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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맹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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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하다 swea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옴뉘오(Homer 이래)는 원래(거룩한 대상들을) '굳게 잡다'라는 뜻을 나타내었으나 후에 '맹세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대부분 맹세의 증거가 되는 인격이나 사물의 목적격과 함께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의 맹세를 받는 사람은 여격으로, 그리고 맹세의 대상(내용)은 목적격이나 부정사로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옴뉘오는 70인역본에서 약170회 이상 나오며, 히브리어 샤바(맹세하다)를 번역한다. 샤바의 원래 의미는 일곱가지 사항들의 영향력 하에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창 21:20이하는 고대시대에 맹세가 일곱 마리 짐승들의 희생제로 인정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3. 신약성경의 용법||옴뉘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맹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a) 마태복음 기자는 산상수훈의 네 번째 대구(마 5:33-마5:37)에서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선언을 전해준다. 이 말씀은 거짓 맹세에 대한 구약성경의 금지명령(레 19:12)과 또한 자신의 서원을 지키라는 계명(민 30:3; 신 23:23)에 연결된다(마 5:33).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금지를 선언하신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 5:34). 이 가르침의 내용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오해라도 배제하기 위하여 신랄함과 명확성을 주는 네 가지의 설명적 어구들이 추가된다. 곧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또는 자신의 머리로도 맹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마 5:34-마 5:36절). 이 말씀은 당시의 맹세를 하는 유대의 관습에 대한 논박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매일 행해지는 수 많은 맹세들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용되는 것을 완곡한 표현 방법으로 피하려는 노력을 하였다.|힐(D.Hill)에 따르면 "하늘"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유대식의 완곡 표현이 아니라 여기서 천계(天界)를 나타낸다고 한다. 미쉬나에서 하늘과 땅으로 맹세하는 것은 증인들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맹세는 애매하고 참으로 말투에 있어서 모순이다.|예수님은 여기에서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스로노스, $2362)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이유 때문에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땅은 하나님의 발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땅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땅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이 구절(마 5:34-마 5:35)은 사 66:1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라는 말씀의 암시를 담고 있다.|마 5:35에서 "예루살렘으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라는 의미로, 아마 "예루살렘으로"하는 서원이나 맹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곧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며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랍비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을 "큰 임금"으로 묘사한다. 예수님은 여기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을 향해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마 5:36에서 "네 머리로"하는 맹세는 미쉬나 산헤드린 3:2에 언급되어 있다-랍비들은 어떤 누구든지 머리로 맹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하여 맹세로 자신의 머리를 위태롭게 하는 자는 마치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진 것처럼 말하는 자이다(T.Zahn). 비록 사람의 머리에 대해(즉 자신의 머리 색깔에 대해)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세하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이러한 보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여기서 깨닫지 못한 것은 다른 권위들에 호소함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을 그 모든 권위들의 주님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b)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맹세와 서원에 대한 궤변적인 태도를 공격한 말씀(마 23:16-마 23:22)을 보면 제단, 성전, 또는 여기서와 같이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이 맹세에 권위를 주신 분, 곧 하나님을 이 맹세에 포함시킨다. 이런 방법으로, 그런대도 유대인의 맹세 습관을 지배하고 있는, 사소한 일을 따지는 규칙들은 그 적용 자체가 불합리하고 엉터리였음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설명들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의 맹세를 금지하는 보편적 유효성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예수님께서는 맹세가 종교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졌든지 법정에서 이루어졌든지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이루어졌든지 또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든지 간에 모든 맹세를 금하셨다. 왜냐하면 맹세는 단순한 긍정이나 부정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추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백성은 항상 정직해야하며, 따라서 맹세할 필요가 없다.||(c) 마 26:74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주장하며, 이 거짓말을 맹세와 자신에 대한 저주로 확증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병행구 막 14:71).