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novmo"
율법, 법 Law, 규범 nor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명사 노모스(Hes. 이래)는 네모(%1056: 할당하다, 분배하다, 지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타당하거나 올바른 것, 어떤 자에게 할당된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노모스는 모든 종류의 '인정되거나 기존한 규범, 규정, 질서, 관습, 관용법, 전통' 등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본래 종교적이며, 제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든 소유는 신들로부터 온다고 생각되었으며, 신들이 우주의 질서와 인간 관계의 질서를 유지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법이 신과 관련된다는 보편적 확신이 전 역사를 걸쳐 발견되며 이것은 심지어 법의 순수한 인간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시대에도 잠재 의식적으로 지속되었던 사상이다. 이 개념은 제사, 결혼, 가정, 학교, 식사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방면을 포함한다.||(b) 정치적 영역에서 노모스는 도시 국가의 가장 본질적 특징, 곧 사법상의 규범, 법적 관습, 토지법으로 생각했다. B.C. 56세기 경부터 노모스는 복수 로모이(법률)라고 기록되었고, 거기서 '성문법, 헌법, 국가의 강제법'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c) 필로는 스토아의 전통을 따라 노모스를 하나의 우주적인 법으로 이해했다. 필로는 구약성경의 율법과 세계의 질서의 합치에 관심을 가졌다(Gutbrod 1053; Monsengwo Pasinya 193).||#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30회 나오며, 그 중 약 200회 가량 토라(구약성경 220회)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밖에 다트(교령, 법, 16회), 호크(제정된 것, 규정, 습관, 율법, 법령, 4회), 훅카(규정된 것, 규례, 법령, 8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토라의 의미가 넓은 범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일반적으로 정결과 부정에 관한 개개의 질문들에 대한 제사장들의 지시.|(b) 시내산에서 수여한 언약의 율법의 개개 계명들, 특히 제사장 문서에서 제의적 명령들.|(c) 언약 율법 전체(신명기에서 최초로 나타남). 전체 율법의 의미에서의 토라는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즉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그의 언약을 인치신 하나님의 요구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토라는 언약으로 이미 세워진 이스라엘의 '법' 혹은 '교훈'이다.|토라의 계명들을 지키므로 비로소 구원이 성취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주 처음부터 토라는 '법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르침' 대신에) '법'이라는 번역이 반드시 '법률적' 이해를 암시하지는 않는다. 구약성경의 알렉산드리아 번역자들은 토라의 역어로 노모스를 선택했을 때 토라를 "법률적으로" 이해했는가? Gutbrod에 따르면 70인역본에서 노모스의 용법은 토라에서 나중에 두드러진 '법률'의 뉘앙스가 '승리를 거두어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J. Schmid의 지적은 훨씬 더 예리하다: 노모스의 선택은 토라의 의미에 있어서 변화의 증거이다. 그것은 인류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을 포함하는 계시의 그 부분에 국한한다(LTK Ⅳ, 818). M. Pasinya는 이 견해에 강력히 반대하여, "...노모스는 고전적인 그리스의 법률적·사법적 의미에서의 '법'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응하는 히브리 용어 토라의 원래의 의미에 부합하는 '지식, 가르침, 신조'를 의미한다..."고 한다. M. Pasinya는 신 17:10의 노모데테오 같은 용어를 해석할 때 시편의(의심할 여지없는) 후대의 번역에 비추어 '지시하다, 가르치다'라는 의미까지 확장한다(131 이하). 그에 따르면 70인역본에서 노모스는 '지시/ 가르침', 실로 '계시'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다면 70인 번역자는 당시 노모스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이탈해 있는 셈이 될 것이다.|그러므로 70인역본에서 노모스는 대부분의 경우 '법'(law)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하지만 70인역본이 '법적' 개념의 증거를 제시하는지의 여부 및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제시하는지는 문제로 남아있다. 어쨌든 70인역본 역자들이 복수형 토로트를 거의 절대적으로 단수형 노모스로 번역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복수형 노모이는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예컨대 에스드라하 19:13에서 시내에서 주어진 율법에 대해 사용된다. 이와 달리 잠 1:8의 복수형은 무사르, 즉 아버지의 '가르침'을, 잠 6:20의 복수형은 미츠와트 즉 아버지의 '명령'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91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119회, 로마서 72회, 갈라디아서 32회, 고린도전서 9회). 바울 서신 외에 노모스는 사도행전(17회), 요한복음(14회), 히브리서(14회), 야고보서(10회), 누가복음(9회), 마태복음(8회)에 사용되었다.