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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모이큐오
moiceuvw
간음하다 commit adultery.||#1. 일반 헬라어의 용법||동사 모이큐오는 모이코스($3432: 간음하는 자, 간부)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간음하다'(대격과 더불어)를 의미하며, 때로는 더욱 일반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다, 강간하다', 따라서 중간태에서는 '유혹을 당하게 하다', 수동태에서는 '간음하도록 유혹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비유적으로는 '∼에 불순물을 섞다'를 의미한다.||간음은 B.C. 2000년경부터 옛 법률에 이미 처벌받도록 되어있었다(예: the Lipit-Ishtar Code, the code of Hammurabi, the old Ass.Iaws 등). 아내에게는 모든 형태의 혼외 성관계가 금지되어 있었다. 아내는 가족과 씨족의 총화에 대한 진정한 보증인이었으며, 간음을 행함으로써 아내는 자신의 결혼을 깨뜨리고 씨족 전체의 총화를 파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남자들은 유부녀와 성관계를 가질 때 즉 다른 사람의 질서를 깨뜨릴 때만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 되었다. 남자는 첩을 둘 수 있었으며, 창녀와 성관계를 가질 수도 있었다.||헬라 국가 내에서 그리고 로마 법률하에서 간음은 중벌로 다스려졌는데, 특히 여자의 경우에 그러하였다(참조: OCD l0 이하, 649 이하). 간부를 사형으로 다스리거나 냉정하게 대우하거나 보상금을 지불케 하는 등의 처벌은 보통 피해당한 남편이나 혹은 그의 씨족의 독자적인 발의에 따랐다.||일반적으로 헬라니즘 시대에 와서 결혼 윤리는 점차 완화되었다. 도시, 특히 항구들, 그 중에서도 고린도에서 매춘이 성행했다. 동방의 사교는 종교상의 매춘을 채택했다. 여사제와의 성관계는 제식의 일부가 되었고 신성에 참예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히에로스 가모스(신성한 결혼)라는 말로 일컬어졌다(참조:H.Reisser; W.Gunter).||#2. 70인역본의 용법||(a) 모이큐오는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나아프(간음하다)와 그 변형들에 상당하는 헬라어 어군을 번역하고 있다. 모이큐오는 12회 나타나며, 동일 어군에 속한 단어들이 약 30회 나타난다. 거기에서 간음은 다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① 유부녀의 모든 혼외 정사,|② 남자와 유부녀나 약혼 중에 있는 여자의 혼외 정사(창 16:1-4; 30:1-4; 38:15 이하; 레 19:2O 이하; 신 22:28 이하는 남자편에서의 혼외 정사의 실례들)를 포함한다.||간음한 자는 사형을 받았으며, 보통 쌍방 모두(레 20:10; 신 22:22 이하; 겔 16:40; 참조: 요 8:5) 돌로 쳐죽임을 당했다(그러나 참조: 창 38:24). 무의식적으로 행한 간음 조차도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일이 된다(창 20:3-7).||이스라엘 외의 경우와는 달리(위의 고전 헬라어 문헌 참조) 이스라엘에서 간음은 공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간음은 결혼과 가족의 토대와 개인적인 권리에 위배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어서(출 20:14), 백성의 존재 기반을 위협했기(신 22:22b) 때문이다.||간음은 또한 이방 신앙의 일면으로 간주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적 관례와 결혼에 있어 근본적으로 달라야 했다(참조:고전 6:12 - 고전 6:20; 고전 5:9 - 고전 5:12).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결혼의 예언적인 면을 주지시키는 것이다(아래 b을 참조).|따라서 처벌은 그 공동체에 의해 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여자가 간음의 혐의를 받게 되면 국정에 따라(민 5:11-31) 제사장은 그녀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알아 보는 시험을 행하였는데, 이 때 제사장은 그녀에게 결백의 맹세를 하게 하고 소제물의 재가 든 물을 마시게 했다.||(b) 만일 간음이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 그렇게 언약에 위반되는 것이라면, 가나안족의 다산 의식(fertility rites)에 참여는 혼결에 위배되는 행위요 하나님께 대한 범죄 행위였다. 호세아의 삶과 신탁에서 결혼과 간음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게 된 실제적인 이유는 가나안 족속의 결혼식과 다산 의식이 이스라엘의 삶 속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호 4:12 이하; 호 9:1 이하).||호세아는 백성들의 배교를 매춘으로,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 계약의 파괴로 나타낸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것을 명백하게 말했다(호1장 이하;참조: 렘 2:2,10,25; 3:1-25; 겔 l6:23; 사 50:1). 그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매춘부와 결혼한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결혼법에 명시된 대로, 그의 백성을 전멸시키거나 버리는 대신에 그들의 모든 불충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들을 돌아보시며, 새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시기까지 한 것은 바로 모든 율법을 초월한 자비 때문이다.||(c) 지혜문학에 나오는 간음에 대한 매우 심각한 경고(잠 6:20-35; 집회서25:2)는 이스라엘의 역사 과정에서 엄격한 결혼 윤리가 완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잠6:35에서는 돈의 지불에 의한 보상이 언급되었다. 그것은 창녀에 의해 타락하게 된 어리석은 자의 표적이다. 그의 행동은 수치 뿐 아니라 파멸과 심판을 불러올 것이다(참조: 잠 2:16 이하; 7:5-27; 30:20). 간음이 사회에 끼치는 심각한 여파가 또한 이러한 관심의 이유이기도 하였다.|(참조:H.Reisser; W.Gunter).||#3.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이큐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온다. 