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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율법을 세우신 것
nomoqesiva
율법, 규칙.||#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모데시아(Pla., Aristot.)는 노모데테스($3550: 입법자, 율법 제정자, 율법 수여자)에서 유래했으며, 입법 행위가 아니라 입법 행위의 결과, 즉 '법' Law, '헌법, 규칙'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모데시아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서만 3회 나오며, 모세의 율법에 대해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6:23; 마카베오사서 5:35; 17:16).||#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모데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롬 9:4에 한번 나온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특권들 가운데 하나는 '율법'을 소유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Gutbrod).
율법을 받다
nomoqetevw
법을 수여하다, 법률을 제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노모데테오(Lysias, X.)는 노모데테스($3550: 입법자, 율법 제정자, 율법 수여자)에서 유래했으며,||(a) '입법자로 행동하다, 법을 수여하다'(Plat., Ep.).|(b) '법으로 규정하다, 법률을 제정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노모데테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야라(3384)의 역어로 사용되어 '가르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24:12; 시 27:11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노모데테오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서만 2회 나온다.||(a) 히 7:11에서 율법, 즉 제의법만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수여하는 것이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b) 히 8:6에서 '직분'이나 '언약'의 제정을 일반적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본질적인 것이 문제되지는 않으나 전자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참조: W. Gutbrod; Walter Bauer; J. H. Thayer).
입법자
nomoqevth"
입법자, 율법 수여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모데테스(Antipho 이래)는 노모스($3551: 부여된 것, 관습, 관례, 법)와 티데미($5087: 놓다, 두다, 정하다, 고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입법자, 율법 수여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모데테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4:12에 한번 나온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율법
novmo"
율법, 법 Law, 규범 nor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명사 노모스(Hes. 이래)는 네모(%1056: 할당하다, 분배하다, 지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타당하거나 올바른 것, 어떤 자에게 할당된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노모스는 모든 종류의 '인정되거나 기존한 규범, 규정, 질서, 관습, 관용법, 전통' 등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본래 종교적이며, 제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든 소유는 신들로부터 온다고 생각되었으며, 신들이 우주의 질서와 인간 관계의 질서를 유지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법이 신과 관련된다는 보편적 확신이 전 역사를 걸쳐 발견되며 이것은 심지어 법의 순수한 인간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시대에도 잠재 의식적으로 지속되었던 사상이다. 이 개념은 제사, 결혼, 가정, 학교, 식사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방면을 포함한다.||(b) 정치적 영역에서 노모스는 도시 국가의 가장 본질적 특징, 곧 사법상의 규범, 법적 관습, 토지법으로 생각했다. B.C. 56세기 경부터 노모스는 복수 로모이(법률)라고 기록되었고, 거기서 '성문법, 헌법, 국가의 강제법'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c) 필로는 스토아의 전통을 따라 노모스를 하나의 우주적인 법으로 이해했다. 필로는 구약성경의 율법과 세계의 질서의 합치에 관심을 가졌다(Gutbrod 1053; Monsengwo Pasinya 193).||#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30회 나오며, 그 중 약 200회 가량 토라(구약성경 220회)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밖에 다트(교령, 법, 16회), 호크(제정된 것, 규정, 습관, 율법, 법령, 4회), 훅카(규정된 것, 규례, 법령, 8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토라의 의미가 넓은 범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일반적으로 정결과 부정에 관한 개개의 질문들에 대한 제사장들의 지시.|(b) 시내산에서 수여한 언약의 율법의 개개 계명들, 특히 제사장 문서에서 제의적 명령들.|(c) 언약 율법 전체(신명기에서 최초로 나타남). 전체 율법의 의미에서의 토라는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즉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그의 언약을 인치신 하나님의 요구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토라는 언약으로 이미 세워진 이스라엘의 '법' 혹은 '교훈'이다.