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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더움
kauvswn
뜨거운 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우손(Hipp., Aristot.)은 '뜨거운 것, 열, 태양의 불탐'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우손은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딤(동풍)을 번역하여 '뜨거운 바람'을 나타내며, 창 31:40에서 호레브를 번역하여 '더위'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우손은 신약성경에서 3회 마태복음, 누가복음, 야고보서에만 나온다.||(a) 카우손은 '뜨거운 열'을 의미한다.|①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② 눅 12:55,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b) 약 1:11에서 카우손은 뜨거운 바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뜨거운 열'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화인 맞다
kauthriavzw
낙인 찍다, 낙인 찍어 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우테리아조는 카우테리온(%479: 낙인찍는 쇠도장 a branding-iron)에서 유래했으며,||(a) '낙인 찍어 표하다', '낙인을 찍다',||(b) Hippocr.에서 의학적 의미로, '소작(燒灼)하다, 소작법(燒灼法)에 의해 제거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우테리아조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4:2에 한번 나온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여기서 카우테리아조는 '화인 찍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양심이 화인 맞거나 찍히는 것은 죄의 표시로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만, 혹자들은 이 구절에서 이 단어에 '마비된, 무감각해진'이란 의미를 부여한다. 엡 4:19에서는 도덕적으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자들을 "감각 없는 자"로 표현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 Gould).
자랑을 하다
kaucavomai
자랑하다 to boa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우카오마이(Sappho. 이래)는 '자랑하다, 뽐내다, 자랑으로 여기다'를 의미하며, 보통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이나 풍자 작가들의 저서에서 자랑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우카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32회 나오며, '자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여러 히브리 단어들을 번역한다. 70인역본에서 자랑에 대한 비판적 격언이 나온다(왕 20:11; 잠 25:14). 부를 자랑하는 것은 부를 의뢰하는 것이다(사 49:6).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이 있을 수 없다(삿 7:2).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랑할 수 있다(렘 9:23-24). 의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자랑할 것이다(시 5:11). 집회서 39:8에서는 율법을 자랑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우카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야고보서에 2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바울은 신약성경에서 카우카오마이를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한다. 바울은 공적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유대인의 교리를 공박하는 동시에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율법 성취에 근거한 인간의 자기 자랑의 습관을 반박하였다.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자랑은 하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참조: 롬 3:27). 이런 사실은 엡 2:8 이하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것에 대해 슐랏터(A. Schlatter)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영광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석한다. 롬 2:23에 보면 율법에 근거한 인간의 자랑이 무가치하다고 한다.|유대 사상과 달리, 바울도 역시 개종하는데 따르는 자랑을 거부하였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 6:13).|마찬가지로 그는 자신들의 소피아(지혜, 고전 1:29; 고전 3:21)를 자랑하는 헬라인들의 자기 과신을 강하게 논박하였다. 이 모든 형태의 육적인 자랑(고후 11:18; 빌 3:3 이하)에는 이방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 유대인에 대해 가지는 오만한 태도(참조: 롬 11:17 이하) 및 허위적인 자랑(고전 4:7; 고후 5:12; 고후 12:6)과 같은 것 까지도 포함된다. 이런 자랑은 악 즉 의롭지 못한 자랑의 범주에 든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참조: 고전 5:6). 그리고 이런 자랑은 렘 9:24을 인용한 고전 1:31의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후 10:17 이하)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적절한 자랑의 한 형태와 모순된다.||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롬 5:11; 빌 3:3); 혹은 갈 6: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은 유일하게 적합한 자랑의 형태이다. 이 자랑은 "(이렇게) 모든 자기 자랑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K. L. Schmidt). 기독교인의 자랑에는 사도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행위와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에 대한 자랑도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예를 들면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고후 11:12 이하). 자기에게 주어진 엑수시아(권위)를 자랑하기도 하였다(고후 10:8; 참조: 롬 15:17). 그는 또한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각 교회를 자랑하고 있다(고후 7:14; 살후 1:4).|기독교인은 진실로 자기의 연약함만을 자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기에서 분명해지기 때문이다(고후 11:30; 고후 12:5; 고후 12:9; 롬 5:3). 롬 5:2에서 바울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라고 한다.|(참조: R. Bultmann; H -C. Hahn).