여기서 모이큐오와 동일 어군의 단어들도 함께 취급한다. 이 단어들은 신약 성경에서 때때로 출 20:14(신 5:18)을 인용할 때, 실제적인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에서 모두 일반 헬라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마 19:18; 마 19:19; 막 10:19; 눅 18:20; 약 2:11; 롬 13:9). 동시에 신약성경의 결혼과 간음에 대한 이해는 일반 헬라어와 구약성경이 미치지 못하는 위치에까지 진행되었다.||(a) 간음한 남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전적으로 간음한 여자의 경우와 똑같은 것이었다(마 5:32; 막 10:11,12; 눅 16:18).||(b) 음욕 즉 간음을 저지르려는 마음은 간음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마 5:27 이하). 예수님은 음욕을 품는 것을 상당히 파괴적인 죄로 여기셨다. 이것은 결혼을 파괴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악한 욕망은 악한 행실과 같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악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그 악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H. Schbnweiss). 그리고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간음이란 어떤 사람의 마음이 인간을 사모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죄악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음욕이 가득찬 눈과 정욕에 찬 생각은 이미 간음을 저지르려는 마음이며 간음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W. Giinter, H. Reisser).||(c) 신약성경은 아내와 마찬가지로 남편들도 또한 성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결혼은 평생의 결합이며, 이혼은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이렇게 결혼은 그 본질상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막 10:8), 인간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이유로 구약성경이 허용해준 이혼 후에 재혼하는 것도 신약성경에서는 간음으로 인정한다(마 5:31 이하; 마 19:9). 분명히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결혼은 아내의 입장에서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19:9에서 예수님은 아내를 버리고 재혼하여 결국 간음하게 된 남자에게도 그 말씀을 하신다.|이 두 구절에서 마 10:11 이하; 눅 16:18과는 달리, 마태는 포르네이아("음행")를 이유로 이혼을 허용해 주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포르네이아($4202)는 '음탕함, 음행, 매음'을 뜻하며, 모이케이아($3430)가 의미하는 바의 단순한 혼외 성교보다 나쁜 어떤 성행위로서의 음행이나 매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d) 간음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소망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며(고전 6:9이하),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여있는 것이다(히 13:4). 따라서 파멸을 부르는 방탕, 곧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방탕은(벧후 2:14) 그리스도의 재림 및 그 후의 심판에 대한 의심과 보조를 맞춘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벧후 3:3 - 벧후 3:7).||(e) 예수님께서 간음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시지만, 간음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마 21:13 이하; 눅 18:9 - 눅 18:14; 참조: 고전 6:9 이하)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사형을 받을 만 했던 간음한 여자는 죄사함을 받았으나 반면에 외관상 죄 없는 것처럼 보인 군중들은 그들의 위선적인 독선(self-righteousness)을 반성하게 되었다(요 8:3 - 요 8:11). 동시에 뉘우치지 않는 타락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었다(딤전 1:10; 히 13:4; 계 21:8; 계 22:15).||(f) 이 단어군은 비유적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 및 배신 행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약 4:4에서 간음하는 자들은 '믿음 없는 자들'(RSV), 세상과 벗된 자들이었다.|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대항하는, 곧 하나님을 배신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음란한 세대이다. 이스라엘은 종교 대표자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 (마 12:39), 사두개인들로(마 12:39) 대표되는 것처럼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불리워졌다.|그 당시의 세대, 즉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막 8:38) 하나님에 대해 불충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이미 있는 그때에 표적(sign)을 요구하는 자들로 특징 지워진다. 사실상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불신실한, 부정한, 배역한, 신앙을 버린 그런 자들이다.|계 2:22에서 거짓 선지자와 간음은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이 함축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을 수용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그 자녀들은 그 음녀(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들이다.*|(참조: H.Reisser; W.Gunter; J.H.Thayer).
