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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클라스마
klavsma
조각, 단편 fragm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라스마(X., Diod., Plut.)는 클라오($2806: 부수다, 쪼개다, 자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단편' a fargment, '깨어진 조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라스마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파트(6595: 파편, 조각, 부스러기; 레 2:6; 레 6:14; 삿 19:5), 펠라흐(6400: 분열, 갈라진 틈, 조각, 맷돌; 삿 9:53; 삼하 11:21; 겔 13:1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라스마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사복음서에만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사복음서에서 음식물 이적과 관련하여 '조각'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b) 마 15: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c) 막 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d) 막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e) 막 8:19; 막 8:20,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f) 눅 9: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g) 요 6:12; 요 6:13,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우다
Klauvdh
가우다 Cauda(지)||클라우데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가우다'로 음역했다.|가우다는 그레데 섬 근처에 남쪽으로 놓여 있는 작은 섬이며, 가우도스(Gaudo)로 불린다. 현재의 '가우도 네시' 또는 '클라우다 네사'이다.||신약성경에서 가우다는 행 27:16에 한번 나온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실은 로마행 배가 풍랑을 만난 것에 관해 등장한다. 이 섬을 지나면서 난파를 대비할 수 있었다(참조: 행 27:17-행 27:1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글라우디아
Klaudiva
글라우디아 Claudia(인)||클라우디아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글라우디아로 음역했다.|신약성경에서 글라우디아는 딤후 4:21에 한번 나온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글라우디아는 으블로, 부데(부덴), 리노와 더불어 사도 바울이 두 번째 로마 옥에 투옥되었을 동안 그의 친한 친구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디모데에게 문안했다. 사도 법전(Apostolic Constitutions) 제 7권 46장은 글라우디아를 로마의 초대 감독 리노의 모친이거나 부인으로 기록했다.|어떤 학자는 그녀가 부덴의 부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시인 말티알(Martial)의 친구 아우루스 부덴(Aulus Pudens)의 부인 글라우디아 루피나(Claudia Rufina), 그리고 글라우디어스 부덴의 부인 글라우디아 퀸칠라(Claudia Quinctilla)와 동일한 자였다.|(참조: A. Rupprecht).
글라우디오
Klauvdio"
글라우디오 Claudius(인)||클라우디오스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글라우디오'라고 음역했다.|글라우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신약성경에 나타난다.||#1.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a) 글라우디오는 로마의 제 4대 황제 글라우디오 1세(A.D. 41-54년)로 두루수스(Drusus)와 안토니아(Antonia)의 아들이며, 디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조카이다. 그는 신체적 불구였고 지능이 약간 박약했으며, 젊은 시절 디베리우스 황제 밑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다. 그는 갈리굴라(Caligula)에 의해 A.D. 37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그 후에 기타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b) 헤롯 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는 그를 도와서 황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로 아그립바 1세는 전 팔레스타인의 통치자가 되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아그립바의 영향으로 종전까지 금했던 유대인의 종교 행위를 다시 인정하고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대해 박해하지 않았다.||(c) 행 9:31에 보면 그는 통치 초기에는 유대인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통치 말기에는 유대인들을 모두 로마에서 추방했다(행 18:2).|행 11:28에 보면 아가보가 예언한 흉년이 글라우디오 때에 성취되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그의 통치 기간에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재난과 기근이 따랐다고 평했다.|글라우디오 황제는 후계자 문제로 그의 마지막 아내 아그립피나(Agrippina)에 의해 A.D. 54년에 독살 당했다.||#2. 글라우디오 뤼시아.||글라우디오 뤼시아는 행 23:26에 한번 그의 이름이 나타난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그는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며, 예루살렘 수비대의 사령관이었다.|예루살렘 수비대는 성전터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성전 가까운 곳에 있는 안토니아 성채에 주둔하고 있었다.|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그리스도인으로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는 바울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때 바울은 나면서부터이다고 말했다(행 22:28).|그는 사도 바울의 설교에 흥분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 군중들로부터 바울을 구해내었다(행 21:31-행 21:36). 그는 바울은 고문하여 신문하려고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으나(행 22:23-행 22:24) 바울이 로마 시민이란 사실을 알고 포르시아 칙령 때문에 바울의 결박을 풀고 공회에 넘겼다(행 22:30).|그들은 의견 차이로 바울을 정죄할 수 없었으나 한 무리들은 그를 죽일 것을 계획했다. 바울에 대한 그들의 음모가 바울의 생질에 의해서 알려졌을 때 루시아는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에게 밤을 이용하여 바울을 보내었다(행 23:23-행 23:33). 루시아가 벨릭스에게 바울을 보낸 사건에 대한 내용은 행 23:26-행 23:30에 기록되어 있다.|(참조: PEB; TB).
