 열매'가 나타난다(마 7:17; 마 7:18; 마 7:19; 마 12:33). 좋은 열매가 나는 것은 나무가 전체적으로 건강한 경우이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님의 선포에 뿌리를 박고 그것으로부터 살 때에 좋은 열매를 맺는다.|사람이 자기 밭에 뿌린 "좋은 씨"는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말씀이다(마 13:24; 마 13:27; 마 13:37; 마 13:38).||③ 그물로 잡아 그릇에 담은 좋은 것들은 메타노이아($3341: 마음의 변화, 회개)에 의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게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마 13:48). 선교라는 그물은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인다. 여기서 칼로스는 항상 하나님의 바실레이아(나라)를 지향한다.||④ 마 5:16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선행을 요구하신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게 하려고 애썼던 구식 '율법의 공적'이 아니라(참조: 롬 3:10; 롬 3:28; 갈 2:16), 지금 동터 오는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 걸맞는 삶과 행동거지를 가리킨다. 즉 마 5:3-12과 마 5:21-48에 제시된 척도에 따르는 삶과 행동거지이다(참조: 엡 2:8-10).||⑤ 베다니의 시몬의 집에서 기름 붓는 기사에서(막 14:6) 예수님은 자신의 임박한 수난을 알아채고, 그에게 행한 그 사랑의 행위를 제자들의 기름을 판 돈으로 행할 수 있는 자선보다 중요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그의 육체에 미리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의 수난의 길을 제자들에게 확인시키는-란 오로지 이 역사적 계기 안에서만 제공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일을 행할 기회는 더 이상 없으나 구제는 언제나 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b) 요한복음의 용법.|① 요 2:10에서 칼로스는 다른 종류보다 '더 우수한, 상질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여기에서 '상질의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기쁨과 삶의 풍요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상징이다(욜 3:18; 암 9:13; 창 49:10-12).||② 요 10:11; 요 10:14에서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묘사한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이것은 헬레니즘의 목신(牧神)들 및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들(지도자들)과 대조되는 독특한 주장을 전달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선한 목자가 그의 양떼들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는 양떼들을 이리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는데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양떼들로 하여금 그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나누고 있는 친교에 참여케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선하고, 능력이 있으며, 찬양을 받을만한 참 목자임을 입증하신다.||③ 요 10:32; 요 10:33에서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행한 많은 선행들에 관해 이야기한다.|예수님은 그의 선행 중에서 어떤 것 때문에 백성들이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라고 묻는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에 선하다. 그렇지만 그가 한 일들에는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없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메시야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백성들이 그를 돌로 치려한 것은 그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의 메시야적 주장 때문이었다.||(c) 바울 서신의 용법.|① 바울 문헌에서 최초의 용법은 독립적이며, 이 단어는 토 아가돈(선 good)과 동의어이다. 롬 7:18; 롬 7:21에서 이 단어는 우리가 내적으로 행하기를 원하는 선을 나타낸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러나 이 선은 육신의 법과 상충하므로 우리는 칼론을 성취할 수 없다.|고후 13:7에서 동일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사용된다: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이 가능성은 그리스도인 전체 삶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갈 6:9).(참조: 롬 12:17, 여기서 칼론은 찬양을 받는 것이다)||② 다른 한편 이 단어는 '옳은, 좋은, 칭찬할만한, 귀중한' 것에 대해서 사용된다(부정사와 함께 칼론 에스티). 예를 들면 고전 7:1; 고전 7:8; 고전 7:26에서 부부 관계의 자제나 처녀성에 대해 그렇게 사용된다. 