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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무라
Muvra
무라 Myra(지)||무라는 루기아(Lycia) 연안에 있는 한 도시이다. 루기아는 가리아(caria)와 밤빌리아 사이에 있는 소아시아의 해안 지역이다. 실제로 이 도시는 대도시였다. 고대 저술가들은 무라를 루기아의 "가장 훌륭하고 찬란한" 도시로 묘사하였다. 무라의 공공건물들은 훌륭하였으며, 이러한 건물들에는 휴게실, 좌석 등을 갖고 있는 회당, 학교, 극장, 목욕탕, 주랑(柱廊), 평화의 성전 등이 있었다. 기독교 시대에는 몇 개의 교회가 있었다. B.C. 88년 애굽의 톨레미 Ⅸ세는 폭동을 일으킨 군대로부터 도망쳐 이 곳 무라에서 피난했었다. B.C. 42년에 시이저의 암살로 인한 혼란기에 이 도시는 로마군의 습격을 받았고 브루투스(Brutus)에게 항복하였다.|뮈라는 신약성경에서 행 27:5에 한번 나오는데, 바울이 항해 중에 방문했다. 무라성은 당시 알렉산드리아(행 27:6)에서 로마로 이집트의 공물을 운반하는 배들이 즐겨 정박하는 중간 기착지였다. 바울이 탄 배가 무라로 들르게 하였던 것을 보면, 무라는 당시 중요한 항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참조: PEB).

muriva"
일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뮈리아스(Hdt. 이래)는 뮈리오스($3463: 일만, 무수한)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a) 이 단어는 '일만' ten thousand를 의미한다(행 19:19).||(b) 복수, 속격과 함께|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 무제한적인 수'를 의미한다(눅 12:1; 행 21:20).|② 부가어 없이 단순하게, '헤아릴 수 없는 다수'의 "천사들"에게 사용되었다(히 12:22; 유 1:1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뮈리조
murivzw
기름 붓다, 기름 바르다.||동사 뮈리조(Hdt., Aristoph. 이래)는 뮈론($3464: 연고, 향유)에서 유래했으며,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뮈리조는 막 14:8에 한번 나온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3464(뮈론)을 보라.
일만
murivo"
일만, 무수한.||#1. 고전 및 70인역본의 용법.||뮈리오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일만',|(b) '셀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도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뮈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18:24에서 '일만'을 의미한다: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b) 고전 4:15에서 '무수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14:19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향유
muvron
연고, 향유 ointm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뮈론(Archilochu. 이래)는 '연고, 향유'를 의미한다.|동물의 지방이 아니라 향료가 섞인 식물성 기름인 "향유" ointment(연고, 고약)는 아주 옛날부터 사용되었다(일찌기 주전 3,000년경 애굽에서). 몸에 기름을 바르는 관습은, 후에는 종종 사치로 행해지긴 했으나, 남방 민족들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음이 틀림없다. 향유는 약이나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제사 의식이나 마술 같은 곳에서도 사용되었다.||#2. 70인역본 및 구약성경의 용법.||구약성경에서도 세속적인 용도로나(특히 아가서에서; 암 6:6; 잠 27:9; 지혜서 2:7) 제의적 용도(예: 출 30:25)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요세푸스는 뮈론을 제의적 용도로(Ant, 3. 205), 향료로(Bell, 4, 561), 축제의 장식물로 (면류관과 함께)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뮈론은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계 18:13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복음서에만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뮈론이 주로 사용되는 곳은 기름부음에 관한 기사에서이다. 베다니에서의 기름 붓는 것에 관한 기사에서 이 용어가 나온다(마 26:7; 병행구 막 14:3 병행구; 요 12:3; 막 14:4 이하, 병행구 요 12:5; 마 26:12, 참조: 막 14:8[신약성경에서 동사 뮈리조가 사용된 유일한 곳]; 참조: 요 11:2). 막 14:3 병행구 요 12:3에서 사용된 값비싼 향유는 감송향("나드")이라고 불리운다.|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고 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주님의 발에 마리아가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또한 뮈론은 눅 7:36 이하의 기름 붓는 기사에서도 나온다(참조: 눅 7:37; 눅 7:38; 눅 7:46). 여기서도 발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이것은 특별한 응대의 표시로 여겨지는데, 엘라이온($1637: 올리브유)이 아닌 뮈론($3464)이 사용된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마 26:7; 막 14:3; 눅 7:37에서는 향유가 옥합 안에 담겨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향유를 옥합에 담는 것은 고대의,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풍습이었다.|막 14:3에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녀가 내용물 전부를 사용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의 목을 깨뜨려서 용기를 여는 풍습을 그녀가 따랐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마 26:12 병행구 막 14:8 병행구 요 12:7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은 자신의 몸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눅 23:56에서 여인들은 장사된 예수님의 몸에 기름부을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였다(본문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품의 향기로 채우려 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계 18:13에서 대상들이 파는 상품의 목록 중에 뮈론(향유)은 향 뒤에, 유향, 포도주, 감람유 앞에 언급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Michaelis).