간음을 하는 자
moicov"
간음하는 남자, 간부 adulterer.||#1.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의 용법||기본어 모이코스는 '간음한 남자'를 의미한다. 모이코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아프(간음하다)의 변형들의 역어로 나타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모이코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a) '간부(姦夫)'라는 의미로, 눅 18:11; 고전 6:9; 히 13:4에 나타난다.||(b) 비유적 의미로는 약 4:4 LTTrAW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신실하거나 불신앙적인 것을 나타낸다.|→ $3431 모이큐오|(참조: J.H.Thayer; H.Reisser).
간신히
movli"
간신히, 어렵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몰리스(Homer 이래)는 몰로스(%821: 수고)에서 유래했으며, '간신히, 어렵게, 쉽지 않게'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몰리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몰리스는 '어렵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14:8; 행 27:7; 행 27:8; 행 27:16).||(b) 롬 5:7과 벧전 4:18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① 롬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비상한 본질을 강조하기를 원한다. 참된 견지에서 비길데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참된 빛 속에 두기 위해, 그는 보통의 삶에서 어떤 이가 의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말했을 때, 바울은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이를 위해 그의 생명을 희생할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전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선인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들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바친 자와 비교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다.|② 벧전 4:18에서는 잠 11:31을 인용한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히브리서에서 그 말씀은 이 생에서 보응에 적용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마지막 심판 때의 보응에 사용한다. 여기서 이 언급은 심판의 불타오름과 시작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도들의 수난에 대한 것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커다란 요구가 되는데, 특히 커다란 시험을 나타낸다. 커다란 곤경을 겪고서만이 그리스도인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 하나님의 심판에 선다. 저자는 그의 독자들이 충성되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책임의 중대함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참조: J. Schneider; Walter Bauer; J. H. Thayer).
몰록
Molovc
몰록 Molock.||#1. 구약성경||몰록은 히브리어 말케켐(너희의 왕; 암 5:26)에서 유래했으며, 암몬이나 가나안 족속의 우상신 이름이다. 이 몰록 우상에게 인신 제물, 특히 어린 아이들이 희생 제사로 드려졌다. Jalkut(렘 7:31)에 의하면 우상의 형상은 놋쇠로 만든 속이 빈 상(像)이었고, 황소의 머리를 가졌고 밖으로 내뻗은 사람의 양팔을 가졌다 한다. 이것은 내부로부터 불로써 몹시 뜨겁게 가열되면 그 양팔 속에 놓인 어린이들은 서서히 타게 되어 있었고 한편 그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죽어가는 울부짖음을 듣지 못하도록 제사장들은 북을 두드렸다.||#2. 신약성경.||몰록은 신약성경에서 행 7:43에 한번 나온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암 5:26을 인용한 것이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더러워 지다
moluvnw
더럽히다 defile, befou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몰뤼노(Aristoph. 이래로)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a) 몰뤼노는 '더럽히다, 칠하다'를 의미한다. '성적 더럽힘'에 대해, 진흙이나 오물을 바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몰뤼노는 종교적 도덕적 영역에서 '더럽히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몰뤼노는 70인역본에서 18회 나오며, 9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한다. 몰뤼노는 문자적으로는 발과 옷을 더럽힌다는 의미로(창 37:31; 아 5:3; 사 59:3 등), 은유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더러움을 야기시킨다(사 65:4; 렘 23:11 등)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몰뤼노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종교적, 제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전 8:7에서 몰뤼노는 양심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이교적인 것과 접촉은 신앙이 약한 자의 양심을 더럽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회심한 후에도 그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배격하는 점에서 성숙하지 못했던고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드렸던 고기를 먹을 때에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결과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는 일이 있었다. 약한 양심은 쉽게 설득되어지는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미개하든가 혹은 지나치게 민감한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이교도 축제에 동참하게 되면 그의 양심이 금하는 바를 행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양심은 더러워질 것이다(D. S. Metz).||(b) 요한계시록에서 몰뤼노는 공동체의 모든 회중에 관해 사용되었다.|① 계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②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위 두 구절에서 불신하고 순종치 않는 길로 빠지지 않음에 대해 사용되었는데, 이 길은 첫 번째 언급에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는 것으로, 두 번째 언급에서는 자신의 순결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I. Packer; F. Hauck).
