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92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게바
Khfa'"
게바 Cephas.||케파스는 아람어 케바(반석)의 음역이며, 사도 베드로에게 붙여진 이름의 아람어 형태이다.|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6회 나온다(요 1:42; 고전 1:12; 고전 3:22; 고전 9:5; 고전 15:5; 갈 2:9).

kibwtov"
나무 상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키보토스(Aristoph. )는 키보스(%523)에서 유래했으며, '나무 상자' a wooden box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키보토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키보토스는 궤(ark)의 형태로 만들어진 노아의 배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24:38; 눅 17:27; 히 11:7; 벧전 3:20.||(b) 히 9:4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언약'궤'에 대해 사용되었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c) 계 11:19에서 하늘의 성전에 있는 언약'궤'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문고
kiqavra
하아프, 수금, 거문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키다라(Homer 이래, Hdt. 이래)는 기본어이며, '하아프, 수금, 거문고'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키다라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1회)와 요한계시록(3회)에만 사용되었다.|고전 14:7; 계 5:8; 계 14:2; 계 15: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문고 타다
kiqarivzw
하아프(거문고)를 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키다리조(Homer 이래)는 키다라($2788: 하아프, 수금, 거문고)에서 유래했으며, '하아프(거문고)를 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키다리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고린도전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고전 14: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b) 계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문고 타는 자
kiqarw/dov"
하아프(거문고) 타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키다로도스(Hdt., Pla. )는 키다라($2788: 하아프, 수금, 거문고)와 아오이도스(%524: 가수)에서 유래했으며, '하아프(거문고) 타는 자' 목소리를 곁들여 하아프(거문고)를 연주하는 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키다로도스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2회 나온다: 계 14:2, 계 18:2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길리기아
Kilikiiva
길리기아 Cilicia(인)||킬리키아는 '돌을 굴림'을 뜻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길리기아라고 음역했다.|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한 지역, 북으로는 갑바도기아, 루가오니아, 이사우리아와, 남으로는 지중해와, 동으로는 시리아와, 서로는 밤빌리아와 경계를 이룬다.||길리기아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갈라디아서에서 1회, 모두 사도행전에 나타난다.||(a) 스데반이 길리기아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서 변론했다: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행 6:9).||(b) 길리기아의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 22:3; 행 21:39; 행 23:34).||(c) 바울이 길리기아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행 15:23; 행 15:41; 갈 1:21-갈 1:24).||(d)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탄 배가 길리기아 바다를 항해했다: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행 27: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계피
kinavmwmon
계피||#1. 고전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키나모몬(Aristot., Diod. )은 '계피' cinnamon를 의미한다.||(a) 이 계피는 A.D. 14세기에 실론(ceylon)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계피(cinnamomum zeylanicum)와는 달리 구약성경에 나오는 계피(cinnamomum cassia)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주전 1650년경에 팔레스틴과 그 주변 국가로 이식되었다.||(b) 70인역본에서 키나모몬은 5회 나오며, 킨몬의 역어로 사용되었는데, 이 계피나무 껍질은 침상(잠 7:17)과 의복(아 4:11, 14)에 뿌리는 향수와 거룩한 관류의 재료(출 30:23)로 사용된 매우 향기로운 기름을 함유하고 있다.|렘 6:22에서 키나모몬은 카네 핫 토브(문자적으로 좋은 줄기나 대; "좋은 향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키나모몬은 신약성경에서 계 18:13에 한번 나온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위태하다
kindunevuw
위험에 처하다 be in da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킨뒤뉴오(Hdt. 이래)는 킨뒤노스($2794: 위험)에서 유래했으며, '위험에 처하다' be in danger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킨뒤뉴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사 28:13에서 야코쉬(올무)를 번역하며, 청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운명을 가리키는 동사들과 나란히 나타나며, 그들이 감행하는 모험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킨뒤뉴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누가복음에서 1회, 사도행전에서 2회, 고린도전서에서 1회 사용되었다.||(a) 눅 8:23에서 제자들이 폭풍으로 인하여 '위험에 처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b) 행 19:27에서 데메드리오와 그 동료 장인들이 바울의 전도로 인해 자기들의 영업이 '천해질 위험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c) 행 19:40에서 성읍의 서기장이 소요 사건으로 인하여 책망 또는 비난 받을 '위험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d)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바울은 자기의 사역에 수반되는 끊임없는 위험들에 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그는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러한 위험들을 무릅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 J. Budd.).