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당시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거나 두려움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d) 막 6:23에서 헤롯의 경솔한 맹세로 무서운 결과를 언급한다: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헤롯은 자신의 생일 잔치에서 술에 취하여 의붓 딸이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겠다고 책임 없는 맹세를 하였다. 의붓 딸의 어미인 헤로디아는 헤롯의 자신과의 간통을 비난함으로 헤롯에 의해 옥에 갇힌 세례(침례) 요한의 목을 요구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그래서 헤롯의 경솔한 맹세는 결국 요한의 죽음으로 결말을 내린다.||(e) 약 5:12에서 야고보는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고 말하는 것으로 맹세를 대치하라고 권한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야고보는 여기서 마 5:34-37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세자는 그 결과로 결코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독백적인 말 뿐만 아니라 모든 담화까지 전지하신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각각의 말은 오직 진실일 뿐이다. 그러므로 맹세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맹세는 모든 그의 말에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따라서 그것은 "악으로 좇아 나는" 것이다. 제자는 "그의 말에서까지도 빛"이 되라는 소명을 받는다(D.Bonhoefer ).||(f) 신약성경에서도 구약성경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맹세를 본다.|눅 1:73; 히 6:13; 행 2:30에 나오는 하나님의 맹세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백성 중의 약속된 남은 자들에게 순종과 열심을 위한 경고적 권면을 첨가하기 위하여 부정적인 하나님의 맹세, 곧 광야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저주를 전해주고 있다(참조: 히 4:9-히 4:11).|히 6:16 이하는 누군가 더 큰 인물 또는 더 큰 사물에 대한 인간적 맹세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시는 명확한 맹세와 대조하기 위하여 맹세의 실제를 암시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히 7:20-히 7:22은 더욱 전진하여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맹세의 말씀 사이에 구별을 짓는다. 맹세 없이 이루어진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임명에 대한 대조적 표현으로, 히브리서는 시 110:4에 나오는 맹세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더 나은 것이며 불변적인 것임을 확신적으로 증명한다.|계 10:6은 단 12:5-7의 반영으로 맹세로써 알리는 천사를 언급한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참조: Walter Bauer; J.Schneider; H,-G.Link).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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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하여, 다같이, 일심으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호모뒤마돈(Aristoph. 이래로)은 '함께'를 뜻하는 호모(%24) 또는 호무($3674)와 '격노, 욕정'을 뜻하는 뒤모스($2372)의 합성어이며, '생활의 원리, 감정과 사고'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호모뒤마돈은 모임이나 집회에서 통일성을 나타내며, '마음 같이 하여, 다같이, 일심으로, 만장일치'를 의미한다.|그러나 후에는 '함께'라는 약화된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정치적 차원에서는 특히 공동 의무 또는 위험에 직면한 한 집단의 눈에 보이는 내적 결합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장일치는 공통적인 개인적 감정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는 더 큰 원인에 근거하는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모뒤마돈은 70인역본에서 약 36회 나오며 '함께, 모두 함께'라는 뜻을 나타내는 야하드(예: 욥 3:18; 6:2)와 야다우(출 19:8; 욥 2:11; 렘 5:5; 렘 46:21; 애2:8)의 역어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호모뒤마돈은 찬양과 비탄의 문맥들에서 원래 의미로 나오며(예: 삿 4:12; 지혜서 10:20; 마카베오삼서 4:6; 세속적인 의미로 삿 15:9), 또한 '함께'라는 일반적인 의미로도 나온다(예: 삿 15:2, 삿 15:5; 지혜서 18:5; 마카베오삼서 4:4).||#3. 신약성경의 용법||호모뒤마돈은 11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10회, 로마서에 1회 사용되었다.||(a) 행 12:20에서 호모뒤마돈은 두로와 시돈이 사절을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보냄에 있어서 연합하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b) 다른 경우들에서 호모뒤마돈은 '만장일치로'라는 의미를 나타낸다.|행 1:14에서 호모뒤마돈은 열 한 사도들이 여인들과 또한 마리아와 함께 하는 기도에 나타난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2:1에 호모뒤마돈들은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와 함께 사용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 2:46이하에서 호모뒤마돈 성전에서 모이고 떡을 떼는 일에 나타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5:12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행 4:24에서 호모뒤마돈은 베드로와 요한의 석방 후의 기도에 나타난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행 15:25에서 호모뒤마돈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들을 유다와 실라에게 지참시켜 그들을 파송하는 결정에 나타난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이와 동등하게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높이심을 받은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와 직면하였을 때 빌립의 말을 듣는 적절한 태도(행 8:6)와 유대인들의 증오(행 7:57; 행 18:12 이하)에서 까지도 일치가 나타난다.|롬 15:5이하에서 하나님에 대해 일치하여 드리는 찬송, 동일한 목표가 바울에 의하여서도 직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발생하며 또한 지각과 지식에 있어서의 모든 차이들을 극복하는 예배의 일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이다.|(참조: Walter Bauer ; H. W. Heidland ; E. D. Schmitz).