몰뤼스모스
molusmov"
더럽힘 defilemen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몰뤼스모스(Plut. 이래로)는 몰뤼노($3435: 더럽히다)에서 유래했으며, 육체적 또는 종교적 의미의 '더럽힘'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몰뤼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온다. 렘 23:15에서 '불신실함'에 대해, 마카베오이서 5:27에서 이교적인 것에 '더럽히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몰뤼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7:1에만 한번 사용되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여기서 몰뤼스모스는 이방의 생활 양식을 수용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도덕적·영적인 더러움을 의미한다.|(참조: J. I. Packer, Walter Bauer; F. Hauck).
혐의
momfhv
비난, 책망 blam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몸페(Pind. 이래)는 멤포마이($3201: 비난하다, 흠잡다)에서 유래했으며, '비난, 책망, 허물'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몸페는 신약성경에서 골 3:13에 한번 나오며, '불평이나 허물'을 의미한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할 곳
monhv
머무름, 체재함, 거주(지), 거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네(Eur., Hdt. 이래로)는 메노($3306: 머무르다)에서 유래했으며,|(a) '체재, 거류, 지속, 존속',|(b) '거주(지), 방, 거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모네는 70인역본에서 외경 마카베오일서 7:38에 한번 나오며, 생명이 '더 계속되는 것[영속]'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요 14:2; 요 14:23에 나온다.|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두 경우에 가장 근접한 의미들은 아마, 여행 도중 휴식하는 곳, 여관, 경찰 구역의 파수막, 들에서 망보기 위한 움막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예들은 후대의 것이다. 모네는, 여행 도중에 밤을 보내거나 휴식하는 곳을 의미하는, 아람어 운('wn')의 어떤 형태를 나타낼 가능성도 있다(R.E.Brown). 오리겐은 하나님께로 가는 도상의 정류장들을 언급하기 위하여 신약의 이 단어를 인용한다. 하우크(F.Hauck)는 요 14:2을 들어 지상에서 하나님께로의 나아감을 언급하였다. 이 단어는 우리의 세상적 상태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원하고 축복된 존재와 비교하면 일시적이요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신중히 선택된 것 같다.||다른 한편으로, 요 14:23은(위에서 밑으로의 내려옴) 구세주가 떠나신 이후의 구원을, 신자들 안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서 묘사한다. 한편 바렛(C.K.Barrett)은 하늘에 있는 생명이 전진을 포함한다는 사상을 배격하고, 요 14:23이 영원한 거처 혹은 거주의 양상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마카베오일서 7:38참조). 유대적 신앙에는 하늘에 여러 구획들과 거처들이 있었다(에디오피아어 에녹서 39:4이하; 15:7, 10; 22:9이하; 71:15이하. 참조: 슬라브어 에녹서 61:2 참조: TDNT Ⅳ 580f.).|이런 까닭에 영어 성경 RSV는 이렇게 번역한다: "내 아버지 집에 많은 방들이[모나이 폴로이] 있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일렀겠느냐?"(요 14: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모넨]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 전자의 인용절은 장차 올 구원의 확실성과 장차 있을 예수님과의 교제의 확실성을 강조하며, 후자는 성부와 성자의 내재하심에서 오는 현재의 구원을 강조한다.|(참조: F.Hauck; C.Brown).
