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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광경
o{rama
보이는 것, 광경 sight, 이상(환상) vis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라마(Xenophon 이래)는 '눈에 보이는 것, 광경, 출현, 환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라마는 70인역본에서 약 43회 나오며, 하존 어군(환상)과 말아 어군(환상, 광경, 형상), 맛사(경고, 신탁)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하나님은 이상(호라마)으로 자신을 보이게 하고, 노출시키고, 나타내거나 계시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보는 자들도 듣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용기를 얻게 되며 소명을 받는다(창 15:1; 창 46:2; 여기서 하나님은 이상을 통해 말씀하신다). 보는 사람의 이상은 일반적으로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한편으로는 보이는 것, 이상(호라마) 혹은 이상의 모양(출 3:3; 단 7:1)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영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얻고 선택받고 충격을 받고 용서를 받는다(창 15:1; 단 7:13). 이러한 예언적 이상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의 말씀을 수반하며 다만 그 다음에 시각적인 영향을 수반한다. 즉 하나님은 그것으로 그가 원하시거나 하고자 하는 것을 알려지게 하며, 그가 이 목적을 위하여 선택한 자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신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라마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마태복음(1회)과 사도행전(11회)에만 나타난다.||(a) 마 17:9에서 호라마는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본 것을 표현한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b) 사도행전에서 호라마는 '환상'을 의미한다.|행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행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행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행 10: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행 11:5,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행 12: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 16:9; 행 16:10,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구약성경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약성경은 그 환상가에게 일어난 효과는 용서받고, 용기를 얻고, 사명을 받는 것으로 표현한다(행 10:3; 행 9:10; 행 9:12).||(c) 행 7:31에서 호라마는 '광경'을 나타낸다: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참조: J.H.Thayer; K.Dahn).
호라시스
o{rasi"
보는 행위 the act of seeing, 환상 a vis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라시스(Aristot. 이래)는 호라오($3708: 보다)에서 유래했으며,||(a) '시각, 눈',|(b) '보는 행위, 보는 것',|(c) '출현, 현상, 환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라시스는 70인역본에서 150여회 나오며 '시각(봄), 출현, 환상'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라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17에서 '환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계 9:17에서도 마찬가지다: "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b) 계 4:3에서 2회, '현상, 외모'를 의미한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참조: Walter Bauer; J.H.Thayer; W.Michaelis).
보이는
oJratov"
보이는, 분명한 visib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호라토스(Hippocr. 이래)는 호라오($3708)에서 유래했으며, '보이는, 가시적인, 시야에 노출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라토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삼하 23:21에서 히브리어 말에(광경, 형상, 용모, 모양)를 번역하여 '잘생긴'을 나타내며, 라아(보다: 욥 34:26; 욥 37:21)를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라토스는 신약성경에서 골로새서에 한번 나타난다.|골 1:16에서 호라토스는 '보이는 것들'을 묘사하였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기서 타 호라타는 별들을 포함한 반면에 타 아오라타(보이지 않는 것들)는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불가시성을 공유하고 있고 인간의 영역을 지배하는 천상적 세력들을 가리킨다(참조: 엡 6:12). 세상의 전 영역과 천체의 현상들을 가리키는 듯하다.|(참조: J.H.Thayer; W.Michaelis).