위험
kivnduno"
위험 da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킨뒤노스(Hdt. 이래)는 '위험' danger, '모험' irsk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킨뒤노스는 70인역본에서 시 114:3(시 116:3)에서 하데스와 함께 사용되어 이 기자가 거기서 구원을 받은 바로 그 곤경을 표현한다.|집회서 43:24에서 킨뒤노스는 선원들이 직면하는 위험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킨뒤노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기서 기독교인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불유쾌한 여러 현상들 중의 하나로 위험이 등장한다.||(b) 고후 11:26,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여기서 바울은 킨뒤노스를 여러 차례 사용하여, 자기의 사역에 수반되었던 다양한 어려움들을 기술하였다. 이 위험들에는 대 자연의 요소들(바다와 폭풍)과 인간들의 적대 행위(강도, 유대인, 이방인)가 포함되어 있다. 전체의 문맥상 이러한 진술들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을 향해 자기의 사도적 사역의 권위를 예증하기 위한 시도의 일부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 J. Budd).
기동하다
kinevw
움직이다, 일으키다, 선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키네오(Homer 이래)는|(a) '움직이다, 옮기다, 추진하여 가다, 몰아가다'를 의미한다.||(b) 비유적으로 '움직이다, 선동하다, 감동시키다, 일으키다'를 의미하며,|① 영혼의 영역에서 '~에 닿다 touch, 감동시키다, 혼란시키다, 불안하게 하다'(Eur.),|② 마음의 영역에서 '움직이다, (~의 한 마음을) 일으키다'(P. Oxy),|③ 정치적 영역에서 '부추기다, 선동하다, 선동하여 ~을 일으키다'(Plat, Resp.),|④ 파피루스(16~17세기)에서 '요구하다, 고소하다',||(c) 특별한 의미로 머리를 '흔들다'(Homer)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키네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이상 나오며, 13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머리를 '흔드는 것'(왕하 19:21; 렘 18:16; 애 2:15; 욥 16:4; 시 22:7; 단 4:19; 집회서 12:18; 13:7), 마음이 '혼란하거나 불안하는 것'(단 2:3), '기거나 움직이는 것'(창 7:14; 창 7:21)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키네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키네오는 '옮기다'를 의미한다.|①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②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③ 계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b) 키네오는 머리를 '흔들다'를 의미한다.|막 15:29(병행구 마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c) 키네오는 '소동하다'(내적, 외적 혼란으로)를 의미한다.|행 21: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d) 키네오는 '선동하다'를 의미한다.|행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e) 키네오는 '움직이다'를 의미한다.|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참조: J. Schneider; Walter Bauer; J. H. Thayer).
동함
kivnhsi"
움직임, 동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키네시스(Pla. 이래; Dit. 등)는 키네오($2795: 움직이다, 이동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움직임, 동요'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키네시스는 신약성경에서 요 5:3에 한번 나오며, 물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기스
Kiv"
기스 Kish.||#1. 구약성경.||키스는 히브리어 키쉬(7027)의 음역이며, '활'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기스'라고 음역했다. 기스는 구약성경에서 다섯 사람이 이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다. 여기서 취급할 기스는 사울왕의 아버지이다.||기스는 기브아의 베냐민 사람이며, 사울왕의 아버지이다. 그는 부유한 사람이었고, 여러 마리의 나귀가 있었고, 이 나귀를 잃어버렸을 때 사울을 보내어 찾게 하였고(삼상 9:1-삼상 9:3), 사울은 도중에 사무엘을 만나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 16:1). 기스는 베냐민 땅 셀라에 장사되었다(삼하 21:14).||#2. 신약성경.||기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3:21에 한번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할 때 언급되었다: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참조: TB).
