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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노토스
nw'to"
등, 뒷잔등.||#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노토스(Homer 이래)의 어원은 불확실하며 '등, 뒷잔등' back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노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테프(어깨, [산] 측면, 경사), 오레프(등, 목)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노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1:10에 한번 나온다: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우거하는 집
xeniva
거주하는 장소나 방||#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세니아(Homer 이래)는 크세노스($3581: 외국의, 외국인, 손님)에서 유래했으며,||(a) '환대, 호의적인 영접',|(b) '손님이 우거하는 곳, 손님방'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세니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빌레몬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행 28:23에서 바울이 '거하는 곳'을 가리킨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b) 몬 1:22에서 바울은 자기가 '거처할 방'을 준비해 주기를 부탁한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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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다 entertain hospitabl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세니조(Homer 이래)는 크세노스($3581: 외국의, 낯선 사람, 손님)에서 유래했으며,||(a) '손님으로 영접하다, 환대하다', 수동태로는 '환대로 영접받다, 손님으로 머물다, 머물다, 숙박하다',||(b) '낯설다, 놀라다, 이상하게 생각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세니조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도행전(행 10:6; 행 10:18; 행 10:23; 행 10:32; 행 21:16; 행 28:7)에서 이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사역에 환대(hospitality)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이유에서 환대는 히 13:2에서 미덕으로 언급된다. 환대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도 기억하라.||(b) 히 13:2은 창 18-19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람(창 18:1 이하)과 롯(창 19:1, 18, 21)이 천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신 하나님을 영접하였다. 환대는 고대에 높이 평가된 미덕이었다. 그 기초는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과 그 결과 환대에 대한 의존이었다. 이것은 "문화적 역사적 결과"를 가져왔다(Stahlin 3): 외인은 일차적으로 싸워야 하는 적이다. 그러나 곧 환대가 적대적인 외인에 대처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공한다는 것이 명백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법익 피박탈자(out-law)는 종교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외인의 취약성(창 9:4-6)과 환대의 의무(창 19장; 신 14:29)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무는 구약성경에서, 예컨대 사 58:7에서처럼 단 몇 회만 언급된다. 이 구절에서 이 의무는 나열된 다른 여러 '친절한 행동'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어 있다. 보다 자주 언급된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은 최우선의 원리라기보다 환대의 일면들이다.|그러나 이러 저러한 형태의 환대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세계로부터 우리가 접하는 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친절한 행동을 열거한 거의 모든 경우에서 발견된다(이 주제에 대해 Friedrich 164-72를 보라).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환대에 큰 관심을 둔 데는 보다 넓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참조: 롬 12:13).|① 이스라엘과 구약성경에서의 이 미덕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② 초기 기독교 선교 사역 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 자신이 이 환대에 의존했다는 사실(참조: 눅 10:38; 막 2:15; 막 14:3 등).|③ 여러 비유들과 말씀에서 하신 예수님의 선포(참조: 마 22:1-마 22:14; 눅 14:7-눅 14:14; 특히 눅 14:12; 가장 분명한 것으로, 마 25:31-마 25:46, 여기서 외인을 향한 환대의 요구는 자비로운 행동의 목록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c) 일반 헬라어에서 이미 이 동사는 보다 추상화되어 '나그네, 외인, 낯선 사람이다'라는 이차적인 의미를 획득하였다. 이런 의미는 크세노스($3581)가 '손님'과 '낯선 사람'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데서 기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므로(참조: 엡 2:19), 이 세상에서 나그네, 외인들이다. 그러므로 저들의 세상적인 아닌 태도는 세상 사람들에게(벧전 4:4) '낯설게 보인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한다. 이 핍박은 세상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존재하는 소원(alineation), 즉 적의(animosity)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당할 때(벧전 4:12),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된다(참조: 행 17:2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H. Friedrich).
