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84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빠뜨리우다
katapontivzw
가라 앉다, 빠지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폰티조(Epicharmus 등)는 카타($2596)와 폰토스($4195)의 어근에서 유래했으며,||(a) '바다에 빠지게 하다, 내려가게 하다',|(b) 수동태에서 자동사적으로 '가라 앉다, 내려가다, 빠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폰티조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 2회 나온다.||(a) 마 14:30에서 독립적 용법으로 '가라 앉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b) 마 18:6에서 바다의 깊은 곳에 '빠지게 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한 가혹한 자에 대한 형벌이다.
카타라
katavra
저주 curse.||#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명사 카타라(Aeschyl. 이래)는 카타($2596: 아래로, ~에 대하여)와 아라($685: 저주)에서 유래했으며, '저주'를 의미한다. 거의 모든 종교 역사에서 발견되는 '저주'는 초자연적인 작용에 의해 해를 가하도록 고안된 말이다. 제사장, 족장, 죽어가는 자 등이 이 저주를 행했다. 이 저주에는 종종 특별한 공식 문구와 제사 의식이 수반되기도 하고 때때로 기도와 연관되기도 한다. 이 저주는 성취되리라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법률에서 한 역할을 한다(예를 들면, 맹세를 어긴데 대한 자기 저주).|70인역본에서 카타라는 약 4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켈랄라(7045: 저주, 악담, 비방)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27:12; 창 27:13; 민 23:25; 신 11:26; 신 11:28; 신 11:29; 신 27:13; 신 28:15; 신 28:45; 렘 24:9; 말 2:2 등).||#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라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벧후 2:14에서 저주의 자식은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하는 이단자들이다.||(b) 히 6:8에서 비유로 비와 경작에도 불구하고 가시와 엉겅퀴만 자라는 땅은 저주 받음에 가깝다. 이 구절은 영적 축복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저버리는(히 6:4-10)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c) 갈리디아서에서 카타라는 바울이 율법의 저주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대해 논한 문맥에 사용되었다(갈 3:10; 갈 3:13).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율법의 저주 아래 놓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도 율법을 이룰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갈 3:10), 무엇보다도 율법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그릇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갈 3:11, 참조: 롬 10:3과 빌 3:3-9).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이 저주를 자기 몸에 지셨으며(갈 3:13)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퍼지게 하는 길을 트셨다(갈 3:14).(KRV study Bible).||(d)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찬송과 저주가 한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기를 지옥 세력의 경로로 만든 사람은 수시로 천국 세력의 경로로 만들거나 거룩한 제사(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수 없다. 오순절의 불은 지옥불이 역사하는 곳에 동시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탄의 일군이 되어 형제를 저주하는 자가 동시에 거룩한 하나님 앞에 진정한 찬미를 드리는 일군이 될 수 없다. 악담을 하는 자는 비록 찬송을 한다 할지라도 악한 근원(성질)의 표요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화 받지 못한 증거이다. 이러한 사람이 하는 찬송(모든 종교 행위)는 외식이니 하나님이 그들을 받지 않으신다.|(참조: F. Buchsel; W. Mundle).
저주를 받다
kataravomai
저주하다 cur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라오마이(Homer 이래)는 카타라($2671: 저주)에서 유래했으며, '어떤 사람을 저주하다, 어떤 사람에게 악담하다, 어떤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라고 빌다'를 의미한다.|고대 사상에 의하면 음성 언어는 발설 행위에 의해 해방되는, 그리고 그것과 독립해 있는 고유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저주받은 사람은 멸망시키는 힘의 영역에 접하게 된다. 저주는 저주 안에 있는 힘이 소모될 때까지, 저주 받은 자를 향하여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것은 헬라의 비극들에서 자명한 것이며, 이런 비극들에서 사람들은 아라($685: 저주)의 강박감 아래서 행동한다. 따라서 저주의 말들과 축복의 말들은 악한 바람, 또는 경건한 바람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라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6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칼랄(보잘것없다, 가볍다, 하잘것 없다, 레 24:11, 14, 15, 23; 삼하 16:5, 7, 9, 10, 11, 13 등)의 히필형, 아라르(저주하다, 창 12:3; 민 22:6, 12), 카바브(저주하다, 민 23:8, 13, 25, 27; 24:10)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민 22-24장의 발람에 대한 기사는, 종교의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저주의 '성취는 저주 행위 속에 내포되어 있다'(F. Buchsel, TDNT)는 신념이 역시 이스라엘에서도 살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압 왕 발락은 자신이 강대한 적의 정복자가 되도록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을 막아 저주하지 못하게 하셨다. 발람은 오히려 발락의 의사와는 달리 이스라엘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말 2:2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은 제사장들의 복이 하나님에 의하여 저주로 변하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 자신만이 이 저주를 취소하실 수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라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저주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하자 그것을 저주하셨다. 그 저주는 이루어졌고 그 무화과 나무는 시들었다. 많은 주석가들(A. Schlatter; J. Schniewind)은 이 기사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비유적 언급을 발견한다(참조: 눅 13:6-9).||(b)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에 능동적 참여를 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타인을 저주하는 것이 금해져 있다.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한다(참조: 롬 12:19).||(c)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제자는 자기들의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들을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지 않으면 안된다.||(d)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e)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들(참조: 창 1:26-27)인 동족을 저주하였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동족을 향해 저주를 하거나 화를 품는 것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과 모순된다고 하였다(참조: 마 5:22). 그리스도인에게는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다(마 5:10). 이유는 이러한 태도와 행위는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순된 행동은 부도덕한 것만큼이나 부자연한 것이다(A. F. Harp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W. Mundle).