가지
klavdo"
가지 branc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라도스(Hdt.이래)는 클라오($2806: 부수다, 쪼개다, 짜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나무나 식물의 '싹, 눈, 봉오리, 가지'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어린 아이'에 대하여 사용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라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주로 아나프(가지, 큰 가지), 아네프(가지로 무성한), 포라(가지)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라도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가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13:32에서 클라도이(복수: 가지들)는 보호처를 제공한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병행구, 막 4:32; 눅 13:19). 예레미아스는 이 말이 이방인들의 흡수를 뜻하는 기독교적인 표현이었다고 주장한다.||(b) 마 21:8에서 가지들은 예수님의 입성의 길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c) 마 24:32에서 가지들은 시기를 알려주는 징후를 나타낸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d) 롬 11:16이하에서 바울은 한 감람나무에 접목된 가지를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바울은 공동체의 계속성을 받아들이며,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이다(갈 3:16). 그러므로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이다. 믿음의 관계가 혈연 관계를 대신한다. 나무는 항상 그대로 있지만 어떤 가지들은 부러지고 새 가지들이 그 가지들을 대신하게 된다.|(참조: J.Schneider; E.M.Embry).
곡하다
klaivw
울다 wee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라이오(Homer 이래)는 자동사로 '크게 울(부짖)다, 울다'를 뜻하고, 타동사로 '애통하다', '몹시 슬퍼하다'를 의미한다.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 클라이오는 양심의 가책이나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나 볼 수 있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라이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4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바카(울다, 크게 울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클라이오는 70인역본에서 심한 슬픔으로 우는 것(삼상 1:7; 애 1:16), 죽은 자를 애도하여 우는 것(창 50:1)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너무 기뻐서 우는 것(창 46:29), 아기가 우는 것(창 21:16; 출 2:6),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울부짖는 것(삿 15:18; 삿 16:2) 등을 표현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라이오는 신약성경에서 4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클라이오는 구약성경의 용법과 유사하게 강렬한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헤어질 때(행 21:13), 그리스도의 원수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빌 3:18), 죽음과 죽은 자를 눈 앞에 두었을 때(막 5:38; 눅 7:13, 눅 7:32; 요 11:31, 요 11:33; 행 9:39), 또는 일반적으로 환난에 임박했을 때(롬 12:15; 고전 7:30) 등이다. 구약성경에서와 같이 기쁨으로 인한 눈물은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b) 눅 6:21에서 예수님은 우는 자들을 축복하면서 웃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반면에, 웃는 자들을 울게 하실 것이다. 랍비에게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웃는 것은 인간의 자기 확신과 자신 과잉을 나타낸다. 그러나 우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규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마지막 때에 지금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은 버림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친교를 향유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가치 변경(transvaluation)은 진실된 안전과 거짓된 안전 사이의 차이를 명백히 해 줄 것이다(왕하 20:3; 왕하 2:18-왕하 2:19; 삿 15:18; 호 12:4; 시 128:5-시 128:6).|"이제 우는 자들은", 부요한 자와 배부른 자, 그리하여 지금은 웃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자들과 대조를 이룬다(눅 6:25이하). 후자의 사람들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로서, "회개할 것 없는"(참조: 눅 15:7)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일평생 자기 신뢰로만 일관하며, 죄의식이라고는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제 우는 자들"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마 26:75; 눅 7:38에 의하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는 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이다.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는 울음, 이 세상에서 당하는 수난으로 인한 제자들의 울음은 세상 끝날에 사라지고 하늘 나라의 자녀로서 웃게될 것이다.||(c) 눅 6:25에서 예수님은 "이제 웃는 자"에 대하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고" 화를 선언하신다. 신약성경에서 클라이오는 미래를 언급하는 경우에 사용되는데, 재앙의 경고와 함께 사용되었다. 즉 지금 경건치 못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조롱하는 자들은 최후의 심판날에 수치를 당하리라는 경고이다. 유사한 표현은 계 18:9; 계 18:11; 계 18:15; 계 18:19에 나타난다.||(d) 요 16:20에서 클라이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슬픔을 인하여 우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기서 "너희"와 "세상"이 대조적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제자들은 울며 애통할 것이나 마귀의 지배 하에 있는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다(Sang Kun Lee).|약 4:9이하에서 장차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통곡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울 것을 야고보는 권면하고 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마도 야고보는 눅 6:25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상기하고 있는 것 같다.|(참조: C.L.Mitton, The Epistle of James).

klavsi"
뗌, 쪼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라시스(Pla. 이래)는 클라오($2806: 부수다, 쪼개다, 자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부숨, 뗌, 쪼갬'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라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의 기록에만 2회 나온다.||(a) 눅 24:35에서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떡을 '떼어 주신 것'을 묘사한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b) 행 2:42에서 성도들이 교제의 떡을 '떼는 것'을 묘사한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