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232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모세
Mwseuv"
모세 Moses.||#1. 구약성경.||모세는 '물에서 건졌다'하여 그렇게 불렀다(출 2:10). 이 설명에 따른다면 그 이름은 '건져 내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마샤에서 유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세"라는 말이 애굽어라면 '아이'를 뜻하는 애굽어 '므스'(ms)나, 혹은 '물의 아들'(water-son)을 뜻하는 '모스'(mw-s)에서 파생된 말일 것이다. "모세"라는 말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으며, '건져 내다'(draw forth)라는 말은 아기 모세를 나일강가에서 발견된 작은 갈상자에서 끄집어냈다는 말이거나 또는 자연적인 출생을 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모세"라는 이름은 구약에서만 750번 넘게 나오나, 이 이름에 대한 자세한 내력의 설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전한 자였다. 성경 자체는 모세의 생애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의 연설에서 모세의 생애는 애굽에서, 아라비아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를 거쳐 인도하는 일에서 각각 40년씩 보낸 세 시기로 나누어져 있다(행 7:23; 행 7:30; 행 7:36).||(a) 초기 생애-40년.|①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다(출 2:1; 출 6:16-20; 민 26:59; 대상 6:3; 대상 23:13).|② 아론과 미리암의 동생이다(출 6:4; 출 6:7; 출 7:7; 출 15:20 등).|③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살이를 할 때 출생했다(출 1:8-출 2:10; 행 7:20).|④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석달을 숨겨 집에서 양육했다(출 2:2; 행 7:20; 히 11:23).|⑤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아기를 상자에 담아 하숫가에 내버렸다(출 2:3).|⑥ 바로의 딸이 아기를 구하여(출 2:5-9) 자기의 양자를 삼았다(출 2:10; 행 7:21).|⑦ 바로의 딸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 지었으며(출 2:10), 모세는 최상의 환경에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배웠다(행 7:22).|⑧ 그는 40세에 압제 받는 동족을 돌아볼 생각을 했다(행 7:23). 그리하여 그는 자기 동족을 치는 애굽인을 죽이고(출 2:11; 출 2:12; 행 7:24), 동족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말리다가 배척을 당했다(출 2:13; 출 2:14; 행 7:26-28).|⑨ 그는 바로의 낯을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주했다(출 2:15; 행 7:29).||(b) 미디안에서의 생애-40년.|① 그는 양치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주고(출 2:16; 출 2:17), 제사장의 환대를 받았다(출 2:18-20).|② 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출 2:21), 아들 둘(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낳았다(출 2:22; 출 18:2-4).|③ 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맡아 일했다(출 3:1).||(c) 마지막 40년의 시작. 호렙산에서 소명.|① 하나님께서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사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출 3:1-6).|② 하나님은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을 알리셨다(출 3:7-10).|③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했으나(출 3:13; 출 4:1; 출 4:10; 출 4:13) 하나님이 그를 도와 그 소명을 받아들이게 하셨다(출 3:12; 출 3:14-22; 출 4:4; 출 4:12; 출 4:14-17).||(d)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감.|① 모세가 장인과 작별하고 처자와 함께 애굽으로 떠났으며, 하나님께서 모세를 격려하셨다(출 4:21-23).|② 모세는 그의 아들을 할례시키는 것을 잊었으나 그의 아내로 인하여 그것을 바로 잡았다(출 4:24-26).|③ 그는 아론과 만났으며, 그들은 협력하여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하였다(출 4:27-31).||(e) 애굽에서의 활동.|①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을 사흘간 광야로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도록 청했다. 그러나 바로는 그 청을 거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부역을 가중시켰다(출 5:1-21).|② 모세는 절망하여 이 불가능한 임무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확신의 말씀을 주셨다(출 5:22; 출 5:23; 출 6:1-8).|③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했으며(출 6:9),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불평했다(출 6:10-12; 출 6:28-30).|④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격려하셨으며,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출 7:1-7). 그 때 모세가 팔십세, 아론이 팔십 삼세였다(출 7:7).|⑤ 바로 앞에서 열 가지 재앙을 행하였다(출 7:8-12장)|⑥ 유월절을 제정하여 지키었다(출 12:1-28; 출 12:43-49; 출 13:3-10). 이스라엘 백성의 가족들은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킴에 따라 장자를 멸하는 재앙을 면했다(히 11:28).||(f) 애굽에서 시내 광야까지.|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으며,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나왔다(출 13:19).|② 홍해를 갈라 건너고 바로의 군대를 몰살시키었다(출 14장; 사 63:12).|③ 그는 하나님 앞에 노래를 지어 여호와를 찬양했다(출 15:1; 출 15:1-18).|④ 그는 마라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를 던져 쓴 물을 달게 했다(출 15:22-25).