울며
klauqmov"
울음 weep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라우드모스(Homer 이래)는 클라이오($2799)에서 유래했으며, '울부짖음, 애통, 울기(눈물을 흘림)'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라우드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8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베키(울음)의 역어로 사용되어 울음을 나타낸다(창 45:2; 신 34:8; 삿 2:2; 사 15:2, 사 15:3; 욥 30:31; 사 30:19; 렘 22:10).||#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라우드모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마태복음에 7회, 누가복음에 1회, 사도행전에 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18에서 클라우드모스는 문자적으로 오뒤르모스 폴뤼스("크게 통곡하는 소리")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 말은 렘 31:15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다. 이 예언은 베들레헴에서 죄없는 아기들이 대량 학살됨으로써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다.|행 20:37에서도 클라우드모스는 문자적 의미로 신자들이 바울과 이별할 때 운 것을 나타낸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b) 클라우드모스는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한 자들에 대해 "이를 갊"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마 8:12; 마 13:42; 마 13:50; 마 22:13; 마 24:51; 마 25:30; 눅 13:28). 이러한 경우, 이 단어는 이 통한을 심판과 관련시켜 묘사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자기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말살시켜 버린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H.Haarbeck; K.H.Rengstore).
클라오
klavw
자르다, 부수다, 쪼개다.||동사 클라오(Homer 이래)는 '자르다, 부수다, 쪼개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클라오는 14회 나오며, 떡을 떼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14:19; 마 15:36; 마 16:26; 막 8:10; 막 8:19; 막 14:22; 눅 22:19; 행 2:46; 행 20:7; 행 20:11; 행 27:35; 고전 10:16; 고전 11: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열쇠
kleiv"
열쇠 a ka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이스(Homer이래)는 클레이오($2808:닫다)에서 유래했으며 '열쇠'를 의미한다.||(a) 고대에는 하늘이 문들로 닫혀 있으며, 특정한 신들이나 천사들이 하늘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b) 여러 간수들, 예를 들면 네두(Nedu), 플루토(Pluto), 크로노스(Kronos) 또는 이시스(Isis)와 같은 자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문들이 봉해진 것으로 묘사된다. 열쇠에 관한 인상은 일상 생활에서 널리 펴져 있다. 이러한 것은 심사숙고와 전투에 가장 긴요한 열쇠가 휴식이라고 한 핀다르(Pindar)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휴식이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선행 요건이라는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이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그중 3회는 히브리어 맢테아흐를 번역한다.||(a) 원래 이것은 큰 나무 문의 열쇠이며, 그 나무 문은 아마 여러가지 긴 못을 박아 고정한 하나의 긴 나무조각으로 되었을 것이다. 이 열쇠는 대개 매우 커서 호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혁대에 달고 다니거나 심지어는 어깨에 메고 다니기까지 하였다(사 22:22). 이 열쇠로 밖에 문의 자물쇠를 앞뒤로 돌리게 되어 있었다. 레위인의 특별한 직무 가운데 하나는 방과 광의 열쇠들을 관장하는 것이었다(대상 9:27). 사 22:22에서는 엘리아김에게 다윗 집의 열쇠를 소유하게 되는 직책이 수여되었다.||(b) 후기 유대교 저술에는 천사들(미가엘 등)을 하늘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자들로 언급한다. 하나님이 열쇠를 가지고 계신 것으로 언급하며, 어떤 비유에서는 하나님이 비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고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이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그 중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각각 1회, 요한계시록에 4회 나오며, 모두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지식의 열쇠. 