호모이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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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하다, 닮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모이아조는 파로모이아조($3945: ...와 같다)의 다른 읽기이며, '~와 같다, 유사하다, 닮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모이아조는 신약성경에서 막 14:70TR에 한번 나온다. TR 성경에는 "참으로 그 당이니라" 대신 '네 말씨가 닮았다'로 되어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같은 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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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질을 가진 with the same natur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파데스(Pla. 이래로)는 호모이오스($3664: 같은, 같은 성질의)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 '동일한 것을 경험하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성질(성정)의, 같은 성질(성정)을 가진'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파데스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 2회 나타난다. 지혜서 7:3에서 '같은 공기', 마카베오사서 12:13에서 '같은 감정'을 나타낸다.|필로는 호모이오파데스로 동물들과 인간들 가정이 유사하다는 것을 표현하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파데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낸다.||(a) 행 14:15에서 호모이오파데스는 '같은 성질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사도들은 자기들도 같은 성정, 곧 같은 성질의 사람이며, 단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말한다.||(b) 약 5:17에서 호모이오파데스는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우리도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기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었으며,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약 5:17 이하의 효과는 약 5:16에 의인에 관하여 언급한 것을 지지하며, 독자로 하여금 기도를 즐겨하도록 격려한다. 누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기도에 있어서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변증가들은 이 단어를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한다(참조: Justin Epit.,10,8 등).|(참조: W. Michaelis; J. H. Thayer).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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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유사한, 닮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스(Homer 이래로)는 호모스(%46)에서 파생되었으며, 하마($260:동시에, 함께)와 관련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같은 종류의, 같은'을 의미한다. 이소스($2470)와 구별되어야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그 의미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바꾸어 쓰거나 강조하기 위해 결합되기도 한다.||(b) '같은 성격(또는 성질)의'를 의미한다. 호이 호머이오이는 '같은 정신이나 파당의 사람들'이다.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조직된 희랍 도시국가들에서 모든 관청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정부에 공동 참여와 책임을 가진 시민들은 호모이오이라 부른다(Xenophon). 그리고 성격이나 성질이 같은 사람, 가장 유사한 것을 표현할 때 '같은'이란 의미를 지닌다.||(c) 소유와 관련해서, '동등하게, 공동으로 속하는',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동등하게 오는 나이(노년)를 예로 들 수 있다.||(d) 기하학에서 '유사한'을 의미한다. 도형, 삼각형, 수(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동일한 종류나 같은 것'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호모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4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호모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비유와 상징들을 도입하는 문구에 나타나며(마태, 누가, 계시록),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 관하여 나타난다.||(b) 신약성경에서 호모이오스는 몇몇 실례에서 신학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요 8:55에서 호모이오스는 '같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자기만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신다. 만일 그가 그 반대를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될 것이다. 곧 그는 거짓말쟁이가 되며, 계시하시고 파송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될 것이다.|② 행 17:29에서 호모이오스는 거짓 신 숭배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역시 '같다, 유사하다'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묘사될 수 없다는 사상은 교양있는 헬라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연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참조: 행 17:23)이 유일하고 참된 모델이라고 기독교에 대해 변증한다.|③ 요일 3:2에서 호모이오스는 요한 신학에 중요한 견해와 관련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여기에서 시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됨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본실에 있어서 최고의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성취는 오직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같을 때만이 이루어진다. 