|⑤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리게 하고, 맛사에서 반석을 쳐 물을 내고(출 17:1-7), 르비딤에서 지팡이를 치켜 듦으로써 아말렉에 승리했다(출 17:8-16).|⑥ 모세는 장인과 가족을 만났으며(출 18:1-12), 장인의 권고를 듣고 재판하는 자들을 세웠다(출 18:13-27).|⑦ 모세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시내 광야에 도달했다(출 19:1-2).||(g) 시내 광야에서의 활동.|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백성에게 고했으며(출 19:3-8), 여호와의 강림을 위해 백성을 준비시키었다(출 19:9-15).|②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으며(출 19:16-25), 모세는 무서워 떠는 백성을 안심시키었다(출 20:18-21).|③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으며(출 20-23장),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에게 고했다(출 24:1-3).|④ 모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언약서를 낭독하고 언약의 피를 백성에게 뿌려 언약을 세웠다(출 24:5-8).|⑤ 모세는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갔으며(출 24:12-16), 40일간 시내산에 있었다(출 24:18).|⑥ 모세는 성막의 모형과 성막 봉사에 대해 지시를 받고(출 25장-출 31:11), 십계명을 새긴 돌판들을 받았다(출 31:18).|⑦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알리고 백성을 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출 32:7-10), 모세가 백성을 위해 중재 기도를 드렸다(출 32:11-14).|⑧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시내산에서 내려 왔으며(출 32:15-18), 진에 가까이 이르러 우상 숭배자들을 보고 대노하여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랐다(출 32:19-20).|⑨ 모세는 금송아지의 일로 아론을 책망하고(출 32:21-24), 레위인을 시켜 백성을 도륙하게 하고(출 32:25-29), 백성을 위해 다시 중재 기도를 드리고(출 32:30-34), 진밖에 회막을 치고(출 33:7-11), 여호와께서 자기 민족과 함께 행하시도록 기도했다(출 33:1-3; 출 33:12-16).|⑩ 모세는 다시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으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반포하셨다(출 34:5-7). 모세는 백성을 위해 중재 기도를 드리고(출 34:8; 출 34:9), 40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출 34:27; 출 34:28).|⑪ 모세가 증거의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백성이 두려워 하여(출 34:29; 출 34:30)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었다(출 34:31-35).|⑫ 모세는 보살렘과 오홀리압 및 지혜로운 자들을 세워 성막 기구를 만들게 하고(출 31:1-11; 출 35:30-36:2; 출 36:8-39:31), 성막 역사가 끝나자 모세가 축복하고(출 39:32; 출 39:33; 출 39:43), 성막을 세웠다(2년 정월 일일)(출 40:1-33).|⑬ 모세는 제사장 위임식을 거행하고(레 8장)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였다(레 9장).|⑭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으로 인해 제사장 직무를 규제하였다(레 10장).|⑮ 레위인을 성별하고(민 3:5-51; 민 8장), 2년 정월 십 사일에 유월절을 지키고(민 9:1-14), 이스라엘 자손을 계시하고(2년 이월 일일; 민 1장), 각 지파의 진의 위치와 행군시의 위치를 정하고(민 2장), 시내 광야를 출발하였다(2년 이월 이십일, 민 10:11; 민 10:12).||(h)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① 시내 광야에서 출발했으며(민 10:11-18), 모세가 장인의 아들 호밥에게 정찰 및 안내를 간청했으나 거절 당했다(민 10:29-32).|② 다베라에서 백성의 원망에 대한 징벌로 일어난 불을 꺼지게 했다(민 11:1-3).|③ 식물에 관한 백성의 불평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백성의 원망을 듣고 하나님께 불평했으며(민 11:10-15), 하나님은 그에게 장로 70인을 세우게 하여 짐을 함께 지게 했다(민 11:16-30).|④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고 해서 그를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 역시 하나님의 엄한 책망을 받았으며, 특히 미리암은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문둥병에 걸리는 징계를 받았다(민 11-12장). 모세는 미리암을 위해 간구했다(민 12:13-15).||(i)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활동.|①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정탐군으로 보내었고(민 13:1-24; 수 14:7), 정탐군들이 돌아와 보고했다(민 13:25-33).|② 백성이 대다수의 정탐군들의 보고를 받고 자극을 받아 불신앙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돌로 치려 했다(민 14:1-10).|③ 하나님이 반역적이고 불신앙적인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시키고자 하자 모세는 백성을 위해 중재 기도를 드렸다(민 14:13-19).|④ 이 때에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정치적 지도력에 도전하였고 또한 고라와 그의 지지자들도 아론과 그의 가족의 제사장 지위에 대항하였다. 이러한 반역 과정에서 14,000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 지파를 나타내는 12개의 지팡이들 가운데 오직 레위 지파의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었으며, 이로서 아론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에 의해 안전하게 확립되었다(민 16장; 시 106:16-18; 민 17장).|⑤ 모세는 므리바 물에서 반석을 두번 침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상실했다(민 20:10-12; 시 106:32; 시 106:33; 신 1:46).|⑥ 이스라엘 자손은 오랫동안 가데스에 거하였으며(신 1:46),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으로 통과하기를 간청했으나 거절을 당했다(민 20:14-21).