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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주의
kuriakov"
주의, 소유자의.||형용사 퀴리아코스는 '주의, 소유자의, 주께 속한'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형용사 퀴리아코스는 2회 나오며, 고린도전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고전 11: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퀴리아콘 데이프논("주의 만찬")은 퀴리오스의 음식, 즉 주의 만찬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트라페자 퀴리우(주의 상, 고전 10:21)와 유사하다(참조: 사 65:11; Philo, Spec. Leg.) 퀴리오스의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그에게서 음식을 대접받는다는 것이며 이 일을 통해서 그와 사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교도들의 제사 음식에 참여하면 귀신과 사귀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행동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b)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서 퀴리아케 헤메라("주의 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가리키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참조: 요 20:1; 행 20:7; 고전 16:2). 이미 유대교에서도 첫째 날은 창조가 시작된 날로서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있어서는 새 시대를 시작하는 날로서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이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그래서 교회는 이 날에 모임으로써 이 날을 기렸다(-->안식일 Sabbath).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계 1:10).|(참조: W. Foerster; H. Bietenhard).
만주의
kurieuvw
주(인)이 되다, 다스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퀴리유오(Xen. 이래)는 퀴리오스($2962: 주, 주인, 소유자)에서 유래했으며, '주인이 되다, 다스리다, 통치권을 가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퀴리유오는 70인역본에서 5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마샬(다스리다, 통치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리유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22:25에서 퀴리유오는 통치자(지배자)의 권력 사용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의 통치 형태는 그들의 야망에 의해서 그 특징이 결정되는데, 이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왕들이 자기 권력을 잘못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b) 롬 6:9에서 퀴리유오는 사망의 깨뜨려진 지배권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죽음이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즉 이제는 어떤 권력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c) 롬 6:14에서 퀴리유오는 죄의 깨뜨려진 지배권에 대해 사용되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는 더 이상 기독교인들을 지배하지 못하며 또한 지배해서도 안된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d) 롬 7:1에서 퀴리유오는 율법의 효력에 대해 사용되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e) 롬 14:9에서 퀴리유오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이는 그가 산 자와 죽은 자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f) 딤전 6:15에서 하나님은 통치자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이시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h) 고후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지배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후 1:24). 그리스도가 죄와 죽음에 대한 자기의 권세를 입증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권세들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며, 사실상 받아서도 안된다.|(참조: W. Foescher; H. Bietenhard).
퀴리오스
kuvrio"