그러나 이 단어는 갈 4:18의 좋은 일에 대한 열심, 롬 14:21의 형제를 위하여 먹는 것을 삼가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③ 롬 7:16에서는 형용사로 율법에 대해 사용된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고전 5:6에서는 고린도인들의 자랑에 대해 사용된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바울 문헌에서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다. 바울은 교회에게 사랑의 일이라는 의미에서의 선한 일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궁핍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롬 12:20)., 대접하는 것(롬 12:13; 고전 16:11)이 선한 일에 속한다.||(d) 목회 서신의 용법.|① 목회 서신에서 카로스는 더욱더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Julicher는 그의 Einleitung에서 '목회서신에서 칼로스가 독립적으로 24회 사용되고 10개의 바울 서신들에게 단 6회만이 사용되었으며, 게다가 바울은 거의 항상 명사로 사용하는 반면에 목회서신에서는 형용사로 20회 사용되고, 특히 에르가(디도서에서 4회)와 함께 사용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② 딤전 5:10; 딤전 5:25; 딤전 6:18; 딛 2:7; 딛 2:14; 딛 3:8; 딛 3:14에서 카라 에르가(선한 행실)가 언급되어 있고, 딤전 3:1에서는 칼론 에그론(선한 일)이 언급되어 있다. 카라 에르가는 그리스도께서 마음 먹고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그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 사랑과 자비의 일이다. 그 결과는 믿음에 기초한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는 삶의 양식(mode)이다(특히 딤전 5:10 이하). 딛 3:8은 카라 에르가에 대해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르다우며 사람들에 유익하니라".|중보 기도는 모든 사람과 국가와 권위를 가진 자들을 위하여 필요하며, 또 평안한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 이것은 선한 것이다. 따라서 이 권면은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딤전 2:3)라는 말로 끝맺는다. 여기서 칼론은 70인역본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그 독특한 색채를 취한다.||③ 또 칼로스는 군사적인 이미지와 연관된다. 디모데(서신의 수신자)는 딤전 6:12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후 2:3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딤전 1:18 이하에서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딤전 1:18 이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기자는 딤후 4:7에서 자신에 대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한다.||④ 기자는 서신의 수신자 디모데에게 이전에 많은 증인들 앞에서 증거한 칼레 아몰로기아("선한 증거")를 회상시킨다: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셨다"(딤전 6:12 이하). 그런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선한 증거(또는 고백)을 해야 한다.||⑤ 그리고 칼로스는 칼로스 노모스, 즉 구약성경(딤전 1:8), 감독이 지녀야만 하는(딤전 3:7) 칼레 마르튀리아("선한 증거"), 집사들이 칼로스 디아코네인으로 마땅히 얻는 바드모스 칼로스("아름다운 지위", 딤전 3:13), 서신의 수신자(디모데)가 공동체를 올바르게 지도하면 될 칼로스 디아코노스("선한 일군", 딤전 4:6), 복음인 칼레 디다스칼리아("선한 교훈", 딤전 4:6), 사람이 선한 일로써 이루는 칼로스 데멜리오스 에이스 토 멜론("장래에 좋은 터", 딤전 6:19), 디모데게 복음을 통하여 받은 칼레 파라데케(딤후 1:14, "부탁한 아름다운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판크티스마 데우)이 선하다고 한다(딤전 4:4). 이러한 구절들에서 칼로스는 대체로 옳은 행위, 올바른 가르침, 세상에 합당한 태도와 같은 것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선한, 올바른, 탁월한, 질서정연한'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지향한다. 목회 서신에서 이러한 용법이 사용된 이유는 명확하다. 이 단어는 헬레니즘의 대중 언어에서 인기가 있었으며, 헬라니즘의 가치 감각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제 2세대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특징 짓는 것을 더욱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e) 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용법.|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용법은 동일한 노선을 따른다. 따라서 칼로스는 벧전 4:10에서 "선한 청지기", 약 2:7에서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 약 3:13에서 "선행", 벧전 2:12에서 "선한 일", 히 13:18에서 "선한 양심"에 대해 사용되었다.|비록 어구 자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행위로서의 선한 일은 특히 야고보서에서 훈계의 주제이다(약 1:27; 약 2:15; 약 2:16).|(참조: G. Bertram; E. Beyr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