|토라의 계명들을 지키므로 비로소 구원이 성취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주 처음부터 토라는 '법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르침' 대신에) '법'이라는 번역이 반드시 '법률적' 이해를 암시하지는 않는다. 구약성경의 알렉산드리아 번역자들은 토라의 역어로 노모스를 선택했을 때 토라를 "법률적으로" 이해했는가? Gutbrod에 따르면 70인역본에서 노모스의 용법은 토라에서 나중에 두드러진 '법률'의 뉘앙스가 '승리를 거두어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J. Schmid의 지적은 훨씬 더 예리하다: 노모스의 선택은 토라의 의미에 있어서 변화의 증거이다. 그것은 인류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을 포함하는 계시의 그 부분에 국한한다(LTK Ⅳ, 818). M. Pasinya는 이 견해에 강력히 반대하여, "...노모스는 고전적인 그리스의 법률적·사법적 의미에서의 '법'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응하는 히브리 용어 토라의 원래의 의미에 부합하는 '지식, 가르침, 신조'를 의미한다..."고 한다. M. Pasinya는 신 17:10의 노모데테오 같은 용어를 해석할 때 시편의(의심할 여지없는) 후대의 번역에 비추어 '지시하다, 가르치다'라는 의미까지 확장한다(131 이하). 그에 따르면 70인역본에서 노모스는 '지시/ 가르침', 실로 '계시'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다면 70인 번역자는 당시 노모스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이탈해 있는 셈이 될 것이다.|그러므로 70인역본에서 노모스는 대부분의 경우 '법'(law)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하지만 70인역본이 '법적' 개념의 증거를 제시하는지의 여부 및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제시하는지는 문제로 남아있다. 어쨌든 70인역본 역자들이 복수형 토로트를 거의 절대적으로 단수형 노모스로 번역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복수형 노모이는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예컨대 에스드라하 19:13에서 시내에서 주어진 율법에 대해 사용된다. 이와 달리 잠 1:8의 복수형은 무사르, 즉 아버지의 '가르침'을, 잠 6:20의 복수형은 미츠와트 즉 아버지의 '명령'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91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119회, 로마서 72회, 갈라디아서 32회, 고린도전서 9회). 바울 서신 외에 노모스는 사도행전(17회), 요한복음(14회), 히브리서(14회), 야고보서(10회), 누가복음(9회), 마태복음(8회)에 사용되었다.|신약 시대에 노모스는 일반적으로 '법, 법률, 율법'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요 1:17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서 율법과 비교되고 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예수님은 그의 모든 언행에서 율법의 중개적 지위를 제거하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을 열으셨다.||(b) 세례(침례) 요한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증언은(마 11:3; 참조: 마 11:7-19) 상승하여 자신에 대한 간접 증거가 된다(마 11:13; 참조: 마 11:11-15). 세례(침례) 요한은 하나님 통치의 한 시대를 종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들 중에 직접적으로 임하는 새 하나님의 통치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참조: 말 4:5; 마 17:10-13; 요 1:21; 눅 1:17) 다시 온 엘리야이다(참조: 마 11:14). 이리하여 선지자들과 율법의 설교와 가르침은 그 목표 Goal에 도달하고(마 11:13) 종결된다. "선지자들과 율법"이 여기서 어느 정도 외형적으로는 구약성경의 구성 요소로 여겨지나, 그 중요한 언급은 구원사적인 내용에 대한 것이다. 여기의 어법에서 주목되는 바는 선지자들이 율법보다 그 서열이 앞이라는 것과 양자 모두 선포하고, 설교하고, 예언한다는 동적 관점이다. 그 병행구인 눅 16:16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구원사적 모든 계획에 삽입시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래로 하나님의 왕국은 대승리의 소식처럼 직접 선포된다.||(c) 마 5:17; 마 5: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독선적인 태도에 대항하시지만 (롬 7:12; 참조: 마 5:19-20) 율법에 대항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이미 그의 할례시부터 행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계속 행하셨듯이 일생동안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세세히 성취하셨다(마 5:17; 참조: 마 3:15). 심지어는 그의 정죄 받으심도 당시의 유대법에 따른 것이었다(요 19:7). 마찬가지로 율법의 불가침성은(마 5:18; 눅 16:17) 율법의 윤리적 해석 전문가들이며, 바리새인들의 신학적 지도자들이었던 율법 교사들과 대화하시는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예수님은 율법이 두 큰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견해를 공유하셨으나(마 22:36; 눅 10:26; 참조: 마 22:34-39), 두 계명 내의 바리새인적 가치 등급은 찬성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그의 되풀이되는 외침 "화 있을진저!"(마 23:23; 참조: 마 23:13-16; 마 23:25; 마 23:27; 마 23:29 등)에서 그는 그들이 율법의 근본적 의도인 이른바 의와 인과 신(믿음 faith, 마 23:23)을 인식하지 못함을 책망하셨다.||(d)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노모스는 일반적으로 성경의 일부인 율법 전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율법"(마 5:18; 마 12:5; 눅 2:27; 마 10:26; 마 16:17), '율법이나 선지자'(마 5:17); "주의 율법"(눅 2:23; 눅 2:24; 눅 2:39), "모세의 법"(눅 2:22; 행 28:23,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 24:44) 등이다.