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하다
misevw
싫어하다, 미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미세오(Homer 이래)는 미소스(%230: 증오)에서 유래했으며,||(a) '싫어하다, 미워하다, 혐오하다, 배척하다'를 의미한다.||(b) 미세오는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나 심지어 신에 대한 인간의 적개심을 의미한다. 아에스퀼루스(Aeschylus)의 비극에서 신들은 악한 행위와 행악자들을 미워하는 것, 희극에서는 신들은 꼴사나운 욕정을 싫어하는 것을 나타낸다. 에픽테투스는 인간적 충동의 하나인 미움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하고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다야교 문헌 안에는 우리가 미워하는 바를 이웃에게 행하면 안된다는 황금률과 더불어 미움에 대한 금지가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네(미워하다, 증오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 형제를 시기하여 미워하는 것(창 37:2 이하), 아내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창 29:31, 33; 신 21:15 이하; 22:13 이하; 사 60:15),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출 20:5; 신 5:9; 신 7:9-11), 바른 지식이나(잠 1:22, 29), 의로운 사람(시 34:21; 시 69:4; 시 9:13; 잠 29:10)을 미워하는 것,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렘 44:3 이하; 슥 8:17; 말 2:6; 호 9:15; 렘 12:8), 자신을 미워하는 것(잠 15:32)을 나타내며, 원수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신 7:15; 30:7; 삼하 22:18; 시 18:17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미세오는 신약성경에서 39회 나오며, 그 중 요한의 기록에서만 20회 사용되었다.||(a) 사람들 사이에서의 미움, 혐오. 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처럼 신약성경에서 여러가지 어감을 지닌다. 이 단어는 우선적으로 종교적 배경 없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 혐오를 나타낸다.|마 5:43에서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것은 레 19:18의 명령을 상기시킨다. 유대교는 이 명령에 대해 그릇되게 제한시켰는데, 사실 이 명령의 후반부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이 명령 전체는 예수님 시대에 일반 이스라엘인들의 친구와 원수를 향한 태도를 결정지우는 대중적인 금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약성경 자체가 아니라 구약성경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것을 기본적으로 금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눅 6: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에 대한 거룩한 증오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는 구약성경에서, 그리고 특히 유대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폭로한다. 마 6:24; 눅 16:13에서 서로 상반되는 아가판(사랑)/ 미세인(미움)은 독특한 의미를 풍긴다. 이 두 구절은 신 21:15-17에 근거하고 있다. 눅 14:26에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안된다.||(b)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미움. 복음서는 현재(누가복음, 요한복음)와 미래(특히 마태복음,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공동체를 핍박하는 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복음의 유년 기사에서 의인은 이미 원수들의 공격을 받으며 미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눅 1:71). 미움을 받는 것은 제자들의 운명이기도 하다(눅 6:22; 눅 6:27).|예수님의 예언에서 미세인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묵시적 미래의 도래요 표징이다(마 10:22; 마 24:9; 막 13:13; 눅 21:17). 공관복음서의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오심은 미움으로부터의 구원(눅 1:71), 미움에 대한 승리(눅 6:22; 눅 6:27) 뿐만 아니라, 또한 미움의 증가를 의미한다(마 10:22; 마 24:9 이하).||(c)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미움. 눅 14:26(마 10:37); 요 12:25에 기록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충격적이다: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의 동료가 되기 위한 조건은, 자신의 목숨까지 포함하여 우리가 사랑해야만 할 모든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지혜 문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단념, 포기, 거절, 부인을 뜻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들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무엇이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얽매여서는 안된다. '미워하라'는 말은 제자들의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아무든지 무엇이든지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가 시금석이다. 이러한 포기는 심리학적이거나 광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 하나님의 거부하시는 미움.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미움의 사상은 구약성경을 상기시킨다.|롬 9:13에는 말 1:2 이하가 선택의 교리와 관련하여 인용되어 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그러나 이 예언적 말씀에는 선택에 대한 특정한 주장이 선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선택의 비밀이다. 하나님의 미움은 그의 완강하심의 수수께끼이다. 하나님의 미세인은 주님이자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과 관련된다.|계 2:6은 예수님과 에베소 교회의 미움을 언급한다. 즉 에베소 교회와 예수님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여기서 미움은 차별과 거부, 형벌과 심판을 나타낸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유혹을 거부한다.|따라서 히 1:9이 시 45:7의 말씀을 예수님의 주되심에 적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의를 인정하고 불법을 거부하였다. 이리하여 주님이자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이 여기서 묘사된다.||(e) 요한복음에서 사랑과 미움. 아가판과 미세인의 대조는 요한의 사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운동(cmovement)은 미움(**)의 우주적 운동(movement)과 상충하게 된다. 이 둘은 배타적이면서 포괄적이어서 하나님과 세상의 본성을 드러낸다. 하나님, 그리스도, 제자들, 공동체에 대한 세상의 이러한 미움에는 참으로 죄와 살해가 놓여 있다. 여기서 빛이 어두움으로부터 차별화된다.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다(요 3:20). 빛을 미워하는 것은 어둠의 세력에 의해 눈이 멀어 그것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것은 빛에 적대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요. 빛을 거부하는 것이요, 빛의 영역을 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요한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 뿌리깊은 미움은, 하나님은 빛이요 사랑이시라는 사실의 대응물이다. 