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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보자기
ojqovnh
아마포, 아마포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도네(Homer 이래)는,|(a) '고운 아마포'를 의미하며,|(b) '아마포천'이란 의미에서 시트, 곧 깔천, 보, 돛이라는 의미가 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도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행 10:11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릇 모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행 11:5에서도 같은 것을 표현한다: "가로되 내가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도니온
ojqovnion
세마포 조각(작은 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도니온(Aristoph. )은 오도네($3607: 고운 아마포, 시트, 돛)의 지소사이며, 고운 '아마포 조각, 작은 아마포 천'을 의미한다. 헬라 문헌에서 아마포로 만든 배의 돛, 상처를 싸매는 붕대, 기타 아마포로 만든 물품들을 가리킨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도니온은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예수님의 시체를 싼 세마포를 의미한다.||(a) 눅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b) 요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c) 요 20:5,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d) 요 20: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e) 요 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정
oivkei'o"
집(가족)에 속하는, 가족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오이케이오스(Hes., Hdt. 이래)는 오이코스($3624: 집, 거처)에서 유래했으며, '집' 또는 '가족에 속하는, 가족(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오이케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5회 나오며, "혈연 관계"를 나타낸다(삼하 10:14 이하; 레 18:17; 사 58:7 등).||#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오이케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딤전 5:8에서 '가족에 속하는, 친족의'를 의미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b) 엡 2:19에서 하나님의 '가정에 속하는'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에서 이방인들이 더 이상 나그네(파로이코이: 외국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 즉 기독 공동체의 완전한 교제에 받아들여진 가족 구성원임을 확신시키고 있다.||(c) 갈 6:10에서 믿음의 '가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 것을 상기시키고 있지만 특히 "믿음의 가정들" 즉 하나님의 권속들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고 있다.|(참조: J. Goetzmann; Walter Bauer; J. H. Thayer).
집안 하인
oijkevth"
가속, 집 하인||오이케테스(Aeschyl., Hdt. 이래)는 오이케오($3611: 거주하다, 살다)에서 유래했다.|다른 사람과 함께 한 집 안에 사는 자, 한 명의 동일한 가장(家長)의 권위 아래 있는 모든 자를 가리키며 가속, 한 집안 식구(집회서 4:30; 집회서 6:11) 특히 '종', '하인'을 의미한다. 이 의미로 눅 16:13; 행 10:7; 롬 14:4; 벧전 2:18에 사용되었다.|마이어(Meyer)는, 오이케테스는 둘로스($1401: 종, 노예)보다 더 제한적인 용어로서 '집'하인, 즉 다른 노예들보다 가족과 더 밀집한 관계를 가진 자를 가리킨다고 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이케테이아
oijketeiva
가속, 종들의 집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케테이아(Strab.)는 오이케테스($3610)에서 유래했으며, '가속, 즉 종들의 집단'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케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마 24:45에 한번 나온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이케오
oijkevw
~에 거주하다, 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이케오(Homer 이래)는 오이코스($3624: 집, 거처)에서 유래했으며,||(a) '~에 거주하다, 살다',|(b) '점유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이케오는 구약성경에서 약 1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야샤브(3427: 남아있다, 머무르다, 거주하다, 앉다, 창 4:16, 20; 16:3; 19:30; 출 2:15; 16:35 등)와 테벨(8398: 세계, 시 33:8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서만 사용되었다.||(a) 고전 7:12; 고후 7:13에서 오이케오는 문자적 의미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배우자가 결혼하여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b) 딤전 6:16에서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간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불가시성을 나타낸다.||(c) 오이케오는 비유적 의미로 사람의 내적 발전을 기술하는데 사용되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롬 7:18)라는 어구는 옛 사람을 기술하는 것인 반면에 새 사람에 관한 진리는 입증되어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롬 8:9; 롬 8:11; 고전 3:16)라는 믿음의 고백처럼 반복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oetzmann).
