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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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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오르드리노스(Anecd. )는 오르드로스($3722: 새벽, 동틀녘)에서 유래했으며, '이른, 이른 아침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오르드리노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호 6:4에서 샤캄(일찍 일어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오르드리노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4:22에 한번 나온다: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여기서 오르드리노스는 이른 아침, 곧 새벽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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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이른 아침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오르드리오스(Homer 이래)는 오르드리노스($3720: 이른)의 다른 읽기이며, '이른, 이른 아침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오르드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삼상 28:13에서 한 정직한 사람이 땅에서 '올라 오는 것'을 욥 29:7에서 성읍으로 '일찍' 나아간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오르드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4:22에 한번 나온다: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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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아침 일찍.||#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르드로스(Hes. 이래)는 '새벽, 동틀녘'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르드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5회 나오며, 샤하르(새벽), 보케르(아침)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르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24:1에서 안식 후 첫 날 '새벽'을 의미한다: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b) 요 8:2에서 '아침 일찍'을 의미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c) 행 5:21에서 '새벽'을 나타낸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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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정확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오르도스(Aeschyl., Hdt. 이래)는 오르도스($3717: 곧은, 똑바른)에서 유래했으며, '바르게, 올바르게, 정확하게'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오르도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막 7:35에서 오르도스는 '정확히'를 의미한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b) 누가복음에서 '올바르게'를 의미한다.|① 눅 7: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②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③ 눅 20:21,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인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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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하다 determine, 지정하다, 임명하다 appoint.||#1. 고전 헬라어 문헌||호리조는 호로스(%63:경계)와 호리온($3725: 경계, 지방, 지역)과 관련된다. 원래 이 단어는 '제한하다, 경계를 짓다'를 뜻하며, 여기에서부터 '세우다, 결정하다'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주전 5세기에 이 단어는 아에쉴루스(Aesch.)와 헤로도투스에 자주 나온다. 소포클레스(Soph.)의 저술에는 신들이 법률을 정하는 것으로 나오며, 유리피테스(Eur.)의 저술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온다. 플라톤(Plato)과 데모스데네스(Dem.)는 호리조의 공간적인 세력을 현세적 관계들로 전가 시킨다. 이러한 용법은 후에 요세푸스의 저술에서도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리조는 70인역본에 17회 나온다. 호리조는 그 본래의 의미인 '경계를 정한다'는 의미로(가발: '경계를 정하다'와 게불: '경계'의 역어) 민 34:6; 수 13:27; 15:12; 18:20에 나타난다. 이 동사는 민 30:3-12에서 아사르(스스로를 서약으로 묶다)의 역어로 여러번 사용되었다. 잠 18:8에서는 파라드(히필형으로 '분리하다, 사이를 결정하다')의 의미를 표현한다. 잠 16:30에서 호리조는 카라츠(물다, 좁게 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분명히 여기서는 포악한 사람이 눈을 감고 남을 괴롭히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잔혹한 짓을 행한다는 사실을 묘사하는데 그 의도가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리조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호리조는 '결정하다, 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행 2:23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메시야적 주장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관련하여 이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며, 이 뜻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눈먼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잘못된 사상과 처사를 폭로한다.|눅 22:22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의해 "작정된 대로" 길을 가신다. 그러나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행 10:42에서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자로 "정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호리조는 유일하게 행 11:29 한 곳에서만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되지 않고 세속적인 헬라어의 통상적인 용법으로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제자들은 궁핍한 형제들에게 구제 기금을 보낼 것을 "작정하였다". 즉 결정한 것이다.||(b) 호리조는 행 17:26 - 행 17:27; 행 17:31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함축한다. 바울도 아레오바고에서 비슷한 성명을 발표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에게 지정된 년대와 경계를 "하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날에 천하를 심판하실 한 사람을 "정하셨다". 문맥에서 볼 때 이 구절은 의심할 바 없이 영원부터의 예정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히 4:7에서 호리조는 시간의 제약을 함축한다. 광야에서의 시험의 날 후에(히 3:8) 하나님께서 다른 한 날을 정하셨으니 그리스도로 시작되는 구원의 새로운 시대이며,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는 날이라고 선언한다.||(c) 호리조는 '지정하다, 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롬 1:3 이하에서 바울은 자신이 조상들의 전통과 연결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초기 기독교 신조를 인용하고 있다: 이 신조에서 예수님의 존재하심의 인간적 형태는("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의 신적 형태의 실존("성결의 영으로는...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과 대조된다. "인정되셨으니"란 말은 목표를 향해 가는 전진(advance)의 한 단계를 암시한다.|예수님께서는 다윗 혈통의 메시야이시나 훨씬 그 이상이시기도 하시니 곧 예수님께서는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행 10:42과 행 17:31에 비추어 볼 때 임명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영원부터 이미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부활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 받으셨다는 이론은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울이 어느 곳에서라도 예수님께서 부활에서 처음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되셨다는 생각을 나타낸 곳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참조: 롬 8:3). 바울은 예수님께서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믿고 있다. 미첼(O.Michel)은 로마서 주석에서, 바울은 이 절에서 이중적인 진리, 곧 예수님을 인간적인 면과 신적인 면으로 이해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한다.|(참조: S.Wibbing; G.Dulon).