삼가
oJravw
보다 se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라오(Homer 이래)는||(a) '보다, 바라보다, 관찰하다, 지각하다'.|(b) '상상하다, 경험하다, 출석하다, 참여하다'.|(c) 비유적 의미로 '이해하다, 인식하다, 고려하다, 주의하다'.|(d) 수동태로 '나타나다, 보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라오는 70인역본에서 매우 많이 나오며, 주로 라아와 그 다음으로 하자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보다, 깨닫게 하다'(창 27:1), '주목(주의)하다, 의식하다'(시 34:8), '알다, 경험하다'(신 11:2), '염려하다, 관심하다'(창 37:14; 사 5:12), '듣다'(렘 33:24), '이해하다'(삼상 12:17), '보이다' 등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라오는 신약성경에서 449회 나오는데 호라오와 미래형 옾소마이가 110회, 부정과거형 에이돈이 336회 나온다.||(a) 눈으로 '보다, 주목하다'(마 28:7; 마 28:10; 막 16:7; 눅 16:23; 요 8:57; 요 9:37; 요 14:9; 요 6:16; 요일 4:20; 계 1:7 등), '보이다, 나타나다'(행 2:3; 계 11:19 등).||(b) 마음으로 '보다, 인지하다, 알다, 이해하다'(행 8:32; 골 2:18; 히 2:8; 약 2:24), '의식하다'(요삼 1:11).||(c) '경험하다'(눅 3:6; 눅 17:22; 요 3:36 등).||(d) '주의하다, 조심하다, 삼가다'(마 8:4; 마 18:10; 막 1:44; 살전 5:15; 마 16:6; 막 8:15 등).||(e) '마음을 쓰다, 유의하다'(마 27:4; 행 18:15).||(f) 수동태로 '나타내다, 보이다'(눅 9:31; 천사들 눅 1:11; 눅 22:43; 행 7:30, 35; 하나님, 행 7:2; 죽은 자, 마 17:2; 막 9:4; 부활하신 예수님, 눅 24:34; 행 9:17; 행 13:31; 행 26:16; 고전 15:58; 딤전 3:16;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 히 9:28; 환상, 행 16:9; 계 11:19; 계 12:1, 3 등).
노하심
ojrghv
분노 anger, 분개 indignation, 진노 wra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르게(Hesiod 이래)는 오르가오(%1048: 득의양양하다, 뽐내다, 흥분하다)와 동족어이다. 오르게는||(a) 본래 '자연스런 충동, 기분, 기질, 천성, 성벽'을 의미한다(참조: Hdt., Ⅵ, 128).||(b) 비극 작가들의 작품에서(Aesch.; Soph.), 오르게의 용법은 점차 '강한 내적 열정을 나타내는 가장 인상적인 표현'을 의미하는데로 한정되었다(H. Kleinknecht; TDNT Ⅴ384). 따라서 뒤모스($2372)는 "끓어오르는 진노를, 오르게($3709)는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진노를" 의미한다(H. Cremer, 참조: TDNT V 409, 383). 분노의 목적은 복수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데모스데네스(Dem.)의 작품(Orationes, 24, 118)에서 오르게는 특별히 재판관에게 어울리는 태도로 나온다. 이 말은 긍정적인 면에서 의에 대해 봉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나머지의 경우에 분노는 주로 인간이 버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성격상의 결함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억제되지 않은 격정의 표출인 분노는 이성 Reason(그노메: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결정) 및 로고스(말)와 반대되며 현명한 사람의 모습과 모순된다. 분노는 아메카논 카콘(amechanon kakon: 제어할 수 없는 악)이다. 인간의 그 결과에 대해 보상할 수 없다(Eur., Medea 446f.). 분노는 "반드시 다른 카카(kaka: 악 evils)에 이르게 된다"(참조: H. Kleinknecht, TDNT 384).||#2. 70인역본의 용법.||오르게는 70인역본에서 약 450여회 나오며, 19개의 히브리 단어 및 파생어들, 그 중에 주로 아프(분노, 격노, 210회), 헤마(열기, 독, 격노, 분노)를 번역했고, 주로 사람이나 하나님의 '분노, 분개'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오르게는 신약성경에서 3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는 명사 오르게의 구절이 아님)||(a) 신약성경에서 오르게는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격노, 분노'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로 오르게는 뒤모스($2372)와 병행한다. 이 용어의 신약성경에서의 용법을 알려주는 핵심 구절은 약 1:19; 약 1:20이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는 분노 가운데 행한다.|계 11:18에 따르면 이방들의 분노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용의 분노와 동일하다고 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참조: 계 12:17).|이 근본적인 신학적 경향은 바울서신의 윤리적 판단에서도 발견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면서 복수를 자제할 것에 대해 말하는 한편(롬 12:19), 분노를 보다 열등한 인간의 특질로, 대개 혀의 죄로 간주한다(골 3:8; 엡 4:31). 