주님 Lord, 주인 lord.||#1. 고전 헬라어의 용법.||퀴리오스는 퀴로스(%1063: 힘, 권위)에서 유래했으며,||(a) 형용사로는|① '힘이 있는, 권세(력)을 가진, 권한을 부여 받은, 권위 있는, 유효한'을 뜻한다. 여기서 힘이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지배력을 뜻하며, 법의 경우에는 유효하다를 뜻하며,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권위 있거나 자격이 있다는 뜻이며, 통치자의 경우에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다를 의미한다.|② '중요한, 결정적인, 주요한'을 의미한다.||(b) 명사로 초기에 드물게 사용되었으나 두가지 고정된 의미|① 종, 집, 시민의 주인,|② 아내나 여자 아이의 법적 보호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이 두 의미 모두 합법성과 권위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그러나 아테네에서는 데스포테스($1203: 주, 주인, 소유자)라는 단어가 더 흔하게 사용되었다. 코이네 헬라어에서 퀴리오스가 법률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소유권보다 처분권에 더 강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두 단어는 거의 서로 교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가까워질수록 법률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게 되었고 데스포테스가 퀴리오스로 점점 대체되는 경향이 있었다.||(c) 처음에 공직자들은 퀴리오이(복수)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점점 그 칭호를 붙이는 관습으로 발전 되었고, 나중에는 퀴리오스가 철학자, 의사, 청중들, 남편(아내가 부를 때), 아버지(자식이 부를 때)에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누구든 아주 일반적으로 퀴리오스로 일컬어지고 퀴리에(여성형), 퀴리아($2959)라고 불리워졌다.||(d) 초기 시대에는 퀴리오스가 왕들이나 신들의 칭호로 사용되지 않았다. 헬라 시대에 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왕들(통치자들)이나 신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주전 1세기에 이르러서 였다(참조: W. Foerster).|퀴리오스 바실류스(주, 왕)는 주전 64년과 50년 사이에 자주 사용되었다. 주전 12년에 이집트에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데오스 카이 퀴리오스(하나님과 주)라고 일컬어졌다(BGU, 1197, I, 15). 상부 이집트에서 여왕 간다게(참조: 행 8:27)는 헤 퀴리아 바실릿사(여주인, 여왕)으로 불리워 졌다. 퀴리오스라는 명칭은 헤롯 대왕(약 73 ~ 4 B.C), 아그립바 1세(약 10 B.C ~ A.D 44), 아그립바 2세(A.D 27 ~ 약 100)에게도 사용되었다. 통치자들 외에, 고관들도 이 칭호를 받았으며, 예를 들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총독이 이 칭호를 받았다. 시리아에서도 사정은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주전 1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양에서도 군주를 퀴리오스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퀴리오스 데오스(주와 통치자)와 같은 칭호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퀴리오스는 신들에게 사용되어 그 시대에 유행했던 사상과 언어에서도 신들을 주(lord)라고 불렀다. 이 경우에 퀴리오스는 기초가 되는 셈어의 상당어구(예: 아돈, 마라, 여성형 랍바트)를 번역한 것이다. 이런 용어들에는 항상 인칭 대명사(나의, 우리의 등)가 첨가되어 신의 이름 앞에 붙여졌다. 퀴리오스를 신에게 사용했을 경우, 이 말을 사용한 종은 그 신에 대한 인격적인 책임 관계에 있게 되며 이때 신은 개인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의 아돈이 권력을 가진 주를 의미할 때,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상당어는 당연히 퀴리오스이다. 각 신들은 그들에게 제사하는 공동체의 주(lord)로써, 그리고 그 공동체에 속한 각 구성원들의 주 lord로써 숭배 받았다. 다른 주 lord(신)들을 숭배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신들 중 어느 하나도 우주적인 주로서 형성화되거나 숭배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e)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B.C. 31 ~ A.D. 14)와 티베리우스(Tiberius, A.D. 14 ~ 37)는 로마인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동방 형태의 군주정치를 거부했으며, 그와 더불어 퀴리오스라는 칭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칼리굴라(Caligula, A.D 37 ~ 41)는 퀴리오스라는 칭호가 매력적인 칭호임을 인식하였다. 네로의 비문에는 호 투 판토스 코스무 퀴리오스(세상 모든 사람들의 주, SIG 814, 31)가 묘사되어 있는데 네로(Nero, A.D 54 ~ 68) 이후에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더욱 더 자주 사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예문 중의 하나가 사도행전 25:26이다.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도미티안(Domitian, A.D 81 ~ 96)에 의해서 다시 평판이 나빠졌는데, 이는 그가 공식적인 서한에서 자기 자신을 도미누스 엣 데우스 노스테르(우리의 주와 하나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Suetonius, De Vita Caesarum, 13, 2). 도미티안의 사후에 이 칭호는 그에 대한 기억(담나티오 메모리아에)과 더불어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나중에 다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본래부터 저절로 퀴리오스라는 칭호가 황제를 신이라고 부르지 아니하였다. 