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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모르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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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구체화, 외적 모양.||#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르포시스(Theophr.)는 모르포오($3445: 형성하다, 형태를 이루다)에서 유래했으며, '형성함, 모양을 이룸'을 의미한다.||(a) 이 명사는 동명사적으로 '모양을 형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Theophr.).||(b) 이 명사는 모양을 형성하는 행위의 결과로, '형성된 것, 형태나 형체, 외적 모양'을 의미한다.||(c) 이 명사는 '구체화' embodiment, '형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르포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로마서와 디모데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여기서 모르포시스는 '구체화'나 '완전한 구현'(참조: 빌 2:6-빌 2:7). 율법은 유대인의 안목에서 절대적인 지식과 진리를 구체화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산데이(Sanday)와 헤드람(headlam)는 '율법은 실행되는 한도 내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참된 구현이었다'고 말한다.||(b)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서 모르포시스는 '외적 모양(외양)'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적 능력이 없는 외적 종교의 형태, 즉 일치하는 실체가 없는 단순한 외양을 가리킨다. 이단자들은 실제로 경건하지 않다. 그들은 외견상 경건해 보일 뿐이다.|(참조: G. Braumann; J. Behm).
송아지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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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의 형상)를 만들다.||#1. 헬라어의 용법.||동사 모스코포이에오는 모스코스($3448: 어린 가지, 송아지)와 포이에오($4160: 만들다, 하다,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송아지(의 형상)를 만들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스코포이에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7:41에 한번 나온다: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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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calf||#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스코스(Hdt., Eu.)는||(a) '부드러운, 즙이 많은, 어린 가지', 식물이나 나무의 '싹(눈)',||(b) '자식, 자손',|① 사람에 대해, '소년, 소녀',|② 동물에 대해, '어린 것, 새끼',||(c) '송아지, 수송아지, 어린 암소'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스코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누가복음,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눅 15:11-32의 비유에서 방탕한 아들을 환영하여 잡은 살찐 송아지가 언급된다(눅 15:23; 눅 15:27; 눅 15:30).||(b) 히 9:12에서 대속죄일의 희생 제사와 관련되어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언급하며, 시내산에서의 언약의 희생과 관련있는 히 9:19에서는 위의 동물들이 역순으로 언급된다. 또한 히 9:13에서 염소와 황소의 피를 언급한다. 히 10:4에 따르면 옛 언약의 속죄 제물인 이 동일한 동물들이 역순으로, 즉 황소와 염소로 언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외형적 변형은 히브리서의 세련된 문체의 표시이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사 1:11을 고려해야만 한다.||(c) 요한계시록 4장의 위대한 묵시적 장면(계 4:7: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은, 비록 구약성경의 전제들로부터 벗어나 있긴 하지만, 분명히 겔 1:4 이하; 겔 10:1 이하에 기초한다. 요한계시록의 게루빔은 보좌나 보좌 병거에 직접 소속하지 않고 어느 정도 독립적이다. 각각은 특정 종류의 살아있는 생물이며, 순서는 에스겔서의 그것과 다르다(요한계시록에서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순). 그 형상과 외치는 소리에 대한 세부적 묘사는 사 6:1-3의 세라빔에서 차용한다(계 4:8). 따라서 우리는 가시적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천사적 세력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창조와 역사를 대표하는 것들이 결코 아니다. 초기 교회에서 네 생물은, 순서상 약간의 변동은 있으나, 네 명의 복음서 기자로 대부분 이해되었다. 이들 게루빔은 그들의 차이와 일치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과 영광을 나타낸다. "인간의 지성과 사자의 넘치는 힘, 황소의 추진력과 견인력, 독수리의 날카로운 응시와 날개짓하는 힘은 그들 사이에 구분되어 있으나 그 조화로운 움직임 속에서 일치되어 있다. 그 전체적인 모습의 묘사는 개개의 구약성경의 묘사를 넘어서고(겔 1:4 이하; 겔 10:12; 사 6:1-3), 부차적인 요소(motif)는 보다 단순하고 직접적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애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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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 노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크도스(Hes., X. 이래)는 모기스($3425)의 어간에서 유래했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 노역, 노고'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모크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사람의 '수고나 노고'(전 1:3; 전 2:18 이하)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크도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에 각각 1회 사용되었다.||(a)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기서 모크도스는 '노역'을 의미한다. "수고하며 애쓰고"는 둘 다 중노동을 나타내는데, 프름머(plummer)는 이것을 '억척스럽게 일하고'라고 표현했다.||(b) 살전 2:9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c)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여기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참조: M. Se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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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my||인칭 대명사 에고($1473: 나는 I)의 속격 에무($1700)의 후접어이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64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풍류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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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량이 있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무시코스(Aristoph. 