눅 11:52에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도 제역할하지 못한다고 그들에게 화를 선언하신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의 말씀은 지식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같은 내용인 마 23:13에서는 천국으로 표현되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이 두 구절을 비교해보면,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종교인들을 책망하신 말씀들 중의 결론 구절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 그릇된 완고한 율법주의,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였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마태복음에서는 더욱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의 특별한 책망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이 해석상의 이해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즉 누가의 기록은 이방인에게 보내진 것으로서 지식과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며, 한편 마태의 기록은 특히 유대적 성격이 더 강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당대 유대인들의 행위를 일일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이 말씀은 서기관들이|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는 열쇠인 지식이나,|⑵ 지식에 이르는 열쇠를 가져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본래는 전자를 의미할 가능성이 더 크다(참조: 마 23:13). 그렇지만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보다 더 무리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든지 간에 서기관들이 신학적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구원의 문을 여는 대신에 오히려 그 열쇠를 굳게 잡고 따라서 그 문을 닫아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b) 천국의 열쇠. 마 16:19에서 클레이스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에 나타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참조: 마 16:18).|① 성경 및 유대적 용법에 있어서 열쇠를 건네주는 것은 문지기로 임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마 13:52; 계 3:7). 이 구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그 집의 주인이시며, 그 열쇠로써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 엘리아김의 어깨에 다윗 집의 열쇠를 두시듯이(사 22:22), 예수님께서도 그의 집 즉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겨서 그를 그 집의 관리자로 삼으신다는 말씀이다(참조: 막 13:34; 눅 12:42; 눅 16:1이하; 고전 4:1; 벧전 4:10의 청지기에 관한 말씀).|② 이 구절의 이해를 위해서 마 23:13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는 그 구절이 신약성경에서 천국의 열쇠라고 표현한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예수님의 시대에 서기관들은 천국에 대한 열쇠의 권세를 소유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심판하는 형태로 하나님의 뜻을 선언함으로 말미암아 이 권세를 행사한다. 그것에 의하여 그들은 회중을 위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었다. 즉 회중의 영적 지도자들로 행사함으로 그렇게 했다.|예수님은 그들이 그들의 책무를 이행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열기보다는 그리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따라서 메시야 공동체의 주로서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열쇠, 즉 선포의 완전한 권세를 베드로에게로 옮긴다.|베드로도 복음 전파를 통해 사람들을 그 나라로 인도해야할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자격을 가진 베드로의 역할이 사도행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오순절(행 2장)에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그리고 가이사랴(행 10장)에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왕국을 열어 준 사실이 그러하다.|③ 이 구절은 열쇠의 권세를 묶고 푸는 것과 동일시한다. 랍비들 사이에서 묶고 푼다는 말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에 관해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들은 본래 구금하거나 석방하는 것, 금지를 부가하거나 푸는 심판관의 권한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그 후에 신의 심판을 집행하거나 면제시키는 것(중재로)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를 취하게 되었다.|따라서 본문에서 이런 권위는 사탄에 대한 결박, 불신자에 대한 심판의 선언, 신자들에 대한 사죄의 약속, 즉 사단에 대한 제어와 , 그리고 은혜의 심판의 말씀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제자들이 일찌기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동안 그의 일에 동참했던 것처럼, 이제도 그들은 죄의 용서라는 최고의 직무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편, 묶는다는 개념은 강한 자(즉 사탄)를 묶는다는 의미와도 관련이 있다. 