그가 신으로 숭배될 때 주라는 칭호도 신의 속성으로 간주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국가의 전체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거부한 것은 곧 지나치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이런 종교적 주장에 대항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을 처음으로 퀴리오스라고 부르는 용법은 70인역본에서 나타난다(참조: H. Bietenhard).||#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9000회 이상 나오며, 24개의 히브리어 단어 및 어군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퀴리오스는 히브리어 아돈(주, 주인)의 역어로 190회, 바알(주 Lord)의 역어로 15회 사용되었는데, 결혼과 재산법에서 바알이 아내나 토지의 주인을 의미하는 반면(호 2:18; 삿 19:22; 삿 19:23 등), 아돈은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며 한 단체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우두머리인 명령자를 의미한다(삼상 25장).||(b) 퀴리오스는 또한 게비르(지휘관, 사령관), 아람어 마라(주 lord), 샬리트(통치자, 지배자)의 역어로 사용되었다.||(c) 그러나 많은 경우에(약 6000회 이상) 퀴리오스는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고유명사, 즉 신성 4문자 YHWH를 대신한다.|여호와는 창조자이시며, 전 우주와 인류의 주, 또는 주인이시며, 생명과 사망의 주(인) Lord이시다. 무엇보다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즉, 그의 언약의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를 뜻하는 말로 퀴리오스를 선택함으로써 70인역본 헬라어 본문도 법적인 권위에 관한 사상을 강조했다.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들을 자기 소유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법적인 주 Lord이다. 세상의 창조주로서 그는 또한 세상을 무한히 통할하는 세상의 합법적인 주이기도 하다.|퀴리오스는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인 아도나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18:27-32).||#3. 신약성경의 용법.||퀴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725회 나오며, 그 중 대부분 누가의 기록(210회)과 바울서신(275회)에 사용되었다.||(a) 퀴리오스의 통속적인 용법.|신약성경에서 퀴리오스는 포도원의 주인(막 12:9과 병행구절), 나귀(눅 19:33)와 개의 소유자(마 15:27), 청지기의 주인(눅 16:3), 종들의 주인(행 16:16; 행 16:19; 엡 6:5; 엡 6:9; 골 3:22; 골 4:1)을 의미한다.|퀴리오스는 또한 어떤 것, 예를 들면 추수(마 9:38) 또는 안식일(막 2:28)을 주관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퀴리오스의 공손한 어법은 눅 1:43에 나오고, 벧전 3:6; 막 12:36-37; 행 25:26에서는 우월성을 암시한다. 종들이나 일군들은 퀴리에(참조: 눅 13:8)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마 27:63에서 빌라도에게 같은 호칭을 사용했고, 마리아는 요 20:15에서 동산지기에게, 간수장은 행 16:30에서 바울과 실라에게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참조: 또한 마 21:29; 행 10:4).|퀴리오스의 형태는 팔레스타인 용법과 일치하며, 마 7:21-22; 마 25:11; 눅 6:46에 나타난다. 고전 2:8("영광의 주")과 살후 3:16("평강의 주")에서는 속격과 결합되어 나온다.|퀴리오스는 천사들을 칭할 때도 사용되었으며(행 10:4; 계 7:14), 다메섹 밖에서 하늘의 환상을 볼 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이에게도 사용되었다(행 9:5; 행 22:8; 행 22:10; 행 26:15).||(b) 퀴리오스이신 하나님.|헬라 회당에서 사용하던 용법에 따라, 하나님을 종종 퀴리오스라고 칭하였으며, 특히 여호와를 뜻하는 말로 퀴리오스를 사용하는 수많은 구약성경 인용문에서 그러했다. 공식적으로 성경을 봉독할 때에 신성 4문자 대신 퀴리오스를 사용하는 관습과 일치한다(예: 롬 4:8 = 시 32:2;시 9:28이하. = 사 10:22이하.; 사 10:16 = 사 53:1; 사 11:3; 눅 19:10; 눅 11:34 = 사 40:13; 사 14:11 = 사 45:23; 사 15:11 = 시 117:1; 고전 3:20; 시 94:11; 시 14:21 = 사 28:11이하.).|퀴리오스는 자주 누가복음의 탄생 기사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다(예: 눅 1:32; 눅 2:9).|퀴리오스가 속격으로 나와 다른 단어와 함께 쓰이는 형태는 구약성경의 용법과 일치하는데 예를 들면 퀴리오스의 손(눅 1:66; 행 11:21); 퀴리오스의 천사(마 1:20; 마 2:13; 마 28:2; 눅 1:11; 눅 2:9; 행 5:19;행 8:26; 행 12:7); 퀴리오스의 이름(약 5:10; 약 5:14); 퀴리오스의 영(행 5:9; 행 8:39); 퀴리오스의 말(행 8:25; 행 12:24; 행 13:48이하.; 행 15:35이하.)등이다.|"퀴리오스가 말씀하시니라"라는 공식 문구(롬 12:19 = 신 32:35; 고후 6:17; 사 52:11; 계 1:8 참조: 출 3:14)도 역시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표현이다.