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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네리
Nhriv
네리 Neri(인)||네리는 히브리어 네르(등불)에서 유래했다.|신약성경에서 눅 3:27에 한번 나오며,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이다: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nhsivon
작은 섬 Small island.||네시온은 네소스($3520: 섬)의 지소어이며, '작은 섬'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행 27:16에 한번 나온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네소스
nh'so"
섬 isla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네소스(Homer 이래)는 '떠 있는 땅, 섬'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네소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섬'을 의미한다.||(a) 행 27:26에서 익명의 '섬'에 대해,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b) 행 13:6에서 구브로에 대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c) 행 28:1에서 멜리데에 대해,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행 28:7; 행 28:9; 행 28:11에서도 멜리데에 대해 사용되었다: "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1 석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d) 계 1:9에서 밧모에 대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e) 마지막 날에 섬들이 떠나가거나 없어질 것을 예언한다.|① 계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② 계 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굶음
nhsteiva
금식함 fasting, 금식 fa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네스테이아는 네스티스($3523: 먹지 않는, 금식하는)에서 유래했으며, '먹지 못함, 굶음'을 의미한다(Aristot. Probl.).|그러나 일반적으로 네스테이아는 '금식'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Hdt., 4, 186).||#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네스테이아는 70인역본에서 30여회 나오며, 히브리어 촘(금식)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5322 네스튜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네스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온다.||(a) 마 17:21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만 인간이 해방될 수 있는 어떤 악마적 노예 상태들이 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RT와 Tr, A 편집본에 읽기).||(b) 눅 2:37에서 여선지자 안나는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c) 행 14:23에서 선교사들의 파송과 장로들의 임명 때에 금식과 기도를 아울러 행하였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d) 고후 6:5과 고후 11:27에 있는 두 가지 실례들에서 네스테이아는 사도의 '먹지 못함'을 나타내는데, 이것들은 모두 자서전적이다.|(참조: F.S.Rothenberg; J.Behm).
금식하다
nhsteuvw
금식하다 fa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네스튜오는 네스티스($3523: 먹지 않는, 금식하는)에서 유래했으며, 일반적으로 '배고프다, 음식이 없다'를 의미하였다(Aristot. Probl.,ⅩⅡ, 7). 그러나 네스튜오는 종교적, 제의적 의미에서 주로 '금식하다'를 의미한다(Aristoph.).||「고대의 금식. 금식은 모든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금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음식물 섭취를 삼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금지된' 음식물을 완전히 또는 영원히 먹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처음에 금식은 로마인들 보다는 헬라인들 사이에 더 넓게 행해졌지만, 전 고대 세계로 확산되었다.|금식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고대 세계의 이방 종교에서 그 동기는 귀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금식이 신과 만나거나 교제를 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신의 영향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금식은 신비 종교들에서 초심자들의 입회의식에 속하는 것이었다. 마술에서와 신탁을 받을 때, 금식은 종종 그것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준비 과정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사람이 죽고 난 후에 금식하는 관례는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애곡하며 금식하는 것은 귀신의 침해를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죽은 자의 혼이 아직 가까이 있는 동안 먹고 마시게 되면 악마가 틈탈 위험이 있다.|애굽의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금식했다. 금식은 또한 황홀경의 계시에 이르는 길을 열어준다.|그러나 금식과 고대의 윤리 사이에는 관련성이 거의 없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네스튜오는 70인역본에서 25회 나오며, 히브리어 춤(금식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이스라엘에서 금식의 형태와 목적은 다양하다.|금식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위한 준비로 행하였다. 곧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에 금식했고(출 34:28; 신 9:9), 다니엘도 환상을 보기 전에 금식하였다(단 9:3).|금식은 큰 근심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 개인적으로 행하여졌다(삼하 12:16-삼하 12:23; 왕상 21:27; 시 35:13; 시 69:10).