사탄의 소유물(즉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늑탈하려면 먼저 사탄을 묶어야(바로 이 데오[deo]라는 동사임)한다(마 12:29 병행구, 막 3:27; 참조: 눅 8:21에서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 이와 같이 베드로는 악의 세력을 묶고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약속받았을 것이다.|음부의 권세 곧 사망조차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음부에 대한 언급은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언급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임박한 죽음조차도 교회, 즉 메시야 공동체를 막지 못할 것이다(참조: 마 16:21이하). 이와 마찬가지로 사망의 권세는 메시야 공동체 그 자체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참조: 마 6:24-마 6:27).|④ 본문은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유사한 약속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즉 묶고 푸는 권세는 사도들에까지 확장된다. 마 18:18과 아마도 요 20:23은 마 16:19을 다시 언급한다. 요 20:23은 이 권세를 열 한 사도에게 확대한다. 마 18:18은 회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17절),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12절 이후에 나오는 15절 이하 부분은 사랑 뿐만 아니라 징계의 사역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참조: 딛 3:10).||(c) 다윗의 열쇠, 지하 세계의 열쇠.|① 계 3:7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참조: 사 22:22). 그리스도는 약속된 다윗의 자손으로, 심판과 은혜를 통제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집의 열쇠가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다윗 집으로 들어가는 일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약속된 다윗의 자손으로서 미래의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는 일을 임의로 좌우하실 수 있는 완벽한 열쇠를 손 안에 쥐고 계시다는 것이다.|②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자로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세계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계 1:18). 그러므로 죽음은, 성도들에게 최후의 공포를 줄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또 그는 무저갱 열쇠를 소유하고 있으므로(계 20:1), 역시 음부의 영들을 지배하시는 주님이시다(참조: 계 20:3).||(d) 계 9:1에서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받았다" 별은 계 8:10의 별과는 달리 살아있는 생물이다. 천사들은 때때로 별로 표현되었으며(참조: 계 1:20), 이 별도 천사를 의미한다.|그러나 어떤 천사인지 학자들 간에 해석이 다르다. '타락한 천사'(simcox), 악령(kiddle), 사탄(Hendriksen, Atkinson), 하나님의 말씀(Torrance), 주님 자신(Kerkeley)라고 해석한다. 요한이 그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니 확실히 지적하기는 어렵다(참조: L.Morris).|(참조: Walter Bauer; J.H.Thayer; D.Muller; C.Brown; J.Jeremias).
닫히다
kleivw
닫다, 폐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레이오(Homer 이래)는 '닫다, 종결하다, 폐쇄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레이오는 70인역본에서 약 28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사가르(닫다, 잠그다, 창 7:16; 수 2:5; 수 2:7; 삿 9:51; 삼상 23:20; 대하 28:24; 느 6:10; 느 13:19; 욥 12:14; 전 12:4; 사 22:22; 사 24:10; 사 60:11; 겔 44:1 이하; 겔 46:1 이하), 구프(닫다, 느 7:3), 나알(정원 대문의 빗장, 아 4:1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클레이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a) "문을 닫"는 것에 대해, 마 6:6; 수동태로, 마 25:10; 눅 11:7; 복수, 요 20:19; 요 20:26; 행 21:30.|(b) 옥이 '잠기는' 것에 대해, 수동태로, 행 5:23.|(c) 성문을 '닫는' 것에 대하여, 수동태, 계 21:25.|(d) 무저갱을 '잠그는' 것에 대해, 계 20:3.|(e) 은유적으로 하늘이 '닫히는' 것에 대해, 즉 하늘로 하여금 비를 내리지 않게 하다, 눅 4:25; 계 11:6.|(f) 동정심을, 아무개가 접근할 수 없는 사물처럼 되도록, 닫아 두다, 아무개를 향하여 긍휼이 결여되다, 요일 3:17.|(g) "천국문"을 닫는 것에 대해, 천국에의 입장을 막다, 마 23:13. 같은 예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 속으로 보충해 넣어야 할 경우, 계 3:7; 계 3: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도적질
klevmma
도둑질 steeling, thef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렘마(Eur. 이래)는 클렙토($2813: 도둑질 하다, 훔치다)에서 유래했으며,||(a) '훔친 물건' Thing stolen(Aristot.),|(b) '도둑질' steeling(Eur., Arstph. 등)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렘마는 신약성경에서 계 9:21에 한번 나온다: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글로바
