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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우키
oujciv
아니, 전혀 ~아니||우키(Homer. 이래)는 우($3756)의 강의어이며, '~아니'를 의미하지만, 그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결코 ~아니, 전혀 ~아니'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우키는 54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빚진 자
ojfeilevth"
빚진자 debt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페일레테스(Soph. 이래)는 오페일로($3784: 빚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를 가진다.||(a) 빚진자, 채무자' debtor(plat. Leg.).|(b) '의무를 지고 있는 자' 비유적 의미로 도덕적 영역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Soph. Ai.).||빚이란 금전적인 빚만 아니라 은혜를 입은 것, 사람이나 국가의 법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의미한다. 신적 규례를 어기거나 신의 은혜에 대한 대가로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나 감사를 드리지 않을 때에도 그 사람은 빚진 자가 되어 제의적 참회나 제의 행위를 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2. 구약 및 후기 유대교.||명사 오페일레테스는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어떤 일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특히 후기 유대교에서 하나님께 빚을 진다는 개념을 언급한다. 죄는 하나님께 빚을 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페일레테스는 죄인 및 벌을 받아 마땅한 자라는 개념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죄인은 그 빚에 대하여 그에 상당하는 행위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보상할 수 있는 것이다.|필로는 내적인 도덕적 의미를 언급하는데, 이 의무는 하나님과 관계로부터, 창조로부터, 율법과 거룩한 관습으로부터 기원한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할 의무가 있으며,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빚지고 있으며, 부모와 자녀는 상호간에 의무가 있으며, 육체적 정결은 도덕적 정결의 표시로 요구되며, 재판관들은 정의를 시행할 의무를 지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페일레테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오페일레테스는 '빚진자'를 의미한다.|① 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여기에 나오는 채권자(다네이스테스)와 채무자(오페일레테스)의 묘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존과 책임을 나타내는데, 마태가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종들과 채무 계산을 하실 것이다. 꾸어주었다고 하는 돈의 엄청난 액수(일만 달란트, 즉 약 천만 달러)는 그 빚의 성격, 즉 도저히 갚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빚진 사람과 그 가족의 목숨을 다 바친다고 해도 그 빚을 다 갚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오직 채권자의 온정으로써만 그 빚은 면제될 수 있다(참조: 신 15:2). 다른 한편, 이 비유는 사람의 책임을 나타내고 있다(마 18:33의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면제해주셨던 큰 빚을 생각해 볼 때에, 사람은 자기의 법률적 권리를 고집하지 말고 자기의 "동관"이 진 하잘것 없는 작은 빚을 서로 탕감해 주어야 한다. 마 18:28에 언급된 100데나리온은 1만 달란트의 0.00001%에 지나지 않는다!(J.D.M. Derrett).|② 후기 유대교의 용법에서 이 단어는 과실의 죄가 있는 자이다. 따라서 마 6:12에서 주기도의 제 5간구에서 사람들과 관계하여 사용되었으며("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눅 13:4에서 '죄인'이란 의미로 하나님과 관계하여 사용되었다("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b) 비유적으로 오페일레테스는 여러가지 '의무를 지고 있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따라서|① 롬 1:14에서 한 때 복음에 대해 박해자였던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온 인류에게 복음의 메신저가 된 것이다. 그는 세계 선교의 의무를 지고 있는 자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② 롬 15:27에서 바울은 모 공동체로부터 복음의 신령한 복을 받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모 공동체에 물질적으로 원조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③ 갈 5:3에서 바울은 언약적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모든 율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④ 롬 8:12에서 바울은 보다 앞선 사르크스("육신")에 대한 의무는 그리스도와 관계로 말미암아 제쳐 놓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살 것이 아니니라". 성령에게 진 빚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한 분에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의 빚이다. 양자 택일은 육신을 따라 사는 생활이나 아니면 성령을 따라 사는 생활이다. 