이래)는 무사(%249: 무즈신, 음악, 웅변 등등)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의미는 '뮤우즈 여신에게 바쳐진 예술에 헌신하고 그 예술에 능숙한'을 의미하며, 여기서 '예술(특히 음악)의 기량이 있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무시코스는 신약성경에서 계 18:22에 한번 나온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여기서 모시코스는 음악의 기량이 있는, 즉 노래하는 성악가로 생각된다(참조: 창 31:2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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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 marro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뮈엘로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골수' marrow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뮈엘로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4:12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뮈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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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하다, 입문시키다 initiate , 훈육하다, 가르치다 instruc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뮈에오(비극 문학, Hdt. 이래)는 원래 `비전(mysteries)을 전수하다'를 의미하였으나 후에 `교수하다,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뮈에오는 신약성경에서 빌 4:12에 한번 나오며, `비결을 가르침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신화
mu'qo"
신화 myth, 이야기 stor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뮈도스(Homer 이래)는||(a) '말, 담화',|(b) '말하지 않은 생각' 즉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계획'|(c) 진실이건 허구이건 간에 어떤 '이야기'를 의미한다.||뮈도스는 플라톤의 진리에 관한 설명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플라톤은 철학적 논쟁을 통해 탐구를 계속했으나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자 자기 작품에 시인을 등장시켜 그로하여금 그의 탐구의 목표인 통찰력을 상징적인 이야기나 비유의 형태를 도입하여 표현하도록 하고 있다. 신화를 만드는 그의 솜씨는 서사시의 신화들과 오르페우스나 엘류시스의 제전의 신화 덕택에 얻어진 것이지만 플라톤의 신화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예로는 에로스(Eros)에 관한 두 개의 신화와 창조에 관한 신화, 그리고 장차 올 세상에 관한 신화와 사자들의 심판에 관한 신화들이 있다.|뮈도스라는 말은 희극이나 비극의 줄거리를 나타내는 고전 헬라어의 전문 용어였다. 이 용법은 그러한 예술 형태들이 전적으로 종교적이었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뮈도스나 히에로스 로고스는 신들이 관련되어 있는 신성한 이야기였으며, 드라마(드라오: '행하다, 활동하다'에서 파생됨)는 그 이야기의 의식적인 공연이었다. 이 둘은 상호 필요한 것이었으며, 전체 제작에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뮈도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외경에만 나온다. 집회서 20:19에서 한 무례한 자는 "계속해서 무식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악한 시대에 말해진 하나의 이야기(뮈도스 아카이로스)"에 비유되어 있다. 지혜서 17:4에서 뮈도스는 뮈코스(내실)를 잘못 쓴 무의미란 말로 나온다("그들은 한구석으로 숨어 들었지만 무서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바룩일서 3:23에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뮈돌로고이)과 그리고 지식의 길을 탐구하는 사람도 지혜의 길을 알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뮈도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목회서신과 베드로후서에만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a) 딤전 1:4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 것을 금한다. 이것은 그 자체에 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신화와 족보는 믿음을 세우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론으로 이끈다. 그것은 아마 알레고리적인 설명 때문일 것이다.||(b) 딤전 4:7에서 신화들을 "망령되고 허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대신 사악하고 부도덕하였다(참조: Plato). 이 신화들은 또한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동화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이야기 즉 허황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화들을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c) 딤후 4:4에서 사람들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고 말한다. "허탄한 이야기"라고 경멸적으로 부르고 있는 신화들은 복음의 로고스와는 상반되며, 인간의 기호에 부응하는 사람들에 관련되어 있다. 로고스는 말씀이 구체화된 것이며, 만일 로고스가 신화에 의해 대체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며, 신화와 관련만 있다 할지라도 로고스는 변절된다. 그 당시 교사들은 고대의 독창적인 시인들이라기보다는 철학자들이다.||(d) 딛 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예리한 경고는 뮈도이를 유대교와 동일시하고 있으며(이것은 유대 관례, 법규 부분의 알레고리적인 발전일 것이다), 바클레이는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명령에 대한 일정치 못한 강조에 대하여 말한다: '유대인의 신앙이 갖는 최대의 특징은 수천개가 넘는 규칙과 조항들이었다. 이것 저것 조목을 들어서 어떤 물건은 부정하고 어떤 음식은 먹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다가 유대주의가 영지주의와 혼합되자 사람의 몸까지 부정하다고 보았다. 결혼과 자연적인 본능마저 악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 결과 죄의 목록만 자주 길어졌다. 심지어 어떤 것은 만져도 죄를 짓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좋고 자연스런 것이라도 규정에 의해 더럽혀지고 나쁜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하였다.|이러한 것은 그레데 교회들에 있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써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에 근거한 사색은 순수한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건전한 것으로 거절해야 하는 것이다.||(e) 벧후 1:16에서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라고 한다. 베드로는 어느날 세상에 나타날 주님의 영광을 친히 보았다. 따라서 그는 공교히 만든 공론을 전하는 것을 거절하고 구약의 예언과 복음의 역사(歷史) 위에 세워진 사도의 메시지가 그 자체 뮈도이를 포함하고 있다는 비난을 격퇴하였다.|첫째로 생각할 점은 그것들은 시인의 창안물인 신화들의 한 특징이며, 신화들은 철학자들이나 사제들에 의해 임의로 변경되거나 각색할 수 있는 것들이다.|둘째로 생각할 점은 필로도 역시 어려운 구절을 발견할 경우 그의 알렉고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의 역사를 신화인 것처럼 다루지만, 성경적인 신앙은 신화보다는 오히려 역사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이방종교와 구별된다고 보았다. 오리겐은 유사한 노선을 따르는데, 특별히 성경의 기사들이 신화로서의 가치조차 없으며, 신화보다 더 열등하다는 켈수스의 비난에 대한 답변에서 그러하다. 그렇지만 베드로후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선지자의 말과 사도들의 목격에 근거한 역사적 진실임을 역설한다.|(참조: Walter Bauer; W.michmelis; F.F.Bruce).