Kleovpa"
글로바 Cleopas.||클레오파스는 분명히 클레오파트로스(%591)의 축약형인 것 같다. 한글 개역 성경은 글로바로 음역했다.||클레오파스는 눅 24:18에 한번 그의 이름이 나타난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도상에서 낯선 사람으로 보이는 예수님과 동행한 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눅 24:13-눅 24:32). 다른 제자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전설에 의하면 시몬이며, 그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전도하라고 보내셨던 70인 제자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눅 10:1-눅 10:24).|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근일에 일어난 일과 그날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자들의 보고에 대해 이야기했다.|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들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설명하셨으며 그들이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 우리와 함께 유하자고 요구하여 함께 유하려 들어가서 함께 식사할 때에, 예수님께서 떡을 취하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들이 그를 예수님으로 알아보자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했다. 그들은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와 사도들을 만나고 그 사실을 말하였다.|(참조: PEB; TB).
클레오스
klevo"
영광 glor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오스(Homer 이래)는 클레오(%525: 축하하다, 찬양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소문, 평판' rumor, report,|(b) '영광, 영예' glor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2:20에 한번 나오며, '영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도적
klevpth"
도적 thief.||#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렙테스(Homer 이래)는 클렙토($2813)에서 유래했으며,||(a) '도둑',|(b) '기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렙테스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히브리어 간납(도둑)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2:2; 시 50:18; 잠 29:24). 신 24:7에서는 사람 도적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렙테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6:10에서 도둑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벧전 4:15에서 도적질로 고난을 받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는 차원에서 도적질은 하나님의 뜻을 위반하는 것이며 인간 관계의 견지에서는 사랑이 없는 행위이고 또한 친교를 배반(요 12:6)하는 것이다.||(b) 마 24:43; 눅 12:39에서 클렙토는 메시야 시대가 도래한다는 경고도 없이 메시야 시대가 갑작스럽게 도래한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집주인이 빈틈없이 경계함으로써 도적이 몰래 들어 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듯이 제자들 역시 주님의 재림을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살전 5:2, 살전 5:4; 벧후 3:10; 계 3:3; 계 16:15 등에서도 이와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여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오실 주의 강림을 설명하고 있다.||(c) 요 10:1에서 선한 목자에 관한 요한복음의 강화는 양 도적이라 할 수 있는 자를 가리켜 클렙테스 카이 레스테스라고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즉 양우리에 들어가는 비(非)정당한 방법인 몰래 들어가거나 또는 폭력을 사용하여 들어가는 자라는 것이다.||(d) 요 12:6에서 돈을 도용했던 유다는 클렙테스였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e) 요 10:8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먼저 온 모든 자를 규정할 때 사용하신 복수 어구 클렙타이 카이 레스타이는 예수님 이전의 경건한 자들이 아닌 드다와 갈릴리 사람 유다와 같은(참조: 행 5:36이하) 거짓 메시야들을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온 자는 자"(요 10:8)라는 어구는 메시야, 즉 "오실 그 이"를 뜻하는 전문 용어를 암시하는 것이다(참조: 마 11:3; 막 11:9; 눅 7:19; 롬 5:14).||(f) 요 10:10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려 오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주려한 것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참조: Walter Bauer; H.Preisker; N.Hillyer).
