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o[noma
이름 nam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노마(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b) '명성, 평판'|(c) 어떤 사물에 대응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d) 속격과 함께 사용되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지칭|(e) 문법에서는 '명사', 또는 '단어'|(f) 파피루스에서는 책이나 목록의 명칭에 근거하여 '법적인 제목', '설명 항목', 금융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평가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노마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솀(이름)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노마는 신약성경에서 22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람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름.|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 위에 적힌 열 두 사도의 이름들(계 21:14)과 성문 위에 적힌 열 두 지파의 이름들(계 21:12)은 하나님에 속한 옛 백성들과 새 백성들의 최종적 단일성을 나타낸 것이다.|② 예수님께서는 이름으로 자기 양을 부르시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심으로써 자신이 선한 목자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③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새 이름들을 지어주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맡겼다(마 10:2이하; 막 3:16이하; 눅 6:14이하).|막 3:17에서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니"라고 언급한다. 어떤 사본들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열 둘 모두에게 적용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 단어는 아마도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 문구를 음역한 것 같다. 보아네는 명백하게 베네(~의 아들들)를 나타낸다. - 르게스는 우뢰를 의미하는 일상 단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로게스(동요, 흥분, 격노; 참조: 욥 37:2, 우뢰); 아람어 레가즈(분노); 혹은 히브리어 레게쉬(군중; 참조: 시 55:14[15]; 후에 히브리어에서는 소동, 진동; 참조: 아람어 리그샤[소란])등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있다. 레게쉬와 관련된 아랍어는 '우뢰'를 의미한다. 렌델 해리스(J. Rendel Harris)는 이 어구가 그들이 쌍둥이임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보다 유력한 해석은 막 9:38과 눅 9:54에 관련된 감정의 격발에서 찾는다.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을 의미하고 따라서 하나의 약속을 수반하고 있는 것 같이 아마도 또한 그들의 증거가 우뢰처럼 강력할 것이라는 함축된 약속이 있을 것이다(C. E. B. Cranfield).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눅 10:21)은,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승리자가 받는 새 이름은 그리스도 그 자신과의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교제를 표현한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④ 악령들도 역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들은 그들의 어떤 본성 혹은 힘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막 5:9). 예를 들면 계 13:1에서 그 "짐승"은 참람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즉 그 짐승은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에게만 속하는 이름들과 경칭들을 가진 것이다. 짐승의 이름은 수 Number에 포함되어 있으며(계 13:17이하), 그 짐승을 신봉하는 자들도 역시 그 수를 가지고 있다(계 13:17; 계 15:2). "큰 음녀"(계 17:1, 참조: 계 17:3) 즉 "큰 바빌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의 이름은 계 12장에 기록된 여자와 대조되어 있는데 그 여자는 남자 아기를 뱄으며, 신실한 모든 자의 어머니이다(참조: 계 12:4이하, 계 12:17과 더불어).||(b) 하나님의 이름.|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계시에서 나타난다. 인격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인격으로 향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서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나타내신다: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2, 요 17:26). 예수님 오직 그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서 나타내신다는 사실이 이와 조화를 이룬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요 12:28에서 "아버지",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름"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존"된다는 것은, 그들이 효력이 발생하는 힘의 영역에서 살며, 그러한 힘은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을 서로 단결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이하). 하나님의 이름을 아버지로 선포하는 목적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또한 믿는 자들 안에서 발견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요한복음의 이와 같은 진술들에서, 특히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진술들에서(요 17장)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구약성경 증언에서 기독론적인 해석을 발견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고대 성서 전승의 노선을 취하여 그 노선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는 한 인간의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와 결속돼 있다(참조: 이것에 대하여 마 11:27과 마 28:18과 더불어 요 3:35; 요 5:20; 요 13:3; 요 7:29; 요 10:15; 요 17:25)고 한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심과 그의 아들되심의 증거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신다(막 11:19이하; 요 10:24이하). 그의 재림시에 그는 "주의 이름으로" 오실 것이다(마 23:39). 하나님의 이름이 아들과 성령의 이름과 합쳐질 때, 이러한 것은 완전함과 풍성함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정확한 삼위일체의 관용어구가 없지만 이것은 삼위일체의 사상이다. 