|요한계시록의 기자는 때때로 "주 하나님"(퀴리오스 호 데오스)이라는 구약성경의 어구에 강조적인 엄숙한 단어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이)를 첨가한다(계 1:8; 계 4:8; 계 11:17; 계 16:7; 계 19:6; 계 21:22).|우리 주 우리 하나님(호 퀴리오스 카이 호 데오스 헤몬) 이라는 공식 문구는 도미티안이 채택하여 사용했던 칭호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참조: 요 20:28).|계 11:15; 계 22:6에 나오는 예배의식상의 공식 문구는 주목해 볼만하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하늘과 땅의 퀴리오스"(마 11:25; 눅 10:21; 참조: 히 1:2; 집회서 51:1; 토빗 7:18)라고 했을 때 그는 유대식의 언어 형태를 채택한 것이다.|마 9:38에 보면 하나님은 (종말론적인) 추수의 퀴리오스이다. 하나님은 유일한 통치자이시며 왕중의 왕이시며 만주의 퀴리오스이시다(참조: 단 2:47), 그는 우리의 퀴리오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실 분이시다(딤전 6:15).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따라서 만물의 주이시다(행 17:24). 하나님을 퀴리오스라고 부르며 또한 그렇게 인정함으로서 신약성경은 특별히 하나님이 창조주이심과 역사 속에서 나타난 그의 능력, 그리고 그의 공정한 우주 지배권을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에 대한 믿음과 구약성경의 믿음과의 연속성을 고백하고 있다.||(c) 퀴리오스이신 예수님|① 퀴리오스이신 지상의 예수님. 지상에 계신 예수님에게 사용된 퀴리오스는 처음에는 정중한 형태의 호칭이었다(마 17:4, 퀴리에: 요 6:34; 요 13:6). 이런 호칭의 형태도 예수님을 지도자로서 인정하며 그에게 기꺼이 순종한다는 뜻을 내포한다(마 7:21; 마 21:29 이하; 눅 6:46). 인자(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또한 안식일의 퀴리오스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날을 다스린다(막 2:28 이하). 그의 죽음과 부활 후에도 지상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기독교 공동체의 무한한 권위를 지닌다. 바울은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퀴리오스의 말씀들에 호소했다(고전 7:10; 고전 12:25; 살전 4:15; 참조: 행 11:16; 행 20:35).||② 퀴리오스이신 높임 받으신 예수님. 예배에 사용된 신앙 고백적인 외침인 퀴리오스 이에수스(예수는 주이시다)는 의심할 바 없이 바울 이전의 헬라 기독교 공동체에서 유래했다. 이 고백이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장 오래된 기독교 신조들 중의 하나이다. 이런 고백으로 신약 공동체는 자신을 주님께 복종했지만 동시에 그를 세상의 통치자라고도 고백했다(롬 10:9; 고전 12:3; 빌 2:11).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며 그를 만민의 퀴리오스라는 자리로 높이 올리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즉 자기 자신의 이름인 주라는 이름을 "주셨으며"(빌 2:9 이하.; 참조: 사 45:23 이하) 그와 아울러 그 이름에 적합한 지위도 주셨다(빌 2:5-11). 높임을 받은 퀴리오스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다스린다(롬 14:9). 그밖에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왕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만주의 주로, 만왕의 왕 King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에 암시되어 있다(계 17:14; 계 19:16). 이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영예의 칭호를 받았다(딤전 6:15; 참조: 단 2:47). 그 당시의 유대 사상에 따르면, 자연과 역사에 있어서 세상의 다른 영역은 천사들의 힘으로 다스려졌다. 그리스도가 이제 퀴리오스의 지위로 높여졌으므로, 모든 권세들이 그에게 예속되었으며 또한 그를 섬겨야 한다(골 2:6; 참조: 엡 1:20이하.). 한 하나님과 한 퀴리오스이신 예수님은 이교 세계의 수많은 신들 및 주들과 반대된다(고전 8:5이하.; 엡 4:5이하).|예수님의 높이심과 주로써 취임한 것에 관한 성경적인 근거는 시편 110:1에 나와있다(참조: 마 22:44; 막 12:36; 막 16:19; 눅 20:42이하.; 행 2:34). 시편에서 따온 이 구절의 유대적인 해석은 메시야적 미래를 기대했으나 - 메시야적인 해석은 교회를 반대하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다 - 기독교인의 믿음 안에서 이 소망은 현재의 것으로 전이되었다. 메시야인 예수님의 주권은 현재적인 실재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세와 주권을 감추어진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종말론적인 미래에는 메시야의 통치가 완성될 것이다. 이 믿음은 도마의 신앙고백(요 20:28), 호 퀴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 무(나의 주 나의 하나님)에서 분명해졌다. 원시 기독교는 예수님을 주로 세우는 것을 일신교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신교를 확고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고전 8:6; 엡 4:5; 빌 2:11). 주 예수님을 높이셔서(행 2:36) 그를 만물의 주로 삼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③ 퀴리오스와 주의 만찬. 