||(e) 눅 10:26-37에서 어떤 율법사와 예수님께서 서로 묻고 대답한다. 여기서 단지 예수님과 친교하고, 그의 사랑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따르는 것 만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눅 10:37). 이와 같이 그의 부활을 따라 행위로 인한 의를 주장하는 생각으로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에서, 그리고 자유로이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자의 자유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뿐이다. 바울은 또한 율법의 절대성과 율법 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상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른다. 그는 그가 개종한 바리새인이기에 일어나는 감정적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빌 3:5-11), 그가 그리스도의 유일하심과 새로우심을 보았기 때문에 이 입장을 취하였다.||(f) 바울은 노모스를 모세 오경의 뜻으로(롬 3:21; 갈 4:21), 성경 전체의 뜻으로(롬 3:19; 고전 14:21), 특히 모세 율법의 뜻으로,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는 십계명의 뜻으로(롬 2:14; 롬 2:17; 롬 3:28; 롬 7:12; 갈 5:3) 사용하였다. 롬 2:14 하반절은 "이방인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의미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2:15 참조). 그런데 칼 바르트는 이 구절이 렘 31:33의 새 언약의 예언의 성취를 통해 "그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가진 이방인 개종자들을 언급한다고 주장한다.|바울도 노모스를 율법의 일부를 가리킬 때(예: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혼 율법, 롬 7:2), 그리고 대개 속격으로 한정하여 비유적 의미로 사용한다(예: 롬 3:28,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명; 롬 7:23; 롬 7:25; 롬 8:2; 갈 6:2, 기원의 속격; 롬 7:23, 규칙적 원리). 바울은 때로 율법을 의인화한다: 율법은 말하며(롬 3:19), 말을 남기며(롬 7:7; 고전 9:8), 일하며(롬 4:15), 다스린다(롬 7:1). 이렇게 함은 그가 율법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사상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변자임을 나타낸다.|바울은 율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배경에서 본다.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예수님은 율법이 모든 사람을 정죄함을 확인하셨다. 그는 저주가 되었다(갈 3:13; 참조: 신 21:23).|이 진술들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행하신 의도신 대속 행동을 나타낸다.|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셨으니 이제 구원은 우리가 어떤 조건들에 부합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성취되었다는 단순한 사실에 달려 있다(롬 3:31).||(g)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다(고전 9:20b). 그는 자유로이 "율법 없는 자들에게 율법 없는 자 같이"될 수 있다. 그는 또한 자유로이 사랑 안에서 율법을 완성할 수 있으며(롬 13:10b; 갈 5:14; 갈 5:22),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 곧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자유로이 될 수 있다(고전 9:20). 그러한 사랑의 창조자와 고취자 되시는 이는 그리스도인을 율법과 육체 및 그 결과인 죄와 죽음의 영역에서 옮기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영(Spirit)이시다(롬 8:4; 갈 5:18; 갈 5:22).||(h)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위한 율법의 종말이요 목표이기 때문에(롬 10:4) 이를 테면 바울은 자기의 유리한 고지로부터 뒤돌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며 또한 율법은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의 유효한 기능을 가진다고(롬 5:20 이하; 갈 3:19-29) 묘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며(롬 7:12)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 중의 하나였다(참조: 롬 9:4; 여기서 노모데시아는 '율법을 줌'을 의미함).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고(롬 5:20; 롬 7:8-13; 고전 15:56),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탈출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율법과 죄 아래 "가두려고"(갈 3:22 이하) 하나님에 의해 죄있는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고(갈 3:19) 가입된 것이다(롬 5:20).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롬 5:20) 그의 아들됨의 선물(갈 3:25 이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고 생각만하여도 끔찍하다.||(i) "율법으로"(엔 노모, 롬 2:12b) 하나님 앞에서 서는 개인은 다음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율법은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갈 3:10; 신 27:26의 인용임). 율법을 행하는 자만이 살 것이요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나(갈 3:12b; 레 18:5의 인용임; 롬 2:13b) 행하지 않는 자는 정죄 받는다(갈 3:10; 롬 2:12b). 아무도 율법을 듣거나 아는 것 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지 못한다(롬 2:12; 롬 2:13).