독생자
movnogenhv"
유일하게 태어난, 단 하나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모노게네스(Hes. 이래)는 모노스($3441: 홀로, 혼자서)와 게노스($1085: 자식, 자손)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을 의미한다.||(a) 모노게노스는 '유일하게 태어난, 단 하나의, 유일한, 외로운'이란 의미를 가진다.||(b) 모노게노스는 문자적으로 '그 종류의 하나의 혹은 단 하나의 종류'를 뜻하며, 불사조(phoenix)에 대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모노게네스는 '유일한, 필적할만한 것이 없는, 비길데 없는'이란 의미로 더욱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모노게네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히브리어 야히드, 기본적으로 독자, 곧 '유일하게 태어난 자'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유일하게 태어난, 단 하나의'(삿 11:34; 토비트 3:15; 8:17), '유일한'(시 22:20; 시 35:17; 지혜서 7:22), '외로운'(시 25:16)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모노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누가복음에 3회, 요한복음에 4회, 히브리서와 요한일서에 각각 1회 사용되었고,||(a) 마태복음, 마가복음, 바울 서신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후기 문서에서만 발견된다. 이 단어는 단 하나의 출생한, '유일하게 태어난'을 의미한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모노게네스이고(히 11:17), 나인성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그 사람은 어미의 독자이며(눅 7:12), 야이로의 딸은 그의 외딸이다(눅 8:42). 또 귀신들린 소년은 그 아버지의 외아들이다(눅 9:38).||(b) 요한만이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모노게네스를 사용한다. 마가와 마태는 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내 사랑하는 아들")를 사용하고, 바울은 롬 8:3에서 투 에아우투 휘오스("자기 아들"), 롬 8:32에서 투 이디우 휘우("자기 아들"), 롬 8:29; 골 1:15; 골 1:18에서 프로토코스("맏아들")를 사용한다. 즉 마가와 마태와 바울은 노모게네스를 사용하지 않는다.|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묘사가 더 진전한 단계에 있었다는 것은 마태와 바울 등의 기록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신자들을 지칭한 휘오이 데우("하나님의 아들들")가 똑같이 예수님에게도 적용되었지만, 요 1:12; 요 11:52; 요일 3:1; 요일 3:2; 요일 3:10; 요일 5:2에서는 신자들이 언제나 테크나 데우("하나님이 자녀")로 불리우고, 휘오스는 예수님에게만 국한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요한은 예수님과 신자들간의 차이점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되심을 보다 강력하게 강조한다. 물론 마태나 바울 같은 기자들의 경우에도 예수님의 독생자의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메시야되심이 이를 증명한다.|그러나 요한은 이 사상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공식화하여, 그것은 세례(침례)에서의 신앙 고백에 채택되었으며, 지금까지 기독교의 신조의 확고한 일부분이 되었다.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의 모노게네스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파테르 이디온("자기의 친 아버지")(요 5:18)라는 사실이 부응한다. 왜냐하면 이디오스는 그와 같은 다른 관계를 배제하고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모노게네스는 요 1:14; 요 1:18; 요 3:16; 요 3:18; 요일 4:9에서 나온다. 요 3:16과 요일 4:9에서 그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자이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도로 증거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이 멸망으로부터 생명과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 때문이다 생명이 그의 속에만 주어졌기 때문이다(요 5:26). 그러나 그가 독생자라는 사실은 또한 사람이 그를 부득불 믿어야만 하며 만일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심판 아래 놓이며, 실로 이미 그렇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요 3:18).|따라서 모노게네스는 위엄이나 권위(mejesty)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러한 사실은 요 1:18에 적용된다. 여기서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독생하신 아들")이라는 언급을 볼 수 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으시다. 하나님과 이와 비슷하게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른 이는 없다. 하나님은 이 아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하신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어느 인간도 줄 수 없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가장 완전한 증거를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시되 들리는 말로써가 아니라 그 분과의 비할 바 없는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아신다. 요 3:16; 요 3:18; 요일 4:9; 요 1:18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세상의 아버지와 독자의 관계에 거저 비교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의 관계 바로 그것이다. 