이 같음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만 성취될 것이다.|현재로서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그에 대한 참 지식을 구하려고 교육받으며, 이러한 말씀만이 우리에게 그의 참 존재를 아는 증거를 제시해준다(참조: 고전 13:12). 다른 한편 예수님의 재림시에 "같은 차원의 존재"가 될 때 관계가 가능할 것이다(F. Hauck). 그 때 그리스도인들의 변형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변형된 그리스도를 그의 계신 그대로 보게 할 것이다.|④ 계 1:13에서 "인자같은 이"는 인자 기독론의 체계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단 7:13에서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당당한 세상 심판자인 "인자"는 높임받은 그리스도이며 장차 오실 메시야이다. 계 14:14에서는 같은 표현이 나타난다.||(c) 마 22:39에서 '동등한(같은) 가치의'나 '같은 성질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여기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중요성과 정당성(혹은 유효성)에 있어서 동등한 것이다.|계 18:18에서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있느냐", 계 13:4에서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라는 구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갈 5:21에서 "그와 같은 것"(타 호모이아 투토이스)는 일종의 포괄적인 용어이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d) 유 1:7에서 호모이오스는 '마찬가지로, 같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참조: Walter Bauer; G. Haufe; J. Schneder).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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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 유사, 일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모이오테스(pre-socr., pla., Isocr. 등)는 호모이오스($3664: 같은, 같은 성질의)에서 유래했으며, '같음, 일치, 유사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호모이오테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종류'(창 1:11, 12), '유사함'(지혜서 4:19; 마카베오사서 15:4)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모이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서만 2회 나타난다. 히브리서에서 호모이오테스는 기독론적인 주장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a) 히 4:15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들과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단 한가지 다른 점은 그에게는 죄가 없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b) 히 7:15에서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할 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그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직무를 지니고 있으며 불멸의 생명력에 동참하여(히 7:16) 그가 형제들의 개척자나 창시자로서(히 12:2) 그들을 위하여 이런 생명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점이다(참조: 히 10:19 이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der).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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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게하다 make like, 비교하다 compar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모이오오(Homer 이래로)는 호모이오스($3664: 같은, 같은 성질의)에서 유래했으며,|(a) '동등하게 하다, 같게 하다'.|(b) '비기다, 비교하다'.|(c) 수동태로, '같게 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호모이오오는 70인역본에서 약3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다마(비슷하다, 닮다, 비교하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예증들과 비유의 도입부분에 자주 나타난다(예: 시 144:4; 아 2:17; 아 7:8; 집회서 13:1). 그것은 또한 비길 데 없는 하나님에 관한 진술에서도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사 46:5)가 바로 그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모이오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같게하다', '유사하게 하다'와 '비기다, 비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태복음에서 호모이오오는 가장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을 도입하는데 사용되었다(마 13:24; 마 18:23; 마 22:2; 마 25:1).|마 11:16(병행구, 눅 7:31)에서 예수님은 장터에 놀고 있는 아이들의 비유를 묘사한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유사하게 막 4:30에서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하는데 호모이오오를 사용한다: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눅 13:18, 20의 비유도 참고.|마 6: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7:24도 참조요.||(b) 행 14:11에서 호모이오오는 분사로 사용되어 사람의 형상(닮은 것)을 나타낸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발을 못쓰는 사람을 이적으로 고쳤을 때 무리들이 놀라 이렇게 부르짖었다.||(c) 히 2:17에서 호모이오오는 기독론적인 주장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히 4:15; 참조: Arndt. 570). '같아진다는 것은 역사와 인성(人性) 안에서, 유혹과 고통과 죽음 안에서 우리에게 얽매이게 되는 것을 뜻한다'(O. Michel). 그리스도께서 살과 피를 취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상황 속에 계셨다는 것은 신학적 사상에 비추어 필연성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만이 인간을 위협하는 사형선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Schneder).