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면 살려져야 하는데, 율법은 살리지 못하였으나(갈 3:21; 롬 7:9이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살려진다(갈 3:26 이하). 이리하여 율법은 죄와, 신앙은 약속과 관련된다. 그렇지만, 율법은 언약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갈 3:17) 교육적 역할을 하여 구속사와 개인적 체험에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신앙으로 인도한다. 율법은 파이다고고스("몽학 선생", 갈 3:24; 갈 3:25)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소년 지도자"를 뜻한다. 파이다고고스는 대개, 학생을 학교로 데리고 가서 그의 행위를 일반적으로 감독하는 임무를 맡은 노예였다(Arndt, 608; 가르치다의 파이듀오). 율법은 무서운 죄의식을 자아낼 뿐 구원하지 못하나(롬 3:20; 롬 7:7), 사람이 길을 잃은 상태에서 도움을 구하며 부르짖게 하는데(롬 7:24),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부르짖음에 효과적으로 응답하실 수 있다(롬 7:25).||(j) 롬 2:12; 롬 2:13,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이" 범죄한 자, 즉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인간이나 기독교 범주 밖의 인간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지 못한다.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의를 행하였는지에 따라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데(참조: 롬 2:6 이하), 이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 때문에 선을 알 수 있는 까닭이다(롬 2:15; 참조: 롬 1:32). 이리하여 율법을 행하는 유대인은 선을 행하는 이방인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요(롬 2:13; 롬 2:7), 율법 아래서 죄를 짓는 유대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다(롬 2:12b; 롬 2:9). 그들이 유대의 율법 안에서 살든 밖에서 살든, 두 그룹이 모두 그들의 행위에 따라 동일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롬 2:11 이하; 롬 2:16). 파멸과 사망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는데(롬 3:23; 롬 3:27; 롬 7:10; 롬 7;11; 롬 7:13), 이는 아무도 자기가 선으로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던 까닭이다(롬 3:23; 롬 7:18 이하; 롬 7:21).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존돼 있으므로 인간은 율법의 행위 없이(롬 3:28) 또한 율법을 떠나서 이를 믿음으로 소유해야 한다(롬 3:25 이하; 롬 3:29 이하).||(k) 롬 8:3; 롬 8:4,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육신은 순종할 수 없는, 자율적이라고 자인하는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율법의 근본적 약점을, 곧 죄에 대한 율법의 유일한 응답은 죄를 금하는 것이요 죄를 정죄하는 것일 뿐임을 나타낸다. 율법은 연약한 육신의 협력에 의존하는고로 죄를 극복할 수 없다. 율법은 이 세상의 구성의 일부인고로 우리를 그 이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롬 8:4). 율법은 본래 죽이는 문자이나, 새 언약의 생명은 살리는 영이다(롬 7:6; 참조: 고후 3:6).||(l)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성령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사랑의 계명이 이제 "그리스도의 법"이라 불리워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여호와의 토라대로 친히 사신 주께서 이제 사람들을 영적인 생활로 향상시키어 그들에게 그 성취를 요구하실 수 있다(참조: 고전 9:21).||(m) 고전 9:8 이하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그가 물질적으로 교회의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 25:4을 비유적으로 사용한다.|고전 14:21에서 그는 방언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신 28:49과 사 28:11-12에서 인용한 글을 결합한다.|고전 14:34에서 그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그의 명령을 지지하기 위해 창 3:16을 언급한다-그런데 이 명령은 일반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특별히 방언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여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를 내세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의 생명은,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 죄이다"가 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는 원칙에 의해 통제 받는다(참조: 롬 14:23).||(n) 히브리서에서 노모스는 히 7-10장에서만 나오며, 심지어 거의 전적으로 구약성경의 제사장직을 규정하는 율법으로만 나온다(히 10:28은 제외). 카타(톤) 노무("율법을 따르는")인 것은(히 7:5; 히 7:16; 히 8:4; 히 9:19; 히 9:22; 히 10:8)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의 제사장의 율법의 마침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이전의 계명의 '폐지'(아데테시스)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히 7:18; 참조: 히 10:9). 율법은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 제사가 육체를 깨끗케 하는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므로 연약하다. 한편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게 한다(히 9:11-14; 히 10:4). 새 언약은 옛 언약을 결정적으로 폐지한다. 