멸망하다
katargevw
폐하다, 무효로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르게오는 카타($2596)와 아르게오($691: 활동하지 않다, 게으르다, 쓸모없다)에서 유래했으며, '활동하지 못하게 하다, 못쓰게 만들다, 폐지하다, 무효로 하다, 치워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르게오는 70인역본에서 4회, 에스드라하(에스라서에 해당)에만 나온다(4:21, 23; 5:5; 6:8). 여기에서 성전의 재건을 '훼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르게오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눅 13:7과 히 2:14을 제외하면 모두 바울 서신에 사용되었다.||(a) 바울의 세계관은 몇가지 파괴적인 요소를 인정하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카타르게인의 개념은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에 의해 신학적으로 해석된 우주의 발달과 특별한 우주의 발달 전체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관련하여 관찰한 주목할만한 사실, 즉 고린도 교회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치있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있는 것', 즉 무당이나 영매(psychic)를 위해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무가치하게 하고 버리려는 것이다는 판단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어떤 것을 위해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중요하게 만든 자들의 중요한 것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무효화 또는 폐지하는 것이다(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따라서 하나님께로 가는 헬라인의 길, 즉 그들의 '지혜'는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무효화 되었다.|엡 2:15에서 계명의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그리고 새로운 가치 평가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 정립되었다. 그의 육체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자신께서 유대의 율법과 구약성경의 율법을 그 세부적 항목과 랍비들의 해설과 함께 폐지하셨다. 이리하여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이방인들에게도 열리게 되었다.|분명히 바울을 믿음에 대한 그의 전도로(롬 3:31) 윤리적 요구로서의 율법을 무효화 하기를 원치 않았다(참조: 롬 2:14, 혹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것으로서의 율법). 요지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약속을 무효화시킬 어떤 주장도 내세울수 없다는 것이다(갈 3:17). 바울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이 세대를 지배하는 바로 그 진정한 세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력들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들의 능력을 빼앗긴다. 이 능력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한다(고전 2:6). 바울은 카타르게인을 사용하여, 자연인, 즉 육체적 혹은 정신적 인간의 물리적·지적 도덕적 삶 위에 머문 저주인 사망에 대해서 까지도 이것을 분명하게 말한다("사망을 폐하시고").||이 선언에 살을 붙여서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디아볼로스(히 2:14)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 능력도 행사할 수 없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진술한다.||바울의 현존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새로운 평가에 대한 진술들에서 이 단어는 심지어 더 정확하게 육적 인간에 적용된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은 그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며, 더 정확히 - 바울에게 소마("몸")와 프뉴마("영") 사이에 있었던 강한 긴장을 여기서 분명히 본다. - 죄의 몸, 죄에 예속된 인간의 외형이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태도와 발달에 영향을 주는 그 힘을 빼앗김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당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러한 해방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여전히 바울이 높이 평가한 지식과 영의 예언적 언급으로, 끝날 형태들을 취한다(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고전 13:8).|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체의 일부분만이 파악되는 것은 당연하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이 부분적인 일이 사라질 것이다(고전 13:10).||(b) 주관적으로, 즉 자기 자신과 그의 활동 영역에 대해 - 바울이 그런 순종적인 카타르게인(폐하는 것)의 어떠한 객관적인 작용의 가능성은 부인한다 -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를 믿음의 당연한 요구에 불순종함으로써 무효로 할 수 있다. 유대교적 이해에 따라 율법의 성취가 바실레이아(왕국, 나라)의 상속인들에게 필요하다고 고집하는 것이 그런 불순종에 해당한다(롬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보기로 할례와 같은 문제를 들 수 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갈 5:11). "십자가의 거치는 것"은 그렇게 하여 그 영향력 - 즉 유대인이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칭의를 얻는 위반 - 을 빼앗긴다.