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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기업으로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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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하다 inher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레로노메오는 클레로노모스($2818: 상속자)에서 유래되었으며,||(a) '상속하다, 상속자가 되다',|(b) '획득하다, 얻다, 소유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레로노메오는 70인역본에서 17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야라쉬(상속하다, 점유하다, 붙들다, 소유하다)와 그 파생어 예룻샤(소유, 유산, 기업, 상속), 그리고 나할(상속하다, 소유하다)과 그 파생어들(상속, 유산, 상속재산, 소유, 기업)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레로노메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상속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갈 4:30이하에서 클레로노메오는 자녀들이 '유업을 상속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단순히 행위에 의한 구원과 믿음에 의한 구원 사이의 조화될 수 없는 충돌을 극적인 예화를 들어 설명한다. 믿음으로 진정한 아들이 된 자는 모든 것의 상속자이다(참조: 갈 3:23-갈 4:11; 롬 4:13이하).||히 1:4에서 클레로노메오는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상속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b) 클레로노메오는 하나님의 약속과 선물들을 받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5:5에서 땅을 받는 것을 표현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축복 선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과 땅을 유산으로 받으리라는 약속을 나란히 제시하시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주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대체되었음을 암시하였다.|마 25:34; 고전 6:9이하; 고전 15:50a; 갈 5:21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에 대해 말한다.|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약속을 포괄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기업으로 약속된 다른 대상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즉 마 19:29; 눅 18:18; 딛 3:7에서는 "영생", 히 1:14에서는 "구원", 고전 15:50b에서는 "썩지 아니할 것", 벧전 1:4에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곧 하늘에 간직한 것, 히 12:17; 벧전 3:9에서는 "복", 히 6:12; 히 10:36에서는 "약속", 그리고 계 21:7에서는 "이것들"이 기업으로 약속된 것들이다.|이 약속들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기업으로 받는다(히 6:12). 이 약속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참조: 히 6:20). 그 분은 아들이자 후사이시다(히 1:4). 예수님 자신이 상속자인 동시에 또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분인 까닭에, 우리는 그분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이 기업을 상속할 수 없다. 여기에는 실천적인 복종(참조: 히 11:8)이 포함되고, 오래 참는 것이 요구된다(히 6:12).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갈 5:21; 고전 15:50하반절). 최후의 심판에 관한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의 이러한 관계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는 것, 그 타인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 오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마 25:31-마 25:46; 참조: 눅 10:25-눅 10:37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또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도 영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복종함으로써만 기업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마 19:29; 막 10:29; 참조: 눅 18:29).|예수님은 우리를 상속자로 지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예수님과 공동 상속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들 상호간에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벧전 3:7). 여기에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벧전 3:9).|(참조: Walter Bauer; J.Eichler).
기업
klhronomiva
상속 재산, 유산 inherita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미아는 클레로노모스($2818: 상속자)에서 유래했으며,||(a) '상속재산, 유산',|(b) '소유, 재산'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미아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나할라(상속, 상속 재산, 유산, 소유, 기업)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미아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타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12:7에서 클레로노미아는 '유업'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막 21:1-막 12:7; 병행구, 마 21:33-마 21:41; 눅 20:9-눅 20:19; 참조: 사 5:1-사 5:7). 이 포도원 비유에서 예수님이 상속자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남은 자 사상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밭이요, 기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셨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이제 나은 자는 오직 한 사람에 불과하다. 예언자들에 의하여 거듭거듭 언급되었던 이 남은 자는 결국 단 한 사람, 곧 예수,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시다. 그러나 이 남은 자는 그분 자신을 통하여 모두가 똑같이 공동 상속자인 다수의 신자들로 성장한다.||(b) 벧전 1:4에 하늘의 기업은 공간적인 하늘의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업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부자 관계에 놓여 있다. 지옥을 상속한다는 언급은 없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만이 약속을 상속받을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간주될 수 있다는 유대교적인 견해에 직면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업이 더 이상 약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의한 것이라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갈 3:18). 그렇지만 실제로 이 약속은 율법에 선행하는 것이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 약속의 수령자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이 약속을 받은 자손이다.||(c) 히 9:15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 기업을 얻는다. 이 기업은 단지 미래에만 속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지금 이미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엡 1:18). 히브리서 11:7이하에 따르면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 엡 1:11-엡 1:14에서 우리는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고", 우리가 받은 성령 안에서 이 기업에 대한 보증을 받았다(엡 1:14)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축복 선언 중에서 적어도 그 최초의 선언만큼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그 완전한 실현은 나머지 축복 선언에서와 같이 미래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암시한다.||(d) 골 3:24은 "유업의 상"을 받는 것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 상이 마땅히 받을만한 권리 따위가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적절한 경우에만 충당되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참조: J.Eichler; J.H.Thayer).