무시아
Musiva
무시아 Mysia(지)||무시아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소아시아의 지방이며, 루디아와 프로폰티스(Propontis) 사이에 있다. 이 지방의 도시들로는 버가뭄, 드로아, 앗소가 있었다. 이곳은 옛날에 산림이 우거진 산악 지방이었으며, 주요 교역가로 이곳을 통과했다. 무시아의 원주민은 원드라게에서 온 무리들이었을 것이다.||무시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행 16:7; 행 16:8에서 나온다.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중 무시아를 여행했다. 그러나 드로아를 제외하고는 그 지방에 머문 곳에 없다. 매우 일찌기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증거가 남아있다.|(참조: PEB).
비밀
musthvrion
신비 mystery, 비밀 secre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뮈스테리온(비극 문학시대 이래)는 뮈오(%1022: 입이나 입술을 '닫다, 다물다')에서 유래했으며, 언급될 수 없거나 언급되어서는 안되는 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감춰진 것, 비밀, 신비'를 뜻하며, 복수는 일반적으로 '신비들, 비전이나 비법(mysteries), 종교적 비밀들'을 가리키는데, 이것들은 오직 입문자들에게만 전수되며, 그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전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참조: K. F. Hermann).||(a) 뮈스테리온은 밀의 종교의 제의 의식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입회자는 이성적 인식의 차원에서 신성한 사건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경험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간다(Aristotle Fr. 15[Rose]). 삶과 죽음 사이의 끊을 수 없는 결속의 개념은 밀의 종교의 중심 내용으로 추정될 수 있다. 문자적 의미에서의 삶과 보다 추상적 의미의 삶은 죽음의 심연에서 울부짖는다(일찍이 주후 2세기 Apuleius Met. Xi 23. 7에서 표현). 밀의 종교의 신들은 삶과 죽음 두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더 나이가 많은 원래 생명을 주는 다산의 여신과 더 어린, 고통을 주는 신(엘류시스와 아티스 신비 제의)이 구별되거나 단일 신(디오니수스)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힘의 여신 이시스도 역시 두가지 측면을 모두 소유한다. 입회자는 제의 예식에서 이 신적 존재들과 합일하므로(예컨대 엘류시스에서 에포프테이아['보는 것']를 통하여), 그들은 이생과 내세에서 신의 보호로 말미암아 안전을 누릴 것이라는 확신으로 개인적 구원(소테리아)을 스스로 얻는다.|국가적 제의와 달리, 이 신비 종교 의식들은 자발적으로(이시스 제의에서) 입회 의식을 치르는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회적 계급과 성별의 구별은 점차 중요하지 않게 되지만 입회자와 비입회자 사이의 구별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신비 종교들의 이와 같은 비교적(esoteric) 성격은 신비의 내용에 관한 절대적 침묵의 명령을 요구했다. 보편적인 영어 번역 'secret'는 이 측면(뮈스테리온=침묵을 지키는 것)을 반영하는데, 이것은 뮈스테리온의 의미의 전체 범주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하다.||(b) 뮈스테리온의 철학적 또는 은유적 사용은 플라톤으로 시작한다. 한편 존재의 진실을 깨닫도록 인도하는 지식의 길은 에포프데이아(보는 것)로 인도하는 엘류시니아의 입회의 단계들을 통과하는 길로 묘사된다(Smp. 209e-12a). 또 다른 한편 동료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그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에 뮈스테리온으로 표현한다(Tht. 155d-56a).|후기 신비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에 있어서 뮈스테리온은 그 본질상,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신비의 말은 바로 말의 부정인 것이다(TDNT Ⅳ 809).||(c) 영지주의에서 뮈스테리아는 '완전한'(텔레이오이) 자들의 영혼을 구속하기 위해 그들에게만 주는 비밀의 계시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d) 이 단어는 마술에서 마술 행위, 마술 방법, 마술에 사용된 수단(고약, 동물, 부적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개인의 비밀, 가족의 비밀, 일반적인 비밀이나 신비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 등의 용법.||(a) 명사 뮈스테리온은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오직 다니엘서에서만 아람어 라즈(비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17회).|다니엘서는 이 단어를 매우 명확한 신학적 의미로 사용한다. 즉 '종말론적 비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이다(단 2:28). 이 비밀이 꿈의 형태로 나타날 경우, 이 비밀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예언자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참조: 단 4:6; 단 4:18). 그 이유는 신비의 계시는 오로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단 2:2; 단 2:8 이하). 나머지 13회는 외경에 나온다. 지혜서 14:15; 지혜서 14:13에서 뮈스테리온은 피해야만 하는 이교의 제의적 행위를 가리키는 명칭이다.|또 뮈스테리온 정치 지도자들의 은밀한 계획(토빗 12:7; 유딧 2:2), 군사 기밀(마카베오이서 13:21), 친구 사이에 있는 비밀(집회서 22:22; 27:16 이하, 27:21) 등과 같은 세속적인 '비밀'을 가리킨다.|대조적으로 지혜서 2:22; 6:22의 뮈스테리온은 신학적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는 길이 신비의 견지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건한 자들이 인정하고 선포해야만 하는 것이다.||(b) 후기 유대 묵시 문학에서 뮈스테리아는 종말론적 사건, 예를 들면 죄인들의 심판과 응징(이디오피아어 에녹서 38:3), 의인의 보상(이디오피아어 에녹서 103:2 이하), 세계 역사의 마지막 때 있을 우주의 대격변(이디오피아어 에녹서 83:7)이라는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사건들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법령에 속해 있는 한, 하늘에 있는 현재적인 실체들이 묵시 예언자들에게 환상으로 계시된다(히브리어 에녹서 71:3 이하). 