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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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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이것, 여기.||호데, 헤데, 토데(Homer 이래)는 정관사 호, 헤, 토와 접속 불변사 데($1161)에서 유래했으며, '이 사람, 이것, 여기'를 의미한다.||(a) 뒤에 따르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 행 21:11; 계 2:1; 계 2:8; 계 2:12; 계 2:18; 계 3;1; 계 3:7; 계 3:14.||(b) 앞에 나오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 눅 10:39.||(c) 이 도시나 저 도시로, 약 4:1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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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듀오(Homer 이래)는 호도스($3598: 길, 도로)에서 유래했으며, '여행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듀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0:33에 한번 나오며, '여행하다'를 의미한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지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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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다 lead, 안내하다 guid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데게오는 호데고스($3595:인도자)에서 유래했으며, `안내자이다, 안내(또는 인도)하다'를 의미한다(Aeschyl.,Eur.,Diod.,Alciphr.,Babr.). 이 동사는 명사 호데고스와 같이 주로 문자적 의미 그대로 사용되며, 비유적 의미(지도하다, 가르치다)로 사용된 경우는 드물다. 익명의 헬라 자료집(Corp. Herm.)에서 또한 호데게오가 하늘로 가는 영혼의 여행에 관한 문맥에 나타난다(4,11; 12,12).||#2. 70인역본의 용법.||호데게오는 70인역본에서 42회 발견되며, 대부분 인도하시고 안내하시는 하나님, 또는 가르치시거나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출 13:l7; 출 15:13; 수 24:3; 시 25:9; 78:72 등). 그리고 주로 시편에서 개인 생활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예:시 23[22]:3; 시 25[24]:9). 그리고 또 그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에서(시 5:9; 시 31[30]:4)사용되었다. 지혜서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지혜서 9:11; 10:10,17). 또한 마찬가지로 비유적 의미인 가르치거나 지도한다는 의미로, 사람의 성실이나 지혜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였다(잠 11:1; 전 2:3).||#3. 신약성경의 용법.||호데게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타난다. 마 15:14("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과 눅 6:39("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는냐")에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16:13에서 진리의 성령과 관련하여, 그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 중에서 사용되었다(본질상 요 14:26과 병행 구절). 여기에서 호데게오는 `길로(혹은 따라) 인도하거나 안내한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길이며, 또한 그들이 안내받아야 하는 진리이다(민 24:8; 신 1:33; 시 25:5,9; 143:10; 사 63:14). 성령의 인도하심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에 관련되어 있다(J.H.Mayfield).|계 7:17에서는 어린 양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린 양께서는 완전하게 된 자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안내하다' 라는 말이 '가르치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명확히 사용된 예는 행 8:31에 나타난다. 거기에서는 성경 이해를 위한 지도와 관련되어 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빌립은 성령이 충만하여 성경의 구절을 지도해 줄 수 있었다.|(참조: G.Ebel; J.H.Thayer).
인도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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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 leader, 안내자 guid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데고스는 호도스($3598:길)와 헤게오마이($2233: 지도하다, 인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길 안내자, 길잡이, 안내자'를 의미한다. 호데고스는 길을 알지 못하는 자를 인도해 주고 길을 가르쳐 주는 자이다(Aeschylus 이래로). 이 단어는 주로 문자적 의미 그대로 사용되며, 비유적 의미(교사, 지도자)로 사용된 경우는 드물다. 익명의 헬라 자료집(Corp. Herm.)에서는 '지식의 관문' 또는 '지식의 빛'(7,2; 10,21)에 이르는 것은 누스(마음)라고 말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데고스는 단지 외경에서 5회만 발견된다. 이 단어는 마카베오일서 4:2; 마카베오이서 5:15; 에스델 8:1에서 `지도자'나 `인도자'라는 의미로, 지혜서 18:3에서 광야 여행 동안 밤에 그 길을 보여준 불기둥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지혜서 7:15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바로 지혜의 인도자이시며 현자의 지도자이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데고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인도자, 안내자'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행 l:16에서는 예수를 잡은 자들을 안내한 유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부는 회화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소경된 인도자"(마 23:16; 마 23:24) 또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마 15:14; 참조: 눅 6:69)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본질적 뜻에 대한 그들의 영적 소경 상태를 예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롬 2:19에서 바울은 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유대인을 가리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로 자처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참조: G.Ebel; J.H.Thayer).