우리는 특별히 이 죄를 경계해야만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노를 격발시켜서는 안된다(참조: 엡 6:4: "노엽게 하지 말고").|이렇게 할 때만이 예배 드리기에 순수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참조: 딛 1:7). 이곳과 후대의 문헌에서(예: Ign. Phld. 1:2; 8:1)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인간의 분노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의미에서 이루어진다: "분노는 하나님 앞에서 중대한 의에 기여하지 않는다"(Stahlin 442).||(b) 오르게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다루는 구절들에 나타난다(막 3:5). 예수님은 사단(☆마 4:10; 마 16:23)과 귀신들(☆막 1:25; 막 9:25; 눅 4:41)을 향하여 진노를 보이신다. 예수님은 악마 같은 사람들을 향하여 진노하신다(☆요 8:44; 참조: 마 23:33). 예수님은 모든 형태의 불신앙(☆요 11:33)과 이해력의 결핍(☆요 11:38)에 분노하신다. 예수님의 가득찬 분노(예수님을 가장 깊이 슬프게 한 것)는 바리새인을 향한 것이다(막 3:5).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의 회개의 부족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예수님의 비유에서 그러한 분노가 분명하게 언급된다(☆눅 14:21; 마 18:34). 이런 본문들에서 예수님의 분노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진노에 한층 더 가까이 접근한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 도성(☆마 11:20-24)과 성전의 상인들(☆마 21:12-13)을 심판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의 골짜기로 던지신다(참조: 마 13:42; 마 25:41; 마 22:7).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즙틀을 밟는다고 선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계 19:15). 어린양의 진노(계 6:16)는 하나님의 원수를 향한 높임 받으신 주님의 진노이다.||(c) 신약성경에서 오르게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는데(롬 3:5 이하),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형식(롬 2:8, 뒤모스와 함께 나옴)과 오래된 개념(롬 2:5: "진노의 날")을 사용한다. 이 선포가 행해지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건짐 받는다(살전 1:10; 롬 5:9).|세례(침례) 요한은 벌써 진노에서 구원 받기 위한 메타노이아(회개)를 선포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이하, 병행구 눅 3:7 이하).|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오르게는 거룩한 도성의 멸망에 관한 메시지에서 나타난다(눅 21:23).|요한계시록의 몇몇 용례는 이것을 한층 확대하여 하나님의 다가오는 진노에 대하여(계 11:18; 계 19:15),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잔에 대하여(계 14:8-10; 계 16:19), 진노의 큰 날에 대하여(계 6:17), 어린양의 진노의 날에 대하여(계 6:16) 말한다. 요한의 신학은 이와 같은 종말론적 진노가 지금 여기 존재함을 강조한다(비록 단 한번이긴 하지만, 요 3:36).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된다. 불신자들은 이미 죽은 자의 영역에 있다. 요한에게 있어서 이 배후에 놓여 있는 것은 개개인이 인자의 증거를 받으라는 요구이다(참조: 요 3:31-36).|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는 마지막 심판에서 확인될 것이다(롬 2:5; 롬 2:8; 롬 3:5; 롬 5:9 롬 9:22; 살전 1:10; 살전 5:9). 바울을 따르는 자들도 이 사상을 유지했다(골 3:6; 엡 5:6; 엡 2:3).|그러나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현재 활동하심에 대해, 복음의 구원하고 심판하는 기능에 대해서도(롬 1:17 이하)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양자 모두에게, 즉 전 인류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오르게의 신학에서 바울은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한편으로 그는 종말론적 진노의 미래의 성격을 받아들이고 "공로에 따른"(롬 2:5 이하)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디카오쉬네($1343: 의, 옳음)의 계시와 대조되는, 진노의 현재의 계시에 대해 말한다. 복음 안에서 믿음 외에는 오르게만이 있을 뿐이다(참조: 롬 3:9 이하; 롬 3:23). 하나님의 진노와 의의 이중적 계시(롬 4:15; 롬 13:4 이하; 살전 2:16)는 동일한 방식으로나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진노와 의 양자 모두에 대한 선포가 아니다. 오히려 이미 나타나고 있는 진노로부터 구원인 의에 대한 선포이다(Conzelmann 1932). 