예언자는 여전히 '그 시대의 소재'에 관하여(바룩이서 81:4),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마지막 날에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TDNT Ⅵ 816). 그러나 그가 본 것은 비밀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언어로(이디오피아어 에녹서 68:1: '모든 비밀의 징표들') 또 비밀 전수자라는 정해진 집단의 독립적인 이익을 위해서만(에스드라하 12:36 이하) 그것을 전수했기 때문이다.||(c) 쿰란 본문들에서 일반적으로는 라즈(주로 복수형)가, 이따금 소드(주로 단수형)가 '비밀'이라는 의미로 나타난다(참조: 1QH 4:27 이하). 흔히 지혜의 비밀(참조: 1QH 9:23), 명철의 비밀(13:13), 지식의 비밀(1QS 4:6), 진리의 비밀(9:18) 따위로 수식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1QH 4:27 이하; 1QpHab 7:8; 1QM 14:14 등)은 피조물의 질서(3:15-25, 별들의 비밀을 포함: 1QH 1:11, 13), 쿰란 공동체에서 이스라엘의 보존(죄 용서를 통하여, CD 3:18 이하; 정화를 통하여, 1QM 17:9;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함으로, 14:9 이하) 및 마지막 날들(아래를 보라)과 관련되어 있다.|하나님 자신만이 인간 존재들에게 감추인(1QS 11:18 이하) 그의 비밀들의 완전한 깊이를 아신다. 하지만 '의의 교사'들에게 선지자들의 말의 모든 비밀들을 알려 주신다(1QpHab 7:4 이하).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교대로 그것들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1QS 9:17-21). 그 비밀들에 대한 해석이 경건한 자에게 주어지므로(1QH 7:27; 11:10; 12:13), 그들은 이 지식의 해석자들이 될 수 있다(2:13). 그들은 공동체의 밖에 있는 자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1QS 4:6; 참조: 1QH 5:25).|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세력(벨리알)의 계획과 일들도 '비밀들'이라 불린다(악의의 비밀들, 1QM 14:9; 죄의 비밀들, 1QH 5:36). 이 대적하는 세력이 제한된 힘을 부여받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들 가운데 속하며(1QS 3:21-25), 마지막 날에 있을 그것의 최종적인 전복과 멸망도 그러하다(1QS 4:18; 1QM 3:9; 6:11).||(d) 필로는 뮈스테리온을 14회 사용하는데, 그 중 9회는 은유적으로 하나님의 '비밀들'을 가리킨다. 이 비밀들의 내용으로는 주로 우주에 대한 그의 주권과 그의 효과적인 능력과 선행들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영혼이 이 뮈스테리아에 대한 지식을 가질만하다고 하신다(ⅲ. 27). 하나님의 일들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이 간접적인 지식 외에 플라톤의 영향 아래 하나님에 대한 더 높은 차원의 직접적인 환상은 '위대한 비밀로 들어가는 입문'이다(ⅲ. 100 이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들은 은혜의 선물로 부분적으로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가 소명을 받은 것이 이에 대한 성경적 모델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뮈스테리온은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27구절에서 제의적 의미나 순수한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정확히 이 용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신약시대까지 발전한 의미의 전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 뮈스테리온의 헬라적 개념에서 죽음과 삶의 문제는 물론 인간의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엄격히 비밀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유대 전승에서부터 보다 덜 엄격한 비밀과 초월적인, 인간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신비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친히 과거, 현재, 미래에서 구원과 심판의 행위로 행하시는 것이며, 지금 이미 부름받는 자에게 명백하게 되었고, 마지막에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될 것이다. 내용에 관하여, 뮈스테리온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가리킨다.||(a) 복음서에서 뮈스테리온은 오직 막 4:11과 병행구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이 구절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에 대한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뮈스테리온을 사용한다. 그것은 오직 종말의 시대에 그 모든 영광으로 나타내기 위해 근본적으로 아직도 숨겨져 있으나 이제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이 접근하여 믿음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편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문제이며, 그러므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어려운 격언은 비유와 그 해석 사이에 가로 놓여 있으니,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관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 놓여 있는 비유와 격언에 동일한 문제가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막 4:11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병행구절에서는 "천국(마 13:11; 하나님의 나라, 눅 8:10)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라고 되었다.|그리고 그 말씀은 제자들과 외인들(제자의 직분을 맡지 않은 백성의 무리) 사이를 구별한다. 