호도이포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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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도이포레오(Soph., Hdt. 이래)는 호도이포로스(%290: 여행하는 사람)에서 유래했으며, '여행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도이포레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10:9에 한번 나오며, '여행하다'를 의미한다: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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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도이포리아(Homer, Hdt. 이래)는 호도이포로스(%290: 여행하는 사람)에서 유래했으며, '여행, 여정'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도이포리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요한복음과 고린도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요 4:6에서 예수님께서 '여행'으로 피곤한 것을 을 묘사한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b) 고후 11:26에서 바울의 전도 '여행'을 언급한다: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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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way, road, 대도 highway, 생활 방식 way of lif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기본어 호도스는 호머(Homer)로부터 나타나며,||(a) 그 일차적 요소는 동작(action)의 요소이다. 즉 행동으로서 '도보', 육지에서의 '여행'이나 바다에서의 '항해, 출발', 군대의 '행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b) 그리고 지역적, 공간적 의미에서, 이 단어는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거나 행진하는 장소인 '길(way), 작은 길(path), 도로(road)', 강 '줄기(course)', 그리고 또한 배의 '항로'를 의미한다(Homer 이후로, 그리고 비문과 파피루스에 나옴).||(c) 이 단어는 초기에 벌써 회화적이면서 비유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이용하거나 그 길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호도스는 어떤 것에 도달하거나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방책, 절차, 무엇을 행하거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삶의 길' 또는 '삶의 양식'이라는 문구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삶(인생)은 때때로 길에 비유된다(Democritus, Frag. 230). 개개의 경우에 있어서 옳지 못한 행동은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이라고 묘사되었다(Thuc., 3, 64, 4). 전문적인 철학적 용법에서 이 단어는 '질문 방법'이나 '인식 방법', '순서나 절차'(method)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d) 헬라 문헌에서 두 길에 대한 묘사가 자주 발견된다. 악으로 가는 길과 선으로 가는 길, 경건한 자를 위한 장소에 이르는 오른편 길과 불의한 자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로 이끄는 길에 대해 언급한다.|호도스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의가 깊다. 죽음 이후에 인간이 가는 두 길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상이다.|진리의 길, 지식을 가진 인간을 인도하는 길로서 하늘의 빛에 이르는 길,|길로서 그노시스, 지식 있는 자가 가고 있는 생명의 길 또는 완전한 길에 대한 언급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호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880회 나오며, 18개의 히브리어 상당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히브리어 데레크(1870: 길, 도로, 거리, 여행, 방식, 방법 등)의 역어로 나타난다(약 600회 이상).||구약성경에서 데레크/ 호도스는,|(a) 걸어다니는 길로서 '생명 나무의 길'(창 3:24), 술로 가는 길(창 16:7), 중요한 대로(민 20:17; 민 21:22), 해변의 길(사 9:1).|(b) '여행'(창 45:23; 수 9:13; 창 24:21).|(c) '활동, 행위'(시 1:6; 창 6:12).|(d) '여호와의 길'(창 18:19; 신 9:16).|(e) '태도, 습관'(창 19:31; 창 31:35).|(f) '창조의 역사'(욥 40:19; 잠 8:22; 욥 26:14)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도스는 신약성경에서 102회 나오며, 주로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바울 서신 6회, 히브리서 3회, 야고보서 3회, 베드로후서 4회, 유다서 1회, 요한계시록 2회 사용되었다.||(a) ① 호도스는 문자적 의미로 '다니는 길, 도로'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2:12; 마 7:13 이하; 마 13:4; 마 13:19; 막 4:4; 막 4:15; 막 10:46; 눅 8:5; 눅 8:12; 눅 10:31; 눅 18:35; 눅 19:36; 행 8:26; 행 9:17; 약 2:25 등.|"길에서". '노중에서, 길의 도중에서, 길가면서', 눅 10:4; 행 8:36; 행 25:3; 행 26:13.|② 마 10:5에서 "이방인의 길"(호도스 에드논)은 이방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역 바깥의 이방인 지역으로 통했던 길을 의미한다.|③ 눅 2:44에서 헤메라스 호도스("하룻길")는 사람이 하루에 걸어가는 거리, 즉 하룻길을 말한다.|행 1:12에서 사바투 호도스("가기 알맞은 길")는 출 16:29의 계명(참조: 민 35:5)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안식일에 유대인에게 허락되었던 보행 거리를 의미한다. 이 거리는 약 880미터였다.||(b) 호도스는 문자적 의미에서 '여행의 길, 여정, 노정, 여행'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행 중에, 마 5:25; 마 15:32; 마 20:17; 막 8:27; 막 9:33; 막 10:32; 막 10:52; 눅 12:58; 눅 24:32; 눅 24:35; 행 9:27; "여행 중에"(여행 길로부터), 눅 11:6; "여행을 위하여", 눅 9:3; "길을 가다"(여행하다), 가던 여행길을 계속하다, 행 8:39.