|신약 시대에 노모스는 일반적으로 '법, 법률, 율법'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요 1:17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서 율법과 비교되고 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예수님은 그의 모든 언행에서 율법의 중개적 지위를 제거하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을 열으셨다.||(b) 세례(침례) 요한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증언은(마 11:3; 참조: 마 11:7-19) 상승하여 자신에 대한 간접 증거가 된다(마 11:13; 참조: 마 11:11-15). 세례(침례) 요한은 하나님 통치의 한 시대를 종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들 중에 직접적으로 임하는 새 하나님의 통치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참조: 말 4:5; 마 17:10-13; 요 1:21; 눅 1:17) 다시 온 엘리야이다(참조: 마 11:14). 이리하여 선지자들과 율법의 설교와 가르침은 그 목표 Goal에 도달하고(마 11:13) 종결된다. "선지자들과 율법"이 여기서 어느 정도 외형적으로는 구약성경의 구성 요소로 여겨지나, 그 중요한 언급은 구원사적인 내용에 대한 것이다. 여기의 어법에서 주목되는 바는 선지자들이 율법보다 그 서열이 앞이라는 것과 양자 모두 선포하고, 설교하고, 예언한다는 동적 관점이다. 그 병행구인 눅 16:16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구원사적 모든 계획에 삽입시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래로 하나님의 왕국은 대승리의 소식처럼 직접 선포된다.||(c) 마 5:17; 마 5: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독선적인 태도에 대항하시지만 (롬 7:12; 참조: 마 5:19-20) 율법에 대항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이미 그의 할례시부터 행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계속 행하셨듯이 일생동안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세세히 성취하셨다(마 5:17; 참조: 마 3:15). 심지어는 그의 정죄 받으심도 당시의 유대법에 따른 것이었다(요 19:7). 마찬가지로 율법의 불가침성은(마 5:18; 눅 16:17) 율법의 윤리적 해석 전문가들이며, 바리새인들의 신학적 지도자들이었던 율법 교사들과 대화하시는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예수님은 율법이 두 큰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견해를 공유하셨으나(마 22:36; 눅 10:26; 참조: 마 22:34-39), 두 계명 내의 바리새인적 가치 등급은 찬성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그의 되풀이되는 외침 "화 있을진저!"(마 23:23; 참조: 마 23:13-16; 마 23:25; 마 23:27; 마 23:29 등)에서 그는 그들이 율법의 근본적 의도인 이른바 의와 인과 신(믿음 faith, 마 23:23)을 인식하지 못함을 책망하셨다.||(d)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노모스는 일반적으로 성경의 일부인 율법 전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율법"(마 5:18; 마 12:5; 눅 2:27; 마 10:26; 마 16:17), '율법이나 선지자'(마 5:17); "주의 율법"(눅 2:23; 눅 2:24; 눅 2:39), "모세의 법"(눅 2:22; 행 28:23,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 24:44) 등이다.||(e) 눅 10:26-37에서 어떤 율법사와 예수님께서 서로 묻고 대답한다. 여기서 단지 예수님과 친교하고, 그의 사랑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따르는 것 만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눅 10:37). 이와 같이 그의 부활을 따라 행위로 인한 의를 주장하는 생각으로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에서, 그리고 자유로이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자의 자유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뿐이다. 바울은 또한 율법의 절대성과 율법 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상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른다. 그는 그가 개종한 바리새인이기에 일어나는 감정적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빌 3:5-11), 그가 그리스도의 유일하심과 새로우심을 보았기 때문에 이 입장을 취하였다.||(f) 바울은 노모스를 모세 오경의 뜻으로(롬 3:21; 갈 4:21), 성경 전체의 뜻으로(롬 3:19; 고전 14:21), 특히 모세 율법의 뜻으로,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는 십계명의 뜻으로(롬 2:14; 롬 2:17; 롬 3:28; 롬 7:12; 갈 5:3) 사용하였다. 롬 2:14 하반절은 "이방인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의미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2:15 참조). 그런데 칼 바르트는 이 구절이 렘 31:33의 새 언약의 예언의 성취를 통해 "그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가진 이방인 개종자들을 언급한다고 주장한다.