오스왈드 쳄버스(Oswald Chambers)의 표현을 빌리면 '신자가 행할 의무가 영적인 것을 위하여 자연적인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W. M. Greathouse).|(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Tiedike; H. -G. Link; F. Hauck).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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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debt, 의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페일레는 오페일로($3784: 빚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매우 드물게 나오는데 단어로서 파피루스에서 '빚' debt, 특히 돈에 대해 사용되었다.|오페일레는 70인역본에서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페일레는 신약성경에서 3회, 마태복음과 로마서, 고린도전서에만 나온다.||(a) 마 18:32에서 문자적으로 제정상의 빚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이 비유는 깊은 영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오페일레테스($3781), 신약성경의 용법(a)을 보라.||(b) 롬 13:7에서 더욱 일반적으로 의무들과 세금에 대해 사용되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c) 고전 7:3에서 부부 상호간의 의무에 대해 사용되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오페일레마
ojfeivlhma
빚, 의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페일레마(Thu. 이래)는 오페일로($3784: 빚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빚'을 의미하며, 광의적으로 '의무'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a) 명사 오페일레마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맛샤와 나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신 24:10에서 빚, 금전적 의미의 빚에 대해, 마카베오일서 15:8에서 왕에게 바칠 의무금에 대해 사용되었다.||(b) 후기 유대교에서 오페일레마는 히브리어 '호브' 또는 '호바'의 역어로 사용되어, 대금 지불, 빚, 의무 이행을 지체하다라는 의미와 죄짓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제 죄란 그저 내면적인 불순종이 아니라 외면적인 빚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죄인은 그 빚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보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SBI 421, 800; Ⅳ 11, 14). 쿰란 문서에 이러한 식의 언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페일레마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로마서에만 나온다.||(a)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구절은 직역하면 그리고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준 것 같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빚들을 탕감하여 주옵소서이다(그러나 개역처럼 번역하는 것이 좋다).|주기도문의 이 제 5간구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사람이 죄를 사해 주는 것의 상응을 강조한다. 사람이 남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죄사하심의 전제 조건도 아니고, 남의 죄를 사해 주었다고 하여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 주는 것은 이미 받은 죄사함의 반향이며 거기에서부터 유래된 계명이다. "마태복음에 사용된 부정과거형 아페카멘은 이미 완료된 용서의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질 화해에의 강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으며, 반면에 누가복음에 사용된 현재형 아피오멘은 남의 죄를 사하여 주려는 지속적인 용의를 표현하고 있다"(F. Hauck).||(b) 롬 4:4에 나오는 칭의의 문맥에서 바울은 오페일레마를 보다 넓은 의미의 '의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은혜와 빚의 대비는 교훈적이다. 일한 자에게 지불되어야 할 삯을 받는 일군의 예를 들고 있다. 실제적인 일이 있는 곳에는 보상은 보답하거나 지불해야 할 어떤 것과 같이 의무적이며, 단순히 은혜가 아닌 것이다. '일'과 '보수'는 서로 상관 관계에 속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E. Tiedtke; H. -G. Link).
당연히(하다)
ojfeivlw
빚지다 ow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페일로(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이 단어는 누구에게 어떤 것을 '빚지다', 예를 들면, '대부금, 돈, 공채 또는 임대료'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부정사와 함께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해야 한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은혜를 입다'를 의미한다.|이 단어군은 금전적인 빚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국가의 법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또한 의미한다. 