렘 38:33[70인역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의 법을 마음에 두시기 때문이다(히 8:10; 히 10:16). 이 법은 옛 언약의 제의적 율법과 같지 않다. 모세 율법의 도덕적 계명을 만족시키는 면에서 이 하나님의 법이 어디까지 중첩되는지는 깊이 고려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율법의 긍정적인 면은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이었으며, 항상 다가오는 좋은 것의 그림자를 지녔다는 사실에 있다(히 10:1).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묘사하 때 구약성경의 제사장직의 제의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제의적 범주를 근본적으로 깨뜨린다.||(o) 야고보서 역시 바울의 역사적 영향 아래 고찰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잘못 이해된 바울 사상에 대하여 변론할 때(약 2:14-26) 특이하게도 그는 노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언급한다(약 1:25; 참조: 약 2:12). 이 율법은 확실히 구약성경의 율법과 단순히 동일시될 수 없는 것이다(Gutbrod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구약성경 율법과 구별한다). 그러나 노모스 바실리코스로서 그것은 성경에(카타 텐 그라펜) 기초한다. 즉 레 11:18의 사랑의 계명에 기초하며(참조: 갈 5:14; 롬 13:8-10) 그 자체가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약 2:10은 갈 3:10; 갈 5:3을 생각나게 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러나 이 구절은 바울이 지적한 결론을 끌어내지 않는다. 야고보는 전체 율법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약 2:9은 롬 2:23-27(또한 롬 4:11을 보라)을 상기시키지만, 그것은 신학적인 논증의 형태에서가 아니라 용어법상에서만 그렇다.||(p) 요한 역시 자신의 독특한 변증법적 방식에서 노모스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연속성과 비연속성 양자 모두를 암시한다. 요한은 시편의 한 말씀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곳에서 율법에 기록된 말씀에 대해 말할 때(요 15:25) 성경의 성취에 대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노모스는 전체 구약성경을 가리킬 수 있다(또한 요 10:34; 요 12:34을 보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하므로 성경을 연구하라고 훈계하신 직후(요 5:39) 모세가 자신에 대해 기록하였으므로 모세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고발한다고 말씀하신다(요 5:45 이하). 그러나 모세는 좁은 의미에서 율법을 대신한다(요 7:23). 예수님을 증거하는 점에 있어서 성경과 율법의 기능이 거의 완전히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하신다(요 8:17; 요 10:34; 또한 요 15:25 이하, "저희 율법").|그리스도께서 "너희 율법"(요 8:17; 요 10;34)과 "저희 율법"을 되풀이하여 사용하심으로 보아 아들은 율법에 종속되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정당화를 위해서만 모세에게 호소하며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셨다(요 7:19; 참조: 롬 2:17-24). 치유와 용서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에 그는 그들이 율법에 대하여 아는 체하며 자만하는 태도를 질책하셨다(요 7:23; 요 8:5 이하).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 대한 구절(요 7:53-8:11)은 예수님과 율법에 열정적인 그의 대적들 사이의 긴장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에 대한 증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율법 혹은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사용하신다(요 8:17; 참조: 신 19:15; 신 10:34; 참조: 시 82:6). 반면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저 문자 곧 규율과 규칙에 불과하였다(요 5:39; 12:34; 참조: 시 110:4; 사 9:7; 겔 37:25; 단 7:14).|어느 정도까지 율법 취급이 전문가들의 일이 되었고 따라서 교묘하게 이용되었는지는 예수님을 잡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산헤드린에서의 논의에서 보여진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요 7:49)하고 바리새인들은 말하나,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고데모는 그들이 스스로 율법을 무시하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요 7:51).|그렇다면 불신자들도, 따라서 눈먼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의 율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율법은 생명이 있는 자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요 11:25; 요 14:6). 그러므로 율법은 그들의 심판-바울에게서 발견되는 개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인간을 자신의 힘과 공로를 의뢰하도록 이끄는 윤리적 규범으로서의 율법에 관심이 없다"(Pancaro 528). 요 1:17은 대조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댓구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 반대로 은혜와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재가 된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이 진리가 계시되기 때문이다. "'진리'는 율법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인정하도록 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것은 순전히 선지자적인 혹은 교육적인 기능을 가진다"(Pancaro 539).|(참조: H. Hubner; H. -H. Esser; W. Gutbrod).