||(c) 마귀의 권세와 육적인 인간이 잠정적으로 무장 해제 되었다가 재림 때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고전 15:24; 고전 15:26; 살후 2:8; 고전 6:13).|① 고전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② 고전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③ 살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④ 고전 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d) 이 단어는 '작용의 영역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②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e) 고후 3장에서 이 단어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후 3:7과 고후 3:13에서 우리는 (c)의 분명한 보기를 가진다. 율법의 중보로 야기된, 모세의 얼굴의 외적 영광은 일시적이었다(현재 분사 수동이며, 형용사로 기능함, 형식상 고후 3:11과 같다).|또한 고후 3:14도 토 칼륌마(거울)에 카탈게이타("없어지다")의 주어를 보충한다면 위의 2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수건은 율법에게 봉사하는 독사, 곧 영광의 사라질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에게 봉사하는 독사(영광)가 아직 남겨 두는 (기만적) 현상은 그리스도 안에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팔라이아 디아데게(구약)를 주어로 취하면 뜻은 더 분명해진다.|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라는 명백한 사실에 의해서 무효화된다. 혹은 가치가 없어 떨어진다. 이 경우에 고후 3:11의 카타르구메논("없어질")은 마찬가지로 율법의 봉사를 가리킨다. 이것은 나중에 평가절하될 것이었다. 그것은 그 원래의 가치를 빼앗겼다. 따라서 그것은 단지 독사(영광)를 빌려왔을 뿐이고 그 자신의 것이 아니요 심지어 믿음의 선물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상대적인 가치 및 효력과 관련된 언급에서 카타르게오가 자주 '행동을 그치다'나 '힘을 빼앗다'를 의미하는 것을 본다.|(참조: Delling; G. Braumann; Walter Bauer; J. H. Thayer).
수 가운데 참예하다
katariqmevw
~와 함께 수에 넣다, 수 가운데 넣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리드메오(Eur., Pla. 이래)는 카타($2596)와 아리드메오($705: 세다, 수에 넣다)에서 유래했으며, '~와 함께 수에 넣다, 수 가운데 넣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리드메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1:17에 한번 나온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여기서 카타리드메오는 배반자 유다에 대해 '~와 함께 수에 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깁다
katartivzw
준비하다, 회복하다, 완전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르티조(Hdt. 이래)는 카타($2596: ~에 대하여, ~에 따라서)와 아르티오스($739)에서 유래했으며, '규제(정)하다, 정리(돈)하다, 준비하다, 복귀(회복)시키다, 준비하다, 마련하다, 갖추다, 완전하게 하다'를 의미한다.|이러한 여러가지 의미는 '적합하게 하다, 알맞게 하다'라는 기본 의미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카타르티조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9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a) '완성하다'(스 4:12 이하, 16; 스 5:3, 9, 11; tm 6:14).|(b) '세우다, 설립하다'(시 74:16; 시 8:2).|(c) '복구하다'(시 68:9).|(d) '갖추다'(시 40:6).|(e) '굳게 붙잡거나 지키다'(시 17:5)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카타르티조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카타르티조는 '미리 정하다'를 의미한다.|롬 9:22: 이 구절은 직역하면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권능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기 위해 예정된 진노의 그릇들을 많은 인내로 참아주셨다면..."이다.||(b) 카타르티조는 '준비하다'를 의미한다.|① 마 21:16,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하셨나이다". 이 구절은 직역하면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준비하셨다"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시 8:2을 인용하신 것이며, 70인역본과 정확히 동일하다.|그런데 시 8:2에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라고 되어 있다. 마소라 본문에서 이 구절은 "당신이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권능을 세우셨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이 둘을 대조하면 이상하게도 70인역자들은 '힘이나 권능'을 뜻하는 요즈를 '찬양'을 뜻하는 아이노스($136)로 의역했다.|70인역자들은 '힘'이나 '권능'에 해당하는 헬라어를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인데도 그렇게 번역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70인역자들은 하나님의 영감 하에서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권능이나 힘이 무엇인가를 감지했다. 그것은 '찬송'이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입성할 때 그 대적자들을 대항하는 권능으로, 어린 아이들의 찬송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즉 어린이 찬양대를 세운 것이다.