자랑하는 것
kauvchma
자랑, 자랑거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우케마(Pind.)는 카우카오마이($2744: 자랑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자랑, 자만, 자랑거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우케마는 70인역본에서 약 13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힐라(찬양, 신 10:21; 렘 13:11; 렘 17:14 등), 티프에레트(장식, 아름다움, 대상 16:27; 시 89:17; 잠 17:6; 잠 19:1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우케마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 10회, 히브리서에 1회 사용되었다.||(a)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b) 바울은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각 교회를 자랑하고 있다(고후 1:14; 참조: 고전 15:31).||(c)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날에" 자기의 카우케마가 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빌 2:16; 참조: 빌 1:26). 어느 누구든지 그가 이런 사도직을 받았다고 하는 자랑의 근거를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고전 9:15). 물론 바울은 자랑의 한계성이 어디서 오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참조: 고후 11:16 이하).||(d) 기독교인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과 비교하여 오직 자기 검토에 근거하여 자랑해야 한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 6:4).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에 대한 의무를 다 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에서만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컨대 기독교인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결코 자랑할 수 없으며(고전 9:16), 오로지 자기의 주님에 대해서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e) 히 3:6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랑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주님이 카우케마의 근거나 핵심으로 간주될 수 없는 곳에서, 자랑은 "육적인 것"으로 남아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어려움에 직면하여 "우리의 확신과 소망에 대한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히 3:6; 참조: 롬 5:2).|(참조: R. Bultmann; H-C. Hahn).
자랑할 데
kauvchsi"
자랑하기 boast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우케시스는 카우카오마이($2744: 자랑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자랑하기, 자랑거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우케시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오직 히브리어 티페레트(8597: 아름다움, 화려, 영광, 자랑)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대상 29:13; 잠 16:31; 겔 16:12; 겔 16:17, 39; 겔 23:42; 겔 24:2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우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야고보서 1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바울은 공적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유대인의 교리를 공박함과 동시에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율법 성취에 근거한 인간의 자기 자랑의 관습을 반박했다. 이러한 카우케시스의 허구성이 본절의 수사학적 질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자랑은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있다.||(b) 바울은 자기 자랑을 거부하고 있으나 그의 사도로서의 일에 대한 정당한 자랑까지 배격하지는 않는다.|① 고후 7:4,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② 고후 7: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③ 그 부분적인 이유는 이 자랑이 교회들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주된 이유는 바울이 행하는 일은 그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 15:17-롬 15:18; 참조: 고전 15:10).||(c) 바울은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각 교회를 자랑한다.|①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② 고후 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d) 바울은 자랑의 한계성이 어디서 오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고후 11:17; 참조: 고후 11:16).||(e) 고후 1:12에서 보면 만일 기독교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자랑한다면 그가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에서만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f) 약 4:16에서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참조: R. Bultmann; H -C. Hahn).
겐그레아
Kegcreaiv
겐그레아 Cenchrece.||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사론(Saronic Gulf)에 위치한 고린도의 항구이다. 고린도와 아시아간의 무역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을 기념하기 위하여 포세이돈과 피레네(Pirene)의 한 아이 이름을 본따서 겐그레아라고 명명했으며, 그 곳의 한 방파제 위에 그를 표시하는 큰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근방 지협에서는 소위 고린도지협 경기가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렸다. B.C. 625-585년 경에 다스렸던 고린도의 독재자 페리안더(Periander)는 그 지협을 통과하는 운하를 계획했으며, 네로 황제가 이 일을 시작했으나 1893년이 되어서야 운하다운 운하가 완성된 것이다.||신약성경에서 겐그리네아는 2회, 사도행전과 로마서에만 나온다.||(a)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마친 후 서원을 수행하기 위하여 겐그리아에서 삭발한 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배타고 갔다.||(b) 롬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여기에서 겐그레아의 교회에 뵈뵈라는 여집사가 있었으며, 그녀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서신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EB; NBD).