노세오
nosevw
병들다 to be ill, 앓다 be ail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노세오(Aeschyl., Hdt.이래)는 노소스($3554)에서 유래했으며, '병들다'를 의미한다.|노세오는 일반적인 문맥, 또는 비유적 내용에서 노소스($3554) 보다 더 자주 사용되며, 예를 들면 교육의 부족이나 사악함 때문에 '고통을 당하다', 영화를 갈망하는 '열정으로 가득차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노세오는 70인역본에서 외경 지혜서에서 2회 나오며, '병들다'를 의미한다(17:8).||#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노세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6:4에 한번 나온다: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여기서 노세오는 '마치 병에 걸린 것과 같이 관심을 가지는 것', 즉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 노세오의 용법은 이 동사의 헬레니즘 용법과 일치한다. 말들에 관한 열띤 논쟁과 토론은 인간 내부의 병든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거짓 가르침이 넓게 퍼지는 성향과 암종양이 퍼지는 과정을 비교하는 것도(참조: 딤후 2:17) 헬레니즘적 사고 방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H.G.Link).
노세마
nvoshma
병, 질병 disea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세마(trag., Thu. 이래)는 노세오($3552: 병들다, 앓다)에서 유래했으며, '병, 질병' disease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세마는 신약성경에서 요 5:4에 한번 나온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질병
novso"
병 illness, sick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소스(Homer 이래)는 어원은 불확실하다.||(a) 이 단어는 주로 '병'을 의미하며, 특별히 '재난'(하늘의 응징, 천벌, Soph., Homer),'고통'(Hesiod), '탐닉'(Plato), '호색'(Eur., Hippolytus), '미침'(Aesch.)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반면 이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로 혹은 비유적인 의미로 도시를 괴롭히는 역병(Plato), 국가의 고질병(Plato), 성격상의 약점, 타락(주로 Philo)을 의미한다.||(b) 그리이스인들은 과학 이전의 신화적인 세계관과 더불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질병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의 공격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유추적인 결론을 내렸으며(Homer) 그들은 제사나 또는 이와 유사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가라 앉히려고 했다(참조: Diog.). 이러한 결론은 철학자들의 편에서 세밀하게 고찰함으로써 수정되었으며 그들은 병을 인류학적인 용어로 설명했다: (부수적인) 외적 질병은 (실질적인) 내적 고통과 상응하며 후자는 무지(아그노이아)로 구성되어 있다(Plato). 약물 치료와 철학적인 가르침과 덕은 이처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소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3회 나오며, 4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했으며, '병, 질병'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소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나온다.||(a) 예수님은 모든 병, 또는 여러가지 병을 고치셨다(마 4:23, 마 4:24; 마 9:35; 막 1:34; 눅 4:40; 눅 6:18; 눅 7:21).|사 53:4을 인용하여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는 문장으로 예수님의 병고침의 사역을 요약하고 있다. 마태는 이 구절을 종 또는 예수님이 질병의 고통을 대신 당하는 것에 관하여 언급한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으로 질병을 퇴치하는 것에 관하여 언급한 내용이라고 해석한다(참조: H.J.Held; G.Barth and H.J.Held). 스텐달(K.Stendahl)은 마태 자신이 사 53:4에 나오는 히브리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군드리(R.H.Gundry)가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선지자와 복음서 기자들 모두에게 죄는 질병의 원인이었다.||(b)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눅 9:1; 마 10:1).||(c)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의 병고치는 능력이 나타났다(행 19:12).|(참조: Walter Bauer; H.G.Link; A.Oepke).