나그네를 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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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다 be hospitab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세노도케오(Maximus Tyr.)는 크세노스($3581: 외국의, 낯선 사람, 손님)와 데코마이($1209: 받다, 영접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손님이나 낯선 사람을 '친절히 영접하다, 환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세노도케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5:10에 한번 나온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것이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식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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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외국의, 낯선 사람, 외국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크세노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형용사로는 '낯설은' strange, '외국의' foreign,|(b) 명사로는 '낯선 사람' stranger, '외국의' alien를 의미한다.||「참고: (a) 원시 사회에서 낯선 사람은 원래 적으로 보았다.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지 못하므로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두려움과 상호간의 저항이 이방인에 대한 태도이자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지닌 태도의 특색이다. 낯선 나그네들은 종종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었고, 죽임을 당하거나 주술적 관습의 위협을 받아 내쫓기었다.|후기에 원래 공포에서 발전한 낯선 나그네들과의 관계 유형이 생겨났다. 이 낯선 나그네는 신들이 보낸 사자(messenger)로 생각되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나그네들은 도움의 손길과 환대를 받았다. 이리하여 낯선 나그네들은 종교와 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b) 헬라인들에 있어서 낯선 사람이나 외국인은 본래부터 그들의 공동체가 크든 작든 자신들의 공동체에 소속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호머 시대의 낯선 사람과 거지는 제우스(Zeus) 신으로부터 온 것이다(Od., 6, 207 이하).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헬라인들은 낯선 나그네들이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으로 취급당하거나 헬라 사람들의 마음대로 나그네들을 대할 때, 야만성을 나타내는 표시로 간주하였다. 특히 아테네 사람들은 낯선 나그네들에 대하여 개방적 태도를 보였다(참조: Soph., OC).|그러나 종교면에서는 이방 지역에서 온 물건들의 사용을 보편적으로 회피하였으며, 낯선 나그네들은 헬라인들이 드리는 제사에 참예하는 것이 배제되었다. 스파르타(Sparta)는 주전 600년 이후의 시기에 시행된 엄격한 개혁과 아울러, 그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던, 낯선 나그네에 대한 규제의 결과로 낯선 나그네에 대해 특히 적대적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낯선 나그네들은 제우스 히케시오스(Zeus hikesios), 즉 간구자들의 보호자인 제우스(Zeus)와 또한 디오스쿠리(Dioscuri)의 보호 하에 있었다. 이방인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누구든지 에리네스(Erinyes)의 진노를 받아야 했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사실이었다. 신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역시 낯선 나그네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성전과 제단은 거기에로 피난을 원하거나 제사장들의 보호를 구하는 낯선 나그네를 위한 수용소의 역할을 한다. 낯선 나그네를위한 첫번째 수용소는 4세기에 성소의 뜰의 인근에서 생겨났다. 예배자들은 멀리서 두루 찾아왔으며, 그래서 숙식이 제공될 필요가 있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크세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5장의 위대한 최후의 심판에 대한 강화에서 외인(나그네)에 대한 환대(마 25:35; 마 25:38; 마 25:43 이하)는 심판의 기준이 되는 친절한 행동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낯선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 신약성경에 나타난다. 외인("나그네")들은 이방인들이요 부정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부정한 장소에 매장된다: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마 27:7). 그러나 모든 낯선 자들로부터의 구별이 구약 성경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것은 모든 종교에서 기본적인 것이었다(행 17:18; 참조: 행 17:20: 헬라인들; 그러나 여기서 크세노스는 비난의 뜻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단순히 아덴 사람들의 관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b) 히 13:9,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이상한 (다른) 것을 경계해야 한다(기독교와 유대교의 소원함을 나타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가 그들에게만 유효하므로 따라서 자신들과 이방 나라들 사이에 벽을 세우고 외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 놓아둔(엡 2:12)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조하여, 이제는 그리스도교로부터 아무도 제외되지 않는다(엡 2:19). 교회 안에는 새로운 백성만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 함께 하나님의 집에 거할 권리를 가지며 "하나님의 권속들"이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벽이 제거되리라는 약속을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들은 얻지 못했으나(히 11:13), 지금은 이 약속이 성취되었다(히 11:15 이하).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이방이다(참조: 벧전 4:12). 행 17:21의 크세노스는 대조의 방식으로 중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거기서 외국인들이 ... 말하고").||(c) 주목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구절, 엡 2:19과 히 11:13에서 크세노스는 "외인"이라는 의미의 다른 동의어($394와 $3927)와 함께 나오며, 따라서 오히려 '손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각 경우에 '외국인 손님, 외인인 손님'(foreign guest)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창 23:4 등의 유사한 문맥 참조).|롬 16:23에서만 '친구'라는 의미의 크세노스가 나온다: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여기서는 "식주인"(host)을 의미할 수 있다. 가이오는 초기 기독교 선교 사역이 이것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어떤 미덕으로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 여행자들을 대접하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에서 롬 16:23이 그 교회의 모임이 가이오집에서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성이 적다(J. H. Friedrich).|(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Friedrich).