||② 히 10:5,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 구절은 시 40:6의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란 구절을 인용한 것이며, 70인역본과 정확히 동일하다. 히브리 성경 마소라 본문에서 이 구절은 "당신이 나의 귀를 찔러 뚫었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이 70인역본의 오역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기보다 훌륭한 의역이다.|"나의 귀를 찔러 뚫었다(통했다, 여셨다)"라는 말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종이 자원하여 그 주인 수하에 계속 남아 있고자 할 때 그 종의 귀를 뚫는 습관을 암시해 준다.|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종의 죽음을 죽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취하신 것은 주인에게 귀를 내어 맡겨 뚫기는 고통을 받은 종이 종으로서의 봉사에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이다.|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몸을 준비한 것은 단순한 성육신이 목적이 아니고 그의 속죄적인 희생이 목적이다(히 10:10).|더욱이 "내 귀를 통하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뜻에 복종하도록, 즉 하나님이 나의 희생 제사를 위하여 나에게 준비하신 몸을 취하도록 나의 귀를 열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욥 11:13, 16; 36:10 난외).|확실히 종의 귀를 뚫은 것은 이러한 자원하는 복종에 대한 상징이다.||(c) 카타르티조는 '갖추다'를 의미한다.|① 눅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이 구절은 직역하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낫지 못하나 자격을 갖춘 자는 누구든지 그의 선생과 같으리라"이다. 자격을 갖춘 자는 충분히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자이다(참조: NASB, NIV, RVS).||② 히 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이 구절은 직역하면 '그가 너희를 그의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선한 것으로 충분히 자질을 갖추어 주시기를 원하며, (또)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앞에 즐거운 일을 우리 가운데서 행하여 주시옵소서'이다.|카타르티조는 여기서 '(자격이나 자질을) 갖추다'란 의미 뿐만 아니라 "준비하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준비시켜서 충분히 자질을 갖추다"란 의미를 가진다.|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의 뜻이나 명령을 행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선한 역사 곧 필요한 은혜로 그들을 준비시켜 충분히 자질을 갖추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또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J. Moffatt). --> 빌 2:13.|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자기 동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어야 한다.||(d) 카타르티조는 '회복(복구)하다'를 의미한다.|① 갈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이 구절은 직역하면 '형제들아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질 때는 언제든지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이다.|여기서 카타르티조는 "회복시키다"란 의미로서 범죄한 자를 교정하여 바른 길로 또는 더 좋은 상태로 되돌리라(회복시키라)는 것이다. 교회의 범죄한 자를 더 좋은 상태로 회복시키는데 부드러운 취급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어근의 의미를 따라 '바로 잡는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② 벧전 5:10: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온전케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이 구절은 직역하면 '잠시동안 너희가 고난을 받은 후에 (너희를 TR), 친히 회복케 하시며' 이다.|"잠간"(올리곤)이란 말은 시간이나 정도 둘 다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영원과 비교하면 짧은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하면 경한 것이다. '온전케 한다'(카타르티조)란 말은 박해 가운데서 상처받은 영과 육을 고치거나 회복시켜서 완전케 하여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자질을 갖춘다는 의미도 나타나 있다.||③ 고후 13:11: "형제들아 기뻐하라(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여기서 카타르티조는 회복(복구)하다를 의미하지만, 정돈하다, 알맞다, 고치다(교정), 보충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 의미는 흐트러진 것들을 정돈하고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여 완전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e) 카타르티조는 살전 3:10에서 '보충하거나 매우다, 적당한 상태가 되게 하다'를 의미한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여기서 믿음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f) 카타르티조는 "설(창)립하다, 형성하다'를 의미한다.|히 11:3에서 카타르티조는 아마도 이 의미인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g) 카타르티조는 마 4:21과 막 1:19에서 '수선하다'를 의미한다. 고기 잡은 그물을 다음 출어를 위하여 깁는 등 손질하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Schippers; G. Delling).