놋시아
nossiav
한 배의 새끼 새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놋시아는 놋시온($3556: 어린 새)에서 유래했으며,||(a) '새들의 보금자리',|(b) '한 배의 새끼 새들'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놋시아는 신약성경에서 눅 13:34에 한번 나오며, 닭의 '새끼'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놋시온(a)
nossivon
어린 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놋시온(Aristoph., Aristot.)은 놋소스(%275: 어린 새)의 지소사이며 '어린 새'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놋소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23:37에 한번 나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놋소스
nossov"
어린새 young bird||형용사 놋소스는 네오스($3501: 젊은, 어린)에서 유래했으며, '어린 새'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놋소스는 눅 2:24에 한번 나온다: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감추다
nosfivzw
~을 따로 떼어두다, 가로채다, 착복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노스피조(Homer 이래)는 노스피(%276: 떨어져서, 떼어서)에서 유래했으며, '~을 따로 떼어두다, 분리하다, 분할하다', 여기에서 '횡령(착복)하다, 가로채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노스피조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사도행전(2회)과 디도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행 5:2; 행 5:3에서 땅 판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둔 것, 곧 가로챈 것을 나타낸다: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b) 딛 2:10에서 남의 재물을 '착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남의 재물을 착복하는 일은 상전의 창고를 맡거나 출입하는 입장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범죄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남방
novto"
남풍 south w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토스는 (a) '남풍, 남서풍'(Homer),|(b) '남쪽'(Soph., Hdt.),|(c) '남쪽나라, 남방'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남풍, 남쪽, 남방(남쪽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토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타난다.|노토스는 '남풍'에 대해 사용되었다(눅 12:55; 행 27:13; 행 28:13).|또 방향으로 '남쪽'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눅 13:29; 계 21:13) '남쪽 땅'을 의미할 때도 사용되었다(마 12:42; 눅 11:31).|(참조: J.H.Thayer; L.L.Morris).
경계
nouqesiva
훈계, 경고, 교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누데시아는 누데테오($3560)에서 유래했으며, '훈계, 권고, 경고, 교정, 징계'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누데시아는 70인역본에서 외경 지혜서 16:6에만 한 번 나온다: "그들을 잠시 고생시킨 것은 그들을 [경고하여] 당신의 율법의 명령을 일깨워주는 구원의 표시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누데시아는 신약성경에서 3회, 바울 서신에만 나타난다.|고전 10:11에서 누데시아는 외경 지혜서 16:6에서와 같이 '경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구약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은 교육적 의의를 가진다. 즉 그것들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으로서 교훈을 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엡 6:4에서 누데시아는 그리스도인의 교육 방법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를 양육하는 올바른 방법은 교양과 훈계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교육적 보조물의 사용 또는 사용치 않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훈계가 주님을 지향한 것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지도 원리와 함께 사용되는 방법은 자유로우면서도 의무감을 벗어나지 않고 선택될 수 있다. 이 두 단어는 여기에서 다소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G.Bertram, TDNT V 624; H.Schilier, Die Zeit der Kirche, 282이하). 그리스도인의 훈육을 특징지우는 것은 교육 방법이 아니라 그 교육 방법이 사용되는 목적이다.|딛 3:10에서 누데시아는 "이단에 속한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필립스(phillips)는 본절을 '만일 두번씩 경고한 후에도 끝내 논쟁적이면 그 사람을 거절하라'라고 의역했다.|(참조: J. H. Thayer; F. Selter)
권면하다
nouqetevw
