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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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infant, 미성년자 min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네피오스(Homer 이래)는 분리할 수 없는 부정접두사 네(%58)와 에포스($2031: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유아, 아이 미성년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의학에서 여러 단계의 어린 아이들에 대해 사용되었고, 또한 1세에서 10세 사이에 죽은 어린아이들의 묘비에서 발견되었다.|한편 이 단어는 '어리석은, 서투른, 미숙한, 어린애 같은'을 의미하며, 반드시 어린 아이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일지라도 행동이 미숙하거나 어리석게 부(富)를 신뢰하는 사람, 또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거나 철학자들의 충고를 경청하지 않는 사람들은 네피오스이다.|인간들에게 세상에 관한 참된 지식과 이성의 삶을 전달해주고자 했던 헬라 철학자들은, 인생의 경험이 없는 무지각한 사람들을 네피오스(바보)라는 신랄한 풍자와 함께 무시하였다(Hesiod).||#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네피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히브리어 요네크(갓난 아이, 젖먹이; 사 11:8), 올랄 또는 올렐(어린아이; 삼상 15:3), 탑(어린아이; 겔 9:6), 나아르(소년; 잠 23:13)를 번역한다. 이러한 문맥들에서 네피오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연약함, 무력함', 그리고 성인에 대한 어린이의 복종 등이다(애 1:5). 호 11:1은 이스라엘의 초기 단계(즉 출애굽; 참조: 출 2:17)를 그 백성의 유년기로 묘사하였다. 가나안에서의 배교의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지극한 충성심으로 여호와를 따랐다.||(b) 네피오스는 페티(어리석은, 단순한)를 번역하여, 그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나타낸다.|① 네피오스는 시편에서 그것이 우둔한 자를 나타낼 때 좋은 의미를 지닌다. 우둔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시 19:7), 보호하시며(시 116:6), 깨우쳐 주시는(시 119:130) 의로운 자이다. 70인역본은 이러한 구절들에서 이 단어를 채택하여 변형시킴으로써, 바울이 모로스(미련한 것, 고전 1:25)에게 부여한 의미를 네피오스에게 부여하였다.|② 그러나 네피오스는 나쁜 의미로도 사용되어 '어리석은 자'(잠 1:32), '부지중에(모르고)'(겔 45:20) 범죄한 자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네피오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문자적 의미로 네피오스는 오직 어떤 상황이나 행위를 예증하기 위해 어린아이에 대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비교는 부정적이다.|① 갈 4:1, 갈 4:3에서 '미성년자'를 나타낸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 이전과 그리스도 없이 율법의 세력 아래 있는 인간을 후견자 아래 있는 아이에 비교한다.|바울은 율법적이고 시간적인 범주를 사용한다. 기독교 이전 시대, 즉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의 시기(갈 4:4)는 미성숙과 종의 시기인 네피오스 시기였다. 네피오이는 노모스(율법)와 스토이케이아(초등 권세)의 노예로서 묶여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하기 위해 율법 하에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자 오신 것이다. 두 시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② 고전 3:1; 엡 4:14; 히 5:13에서 네피오스는 신앙과 행위에 관해 아직 미숙한 그리스도인의 상으로 사용되었다. 고전 3:1에서 어린 아이 같은 자는 신령한 자와 대조되어 있다. 이런 미숙한 자는 밥으로가 아니라 젖으로 유지된다. 여기의 논점은 기독교인의 삶과 대조되는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단계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성장을 필요로 하는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헬라니즘의 신비 종교를 연상시킨다. 물론 그 배경에는 헬레니즘의 신비 종교가 깔려 있다(참조: H.Schlier, gala, TDNTⅠ646). 이러한 종교에서는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자가 많은 의식들을 통하여 한층 더 높은 완전의 단계들을 성취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교도의 성찬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신비 종교와의 차이점이 있다.|히 5:13이하에 의하면 이 유아적 단계는 종결의 단계가 아니라 변천의 국면인 것이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엡 4:14에서도 헬라니즘 신비 종교의 암시가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네피오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의 논점은 성장(엡 4:15)과 완전하게 됨(엡 4:13)에 관한 문제이다. 이곳도 역시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처럼 쉽게 곁길로 빗나갈 수 있는 기독교인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③ 고전 13:11에서 아이와 성인을 대조시켜 설명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바울은 한 시대(아르티: 이제)와 다른 시대(토테: 그 때, 고전 3:12)를 구분하기 위해 이러한 대립적 표현을 사용한다. 성인이 현재 어린 아이와는 다르게 사고하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장차 올 시대에는 인간의 지식이 변화될 것이다. 즉 네피오스의 영적 미숙은 고전 13:12에서 비교적으로 그리스도인의 현존재의 낮은 수준에서 종말의 완전함으로 변화되는 것이다(고전 13:10; 고전 13:12). 그러나 믿음과 소망 그리고 특별히 사랑은 지금에도 해당되나 장차 올 시대에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고전 13:13).|④ 마 21:16(참조: 마 21:15)에서 어린아이들의 결정적인 역할을 언급한다: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환영, 찬양하는데 이는 시 8:2과 관련되어 있다. 이 어린아이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불신에 대조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의 통찰력있는 신앙을 나타낸다.||(b) 비유적 용법으로 네피오스는 무지한 자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는 70인역본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잠 1:32; 시 18:8; 시 116:6; 시 119:130).|① 롬 2:20에서는 어린 아이와 성인의 대조가 교사와 제자의 관계에 적용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여기에서 네피오스는 '알지 못하는 자'를 의미한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율법을 가지지 못한 네피오스를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의식한다. 그러나 율법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위선을 보지 못함이 이 역할을 그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롬 2:22-롬 2:24).|② 마 11:25이하(병행구 눅 10:21)의 감사에서 두 복음서 기자들은 이 말씀을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대한 재앙의 선언 뒤에 위치시키고 있으며, 누가는 70인의 선교 사역을 언급하고 있다. 두 구절에서 용어 사용이 동일하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두 경우의 말씀 뒤에는 모두 아버지에 관한 지식의 유일한 중개 역할이 아들에게 있음을 기록한 말씀이 따르고 있다. 네피오이가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과 상호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성인들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지혜롭지 못하고 미성숙된 어린이들(참조: 고전 14:20)을 뜻하거나 또는 "어린 아이들"의 연령에는 아무런 강조점도 두지 않고 일반적으로 단순한 사람들을 말한다.|③ 살전 2:7을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가) 에피오이("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나) 네피오이(갓난 아이들). 바로 앞의 단어가 '뉘'(n)로 끝난다. 그리고 이 '뉘'(n)가 필사할 때의 오류로 중복된 듯하다. 더구나 두번째 경우로 해석하면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7절 하반절에서 바울이 '아이들' Children(한글 개역-"자녀")에 비유하고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데살로니가인이기 때문이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유모(트롭호스)와 같았다.|(참조: J.H.Thayer; S.Legasse; G.Brau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