|금식은 전쟁과 멸망의 위험이 임박해졌을 때(삿 20:26; 대하 20:3; 에 4:16; 욘 3:4-욘 3:10; 유딧 4:9, 유딧 4:13); 메뚜기 재앙 때(욜 1장과 2장); 포로지에서 돌아왔을 때(스 8:21-스 8:23); 속죄제의 때(느 9:1); 그리고 끝으로 죽은 자를 애도할 때(삼하 1:12), 국가적으로 시행되었다.|금식에는 기도가 수반되었으며(렘 14:11-렘 14:12; 느 1:4; 스 8:21, 스 8:23), 특별히 회개의 기도가 따른다(삼상 7:6).|금식하는 사람은 애곡하는 자의 자세를 종종 취한다(참조: 왕상 21:27).|금식은 보통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된다(삿 20:26; 삼상 14:24; 삼하 1:12). 그렇지만 에 4:16에는 금식이 3일간 계속되었다.|시 109:24에 보면, 고발할 때의 금식의 고통은 동시에 탄원자가 당하는 내적 고통의 반영이다.|성경에 유일하게 언급되는 제의 금식은 속죄일에 행하는 금식이다(레 6:29-레 6:30; 레 23:27-레 23:32; 민 29:7).|예루살렘의 멸망 후에(주전 587) 예루살렘 멸망을 기억하는 특별 금일(4일간)을 제정했다.||(b)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겸허한 자세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금식의 심오한 의미는 사라져 갔다. 점차 금식은 경건한 공적으로 간주되었다. 선지자들이 이러한 비인간화와 이 개념의 공허함에 대해 논박하였다(참조: 사 58:3-사 58:7; 렘 14:12).|예수님 당시의 자신들의 종교에 열심이었던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매주 이틀씩의 금식일을 지키라는 요구를 받았다(참조: SBⅡ 242이하). 요한의 제자들도 이와 같은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참조: 막 2:18).||#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네스튜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모두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온다.||(a) 마 4:2에서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위해 40주야를 금식하셨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40일 금식에 상당하는 금식을 하심으로써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다.||(b) 마 6:16-마 6:18에서 예수님은 외적 금식을 비난하셨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께 있어서 금식은 하나님께 섬김이며, 참된 헌신의 표시이다. 따라서 금식은 사람의 눈에 행해져서는 안되고 은밀히 계시며,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애곡하는 자의 모습의 공개적인 표시를 수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c) 막 2:18이하(병행구, 마 19:14이하; 눅 5:33이하)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요한의 제자들과는 달리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메시야의 존재 자체는 신랑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기쁨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 금식하지 않는다. 새 시대는 기쁨의 시대이다. 기다림의 시대만이 금식하는 때이다(참조: 요 16:20). 예수님의 종말론적 메시지는 금식을 초월한다. 그러나 구원의 시작과 그 완성 사이에는 간격이 있기 때문에 경건한 일로서가 아니라 내적 태도의 표시로서 금식할 이유가 있다.|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① 부당한 금식을 지적하고, ② 정당한 금식의 때를 지적한다.||(d) 행 13:2 - 행 13:3에서 선교사의 파송과 장로들의 임명의 때에 금식을 기도와 아울러 행하였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참조: J.Behm; F.S.Rothenberg).
굶은
nh'sti"
먹지 않는 not eating, 금식하는 fast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네스티스는 아마도 부정 불변사 네(%88)와 에스디오($2068: 먹다)에서 유래했으며, '먹지 않는, 공복인'을 의미하며, 후에는 '금식하는'을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네스티스는 70인역본에서 단 6:19에 한번, 아람어 테와트(금식)의 역어로 '왕의 금식'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네스티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마 15:32(병행구 막 8:3)에서 네스티스는 무리들이 먹지 못해 공복인 상태에 있는 것을 묘사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참조: F.S.Rothenberg; J.H.Thayer).
절제한
nhfavleo"
술취하지 않는, 절제하는 tempera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네팔레오스(Aesshyl., 이래)는 네포($3525)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포도주를 취하지 않는'을 의미하며, 포도주가 없는 제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것은 포도주를 포함하지 않는 제물에서 그 제물들을 만드는 자들의 근신한 생활 방식까지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을 보여준다.||(b) 이 단어는 포도나 포도나무로부터 마련한 희생 제물들 뿐만 아니라, 제단, 연료에 대해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의미가 확장되어 포도주 없는 신성한 행위를 상기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네팔레오스는 네포($3525)의 분사, 즉 '술을 먹지 않는, 근신하는'에 가깝다.||(c) 이 단어는 중성 단수로 사용될 때, '술취하지 않는 것, 근신, 절제' 등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네팔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목회서신에만 나오며,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온건, 또는 절제의 생활 양식을 나타낸다.||(a) 딤전 3:2에서 감독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b) 딤전 3:11에서 여자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c) 딛 2:2에서 장로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위의 본문들에 나오는 주요 요점은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불가피한 자기 통제이다.|(참조: Walter Bauer; O.Bauernfeind; P.J.Budd).