그러므로 바울에게 결정적인 문제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거나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믿음의 설교를 도우는 진노의 설교')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마찬가지로 신학적(문자적 의미에서의) 기초와 기독론적 전제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서 어떤 인간론보다 선행한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바울의 개념에서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바울의 개념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및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이 이해의 열쇠이다. 동일한 복음 안에서 동일한 사람이 진노와 구원을 만난다. 이것은 진노는 죄인에게만 효력을 미치고 구원은 의인에게만 미치는 그런 식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롬 3:23),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진노의 제거는 모두에게 적용한다(롬 3:24).|로마서에 따르면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단순한 종말론적 위협 이상의 보다 중요한 다른 무엇으로 선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의 진노로 인간과 대면할 때,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소환한다: 너는 세례(침례)와 고백을 통하여(참조: 롬 3:9 이하) 구원 받으라(참조: 롬 3:21-26). 그러므로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는 신적인 속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게리그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과 만날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인정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인류는 지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진노에서 구원 받는다(롬 5:9; 참조: 롬 10:4).|히 3:11과 히 4:3은 시 95:11을 인용한다("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Pesch).
분노하다
ojrgivzw
노하게 하다, 노하게 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르기조(Soph., Eur., Thuc. 이래)는 오르게($3709)에서 유래했으며, 능동태에서 `노하게 하다, 격분시키다', 수동태에서 `노하게 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오르기조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하라(타다, 분노하다), 그리고 카차프(분노하다, 분개하다)를 번역하며, 주로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오르기조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마태복음(3회), 누가복음(2회), 에베소서(1회), 요한계시록(2회)에만 사용되었다.||(a) 오르기조는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낸다. 마 18:34; 마 22:7; 병행구, 눅 14:21.||(b) 오르기조는 사람의 분노에 대해 사용되었다. 눅 15:28에서 형의 아우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이 형의 분노는 동정의 부족과 무정함을 나타내며, 아버지의 사랑과 대조된다. 즉 분노하는 형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와 반대하여 서 있는 것이다.|계 11:18에서 이 사상은 발전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하나님에 대한 이방인들의 분노는 순전히 어리석은 짓이며, 자기 정죄이다.|계 12:17에서 오르기조는 마귀의 전형적인 기질으로 묘사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그리고 용이 분노하여 하늘의 여인을 박해하는 기사는 이 분노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증명한다.|마 5:22에서 오르기조는 인간의 악한 기질로 묘사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여기서 이러한 묘사는 오르기조가 한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행동 뿐만 아니라 사상과 행동도 사람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둔다(W.Pesch). 라가(헬, 레가)는 `바보'라는 `성난 경멸의 표현'이다.|(참조: Walter Bauer; W. Pesch).
급히 분내다
ojrgivlo"
노하기 잘하는 inclined to a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오르길로스(Hippar. 이래)는 오르게($3709)에서 유래했으며, `노하기 잘하는, 흥분 잘하는'이란 의미를 가진다.||#2. 70인역본의 용법||오르길로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노하거나 성내는 것을 의미한다(시 18:48; 잠 21:19; 잠 22:24; 잠 29:22).||#3. 신약성경의 용법||오르길로스는 신약성경에서 딛 1:7에 한번 나온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참조: Walter Bauer, H.-C.Hahn).