기업을 받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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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 inheritor, 후계자, 후사 hei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모스(Plato 이래로)는 클레로스($2819: 제비)와 노모스($3551: 할당된 것)의 합성어이며, '상속자, 후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모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야라쉬('상속한다, 점유하다, 상속자이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로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타난다.||(a) 마 21:38에서 클레로노모스는 아들을 상속자로 묘사한다: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마 21:33-마 21:41; 병행구, 막 12:1-막 12:7; 눅 20:9-눅 20:19; 참조: 사 5:1-사 5:7). 이 포도원 비유에서 예수님을 상속자로 묘사하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남은 자 사상을 도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밭이요 기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셨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자는 오직 한 사람에 불과하다. 예언자들에 의하여 거듭거듭 언급되었던 이 남은 자는 결국 단 한 사람, 곧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시다. 그러나 이 남은 자는 그분 자신을 통하여 모두가 똑같이 공동 상속자인 다수의 신자들로 성장한다.||(b) 공관복음서의 증언과 나란히 바울도 역시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과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인이 된 교회 사이의 연관성을 특별히 강조한다.|롬 4:13에서 바울은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으로 되었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참예한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상속인이 된다. 만약 이것이 율법에 달려있고 그리스도에 달려있지 않다면, "믿음은 헛 것이 된다"(롬 4:14).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따라서 그의 상속인이다(갈 3:29; 참조: 갈 4:1; 갈 4:7; 딛 3:7).||(c) 히브리서는 이 증언을 발전시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통하여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셨다(히 6:17). 그들은 이미 미래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망 가운데에서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참조: 히 6:18).|히 1:2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자 후사이다. 히브리서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바울 서신에서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히브리서에서는 이 기업의 미래적 성격과 약속을 굳게 견지해야 할 필요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근본 사상은 동일하다. 히 11:7을 보면, 바울 서신에서와 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것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노아가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였다(참조: 롬 4:3; 갈 3:6; 창 15:6).||(d) 약 2:5은 공관복음서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상속자가 되도록 중보해 주신 예수님과의 관련성은 표현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 하셨느냐"(약 2:5).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선택, 약속, 그리고 상속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성이 나타나고 있다.||끝으로, 신약성경은 약속의 기업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즉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들도 이스라엘과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요, 약속의 상속자라고 거듭거듭 힘주어 말한다(갈 3:23-갈 3:29; 참조: 갈 4:30; 롬 4;13이하).|(참조: J.H.Thayer; J.Eichler).
대신할 자(난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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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상속 재산, 제비, 제비뽑기, 몫.||#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로스(Homer이래로)의 어원은 불확실하며, 그 기본 의미는 '제비'이다. 따라서 클레로스는||(a) 첫째로 '제비'나 '제비뽑기'를 의미한다. 제비를 던지거나 뽑아 결정할 때 사용되는 물건은 조약돌이나 질그릇 조각 또는 나무 조각이 사용되었다. 제비뽑는 한 방법은 자기 이름들이 기입된 여러 관련 당사자들의 제비가 단지 속으로 던져 넣어졌으며, 그 다음 그 단지를 흔들어서 최초로 땅에 떨어진 제비 임자가 당첨되었다(호머, 일리아드).||(b) 다음에 제비뽑기로 할당된 땅의 일부분(몫), 그 다음에 단순히 '땅의 부분, 분깃, 몫'을 의미하게 되었다.||(c) 그리고 그 다음 클레로스는 상속, 상속재산(inheritance)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참조: W.Foerster).||#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로스는 70인역본에서 14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고랄(제비), 나할라(상속, 소유, 상속 재산, 기업)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a) 클레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첫째로 '제비, 제비뽑기(lot)'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막 15:24; 그 병행구, 마 27:35; 눅 23:34; 요 19:24에 있는 예수님의 수난의 기사에서 군인들이 십자가 처형 때에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요한복음 기자는 이 사건을 시 22:18의 예언의 성취로 분명히 간주한다: "저희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이 사건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의 철저한 비하를 표현한다. 