본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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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함, 닮음, 형상, 사본, 모습.||#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모이오마(Pla., Parm, 등)은 호모이오오($3666: 같게하다, 비교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유사한 것, 사본, 복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호모이오마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한다. 호모이오마는 '형상'(image)이란 뜻의 탑니트를 나타내고(신 4:16이하), 제 2계명과 관련되어 '형상'이란 뜻의 테문나를 나타낸다(출 20:4). 겔 1:4(아인)과 겔 1:5, 16, 22, 26; 겔 2:1(1:28); 겔 8:2; 겔 10:1, 10, 21이하; 겔 23:15(데무트)에서는 선지자가 보았던 신비스러운 형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에는 역시 '복사, 유사함'이란 의미를 함축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모이오마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타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롬 1:23에서 호모이오마는 '형상'이란 의미로 우상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계 9:7에서도 황충들의 모양 곧 '형상'을 묘사한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b) 호모이오마는 로마서와 빌립보서에서 선재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한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한다.|① 롬 5:14에서 호모이오마는 죄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비록 아담과 똑같은 방법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아담과 같이 인간은 전체적으로 죽음의 법칙에 지배 받아 왔다고 역설한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전형(type)이며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다(참조: 고전 15:45).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행하신 역사는 최초의 인간의 타락에 상응하는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② 롬 6:5에서 호모이오마는 세례(침례)에서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보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의 죽음과 장사 지냄으로 묘사되는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닮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세례(침례)는 과거와 현재의 상징이요 미래에 대한 예언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가르치는 더 없이 훌륭한 설교자인 것이다.|(참조: Robertson).|③ 롬 8:3에서 호모이오마는 우리의 육신의 몸을 입은 모습을 묘사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다음 해석을 참조.|④ 빌 2:7에서 호모이오마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묘사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은 인간의 형체를 입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예수님의 인간되심은 하나님과 동질이며, 또한 하나님과 영원히 공존하는 것이나 동시에 우리 인간들과 동질이고 피조물의 영역에 속한다. 이 같음은 인간 이하의 어떤 것도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단순한 가면이나 위장이 아니라 그는 진실한 사람과 같이 되셨고 진실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 이상의 분이고 인간과 다른 분이다. 이 사실은 제외하고는 닮았다고 말하기보다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J.A.Knight).|(참조: Walter Bauer; J.H.Thayer; O.Michel).
같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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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마찬가지로 likewise, 그와 같이 s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호모이오스(Pind., Hdt. 이래로)는 '그와 같이, 그렇게,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비슷하게, 같은 방식으로'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부사 호모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24회 나오며, '그와 같이, …와 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호모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며, 일반 헬라어의 용법과 같이 사용되었다. 한글 개역성경에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그렇게, 마 22:26; 눅 3:11; 요 6:11; 고전 7:4.|* 이와같이, 마 26:35; 막 4:16; 눅 10:32,37; 눅 13:5; 눅 17:31; 롬 1:27; 고전 7:4; 고전 7:22; 히 9:21; 약 2:25; 벧전 3:1; 벧전 3:7; 벧전 5:5.|* 그와같이, 마 27:41; 막 15:31; 요 5:19; 요 21:13; 유 1:8.|* (∼)도, 눅 5:10; 눅 6:31.|* 그리하되, 눅 5:33.|* 같으리니, 눅 17:28.|* 그리하고, 눅 22:36.|* 그리하더라, 계 8:12.|(참조: Walter Bauer).