요 1:14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상을 나타낸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그의 영광은 독자의 그것에 단지 비교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광은 독생하신 아들의 영광으로 묘사된다. 문법적으로는 두 가지 해석 모두 옳다. 그러나 모노게네스의 총체적인 용법은 오스 모노게누스(속격 단수 남성)를 단순한 비교로 취하는 것을 매우 강조적으로 반대한다.|요 1:14; 요 1:18; 요 3:16; 요 3:18; 요일 4:9에서 모노게네스는 예수님의 유일성이나 비교할 수 없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모든 구절에서 그는 분명히 아들로 불리우고 요 1:14에서 그와 같이 간주된다. 요한에게서 모노게네스는 예수님의 기원을 나타낸다. 그는 독생자로서의 모노게네스이다.|요한의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독생하신 아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요한의 천제 선포의 빛 안에서만이 그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다.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는 단순히 호 휘오스 투 데우의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말할 때, 비록 전적으로 인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활하시고 선재하신 주님 뿐 아니라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기본적으로 염두에 둔다.|선재하신 주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들과 천부의 관계이다. 이것은 요 17:5; 요 17:24에서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히 하고 있는 바이다. 예수님은 그가 청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으며, 영광을 부여받았음을 아신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친교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서두에서나 요 8:58이나 요 17장에서 요한이 선재하신 주님에 대해 '아들'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선재하신 주님의 관계를 묘사할 때는 아들의 관계로 표현한다. 요한에게서 선재하신 주님은 오직 말씀(Word)이고 아들(Son)은 역사적인 부활하신 주님만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쪽에 선재를, 다른 쪽에 역사상의 그리고 역사 이후의 삶을 분리하여 너무나 뚜렷하게 선을 긋는 것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주님(Lord)은 항상 아들(Son)이시다. 그 분만이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천부의 사랑은 온전히 그 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분만이 하나님과 함께 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오로지 그분에게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다.|모노게네스는 온 삼라만상의 존재 위에 유일하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 용법에 있어서 현재 구원론적인 의미는 근원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강조되었다(요 1:14; 요 1:18; 요 3:16; 요 3:18; 요일 4:9). 모노게네스로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헨 에스멘)"(요 10:30)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유일하심에 포함되는 예수님께서는 역사와 역사적 사실에서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서 그것을 감찰하신다.|(참조: Buchsel; K. -H. Battele).
다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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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다만, 오직||부사 모논(Aeschyl., Hdt. 이래)은 모노스($3441: 홀로, 혼자서)의 대격이며, '단지, 다만, 오직' merely, only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55회 사용되었다.|-->모노스($3441)의 중성을 보라.
오직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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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홀로, 단지||#1. 고전 및 70인역본의 용법.||모노스는 호머(Homer) 이래로 나오며,||(a) 형용사로 '홀로' alne,|(b) 중성에서 부사로, '홀로, 오직, 단지'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6개의 히브리 단어 및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에 주로 레바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2:18; 21:28; 출 22:19; 민 11:14, 17; 왕상 7:3, 4 등).||#2. 신약성경의 용법.||1) 형용사로 (a) '유일한, 하나만, 혼자, 오직'을 의미한다.|① 동사와 함께, 마 14:23; 눅 9:36; 눅 10:40; 요 8:9; 살전 3:1; 롬 11:12.|② 명사와 함께, 눅 24:12; 요 6:22; 마 12:4; 마 4:10; 눅 4:8; 마 18:15; 막 6:47; 막 9:2; 요 6:15; 눅 24:18; 행 26:14; 고전 9:6; 고전 15:30.|③ 부정어와 함께, 마 4:4; 롬 16:4; 요이 1:1; 마 12:4; 마 17:8; 마 24:36; 막 9:8; 눅 5:21; 눅 6:4; 빌 4:15; 계 9:4.|④ 노모스 데오스(유일하신 하나님), 딤전 1:17; 요 5:44; 롬 16:27; 딤전 6:15; 계 15:4.||(b) '혼자, 버림받은, 무력한', 요 8:29; 요 16:32.||(c) '고립된, 그것 자체로', 요 12:24.||2) 중성, 부사로 '오직, 단지, 다만, 홀로',|(a) 동사가 지적하는 행동이나 상태를 제한하는 경우, 마 9:21; 마 14:36; 막 5:36; 눅 8:50; 고전 15:19; 갈 1:23.||(b) 명사나 대명사와 함께,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하는 것, 마 5:47; 마 10:42; 행 18:25; 롬 3:29; 갈 2:10; 갈 3:2; 히 9:10.||(c) 부정어와 함께, 다만...말라, 갈 5:13; 뿐만 아니라, 갈 4:18; 약 1:22; 약 2:24; 행 19:26; 요일 5:6; 뿐만 아니라 또한, 마 21:21; 요 5:18.||(d) 카타 모나스(홀로, 혼자), 막 4:10; 눅 9:1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한 눈으로