가령 죄인은, 그가 상해한 상대편에 대해 보상을 해주어야만 한다는 선고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Plato, Cra.). 신적 규례를 어기거나 신의 은혜에 대한 대가로 반드시 치러야 할 감사를 드리지 않을 때에도 그 사람은 '빚진 자'가 되어 제의적 참회나 제의 행위를 해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오페일로의 동족어 및 복합어들은 빚이라는 소극적 요소와 의무라는 적극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들을 빚진 자들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것은 도덕적 의무의 관념을 일으킨다.||#2. 70인역본 및 유대 문헌.||동사 오페일로는 70인역본에서 약 22회 나오며, '돈을 빚지는 것'(신 15:2), 재물을 빚지는 것(잠 14:9), 형법을 빚지는 것(욥 6:20)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지혜서 12:15과 마카베오사서 11:15에서 '나는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구약성경은 내적 의무라는 관점에서 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께 빚지는 것이라는 관념이 발전한다.|필로와 후기 유대교에 관해서는 오페일레테스($3781)을 보라.||#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페일로는 신약성경에서 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오페일로는 인격의 여격과 사물의 대격과 함께 나타난다(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바울 서신과 기타 서신에서는 부정사를 수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가복음과 공동 서신(요한일서 및 요한삼서는 제외),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동족어군이 나타나지 않는다.|오페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특별한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첫째,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를 묘사하는데(복음서, 특히 마태복음에서), 둘째, 권면적 개념으로(서신, 특히 바울 서신에서) 묘사한다.||(a) 형식상으로 볼 때에 예수님은 유대교와 같이, 사람을 하나님께 빚진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와 달리 이러한 사업적 관계를 문자 그대로의 사업적 관계로 받아들이지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차이가 이다. 그 결과로 빚(오페일레마)이라는 개념은 예수님에 의하여, 밀린 돈에 관련된 어떤 행위의 성취 혹은 요구에 결부되지 않고 용서(아페시스)에 결부되었다.|이러한 차이점은 자비롭지 못한 종의 비유(마 18:23-마 18:35)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여기에 나오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묘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존과 책임을 나타내는데, 마태가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종들과 채무 계산을 하실 것이다(참조: 마 18:23). 꾸어 주었다고 하는 돈의 엄청난 액수(1만 달란트, 즉 약 천만 달러)는 그 빚의 성격, 즉 도저히 갚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빚진 사람과 그 가족의 목숨을 다 바친다고 해도 그 빚을 다 갚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오직 채권자의 온정으로써만 그 빚은 면제될 수 있다(신 15:2과 그 문맥을 참조). 다른 한편, 이 비유는 사람의 책임을 나타내고 있다(마 18:33의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우크 에데이]). 하나님께서 면제해 주셨던 큰 빚을 생각해 볼 때에, 사람은 자기의 법률적 권리를 고집하지 말고 자기의 "동관"이 진 하잘것 없는 작은 빚을 서로 탕감해주어야 한다. 마 18:28에 언급된 100데나리온은 1만 달란트의 0.00001%에 지나지 않는다!||(b) 복음서에서 오페일로는 일차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는 소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서신에서 오페일로는 주로 그리스도에 속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러나오는 책임성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나타낸다.|롬 13:8에서 바울은 오페일로를 이중적 의미로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어떻게 해서도 갚을 수 없는 빚인 동시에 이웃 사람에 대한 책무인 사랑을 권면하고 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5:1 이하에서 윤리적 의무와 그리스도의 기초 작업 사이의 관련이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오페일로 오멘)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고전 11:7과 고전 11:10은 교회에서의 규율에 관한 의무를,|살후 1:3과 살후 2:13은 신자들의 영적 성장에 대한 감사의 의무를,|고후 12:14은 책임있는 부모로서의 의무를,|요일 3:16은 생명을 희생할 의무를 언급한다.|요일 2:6은 이러한 하나 하나의 권면을 요약하며,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오페일레이)"라 하였다.|히 2:17과 히 5:3에서는 오페일로가 데이($1163: 반드시 ~해야 한다)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해 나가는 동안에 겪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건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참조: E. Tiedtke; H. -G. Link ; Walter Bauer; J. H. Thayer).