시편은 외로움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표현에서 시편 기자는 이 모든 일을 지휘하고 계시며 그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 22:19). 한편 복음서에 나오는 수난 기사는 하나님 자신이 그 사건의 배후에 있으며, 예수님은 시편의 그 표현을 성취시킨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있다.|② 행 1:26에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라는 문구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그들이 그들에게(그들의, RT) 제비를 주니 제비가 맛디아에 떨어졌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으례히 예상되기 마련인 동사 에발론(그들이 뽑다)이 아닌 동사 에도칸(edokan: 문자적으로는 '그들이[제비를] 주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묘사되고 있는 내용은 투표일 것이라고 제시하였다(참조: F.J.Foakes Jackson and K. Lake eda.). 헨첸(E.Haechen)은 과정에서 "인간적 요소가 배제되고, 선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지적하였다. 이 표현은 욘 1:7의 표현과 일치한다.|요셉과 맛디아, 이 두 명의 후보자 가운데 누구를, 열 두 사도 가운데 전에 유다가 맡았던 한 자리로 채울 인물로 선정하느냐라는 문제에 당면하여 최종 결정은 제비뽑기로 이루어졌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주님의 지상 선교활동을 통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행 1:21이하). 이 제비뽑기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린 후에 실시되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 1:24이하)라는 기도를 올린 후에 실시되었다. 여기서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부단한 노력을 표현한다.||(b) 그렇지만 대부분, 클레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어떤 자에게 할당된 몫'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구약에서와 같이 획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고 사람이 받는다.|① 행 1:17에서 유다는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다"고 한다. 이 직무는 지정된 어떤 것이다. 여기서 "한 부분"에 해당하는 클레론과 "맡았다"에 해당하는 엘라켄(%94)은 둘 다 하나님의 자유 의지를 강조한다.|② 행 8:21에서 요한과 베드로는 시몬에게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도" 없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이 모세 안에서 한 분깃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선물에서 한 분깃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③ 행 26:18(참조: 행 26:15-행 26:18)에서 클레로스는 사람에게 할당된(부여된) 종말론적 몫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 구절의 언어는 빛 가운데서 거룩한 자(천사)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의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이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든지 간에 이 구절에는,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일원으로 참예할 수 있다고 하는 혁명적인 생각이 나타나 있다.|④ 골 1:12에서도 행 26:18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골로새에 세워진 이방인 교회는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고" 있었다.|⑤ 벧전 5:3에서 사용된 복수형 클레로이는 장로들에게 할당된 몫, 즉 '장로들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을 나타낸다. 이 클레로이("맡기운 자들")은 몇개의 부분 혹은 구역으로 구성된(그 구역은 제비뽑기로 구성되었을런지도 모른다) 개교회를 의미하는 듯하다. 셀윈(E.G.Selwyn)은 이 말을 "목회의 대상인 양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신 9:29을 암시할런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지적하였다.|(참조: J.Hermann; J.Eichler).
기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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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뽑다 cast lot, 제비로 결정하다 determine by lo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레로오는 클레로스($2819: 제비)에서 유래했으며, '제비 뽑기로 지정하다'(Aristot.), 능동태와 중간태로 '제비 뽑다'(Lys.), 수동태로 '제비 뽑기로 지정되다'(Aesch.), '제비 뽑기로 받다'(Eur.), 그리고 순전히 비유적으로 '획득하다, 얻다'(Ael. Nat.), 최종적으로 클레로오는 '지정하다, 분배하다, 할당하다'를 의미한다.(참조: W.Foerster).||#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레로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라카드(붙잡히다, 삼상 14:41), 나할라(상속, 상속 재산, 소유, 기업, 사 17:11), 카라(접근하다, 들어가다, 에 4:1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레로오는 신약성경에서 엡 1:11에만 한번 나타난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는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고"(엡 1:11), 우리가 받은 성령 안에서 이 기업에 대한 보증을 받았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엡 1:14). 축복 선언 중에서 적어도 그 최초의 선언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그 완전한 실현은 나머지 축복 선언에서와 같이 미래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암시한다(마 5:3; 참조: 눅 6:20).|(참조: J.Hermann; J.Eichler).