||(j)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땅까지.|①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넜다(신 2:13-15).|② 호르산에서 아론의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아론의 임종을 지켜 보았다(출애굽 이후 40년 5월 1일, 민 20:22-29; 민 33:38; 민 33:39).|③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므로, 많은 사람이 불뱀에 죽게 되었을 때 모세는 기도하고 놋뱀을 만들어 세워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놋뱀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치유함을 받게 하였다(민 21:4-10).|④ 모세는 아모리 왕 시혼(민 21:21-32; 신 2:24-37)과 바산왕 옥과 싸워 승리했다(민 21:33-35; 신 3:1-11).||(k) 모압에서의 활동.|① 이스라엘 자손이 음행과 우상 숭배로 인해 염병으로 죽었으며(민 25장) 염병 후에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했다(2차 인구조사)(민 26장).|②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에 대한 요구를 허락했다(민 27:1-11).|③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셨고(민 27:12-14),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웠다(민 27:15-23).|④ 미디안 족속과 싸워 승리를 하고(민 31장),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달라는 요구를 허락했다(민 32장; 수 12:6; 수 13:8-31).|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이 얻을 기업과 해야할 일을 지시 받았다(민 33:50-35장).|⑥ 슬로브핫의 딸들을 지시하여 요셉 지파 자손에게 시집가게 했다(민 36장).|⑦ 모세가 백성 앞에서 율법을 설교했으며(출애굽 후 40년 11월 1일, 신 4:41-43), 모세의 두번째 설교(신 4:14-26장), 모세의 세번째 설교(신 27장-30장)가 있었다.|⑧ 모세는 부지 중에 살인한 자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요단 동편에 도피성을 설치했다(신 4:41-43).|⑨ 모세는 여호수아를 격려하고(신 31:7; 신 31:8), 율법을 책에 기록하여 제사장들에게 맡기고(신 31:9; 신 31:24-26), 이스라엘 총회에서 증거의 노래를 낭독하고(신 31:30; 신 32:1-43), 이스라엘 자손을 각 지파대로 축복하고(신 33장),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신 34:1-4), 120세에 모압 땅에서 죽어 장사되었다(신 34:5-7).|⑩ 모세가 죽을 때 기력이 쇠하지 아니했다(신 34:7).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30일간 애곡 했다(신 34:8). 이렇게 하여 그의 지상 생애를 마치었다(참조: ZTB; PEB).||#2. 신약성경.||모세의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80회 나온다. 신약에서 모세는 가장 자주 언급되는 구약의 인물이다. 예수님은 모세 같은 선지자로 나섬으로써 당시의 유대교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는데,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모세의 해석가가 아니라, 그와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임하심을 위해 가르치며 살아가는 계시자였다.||(a) 마가. 모세를 율법 수여자로 인식한다(막 1:44). 그의 율법은 사두개인에 반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확립하였고(막 12:19; 막 12:26), 서기관의 전통에 반하여 출 20:12의 계명을 수립했다(막 7:10; 막 7:14 이하에서 예수님은 그의 새로운 권위를 나타냄). 변모에서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한다. 그들은 둘 다(예수님이 지금 그러하듯) 그들의 임무 때문에 자신의 백성의 증오 아래 고통을 받았다. 베드로는 하늘의 모습을 오해하여 지상의 것으로 잘못 생각했으며, 종말론적인 세 인물, 즉 모세와 엘리야와 메시야가 여기서 연합되었으므로 광야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비교: 요 1:21; 요 1:25; 참조: CD 9:11, 4Qtest).||(b) 마태는 예수님과 모세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찾아본다. 출생의 이야기(마 2:1-23)는 모세 전통의 세부와 그 형태, 그리고 그들이 피했던 장소 애굽을 언급하고 있다(참조: 마 2:20과 출 4:19; 마 1:15과 호 11:1). 예수님은 모세가 시내에서 한 것처럼 사십일 간을 광야에서 음식과 마실 것 없이 머물렀다(마 4:1 이하; 참조: 출 34:28).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모세처럼 축복과(마 5:3 이하) 저주를(마 23:13 이하) 내리는 새로운 율법 수여자이다(참조: 마 5:1; 시내에서 주어진 율법, 출 19장, 출 20장). 모세식으로 가르치는 서기관들의 직책은 인정되었으나(마 23:2 이하), 동시에 각자는 예수님의 인도 아래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마 5:17-20).||(c) 누가는 예수님과 모세의 연관을 선지자의 기능으로 말한 것으로 본다. 행 3:22과 행 7:37은 신 18:15을 인용하고 있다: "나(모세)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모세가 말과 행동 모두에 있어 능했던 것처럼(행 7:22)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능한 선지자였다(눅 24:19; 참조: 눅 7:16; 눅 4:24; 출 13:33). 모세처럼 예수님께서도 선택된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과 영을 나누어 주었는데(눅 10:1; 눅 10:17 이하), 그들은 칠십인이었고(혹은 72인) 후에는 모세를 능가하여 전 교회에 나누어 주었다. 모세가 고통을 겪은 것처럼(행 7:25 이하),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배자, 구속자로서 보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와 의절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에 따라서 대제사장과 관원들에 의해 죽음에 처해져야 했으며,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나서 통치자가 되게 되어 있었다(눅 24:27; 눅 24:44; 참조: 행 26:22; 행 28:23). 따라서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나 다시 사신 자를 믿지 않을 것이다(눅 16:29-31). 