원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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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노라||부사 오펠론(Epict.)은 오페일로($3784: 빚지다)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초기 헬라어에서 부정사와 함께 쓰인다(예컨대 오펠론 다네인, '나는 죽었어야 했다').|후기 헬라어에서 본 단어는 감탄사의 성격을 띠어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했으면[한다면] 좋으련만'(would that), 이 경우, 발생하지 않은 어떤 일이 발생했었기를, 또는 아마도 행해지지 않을 어떤 일이 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신약성경에서 오펠론은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4:8에서 직설법 부정 과거와 함께: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b) 고후 11:1에서 직설법 미완료와 함께: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c) 갈 5:12에서 미래와 함께: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d) 계 3:15에서 희구법 현재와 함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펠로스
o[felo"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펠로스(Homer 이래)는 오펠로(**: 증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이익', '유익'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펠로스는 70인역본에서 욥 15:3에서 히브리어 야알(3276: 이익을 얻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펠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항상 "무슨 '유익'이 있느뇨"라는 질문으로만 사용되었다.||(a) 고전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여기서 바울의 순교에 관하여 그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의 소망이 없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b) 약 2:14; 약 2:16,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여기서는 신앙에 관하여, 그것이 행함이 없이 무용하다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눈가림
ojfqalmodouleiva
눈 앞에서만 일하기(섬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프달모둘레이아(B1-D.)는 오프달모스($3788: 눈)와 둘레이아($1397: 종살이, 노예의 신세, 예속)에서 유래했으며, '눈 앞에서만 일하기(봉사)', 즉 '눈가림 봉사'로서 주인이 보는 앞에서만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프달모둘레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만 나온다.||(a) 엡 6:6에서 외적으로는 성실하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과 내적 의무감 없이 행하는 기독교인 종들의 그들의 주인들에 대한 둘레이아를 언급한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b) 골 3:22에서는 복수가 사용되어 이런 거짓된 섬김을 만들어내는 행동을 지적한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Rengstorf).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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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ey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프달모스(Homer 이래)는 오프(%31: 보다)에서 유래했으며, '눈동자, 눈'을 의미하며, 역시 '눈'을 뜻하는 옴마($3659)의 단순한 유사어가 아니라 좀 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아에쉴루스, 핀다로스 등은 이 단어를 얼굴이라는 의미로, 핀다로스, 플라톤 등은 하늘과 해와 달의 눈이라는 시적인 의미로, 또한 행복, 안락을 가져다 주는 것, 혹은 빛에 관한 사상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a) 일반적으로 오프달모스는 주변 세계와의 접촉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매개체이다. 그것은 지각(知覺)기관이다. 그리이스의 전설들(참조: 루시앙 Lucian )은 끊임없이 많은 눈을 가진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르구스(Argus)는 100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b) 오프달모스는 비유적으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의미한다.||(c) 동시에, 눈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헬라에서는 '영혼의 눈'은 우주를 통찰한다(좀 더 이하를 보라). 도덕적 개념들은 눈과 관계가 있다(궤변철학에서 이 말은 '탐욕스럽게 쳐다보다, 시샘하여 힐끗 쳐다보다'를 뜻한다). 아에쉴루스(Aeschylus)와 궤변철학자들은 이 단어를 깨어 있다, 스스로 경계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간혹, 눈들은 임무와 자질과 관계가 있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오프달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0회 나오며, 거의 항상 아인(눈)을 번역한다. 오프달모스는 눈을 뜻하며, 종종 인간의 기각이나 판단, 또는 하나님의 지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오프달모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10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오프달모스는 시력의 기관(눈)을 의미한다. 눈을 들어올린 것은 주목을 취하는 표시이다(눅 6:20; 눅 16:23; 요 4:35; 요 6:5). 그밖의 용례를 보라: 눈이 먼 것, 행 9:18; 소경을 치유한 것, 마 9:29이하; 마 20:33; 막 8:25; 요 10:21; 요 11:37; 죽은 자가 일어나 눈을 떠서 보는 것, 행 4; 눈이 피곤한 것, 마 26:43과 병행구, 막 14:40; 눈에서 눈물을 씻기는 것, 계 7:17; 계 21:4; 티와 들보의 비유는 아무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상을 강조한다, 마 7:3-마 7:5, 병행구 눅 6:41이하. 눈에는 눈이라는 것을 통해 '복수법'도 나온다, 마 5:38.||(b) 눈의 기능은 형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2-마 6:23). 이 구절에서 도덕적 언급과 더불어 눈이 건전할 수도 있고 건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다(참조: Test. lss. 4. 6). 악하고 시기적인 눈이 있다, 마 20:15; 막 7:22; 눈이 죄를 범하도록 유혹한다, 요일 2:16; 벧후 2:14; 눈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마 5:29.