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치
xuvlon
목재 wood, 막대기 pole, 교수대 gallows, 나무 tree, 십자가 cro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쉴론(Homer 이래)는 살아있는 나무나 죽은 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크쉴론이 '살아있는 나무'(tree)라는 의미로는 드물게 사용되었다.|크쉴론은 보통 건축 자재, 연료, 그리고 도구들과 제의 기구를 만드는데 사용된 재료로서의 '나무나 목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Dem.45, 33; Hesiod, Works 808). 그리고 몽둥이, 곤봉, 및 노예와 정신이상자와 죄인들에게 사용하는 막대기, 받침대, 마구(collar)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 고문과 처형 기구에 대해 사용되었다. 크쉴론은 비유적으로 '무표정하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크쉴론은 70인역본에서 약 280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에츠(나무, 수목, 목제품, 줄기, 막대기, 교수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는 일반 헬라어에서보다 '살아있는 나무'(tree)라는 의미로 더욱 자주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과수, 삼나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창 1:11; 시 14:8; 시 1:3), 그리고 각종 나무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9) 등이다.|살아있는 나무들은 또한 제의의 장소이며,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강하게 공격했다(렘 3:6; 렘 3:9; 렘 3:13).|크쉴론은 죽은 나무라는 의미에서 '목재, 연료, 건축 자재'(창 6:14; 출 25:10이하; 왕상 6:15), 고문 기구(참고: 욥 33:11)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쉴론은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나무 wood. 눅 23:31에서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는 길에 말씀하신 것은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대조시킨 것으로서 매우 돋보인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예수님은 자신을 푸른 나무에 비교하고, 유대인들은 마른 나무에 비교하신다. 그는 지금 십자가와 죽음으로 가는 길에 계셨다. 만일 그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은 나무처럼 심판의 화염 속에서 타버리겠는가? 무죄하신 예수님이 그런 운명에 처하신다면 죄많은 예루살렘은 어떤 운명에 처하겠는가?(참조: J.M.Creed)|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사이의 대조에는 시간의 요소도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만일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고전 3:12에서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사람들, 특히 교사들에게 엄숙히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여기에서 나무라는 말은 금에서 짚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재료에 관한 문맥에 나타난다. 바울은 그들이 전체 활동에 임하는 심판을 언급한다. 교회에는 오직 하나의 터(기초 Foundation)만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여하한 인간도 공동체를 위한 다른 어떤 기초도 닦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기초 위에 여러가지 형태의 건물들을 지을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불로 시험받게 될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 상을 받을 것이나, 비록 그 터가 남아 있다하더라도 나무나 짚처럼 소멸해 버릴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사람의 공적은 다 타버릴 것이나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라.|크쉴론은 계 18:12에서 목재를 의미하며 땅의 상인들의 상품들 중에 나타나는데, 바벨론의 멸망 후에 이미 살 수 없는 것이 되었다.||(b) 무기, 곤봉 cudgel. 마 26:47; 마 26:55; 병행구, 막 14:43에서 크쉴론은 무기로 나타난다: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c) 착고 stocks. 행 16:24에서 크쉴론은 죄수의 발에 채우는 '착고'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d) 십자가 cross. 신약성경에서 크쉴론의 독특한 용법은 '십자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행 5:30; 행 10:39; 행 13:29에서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행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이 말은 신 21:23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벌의 수치스러움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나무에 달린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 있어서 아마도 가장 모욕적인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심으로써, 그의 위엄을 나타내셨다.|갈 3:13에서 크쉴론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신 21:22에 따라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속하셨음을 보여 준다. 저주는 율법을 깨뜨린 사람들에게 임한다. 그렇지만 율법을 깨뜨리지 않은 그리스도는,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죽은 그의 죽음이 분명하게 말해주듯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저주와 이 저주가 수반하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지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당하셨고 그의 죽으심으로 그것을 파괴하셨다(참조: 고후 5:21).|벧전 2:24에서도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이 구절은 분명히 사 53:4; 사 53:12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대리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 나무, 곧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몸이 죽임을 당한 장소이다.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죄는 제거되었다.||(e) 생명나무. 계 2:7에서 크쉴론은 "생명나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되었던 것이 새 창조 세계에서 허용된다.|계 22:2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서는 생명수 강 양편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계 22:2).|계 22:14; 계 22:19에서 의로운 사람만이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며 나무로 된 처형 기구로서의 십자가와 대조된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는 여전히 계속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지고가서 수난과 죽음을 극복하신 장소이므로 그는 죄와 죽음을 이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다(계 22:14).|(참조: B. Siede; J. Schne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