스데반과(행 6:11 이하) 바울(행 21:20 이하; 참조: 행 18:18; 행 21:24 이하)이 모세의 "관습"에서 퇴보하여 가르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동의와 더불어, 유대인이 아닌 자들에게만 할례의 요구에서 면하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행 15:1-21; 참조: 행 16:3). 그러나 예수님이 선물로 주신 신앙의 의로움은 모세의 율법이 가져올 수 없는 것이었다(행 13:38).||(d) 바울은 모세와 그리스도를 서로 대비되는 자리에 놓고 있다. 율법 수여자로서(롬 5:14; 고전 9:9) 모세는 오직 문자 혹은 의문(gramma)만을 준다-"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 10:5). 바울은 이런 방법으로 모세의 "죽음의 직분"을 표현한다. 그것은 오직 사라지는 영광(고후 3:7; 참조: 갈 3:17 이하)만을 지니고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신앙으로 이르는 의의 직분"은(고후 3:9) 영(프뉴마)과 영원한 영광을 지니고 있다(출 3:29 이하의 독자적 해석). "직분"은 유대회당과 교회를 나타낸다. 오늘까지 유대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다"(고후 3:15). 그러나 새로운 이스라엘은 주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그 모든 것은 영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후 3:17 이하). 만일 이스라엘이 주님께 그의 마음을 연다면 그 수건이 벗겨질 것이며(고후 3:16), 모세는 하나님 의의 증인으로 인식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열성에 근거해서가 아니라(롬 9:15 이하) 단지 그의 언약에 근거해서 선택하신다: 이방인들을 부르신 것은 이스라엘의 율법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떤 특혜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롬 10:19). 모세에게 속한 세례(침례)는('예수님께 속한 세례'와의 유사점 위에서 만들어진 것) 자연법이 아니라 언약이었다. 세례(침례)를 받은 자들은 진실로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나, 그들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므로 멸망하게 되었다(고전 10:2-5).||(e) 요한은 유대교에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예수님의 교훈은 그들 자신의 연구에서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요 7:15 이하). 하나님의 뜻-개인의 계명이 아니라 첫 계명-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교훈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삶을 율법 자체가 요구하듯, 하나님과 그의 계시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율법의 의문(문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었다(요 7:19). 이렇게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능가했다(요 1:17). 그러나 그것은 모세와 같은(신 18:15; 신 18:18) 선지자에게 증거하기 때문에(요 5:39; 요 5:45 이하)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을 책망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약속된 선지자로 옳게 인정하지만(요 6:14), 그를 왕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있어 그들은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했다(요 18:36). 백성의 지도자들은 자신을 모세의 제자라고 불렀으나(요 9:28), 진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계시자가 오셨고(요 1:17) 그는 진정한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준 떡을 먹은 자들은 죽었다(요 6:32-35; 요 6:48-51). 모세는 광야에서 백성들의 지상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놋 뱀을 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들리웠을 때",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 3:14 이하).||(f) 히브리서는 모세가 보여준 원형이 그리스도 안에서 뛰어나고 완전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예수님은 성자로서 하나님의 높은 하늘에서 오셨으며, 모세처럼 하나님의 집의 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충성은 모세보다 더 크다(히 3:2 이하).|예수님은 모세가 한 때 보았고, 지상에 그 모형을 지으려 했던 하늘의 성소의 대제사장이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그리스도의 교회는 불과 연기와 번개와 뇌우로 모세를 두렵게 하던 시내로 인도되지 않는다(히 12:18-19). 그것은 확신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을 거절한 자들에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교회는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도 말아야 한다(히 12:25). 모세는 히 11:23 이하에서 고난 가운데서 조차 믿음의 본보기로 그려져 있다. 히 3:16에서 그는 애굽에서 나온 지도자로 묘사된다: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그리고 히 7:14에서 율법 수여자로 상기되고 있다: "히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g) 신약성경에는 세 가지 독립된 언급들이 더 있다. 계 15:3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이 마지막 날에 성도들을 고난으로부터 건져내는 일의 원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유 1:9은 모세에 관한 성경의 기록과, 사탄과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놓고 싸웠다고 말한다.|딤후 3:8에서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 설화에 의하면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한 기적을 흉내 낸 애굽의 술객이었다(SBI 660 이하). 그들의 이름은 출 7:11의 기사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참조: H. Seebas).