도적질 하다
klevptw
훔치다 stea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렙토(Homer 이래)는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훔치다, 비밀히 또는 교활히 횡령하여 사용하다'.|(b) '속이다, 속여 빼앗다, 마법을 걸다'.|(c) '비밀히 보유하다, 치우다, 숨기다'.|(d) '은밀한 방법으로 어떤 일을 행하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렙토는 70인역본에서 약 33회 나오며, 히브리어 동사 가납(휩쓸어 가다, 도적질하다, 속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클렙토는 70인역본에서 훔친 물건이 귀중한 물품이든, 우상이든, 동물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든 간에 도둑질은 중대한 죄로 간주된다(출 20:14; 신 5:19). 도적질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출 20:14) 형벌을 초래한다(출 22:2). 곤궁이나 가난도 도적질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잠 30:9). 옵 1:5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강도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시사한다.|훔치는 물품으로는 값진 물건(창 22:6), 동물(창 30:33), 사람(창 40:15; 출 21:16),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수 7:11), 집안의 우상(창 31:19),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도적질 당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렘 23:30) 등이 포함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렙토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십계명의 요구 사항들은 기독교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예수님도 부자 청년 관원에게 하신 말씀에 인용하셨으며(마 19;18; 막 10;19; 눅 18:20), 바울도 사용하였다(롬 13:9).|신약성경에서 성령 안에서의 사랑의 새로운 삶이란 십계명에 진지함이 추가 되었다는 것과 새로운 능력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한편, 십계명의 두번째 판에 있는 여러 계명들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계명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자기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롬 13:9이하).||(b) 실제로, 도적은 훔치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며, 대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빈궁한 자들의 필요를 위해 봉사할 수 있기 위하여(엡 4:28), 정직하게 일을 해야 한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c) 롬 2:21에서 바울은 율법 교사의 행위와 관련하여 클렙토를 사용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d) 마 6:19이하(참조: 눅 12:33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쌓아 놓은 재산에 의지하지 말 것을 경고하신다. 왜냐하면 도적들이 쉬이 벽돌로 쌓은 벽을 부수고 재물을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늘의 보물, 즉 장차 올 그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받을 그 어떤 보상은 도적들이나 해치는 것들이 미치지 못한다.||(e) 마 27:64에서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훔쳐갈까 염려한다. 그리고 마 28:13에서 그들은 제자들이 훔쳐갔기 때문에 무덤이 비게 된 것이라고 소문내기로 결정한다.||(f) 요 10:10에 의하면 도적이 오는 목적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명을 파괴하는 데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서라도 생명을 주고 또한 더 풍성히 주기 위하여 오셨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H.Preisker; N.Hillyer).
클레마
klh'ma
가지 branc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마(Aristoph.이래)는 '어린 가지, 가지'를 의미하며, 포도나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데모스데네스(Demosthenes)는 한 백성의 가지들에 대하여 말하였다(ap. Aeschin.77, 27).||#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마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대체로 포도나무의 가지를 가리킨다(욜 1:7; 나 2:3; 겔 17:6이하; 말 3:19).||#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마는 신약성경에서 4회, 요한복음에서만 나온다.|요 15:1이하에 나오는 비유는 포도나무와 가지들간의 불가결한 유기적 관계를 나타낸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들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며, 가지침을 당해야 한다. 가지들이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버려지고 시들어 버린다. 가지들에 요구되는 열매는 바로 사랑, 복종 그리고 기도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신 포도나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맺을 수 없다.|(참조: Walter Bauer; J.Behm).
글레멘드
Klhvmh"
글레멘트 Clement(인).||클레메스는 '온순한'을 뜻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글레멘트로 음역했다.|신약성경에서 클레메스란 이름은 빌 4:3에 한번 나온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클레메스는 빌립보 교회의 교인이며, 바울의 동역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1세기 말경 로마의 감독이었던 클레멘트(Clement)와 동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살았던 시기와 지역으로 보면 동일인으로 보기도 어렵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