부름
klh'si"
부름 Call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레시스는 칼레오($2564: 부르다, 일컫다)에서 유래했으며,||(a) '이름을 지음'이나 '이름',|(b) 더욱 일반적으로 '초대'나 '초청'(Xen., Sym P.),|(c) '부름' 공인된 전령에 의한 공적 호출(군사 또는 시의회 등), 그리고 집단이나 개인이 부르는 것(Homer, Od.),|(d) 종교적 의미에서 '부름'(Epict. Diss.)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레시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렘 31:6에서만 히브리어 카라(7121)를 번역하여 '초청하는 부름'을 나타낸다. 클레시스는 또한 마카베오삼서 5:14에서 초대(행위)라는 의미로, 유딧 12:10에서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레시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서 9회, 히브리서와 베드로후서에서 각각 1회 사용되었다.||(a) 롬 11:29에서 하나님의 클레시스는 하나님의 부름이나 소명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b) 고전 1:26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의 부름을 숙고하라고 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하나님은 지혜있는 자나 강한 자들 대신에 어리석고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신다"(고전 1:27).||(c) 고전 7:20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부름받은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들의 부름은 세속적인 '소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 안에서 부름을 받았으며, 그들의 클레시스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고전 7:22 이하).||(d) 엡 1:18에서 부르심의 소망이란 신자가 부름을 받는 소망을 의미한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참조: 엡 4:4).||(e) 엡 4:1은 부름에 합당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f) 엡 4:4에서 부르심의 한 소망을 공유한 부름을 언급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g) 빌 3:14에서 부르심의 상에 대해 언급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부름은 그리스도에 입각하여 하나님에 의해 하늘에서 부르는 부름이다.||(h) 살후 1:11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되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이란 표현이 하나님께서 자기가 명하여 받게 한 그 부름에 합당하다고, 그러므로 그 부름에서 약속된 복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선언하는 자에 대해 사용된다.||(i) 딤후 1:9에서 거룩한 부르심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거룩한 부름이란 표현에서 단순히 이름만의 거룩이나 하나님의 지고한 거룩으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거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죄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죄악과 권세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신자의 편에서는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경험이며, 하나님 편에서는 믿는 자들에게 온전한 내적 정결을 이루어주는 생명의 전달을 의미한다.|하나님은 주도권을 쥐시고 죄로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며 거룩으로 인도하신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역시 성령의 중재적 사역에 의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비록 우리들 편의 자유로운 응답이 구원의 요인이긴 하여도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개심의 기적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들의 구원은 결국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는다(참조: J. G. Gould).||(j) 히 3:1에서 하늘의 부르심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 부름은 하늘로부터 오는 부름이며, 하늘을 향할 것을 호소하는 부름이다(A. T. Robertson).|벧후 1:10은 신자의 부름과 선택을 확실히 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 두 가지만 부르심과 택하심은 모두 대격 단수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각 신자들은 그 부르심과 선택을 분명히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는다. 신앙의 원리는 반드시 신앙의 진보를 가져오며 이 양자 모두는 우리가 약속된 하나님의 신앙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의 전망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여기서 자기 자신의 영혼의 영원한 복락을 무시하는 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견인의 원리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가 이런 것을 행한다면..."의 인간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과 만나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실족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성취된다(A. T. Robertson; E. R. Fuhrman).|(참조: K. L. Schmidt; L. Coenen).
부르심을 받은
klhtov"
부름 받은 call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클레토스(Homer 이래)는 칼레오($2564: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부름 받은, 초대 받은, 환영하는'(호머의 오딧세이)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클레토스는 70인역본에서 18회 나온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미크라(4744: 소집, 집회, 모임)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성'회(출 12:16; 레 23:2; 레 23:3; 레 23:4; 레 23:7; 레 23:21; 레 23:24; 레 23:35; 레 23:36; 레 23:37; 민 28:25)를 나타내며, 카라(7121: 부르다, 초대하다, 소환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청함을 받는 (자)'나 손들'을 나타낸다(삼하 15:11; 왕상 1:41; 왕상 1:49; 습 1:7).||#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클레토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마태복음에서 2회, 바울 서신에서 7회,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에서 각 1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때로는 동사로,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명사로 사용된다.||(a) 바울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클레토이(부름을 받은 자들)라고 칭하고 있으며(롬 1:6 이하; 롬 8:28; 고전 1:2; 고전 1:24), 롬 1:7과 고전 1:2에서는 클레토이 하기오이(성도로 부름을 받은 자들)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존재와 교회에 속한 개개의 구성원들의 존재가 모두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에만 의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b) 매우 드문 현상이긴 하지만 바울이 클레토스를 개인의 직무에 사용한 경우도 있다. 롬 1:1과 고전 1:1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클레토스 아포스톨로스(사도로 부르심을 받다)라고 선언하는 가운데 사도인 자신의 직무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c) 유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부르심을 입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호의적인 주권이다.||(d)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승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의 특징, 즉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이다. 선택을 받은 자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자신의 진실함을 입증한다(A. T. Robertson).|(참조: K. L. Schmidt; L. Coenen).