나앗손
Naasswvn
나손 Nahshon(인)||#1. 구약성경.||나앗손은 히브리어 나손(점술가, 마법사)의 헬라형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나손'으로 음역되었다.||나손은 암미나답의 아들로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으며(민 1:7; 민 2:3; 민 10:14), 아론의 처남이며(출 6:23), 다윗의 선조이다(룻 4:20-22).||#2. 신약성경.||나앗손은 신약성경에서 3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나온다(마 1:4; 눅 3:32). 나손은 유다 지파이고 다윗의 선조이므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낙개
Naggaiv
낙개 Naggai(인)||낭가이는 히브리어 나가(빛나다, 비추다)에서 유래했으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낙개'로 음역되었다.||낭가이는 신약성경에서 눅 3:25에 한번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사렛
Nazarevq
나사렛 Nazareth(지)||나사렛은 하부 갈릴리의 마을로 언덕 위에 건설되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지역에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는 3일길의 거리였으며 디베랴에서는 8시간 걸리는(혹은 그 이하) 거리였다. 이 나사렛은 탁월한 인물을 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요 1:46) 구약성경에서나 요세푸스의 기록에서나 탈무드(만일 탈무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붙여준 벤 네체르라는 호칭에서 본 단어를 인지할 수 없다면)에서도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비천하고 궁벽한 마을이다. 이곳의 현재의 명칭은 엔 나자라흐이다.||나자레드는 신약성경에서 12회, 사복음서에 11회, 사도행전에 1회 나온다.||(a) 이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부모가 살았으며(마 2:23), 마리아가 천사의 고지를 받았다(눅 1:26-눅 1:38).|마리아는 정혼한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으며(눅 2:4; 눅 2:5), 예수님이 태어난 후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마 2:23; 눅 2:39).||(b) 예수님은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나사렛에 사셨으며(눅 2:29-눅 2:51; 눅 4:16),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시고(막 1:9),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셨다(눅 4:16-눅 4:30).||(c) 무리가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마 21:11)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요 1:45; 행 10:38)라고 불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나자레노스
Nazarhnov"
나사렛 사람 Nazarene.||3480 $3480 나조라이오스|나사렛 출신의 from Nazareth||(a) 마가복음에 의하면 헬라어 나자레노스($3479)란 명칭은 귀신들에 의하여(막 1:24), 무리들(막 10:47)과 비자(막 14:67),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에 있는 천사(청년)에 의하여(막 16:6) 예수님께 적용되었다. 이 단어는 또한 눅 4:34(=막 1:24)과 눅 24:19(엠마오 제자들)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정상적으로 나조라이오스($3480)를 채택한다(마 26:71; 눅 18:37; 요 18:5 이하; 요 19:19; 행 2:22; 행 3:6; 행 4:10; 행 6:14; 행 22:8; 행 26:9). 그 의미에 관한한 마태(마 2:23; 마 21:11)와 누가(행 10:38) 그리고 요한(요 1:45)에게는 그 단어들이 예수님이 갈릴리의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신약성경에서는 이 명칭을 '예수'란 이름 없이 우리 주께 결코 적용시키지 않으며, 사람을 그가 태어난 고향과 일치시키는 것(예컨대, 기스칼라의 요한)은 흔한 유대적 관습이었다. 이 두 단어들과 갈릴리가 지리적 연관이 있다는 것은 마 26:69과 마 26:71, 그리고 행 24:5과 행 1:11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입증되고 있다. 헬라 지역내의 기독교인들을 나타내는 용어로서(행 11:26), 나조라이오스는 매우 일찍 사라지고 크리스티아노스(행 11:26)가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유대지역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지속되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노츠리라는 단어 가운데 존속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동 다른 곳에서도 기독교인들을 뜻하는 비슷한 발음의 용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유대인 기독교인이나 유대 전통의 직접적인 영향에 반드시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의 교회들이 나조라이오스를 신약의 헬라어로부터 그들 자신의 언어 가운데로 차용어로 받아들여 비기독교적 환경으로 전수시킨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b) 언어학적 연관성. 예언에서 메시야로 칭호가 주어진 나조라이오스에 대한 언급(마 2:23)은 사 11:1과 이와 유사한 구절에서 '가지'(네체르)와 관련시켜 자주 취급되어져 왔으며 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그의 성격상 나실인(나지르, 삿 13:7 참조)에 관련되어 언급되어 왔다. 다른 옛날의 제안(Jeromen, in loc.)은 마태복음서가 경멸받는 메시야(요 1:46 참조)에 대해 말하는 구절에서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구약성경에서 고유 명사 나사렛은 발견하지 못하지만 그것과 동일한 히브리어 네체르(어린 가지)가 있다. 삿 13:5; 삿 13:7에 하나님의 성별한 자를 뜻하는 '나지르'는 사 11:1에서 "이새의 ... 뿌리에서 나는 한 가지" 네체르와 동일시되며 사 53장에서 그는 멸시를 받는 자로 예언되었다. 예수님이 나사렛 땅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예언의 성취를 본 것은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별하신 자인 동시에 다윗의 가문에서 싹튼 메시야로 멸시를 받는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이에 관한 좋은 주석은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물은 수사학적인 질문이다. 어떻든 모든 중인에게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비천하다는 표시이다. 요한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이해했으며 틀림없이 그것을 강조했는데, 그의 기사에서 로마의 집정관이 주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새긴 글에서 예수님을 나조라이오스로 묘사한 것이 나온다(요 19:19). 여기서 마침내 그것을 읽는 이는 주변 세상 가운데, 아무런 지위도 특권도 갖지 못한 장소에서 예수님이 왔다는 사실이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낸 주장과 너무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참조: NBD; K. H. Rengstorf).