기드론
Kedrwvn
기드론 kidron(지)||#1. 구약성경.||케드론은 히브리어 키드론(6939)의 음역이며, '어두운', 또는 '혼탁한'을 의미한다. 키드론이라는 히브리어는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냇물의 색깔이 흙빛인데서 유래했으며, '검은 여울'이라고도 불리워졌다.|기드론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한 골짜기로서 길이는 약 5㎞이며,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에 위치하여 있다. 오늘날 와디 싵티 마리암(Wadi sitti Maryam) 즉 '성 마리아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계곡의 아래 지역은 오늘날 와디 엔 날(Wadi en -Nar)로 불리운다. 이 시내는 예루살렘을 떠나 남동쪽을 향하고, 이어서 유대 광야를 지나서 사해로 들어간다.|다윗이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성을 빼앗을 때, 이 도시 안에 있는 기혼샘과 연관이 되는 한 수구(TK 12)를 통해 이 골짜기로부터 진행하여 들어간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기혼샘의 물은 본래 기드온 시내로 직접 유입되어 남동쪽의 사해로 흘러 들어갔다.|기드론 골자기는 "사웨 골짜기"(창 14:17)라고도 불렸으며, 다윗 왕조의 왕들은 이 계곡 안에 저택과 소유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계곡으로도 불리웠다(삼하 18:18). 후에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공격의 두려워하여 이곳의 물길을 돌리고 수구를 폐쇄하였다(대하 32:2-4).|다윗왕은 압살롬의 피하여 피신할 때 기드론 시내를 건너갔다(삼하 15:23).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왕상 2:37). 느헤미야가 귀환하여 밤에 기드론 시내를 따라 성벽을 살펴 보았다(느 2:14, 15).|아사가 우상을 기드론 시냇가에서 훼파하였고(왕상 15:13; 대하 15;16), 요시야(왕하 23:6-12), 히스기야(대하 29:16), 무리가 그렇게 하였다(대하 30:14).|예레미야는 기드론 시내가 장차 성지가 되리라고 예언했다: "시체와 재의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데까지와 동편 말문 모퉁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밭에 이르리니 다 여호와의 성지가 되고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렘 31:40). 계곡의 동편은 공동 묘지로 사용되었다(왕하 23:6; 참조: 렘 31:40).||#2. 신약성경.||기드론은 신약성경에서 요 18:1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겟세마네는 감람산의 서쪽 경사면에 있었다. 이곳은 예루살렘성에서 기드론 시내를 바로 건너간 장소이다. 감람산의 서쪽 내리받이로부터 기드론 계곡을 바로 가로질러서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보내시려고 다락방을 떠나서 기드론 계곡을 건너셨다. 유다는 분명히 군사들을 데리고 기드론을 건너서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시던 장소로 인도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곳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참조: 요 18:2).|(참조: PEB. TB).
누이다
kei'mai
눕다, 놓여 있다 li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케이마이(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사실이나 결과와 관련하여 '눕다, 누워있다, 놓여있다'를 의미하며, 공간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a) 인격에 대해 이 단어는 죽은 자에 대해(Homer), 알렉산드리아 묘비에 사용되었다.||(b) 사물에 대해 이 단어는 장소의 위치(Hdt.), 보좌, 그릇이 놓여있는 것(Hdt., Xen.), 상품이 쌓여 있는 것(Homer) 등을 나타낸다.||(c) 비유적 의미로|① 법적으로, '유효하다', 만들어져 있다, 세워져 있다', 권력에 대해, 어떤 자를 위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적용한다'(Eur., Thu. 등).|② '나타나다, 발견되다'(Hellanicus),|③ 어떤 상태나 상황에 '있다, 놓여 있다'(Hd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케이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27회 나오며, 히브리어 숨(7760: 두다, 놓다, 세우다, 제정하다, 삼하 13:32), 야아드(3959: 정하다, 지정하다, 렘 24:1), 케렙(7130: 내부, 가운데, 중심, 내심, 수 4:6)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있거나 놓여있거나 결심하는 것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케이마이는 신약성경에서 24회 나오며, 마태복음 3회, 누가복음 6회, 요한복음 7회, 바울서신 4회, 디모데전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에 각 1회씩 사용되었다.||(a) 케이마이는 인격에 대하여 '눕다, 누워있다. 놓여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아이에 관하여,|·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② 무덤에 관하여,|·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눅 23: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요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b) 케이마이는 사물에 관하여 어떤 것에 '놓여 있다' lie, '서 있다' stan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고후 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②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③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④ 요 20:5; 요 20:6; 요 20:7, "5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⑥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⑦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⑧ 마 3:10(병행구 눅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c) 케이마이는 비유적 의미로, 어떤 것을 위해 '정해지다' be appointed, set, '예정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② 빌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③ 살전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d) 카이마이는 법적으로 '만들어지다, 세워져 있다(있다), 유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딤전 1:9,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e) 카이마이는 어떤 상태나 상황에 '안에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참조: F. Buchsel; Walter Bauer; J. H. Thayer).