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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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 지역.||#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리온(Soph. Thu. 이래)은 호로스(**: 경계)에서 유래했으며, '경계' a bound, '한계' limi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리온은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경계, 영역, 지역, 영토'를 나타낸다, 마 2:16; 마 4:13; 마 8:34; 마 15:22; 마 15:39; 마 19:1; 막 5:17; 막 7:24; 막 7:31; 막 10:1; 행 13:5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호르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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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하게 하다, 간원하다 adjure, 탄원하다 implor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르키조(Xenoph. 이래)는 호르코스($3727: 맹세)에서 유래했으며, '~로 어떤 자로 맹세하게 하다, 간원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오르키조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히브리어 샤바(맹세하다)를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르키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난다.|막 5:7에서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께 이러한 말로 간원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의 능력을 빼앗고자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를 보호해주기를 예수님께 간청한다. 그러나 그 간청은 무용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행 19:13에서 귀신축출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귀신들에게 호소함으로서 귀신들을 쫓아내고자 하였다. 그들의 공식 문구는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이다.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에 이러한 능력이 있고 그 이름을 언급하면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이름은 단지 가장 강력한 마법(술)에 불과한 것이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이름이 그를 믿는 신앙에서 그의 위탁을 받고 믿음으로 말할 때와 그의 위엄에 근거할 때만 힘을 가진다고 한다. 불신 귀신축출 자들은 단지 마술사들이다|살전 5:27TR에서도 호리기조가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Schneider).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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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 oa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르코스(Homer 이래)는 에르고(%10: 가두다, 내쫓다)에서 유래했다.|(a) 호르코스는 원래 맹세를 하는데에 잡아 치켜드는 지팡이를 의미하였으나(Hom.) 후에는 일반적인 맹세를 의미하였다.|(b) 호르코스는 거짓 맹세와 위증을 처벌하는 신(엘리스의 아들)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르코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히브리어 셰부아(맹세) 어군과 간혹 알라(저주, 저주의 행위 및 저주의 말들)를 번역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르코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맹세'를 의미한다.||(a) 약 5:12에서 호르코스는 옴뉘오(멩세하다)의 목적어로 나타난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이 언급의 최종적 요소는 야고보가 맹세에 대한 절대적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b) 호르코스는 구약 인용문에서 2회 나타난다.|눅 1:73의 찬가에서 나타난다: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여기에서 호르코스는 디아데케(언약)와 병행하며, 디아데케는 호르코스에 의해 해명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아브라함에게 선언함으로서, 구원의 때의 사건들을 언급하는 맹세의 약속을 주셨다.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성결과 의로" 그를 섬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행 2:30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맹세를 언급한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베드로는 그의 오순절 설교에서 메시야, 곧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시 132:11(참조: 시 89:3이하)에서 발견한다. 다윗의 약속된 아들인 그리스도는 메시야 보좌에 즉위하셨다.|마 5: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는 구약의 언급을 근거하여 옛 언약의 입법자가 하나님께 맹세의 수행을 하나님께 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c) 히브리서에서 맹세에 관해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구절들을 발견한다.|히 6: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이것은 호르코스에 의해 확증된 기사의 어떠한 부정도 무효화하지 못하는 맹세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맹세는 발언한 말을 결정적으로 묶는 확증이다.|히 6:17에서 기자는 하나님의 맹세를 다룬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d) 마 14:7과 마 26:72에서 "약속, 부인, 맹세와 더불어"라는 표현들에 의해 진술과 맹세를 연결한다.|마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막 6:26에서 가볍게 행해진 맹세의 심각한 결과를 표현한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참조: Walter Bauer; H.-G.Link; J.Schneider ).
호르코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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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로 단언하는 asserting an oath, 맹세하는 taking an oa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르코모시아(Doric.)는 '맹세에 의한 단언이나 확증'을 의미하며, 드물게 사용된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르코모시아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맹세'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르코모시아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서 4회 나온다.|히 7:20이하에서 호르코모시아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맹세의 말씀 사이에 구별을 짓는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맹세없이 이루어진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임명에 대한 대조적 표현으로, 히브리서는 시 110:4에 나오는 맹세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더 나은 것이며 불변적인 것임을 확신적을 가지고 증명한다.|히 7:28에서 율법과 하나님의 맹세를 대조시킨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후자는 율법 후에 왔다. 율법은 연약하고 죄있는 사람들을 대제사장으로 삼았으나 맹세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시고 영원히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참조: J.H.Thayer; H.-G.Link; J.Schneider).