나조라이오스
Nazwrai'o"
나사렛 출신의 from Nazareth||3479 $3479 나자레노스|나사렛 사람 Nazarene.||(a) 마가복음에 의하면 헬라어 나자레노스($3479)란 명칭은 귀신들에 의하여(막 1:24), 무리들(막 10:47)과 비자(막 14:67),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에 있는 천사(청년)에 의하여(막 16:6) 예수님께 적용되었다. 이 단어는 또한 눅 4:34(=막 1:24)과 눅 24:19(엠마오 제자들)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정상적으로 나조라이오스($3480)를 채택한다(마 26:71; 눅 18:37; 요 18:5 이하; 요 19:19; 행 2:22; 행 3:6; 행 4:10; 행 6:14; 행 22:8; 행 26:9). 그 의미에 관한한 마태(마 2:23; 마 21:11)와 누가(행 10:38) 그리고 요한(요 1:45)에게는 그 단어들이 예수님이 갈릴리의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신약성경에서는 이 명칭을 '예수'란 이름 없이 우리 주께 결코 적용시키지 않으며, 사람을 그가 태어난 고향과 일치시키는 것(예컨대, 기스칼라의 요한)은 흔한 유대적 관습이었다. 이 두 단어들과 갈릴리가 지리적 연관이 있다는 것은 마 26:69과 마 26:71, 그리고 행 24:5과 행 1:11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입증되고 있다. 헬라 지역내의 기독교인들을 나타내는 용어로서(행 11:26), 나조라이오스는 매우 일찍 사라지고 크리스티아노스(행 11:26)가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유대지역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지속되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노츠리라는 단어 가운데 존속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동 다른 곳에서도 기독교인들을 뜻하는 비슷한 발음의 용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유대인 기독교인이나 유대 전통의 직접적인 영향에 반드시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의 교회들이 나조라이오스를 신약의 헬라어로부터 그들 자신의 언어 가운데로 차용어로 받아들여 비기독교적 환경으로 전수시킨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b) 언어학적 연관성. 예언에서 메시야로 칭호가 주어진 나조라이오스에 대한 언급(마 2:23)은 사 11:1과 이와 유사한 구절에서 '가지'(네체르)와 관련시켜 자주 취급되어져 왔으며 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그의 성격상 나실인(나지르, 삿 13:7 참조)에 관련되어 언급되어 왔다. 다른 옛날의 제안(Jeromen, in loc.)은 마태복음서가 경멸받는 메시야(요 1:46 참조)에 대해 말하는 구절에서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구약성경에서 고유 명사 나사렛은 발견하지 못하지만 그것과 동일한 히브리어 네체르(어린 가지)가 있다. 삿 13:5; 삿 13:7에 하나님의 성별한 자를 뜻하는 '나지르'는 사 11:1에서 "이새의 ... 뿌리에서 나는 한 가지" 네체르와 동일시되며 사 53장에서 그는 멸시를 받는 자로 예언되었다. 예수님이 나사렛 땅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예언의 성취를 본 것은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별하신 자인 동시에 다윗의 가문에서 싹튼 메시야로 멸시를 받는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이에 관한 좋은 주석은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물은 수사학적인 질문이다. 어떻든 모든 중인에게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비천하다는 표시이다. 요한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이해했으며 틀림없이 그것을 강조했는데, 그의 기사에서 로마의 집정관이 주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새긴 글에서 예수님을 나조라이오스로 묘사한 것이 나온다(요 19:19). 여기서 마침내 그것을 읽는 이는 주변 세상 가운데, 아무런 지위도 특권도 갖지 못한 장소에서 예수님이 왔다는 사실이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낸 주장과 너무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참조: NBD; K. H. Rengstorf).
나단
Naqavn
나단 Nathan(인)||#1. 구약성경.||나단은 히브리어 나탄(선물)의 음역이다. 구약성경에서 '나단'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세 사람인데, 이 나단은 '다윗의 아들 나단'을 언급한다.||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며, 솔로몬의 형제이다(삼하 5:14; 대상 3:5; 대상 14:4). 나단은 미래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사건에 개입한 사람들의 조상으로 언급되었다(슥 12:12).||#2. 신약성경.||나단은 신약성경에서 눅 3:31에 한번 나오며,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되었다: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나다니엘
Naqanahvl
나다나엘 Nathanael(인)||나다나엘은 히브리어 네단엘(하나님이 주셨다)의 음역이며,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한다.||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이며, 일반적으로 '바돌로매'와 동일한 인물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요 1:45[46]에서 그가 빌립과 관련되어 있듯이 마찬가지로 마 10:3; 막 3:18; 눅 6:14에서 바돌로매가 빌립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 '나다나엘'은 그의 개인적 이름이었으며 '바돌로매'는 그의 부친으로부터 유래한 호칭이었다. 그러나 행 1:13에서는 도마가 빌립과 바돌로매 사이에 놓여 있다.||나다니엘은 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으로 요한복음에만 6회 나온다.|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나사렛 예수님에 대한 전도를 받았다(요 1:45). 나다나엘은 처음에 나사렛에게서 메시야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회의적이었다(요 1:46).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 왕으로 고백하고(요 1:49),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갈릴리 가나 사람이었다(요 2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B).