||(c) 호도스는 '길'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의 용법에서처럼, 일부는 '하나님의 행위와 구원 사역을 뜻하는 말로(예: 롬 11:33; 계 15:3; 히 3:10), 또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예: 마 22:16; 막 12:24; 눅 20:21; 마 21:32) 사용되었다.|구약의 인용구 중에서도 매우 자주 나타나며(행 2:28; 참조: 시 16:11; 시 13:10; 호 14:9; 롬 3:17; 시 36[35]:1; 눅 1:79; 사 9:2),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행 14:16; 롬 3:16; 고전 4:17; 약 1:8; 약 5:20).||(d) 마 3:3과 그 병행구 막 1:3; 눅 3:4(참조: 요 1:23)에서는 주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라는 부름과 아울러 사 40:3을 인용한다. 퀴리오스("주")라는 칭호가 예수께로 전이됨에 따라, 세례(침례) 요한의 사역을 구약성경 말씀의 성취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요한은 선구자로서,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어 회개를 촉구하고 세례(침례)를 줌으로써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다(참조: 막 1:2에서 인용된 말 3:1; 참조: 마 11:10; 눅 1:17; 눅 1:76; 눅 7:27).|주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가지고 우리 마음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길이다. 눅 1:79의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라는 표현에서 호도스는 '방법, 수단'을 의미하기보다 '길'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 59:8(참조: 롬 3:17)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의 평강은 메시야적인 '구원'을 일컫는다.||(e) 마 7:13; 마 7:14에서 두 길의 상징을 사용한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첫번째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뒤이어지는 길에 대한 병행 은유법처럼 보인다. 의의 길이 넓은 길이라는 다른 기록들과 대조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협착하다. 여기서는 문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구(눅 13:24에서 처럼)로 생각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길은 넓은 악의 길과 대조되는 의미로서 경건한 좁은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여기서 예수님의 의도하는 바는 그리스도인, 곧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은 좁고 이 길은 어렵다. 그러나 이외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다른 길은 없다. 이 길에 들어서는 자가 적다면 이 길이 너무 좁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쉬운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길은 제자들의 삶의 길(방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기대하는 그 무엇이다. "문"과 마찬가지로 "길"도 들어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목적지는 이미 밝혀져 있다. 즉 멸망이 아니라 생명이다. 14절의 "찾는"이라는 문구는 여러 개의 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어려운 형국에서 길을 발견하려고 애쓴다거나 아니면 오랜 탐사 끝에 좁은 문으로 찾아 들어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좁은 길은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역사가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길이며 찾는 자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길이며 이 길로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마태복음에서는 특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예: 마 5:20), 생명에 들어가는 것(예: 마 18:8 이하) 또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예: 마 25:21; 마 25:23)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마 7:13 이하의 말씀도 이 범주에 속한다.||(f) 히브리서에서 호도스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대해 사용되었다.|-히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위의 두개 구절에서 호도스는 상호 관련되어 있다. 히 9:8의 호도스는 분명히 위치상 성전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히 10:19에 비추어 볼 때 '길'이라기보다는 '들어감, 접근, 나아감'이며, 에이소도스($1529)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확실한 언급은 없지만 이 길은 명백히 하나님(과의 교제)께 나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논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가신 분(참조: 히 6:20) 또는 인도자(참조: 히 2:10; 히 12:2)로서, 미증유(未曾有)의 살아있는 접근로(living way of access)를 열어 놓으셨다. 이것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구속자에 관한 영지주의적(gnostic) 논재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히브리서의 사상은 희생 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휘장을 갈라 놓으심으로써 그 길을 예비하셨는데, 이 휘장은 그의 육체이다. 영지주의적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하늘의 세계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물질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성경적 견지에서, 예수님께서 자기의 살(과 피)을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갈라 놓은 것은 물질이 아니라 죄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참조: 히 10:22; 롬 5:1; 엡 2:18 이하; 엡 3:11 이하). 