경고하다 to warn, 충고하다 advi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누데테오(Hom.Ⅱ., 13, 732; Od., 2, 124)는 '이해시키다, 바로잡다(고치다), 명심하게 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누스, 또는 의지와 성질에 대한 영향력의 발휘를 묘사하며, 저항이 있음을 암시한다. 훈계, 충고, 경고, 상기시킴, 가르침, 자극 등의 방법으로 인하여 사람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고 행동을 교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훈계하다, 권고하다, 경고하다, 진정시키다(달래다), 생각나게하다, 교정하다, 징계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이 단어는 기본적인 도덕 방법을 나타낸다. 필로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견책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다. 이 단어에 내포된 개념은 형벌이 아니라 개심(改心)하게 하는 도덕적 호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제적으로 마음을 감동시킨다, 즉 '훈련한다' discipline라는 의미를 얻게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누데테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4개의 히브리어 역어로 사용되었다. 삼상 3:13에서 누데테오는 카하의 피엘형 역어로 '고치다, 교정하다'를 의미한다. 욥 4:3에서 누데테오는 야사르의 피엘형의 역어로 '훈계하다, 징계하다'를 의미한다.|욥 23:15; 욥 37:14; 욥 38:18; 욥 34:16에서는 빈의 피엘과 칼형의 역어로, '스스로 가르침을 받다, 이해하다'를 의미한다.|누데테오는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욥 40:4에서 하나님이 징벌하는 자를 의미하며, 욥 30;1; 욥 36:12에서 '경고하다, 교정하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누데테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바울서신과 누가가 바울의 설교를 기록한 행 20:31에서만 나타난다.|행 20:31에 의하면 누데테인(훈계하는 것)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영혼 치유의 중요한 부분이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생존을 위하여 끊임없는 열심을 갖고 신실하고 모범적인 교회 지도자로서 일하였고 모든 개인을 대신하여 수고하였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게하였다"(행 20:31).|고전 4:14에서도 누데테인은 동일한 역할을 한다. 그는 고린도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한다". 권고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바로 잡기 위해 하는 말이다. 비록 그가 징계와 비판적인 기분으로 그들에게 편지를 써야 하지만 이것은 그들을 위한 사랑과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골 1:28에서 누데테오는 그리스도를 선포함에 대한 언급에서 디다스코($1321)와 결부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훈계와 가르침은 지식과 행동이 언제나 짝을 지어 나타나는 것처럼 불가분리적으로 함께 속한 것이다. 이 가르침과 훈계 사역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다.|골 3:16에서도 누데테오는 디다스코($1321)와 나란히 나타난다.|교회의 구성원들을 권면하는 것은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과 장로들의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는 이 사역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깨달아야 한다. 영적 상담의 한 형태인 권면은 서로 서로를 향한 온 교회의 과제이기도 하다.|롬 15:14에서 바울은 로마 교인들은 선함이 가득하여 복음 안에서 가르침을 잘받아 지식이 충만함으로 능히 서로 권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마 교회와 같이 행한다면 영적으로 건강한 것이다.|교회는 각 개인들이 이에 순종치 않을 때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바의 악함을 깨닫고 다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하여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교회는 목회자들을 통하여(살전 5:12), 또는 교인들 상호간의 사역을 통하여(살전 5:14) 서로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살후 3:14이하에서 권고는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훈계하는 것도 된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참조: F. Selter; J. Behm)
월삭
noumhniva
초승달, 신월, 월삭.||#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누메니아는 네오스($3501)와 멘($3376: 일개월 a month)에서 유래했으며, '초승달, 신월' new-moon을 의미한다. 누메니아는 초생달이 뜨는 음력 초하룻날을 가리킨다.|70인역본에서 누메니아는 약 35회 나오며, 월삭 명절에는 나팔을 불고 여러가지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기쁨을 나누었다(민 10:10; 민 28:11-15). 회복된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기록에 의하면 월삭에 왕이 성전 안뜰의 동문을 열고 그 곳에서 정한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겔 45:17; 46:1-6).||#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누메니아는 신약성경에서 골 2:16에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여기서 월삭은 거짓 교사들에게 악용된 율례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