ojrguiav
길 fath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르귀아(Homer, Hdt. 이래)는 오레고($3713: 내밀다, 내뻗다)에서 유래했으며, '길' fathon, 양팔을 쭉 뻗었을 때의 길이(5-6피트)를 가리킨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르귀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행 27:28에만 나온다: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얻으려 하다
ojrevgw
~을 얻으려고 내밀다, 또는 얻으려고 애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레고마이(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이 단어는 '내뻗다', 보기로, 하늘로 손을 내뻗는 것, 여기에서 '어떤 것을 얻으려고 내밀다'(뻗치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b) 이 단어는 비유적 의미로 '얻으려고 애쓰다'(노력하다)는 의미에서, 명사 오렉시스($3715)와 마찬가지로 ① 마음과 정신의 분투, ② 육체적인 욕망의 분투(비교적 드물게 나옴)를 의미한다.|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단어에 인간 이성에 의거하여 신중하게 뜻을 결정하는데 따르는 영혼의 분투라고 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성의 힘과 절제가 제거되고 나면, 이 분투는 욕망이 되어버린다. 생의 최고의 이상(ideal)은 자기 자신의 자아에 따른(카타 휘신) 분투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레고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디모데전서와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기서 오레고마이는 더 좋은 하늘의 본향, 곧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집에 대한 믿음의 열정에 대해 언급한다. 이런 열정은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충동이나 그의 본질적인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에서 나온다(참조: 히 11:9; 히 11:13; 히 11:15). 이 열정은 약속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믿음의 순종으로 나타난다(참조: 히 11:8; 히 11:17). 이것은 이 열정이 현실과 유리된 내적이고 정서적인 감정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지를, 이 세상의 실제적인 사물 안에서 나타내어진 하나님이 주신 목표와 일치시킨다.||(b)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서 오레고마이는 '얻으려고 애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만일 욕망과 분투의 목표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구원이 아니라면, 우리는 돈에 대한 사랑과 같은 파괴적인 힘들의 희생물로 전락하게 된다.||(c) 딤전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여기서도 오레고마이는 '~을 얻으려고 애쓰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교회 내의 직무에 대한 열정을 찬양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uhrt).
산중
ojreinov"
산으로 된, 산이 많은 hilly, mountainous.||형용사 오레이노스는 오로스($3735: 산)에서 유래했으며, '산이 많은, 산지'를 의미한다. 오레이노스는 평평한 땅이 아닌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되어있는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의 탄생 일화에 나타난다. 이 말은 세례(침례) 요한의 출생지를 묘사할 때 2회(눅 1:39, 눅 1:65) 사용되었다. 이러한 유대의 산악 지방은 사해의 서·북에 위치해 있으며 예루살렘과 베들레헴도 여기에 속한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한 곳은 바로 이 지역이었으며 요한이 탄생한 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관한 말도 이 지역으로 퍼져나갔다.|(참조: W. L. Liefeld; J. H. Thayer).
음욕
o[rexi"
욕망, 욕구, 사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렉시스(Homer 이래)는 오레고마이($3713: 내밀다, 내뻗다, 얻으려고 애쓰다, 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소원, 욕망, 욕구, 갈망, 동경, 사모'를 의미한다.|이 명사는 동사 오레고마이($3713)와 마찬가지로,||(a) 마음과 정신의 분투,|(b) 육체적 욕망의 분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렉시스는 70인역본에서 8회 외경에서만 나온다.|이 단어는 지혜서 16:2 이하에서 좋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유랑하는 이스라엘의 욕구를 매추라기로 충족시켜주었다고 한다.|이 단어는 집회서 18:30과 23:6에서 나쁜 의미로, 벤 시라(Ben Sira)는 향연시의 타락에 대해 경고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렉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27에 한번 나온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여기서 오렉시스는 성적인 욕망에 대해 사용되었지만 바울이 헬라의 이원론(dualism) 사상에 입각하여 육체적인 욕망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왜곡된 욕망의 유형들, 가령 동성애같은 것들만을 공격하고 있으며, 이는 이런 유형의 욕망들의 유래가,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꿔버렸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참조: 롬 1:2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uhrt).