퀴리오스는 주의 만찬과 관련된 표현에 자주 나온다. "주의 상"(고전 10:21); "주의 죽으심"(고전 11:26); "주의 잔"(고전 10:21; 고전 11:27);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고전 10:22),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고전 16:22); "주의 만찬"(고전 11:20),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고전 11:32),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7). 이런 다른 여러 가지 표현들은 주의 만찬이 기독교 공동체가 특별한 방법으로 퀴리오스의 구원의 사역을 따르며 또한 퀴리오스의 몸과 능력을 나누어 받는 장소임을 나타내고 있다.||④ 퀴리오스와 성령.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에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라고 훈계했다(고전 12:3).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그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퀴리오스이신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고백함으로써, 새로운 언약에 속한 사람은 누구든지 또한 영의 세계에 속하여 더 이상 옛 언약과 그 문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⑤ 서신의 문안에 나오는 퀴리오스. 바울 서신의 처음 인사말(마지막 부분에는 그렇지 않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글귀 옆에 자주 언급된다(롬 1:7; 고전 1:3; 고후 1:3; 갈 1:3; 빌 1:2; 살후 1:2; 딤전 1:2; 딤후 1:2; 몬 1:3). 마지막 인사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혹은 너희 심령과, 또는 너희 모든 사람에게]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말은 바울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이 전통의 궁극적 기원은 아마도 주의 만찬에 있었던 것 같다(참조: 고전 16:23; 고후 13:13; 몬 1:25; 계 22:17-21).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묘사하는 것은 이방기독교 헬라 공동체로 소급되어야 한다(롬 15:6; 고후 1:3; 고후 11:31; 참조: 벧전 1:3; 엡 1:3; 엡 1:17; 골 1:3). 이 공식 문구가 본래의 유대 문맥(하나님에 대한 찬양) 속으로 삽입되었다. 이방 세계의 많은 퀴리오이들과 대조되고 창조의 대행자(고전 8:6)로 인정된 단 한분 퀴리오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에서 고백하는, 그리고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 전파하는 한 분이신 하나님과 일치하는 분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사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을 뿐만 아니라 퀴리오스이신 예수님도 믿으라고 촉구했다(행 5:14; 행 18:8).||(d) 퀴리오스의 주권.|① 퀴리오스이신 예수님 앞에서의 기독 공동체(교회)의 활동. 기독교 공동체의 삶에 관한 모든 표현들을 보면 기독교 공동체는 권위를 가지고 그것을 공동체에 행사하는 퀴리오스 앞에 서있다(고전 4:19; 고전 14:36; 고전 16:7). 그는 그 공동체를 성장하게 하며(살전 3:12 이하) 사도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고후 10:8; 고후 13:10) 그의 몸의 지체들에게 서로 다른 직책을 부여한다(고전 3:5; 고전 7:17; 고전 12:5). 퀴리오스는 환상과 계시를 제시해준다(고후 12:1). 기독교 공동체의 삶 전체가 공동체와 퀴리오스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롬 14:8). 몸 즉 완전히 지상적인 기독교인의 존재는 퀴리오스에게 속한 것이다(고전 6:13). 이러한 사실이 음란한 행동들을 못하게 한다. 퀴리오스는 각 사람에게 맞는 양의 믿음을 준다(고전 3:5; 고전 7:17; 엡 4:7). 그는 평화의 퀴리오스이시므로 평강을 주시며(살후 3:16) 자비를 베푸시고(딤후 1:16) 총명을 주신다(딤후 2:7). 퀴리오스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기초 위에서는 심지어 주인과 종의 세속적 관계조차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세상의 퀴리오이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은 곧 교회의 퀴리오스를 섬기는 것이다(골 3:22이하.; 참조: 벧전 2:13).||② '퀴리오스를 통하여, 퀴리오스 안에'라는 문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공식문구는 감사(롬 7:25; 고전 15:57); 찬양(롬 5:11); 권고(롬 15:30; 살전 4:2)라는 매우 다양한 문맥에 나온다. 이 모든 구절들에서 퀴리오스라는 단어는 교회의 생활과 개인의 생활에 대해 가지는 높임 받은 주님의 능력을 주장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주 안에서"라는 문구는 특별히 바울서신에 자주 나온다(예: 고후 2:12; 엡 4:17; 살전 4:1; 롬 14:14; 롬 16:2; 빌 2:29; 빌 3:1; 빌 4:1; 롬 16:21; 롬 16:22; 고전 16:19).||③ 재림에 관한 구절들(고후 5:6; 고후 5:8; 살전 4:17; 고전 1:8; 고전 5:5; 고후 1:14; 살전 5:2; 살후 2:2; 고전 1:7; 살후 2:1; 딤전 6:14; 고전 4:5; 빌 4:5; 살전 6:16이하,; 약 5:7; 살후 1:9; 살후 2:8; 빌 3:20등). (참조: H. Bietenhard).|(참조: W. Foerster; H. Bietenhard; Bauer; J. H. Thayer).