||(c) 때때로 구약의 영향에서 눈은 증인과 관련되어 있다, 마 13:16; 눅 2:30; 요일 1;1; 계 1:7. 부활의 현현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없다(눅 24:16; 행 1:9; 행 9:8).||(d) 중요한 것은 감각적인 지각이 아니라 영적인 지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에 빛을 주신다, 행 26:18; 요일 2:11; 엡 1:18.||(e) 신약성경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눈에 대해 언급한다. 벧전 3:12; 히 4:13.|(참조: J.H.Thayer; W.Michaelis; K.D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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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serp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피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뱀'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뱀에 대해 항상 양면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편으로 뱀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교활하고 험악한 짐승, 교활한 자 그리고 악마로 간주되어 있다.|다른 한편으로 뱀은 땅과 지하의 물들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지하의 신들 및, 생명을 부여해주고 새롭게 해 주는 그들의 권능과 결부되어 왔다.|또한 뱀은 치유해주는 신들의 상징이기도 하였다(Ascl.). 이렇게 해서 뱀은 생명을 부여하며 동시에 생명을 거둬가는 땅 그 자체의 상징이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피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나하쉬의 역어로 사용되었다(29회). 창세기 3장에서 오피스는 신학적으로 중요시된다. 그 뱀은 아담을 타락시켰다. 민수기 21장의 말씀은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불평하는 백성들에 관한 수많은 기사들 중에서 뱀의 재앙으로 벌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놋뱀의 상징에로 돌아서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았다. 왕하 18:4에 의하면 놋뱀은 그것을 파괴했던 히스기야왕 시기에 이르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히스기야왕이 그렇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에 향을 피우고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후기 유대 전통은 그 놋뱀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준 뱀 그 자체는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회심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는데 그들이 본 짐승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주님 때문에 받은 것이다"[지혜서 16:7]. 미쉬나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그 뱀이 죽일 수도 있었고 살려 줄 수도 있었다고! 오히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높은 곳을 사모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마음의 중심에 모셨을 때 그들이 치유되었으나 그렇지 않았을 때 그들의 재앙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Rosh ha-Shanah 3:8].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예를 들어 농아자, 저능자나 미성년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일반 규칙으로 받아들여져 왔다.|후기 유대교에서는 후기 문서들에서만 뱀이 악마의 도구로 나타나거나 악마와 동일시 되었다. 때로 뱀은 죽음의 천사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그 문서들에는 에덴 동산의 뱀으로 하여금 인간을 공격하도록 만든 동기들 즉 질투, 성욕, 세상 지배에 대한 갈구 같은 것들에 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피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3:33(참조: 마 3:7)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악하고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를 들어 "뱀들"이라고 질책하신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아마도 이것은 그들이 사단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게헨나의 심판이 그들에게 닥쳐오고 있다.||(b) 마 7:10(병행구 눅 11:11)에서 예수님은 신앙 안에서 기도하도록 요구하시면서 아들이 요구한 물고기 대신에 그에게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고 역설하셨다. 즉 음식 대신에 악하고 위험스러운 것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제자들이 요구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더욱 선한 것을 주시리라.||(c) 창 3:1과 아 5:2; 아 6:9의 말씀은 마 10:16에 기록되어 있는 지혜와 순결에 대한 역설적 권면의 기초가 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d) 눅 10:19에서 사단이 갇혀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뱀과 전갈들, 즉 악마의 도구들을 밟을 권한을 소유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참조: 시 91:13). 막 16:18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였으므로 위험을 느끼지 않고도 뱀을 들어 올릴 수 있다(참조: 사 11:8).||(e) 계 9:19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악마적인 마병대의 말들도 뱀처럼 해를 끼치는 꼬리를 가지고 있다: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f) 계 12:9; 계 20:2에 기록되어 있는 뱀은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사탄과 동일시된다.||(g) 고후 11:3의 말씀도 창세기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교회는 사단이 속삭이는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헌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타락하고 마는 것에 대해 경고 받았다.||(h) 요 3:14이하의 말씀은 민수기 21:8이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거기에서 놋뱀을 바라봄으로써 구원을 얻은 것처럼, 신앙은 십자가와 하나님의 보좌 위에 들리워진 인자를 바라보는 사람을 구원한다.|(참조: H. Bieterhard; Walter Bauer; J. H. Thayer).