주기도문의 첫 간구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참조: 사 29:23; 겔 36:23).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죄를 인하여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는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그의 이름 그 자체의 신성화와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무시하는 자, 또는 자신의 주인에게 불복하는 기독교인 종은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이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계 13:6에 나타난 그 짐승은 또한 마지막 날에 재앙으로 환란을 겪는 자들이 하는 것 같이(계 16:9)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을 훼방한다.||(c) 예수님의 이름.|① 예수님의 생활과 활동의 의미는 예수님의 이름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마 1:21; 마 1:23). 예수님께서는 아들이라는 빼어난 이름을 가지셨다(히 1:4이하).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3; 참조: 요 1:1). 주(Lord)라는 하나님의 이름도 예수님의 이름이다(빌 2:9이하; 계 19:16). 이에 대하여 그는 자신 혼자만이 아시는 이름(계 19:12)과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는 이름(계 19:13)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라는 이름은 간단히 "이름"으로 대치될 수 있다(행 5:41; 요삼 1:7; 참조: 유대인들이 여호와 대신 솀을 사용).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구원 진리의 전 내용은 그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행 4:12; 고전6:11).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 즉 예수님의 메시야적 선교를 믿는 것(요 3:18)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요일 3:23; 요일 5:13). 그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죄의 용서를 받고(행 10:43; 요일 2:12), 영생을 얻으며(요 20:21; 요일 5:13),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 3:18). 기독교인의 전체의 삶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배되며(골 3:17)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1:12).|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나라들에 대한 선포의 기초이다(행 8:12; 행 9:16; 롬 1:5).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선포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사도들이 "이 이름으로 " 가르치는 것을 금했다(행 5:17이하; 행 5:28, 행 5:40). 신앙과 선포는 그 이름을 시인하는 것(계 2:13; 계 3:8)과 그의 이름으로 고난 받을 각오를 함을 의미한다(마 10:22; 마 24:9).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충성은 그의 이름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계 2:13; 계 3:8).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광과 연루되어 있으며, 벧전 4:14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말한다(참조: 사 11: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행 9:14; 고전 1:2), 구원을 받는다(행 2:17-21; 롬 10:13; 참조: 욜 2:32).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이다(행 11:26; 참조: 행 26:18; 벧전 4:16).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이름"이다(약 2:7). 마지막 날의 선물들 중의 하나는 승리자들이 어린 양의 이름을 지닐 것이라는 그 사실이다(계 3:12; 계 14:1; 계 22:4).|②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관용어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주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감사가 그의 이름으로 드려진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열방이 그들의 소망을 그 이름에 둔다: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2:21; 참조: 사 42:4). 또한 교회가 그의 이름으로(요 14:13이하; 요 15:16), 즉 그의 뜻과 교훈에 따라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주신 임무가 성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기도는 응답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의하여 보냄을 받았으므로 그들은 그를 대신하여 그의 능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으며, 이적과 긍휼을 베푸는 활동들을 수행할 수 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막 8:38이하).|부활 이후에 예수님의 이름은 계속하여 능력을 나타내었다(행 3:6; 행 14:10). 이름과 "능력"은 서로 병행하여 사용된다(행 4:7; 행 16:18). 예수께서 친히 도와 주시고 그의 이름 속에 임재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마술로 귀신을 쫓아내는 데에 그 이름을 오용하려 할 때 임재하지 않으신다(행 19:13-16). 이러한 진술들을 고려해 볼 때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는 구약성경의 방식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에 이전되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이 예수님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위임과 권위를 부여 받은 자로서(고전 5:4; 살후 3:6) "예수의 이름으로" 권고하고(살후 3:6, 고전 1:10) 판단할 수 있었다.|③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침례). "이름(속)으로"를 의미하는 에이스 토 오노마라는 세례(침례) 관용문구는 세례(침례)가 상징적으로 죄의 사함을 위하여, 세례(침례)받는 자를 그리스도께 넘겨 준다는 의미이다(행 8:16; 행 19:15; 고전 1:13, 고전 1:15; 참조: 마 28:19). 이름 안에서(엔), 또는 이름을 향하여(에피) 세례(침례)를 받는다는 언급이 주어질 경우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참조: 행 2:38; 행 10:48과 더불어 70인역본 수 9:9; 삼하 22:50; 집회서 47:13). 그리스도의 충만한 구원 사역이 그의 이름에 내포되어 있으며(여호와의 구원 사역이 그의 이름에 있는 것 같이), 교회 안에서도 현존하고 계신다. 이러한 것은 개인의 세례(침례)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세례(침례)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속으로 붙잡혀 들어가기 때문이다(롬 6:1-11; 골 2:12; 참조: 고후 4:10).|(참조: H. Bieten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