주관
kuriovth"
주권 lordship, 통치권 domin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퀴리오테스(Memnon Hist)는 퀴리오스($2962: 주, 주인, 소유자)에서 유래했으며, '숭고한 전능 혹은 지위, 주권, 통치권'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리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퀴리오테스는 어떤 계급의 천사들을 가리켜 사용되었다.|①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② 엡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이 표현은 이디오피아어 에녹서 61:10을 상기시킨다: "그는 하늘의 군세와 모든 성자들과 하나님의 군세와 그룹과 세라빔과 오파님과 모든 권세의 천사와 모든 정사와 천사와 택함을 받은 자와 마른 대지 위와 물 위에 있는 다른 권세를 소환할 것이다"(참조: 고전 15:24; 롬 8:38; 엡 6:21). 서신들은 높임을 받은 그리스도가 이러한 권력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강조한다.||(b) 퀴리오테스는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킨다.|① 유 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② 벧후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이 구절들에서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즉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거짓 교사들은 육체의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의 통치를 무시한다.|(참조: W. Foerster; H. Bietenhard).
퀴로오
kurovw
확정하다, 비준(승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퀴로오(Aeschyl., Hdt. 이래)는 퀴로스(%1044: 머리, 권세, 권위)에서 유래했으며,||(a) '실시하다, 확인(정)하다, 승인하다, 비준하다, 유효하게 하다'(법률에 대해)(Andoc., Demosth.),|(b) '규정하다, 결정하다'(Hdt., Thuc., Polyb.),|(c) '실시되다, 실행하다'(Pla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퀴로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쿰(6965)의 역어로 사용되어 '승인이나 확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창 23:20; 레 25:30). 단 6:10과 마카베오사서 7:9에서는 해당 히브리어 없이 나온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퀴로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갈 3:15에서 뜻의 비준, 곧 뜻을 구체적인 공식 절차에 따라 정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약속을 같이 취급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 요지는 하나님의 뜻은 비준되었고 실행된다는 것이다.||(b) 고후 2:8에서 바울은 율법 용어를 아가페(사랑)라는 기본적 윤리 원리와 효과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재확증을 요구하고 있다.|(참조: J. Behm; J. I. Packer).
퀴온
kuvwn
개 do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퀴온(Homer 이래)은 '개'를 뜻하며, 특히 거리의 성가시고 멸시받는 동양의 개를 가리킨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퀴온은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히브리어 켈렙(개 dog)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대체로 구약성경에서는 길거리의 비천한 개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경멸적인 단어이다(삼상 17:43; 왕하 8:13; 왕상 14:11; 시 22:16, 20; 잠 26:11).|랍비들도 신앙심이 없거나 이방인들을 개에게 비유할 때 개와 비슷한 경멸감을 나타내 보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온은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7:6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개는 대개 썩은 음식을 먹고 토했던 것을 도로 먹으며, 탐욕이 심하며, 도덕적, 영적으로 악한 자를 상징한다. 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의 유형이며,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되고 설교된 후에도 악하고 더러운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발하는 사람이다(참조: Lenski).||(b) 눅 16:19 이하에서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 이 표현은 나사로의 처지가 극도로 비참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c) 빌 3:2에서 바울은 "개들을 삼가하라"고 한다. 바울은 아마도 마 7:6을 언급하면서 공동체를 훼방하는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이 말씀의 전후 관계를 보면 이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바 있으나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 가려는 자들이다.||(d) 벧후 2:22에서 죄에 도로 빠진 신자들을 표현하기 위해 잠언 26:11을 인용하고 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e) 계 22:15에서 개들이 거룩한 성에서 제외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여기서 거룩한 성에서 개들을 제외시키는데, 이는 개들은 진리를 거절하고 은혜에 대하여 악한 자들이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시체
kw'lon