그러하다
naiv
확실히, 예, 그렇다.||나이(Homer 이래)는 '단언' 또는 '환언, 동의'를 나타내는 불변화사이다.||(a) 나이는 다른 사람의 질문('예, 그렇다'의 뜻, 마 9:28; 마 13:51; 마 17:25; 마 21:16; 요 11:27; 요 21:15; 요 21:16; 행 5:8; 행 22:27)이나 화자 자신이 제기한 질문('확실히'의 의미로, 마 11:9; 병행구 눅 7:26; 부정 의문문과 함께, '물론'이란 의미로, 롬 3:29, "진실로")에 대답할 때 사용된다.||(b) 나이는 또한 다른 사람의 진술에 동의할 때나('확실히, 분명히', 마 15:27; 계 14:13; 계 16:7; 계 22:22TR도 고려해야 함), 아무개 자신의 진술을 강조하여 반복할 때 사용된다('예, 실로, 진정으로': 마 11:26; 병행구 눅 10:21; 눅 11:51; 눅 12:5; 몬 1:20; 선행하는 요청 뒤에서, 빌 4:3).||(c) 나이는 엄숙한 선언에서 사용될 수 있다.|① 계 1:7, "[그러하리라] 아멘.",|② 계 22:20, "[진실로] 속히 오리라".||(d) 나이는 언어 유희에서 우($3756)와 함께 사용된다.|① 약 5:12의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는 아무개의 진술이 진실되다면 맹세의 확언은 불필요하다는 뜻이다.|② 마 5:37에서도 동일한 명령이 나온다: "오직 너희의 말은 [옳다][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즉 (맹세의) 언명은 분명하고 명확한 예나 아니오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참조: P. Minear).|어떤 학자들 중에는 이 구절을 약 5:12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는 자들도 있다. 바울은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흐리멍텅하게 "예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고후 1:17) 없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의 한 말은 "예"하고 동시에 "아니라" 함이 없다(고후 1:18). 복음은 "예와 아니"가 함께 전파되지 않는다(고후 1:19).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에 "예"이다(고후 1:20). 그는 저들에게 믿을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참조: F. Hahn; R. Bultmann; Walter Bauer; J. H. Thayer).
나이만
Naimavn
나아만 Naaman||수리아 군대의 지휘관(왕하 5:1)이다. 신약성경에서 눅 4:27에 한번 나온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인
Nai?n
나인 Nain(지)||나인은 소헬몬(Little Hermon)의 북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갈릴리의 읍이며, 현대는 '네인'(Nein)으로 매우 적은 수의 가구들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을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같은 이름의 마을과 혼돈하지 않아야 한다.||나인은 신약성경에서 눅 7:11에 한번 나온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예수님은 나인에서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감실
naov"
성전 temple, 신사, 신당 shrine, 성소 sanctuar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나오스(Homer 이래)는 나이오(%4: 거주하다, 살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는 단지 거주지, 특히 신의 거주지, 성전(Homer, Ⅰ1, 1, 39; Od. 6, 10, 12, 346), 혹은 이와 같은 곳의 가장 깊숙한 지역을 의미하였다.|헬레니즘 시기에는 신들의 거주지로서 하늘도 나오스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본래는 신들을 위한 (장엄한) 건물을 언급하는 말이다.|성전을 의미하는 말로 두 가지 단어가 사용된다. 나오스는 보다 전문적으로 성소를 가리키는 말이며, 히에론($2411)은 '거룩한'을 뜻하는 형용사 히에로스($2413)의 중성으로서, 명사로 사용되어, 예루살렘 성전을 이루고 있던 여러 건물들을 통털어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나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1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헤칼(왕궁, 성전; 55회), 그리고 울람(성전 낭실, 5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주로 예루살렘 성전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시 45:15에서는 왕궁을 나오스로 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나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45회 나오며, 주로 성전이나 성소를 가리킨다.||(a) 복음서.|① 마 23:16; 마 23:17; 마 23:21에서 성전이나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는 습관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성전과 성전의 금 사이를, 제단과 그 위에 있는 예물의 사이를 궤변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금은 성별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필경 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무엇으로 간구하든지 하나님은 그 간구를 받으신다. 금과 집, 제물과 제단, 성전과 하나님, 천국과 하나님은 모두 관계가 있다. 따라서 특수한 것을 지칭하지 않고서도 맹세가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심으로써 그와 같은 궤변을 완전히 파기하셨다.|② 마 23:35에 기록된 대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살해하는 것은, 이곳이 도피 구역이므로(출 21:14; 왕상 1:51; 왕상 2:28이하). 특별히 가증스러운 행위이다. 본문에 언급된 사가랴는 아마도 여호야다의 아들일 것이다(대하 24장).|③ 재판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성전을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신 죄로 고발을 당하셨다(막 14:58; 막 15:29; 마 26:16; 마 27:40; 행 6:14; 요 2:19; 요 2:21; 참조: 행 6:13; 행 6:14). 막 14:58에 의하면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거짓 증거로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현존하심과 거룩하심을 표현한 것으로서 여겨졌던 성전에 대하여 소위 예수님께서 취한 무례함이, 그의 신성 모독이라 할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여 끌어내어졌다.|한편 막 15:29에서는 이 말이 십자가 밑에 있는 조롱자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으며, 그 비밀스런 의미가 계시된다. 즉 이는 예수님의 육체적인 몸을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옛 창조가 소멸되기 이전에 있을 죽음과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새 창조에 관한 일이다. 