바로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적대가 강조된다. 불법의 비밀이 세상의 '미움' 속에 감춰져 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한다(요 7:7; 요 15:18).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요 15:23 이하). 세상은 또 제자들도 미워한다(요 15:18; 요 17:14; 요일 3:13). 빛의 영역 안에 사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둠의 미움의 타켓이 된다. 이 영역에 살지 않는 자는 미움을 받지 않는다(요 7:7).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는 경고는 요한일서에서 특별한 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의 영역에서 사는 것이다(요일 2:9; 요일 2:11; 요일 3:15; 요일 4:20). 요한일서는 어떻게 이러한 미움이 표현되는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어둠의 세력이 형제들과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미움은 귀신적인 추상적 세력이 된다.|물론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에서 미세인의 이와 같이 더 깊은 개념과 함께 이전의 전승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관복음서의 제자직의 조건의 영향을 요 12:25에서 발견한다. 시편 기자의 불평(시 35:19; 69:5; 고난의 시편)이 요 15:25에서 반향된다. 계 2:6은 구약성경의 거룩한 미움과 연관되어 있다.||(f) 롬 7:15. 로마서 7장의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묘사에서 우리는 롬 7:15의 말씀을 본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여기서 델레인(원하는 것)과 미세인(미워하는 것)이 부합한다. 자아의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가 행위를 낳지 않는다. 행위는 보다 더 강력한 죄(롬 7:17)와 육신(롬 7:18)이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미세인이 에고(나)에 의한 거부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단지 원치 않는 바를 행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미움과 거부(미세인)도 행하게 된다.||(g) 미움의 개념의 기타 측면들. 눅 19:14; 계 17:16에서 미세인은 보다 세속적인 의미를 지녀, 정치적 반목을 나타낸다. 계 18:2에서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미움받는 새'를 뜻한다. 계 2:6; 계 17:16; 계 18:2을 비교하면 이 용어가 묵시적 전승에서 많은 의미들을 획득함을 알 수 있다. 엡 5:28 이하의 훈계는 정혼한 아내를 사랑할 의무를 남편에게 지우는 것이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속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의 제 2의 에고(나)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9).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뜻하신 생명의 질서와 인간 경험을 반복하여 말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예수님의 제자직으로 인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다(참조: 롬 13:14).|딛 3:3에 따르면 미움은 구세대(aeon)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그 속에서 가증스럽게 행하고 서로 미워하곤 하던 생활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악덕에 관한 결론은 유대교의 사상과 부합하며, 인간 관계의 완전한 붕괴를 드러내 준다. 우리는 여기서 미세인에 관한 요한의 개념을 상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사상은 독자적인 중요성을 지니며 연쇄적인 사상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유 1:23은 다소 이상하다: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싸워서 진 거짓 교사는 교회의 자비를 경험하더라도, 그는 위험스러우므로 그와의 모든 영적 혹은 육체적 접촉을 피하라는 뜻이다. 더럽힘이란 방탕이란 의미에서 문자적으로 취할 수도 있고, 영적인 것이든 귀신적인 것이든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힘이 그의 옷에 스며있다는 고대의 대중적인 신앙의 견지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막 5:27 이하; 행 19:11 이하).|끝으로 유 1:23 배후에는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채택된 하나님의 증오라는 구약성경의 사상이 놓여 있다(참조: 계 2:6). 그러나 악에 대한 이러한 증오가 인간과 물건들에게도 확대되는가 하는 의문은 남아있다(유 1:23). 만약 그렇다면 이 미세인은 이 세대와 우주의 악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대의가 분리됨을 신학적으로 암시하며 따라서 공동체에게 그것은 거짓 교사를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다.||(h) 개념의 독특성.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다(눅 6:27). 사도들은 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요일 2:9; 요일 2:11; 요일 3:14; 요일 4:20), 인간의 서로 간의 미움(딛 3:3)에 대해 말하며, 이것들은 어둠과 구 세대에 속한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모든 정욕은, 일반적인 것이든, 국가적 혹은 종교적인 것이든 뿌리에서부터 공격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거절하고 거부하는 거룩한 증오의 사상은 신약성경에서 역시 순화된다(구약성경에서 이 사상은 동기와 사람 양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신약성경도 악에 대한 거룩한 거부와 거절을 가르치지만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게 향한 것이다. 지고한 사랑의 법은 결코 도전받지 않는다.|계 2:6의 미움도 니골라당의 행위를 향한 것이지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님을 주목할 만한다. 예수님께서 제자직의 조건을 제시하실 때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친척들(눅 14:26; 마 10:37) 및 자신의 생명(요 12:25)과 얽매인 자연적, 법적 결속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인간의 견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심리학적인 조건부의 멀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요구의 무조건성과 절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의 요구는 심지어 율법 자체를 포함하여 지상의 가장 중요한 결속까지도 그만두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거룩한 거부와 포기(미스에인)가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새 세상의 능력과 본질인 사랑으로 포용되고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성화시키고 깨끗케 하기 때문에 거룩한 미움을 금지된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고, 사랑으로 이끌지 않는 거부는 신약성경에서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 신약성경은 종교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떠한 가능한 형태의 미움도 극복한다. 그러나 악에 대한 거룩한 거부와 인간적인 조건 없이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참조: O. Michel; H. Seeb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