호모이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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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함 likeness, 닮음 resembla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모이오시스(Pla., Theaet. 이래로)는 호모이오오($3666: 같게하다, 비교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같게함',|(b) '같음, 일치'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종, 종류'(species), 또는 '종의 개념'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c) 문법에서 '비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호모이오시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주로 '유사(점)'를 뜻하는 데무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호모이오시스는 '모양'(창 1:26), '같음'(시 58[57]:4), '유사점'(겔 1:10), '종류'(겔 8:10)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모이오시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3:9에 한번 하나님의 '모양'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혀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에 대해 대조시켜 경고하고 있다.|(참조: J.Schneider).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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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 선포하다, 선언하다, 찬미하다, 칭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호몰로게오는 소포클레스와 헤로도투스에서부터 나타나며, 헬라어 문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법률과 종교 분야에서 중요한 용어이다. 호몰로게오는 호모(동일한 것, 유사한 것)와 레고(말하다), 또는 로고스(말, 연설)의 합성어이며, 따라서 '동일한 것을 말하다', '말에 동의하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a) '그 말에 동의하다'(Hdt.,Ⅰ,142,4), '같은 언어를 말하다, 그의 확언을 받아들이다, 책임을 인정하다, 죄를 고백하다'(Soph.Phil.에서부터).|(b) '영수증을 확인하다'(pap에서 때때로).|(c) '제안에 동의하다'(Hdt.,Thuc.), '제안에 따르다'.|(d) '소원에 동의하다, 약속하다'.(참조: O.Michel).||이 단어(와 이 어군의 단어들)에는 법정적인 의미가 현저하게 함축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진술(말)에 동의하고 어떤 사항을 인정하거나 고백하고(예: 재판관 앞에서의 자기 죄에 대한 인정이나 고백), 어떤 일에 대해 동의하고(예: 다른 사람의 소원에 대한 동의) 또한 약속한다. 이 동의는 법정적 또는 법적 계약(서)로서 서약, 약속 또는 고백 행위로 표현한다.|이 단어들의 종교적 용법은 이 단어들을 협정(조약)이나 법정 언어로 사용한 용법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어떤 맹세(호몰로게오)로서 자신을 구속하는 사람은 신(神)과의 조약 관계에 들어 간다. 그래서 이 개념은 법정에서의 과실에 대한 엄숙한 고백을 뜻하는 개념에서 신께 대한 죄의 고백을 뜻하는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루디아(Lydia) 와 프리기아(Phrygia)의 속죄에 대한 비문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특히 동양의 이교들에서 사용되었다. 현대 헬라어에서 이 개념은 제사장에게 하는 신성한 고백을 의미하게 되었다. 곧 엑소몰로게오마이는 '나는 고백을 한다'는 뜻이며, 엑소몰로게오($1843)는 '나는 고백을 듣는다'는 뜻이다(참조: D.Furst).||#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호몰로게오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야다(3034: 찬양하다, 욥 40:14[9]), 나다르(5087: 서원하다, 렘 44:25[51:25]), 샤바(7650: 맹세하다, 겔 16:8)의 역어로 각각 한번씩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의미를 나타낸다.|그리고 오경, 지혜서 18:13에서 하나님의 자손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집회서 4:26에서 잘못을 '고백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몰로게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그 중에 l0회는 요한복음에 나온다. 이 용법은 일반 헬라어의 기본 의미로 시작하여 70인역본의 의미를 경유하여 그 후기의 저술에서 나타난 의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a) 호몰로게오는 '언명하다, 약속하다, 시인(인정)하다, (엄숙히)공언하다,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마 14:7에서 헤롯은 의붓딸에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맹세의 약속을 했다: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이 경우에 공언하는 것은 약속이나 맹세와 동일한 것이다. 호몰로게오에는 말하는 자를 그의 말에 묶는(구속하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행 7:17에도 비슷한 용법이 나온다. 곧 아브라함에게 한 공언 또는 약속은 의무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요 1:20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자가 아님을 언명 또는 공언하였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여기에서 호몰로게오는 복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공개적인 엄숙한 선언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범주에 속한다(요 1:7; 요 1:15; 요 1:19).|히 11:13은 아마 고백(confessing)과 공언(avowing)에 대한 일반 헬라어 용법을 가장 잘 이해한 것 같다. 약속의 땅 입구에서 족장들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들이 땅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선언 및 증거, 곧 공개적으로 한 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신중하게 호몰로게오를 사용함으로 두 가지 해석을 모두 허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b) 히 13:15의 호몰로게오는 '찬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 문맥은 교회에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 것을 요구한다. 