근신하다
nhvfw
술취하지 않다, 정신차리고 있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네포(Soph., pta., Xen.이래)는 기본어이며, '술취하지 않다, 정신차리고 있다, 근신하다, 침착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의 배후에 있는 사상은 술취함의 반대인 맑은 정신, 제정신(Sobriety)이란 개념을 전달한다. 이 단어들은 문자적 의미로 포도주를 먹지 않은 상태에 대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비유적으로 '완전히 맑은 정신 상태', 또한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 올바른 판단'을 나타내기도 한다.||#2. 구약시대의 용법||동사 네포가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필로에 있어서 네포는 하나님에게 알맞게 다가가는 필수조건이며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든 것을 사려 깊게 회피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De. Ebr. 131).||#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네포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주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살전 5:6; 살전 5:8의 네포는 임박한 파루시아에 요구되는 각성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b) 딤후 4:5에서 네포는 허탄한 신화들의 교활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c) 베드로전서에서 네포는 일반적으로 종말론적 배경을 갖고 있다. 벧전 1:13에서 예수님의 임박한 현현을 위한 적절한 마음 가짐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4:7에서 마지막 때의 기도를 위한 적절한 마음 가짐을 나타낸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5:8에서 마지막 날에는 악마의 흉폭한 대적 행위가 분명하게 나타나므로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각성이 필수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참조: Walter Bauer; P.J.Budd).
니게르
Nivger
니게르 Nigeri(인)||니게르는 라틴어 이름이며 '검은'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행 13:1에 한번 나온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일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T. Robertson).
니가노르
Nikavnwr
니가노르 Nicanor(인)||니카노르는 '정복자'를 의미한다. 그는 안디옥 출신(?) 니카노르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신약성경에서 행 6:5에 한번 나온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기려 하다
nikavw
이기다 be victoriu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니카오(Homer 이래)는 니케($3529: 승리)에서 유래했으며,||(a) `이기다',|(b) `패배시키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실제적, 법적 의미에서나 은유적 의미에서나 전쟁이나 싸움에 있어서 승리나 우월을 의미한다. 또한 이 동사는 `능가하다, 정복하다, 더 강하다'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니카오는 약 25회 나오며, 합 3:19에서 나차흐(영속하다, 뛰어나다, 감독자이다)의 역어로, 시 51:4에서 자카(깨끗하다, 순결하다)의 역어로, 잠 6:25에서 하마드(탐하다, 원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외경에서 `이기다'나 `패배시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집회서4:2; 16:10; 18:22; 마카베오이서 3:5; 8:6 등).||#3. 신약성경의 용법||니카오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거의 항상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와 이에 대항하는 마귀 세력들과의 투쟁을 전제로 한다.||(a) 눅 11:22에서 더 강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참조: 병행구, 마 12:29; 막 3:27에는 `결박하다')|더 강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고 그의 무장을 해체시키고 그의 것을 약탈한다. 이 은유는 마귀의 능력들을 압도하는 예수님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지상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동들로서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세력들을 압도하는 숨겨진 승리자이심을 증거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과 마귀를 정복하시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심은 부활 이후였다.||(b) 요 16:33에서 예수님의 결정적인 승리를 언급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은 하나님께 반항하는 세력들을 코스모스(kosmos: 세상)라는 술어로 요약한다. 예수님의 오심과 고난과 아버지께로 돌아감은 세상을 이기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승리는 완료 시제로 표현된다(요 16:33). 악한 자, 곧 세상의 지배자는 예수님에 의해 그의 능력을 제한당하였다. 이는 더 강한 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악한 자의 지배로부터 자기 백성을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싸움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판결이 나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승리에 참예하므로 스스로 세상을 이기시는 위치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담대하라고 하신다.||(c) 롬 3:4에서 니카오는 법정에 기소 당할 때나 기소할 때 소송에서 `이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d)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세력들의 승리에 대하여 언급한다.|계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그러나 이러한 승리들은 `허락된' 것이고, 따라서 한정된 것이다.||(e) 계 5:5에 의하면 악의 세력들의 승리들이 두려운 것일지라도 사자가 이미 최후 승리를 거두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17:14에서도 그리스도와 그에 속한 자들의 승리를 언급한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5:2에서 짐승을 이긴 자들은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이긴 자들에게는 약속이 주어진다(계 2:7, 계 2:11, 계 2:17, 계2:26; 계 3:5, 계 3:12, 계 3:21).|이 승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될 것이다(계 21:7). 이 승리는 종말론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로 이미 승리하셨고(계 3:21; 계 12:11), 그의 청소년들은 악한 자를 이기었고(요일 2:13-요일 2:14), 악은 선에게 정복 당한다(롬 12:21). 믿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승리에 참예하므로 스스로 세상을 이기시는 위치에 놓여 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인 것이다(요일 5:4이하). 이 승리의 근거는 세상보다 큰 하나님이시다(요일 4:4이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Gunther; O. Bauernfeind).