히브리서의 배경에 깔려 있는 표상은 속죄제(참조: 레 16장)이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의 피를 가지고 부지중에 지은 백성의 죄들을 속(贖)하였다. 옛 언약 하에서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여호와께 그와 같은 접근을 할 수가 있었다. 벧후 1:11도 이러한 문맥에 속한다.||(g) 요한복음에서 호도스는 예수님의 인격에 적용되었다(요 14:1-6). 이는 신약성경의 독특한 용법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떠나 가시는지 그 장소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또한 그 길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히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의 목적지는 아버지와 함께 거하는 곳이다(요 14:6b와 요 20:17). 또한 이를 통하여 그 제자들의 길이 열린다.||(h) 사도행전에서의 호도스.|① 행 2: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여기서 호도스는 '수단, 방법' 혹은 부활의 '가능성'을 가리킨다.|② 행 16: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여기서도 호도스는 '방법, 수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③ 행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여기서 호도스는 '처세'(walk), '행동(위)'을 의미한다.|④ 행 13:10에서 '길'은 그에 병행되는 단 3:27과 호 14:9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역사, 또는 하나님의 행동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행동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⑤ 행 9:2; 행 19:9; 행 19:23; 행 22:4; 행 22:14; 행 22:22 등에서 호도스는 성도의 교제로 표현된 삶의 양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단수형으로 사용된 호도스는 다른 사람들(특히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하이레시스($139, 참조: 행 24:14)라고 부른 것과 동등한 그리스도인 편에서의 개념이다. 이 길은 다른 사람들은 비난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었음을 보여준다.|⑥ 행 16:17("구원의 길")은 기독교의 메시지와 분명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행 18:25("주의 도")과 행 18:26("하나님의 도")은 예수님에 관한 선포와 관련되어 있다.|⑦ 행 22:4에서 바울은 "도"를 핍박하였다고 말한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여기서 "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부활에 관한 기독교의 메시지와 아울러 기독교 공동체까지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길"이, 가르침과 기독교 공동체 중 어느 하나만을 의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잘못된 양자택일을 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용어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두 의미가 함께 속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독립적으로 사용된 "길"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독교인의 말씀 선포 및 기독교인들에 대한 칭호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길"은 이러한 말씀 선포가 특별한 생활 양식 또는 삶의 길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괄하고 있다.||(i) 고전 12:31 하반절에서 바울이 말한 "제일 좋은 길"은 사랑(아가페)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의미한다. 이 사랑은 영적 은사들에 대한 모든 열망 위에, 그리고 그에 우선하여 위치한다(참조: 고전 14:1; 빌 2:1 이하). 우리는 고전 12:31 하반적의 "길"(way)을 고전 4:17과 함께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고전 4:17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길들"("그리스도 ... 안에서 나의 행사"-한글판 개역성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조화되는 삶의 길에 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길을 그는 각처에서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도 이것이 뚜렷하게 증거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명사 "나의 길들"("나의 행사"-개역)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신도들에게 자기를 "본받는 자"되라고, 즉 그리스도와 조화되게 살라고 촉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j) 약 1:8에서 '처세'나 '행동'을 의미한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5:20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k) 베드로후서에서는 거짓 교리와 이단의 교사들을 논박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진리의 도"(벧후 2:2; 참조: 약 5:19 다른 읽기), 그리고 "의의 도"(벧후 2:21)라고 부른다. 이 길은 새로운 도덕성을 가져오며 또한 도덕성을 요구하고(참조: 벧후 2:20 이하, "거룩한 명령"). 나아가서는 그것에 의해 이교 사상과 구별이 된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도덕성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볼 때, 이 "길"의 의미가 선명히 드러난다. 거짓 교사들은 수치스러운 행위와 함께 "바른" 길(즉,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원하시는 길)에서 떠나 "발람의 길"(벧후 2:15)을 좇음으로써 기독교의 평판을 떨어뜨렸다. "발람의 길"과 "가인의 길"(유 1:11; 참조: 창 4:3-8; 민 22-24장)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입장(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위)에서보다는 후기 유대 전승에 준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후기 유대 전승에서는 구약의 입장을 고수하여 가인과 발람을 모든 방탕자와 이단자들의 조상과 스승으로 보고 있다(참조: Philo, Post.).|(참조: W. Michaelis; G. Ebel; Walter Bauer; J. H. Thayer).