이 구별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직 비유로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설교에서 그의 기본적인 원칙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적절한 방법으로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굳어짐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막 4:12 병행구절).|그 말씀에는 비유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일반적인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다. 이 교수법은 하나님의 통치의 신비를 감추는데 적합하다.-그 신비는 제자들에게는 드러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마가복음과 약간 달리 제자들에게 밝혀지는 비유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가 보다 더 크게 강조된다: "천국(눅 8:10,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마가복음은 확실히 그 비유들이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나머지 사람들과는 다른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해석이 있는, 막 4:13 이하와 막 4:34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볼 수 있다. 막 4:11은 매우 날카롭게 공식화 되는데, 이는 그 대조가 제자들에게 주어진 비밀의 계시와 그 외의 사람들을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 사이의 대조이지, 해석된 비유들과 이해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 비유들 간의 대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복음서 저자들은 비유는 드러나지 않게 말하는 방법이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의 비밀을 알리지 않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마가복음(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차이, 즉 한쪽에서는 무감각해짐이 그 이유라고 하며, 다른 쪽에서는 비유로 말씀하신 결과(호티/ 히나)로 무감각해졌다고 하는 그 차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행동 속에서 성경에 확립되어 있는 신성한 필연성이 성취됨을 보기 때문이다(마 13:14 이하; 마 13:35; 사 6:9 이하는 또한 막 4:12; 눅 8:10의 근거이기도 하며, 따라서 히나는 성경의 성취의 주제를 시사한다). 가르치시는 방식에 의해 초래된 그 결말은 이미 그 백성들이 무감각해지는 형벌에 이르기에 충분한 백성들의 상태를 전제로 한다.|하나님의 통치의 비밀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 비유 속에서 답변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문맥에 주의해 보면 그 답을 얻게 된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조는 첫째로 그 비유들은 비밀(mystery)을 담고 있지만, 오직 특별한 계시에 의해서만 인지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그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확실히 이것은 그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무의미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비밀들이라는 것은 설명에 의해 덧붙여지지 않고 본래 그 이야기 자체의 일부를 이룬다. 그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어떤 전반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분명히, 우화로 꾸며지지 않고 간단하게 덧붙여진 그 해석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통치의 비밀은 그래서 분명히 비유 속에서 암시되거나 매우 간접적으로만 암시되는 그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바실레이아(나라)의 어떤 일반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바실레이아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상징으로부터 실재로의 전진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통치의 다가오는 비유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그 사건의 선포와 함께 일어나는 실재의 사건으로 파악하는 믿음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이 견해는 뮈스테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하나님 나라의 비밀)라는 구절이 오랫동안 인간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으며, 계시에 의해서만 드러나며, 종말에 실현될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키는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인정되어 왔었다는 사실에 의해 확인된다. 만약 제자들이 그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이것은 그들의 눈이 메시야 시대의 동터옴을 향하여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마 13:16 이하). 제자들이 백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 이유는 그 비유들이 바실레이아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 비유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였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주권적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메시야이신 예수님 자신이다. 이 비밀은 사실 그 비유들에 의해 감추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비유들이 모호하고 어렵거나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단순함 때문이다.-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언급하신 뮈스테리온과 그 해석의 관계에 의해 요구되는 설명이다. 