오이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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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방, 감옥.||#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케마(Pind., Hdt. 이래)는 오이케오($3611: 거주하다, 살다)에서 유래했으며, '거처, 방'을 의미하며, 완곡 어법으로 '감옥' a prison에 대해 사용되었다(Thuc., Dem., Plut.).||#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케마는 신약성경에서 행 12:7에 한번 나오며, '감옥'에 대해 사용되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이케테리온
oijkhthvrion
처소, 거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케테리온(Democr. 이래)은 오이케테르(%235: 주민, 거주자)에서 유래했으며, '거처, 처소, 주택'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이케테리온은 70인역본 외경에서 2회 나오며, 영의 '거처'에 대해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11:2; 마카베오삼서 2:1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케테리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고린도후서와 유다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고후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여기에서 오이케테리온은 영이 거처하는 영적인 몸을 나타낸다. 본문은 겉옷을 입는 것과 거처하는 장소 두 가지 모두를 나타내는 이중적인 비유이다.||(b)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여기서 오이케테리온은 '처소'를 의미하며, 천사들의 '고유한 거처나 영역'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산
oijkiva
집, 가족.||#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키아(Hdt. 이래)는 오이코스($3624: 집, 거처)에서 유래했으며,||(a) 본래의 의미로 '거주하는 건물, 집, 거처',|(b) '집의 거주자들, 가족',|(c) '가산, 재산'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이키아는 70인역본에서 약 280회 나오며, 거의 모두(몇 회를 제외하고) 히브리어 바이트(집)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키아는 신약성경에서 9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요 14:2의 계시의 말씀에서 오이키아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내 아버지의 집에"라는 계시의 말씀은 아버지의 영광을 궁극적 목적으로 강조한다.||(b) 고후 5:1에서도 오이키아는 이와 똑같이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몸'을 지칭한다. 여기서 바울은 필멸할, "땅에 있는 장막 집"인 지상의 몸을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인 변형된 몸과 대조한다. 몸을 집에 비유하는 일은 보편적이었다(참조: 욥 4:19).||(c) 빌 4:22의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라는 표현은 오이코스의 '가족, 세대'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로마 제국의 많은 분야에서 일하는 종과 자유민과 고용인을 통틀어, 궁정에서 섬기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d) 오이키아는 '가산, 재산'을 의미한다(마 23:14; 막 12:40; 눅 20:4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 Weigandt).
집 사람
oijkiakov"
집에 속한 자 one belonging to the hou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키아코스(Plut. 이래)는 오이키아($3614: 집, 거처)에서 유래했으며, '집에 속한 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키아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만 사용되었다.||(a) 마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b) 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집을 다스리다
oijkodespotevw
집이나 가정을 다스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이코데스포테오(후기 단어)는 오이코데스포테스($3617: 집주인, 가장)에서 유래했으며, '가장(집주인)이다, 집이나 가정을 다스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이코데스포테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5:14에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젊은 과부는 결혼해서 '집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은 목회서신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족 덕목의 한 예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집 주인
oijkodespovth"
가장, 집주인 master of a hou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코데스포테스(후기 단어)는 오이코스($3624: 집, 거처)와 데스포테스($1203: 주, 주인)에서 유래했으며, '가장, 집주인'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코데스포테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14:14(병행구 눅 22:11)에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축하하기 원하셨던 집 주인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b) 마 24:43(병행구 눅 12:39)에서 집이 침입당할 시간을 알지 못했던 집주인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c) 비유에서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마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21: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마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어디서 생겼나이까".|마 20:1,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마 21: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d)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셨다.|① 마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②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건설되다