낭떠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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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낭떠러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프뤼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눈썹' the eyebrow.|(b) 무엇이든 '돌출한 것 또는 돌기부, 절벽, 낭떠러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프뤼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4:29에 한번 나온다: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난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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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하다, 괴로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오클레오(Aeschyl. Hdter 이래)는 오클로스($3793: 다수, 군중, 백성, 평민)에서 유래했으며,||(a) 본래의 의미, '아무개에 대항하여 군중을 자극하다'에서 '교란하다', '굴리다',|(b) 보편적으로 '괴롭히다',|(c) 독립적으로, '혼란하다', '소란하다', 수동태 '괴롭힘을 당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클레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토빗 6:8에서 악령에 사로 잡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클레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5:16에 나온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여기서 오클레오는 더러운 영에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떼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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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을 모으다.||동사 오클로포이에오는 오클로스($3793: 다수, 군중, 백성, 평민)와 포이에오($4160: 만들다, 하다,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군중을 모으다', '사람들을 모으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행 17:5에 한번 '군중을 모으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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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떼, 무리) 무리, 군중, 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클로스(Pind., Hdt. 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오클로스는 `군중'을 의미한다.|①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밀어붙이는 `많은 사람들(군중)', `무리', `소란(소요)', 몰려 다니는 `떼(mob)',|② 개인과 대조되는, 그리고 제한된 소수집단과 대조되는 `대중'(The public),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잘 것 없는 집단인 `대중'.||(b) 오클로스느 군사적 의미로 `부대, 병력, 군대'를 의미한다.|(c) 오클로스는 `사람들, 백성, 인구(주민)'을 의미한다.|(d) 척도로서 오클로스는 `큰 수'를 의미한다.|(e) 오클로스는 `불안정, 골치거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오클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하몬(hamon: 무리; 왕상 20[20]:13; 대하 20:15; 단 11:11); 하일(hayil: 군대, 단 11:10, 단 11:13, 단 11:25); 암(am: 백성, 민 20:20; 렘48[31]); 카할(qahal: 회중, 렘 31[38]:8; 겔 16:40; 겔 17:17; 겔 23:24, 겔 23:46이하); 람빔(rabbim: 많은, 에스드라하 3:12) 등이다. 단 3:4에서 이 단어는 백성을 의미하며, 단 10:6(Theodotion)에서는 다루기 힘든 무리를; 렘 31:8에서는 백성의 모인 무리를 의미한다. 간음한 자를 돌로 치기 위해 모인 회중(카할[qahal])이 헬라어에서는 오클로스이다(레 24:10). 어떤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비전투원인 종군자'(삿 7:18; 마카베오일서 9:35), `진격할 수 없는 자들'; 또는 `군대', `용병들'을 의미한다(마카베오일서 1:17, 20, 29; 마카베오이서 14:23, 43, 45이하; 마카베오삼서 2:7). 겔 23:24에서 이 단어는 양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즉 오클로스 라온(ochlos laon: 많은 사람들)이다; 지혜서 6:2에 나오는 에클로이 에드논(ochloi ethnon: 많은 민족들)을 참조하라. 벨(Bel) 30에서 오클로스는 유대인들과 대조하여 그 땅의 주민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오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74회 나오며, 그 중에 요한계시록에 4회, 사도행전에 22회,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사복음서에 나온다.||(a) 오클로스는 `사람들의 무리' 즉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무리나 군중'을 나타낸다.|① 복음서에서 오클로스는 보통 예수님께로 달려나오는 무리(마 13:2), 예수님을 찾거나 예수님께로 가는 무리(눅 8:40; 요 12:9), 예수님과 동행하는 무리(막 5:27; 눅 7:9)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무리를 그에게로 부르며(막 7:14) 그들을 동정하신다(막6:34). 사람들의 무리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보기 원한다(눅 6:19). 때때로 사람들의 무리는 그를 에워싼다(막 3:9). 이들은 그의 가족보다 그에게 더 가깝다(막 3:31이하). 