뮈카오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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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로 부르짖다, 으르렁거리다, 포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뮈카오마이(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음매하고 울다, 큰소리로 울부짖다', 본래 뿔 달린 소에 대해 사용되었다(Hom., Aeschyl., Eur., Plat., al). '으르렁거리다, 포효하다' to roar, 사자에 대해 사용되었다(Theocr. 26).||#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뮈카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계 10:3에 한번 사자의 '포효'에 대하여 사용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만홀이 여김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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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웃음치다, 비웃다, 조롱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뮉테리조(Hippocr.)는 뮉테르(코 nose)에서 유래했으며, '코를 비틀다, 경멸적으로 취급하다, 코웃음치다, 비웃다, 경멸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뮉테리조는 70인역본에서 17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한다. 이 단어는 왕상 19:21에서 이스라엘이 적들을 조롱하는 것에 대해, 잠 12:8에서 지적으로 나태함을 비웃는 것에 대해, 왕상 18:27에서 이방신들을 조롱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를(대하 36:16), 부모를(잠 15:5; 잠 15:20), 하나님의 징계(잠 1:30)를 정면으로 대항하는 죄가 된다. 이 조롱의 희생자는 그것으로 인해 크게 고통당한다(시 79:6; 렘 20:7).||#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뮉테리조는 신약성경에서 갈 6:7에 한번 나온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도는 갈 5:25에서 성령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반대로 그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육신 안에서 행함, 즉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성령의 능력 아래 거하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두 길 모두 하나님의 뜻과 관련한 어떤 자세와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서기로 결정하는 자는 현재와 마지막 심판에서 모두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에게 맞서는 것이라는 것을 그의 전 존재를 통하여 깨달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또 하나님은 그의 뜻과 은총이 경홀히 여김받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육적이고 죄악된 본성을 신뢰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뮉테리조는 죄악된 삶의 태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은혜와 그의 뜻을 멸시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의 능력의 주권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그것은 말로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로, 즉 삶의 전체 태도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reisker).
뮐리코스
mulikov"
맷돌에 속하는, 맷돌의 belonging to a mill.||형용사 뮐리코스는 '맷돌의'를 의미한다.|뮐리코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17:2에 한번 나오며, 리도스 뮐리코스 즉 '맷돌에 속하는 돌'을 의미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그리고 막 9:42(RT)에도 리도스 뮐리코스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눅 17:2(RT)에는 뮐로스 오니코스(연자맷돌)로 표기되어 있다.|(참조: J.H.Thayer).
뮐리노스
muvlino"
맷돌의 of a mill||형용사 뮐리노스는 뮐로스($3458: 맷돌)에서 유래했으며, '맷돌의'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계 18:21에 한번 나온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계 18:21TR에서는 뮐로스($3458: 맷돌)로 표기되었다.|(참조: J.H.Thayer).
맷돌
muvlo"
맷돌 mill, 연자맷돌 millston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뮐로스(Diod., Plut.)는||(a) 맷돌|(b) '연자 맷돌'을 의미한다. 연자 맷돌은 상하 두돌로 구성된 큰 맷돌, 아랫쪽의 돌은 고정되어 있었으며, 윗돌은 나귀가 끌며 돌렸다. 여기에서 연자 맷돌(뮐로스 오니코스)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뮐로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출 11:5; 민 11:8; 신 24:6; 사 47:2에서는 '맷돌', 삿 9:53; 왕하 11:2에서는 '연자 맷돌'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뮐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타난다.||(a) 마 18:6에서 연자 맷돌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병행구, 막 9:42).|계 18:21에서도 연자 맷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b) 마 24:41에서 뮐로스는 맷돌을 의미한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계 18:2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참조: Walter Bauer; J.H.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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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간, 방앗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뮐론(Eur. 이래)은 '맷돌(제분기)이 가동하는 장소, 연자간, 방앗간' mill-house(Eur., Thuc., Dem., Aristo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뮐론은 신약성경에서 마 24:41에 한번 나온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