사지, 시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콜론(아에쉴루스 이래)은 기본어이며 '몸의 한 지체, 사지' 특별히 외적이고 두드러진 지체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콜론은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페게르(시체)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레 26:30; 민 14:29, 32, 33; 삼상 17:46; 사 66:24).||#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콜론은 신약성경에서 히 3:17에 한번 나오며, '시체'를 의미한다: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민 14:29, 32의 인용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리낌이 있다
kwluvw
방해하다, 막다, 제지하다, 금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콜뤼오(pidar 이래)는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콜로스(잘린, 베인)에서 유래한 듯하며, 본래 의미는 '잘라내다, 짧게 자르다'를 의미하였고, 후에 '방해하다, 막다, 금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콜뤼오는 70인역본에서 33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칼라(제지하다) 그리고 마나(억제하다, 부인하다, 삼가다, 방해하다 등), 아찰(제지하다, 막다, 삼가다, 억누르다), 슈브(돌아가다, 돌아서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콜뤼오는 '막다, 방해하다'이며(겔 31:15; 옵 12:15), 대개 '억제하다, 제지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행동의 대상들은 사람(창 23:6; 민 11:28; 시 119:101), 사물이 될 수도 있다(바람, 물, 전 8:8; 겔 31:15; 욥 12:15). 주어는 하나님(삼상 25:26; 겔 31:15)이나 또는 사람이다(모세, 민 11:28; 기록자, 시 40:10; 시 119:101).||#3. 신약성경의 용법||콜뤼오는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방해는 대개 사람과 관계되었다. 눅 23:2에서 무리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세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고소하였다: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행 27:43에서 백부장이 바울을 구하기 위해 군사들이 죄수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저지했다: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막 10:14에서 제자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금지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병행구, 마 19:14; 눅 18:16).|눅 11:52에서 율법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를 방해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참조: 마 23:13).|롬 1:13에서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살전 2:16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역을 계속하는 것을 방해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전 14:39에서는 바울은 방언 말하는 것을 금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눅 6:29에서 예수님은 때로는 부당한 요구라도 거절하지 말라고 한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b) 행 16:6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파를 저지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c) 방해는 때로는 직접 사람들에게서 생겨난다. 로마 백부장(행 24:23; 행 27:43), 제자들 또는 세례(침례) 받는 교회(막 10:14와 병행구절), 상황 여건(롬 1:13), 또는 죽음(히 7:23) 등을 예로 들 수 있다.|(참조: J.H.Thayer; C.H.Peisker).
마을
kwvmh
마을, 촌락.||#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메는 기본어이며, '마을, 촌락'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메는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사도행전에서 1회를 제외하면 사복음서에만 사용되었다.||(a) 코메는 마 9:35; 마 10:11; 막 6:56; 눅 8:1; 눅 13:22에서 폴리스($4172: 성읍, 도시)와 대조되어 나타난다.||(b) 코메는 막 6:36; 눅 9:12에서 아그로스($68: 촌)와 나란히 나타난다.||(c) 막 8:27에서 복수는 한 지역에 있는 여러 마을을 나타낸다: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쌔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d) 코메로 불리워진 곳들은 베다니(요 11:1; 요 11:30), 벳새다(막 8:23; 막 8:26), 베들레헴(요 7:42), 엠마오(눅 24:13; 눅 24:28) 등이다.||(e) 행 8:25에서 코메는 '마을 주민'에 대해 사용되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코모폴리스
kwmovpoli"
읍, 도시같은 마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모폴리스(Strabo )는 코메($2968: 마을, 촌락)와 폴리스($4172: 도시)에서 유래했으며, '읍', 규모와 인구면에서 도시에 가까운 마을, 도시같은 마을을 가리킨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모폴리스는 신약성경에서 막 1:38에 한번 나온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코모스
kw'mo"