keiriva
띠 a band, 붕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케이리아(Aristoph., Plut.)의 어원은 불확실하며,||(a) '띠' a band, '침상 띠' bed-girth,|(b) '감싸거나 동여매는 붕대(띠)나 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케이리아는 신약성경에서 요 11:44에 한번 나온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여기서 케이리아는 시체를 아마포로 감싼 후에 동여매는 띠나 감싸는 천 그 자체로 해석할 수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깎다
keivrw
(털을) 깎다, 베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케이로(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털을) 깎다, 베다',|(b) 중간태로, '(털을) 깎이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케이로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8:32에서 케이로의 분사가 사용되어 '털 깎는 자'를 표현한다: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인용).||(b) 행 18:18에서 케이로의 중간태가 사용되어 머리를 '깎다'를 의미한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c) 고전 11:6에서 케이로의 중간태로 머리털을 짧게 '자르거나 깎는 것'을 표현한다: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호령
kevleusma
부르는 소리, 외침 a call, 신호 signal, 명령 comma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켈류스마(Aeschyl., Hdt. 이래)는 켈류오($2753: 명령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강요되는 것'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명령, 호출, 격려적인 외침이나 호령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신의 명령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사람이 동물을 분기시키고 재촉할 때, 예컨대 전차 모는 전사가 말을, 사냥군이 사냥개를 재촉할 때 이를 사용한다. 사람들에게 어떤 신호를 줄 때, 예를 들면 선장이 노잡이들에게 박자를 맞추기 위한 외침, 지휘관이 군인들에게 하는 호령을 뜻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 또는 '고함 및 소요'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켈류스마는 70인역본에서 한번 나오며, 메뚜기 한 마리가 그 동료들에게 "행진하라"고 하는 명령을 나타낸다: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잠 30:27).||#3. 신약성경의 용법||켈류스마는 신약성경에서 살전 4:16에 한번 나온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여기서 켈류스마는 호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호령을 하는지 또는 이 호령과 천사장의 부름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명령, 부름, 나팔소리 등은 일차적으로 죽은 자들을 깨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또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참조: 고전 15:52). 살전 4:16 - 살전 4:17에서의 '먼저'와 '그 후에'라는 말은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신자들이 주와 함께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참조: Walter Bauer; L.Schmid; D.A.Carson).
켈류오
keleuvw
명령하다 command , ord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켈류오는 '명령하다'를 의미하며, 호머 이래로 고전 헬라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일반적으로 높은 계급이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구두 명령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켈류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외경에만 나타난다. 이 단어는 외경에서 레위적 명령(에스드라상 9:53), 스승의 교훈들(토빗 8:18), 군대 장교의 명령(유딧 2:15; 12:1; 마카베오이서 5:12; 13:12; 14:31), 왕의 지령(마카베오이서 1:20; 7:5; 9:7; 14:27), 선지자의 말(마카베오이서 1:4), 하나님의 명령(마카베오이서 15:4)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켈류오는 신약성경에서 2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도행전에서 켈류오는 인간 권위자에 의해 발한 명령에 대해서만 사용되었다.|행 4:15에서 공회의 명령을 나타낸다: "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행 5:34에서 가말리엘의 명령을 나타낸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에디오피아 내시의 명령을 나타낸다.행 12:19에서 헤롯의 명령을 나타낸다: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상관들의 명령(행 16:22), 천부장의 명령(행 21:33; 행 22:24; 행 22:30; 행 23:10), 대제사장의 명령(행 23:3), 벨릭스의 명령(행 23:35; 행24:8), 베스도의 명령(행 25:6; 행25:17; 행 25:21; 행 25:23), 백부장의 명령(행 27:43)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나 교회의 구성원들에 의한 명령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b) 마태복음에서도 역시 켈류오는 인간 권위자들에 의한 명령들에 사용된다. 곧 빌라도(행 27:58; 행 27:64)와 헤롯(행 14:9)이다(참조: 행 18:24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그러나 몇몇 경우에 켈류오는 예수님에 의해 주어진 명령들에 사용된다. 이 단어는 무리에게 저쪽편으로 건너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나오며(행 8:18), 또한 이 단어가 무리에게 앉으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나타내는 무리를 먹이시는 두 번의 기적에서 나온다(행 14:19; 행 15:35).|누가가 켈류오를 유일하게 사용한 것도 소경을 자신께로 데려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서이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눅 18:40).|(참조: Walter Bauer; P.J.Budd ).