이는 '씨 뿌리는 자는 씨를 뿌리러 나간다. 그것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새 세계를 의미한다.'||(b) 고전 2:1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선포(고전 1:23; 고전 2:2)를 뮈스테리온 투 데우("하나님의 신비"; 뮈스테리온은 고전 1:6에서 유래한다)라고 지칭한다. 이 구원 사건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이다(고전 1:23-31). 게다가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또한 다시 살아난 자이므로, 죽음으로부터의 삶에 관한 헬라 개념이 바울이 뮈스테리온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고전 4:1에서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환, 즉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참조: 고전 9:17 이하)로 여길 때 그리스도에 대한 이 선포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고전 2:7에서 소피안("지혜")과 한정 분사 텐 아포크에크 륌메넨("감취었던 것") 사이에 엔 뮈스테리오("비밀한 가운데")가 놓인 것은 전치사가 소피안을 한정하며 따라서 소피아를 하나의 능력으로 정의함을 분명히 나타낸다: "비밀 안에서 일을 수행하고 있는(즉 역사 속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하나님의 감추인 지혜". 여기서 또한 퀴리오스 테스 독세스("영광의 주", 고전 2:8)는 뮈스테리온의 언급에 포함된다. 동시에 이 하나님의 지혜의 뮈스테리온은 만세 전에 하늘에 하나님에 의해 감취어 우리의 (종말론적) 영광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가 이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계시된(고전 2:7; 고전 2:10) 구원의 한 요소로서 묵시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 계획에 대해 충분한 전망을 지닌다.||고전 14:2에서 뮈스테리아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황홀경에서 말로 표현되는 비밀들(즉 하나님에 대한 비밀들)이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그것들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전 13:2에서 모든 뮈스테리아에 관한 지식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예언의 영적 은사이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5:51 이하에서 바울은 재림 때까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변형에 관한 진술의 내용에 대해 죽음/ 삶의 주제(참조: 고전 15:36)와 관련하여 뮈스테리온을 사용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롬 11:25 이하에 뮈스테리온(참조: 또한 롬 11:33의 형용사 '꿰뚫을 수 없는, 식별할 수 없는')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리킨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전통적인 종말론적 기대는 이스라엘의 부분적인 완악함 때문에 이방인들의 회심의 여지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변경된다. 모든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진 이후, 재림시 구원받을 것이다.||(c) 골로새서, 에베소서, 롬 16:25 이하에서 한 때 감취었으나 이제는 드러나게 된 계시의 진전된 계획이 두 시대(아이온) 사이의 구별에서 알려진 것이다.|① 골 1:26에서 토 뮈스테리온은 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전체 구원 행동의 문맥에서 나온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구원 계획이 이제는 그리스도인들("그의 성도들"=토이스 하기오이스)에게 나타났고 열방들(이방인들) 가운데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선포를 통하여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뮈스테리온은 열방들 가운데(엔 휘민=엔 토이스 에드네신, 골 1:27; 참조: 고후 1:19) 선포된 그리스도이다. 그것은 지금 계시되고 있는 영광이 장차 완전하게 될 현재의 소망의 근거요 내용인 것이다(참조: 골 3:4). 골 2:2과 골 4:3에서 그리스도의 비밀도 역시 이와 같은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② 에베소서에서 뮈스테리온은 종말론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것, 따라서 현재의 실제를 나타낸다. 계시 계획은 두 세대의 시간적 연속보다는 오히려 뮈스테리온에 대한 지식 혹은 무지에 상응하는 우주적 영역들 사이의 구별과 관련된다. 엡 1:9에서 뮈스테리온은 엡 3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함께 모으시는 우주적 범위에서 하나님의 창조 의지와 구원 의지의 실현이다.|엡 3:3 이하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은 골 1:26이하에서 처럼, 이방인과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연합(엡 3:6)을 가리킨다. 이 뮈스테리온은 사도들과(그리스도인) 선지자들(골 1:26의 토이스 하기오이스의 보다 더 좁은 의미)에게 계시되었고, 선포를 위해 주어졌으며(엡 3:8), 교회(우주적 실체로서의)를 통하여 우주적 힘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의 구원 계획으로 알려진다.|엡 6:19의 "복음의 뮈스테리온"은 역시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선포를 간결하나 포괄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또한 엡 3:12로부터 파르레시아 "담대함"의 차용이 이를 보여준다).|엡 5:32의 뮈스테리온은, 본문에서 인용한 창 2:24의 직접적인 명백한 의미가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기자는 "비밀"을 교회론적으로 설명하여,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결속을 나타낸다.||③ 롬 16:25-27의 마지막 송영(2세기)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와 같은 전승에서 나타난다. 뮈스테리온의 계시는 시대를 넘어 발전한다. 