여기에 손으로 지은 성전과 종말론적 공동체의 놀라운 새 성전이 대비되어 있다.|④ 마태와 요한은 예수님의 육체와 능력을 강조한다. 요 2:19 이하의 난해한 예수님의 말씀이 고발 근거가 되었다. 이 말씀은 인자의 도래와 성전을 결부시키고, 예수님께서 메시야 성전의 건축자라고 주장한다(교회는 스스로를 가리켜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모시고 있는 메시야적 공동체라고 부른다).|마 27:5에 의하면 유다는 목매어 죽기 전에 은 삼십을 성전으로 가져왔다. 여기에서 나오스는 성전 경내를 의미한다.|막 15:38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나타난 표적들 가운데 하나는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b)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두 책에서는 히에론이 나오스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① 누가는 성전을 구원사의 무대에 올려놓고 있다. 예수님 이전의 시기는 또한, 누가복음 1장이 사가랴에 대한 기사로 예증하고 있듯이 성전에서 제사장이 예배를 올리던 시기였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여러번 그 곳에 갔었던 것(참조: 눅 20-21장)이 사실이다. 누가복음의 경우 나오스는 초기 기사에만 나온다(눅 1:9; 눅 1:21; 눅 1:22).|② 사도행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행 7:48 RT에서 하늘의 성전과 지상의 성전을 구별한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 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참조: 사 66:1).|③ 행 19:24에서 데메드리오가 만든 이방 성소의 작은 모형인(은감실)에 대해 나오스를 사용한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c) 바울 및 사도의 서신들.|① 바울은 나오스를 언급할 때, 매우 분명히 유대교의 전통에 근거를 둔다. 구원받은 공동체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고전 6:19; 고후 6:16).|고전 6:19이하의 중요한 암시는 구약의 의례법이며,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것은 가증한 것이다(왕하 21:7; 왕하 23:6; 단 9:27). 고후 6:16이하에서는 이를 더욱 분명히 언급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② 살후 2:3; 살후 2:4에 의하면, 무법한 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유린하려고 할 것이다 이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역사적 성전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토대로 하고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하는 공동체는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거나(엡 2:20), 베드로전서의 표현대로 구성원들은 그 집의 산 돌이고 건축자들이 버린 돌 곧,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인 영적 집이 되어 간다(참조: 벧전 2:5). 갈 2:9의 기둥 개념은 위와 같은 비유에 속할 것이다(계 3:12).||(d) 요한계시록.|요한계시록에서 나오스는 자주 역사적 성전을 가리킨다(계 11:1).|계 7:15에서는 깨끗하게 성화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봉사한다.|계 11:19에서는 하늘의 성전이 열린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4:15; 계 14:17에서는 천사들이 성전에서 나오다. 계 15:8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연기가 성전에 가득하다.|계 16:1에서는 성취의 말씀이 성전에서 전해진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위엄이 거하는 처소이며 그의 명령이 나오는 출처이다.|그 성전은 계 3:12에서처럼 공동체일 수도 있다.|계 21:22에서는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성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백히 언급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공동체의 성전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공동체와 성전이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신다"(계 21:3). 그러므로 언약의 중심 개념인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W.von Meding; O.Michel).
나훔
Naouvm
나훔 Nahum(인)||나움은 히브리어 나훔(위로)에서 유래했으며, 누가복음의 계보에 나오는 예수님의 조상 중 한 사람이다: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눅 3:2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드
navrdo"
나드유, 나드 향유.||명사 나르도스는 한글 개역성경에 '나드'로 번역했다. 나르도스는 '발레리아나'(Valeriana, 쥐오줌풀) 속(屬)에 속하는 향기로운 동인도 산 식물의 줄기에서 채취한 값비싼 향유이다. 이 식물은 날카로운 모양의 잎과 붉고 탐스러운 꽃이 곧은 줄기에 달려 있으며, 고대인들은 매우 값진 향유를 준비할 때 이 즙을 사용했다.||#1.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나르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아가서에 3회 나오며, 히브리어 네르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아 1:12; 아 4:13-14에서 나르도스는 몰약과 유향과 육계와 다른 향료 식품들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나르도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만 나온다.||(a) 막 14:3에서 예수님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나드 향유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b) 요 12:3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에서 나드 향유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깃수
Navrkisso"
나깃수 Narcissus(인)||나르킷소스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나깃수'로 음역되었다. '나르킷시아니'(Narcissiani)와 같은 이름으로서 아그립바에 의해 사형 당한 이런 이름을 가진 유명한 자유인이 한 사람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의 권속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A. T. Robertson).||신약성경에서 롬 16:11에 한번 나오며, 바울이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을 언급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