온전케 되는 것
katavrtisi"
완성, 개선, 회복.||#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르티시스(Plut., Alex.)는 카타르티조($2675)에서 유래했으며, '완전하게 되는 것, 완성, 준비, 갖춤, 개선, 회복'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르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3:9에 한번 나온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여기서 카타르티시스는 '온전하게 되며'라고 번역되며, 교회의 회복과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델링(G. Delling)은 카타르티시스가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에서든지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격, 즉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의 성숙에서든지 그것의 내적 힘을 의미한다'고 말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R. Schippers).
온전케 함
katartismov"
준비, 갖추기, 회복.||#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르티스모스는 카타르티조($2675)에서 유래되었으며, '준비' 또는 (자질이나 자격의) '갖추기', '회복'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르티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엡 4:12에 한번 나온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카타르티스모스는 '봉사의 일' 등을 위한 '준비'를 나타낸다. 그 준비는 완전한 것이 되도록 준비한다는 것이며, 완전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Schippers; G. Delling).
손짓하다
kataseivw
손을 흔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세이오(Thu. 이래)는 카타($2596)와 세이오($4579: 흔들다)에서 유래했으며,||(a) '흔들어 떨어뜨리다' shake down, '내리 던지다' throw hown,|(b) 은유적으로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다', '(마루 바닥에 쓰러져) 취중에 죽다',|(c) '손짓하여 부르다', '손으로 신호하다', '손을 흔들다'.|(d) '경멸의 표시로 머리를 흔들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세이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온다. 다니엘의 종들은 벨(bel) 성전의 마루 바닥에 재를 뿌려(카타세이오) 야간 성전 침입자들의 발자국을 드러나게 했다(Pan. Bel 14). 마카베오일서 6:38에서 카타세이오는 한 지역에 퍼져 있거나 산재해 있는 것과 같은 군대의 양 측면에 배치된 기병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세이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4회 나온다.||(a) 행 12:17에서 카타세이오는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에 앞서 그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손을 흔드는 것을 나타낸다.||(b) 행 13:16에서 바울에 대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c) 행 19:33에서 카타세이오는 알렉산더에 대하여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퇴락하다
kataskavptw
부수다, 파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스캅토(Hdt. 이래)는 카타($2596)와 스캅토($4626: 파다)에서 유래했으며,||(a) '아래로 파다, 파내려가다',|(b) '부수다, 파괴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스캅토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로마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15:16에서 수동 완료 분사가 사용되어 '파괴된 것'을 의미한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암 9:11 인용).||(b) 롬 11:3에서 제단을 '부숴버린' 것을 나타낸다: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스큐아조
kataskeuavzw
준비하다, 설비를 갖추다, 짓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스큐아조(Hdt. 이래)는 카타($2596)와 스큐오스($4632: 그릇, 도구)에서 유래했으며,||(a) '준비하다, 비치하다, 채비하다, 장비를 갖추다',|(b) '짓다, 건설하다, 세우다'를 의미한다.||카타스큐아조는 축제시 길과 방을 치장하고 단장하는 것의 문장에(Lysias, Thuc), 또는 옷을 입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여러 종류의 준비들, 그리고 조선, 육·해상 전투의 준비를 언급한 문장에 사용되었다.|카타스큐아조는 내적인 의미로, 배우고 있는 자들의 교훈에 관한 문장 및 종교적 의식에 관한 문장들에 사용된다(Aristot.). 마지막으로 카타스큐아조는 적극적인 주장을 설정하기 위한 기하학과 철학적 논리에 사용되었다(Aristot.).||#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스큐아조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히브리어 바라(창조하다, 사 40:28; 사 43:7), 야차르(모양을 갖추다, 형성하다, 사 45:9)를 번역하여 '창조하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예비 사역을 언급하며, 아사(행하다, 만들다, 대하 32:5; 잠 23:5)를 번역하여, 방비를 위해 병기와 방패를 '만드는 것'과 재물이 날개를 '만들어' 날아 간다는 것을 나타낸다.|카타스큐아조는 지혜서, 바룩, 마카베오사서에서 동일한 의미로 5회 나온다. 특히 마카베오일서에는 무기와 군함으로 장비를 갖춘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3:29; 10:21; 15:3).|외경을 보면, 카타스큐아조는 우상 제조와도 관련하여 사용되었다(Ep. Jer. 9, 45, 4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스큐아조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공관복음에 4회, 히브리서에 6회, 베드로전서에 1회 사용되었다.||(a) 카타스큐아조는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세례(침례) 요한의 사명에 관련하여 사용되었다.|① 마 11:10(병행구, 막 1:2; 눅 7: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② 눅 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각 경우에 모두 말 3:1(헤토이마조가 사용된 사 40:3 및 출 23:20의 반향으로서)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말 3:1은 카타스큐아조를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눅 1:17도 문맥상 세례(침례) 요한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의 주제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게 하는" 그의 직무이다.||(b) 카타스큐아조는 집의 건설과 집에 설비하는 것을 나타내며, 특히 히브리서에서는 거의 다 그러하다. 