오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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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아 too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두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이, 치아'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두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히브리어 셴(이, 이빨)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1:24; 레 24:20; 신 19:21).||#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두스는 12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1회, 요한계시록에 1회를 제외하고 모두 공관복음에 사용되었다.||(a) 오두스는 마 5:38의 동해 복수법에 대해 사용되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이 구절은 '눈에 대하여는 눈, 이에 대하여는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KJV, NASB 등 대부분의 영역본은 이러한 의미로 번역했다.|심한 상해, 또는 그 후유증이 일평생 지속되는 상태로 끝나는 폭행죄에 대한 처벌은 동해(同害) 복수법(lex talionis)으로, 그 뜻은 똑같은 상해가 가해자에게도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을 갚을찌니라"(출 21:23-25; 참조: 레 24:19, 20; 신 19:21; 마 5:38). 이 법칙은 중 앗수르 법률보다 훨씬 덜 가혹한 것이었다(참조: ANET, 186). 그리고 사실상 구약성경이 여기에서 행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처벌을 범죄에 상응시키기 위한 공평의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 율법이 이행되었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b) 오두스는 막 9:18에서 간질병 환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c) 오두스는 행 7:54에서 스데반의 말에 분노한 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d) 오두스는 마 25:30에서 불충하고 게으른 종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e) 오두스는 마 24:51에서 외식하는 자의 형벌에 대해 사용되었다: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f) 오두스는 마 8:12에서 나라의 본 자손의 불신앙의 결과에 대해 사용되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g) 오두스는 눅 13:28에서 외경적 신자들의 종말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h) 오두스는 마 22:13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참석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i) 오두스는 악인들의 마지막 형벌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마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② 마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뒤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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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하다, 괴로워 하다, 슬퍼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뒤나오는 오뒤네($3601: 고통, 슬픔)에서 유래했으며,||(a) '아프게 하다, 슬프게 하다'(Eur., Aristoph),|(b) 수동태로 '아픔을 느끼다, 괴로워하다, 고민하다, 고통하다'(Soph., Dio.)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뒤나오는 4회 나오며, 누가의 기록에만 사용되었다.||(a) 눅 2:48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부모의 근심을 나타낸다: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b) 눅 16:24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받는 고통을 나타낸다: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c) 눅 16:25에서 자책하는 고민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d) 행 20:38에서 사도 바울과의 마지막 이별의 슬픔을 나타낸다: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참조: F. Hauck; Walter Bauer; J. H. Thayer).
오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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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뒤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육체적 고통'(Hom., Od.), 특별히 상처나 골절로 인한 갑작스런 심한 아픔과 찌르거나 째는 것 같은 아픔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의미에서||(b) '정신적 고통, 슬픔, 비탄'(Hom., Od.)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뒤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영혼이나 마음의 쓴 슬픔, 또는 '고통'(창 44:31; 시 13:2; 시 31:10; 사 35:10; 슥 12:10; 암 8:10; 겔 21:11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뒤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로마서와 디모데전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롬 9:2에서 오뒤네오는 바울은 자신의 골육 친척들이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마음의 고통을 나타낸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b) 딤전 6:10에서 오뒤네는 돈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찔림(고통)을 받게 되는 것을 표현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오뒤르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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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곡, 애도, 애통, 슬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뒤르모스(Aeschyl., Pla. 이래)는 오뒤로마이(%234: 탄식하다, 애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애도, 애곡, 비탄, 슬피우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뒤르모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렘 31:15에서 탐무림을 번역하여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통곡'을 나타내며, 마카베오이서 11:6에서도 마찬가지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뒤르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고린도후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마 2:18에서 렘 31:15을 인용하면서 라헬의 '슬픔'을 묘사한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b) 고후 7:7에서 고린도교인들의 '애통함'을 묘사한다: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eesemann).
