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다
mevnw
머무르다 remai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메노(Homer 이래에 이미 발견됨)는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메노는 '떠나는 것'의 반대로 '어떤 장소에 머무르다, 체재하다, 살다, 존재하다, 남아있다', 비유적으로 '어떤 영역에 남아있거나 머무르다'를 의미한다.||(b) 메노는 '흔들리거나 달아나는'(도피)에 반대로, '반대에 맞서다, 굴하지 않다, 견디다, 굳게 서다, 굳게 지키다'를 의미한다. 법적 논쟁 또는 협정에 사용되었다.||(c) 메노는 '이동이나 변화되는 것'의 반대로, '변함없이나 여전히(…의 상태로) 있다, 그대로 지속하다, 계속 머무르다'를 의미한다. 고정된 별들, 영원한 하나님, 불변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d) 메노는 파멸, 파괴되거나 소멸되는 것의 반대로, '남아있다, 존속하다, 계속 살아가다', 특히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를 의미한다. 법적 협정, 유언장에 대해 사용되었다. 종교적 언어에서 메노는 계속 존재하는 것, 곧 신들, 혹은 신들에 영감을 받는 것(예: 마음, 사상)에 관하여 사용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메노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16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메노는 가장 많이 아마드(서다, 남아있다, 머무르다, 지속하다, 견디다, 살아남다)와 그 다음으로 쿰(일어서다, 일어나다), 야샵(앉아있다, 거하다, 남아있다), 하카(지연하다, 기디리다), 카와(기다리다) 등의 순으로 번역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메노는 신약성경에서 118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와 70인역본의 용법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a) ① 메노는 문자적으로 '머무르다' 즉 한곳에(눅 19:5), 혹은 누구와 함께 머물다(눅 24:29; 마 26:38); 특정한 때를 위해 계속 존재하다(마 11:23); 살다(요 1:38)를 의미한다.|② 은유적으로 '꼭 붙잡다, 확고부동하게 머물다'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교훈에(딤후 3:14; 요이 1:9), 친교에(요 14:10),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고전 7:40) 머무는 것에 사용되었다. '견고히 서다, 시험에 견디다(합격하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면 공력이 심판 받을 때(고전 3:14)에 대해 사용되었다.||(b) 메노는 행 20:5에서 '기다리다'를 의미한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c) 신약은 구약의 사상을 이어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바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유지하시고(벧전 1:23; 참조: 단 6:26; 벧전 1:25; 사 40:8의 인용) 자기의 모사를 유지하신다. 그는 인간의 역사에서 그의 선택한 계획을 끝까지 계속하여 이행하신다(롬 9:11). 하나님의 불변성은 영속하시는 메시야 예수님을 보내심과 그의 생애에서 보게 되었다(히 7:24). 하나님의 영속하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자들은(벧전 1:23) 성령으로부터 시시때때로 황홀한 체험 뿐만 아니라, 그들 속에 계속하여 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다(요일 2:27).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니, 곧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그에게 결속되었다(요일 4:14이하). 그는 여기서 영속하는 도성을 찾지 못하나(히 13:14), 하늘에 영속하는 소유를 갖고 있다(히 10:34).|바울은 모세로 말미암아 드린 일시적인 예배와 대조하여, 성령과 의의 예배는 영구적이며(고후 3:7-고후 3:11), 또한 그것과 더불어 믿음, 소망과 사랑이(고전 13:13), 그 중에서도 그 자신이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안(참조: 고후 5:14) 사랑이 영구적임을 지적하였다(참조: 고전 13:8).||(d) 메노는 요 14:10에서 성부와 성자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리스도는 선지자처럼 어떤 특정한 사명이나 어떤 제한된 기간을 위하여 부르심받지 않았으며, 그의 전 인격이 성부와, 영속적이고도 독특한 밀접성 하에 머무른다(요 1:32). 마치 아들이, 노예와는 달리,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집에서 계속 거하는 것과 같다(요 8:35). '만약 그가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부와 하나되어 행동하지 않으셨다면 인간들과의 그의 친교는 무력하며 무가치하였을 것이다'(A.Schlatter; 요 1:32).||(e) 메노는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친교 안에 머무르도록 부르시며, 그도 그 안에 머무르실 것을 신자를 위하여 보장하신다(요 15:4이하). 여기서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요 15:4이하)과 그의 사망과 부활 후에 그들 안에 있는 것(요 15:4이하)이 구별된다. 신자 안의 예수님의 이 거하심이,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리라는 약속에서 선포되었다(요 14:17; 요일 2:27).|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거하신다는 진술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비적 요소가 있다. 그것이 내적 단일성, 즉 신비적 단일성을 조성한다. 이것은 신자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심은 그들 안에 그의 말씀이 거하심과 불가분리의 관계이며(요 15:7; 요일 2:24; 요 8:31 참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화해의 권능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임과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라고 표현되었다.|이 개념이 요한에게 있어서의 주의 만찬의 참 의미를 표현한다.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이 내적 친교에서 "요구되는 충성은 일차적으로, '위한'(for) 계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으로부터 온'(from) 존재이며, 그것은 어떤 지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실로 '되어야만 한다'(must)"(요 15:4에 대한 R.Bultmann의 해석).||(f)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소유물로 만든다. 그것은 영적 관계 혹은 영적 일치에 제한되지 않고, 구원의 체험의 현존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생명(요 6:57)이다. 그러므로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혹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생명은, 그의 영과 본성에 순응하는 생명을 요구하시고 형성하시며, 성화를 원하시고 또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과 동일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만일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친교가 방해받고 있다는 징조이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 15:6; 요일 3:6). 이러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신자에게 임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관계는 결국, 그가 예수님의 말씀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A.Schlatter).|요 15:1-요 15:8과 병행하는 요 15:9-요 15:17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한다. "제자에게 요구되는 바인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가 받은 사랑 안에서 즉, 사랑을 받는 상태에서 머무름을 뜻하며, 요 15:4에 이미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것은 계시자(Revealer)의 섬김 즉, 세족(洗足) 행위에서 상징적으로 이미 명백하게 보여 주신, 바로 그와 같은 섬김에, 그의 존재가 전적으로 의존해야 함을 의미한다."(R. Bultmann, 요 15:9; 요 13:1-요 13:20참조). 사랑 안에 거함은 행위를 통하여(요 15:10), 즉 계속적으로 과실을 맺음으로써 사실이 되며(요 15:16), 이러한 행위는 예컨대 형제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가시적이 된다(요일 2:10; 요일 3:14이하).|(참조: F.Hauck; K.Mun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