이와 관련하여 복음서의 실례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준비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대비한 인간의 준비가 연관된다는 사실을 항상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어 기자는,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한 구약 개념을 집 짓는 것을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다고 결론짓는다.|① 히 3:3; 히 3:4, "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여기에 내재된 사상은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신 분이라는 사상이다. 다른 곳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곳을 보면, 규정된 유형에 따라 짓고 설비를 갖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②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여기서는 노아가 피할 곳을 예비하기 위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든 것에 대해 언급한다. 공관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원리와 같이, 여기서도 이 단어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인간의 준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③ 히 9:2; 히 9:6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 예비한 첫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히 9:1-히 9:10에서 장막에 대하여 기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희생을 철저히 고찰하였으며, 이 장막은 엄격한 지시에 의거하여 온갖 종류의 내용물로 장식되고 치장되었다.|④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에서는 인간이 예수님의 사역에 세례(침례)를 받는 것과 관련하여 노아의 방주에 대한 예비가 언급되어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Thiele).
깃들이다
kataskhnovw
장막을 치다, 살다, 거주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스케노오(X. 이래)는 카타($2596)와 스케노오($4637: 천막을 치다, 살다, 거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장막을 치다, 장막에 들어가다, 진을 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스케노오는 70인역본에서 약 66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칸 또는 샤켄(7931: 정착하다, 거주하다, 머무르다; 민 35:34; 왕상 6:13; 대상 23:25), 야샤브(3427: 앉다, 남아있다, 머무르다, 거주하다; 대하 6:2; 겔 25: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카타스케노오는 주로 오랫동안 머무는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민 14:30; 신 33:12; 시 16:9; 잠 1:12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전하고 영속적인 거처이다. 미 4:10의 요지는 도시보다 시골에 사는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스케노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온다.||(a) 막 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되느니라"(병행구, 마 13:32; 눅 13:19; 참조: 단 4:12; 단 4:21). 본 절의 개념은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가는 정도가 아니라 가지에 깃드는 것이다. 이 비유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안전과 평화의 통치를 암시한다.||(b) 행 2:26(시 16:8 이하 인용),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여기에서 소망은 거하는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두어도 무방할 장소에 있다. 그러므로 카타스케노오는 부활 때에 완성될 '살아가다'라는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참조: W. Michaelis;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스케노시스
kataskhvnwsi"
거주지, 거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스케노시스(Polyb.)는 카타스케노오($2681: 천막을 치다, 거처를 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천막을 침, 체재하는 장소, 진영, 거주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스케노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마 8:20; 병행구 9:58에서 카타스케노시스는 새들의 '거처'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카타스키아조
kataskiavzw
그늘로 덮다, 가리다, 덮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스키아조(Hes. 이래)는 카타($2596)와 스키아($4639: 그림자)에서 유래했으며, '그늘지게 하다, 그늘로 덮다, 가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스키아조는 신약성경에서 히 9:5에 한번 나온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여기서 영광의 그룹들이 속죄소를 '덮은' 것을 표현한다.(참조: 출 25:1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엿보다
kataskopevw
탐정하다, 조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스코페오(Eur., Hel.)는 카타스코포스($2685: 정탐군)에서 유래했으며, '주변을 세밀히 살펴보다, 탐정하다, 조사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스코페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라갈(7270: 이러저리 돌아다니다, 염탐하다, 중상 비방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탐지하다'를 나타낸다(삼하 10:3; 대상 19:3).||#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스코페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2:4에 한번 나온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여기서 여러가지 일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와서, 무엇이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자유인지를 조사하는 율법주의적인 신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의 목적이 속박을 재도입하는 것이므로 그들의 태도는 종말론적인 기쁨 및 복음과 양립될 수 없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Fu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