이김
nivkh
이김, 승리 victor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니케(Homer 이래)는 `승리' 또는 `승리를 가져다 주는 힘'을 의미한다. 니케는 종종 회화에서 개인적 우월의 상징으로 나타내어지는 그리이스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들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여 자신들이 선택한 편에 승리를 준다. 신비 종교들에서 사람은 승리의 힘 때문에 숭배를 받는 강한 신들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그 신에게 묶는다.||#2. 70인역본의 용법||니케는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대상 29:11에서 히브리어 네차흐(힘, 승리, 빛남, 영광, 영속)의 역어로 사용되어 `승리'를, 잠 22:9에서도 해당 히브리어 없이 `승리'를 의미한다.|니케는 외경 마카베오에 여러번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일서 3:19; 마카베오이서 10:38; 13:15등).||#3. 신약성경의 용법||니케는 신약성경에서 요일 5:4에 한번 `승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참조: J. H. Thayer; W. Gunther).
니고데모
Nikovdhmo"
니고데모 Nicodemus(인)||니코데모스는 니코스($3534: 승리)와 데모스($1218: 국가, 백성)에서 유래했으며, '백성의 승리자'라는 뜻이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니고데모"로 음역되었다.|니고데모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에만 5회 나온다(요 3:1; 요 3:4; 요 3:9; 요 7:50; 요 19:39).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으나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니고데모는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의 70인 장로회의 일원으로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어떤 이들은 1세기에 부유한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역사가 요세푸스의 한 형제였던 니고데모 벤 고리온(Nicodemus ben Gorion)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 니고데모와 동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니고데모 벤 고리온은 후에 재산과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반전 상황으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입증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요 3:10에 보면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그 선생"으로 기록되었다. 헬라어 본문은 선생에 정관사가 있다. 이것은 그가 다른 모든 선생들보다 우월한 한 선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산헤드린에 한 지위를 가진 잘 알려진 인정된 선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가 참으로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한 선생으로,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 교육을 위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와 가졌던 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대화는 사두개인과 헤롯당과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의 교훈을 말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첫부부은 문답 형식이었다(요 3:2-요 3:10). 요한은 니고데모가 말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 이외에는 무엇이나 제쳐 놓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평한 니고데모를 통한 주제가 극히 중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한 바리새인으로서 니고데모의 전체 신앙적 희망은 그의 혈통,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에 의지하고 있었다.|(참조: HBD; NIBE).