monovfqalmo"
한 눈의, 한 눈을 잃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모노프달모스(Hdt. 이래)는 모노스($3441: 홀로, 혼자서)와 오프달모스($3788: 눈)에서 유래했으며, '한 눈을 잃은, 한 눈을 가진, 외눈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모노프달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마 18:9에서 범죄한 눈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병행구 막 9:4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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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모노오(Homer 이래)는 모노스($3441: 홀로, 혼자서)에서 유래했으며, '홀로 남겨두다, 홀로 내버려 두다, 버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노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5:5에 한번 나오며, '홀로 남겨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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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 모양, 외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르페(Homer 이래)는 기본형이며,||(a) '형상, 모양' form, '외형(양)' external appearance(사람, 동물, 생물, 조상 등에 대해 사용됨)(Pind., Aesch., Plut 등)., '아름다움, 형태의 미'(Xenoph., Plat., Hom.),||(b) 비유적으로 '좋은 즐거움'(Dion.),||(c) 일반적으로 '종류, 태도'(Eur., Pla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모르페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지우(2122: 빛남, 광채, 탁월함, 단 4:33; 단 5:6, 9, 10; 단 7:28), 테무나(8544: 초상, 형태, 외관, 욥 4:16), 토아르(8389: 윤곽, 형태, 삿 8:18), 탑니트(8403: 구조, 모형, 형상, 사 44:13), 체렘(6755: 우상, 형상, 단 3:1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70인역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하는데 모르페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르페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마가복음과 빌립보서에만 사용되었다.||(a) 막 16: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여기서 "다른 모양은" 인간의 모양이긴 하나 세상에서 생활하실 때의 예수님의 모양과는 다르다(참조: 눅 24:16).||(b) 빌 2:6; 빌 2:7,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종의 형체를 가져"라는 문구에서 "가져"(라본)라는 동사는 과거 분사로 동시 발생적 행동을 의미한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형체"로 존재하는 것과 "종의 형체"를 취하는 것이 동시 발생적 행동으로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자는 전자의 계시이고 전자는 후자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다. 종의 형체를 취하신 그리스도는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나타내었다. 그리스도는 어떤 일개인의 실질적인 노예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봉사의 행위는 인간 하나 하나에 나타났다(참조: 눅 22:27). 그래서 인류의 실질적인 종이 되었다.(J. A. Knight).|(참조: J. Behm).
형상이 이루다
morfovw
형성하다, 모양이나 형태를 이루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모르포오(Aratus, Phaen., Philo)는 모르페($3444: 모양, 형상, 외형)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을 의미한다.||(a) 이 단어는 능동태로 '형성하다, 모양을 만들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면 예술가들이 재료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만드는 것을 나타낸다.||(b) 이 단어는 수동태로 '형태를 갖추다'(특별히 자궁 안에서)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르포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4:19에 한번 나온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이 구절에 담겨 있는 사상은 갈라디아인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다른 올바른 가르침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참조: R.Herrmann). 이것은 오히려 임신과 해산을 통하여 어린 아이가 태어나듯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 자신은 자기의 존재의 실재로서 그들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참조: G. Braumann; J. Be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