그것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감취었다가'의 강조) 모든 민족에게 "선지자들[즉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글로 말미암아" 전해진다(참조: Luhrmann 123).||(d) 디모데전서에서 형식적이고 다소 의례적인 뮈스테리온의 용법은 특별한 행동 양식에 대한 '형언할 길 없는 궁극적 근거(뿌리, 기초)'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① 딤전 3:9에서 "믿음의 뮈스테리온을 가진"(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조: 딤전 3:13)이라는 어구는 실상 전해져 내려온 가르침(참조: 딤전 1:10의 "바른 교훈")-일반적으로 말하면 정통적인 가르침을 말한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② 딤전 3:16이하에서 '거룩한 삶의 비밀'(W. Foerster, TDNT Ⅶ, 182, 한글개역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 사건으로, 뒤따르는 찬양에서 그 성육신과 승귀와 그것의 선포를 우주적 관점에서 묘사되어 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e) 살후 2:7에서 적그리스도("불법의 사람", 살후 2:3)의 현재의 활동을 뮈스테리온 테스 아노미아스("불법의 비밀")라고 한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이 표현은 요세푸스의 B.J. i. 470에 문자 그대로의 병행구가 있고, 1QM 14:9; 1QH 5:36에 문자 그대로와 개념상의 병행구가 있다. 묵시적 관점에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심으로(살후 2:11) 지금은 아직 비밀리에 활동하지만, 파루시아 전에 공개적으로(참조: 살후 2:8) 나타나도록 허락 받을 것이며, 그 후에 결국 그리스도에게 멸망 당할 것이다.||(f) ① 계 10:7은 하나님의 뮈스테리온의 종말론적 실현에 대해 말한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나님이 그것을 (초기 그리스도교) 선지자들에게 알리셨다(참조: 암 3:7, 하지만 유앙겔리조가 아포칼륍토를 대신함). 그 내용 배후에 놓여 있는 것은(계 10:4-6에서 두루마리의 인과 천사의 맹세) 단 12:1-7이며 따라서 뮈스테리온은 죽은 자의 부활과 관련될 수 있다(kraft 149).||② 계 1:20에서 뮈스테리온은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감춰진 의미를 가리키며, 곧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③ 계 17:5에서 뮈스테리온은 바벨론으로 로마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④ 계 17:7의 "여자와 짐승의 뮈스테리온"은 로마에 대한 비밀에 싸인 언급이며(계 17:9; 계 17:18), 계 17:8에서 암시된 종말론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계 17:8에서 그 짐승은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계 1:4; 계 1:8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과 직접 대조됨) 것이라고 한다.||(g) 신약성경에서 뮈스테리온의 용법의 기본이 되는 것은 그 헬라 용어의 기본적인 의미, 즉 '말로 할 수 없는 것', 자연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신앙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것). 그 결과 이 용어는 뜻이 모호하며, 그 특정 내용에 관련한 의미의 파악은 각각의 문맥에 기초해야만 한다. 유대 묵시(감취었다가 드러난 비밀)의 개념적 전승이 여기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용어가 지니는 헬라 요소들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용어가 히브리어의 역어로 쓰일 때도 헬라적 요소가 보유되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Brown; H. Kramer; G. Bornkamm).
원시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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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이다, 단지 가까이 있는 것만 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뮈오파조(Epiphan.)는 뮈옵스(%250: 근시안의)에서 유래했으며, '근시안이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으리만큼 근시안이다, 단지 가까이 있는 것만을 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뮈오파조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1:9에만 나온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채찍에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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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자국, 타박상, 상처||#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몰로프(Aristot., Plut. 등)는 '채찍 자국, 부푼 것, 타박상, 상처'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8회 나오며,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창 4:23; 출 21:25; 사 1:6 등).||#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몰로프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2:24에 한번 나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사 52:5 인용). "저가[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느니"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곤욕과 극심한 고난(사 53장)을 나타내며, 그것으로 인하여 인간이 구원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부당하게 매질을 당했을 때 그들은 역설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종으로 받은 타격이 세계의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참조: C. Schneider).