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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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타리우스, 물병.||#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세스테스(Diosc., Epict., Dit.)는 라틴어 sextarius에서 유래된 것이며,||(a) '섹스타리우스' a sextarius, 액체를 재는 그릇으로서 약 1파인트(pint) 용량이다(Joseph. Epict.).||(b) '목재로 만든 물주전자 또는 물병'(불가타역 urceus), 물이나 포도주를 따르는 데 쓰이며, 1섹스타리우스 용량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세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막 7:4; 막 7:8에 사용되었다: "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말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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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다 dry u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세라이노(Homer 이래로)는 크세로스($3584: 마른)에서 유래했으며, '마르게하다, 말리다, 시들게하다'를 뜻하며, 수동태로는 '마르다, 시들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크세라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야베쉬(마르게하다, 마르다, 시들다, 시들게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크세라이노는 식물(렘 28:36), 나무(사 56:3; 겔 17:24; 욜1:12), 물(창 8:7; 왕상 17:7; 사 19:5; 사 19:6), 마른 손(왕상 13:4)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세라이노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마르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약 1:11에서 크세라이노는 풀 위에 내려 쪼이는 태울듯한 태양의 열기의 영향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영향력은 부유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재산의 무상함에 비유된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크세라이노는 무화과 나무에 관한 설화에 나타난다: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막 11:20; 막 11:21; 병행구, 마 21:19; 마 21:20).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주는 이 예증은 당시의 유대교, 즉 열매없이 의라는 외관인 잎만 무성한 모습에 대한 저주의 말로 사용된 것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시드는 것이 즉시 효력을 발생하는데 반해 마가복음에서는 시간의 경과가 예상되는 것 같다.|요 15:6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버리워진 나무가지처럼 마른다고 한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크세라이노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분치 못하여 태양의 열기를 견뎌내지 못하는 식물에 사용되었다: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마13:6, 병행구, 막 4:6; 눅 8:6). 여기에서도 심판이란 주제가 핵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의 도래가 일반인들에게는 인식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벧전 1:24에서 크세라이노는 사 40:7의 인용문에 나오며, 시드는 것에 대한 관념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에 대조되는 인간 실존의 무상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계 14:15에서 크세라이노는 추수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맥에 나온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아마도 너무 익어버렸음을 뜻하기 위해 이 동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계 16:12에서 유브라데강의 마름도 주로 심판의 문맥에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적대자들 사이의 마지막 전투의 전조이다.|막 3:1; 막 3:3에서 손마른 사람에 관한 기사는 아마 어떤 형태의 마비 증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참조: 요 5:3).|마가복음에도 혈루병 들린 여인의 치유(막 5:29)와 귀신들린 소년의 경직된 상태(막 9:18)를 묘사하는데 이 동사의 여러 형태들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P.J.Budd).
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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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말라버린 dried u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크세로스(Hdt. 이래)는 '마른, 말라버린'을 의미한다. '마른 가지, 마른 땅'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크세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 용법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많은 경우에 크세로스는 '마른 땅'을 뜻하며(참조: 예: 창 1:9), '말라버린 바다'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욘 1:9; 학 2:21; 마카베오일서 8:23,32). 호 9:14에서 이 단어는 '젖 없는 유방'의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세로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마른'이란 의미를 나타낸다.||눅 23:31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십자가 설화 속에 삽입되어 있는 마른 나무는 시련과 고난의 시기에 대한 상징이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이 말씀은 랍비 문서에 몇 가지 병행구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이 말씀은 상서롭지 못한 시기가 오게되면,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알게되리라는 무시무시한 운명을 강조하는 것 같다.|히 11:29에서 이 단어는 홍해의 마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마 23:15의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에서 크세로스는 일반적인 땅에 사용되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용례들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관한 문맥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마 12:11; 눅 6:6에 손마른 사람에 관한 기사는 아마도 어떤 형태의 마비 증상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요 5:3).|(참조: Walter Bauer; P.J.Budd).