|바울도 노모스를 율법의 일부를 가리킬 때(예: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혼 율법, 롬 7:2), 그리고 대개 속격으로 한정하여 비유적 의미로 사용한다(예: 롬 3:28,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명; 롬 7:23; 롬 7:25; 롬 8:2; 갈 6:2, 기원의 속격; 롬 7:23, 규칙적 원리). 바울은 때로 율법을 의인화한다: 율법은 말하며(롬 3:19), 말을 남기며(롬 7:7; 고전 9:8), 일하며(롬 4:15), 다스린다(롬 7:1). 이렇게 함은 그가 율법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사상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변자임을 나타낸다.|바울은 율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배경에서 본다.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예수님은 율법이 모든 사람을 정죄함을 확인하셨다. 그는 저주가 되었다(갈 3:13; 참조: 신 21:23).|이 진술들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행하신 의도신 대속 행동을 나타낸다.|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셨으니 이제 구원은 우리가 어떤 조건들에 부합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성취되었다는 단순한 사실에 달려 있다(롬 3:31).||(g)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다(고전 9:20b). 그는 자유로이 "율법 없는 자들에게 율법 없는 자 같이"될 수 있다. 그는 또한 자유로이 사랑 안에서 율법을 완성할 수 있으며(롬 13:10b; 갈 5:14; 갈 5:22),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 곧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자유로이 될 수 있다(고전 9:20). 그러한 사랑의 창조자와 고취자 되시는 이는 그리스도인을 율법과 육체 및 그 결과인 죄와 죽음의 영역에서 옮기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영(Spirit)이시다(롬 8:4; 갈 5:18; 갈 5:22).||(h)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위한 율법의 종말이요 목표이기 때문에(롬 10:4) 이를 테면 바울은 자기의 유리한 고지로부터 뒤돌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며 또한 율법은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의 유효한 기능을 가진다고(롬 5:20 이하; 갈 3:19-29) 묘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며(롬 7:12)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 중의 하나였다(참조: 롬 9:4; 여기서 노모데시아는 '율법을 줌'을 의미함).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고(롬 5:20; 롬 7:8-13; 고전 15:56),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탈출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율법과 죄 아래 "가두려고"(갈 3:22 이하) 하나님에 의해 죄있는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고(갈 3:19) 가입된 것이다(롬 5:20).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롬 5:20) 그의 아들됨의 선물(갈 3:25 이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고 생각만하여도 끔찍하다.||(i) "율법으로"(엔 노모, 롬 2:12b) 하나님 앞에서 서는 개인은 다음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율법은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갈 3:10; 신 27:26의 인용임). 율법을 행하는 자만이 살 것이요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나(갈 3:12b; 레 18:5의 인용임; 롬 2:13b) 행하지 않는 자는 정죄 받는다(갈 3:10; 롬 2:12b). 아무도 율법을 듣거나 아는 것 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지 못한다(롬 2:12; 롬 2:13).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면 살려져야 하는데, 율법은 살리지 못하였으나(갈 3:21; 롬 7:9이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살려진다(갈 3:26 이하). 이리하여 율법은 죄와, 신앙은 약속과 관련된다. 그렇지만, 율법은 언약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갈 3:17) 교육적 역할을 하여 구속사와 개인적 체험에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신앙으로 인도한다. 율법은 파이다고고스("몽학 선생", 갈 3:24; 갈 3:25)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소년 지도자"를 뜻한다. 파이다고고스는 대개, 학생을 학교로 데리고 가서 그의 행위를 일반적으로 감독하는 임무를 맡은 노예였다(Arndt, 608; 가르치다의 파이듀오). 율법은 무서운 죄의식을 자아낼 뿐 구원하지 못하나(롬 3:20; 롬 7:7), 사람이 길을 잃은 상태에서 도움을 구하며 부르짖게 하는데(롬 7:24),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부르짖음에 효과적으로 응답하실 수 있다(롬 7:25).||(j) 롬 2:12; 롬 2:13,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이" 범죄한 자, 즉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인간이나 기독교 범주 밖의 인간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지 못한다.