허영
kenodoxiva
망상, 착각, 자만, 허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케노독시아(Polyb., Plut.,)는 케노독소스($2755)에서 유래했으며,||(a) `망상, 잘못된 생각(신념), 착각, 오해'.|(b) `자랑, 자만, 허영(심)'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케노독시아는 70인역본, 외경에 3회 나오며, `허영'(지혜서 14:14), `자만'(마카베오사서 2:15)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케노독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빌 2:3에 한번 나오며, `허영'을 의미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Oepke).
헛된 영광을 구하는
kenovdoxo"
자만하는, 허영심이 강한, 자랑하는, 허풍떠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케노독소스(Polyb.)는 케노스($2756)와 독사($1391: 영광)에서 유래했으며, `자랑하는, 허풍떠는, 자만심이 강한, 허영심이 강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근거없는 의견을 확립하려고 하거나 할 수 있는 자, 자랑하고 허영심이 강한 자, 허풍떠는 자, 눈부신 상속물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케노독소스는 신약성경에서 갈 5:26에 한번 나온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여기서 케노독소스의 복수 남성이 사용되어 `허영심이 강한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헛된 영광을 구하여'에 해당하는 메 기노메다 케노독소이는 `우리가 허영심이 강한 자들이 되어'라고 번역할 수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공수로
kenov"
공허한, 허무맹랑한, 성과 없는, 유익이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케노스(Homer 이래)는||(a) 문자적으로 `공허한, 텅빈, 내용이 없는'을 의미하며, 사물에 대해(`빈' 집, `텅빈' 주전자, 사람에 대해(`공'수로) 사용되었다.||(b) 비유적으로 케노스는 ① 사람에 대해 사용될 때, `속이 빈, 천박한, 판단력이 부족한, 마음이 빈'이란 의미를 가진다.|② 케노스는 사물에 대해 사용될 때, 내용이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효과없는', `잘못된' 의견, 윤리적으로 `소용없는' 말, `무가치한'이란 의미를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케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80여회 나오며, 19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 주로 리크 어군(공허, 빈, 헛된, 무가치한, 헛되이, 공허하게)을 번역했고,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구덩이가 `빈'(창 37:24), `빈' 손(창31:42; 출 3:21; 신 15:13), `무가치한' 사람들(삿 9:4; 삿 11:3), `무'나 `무익'(렘 18:15), `헛된' 말(욥 27:12), `헛된' 위로(욥 21:34), `가치없는'(잠 12:11; 잠 28:19), 주린 자의 속이 `빈'(사 29:8), `실패한'(삼하 1:22), 까닭없이(시 7:4), `헛되이'(렘 50:9) 등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케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케노스는 문자적으로 `빈'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53에서 `빈' 손을 묘사한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막 12:3(눅 20:10이하)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b) 행 4:25에서 `성공하지 못할 일, 곧 실패할 일'을 묘사한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c) 약 2:20에서 `속이 빈', 곧 `어리석은' 사람을 묘사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자기의 믿음을 뛰어난 소유물로 자랑하나 믿음의 열매나 성과가 없는 자에 대하여 언급한다.||(d) 바울 서신에서 바울은 케노스에 `헛된'이란 의미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메 에이스 케논(헛되지 않은)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에서 그렇게 하였다. 70인역본에서 이 말이 `공허, 헛됨' 그리고 `무'의 뜻으로 사용되었다면, 이 때 이 말의 강조점은 `열매없음, 효과없음'이다. 바울은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특정한 것들이 무의미하고 성과없고 혹은 헛된 것이 되리라는 점을 시사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한다. 그는 이 말을 은혜(고후 6:1), 설교(고전 15:14), 선교사역(살전 3:5)과 사도로서의 자신의 활동(갈 2:2; 빌 2:16)에 대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에 기본적인 문제는 바울 선교의 능력과 효력이다.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선교는 이교의 헛되고 무력한 말들과는 반대되는 권능 가운데에서 행해졌다(엡 5:6).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의 권능은 설교의 효력 안에서 입증된다. 따라서 그의 선교 사역도 은총도 케리그마도 헛되지 않다.|(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A. Sepke; C.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