xuvlino"
나무로 된(만들어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크쉴리노스(Pind., Hdt. 이래)는 크쉴론($3586: 나무)에서 유래했으며, '목재로 된, 나무로 만들어진'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크쉴리노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디모데후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딤후 2:20에서 '나무로 된' 그릇을 묘사한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b) 계 9:20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을 묘사한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몽치
xuvlon
목재 wood, 막대기 pole, 교수대 gallows, 나무 tree, 십자가 cro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쉴론(Homer 이래)는 살아있는 나무나 죽은 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크쉴론이 '살아있는 나무'(tree)라는 의미로는 드물게 사용되었다.|크쉴론은 보통 건축 자재, 연료, 그리고 도구들과 제의 기구를 만드는데 사용된 재료로서의 '나무나 목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Dem.45, 33; Hesiod, Works 808). 그리고 몽둥이, 곤봉, 및 노예와 정신이상자와 죄인들에게 사용하는 막대기, 받침대, 마구(collar)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 고문과 처형 기구에 대해 사용되었다. 크쉴론은 비유적으로 '무표정하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크쉴론은 70인역본에서 약 280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에츠(나무, 수목, 목제품, 줄기, 막대기, 교수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는 일반 헬라어에서보다 '살아있는 나무'(tree)라는 의미로 더욱 자주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과수, 삼나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창 1:11; 시 14:8; 시 1:3), 그리고 각종 나무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9) 등이다.|살아있는 나무들은 또한 제의의 장소이며,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강하게 공격했다(렘 3:6; 렘 3:9; 렘 3:13).|크쉴론은 죽은 나무라는 의미에서 '목재, 연료, 건축 자재'(창 6:14; 출 25:10이하; 왕상 6:15), 고문 기구(참고: 욥 33:11)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쉴론은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나무 wood. 눅 23:31에서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는 길에 말씀하신 것은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대조시킨 것으로서 매우 돋보인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예수님은 자신을 푸른 나무에 비교하고, 유대인들은 마른 나무에 비교하신다. 그는 지금 십자가와 죽음으로 가는 길에 계셨다. 만일 그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은 나무처럼 심판의 화염 속에서 타버리겠는가? 무죄하신 예수님이 그런 운명에 처하신다면 죄많은 예루살렘은 어떤 운명에 처하겠는가?(참조: J.M.Creed)|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사이의 대조에는 시간의 요소도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만일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고전 3:12에서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사람들, 특히 교사들에게 엄숙히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여기에서 나무라는 말은 금에서 짚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재료에 관한 문맥에 나타난다. 바울은 그들이 전체 활동에 임하는 심판을 언급한다. 교회에는 오직 하나의 터(기초 Foundation)만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여하한 인간도 공동체를 위한 다른 어떤 기초도 닦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기초 위에 여러가지 형태의 건물들을 지을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불로 시험받게 될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 상을 받을 것이나, 비록 그 터가 남아 있다하더라도 나무나 짚처럼 소멸해 버릴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사람의 공적은 다 타버릴 것이나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라.|크쉴론은 계 18:12에서 목재를 의미하며 땅의 상인들의 상품들 중에 나타나는데, 바벨론의 멸망 후에 이미 살 수 없는 것이 되었다.||(b) 무기, 곤봉 cudgel. 마 26:47; 마 26:55; 병행구, 막 14:43에서 크쉴론은 무기로 나타난다: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c) 착고 stocks. 행 16:24에서 크쉴론은 죄수의 발에 채우는 '착고'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d) 십자가 cross. 신약성경에서 크쉴론의 독특한 용법은 '십자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행 5:30; 행 10:39; 행 13:29에서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행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이 말은 신 21:23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벌의 수치스러움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나무에 달린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 있어서 아마도 가장 모욕적인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심으로써, 그의 위엄을 나타내셨다.|갈 3:13에서 크쉴론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신 21:22에 따라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속하셨음을 보여 준다. 저주는 율법을 깨뜨린 사람들에게 임한다. 그렇지만 율법을 깨뜨리지 않은 그리스도는,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죽은 그의 죽음이 분명하게 말해주듯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저주와 이 저주가 수반하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지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당하셨고 그의 죽으심으로 그것을 파괴하셨다(참조: 고후 5:21).