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의를 행하였는지에 따라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데(참조: 롬 2:6 이하), 이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 때문에 선을 알 수 있는 까닭이다(롬 2:15; 참조: 롬 1:32). 이리하여 율법을 행하는 유대인은 선을 행하는 이방인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요(롬 2:13; 롬 2:7), 율법 아래서 죄를 짓는 유대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다(롬 2:12b; 롬 2:9). 그들이 유대의 율법 안에서 살든 밖에서 살든, 두 그룹이 모두 그들의 행위에 따라 동일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롬 2:11 이하; 롬 2:16). 파멸과 사망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는데(롬 3:23; 롬 3:27; 롬 7:10; 롬 7;11; 롬 7:13), 이는 아무도 자기가 선으로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던 까닭이다(롬 3:23; 롬 7:18 이하; 롬 7:21).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존돼 있으므로 인간은 율법의 행위 없이(롬 3:28) 또한 율법을 떠나서 이를 믿음으로 소유해야 한다(롬 3:25 이하; 롬 3:29 이하).||(k) 롬 8:3; 롬 8:4,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육신은 순종할 수 없는, 자율적이라고 자인하는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율법의 근본적 약점을, 곧 죄에 대한 율법의 유일한 응답은 죄를 금하는 것이요 죄를 정죄하는 것일 뿐임을 나타낸다. 율법은 연약한 육신의 협력에 의존하는고로 죄를 극복할 수 없다. 율법은 이 세상의 구성의 일부인고로 우리를 그 이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롬 8:4). 율법은 본래 죽이는 문자이나, 새 언약의 생명은 살리는 영이다(롬 7:6; 참조: 고후 3:6).||(l)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성령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사랑의 계명이 이제 "그리스도의 법"이라 불리워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여호와의 토라대로 친히 사신 주께서 이제 사람들을 영적인 생활로 향상시키어 그들에게 그 성취를 요구하실 수 있다(참조: 고전 9:21).||(m) 고전 9:8 이하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그가 물질적으로 교회의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 25:4을 비유적으로 사용한다.|고전 14:21에서 그는 방언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신 28:49과 사 28:11-12에서 인용한 글을 결합한다.|고전 14:34에서 그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그의 명령을 지지하기 위해 창 3:16을 언급한다-그런데 이 명령은 일반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특별히 방언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여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를 내세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의 생명은,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 죄이다"가 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는 원칙에 의해 통제 받는다(참조: 롬 14:23).||(n) 히브리서에서 노모스는 히 7-10장에서만 나오며, 심지어 거의 전적으로 구약성경의 제사장직을 규정하는 율법으로만 나온다(히 10:28은 제외). 카타(톤) 노무("율법을 따르는")인 것은(히 7:5; 히 7:16; 히 8:4; 히 9:19; 히 9:22; 히 10:8)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의 제사장의 율법의 마침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이전의 계명의 '폐지'(아데테시스)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히 7:18; 참조: 히 10:9). 율법은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 제사가 육체를 깨끗케 하는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므로 연약하다. 한편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게 한다(히 9:11-14; 히 10:4). 새 언약은 옛 언약을 결정적으로 폐지한다. 렘 38:33[70인역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의 법을 마음에 두시기 때문이다(히 8:10; 히 10:16). 이 법은 옛 언약의 제의적 율법과 같지 않다. 모세 율법의 도덕적 계명을 만족시키는 면에서 이 하나님의 법이 어디까지 중첩되는지는 깊이 고려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율법의 긍정적인 면은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이었으며, 항상 다가오는 좋은 것의 그림자를 지녔다는 사실에 있다(히 10:1).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묘사하 때 구약성경의 제사장직의 제의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제의적 범주를 근본적으로 깨뜨린다.