사람들의 무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적에 대하여 기쁨과 경탄과 놀람과 두려움을 표현한다(마 7:28; 마 9:8).|② 예수님이 그의 행동이나 강론을 마친 후에는 사람들을 떠난다(마 13:36). 그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다 특별하게 대한다(막 6:45). 막 7:33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로부터 떠나사 벙어리와 귀머거리를 고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군중들이 자기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를 물으신다(눅 9:18). 마 21:1이하에서 무리들은 그를 환영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무리는 예루살렘 주민과는 구별되는 갈릴리의 순례자들의 무리이다(마 21:10). 요 7:12, 요7:43에서 그는 무리의 논쟁의 주제가 되며, 요 11:42에서 그는 아버지께 자기를 둘러선 무리를 위해서 기도한다.|③ 군중들은 때때로 통치자들과 구별된다. 마 14:5에서 헤롯 안티바스는 민중을 두려워하여 세례(침례) 요한을 죽이기를 주저했다.|막 15:15에서 빌라도는 군중의 압력을 받아 바라바를 놓아주었다. 물론 통치자들은 군중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막 11:18; 마 21:26). 예수님은 군중들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받는다(요 7:12; 행 24:12, 행 24:18). 요 7:49에서는 통치자들이 군중들을 비웃는 모습이 나타난다. 변덕스럽고 선전 선동에 휩쓸리기 쉬운 군중은 예수님을 정죄하도록 부추겨진다(막15:11; 눅 23:48). 군중과 사도들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행 8:6; 행 13:45; 행 14:11, 행 14:19; 행 17:8, 행 17:13 등).||(b) 오클로스는 `군대'를 의미한다. 막 14:43에서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c) 오클로스는 (사람들이나 사람들의 무리) 나타낸다 ;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d) 오클로스는 누가복음에서만 `척도'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눅 5:29; 눅 6:17; 행 1:15; 행 6:7; 행 11:24, 행 11:26).||(e) 오클로스는 요한의 기록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① 요 5:13에서 유대인 명절 때의 군중, 요 5:22, 요 5:24의 갈릴리의 군중, 요 7:11-요7:12에서 유대인의 대중, 요 12:12에서 장막절에 모인 유대인들, 요 12:9, 요 12:11에서 나사로로 인하여 믿게된 많은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었다.|계 7:9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 능히 셀 수 없는 오클로스가 서 있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② 요 7:49에서 오클로스는 분명히 암 하아레츠(am haares: 그 땅의 백성)를 말한다. 바벨론 포로 이전 시대에 `그 땅의 백성'은 군복무의 책임이 있는 모든 시민들을 의미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이후 시대에는 `그 땅의 백성'은 귀환한 포로들이 아닌 외국인 또는 혼합된 포로들이 아닌 외국인 또는 혼합된 주민을 의미했다. `그 땅의 백성'이란 말은 율법을 모르며 또한 율법에 대해 방종한 태도를 가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욕설이 되었다.|(참조: R.Bultmann, The Gospel of John).|따라서 율법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갖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저주 받은 자들로 간주했던 것이다. 예수님과 또한 후에는 바울도 오클로스를 미혹한다는 비난을 받았다(요7:12; 행 19:26).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오클로스가 나뉘어졌다(요 7:43). AD.70년 이후에 바리새인들은 이들의 이념적 우월성과 조직적인 우위성에 의해서 암 하아레츠를 랍비 계급에 복속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사건들을 이용한다. 요 7:49에서는 여전히 종교적인 심판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모욕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일반 대중들 특히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종말론적 희망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율법주의를 싫어한다는 관점에서 예수님의 메시지에 더 마음이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이 이러한 희방들을 실망시킬 때, 민중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기울어지게 되며, 크고 작은 혁명들이 실패하고 성전의 성직 계급제도가 무너진 후에 그들은 랍비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Bietenhard; R. Meyer).
견고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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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화한 장소, 요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퀴로마(Xen. 이래)는 오퀴로오(**: 강하게 만들다, 요새화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요세화한 장소, 요새, 성채'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퀴로마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마카베오일, 이서에서 자주 '요새'라는 의미로 나오며, 잠언에서 사람이 '의지하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잠 21:22; 잠 10:29).||#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퀴로마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0:4에 한번 나오며 '요새화한 장소'를 의미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