술잔치, 방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모스(Homer, Hdt. 이래)는 코메($2968: 마을, 촌락)에서 유래했으며, '마을의 축제' village festival, '술잔치, 주연' revel를 의미한다.|헬라 문헌에서 원래, 바쿠스(Bacchus -술의 신)나 기타 어떤 신을 기리는 뜻에서 만찬 후 횃불과 음악을 곁들여 거리를 줄지어 돌아다니며 남녀 친구들의 집 앞에서 노래하고 노는, 반(半) 취하여 흥에 겨운 친구들끼리의 떠들썩한 야간 행렬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부터 일반적으로 '밤 늦게까지 지체하며 취흥을 탐닉하는 연회와 술잔치'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모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방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a) 롬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b)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c) 벧전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하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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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각다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놉스(Aeschyl. Hdt.)는 기본어이며, '모기, 각다귀'를 의미한다. 발효하고 증발하는 포도주에서 번식하는 포도주 모기류에 대해 사용되었다(Aristot.).||#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놉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23:24에 한번 나온다: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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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 Cos(지)||코스는 스포라데스 제도군의 하나로, 크고 산이 많은 섬이다. 니도(Cnidus)와 할리카르나수스(Halicarnassus)라는 도시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기름지고, 특히 풍부한 포도주와 곡물과 고급 직물로 유명했다.|코스는 초기에 도리아 헬라인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히포클라테스에 의해 B.C. 5세기에 세워진 의과 대학의 장소로, 또한 B.C. 3세기에는 문학의 중심지로, 필레타스(Philetas)와 데오크리투스(Theocritus)의 고향으로 유명하다.|로마인들은 코스를 아시아 지방의 자유 도시로 만들었으며, 글라우디오 황제는 고스인 주치의에게 영향을 받아 그 도시에 면세 혜택을 주었다. 헤롯 대왕은 고스 사람들의 후원자였다.||신약성경에서 코스는 행 21:1에 한번 나온다: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참조: PEB; NBD; Walter Bauer; J. H. Thayer).
고삼
Kwsavm
고삼 Cosam(인)||코삼은 히브리어 카삼(점치다)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고삼'으로 음역했다.|신약성경에서 코삼은 눅 3:28에서 한번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귀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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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 deaf, 벙어리 dumb.||#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코포스(호머 때부터)는 콥토($2875: 치다, 강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둔한' 또는 '무딘'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나, 보다 특별하게 '귀머거리'(Homer), 또는 '벙어리'(Herodotus)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문맥이 요구되는 의미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코포스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타난다. 합 2:18에서 코포스는 히브리어 일렘(말못하는, 벙어리의)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비유적으로 우상에 적용되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그 외에 코포스는 헤레쉬(귀머거리의)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귀먹은 자를 의미한다(레 19:14; 시 38:13; 시 58:4등). 몇몇 문맥에서는 '귀먹은 벙어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포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벙어리(의), 귀머거리(의)'라는 의미를 가진다.||(a) 코포스는 '귀머거리'를 의미한다. 막 7:32에서 코포스는 분명히 귀머거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희귀한 단어 모길랄루(말더듬는)까지 사용되고, 또한 여기에서의 기적이 청각 기능을 주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막 7:35). 막 9:25에서 코포스는 귀신들린 아이에 대한 독특한 마가식 특징으로 나온다. 마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앞에서(막 9:17) 귀신을 벙어리(알랄로스)로 묘사했으며, 막 9:35에서는 이 귀신을 예수님께서도 콥호스로 부르신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의미는 아마 '귀머거리 영', '귀먹은 귀신'이란 의미일 것이다. 마 11:5; 눅 7:22에서 예수님께서 옥에 갇힌 세례(침례) 요한에게 자신의 사역의 내용을 묘사하실 때에 다시 똑같은 의미의 '귀머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코포이가 듣는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증거의 일부분인 것이다.||(b) 코포스는 벙어리를 의미한다. 마 9:32, 마 9:33; 마 12:22; 눅 11:14; 마 15:30, 마 15:31에서 예수님이 고친 코포스는 벙어리이다.|눅 1:22에는 사가랴가 성전에서 환상을 본 후 코포스(벙어리)가 되었다.|세 복음서 기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사역 중의 이 특별한 국면은 사 35:5, 6; 사 43:8; 사 61:1, 사 61:2 등과 같은 예언이 그에게서 성취됨에 대한 확고한 표시였다.|이것은 특히 악령과의 강력한 투쟁을 수반하고(막 9:25) 노력을 요구하는(막 7:34) 해방의 사역인데, 이 사역의 본질상, 또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완고함으로 인하여 심각한 오해로 빠지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마 9:34).|(참조: P.J.Budd; J.H.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