훼방을 받다
mwmavomai
비난하다, 흠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모마오마이(Homer 이래)는 모모스($3470: 비난, 불명예, 치욕, 결점)에서 유래했으며, '비난하다, 흠잡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마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후서에 2회 나온다.||(a) 고후 6:3에서 직책에 관하여 '비난받는 것'을 나타낸다.||(b) 고후 8:20에서 연보에 관하여 '비난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mw'mo"
비난, 흠, 결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모스(Homer 이래)는,||(a) '비난' blame,|(b) '흠, 결점, 오점'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모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3회 나오며, 히브리어 뭄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신체적 결함과 흠(레 21:16 이하; 신 15:21; 아 4:7; 단 1:4), 정신적 결함(집회서 20:24)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모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13에 한번 나온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그들은 불의한 자들로서 죄악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들의 수성은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것에 표현된다. 그러한 행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오점이며 결점이다. 벧후 2:13의 마지막 부분은 '한편으로는 사악한 죄악에서 삶으로서 너희를 속였으며,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진실된 사람들인 것처럼 너희의 사랑의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다'고 해석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은 언제나 불순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에, 그들은 어느 여인을 보더라도 육욕에 가득 차 있는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깊이 얽매여 있기에 그들은 죄를 그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탐욕스러운 행위로 이미 죄의 욕망 안에서 그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저주 받은 아들들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으며, 다가올 세상 안에 심판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E. R. Fuhrman)
맛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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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다, 어리석게 행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모라이노(Eur. 이래)는 모모스($3470: 비난, 불명예, 치욕, 결점, 오점)에서 유래했으며, '어리석게 하다(만들다), 수동태로 '어리석다, 어리석게 행동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모라이노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바아르(야만적으로 또는 우준하게 행동하다, 사 19:11; 렘 10:14; 렘 51:17)과 카살(어리석다, 삼하 24:10; 사 44:25)의 니팔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모라이노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5:13(병행구 눅 14:3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맛을 잃게 된다는 묘사는 그 배경이 예수님의 약속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즉 복음은 마치 소금과 같이 결코 그 힘을 상실할 수 없다. 소금은 어떤 화학적인 변화를 받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이 소금의 맛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 이 말씀은 그 자체만을 보면 경고하는 말로 진술된 것, 즉 소금의 맛이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라는 것이다.||(b) 롬 1:22, "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사람의 자만하는 생각은 진실과 접촉함으로써 어리석은 것이 된다. 사람이 참 하나님을 잃었으므로 인간을 섬기는 '종교'를 발명했다.||(c)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라이트푸트(Lightfoot)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를 두 가지 방법으로 헛되게 하신다고 말한다.|첫째로, 세상의 지혜의 본질적 무가치함과 부패한 결과를 폭로하심으로,|둘째로, 세상의 지혜와는 반대가 되고 또한 그것을 승리하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헛되게 하신다.|그리하여 그들을 어리석게 하신다.|(참조: J. Goetzmann; G. Bertram).
미련하게 보임
mwriva
어리석음 foolish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리아(Soph., Hdt. 이래)는 모로스($3474: 우둔한, 둔감한, 어리석은)에서 유래했으며, '어리석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모리아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 2회 나오며, 집회서 20:31에서 "자기 지혜를 감추는 사람보다는 자기 어리석음을 감추는 사람이 더 낫다"고 했고 집회서 41:15에서도 같은 내용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리아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에만 5회 나온다.||(a)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참된 지혜 곧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계시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b)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계시에 관한 초기 형태들은 이성과 이해력을 통해서 인간에게 호소했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이 실패한 일에 관해 가데트(Godet)는 '인간의 이해력을 건전하게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은 다른 하나의 계시로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며, 이 계시는 어리석은 듯이 보인다'고 말했다. 인간의 어두워진 이성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는 수단으로써는 무익하다.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리석게 보이는 전도의 수단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다.||(c)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아데네에 있는 헬라인들의 반응에서 나타났듯이 그들은 도를 전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다(참조: 행 17:32). 그 한 쪽에게는 십자가는 무력(無力)의 표시로서 거리낌(스칸달론), 곧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다. 다른 한 쪽에게는 이 소식은 순전히 어리석고 실없는 소리이다(고전 1:23).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과 인간의 곤경에 이르시려고 길을 걸어 오셨다는 통찰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행위는 구원하시는 능력과 참된 지혜가 된다(참조: 고전 1:24-고전 1:25).||(d)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에 따라 육에 속한(문자대로는 '영혼이나 마음의') 사람과 신령한 사람이 나뉘어진다(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피조물적 삶의 한계에 얽매어 있다(참조: 고전 15:44-고전 15:45; 창 2:7 참조).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게서 어떻게 새로운 삶이 생겨나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참된 분별로 인도받는다.||(e)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에 관하여 말하는 것 까지도 헬레니즘의 관점에서는 풍습의 위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하는 사역에서 그는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세상의 판단을 개의치 않는 그는 세상의 지혜를 사실상 미련한 것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를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어리석은 것으로 역전시키었다.|(참조: J. Goetzmann; G. Bertram).