|벧전 2:24에서도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이 구절은 분명히 사 53:4; 사 53:12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대리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 나무, 곧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몸이 죽임을 당한 장소이다.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죄는 제거되었다.||(e) 생명나무. 계 2:7에서 크쉴론은 "생명나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되었던 것이 새 창조 세계에서 허용된다.|계 22:2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서는 생명수 강 양편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계 22:2).|계 22:14; 계 22:19에서 의로운 사람만이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며 나무로 된 처형 기구로서의 십자가와 대조된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는 여전히 계속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지고가서 수난과 죽음을 극복하신 장소이므로 그는 죄와 죽음을 이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다(계 22:14).|(참조: B. Siede; J. Schneider).
깍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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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 깍다, 면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쉬라오는 후기 어형이며, Diod.이래 사용되었고, 초기의 Hdt. 이래 사용된 어형은 크쉬레오(%278)이다.|크쉬라오는 크쉬론(%277: 면도칼)에서 유래했으며, '베다, 깍다, 면도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쉬라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머리를 '깍는 것'을 의미한다.||(a) 행 21: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b) 고전 11:5; 고전 11:6,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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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8는 남성, %874는 여성, %875는 중성.||관사 호는 그, '이것, 이 사람, 저것, 저 사람'을 뜻하며 '관사, 지시명사, 대명사, 관계대명사' 등 여러가지 용법이 있다.|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9,900여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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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eight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기수 옥도에콘타(Thu. 이래)는 옥도오스($3590: 여덟번 째)에서 유래한 기수이며, '팔십, 여든' eigh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기수 옥도에콘타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2회 나온다.||(a) 눅 2:37에서 여선지자 안나에 대해 사용되었다: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b) 눅 16:7에서 채무 증서에 관해 사용되었다: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덟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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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째 the eigh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옥도오스(Homer 이래)는 오크토($3638: 여덟)에서 유래한 서수이며, '여덟 째' the eight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옥도오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59에서 예수님의 할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b) 행 7:8에서 이삭의 할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참조: 창 21:4).||(c) 벧후 2:5에서 하나님은 팔대 손 노아의 생명을 보존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여기서 옥도오스는 "일곱"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여덟번째'를 의미하며, 서술적 대격 형용사(서수)이며, 보통 아우톤과 함께 사용되는 고전적 관용구이다.||(d) 계 17:11에서 짐승이 '여덟 째' 왕이라고 한다: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e) 계 21:20에서 거룩한 성곽의 기초석의 여덟 째는 녹옥이라고 언급한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무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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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 무거운 것.||#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옹코스(Homer 이래)는||(a) '덩어리' mass, '무거운 것' weight, '컴퍼스' compass(soph.), '짐' burden, '육체적 짐' fleshly burden(Leg.),||(b) '위엄' dignity, '가치, 재산' worth(Eur.), '교만' pride, '자만' conceit, 즉 가치를 자기에게 돌리는 것(Plu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옹코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2:1에 한번 나온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경기자의 비유에서 옹코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목표물에 도달하는데 걸림이 될 만한 것들을 내던져야만 하는 무거운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기자가 어떤 종류의 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그 의미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기자 자신이 형용사 판타(%796)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를 앞서간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들을 본받으려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정해진 트랙으로 들어가야만 하며 그 무엇에 의해서든 방해 받거나 경기로에서 벗어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