||(o) 야고보서 역시 바울의 역사적 영향 아래 고찰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 자신이 잘못 이해된 바울 사상에 대하여 변론할 때(약 2:14-26) 특이하게도 그는 노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언급한다(약 1:25; 참조: 약 2:12). 이 율법은 확실히 구약성경의 율법과 단순히 동일시될 수 없는 것이다(Gutbrod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구약성경 율법과 구별한다). 그러나 노모스 바실리코스로서 그것은 성경에(카타 텐 그라펜) 기초한다. 즉 레 11:18의 사랑의 계명에 기초하며(참조: 갈 5:14; 롬 13:8-10) 그 자체가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약 2:10은 갈 3:10; 갈 5:3을 생각나게 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러나 이 구절은 바울이 지적한 결론을 끌어내지 않는다. 야고보는 전체 율법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약 2:9은 롬 2:23-27(또한 롬 4:11을 보라)을 상기시키지만, 그것은 신학적인 논증의 형태에서가 아니라 용어법상에서만 그렇다.||(p) 요한 역시 자신의 독특한 변증법적 방식에서 노모스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연속성과 비연속성 양자 모두를 암시한다. 요한은 시편의 한 말씀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곳에서 율법에 기록된 말씀에 대해 말할 때(요 15:25) 성경의 성취에 대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노모스는 전체 구약성경을 가리킬 수 있다(또한 요 10:34; 요 12:34을 보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하므로 성경을 연구하라고 훈계하신 직후(요 5:39) 모세가 자신에 대해 기록하였으므로 모세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고발한다고 말씀하신다(요 5:45 이하). 그러나 모세는 좁은 의미에서 율법을 대신한다(요 7:23). 예수님을 증거하는 점에 있어서 성경과 율법의 기능이 거의 완전히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하신다(요 8:17; 요 10:34; 또한 요 15:25 이하, "저희 율법").|그리스도께서 "너희 율법"(요 8:17; 요 10;34)과 "저희 율법"을 되풀이하여 사용하심으로 보아 아들은 율법에 종속되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정당화를 위해서만 모세에게 호소하며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셨다(요 7:19; 참조: 롬 2:17-24). 치유와 용서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에 그는 그들이 율법에 대하여 아는 체하며 자만하는 태도를 질책하셨다(요 7:23; 요 8:5 이하).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 대한 구절(요 7:53-8:11)은 예수님과 율법에 열정적인 그의 대적들 사이의 긴장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에 대한 증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율법 혹은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사용하신다(요 8:17; 참조: 신 19:15; 신 10:34; 참조: 시 82:6). 반면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저 문자 곧 규율과 규칙에 불과하였다(요 5:39; 12:34; 참조: 시 110:4; 사 9:7; 겔 37:25; 단 7:14).|어느 정도까지 율법 취급이 전문가들의 일이 되었고 따라서 교묘하게 이용되었는지는 예수님을 잡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산헤드린에서의 논의에서 보여진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요 7:49)하고 바리새인들은 말하나,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고데모는 그들이 스스로 율법을 무시하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요 7:51).|그렇다면 불신자들도, 따라서 눈먼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의 율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율법은 생명이 있는 자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요 11:25; 요 14:6). 그러므로 율법은 그들의 심판-바울에게서 발견되는 개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인간을 자신의 힘과 공로를 의뢰하도록 이끄는 윤리적 규범으로서의 율법에 관심이 없다"(Pancaro 528). 요 1:17은 대조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댓구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 반대로 은혜와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재가 된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이 진리가 계시되기 때문이다. "'진리'는 율법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인정하도록 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것은 순전히 선지자적인 혹은 교육적인 기능을 가진다"(Pancaro 539).|(참조: H. Hubner; H. -H. Esser; W. Gutbr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