호에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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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곧||호 에스티는 호(3739)와 에스티(1510)를 보라.|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즉, 곧'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막 3:17; 막 7:11; 막 7:34; 막 12:42; 막 15:16; 막 15:42; 엡 6:17; 골 1:24; 히 7:2; 계 21:8; 계 21:1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웃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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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 Uzziah(인)||#1. 구약성경.||오지아스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를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은 히브리어를 따라 '웃시야'라고 번역했다.|여기서 언급하는 웃시야는 유다왕이다. 웃시야라는 이름은 왕하 15:32-34; 사 7:1; 호 1:1; 암 1:1; 슥 14:50에 나타난다. 그 대신에 사용된 다른 히브리어 이름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우셨다')는 왕하 14:21; 왕하 15:1; 왕하 15:6-8; 왕하 15:17; 왕하 15:23-27; 대상 3:12에서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왕이 단 하나의 이름, 웃시야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초기에 필사할 때에 실수로 인해 본문이 변조되었고 그 실수가 계속 존속되었다고 믿는다.|아마샤 왕의 아들 웃시야(c. B.C. 800-783)는 열 여섯 살에 왕이 되었다(왕하 15:2). 그의 유다 통치기간(c. B.C. 783-742)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약 B.C. 786-746)과 동시대이다(왕하 15:1). 신명기의 편집자는 그 왕의 혼합주의에도 불구하고 웃시야 왕대를 호의를 가지고 기록한다(왕하 15:4). 이 반세기간의 통치에 대한 그의 간결한 기록(왕하 14:22; 왕하 15:5-7)은 연대기 작가에 의해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보충된다(대하 26:1-23).|① 웃시야는 농업 수단을 발전시켰으며(대하 26:10).|② 나라를 보호하는 잘 갖추어진 큰 군대를 일으켰고(대하 26:11-14).|③ 예루살렘의 성벽을 견고하게 하고(대하 26:9), 그 성읍에 군사상의 방어 시설을 공급하였고(대하 26:15),|④ 블레셋과 서쪽에 있는 그들의 성읍들을 대하여 성공적인 군사 전쟁을 벌였으며(대하 26:6 이하),|⑤ 그의 아버지가 한 때 정복했던 엘라를 회복하였고 서쪽의 아라비아와의 성공적인 전쟁을 지휘하였고(대하 26:7),|⑥ 동쪽의 암몬으로부터 공물을 받았다(대하 26:8). 그의 통치 기간은 큰 물질적 번영의 기간을 포함한다(대하 26:22; 참조: 사 2장, 3장).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의 강한 지진은 유명한 사건으로 기억된다(암 1:1; 슥 14:5).|신명기 편집자에 의해 기록된 유다의 연대기의 역사적 기사는 웃시야가 문둥병으로 죽었다고 한다(왕하 15:5). 연대기 작가는 그 병은 웃시야가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종교적 권위의 영역 내의 의식을 훼방한 것에 대한 징벌이라고 믿었다(대하 26:16-20). 제사장 법전을 위반하는 것은 윤리적 범죄처럼 벌을 받아야 했다. 고대의 문둥병에 대한 기록은 그것의 첫번째 증상, 그것이 그것의 희생자에게 강요하는 격리, 그리고 그것이 비록 왕일지라도 매장할 때에 요구하는 제한(대하 26:20-23), 문둥병에 의한 이 왕의 죽음은 감격적인 사건이어서 이 사건은 사 6;1; 사 6:5-8에 묘사된 선지자의 부름에 기여하였다.||#2. 신약성경||오지아스(웃시야)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 1:8; 마 1:9(2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참조: HBD; PEB; Walter Bauer; J. H. Thayer).
냄새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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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가 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조(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냄새가 나다'를 의미한다. '냄새를 풍기다, 냄새가 나다, 냄새를 발산하다'를 의미하며,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조는 신약성경에서 요 11:39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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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로부터, 그 이유 때문에, 그러므로.||부사 호덴(Homer 이래)은 고전 헬라어와 70인역본에 나타난다. 이 단어는 관계대명사 호(%292)와 어떤 장소로부터의 움직임을 뜻하는 전접어 덴(%291)에서 유래했으며, 그 '것으로부터', '거기로부터' from, which; whence를 의미하며,||(a) 기점이 되는 장소|① 마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② 눅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③ 행 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④ 행 28: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b) 견인 현상에 의해.|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②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c) 사물을 알려주는 근원, '그것으로부터, 그것에 의하여'를 표현한다.|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d) 원인에 대해, '그 이유 때문에, 그러므로, 그 때문에',|① 마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② 행 26:19,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③ 히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④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⑥ 히 8: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⑦ 히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⑧ 히 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