곧 예수님의 중재를 통하여 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c) 호몰로게오는 '고백하다, 공개적으로 고백하다, 공적으로 진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일 1:9에서 호몰로게오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언명 또는 공언을 하는 자는 어떤 사실과 직면한다. 그는 그 사실을 감추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는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특정한 죄들을 고백한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정직하게 자신의 과실을 깨닫고 공언할 때 그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경험하게 된다.|롬 10:9 - 롬 10:10(참조:신 30:14)에 의하면, 믿음과 고백은 연결되어 있다(참조: 고후 4:13). 고백과 선포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에는 종말론적인 책임이 따르며(참조: 고후 4:14), 종말론적인 구원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고백 형식이 롬 10:9 이면에 놓여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행 23:8 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고백도 종말론적 양상을 나타낸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했으나 바리새인들은 오는 세상과 관계된 종말론진리에 대한 그들의 교리적 고백으로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반대했다.|참된 믿음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은 하나님의 성육신한 아들에 대한 공적 고백이다(요일 4:2; 참조:요 1:14).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 고백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2:28; 요일 4:15). 이것은 예를 들어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그노시스파와 같은 이단적 운동을 정면으로 반대하여 있는 참된 기독론의 표적이다(요일 4:2 이하; 요일 4:15; 참조: 요일 2:22).|요한이 고백에 대하여 기록할 때 결코 고립된 교훈을 의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산출하는 완전한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신학의 주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이다. 사람이 자신의 고백에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지지하고 그 사실에 자신의 생을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시금석 곧 영혼을 시험하는 표적이 된다.|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공공연하게 고백하는 자는 회당에서 추방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요 9:22; 요 12:42). 또한 요한은 교회에 명하기를 교회의 모임에서 참 고백과 거짓 고백을 구별하라고 하였다(요일 4:1 이하).|딛 1:16도 역시 이단적인 고백에 대한 공격이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이 고백-아마도 그노시스파의 더 높은 지식을 주장하는 고백과 이것을 추구하는 자의 생활은 서로 모순되므로 그 고백이 거짓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딤전 6:12에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선한 증거는 제자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마 10:32; 참조: 딤전 6:13). 이러한 고백은 공적이며 (딤전 6:12), 구속력이 있고(딤전 6:12-13), 결정적인 것이다(마 10:32). 교회 또는 개인 신자는 죄의 용서에 대하여 응답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을 공적으로 고백함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 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으로 인정되고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는 증언을 하는 것이다. 신자는 자신의 믿음의 "고백에서"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 곧 자신의 존재와 모든 것을 예수님이 행하신 바를 통한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R.Bultmann). 믿음의 행위로 서의 이러한 고백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관련된다.||(d) 호몰로게오는 법적인 의미에서 '진술하다', '증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호몰로게오의 법적인 용법은 아마도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호몰로게오는 눅 12:8과 병행구 마 10:32에서 사용되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예수님은 자기를 시인 곧 고백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고백하면 자기도 종말론적인 증인으로서 아버지 앞에서 그것을 확증할 것이다고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인간의 행동과 심판자 곧 증인의 말씀의 일치이다.|부인은 항상 예수님께 대한 배반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이 고백은 종말론적인 면이 특히 강조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편에 서거나 또는 예수님과 관계를 끊거나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행동을 하실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계 3:5; 참조:마 12:32 이하; 막 8:34). 신자는 예수님과 교제 관계에 너무 완전하게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람들 앞에서의 그의 고백, 예를 들어 박해 시기 동안에 인간 법정 앞에서 고백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는 고백과 같이 간주된다.|이러한 문맥에서 고백은 사람이 말하는 것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생애에서 보여지게 되는 순종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전적인 순종이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 즉 사람이 구원에 대한 자기의 이해와 지식으로 만족하는 곳에서 이것은 부인과 동등한 것이 된다.|마 7:23에서 보면, 이러한 고백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심판 때에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공언하실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 호몰로게오는 종말론적 증거, 또는 심판에 의한 거부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O.Michel; D.Furst).