내리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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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촉하다, 몰아대다, 돌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호르마오(Homer 이래)는 호르메($3730: 격렬한 움직임, 강습, 습격)에서 유래했으며,||(a) 타동사로 '빠르게 움직이게 하다, 재촉하다, 몰아내다',|(b) 자동사로 '~에서 나가다, 돌진하다, 일어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호르마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a) 막 5:13과 병행구절(마 8:32; 눅 8:33)에서 귀신의 충동적 지배 아래 돼지가 물 안으로 돌진하는 것을 표현한다: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b) 사도행전에서 소요 행위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① 행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② 행 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달려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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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움직임, 적대적 움직임의 시작, 습격.||#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르메(Homer 이래)는 '흐르다' stream를 뜻하는 인도-유럽 어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는||(a) 빠른 움직임, 심지어 '적대적 움직임의 시작, 즉 출발, 공격, 습격',|(b) 심리학적으로 여러가지 '충동, 노력, 분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르메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야고보서에만 나온다.||(a) 행 14: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여기에서 계획된 습격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으나, 책임있는 주체는 없다.||(b) 약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여기서 호르메는 "빠른 움직임, 나아감'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Bertram).
호르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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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진, 돌격 rus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르메마(Homer 이래)는 호르마오($3729)에서 유래했으며, '돌진, 돌격, 충격, 충동'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르메마는 신약성경에서 계 18:21에 한번 나온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호르메마는 '충격'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르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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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bir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르네온(Homer 이래)은 오르니스($3733: 새, 수탉, 암탉)에서 유래했으며, '새' a bird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르네온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계 18:2에서 바벨론은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을 묘사한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b) 계 19:17에서 새들을 하나님의 큰 잔치에 초청한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c) 계 19:21에서 새들은 죽은 자들의 육체로 포식한다: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암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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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탉, 암탉.||#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르니스는||(a) '새'(Homer 이래),|(b) 특히 '수탉, 암탉'(Aeschyl., Xen.)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오르니스는 70인역본에서 왕상 4:23에만 나오며 살찐 '새들'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오르니스는 신약성경에서2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마23:37이하는 복음서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말씀들 중의 하나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병행구, 눅13:34이하).|한글개역과 같이 영역 성경들에서 오르니스를 보통 '암탉'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새'를 의미하는 말이다.|이 비유적 표현은 시84(83):3을 연상시킨다.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새들과 그 새끼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보금자리를 얻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씀(마23:37이하.)은, 시57:1(시56:2; 참조: SB Ⅰ 943)과 시91:4에 기록된 날개에 대한 언급도 연상시킨다.|마태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공적으로 대결하신 내용 중 그 클라이맥스(climax)에 위치시키고 있다(참조: 마21:23; 마22:23; 마24:1).|특히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일련의 논쟁을 벌인 후, 구중 앞에서 그들에 대해 평하고 있다(참조: 마23:1).|즉, 과거는 물론 예수님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빛과 안식처를 가르쳐 주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백성들을 오도(誤導)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에 앞장서 왔던 것이다.|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발언이 수차에 걸친 그의 예루살렘 방문을 의미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백성들을 위한 참된 피난처이어야 할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교의 초점이 된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염려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진정한 피난처이며, 따라서 백성들의 안식처로서 성전과 여호와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지금까지 살펴 본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적용될 수가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맥락에서는 보다 폭넓게 적용됨을 시사해 준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으나, 실상 아벨로부터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의인들의 피가 그들에게로 돌아가리라는 정죄의 말씀 바로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마23:29-마23:36; 참조: 눅11:45-눅11:52). 37절의1인칭 단수를 34절의1인칭 단수와 동일시할 수도 있다. 마23:34의 병행구인 눅11:49에서는, 사람들이 죽인 그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보내는 자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지혜는 예수님과 동일시될 수가 있다.|(참조: 고전1:24; 골2:3).|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갈망은, 단지 긴 역사에 걸쳐 하나님의 동일한 갈망은, 단지 긴 역사에 걸쳐 하나님의 동일한 갈망의 클라이맥스에 지나지 않는다. 마태복음과 동시에 누가복음의 말씀은 기회의 날이 이미 완전히 지나가 버렸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의 황폐를 가져오는 심판은 이제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야적 귀환이 환영받게 될 때, 이 환영이 예수님의 정당성을 입증할 것이다(마23:39; 눅13:35; 참조: 시118:26; SB Ⅰ, 849f., 876).|(참조: J. H. Thayer; C. Brown).
호로데시아
oJroqesiva
경계로 정함, 한계를 정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로데시아는 오로스($3735: 경계, 한계)와 티데미($5087: 놓다, 두다, 정하다, 고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경계를 정함, 한계를 정함',|(b) '일정한 한계' a definite limit; 복수 '한계, 경계, 범위' bounds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호로데시아는 신약성경에서 행 17:26에 한번 나온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여기서 호로데시아의 복수가 사용되었으며 거주의 '범위나 한계'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