니골라당
Nikolai?th"
니골라당 Nicolaitan.||니골라당은 계 2:6과 계 2:15에만 나타나며,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교리를 주장하던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지칭한다.|이레니우스는 그들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도록 선택된 집사 중의 한 명인(행 6:5) 안디옥의 니골라를 따르는 자들이며, 참 기독교 교리를 흔들어 놓은 무리이며, 방종 중에서 살았다고 말한다(Against Heresies Ⅰ; 26:3).|히폴리투스(Hippolytus)는 니골라가 분명한 교리는 남겼지만 사람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는 무관심한 버릇을 지녔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확실하게 했다(Refutation of Heresies 7:24).|사도의 조직(The Apostolic Constitutions, 6:8)은 그들을 "부정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비록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니골라의 추종자들이 그를 잘못 이해했다고 하면서 니골라를 변호하기는 했으나, 클레멘트도 니골라당은 자기 충동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염소새끼 같이 쾌락에 자신들을 내던져 버렸다고 보았다(The Miscellianes 2:20). 페타우의 빅토리누스(victorinus or pettau)는 요한계시록의 최초의 주석가로서 '니골라당은 잘못되고 성가신 사람들로서 니골라의 이름 아래 사역한 목회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이단을 형성하고 우상에 제사를 하고 그 제물을 먹었다. 그리고 '간음을 행하는 자는, 여덟 번째 날에 평화를 소유하게 된다'고 주석했다. 이런 견해가 확실하다고 하기에는 의문이 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보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말의 유희인 듯 하다. "니골라당"이라는 말은 두 헬라어 단어로부터 왔는데, 지배한다는 뜻의 "nikan"이라는 단어와 백성을 뜻하는 "laos"라는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발람도 두 히브리어 단어인 bela(지배하다)와 ha'am(백성)에서 유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니골라와 발람은 같은 이름의 헬라어와 히브리어로써 어느편이나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이단의 노예가 되게 하는 악한 교사를 묘사하는 말이다. 모압 여인과 불륜의 관계를 갖도록 이스라엘 사람을 유혹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민 25:1-5). 만약 이런 상태가 억제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망했을 것이다. 민 31:16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된 것은 모압왕 발락을 꾀어 악한 일을 하게 한 발람 선지자의 악한 영향에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발람은 히브리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륜과 죄악으로 이끄는 악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는 특별히 그들은 백성들을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도록 하며, 음란한 행위를 하도록 유혹한다고 책망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행 15:28; 행 15:29) 이방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는 두가지 조건을 정했는데 그것은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삼가는 것이었다. 이런 규칙을 바로 니골라당이 범하였던 것이다.|그들은 바울이 경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삼는 자들이었다(갈 5:13). 이런 잘못된 행위의 유혹이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이 일반화된 이교도 사회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방사회에서는 결혼 외의 성관계자가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니골라당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리이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이교도 사회와 타협을 시도했다. 의심할 나위없이 이러한 교훈을 가장 잘 용납한 사람들은 개심하기 전에 자기들이 속해있던 문화로부터 격리함으로서 최상의 위치를 상실할만한 형세에 있었던 상류계급이었다.|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와 이세벨을 따르는 자(20절)는 매우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 이는 니골라당도 이와 유사한 종류의 사람들임을 나타낸다. 이는 확증할 수는 없지만, 동일하지는 않으나 이 세 무리가 서로 관련된 사실을 살펴볼 때에 가장 합리적 해석으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니골라당은 믿음을 파괴하려고 하는 공개적인 외부의 적은 아니다. 이 거짓된 교사들의 '그들은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진보적, 현대적으로 발전된 양상으로 보인다'고 주장하였다(바클레이). 니골라당은 내부에서 파괴를 시도하는 방심할 수 없는 무리였다.|니골라당의 교리는 이원론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 인간의 몸은 어쨌든 악하고, 영혼은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육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육신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영혼은 그가 행한 것에 관계없는 은혜와 용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세상과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계시록 저자는 그들을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교훈의 귀결은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기 보다는, 기독교가 세상을 본받아 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유세비우스는 이 종파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과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계시록에 나타난 언급 외에는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참조: Leon Morris;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니골라
Nikovlao"
백성의 지배자, 니골라.||니골라는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도록 선출된 일곱명 중의 한 사람으로(행 6:5) 안디옥에서 개종한 자, 개종자들의 참고자료에 따르면 그는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마침내 기독교에 개종한 본래는 이방인이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실시한 구제품 분배를 위하여 선택된 일곱 사람들 중의 다른 이들과 같이 그의 이름이 헬라이즘인 것을 보아서 여타의 사람들도 역시 개종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이 모두 이방인들인데 "개종자"란 이름이 니골라에게만 적용된 것을 보아서 그만이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 들어온 것으로 보여진다. 여타의 여섯명은 직접 이교도에서 들어왔거나 최소한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물론 초대교회에 있어서 할례와 그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안에서의 유대교적 실천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본 결과, 일곱명을 모두 개종자이거나 헬라 이름을 사용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으로 자주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니골라는 교회 교부들에 의해서 니골라당으로 알려진 이단 종파의 창시자라고 생각되어 왔다(계 2:6, 15). 이레니우스(Irenaeus)는 니골라당을 낳게한 그의 가르침은 오해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므로 니골라를 변호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니골라는 "육체는 학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육체가 계속적으로 제어받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니골라당은 그의 가르침에서 육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고 육체는 중요하지 않고, 주의를 돌릴 대상이 아니라고 곡해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들을 부끄러움이 없는 불륜으로 이끌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니골라의 추종자들은 모두 악을 행하였다.|(참조: C. J. He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