oijkodomevw
짓다, 세우다, 다시 세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이코도메오(Hdt. 이래)는 오이코도모스(건축자)에서 유래했으며,||(a) '짓다, 건축하다',|(b) '설립하다, 세우다',|(c) '재건하다, 다시 세우다, 복구(원)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이코도메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0 여회 나오며, 거의 히브리어 바나(1124: 세우다, 짓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오이코도메오는 대부분의 경우 '건물의 세움'이라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특히 예레미야서에서 나타나는 오이코도메오의 비유적 용법은 흥미롭다. 여기서 '심다'와 '짓다'는 의미가 서로 어울려 있으며, 이 두 동사 '심다'와 '짓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심판 때 "파괴하"여 "뽑는" 것(렘 1:10; 렘 24:6)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렘 31:4; 렘 33:7). 하나님은 선지자들이 입에 그의말씀을 두어서 그의 사역을 행하신다(렘 1:9 이하). 하나님은 만백성들을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게 하시며 따라서 "그들이 세움을 입"는다(렘 12:14 이하). 구약성경에서 오이코도메오의 이러한 용법은 바울의 용법에 특히 영향을 주었다. 더 나아가 구약성경의 이러한 의미는 신약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상을 낳았다(사 66:1).||#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이코도메오는 신약성경에서 4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오이코도메오는 다양한 목적어들과 함께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눅 6:48에서는 집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② 막 12:1에서는 탑을 건축하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③ 눅 11:47에서는 무덤을 쌓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b) 짓는것(건축하는 것)은 본래 묵시 문학적이며 메시야적인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또는 재림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다. 마 16:18에서 계시의 말씀은 베드로와 관계되어 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와 같이 막 14:58에서 오이코도메오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행위, 하나님에 의한 새로운 권한 부여를 의미한다. 메시야는 미래의 성전과 새 공동체를 건설할 것이다. 이 언급은 부활의 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재림의 때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 2:1 이하에 비추어 볼 때 부활의 때에 대한 언급인 것처럼 보인다. 마 16:18에 사용된 미래 시제는 종말론적인 능력을 행사하실 것을 지시해 주지만 영적인 능력 행사의 요소도 들어 있다. 막 14:58(행 7:47; 행 7:49)에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에 대한 언급이 있다. 물론 행 9:31(이 구절들은 암 9:11과 렘 12:15 이하에서 인용)의 메시야적인 오이코도메오는 교회론적인 개념이기도 한다. 위의 성구들에서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공동체는 목적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건물은 그 자체로서 영적이고 종말론적인 것이다.||(c) 오이코도메오는 사도의 임무에 관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도의 행동을 나타낸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바울의 진정한 사역은 세우는 일이다. 그렇지만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의 큰 자랑이었다.||(d) 오이코도메오는 공동체의 영적 책무에 대해 사용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령께서 공동체를 세우신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계발하는 것은 카리스마적이고 영적인 행동이다. 살전 5:11에서 개인과 전체가 갖는 관계, 개인들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카리스마적인 성격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개인적으로 덕을 함양하는 것(쌓는 것, 건축하는 것)은 다른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달해 준다(참조: 고전 14:3).|덕을 세우는 것은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공동체적인 것이다. 몇몇 성구를 살펴보면,|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전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이 보여 준 것처럼 지식만으로는 덕을 세우지 못한다.|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을 먹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세우기보다는 넘어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항상 덕을 세운다.||고전 14:4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했다. 방언을 말함으로 자신의 덕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예언은 직접적으로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만 방언은 그렇지 못하다. 예언은 이방인 신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도 덕을 세운다. 물론 예언은 그리스도와 성령과 신앙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e) 갈 2:18에서 바울은 건물을 세우는 것과 허는 것을 대조해서 말하고 있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벽은 허물어졌다. 그러나 베드로의 처사는 이 벽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율법을 지키는 일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그가 그 전에 헐었던 구조물을 다시 쌓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언급은 분명히 안디옥에서 베드로의 행위이나, 바울은 은혜스럽게 그것을 일인칭으로 한다. 그렇게 율법으로 돌아옴으로 그 자신은 범법자가 될 것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실제적인 범죄를 위하여 명백한 용어를 쓴다(참조: 롬 2:25; 롬 2:27). 사람이 그 자신을 범죄자로 드러내는 것은 그것을 단순히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하지 아니한 중대한 의의가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건물