바로 행하다
ojrqopodevw
바로 걷다, 바르게 행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르도포데오(Soph. 이래)는 오르도스($3717: 곧은, 똑바른)와 푸스($4228: 발)에서 유래했으며,||(a) 문자적으로 '곧은 행로로 걷다, 바로 걷다',|(b) 비유적으로 '바르게 행동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르도포데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2:14에 한번 나오며, '바로 행하다'를 의미한다.|여기서는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교인들에 대한 베드로의 행위(오르도포데오)가 옳았는가 하는 예리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때 그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인들에게 왔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올바른 행위와 올바르게 서서 걸음으로써 이 복음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의미하는 바이다(R. Klob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Klober).
곧은
ojrqov"
똑바른, 곧은, 올바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오르도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문자적으로, '똑바로 서 있는, 똑바른 방향으로 계속하는',|(b) 비유적으로, '올바른, 진실한'을 의미한다.|그리고 또한 비유적 의미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에 사용되고 있다(올바른 마음). 헬라 고전 시대 및 스토아 학파에서 이 단어는 객관적인 '자질' quality, 혹은 '덕' virtue을 의미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오르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야샤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오르도스는 '똑바로(선)'(미 2:3, 너희 머리를 똑바로 하고, 즉 교만히), '바른 방향'(렘 38:9, 바른 길로)을 나타낸다. 그러나 오르도스는 지혜 문서에서 특별 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히브리어 야샤르의 역어로, '올바른', '정확한', '진실한'을 의미한다(잠 8:6, 9, 올바른 말; 잠 11:6, 정직한 사람; 잠 16:25, 바른 길 등등). 따라서 지혜 문서에서 오르도스는 하나님께 대한 온당한 관계와 일치하는 것으로 일종의 '올바른 태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미덕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오르도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14:10에서 오르도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여기서 이 명사는 '똑바로'를 의미한다.||(b) 히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여기에서 기자는 피곤하여져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소홀히 하지 않도록,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교회를 권면한다. "곧은 길"(70인역본의 잠 4:26이 인용)은 방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방향을 의미해 주고 있다. 따라서 오르도스는 기독교회의 종말론적 노선이라는 의미로 여기에서 해석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Klober).
옳게 분변하다
ojrqotomevw
바르게 베다, 길을 내다(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르도토메오는 오르도스($3717: 곧은, 똑바른)와 템노(%376: 베다)에서 유래했으며, 이 단어는,||(a) '바르게 베다',|(b) '길을 부설하다, 길을 내다(열다), 도로를 기공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르도토메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야샤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잠 3:6; 잠 11:5). 여기서 이 단어는 곧은 방향으로 길을 만드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템노(깎다, 자르다)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숲이나 혹은 험한 지역에 길을 만들어 여행자가 자기의 목적지까지 곧장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Arndt, 584).||#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르도토메오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2:15에 한번 나온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 구절은 플라톤의 저서에 나오는 구절과 비교된다. '현재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것에 의하여 명백해진 법률의 길을(테트메멘엔 호돈) 따라 나아가라'(Plato, Laws). 아른트(Arndt)는 디모데후서의 의미가 목표 지점을 향해 똑바로 뚫린 길처럼 똑바른 길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지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다른 해석들은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 건전하게 설명하는 것, 옳게 주석하는 것, 두려움 없이 전하는 것 등이다(참조: Moulton, Millilgan).|(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Koster; R. Klober).
이른 아침에 …나아가다
ojrqrivzw
일찍 일어나다.||#1.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르드리조는 오르드로스($3722: 새벽, 동틀녘)에서 유래했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르드리조는 70인역본에서 약 57회 나오며, 주로 샤캄(일찍 일어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19:2; 출 24:4; 출 32:6; 삼상 1:19; 대하 29:2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르드리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21:38에 한번 나온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여기서 오르드리조는 '아침 일찍 일어나다'를 의미한다. 모든 백성이 일찍 일어나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있는 그에게로 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