어리석은 말
mwrologiva
어리석은 말 foolish talk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모롤로기아(Aristot. Plut.)는 '어리석은 말'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모롤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엡 5:4에 한번 나온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혀로 인한 여러가지 죄에 대하여 경고한다. 이것은 모롤로기아 즉 희롱의 말과 어리석은 말을 포함하고 엡 5:6에 비추어 보건데 이단도 또한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어리석은
mwrov"
어리석은, 우둔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모로스(trag., X., Pla.)는 기본어이며, '어리석은, 우둔한'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맛없는 음식이나 겨울에 동작이 둔한 동물들, 혹은 고된 일로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었다.|모리아 ($3472: 어리석음)처럼 부적당한 행동, 사상 혹은 말을 나타낸다. 이것은 분별력의 결여는 물론 지식의 결핍과도 관련된다. 마음의 교란 상태(Soph., Aj. 1150)나 자신의 욕망에 의해 영향을 받아 행동할 경우의 인간의 행동에 대해(Eur. Hippolytus 966; Soph., Ant. 469f.)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능력에 대한 사상을 시사하고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모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7회 나오며, 히브리어 에윌(섣부른, 쓸모없는, 사 19:4), 나발 또는 네발라(어리석은, 우둔한 신 32:6; 사 32:5), 사칼(우준한, 렘 5:21), 사칼(통찰력을 갖다, 부정어와 함께, 시 94:8)의 역어로 사용된다. 모로스는 집회서에서 많이 발견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모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모레는 "미련한 놈"(마 5:22)이라는 욕으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참조: G. Bertam, TDNT Ⅳ 839 이하). '미련한'이라는 단어에 '불경한, 불신앙적인' godless(참조: 마 23:17; 유사한 예 아프로네스, 눅 11:40)이라는 의미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인 듯 하다.||(b) 모로스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비유에서 프로니모스($5429: 지혜로운, 슬기로운, 마 7:24-마 7:27; 마 25:1-마 25:13)의 반의어로써 사용되고 대조되어 있다.|① 마 7:27(참조: 마 7:24-마 7:27)에서 어리석음은 우둔함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죄다. 인간이 하나님의 제의를 거절할 때는 그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는 심판을 받는다. 순종은 신앙인의 신중한 사려분별이다.|② 마 25:2; 마 25:3; 마 25:8(참조: 마 25:1-마 25:13)의 열처녀 비유에서 요점은 준비이다. 미련한 처녀들의 잘못은 참여해야 할 것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며, 따라서 그것으로 인해서 심판에 이르게 된다. 구원을 경시하는 것은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다.||(c) 목회서신에서 모로스는 쓸데없이 사소한 것에 대한 무익한 변론이나 토론에 대한 경고에 사용되었다.|① 딤후 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줄 앎이라". 바울은 어리석고 무익한 변론을 경고한다. 오류와의 타협은 거절하는 한편 불필요한 엄격은 피해야 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이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과열된 정열을 논쟁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반대파들을 다루는데 온유와 사랑의 정신처럼 더 나은 무기는 없다. 딤후 2:24을 보면 이 점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J. G. Gould).|② 딛 3:9에서도 어리석은 변론에 대해 경고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d) 고린도전서에서 모로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어리석음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바울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그의 메시지와 설교는 어리석은 것임을 인정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미련함이 세상의 지혜보다 더 지혜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②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련한 것들을 선택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③ 그래서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표현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고전 4:10).|④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기초 위에, 이와 같이 인간의 문화와 급진적인 단절이 이루어진다. 세상은 강함과 약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것처럼 지혜인지 미련한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력이 없다. 지혜는 힘과 같이 인간의 눈에는 미련해 보이는 것으로 명백히 나타나는 하나님이 선물이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참조: G. Bertram; J. Goetz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