oijkodomhv
세움, 건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코도메(Aristot. 이래)는 오이코스($3624: 집, 거처)와 데모(%374: 세우다, 짓다)에서 유래했으며,||(a) '지음, 세움, 쌓아올림', 건축 행위 및 과정을 의미한다.|(b) '지어진 것' 즉 '건물이나 건축물'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이코도메는 70인역본에서 약 17회 나오며, 하나님 '전'(대상 29:1), '건축, 재건'(마카베오 16:23; 대상 26:27)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코도메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마태복음(1회)과 마가복음(2회)의3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 사용되었다.||(a) 막 13:1; 막 13:2(복수형; 병행구 마 24:1)에서 오이코도메는 예루살렘 성전의 신성한 건물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b) 고전 3:9에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 사용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서 서신의 수신자인 회중의 구성원들은 데우 오이코도메("하나님의 집")이요, 데우 게오르기온("하나님의 밭")이다. 인간 건축자들은 하나님의 최상의 동역자들이지만 결코 교회의 소유주(심지어 주관자도, 참조: 고후 1:24)가 아니다.||(c) 엡 2:21에서 오이코도메는 하나의 거룩한 건물을 대표한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믿는 자들이 그 부분 부분들을 완성해 간다. 파사 오이코도메는(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건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주 안에서 성전'을 이루거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자라가는 것이다(엡 2:21 이하).||(d) 엡 4:12; 엡 4:16에서 건물의 이미지는 몸의 이미지에 근접한다: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여기서 건물과 몸의 이미지는 서로 혼합되어 있으며, '교회는 존재하고 항상 존재할 것이며, 교회는 심지어 성장함으로 존재한다'(H.Schlier). 그러나 이 성장은 외형적으로 증명할 수 있거나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그 자체 내에서 스스로 거룩을 향한 교회의 전면적인 운동'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ibid).|「엡 4:12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문구는 특이하다. 엡 4:16의 "그 몸을 ... 세우느니라" 역시 그렇다.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자로 주어진다(엡 4:11). 그러나 궁극적으로 몸 그 자체의 내적인 원동력은 몸의 성장을 가져오는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온 몸"(엡 4:16a)은 그리스도의 몸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가리키지만, "그 몸을 자라게 하여"(엡 4:16b)는 더 이상 교회를 가리키지 않고 세상 몸을 가리킨다는 Schiler의 주장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회의 몸은 "몸 가운데서 스스로 덕을 세우며" 동시에 그리스도를 향한 세상 몸의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e) 바울 서신에서 오이코도메가 nomen actionis(건축 활동이나 과정 혹은 덕성의 함양 활동)으로 사용될 때(롬 14:19; 롬 15:2; 고전 14:3; 고전 14:5; 고전 14:12; 고전 14:26; 고후 12:19), 지어지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언제나 에클레시아이다.||(f) 신학적으로 중요한 용법으로 쓰인 오이코도메의 특수한 의미가 이 모든 구절들과 또한 고후 10:8과 고후 13:10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도의 권위는 교회의 파괴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일(edification)에 기여한다.||(g) 고후 5:1에서 의인화된 오이코도메의 유일한 용법이 나온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이 용법에서 건축의 비유와 인간의 몸을 옷으로 비유하는 것을 적절하게 결합시킨다. "장막 집"은 죽음으로 인해 무너지지만, 손을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은 하늘에서 새 옷으로 예비되어 있다. 비록 고후 5:1 이하는 "지상과 하늘의 몸을 집/ 건물 혹은 옷으로 비유하는 만데아(Mandean) 개념"에 비추어 가장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이러한 설명은 바울에서 Mandeans에게 이르는 오직 한 개의 궤도 만을 인식하는 난점을 남긴다.|왜냐하면 특히 건물과 집은 '유대교에서 의인화되지 않으며' 단지 이란의 건축 개념들에서 경건한 사람들의 개인적 '거처'나 '영원한 장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이 종말론적 성전과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개념과 유사하다(vielhauer 108). 바울은 여기서 그 자신이 나름대로 형성한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h) 엡 4:29의 속격 구문, 오이코도메 테스 크레이아스("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는 이례적인 것이며 매우 일찍부터 해석상의 수정 대상으로 주목받았다. 이 구문이 목적을 나타내는 속격이 아니라 성질을 나타내는 속격임은 거의 확실하다. 크레이시아("소용되는대로")는 실마리가 되는 단어와 연관시켜 엡 4:28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엡 4:29의 이 삽입구는 바울적인 의미에서 즉 "소용되는 곳은 어디든지, 혹은 소용대로' '덕을 함양하는 것'(edification)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참조: J. Pfammatter; Walter Bauer; J. H. Thayer).
오이코도미아
oijkodomiva
지음, 건립.||#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이코도미아(Thuc., Plat., Polyb., Plut.)는 오이코도메오($3618: 짓다, 세우다)에서 유래했으며, '지음(세우거나 짓는 행위), 건립'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이코도미아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1:4TR에 한번 나온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여기서 이 동사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증진'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