아궁이
klivbano"
아궁이, 화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리바노스(Hdt., PPetr.)의 어원은 불확실하며,||(a) '클리바노스' a clibanus, 빵을 굽는 데 사용되는 토기,|(b) '아궁이' a furnace, '화덕' an oven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리바노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마 6:30(병행구 눅 12:28)에서 풀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참조: 호 7: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지방
klivma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리마(Aristot. 이래)는 클리노($2827: 기울이다, 구부리다)에서 유래했으며,||(a) '경사면, 내리받이, 비탈'(Polyb.),||(b) '적도에서 극지(poles)로 향하는 지구의 경사', 지리상의 '대'(a zone)(Aristot., Dion., Plut. 등).||(c) '땅의 지대, 지역, 지방'(Polyb., Hdian.)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리마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만 '지역'을 의미한다.||(a) 롬 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b) 고후 11: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c) 갈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침대
klivnh
침상, 침대, 평상.||#1. 고전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클리네(Eur., Hdt. 이래)는 클리노($2827)에서 유래했으며, '침대, 침상, 평상'을 의미하며, '사람이 휴식을 취하거나(삼하 4:17; 시 6:7), 식사를 하거나(Xenophanes; 겔 23:41)하는 장소이다. 환자를 운반하는 '들 것'(Appian, Bell.), '병상'(창 48:2; 창 49:33), 죽은 자를 위한 '운반대'(Pla., 왕상 3:31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리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사용되었다.||(a) 클리네는 환자를 운반하는 '들 것'(침대)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9:2; 마 9:6; 눅 5:18; 복수 행 5:15RG.||(b) 클리네는 식사 때에 비스듬히 눕는 '평상'에 대해 사용되었다: 막 4:21; 막 7:4; 눅 8:16.||(c) 클리네는 잠자리 '침상'에 대해 사용되었다: 막 7:30; 눅 17:34.||(d) 계 2:22에서 "침상에 던질터이요"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질병으로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클리나리온
klinavrion
작은 침대||명사 클리나리온은 앞의 클리네($2825)의 지소어이며, '작은 침대'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행 5:15에 한번 나온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클리니디온
klinivdion
작은 침대, 침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리니디온(Dionys., Plut. )은 클리네($2825: 침상)의 지소사이며, '작은 침대, 침상'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리니디온은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 2회 나온다.|눅 5:19; 눅 5:24에서 클리니디온은 중풍병자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숙이다
klivnw
숙이다, 물리치다, 의지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클리노(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타동사로, ① '기울이다, 구부리다, 숙이다', ② '쓰러뜨리다', 비유적으로 '함락시키다, 패주하게 하다'(Homer 이래), ③ '의지하다, 기대다',||(b) 자동사로, '스스로 기우리다(기울다)'(Xen. 이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리노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요 19:30에서 클리노는 예수님께서 머리를 '숙이고' 임종하는 것을 묘사한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b) 눅 24:5에서 클리노는 여자들이 두려워하여 머리를 '숙여' 얼굴을 땅에 '대는 것'을 묘사한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c) 히 11:34에서 클리노는 이방인들의 진을 '물리치는 것'을 나타낸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d) 마 8:20; 병행구, 눅 9:58에서 클리노는 '의지하다'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없다 하시더라".||(e) 눅 9:12에서 클리노는 날에 대해 '기우는 것'을 나타낸다: "날이 저물어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눅 24:29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클리시아
klisiva
기대는 장소(물건),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무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리시아(Homer 이래)는 클리노($2827)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눕거나 기대는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a) '오두막' a hut, '천막' a tent.|(b) 기대는 물건이나 장소, '안락의자',|(c)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무리', '식사시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리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눅 9:14에 한번 나온다: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명씩 앉히라 하시니". 여기서 '식사를 위해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무리'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클로페
klophv
도적질 thef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로페(Aeschyl 이래)는 클렙토($2813: 도둑질하다, 훔치다)에서 유래했으며, '도둑질'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로페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15:19; 병행구, 막 7:21에만 사용되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