믿는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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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confess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몰로기아(헤로도투스와 투키디데스에서부터)는 호몰로게오($3670: 동일한 것을 말하다. 말에 동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동의, 합의, 일치'를 의미하게 되었다.|호몰로기아는 소크라테스 대화록에서 중요한 용어로 등장하는데,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어떤 것에 적절한 결심과 행동을 수반하는 동의를 의미한다. 이 호몰로기아의 목적은 우리에게 맡기는 이론적인 동의가 아니라 보편적인 주장이나 주의의 수용이다.|스토아 학파에서 호몰로기아에는 실제적인 행동이라는 사상으로부터 삶의 완전한 상태라는 개념으로의 전이를 함축한다.|파피루스에서는 이 단어가 법적인 성격의 '계약'이나 '동의'를 의미한다. 종교 분야에서 이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서약을 하는 것, 특별히 죄의 고백을 나타낸다.|(참조: D.Furst). → $3670 호몰로게오.||#2. 70인역본의 용법||호몰로기아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히브리어 네다바(5071:낙헌예물, 신 12:17; 겔46:12; 암 4:5), 네데르(5088: 서원, 렘 44:25[51:25])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외경, 에스드라상 9:8에서 죄에 대한 '고백'를 의미한다. 미첼(O.Michel)은 히브리어의 역어로 호몰로기아의 단어군이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 법적 의미와 상업적 의미가 너무나 불경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하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몰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복음을 시인하는 고백(confession), 자유로운 행동이나 공동체 안에서의 제의적인 형태의 고백을 나타낸다.|고후 9:13("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 그 메시지에 순종, 그 요구의 수용과 헌신의 표현을 뜻한다. 교회들은 고린도인들의 은사에서 이러한 류의 공개적 증거와 고백을 보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과(고후 9: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후 9:13). 복음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 단어는 여기서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 정확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형제애의 어떤 특정한 아낌없는 행위는 복음에 대한 호몰로기아가 된다. 호몰로기아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응답이며, 또한 세상을 향한 공동체의 증거이다.|그렇지만 히 3:l; 히 4:14; 히 10:23에서 호몰로기아(고백; "믿는 도리")는 독자들이 행하는 교회론적 신앙 고백이거나 세례(침례) 의식시의 신앙 고백에 대한 언급이든지, 또는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 가지 술어들과 관련된 찬양의식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지 히브리서에서도 역시 호몰로기아는 동여 묶는 언어, 의무와 헌신의 표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이다. 히브리서에서 새롭고 특별한 것은 생생한 단어로서 굳게 잡아야 할 공동체의 믿는 것들을, 한 생생한 단어로서 요약하는 확된 호몰로기아를 나타낸 것이다.|딤전 6:12 - 딤전 6:13은 디모데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한 초대 교회의 모임을 묘사한다. 이 모임은 성직 수임식이 분명한 것 같으며, 선한 고백은 모인 회중 앞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뒤따르는 말들은 이 선한 고백을 상기시킨다.|(참조: O.Michel; D.Furst).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oJmologoumevnw"
공동합의로, 이의 없이||부사 호몰로구메노스는 호몰로기스의 현재 분사 수동의 부사이며, '공동합의로, 이의 없이, 전원의 판단에 따라'를 의미한다.|호몰로구메노스는 신약 성경에서 딤전 3:16에 한번만 나오며,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을 소개한다. 호몰로구메노스 메가(의심할 여지 없이 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는 하늘과 땅, 천사들과 사람들의 예배에서 선언된다. 아마도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호몰로기아의 개념의 반영인 듯하다.|(참조: O. Michel; D. Furst).
업이 같은
oJmovtecno"
같은 기능업에 종사하는, 같은 영업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호모테크노스(Hdt. 이래)는 호무($3674: 함께)와 테크네($5078: 기술, 기능, 기교, 장사, 직업)에서 유래했으며, '같은 기능업에 종사하는, 같은 영업의'(Hdt., Plat., Dem., Joseph. Lcian.)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호모테크노스는 행 18:3에 한번 나오며, '같은 기능업에 종사하는'을 의미한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호무
oJmou'
함께 to geth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호무(Homer 이래)는 호모스(%46: 동일)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togethe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호무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요한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요 21:2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b) 행 2:1에서 오순절날에 신도들이 같은 장소에 모두 '함께' 있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c) 요 20:4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주님의 무덤을 향해 '함께' 달려 왔다: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d) 요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