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것
parjrJhsiva
개방, 밝히 드러냄, 신뢰, 확신, 대담함, 솔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팔레시아는 민주주의 전체 조건으로서 정치적 영역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① 모든 것을 말하는 자유(권리),|② 진리에 대한 개방성,|③ 대담, 솔직, 담백을 의미한다.|말하는 자유가 예의 없고 파렴치함이란 취지로 오용되는 몇몇 실례에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확대된 의미에서 팔레시아는 확신과 즐거움을 의미한다.|팔레시아(의 단어군)는 유리피데비스와 아리스토파네스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며, 원래 정치의 영역에 속했던 것으로, 헬라 도시국가의 완전한 시민이 누리는 민주주의의 권리를 의미한다.그러나 노예나 외국인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었다. 백성들의 공적 집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참조: Polyb., 2,38,6). 이러한 권리는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이 권리에는 남용의 위험이 있다(Rep.8,557b).||(b) 팔레시아는 개인적인 일상 업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의미는 솔직, 곧 정직이다. 휠리아(우정)에 대한 교훈이 나오는 문맥에서 이 단어는 친구와 만나는 사람이 갖는 솔직함을 나타낸다(참조: Aristot.,Eth. Nic. 9,2). 그러나 '무례, 오만, 후안무치' 등의 나쁜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c) 철학자들은 팔레시아를 정치적 자유보다 도덕적 자유와 관계 시켜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자유하는 사람은 팔레시아이다. 그러나 욕정에 지배를 받는 사람의 입술에 대해서 팔레시아는 단순히 '파렴치함'을 의미한다. 그의 팔레시아는 오직 모욕하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좋은 의미의 팔레시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공적인 인물들이다.||#2. 70인역본의 용법||팔레시아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온다.|레 26:13에서 팔레시아는 자유로운 백성을 묘사하며,|잠 1:20에서 공개적이고 솔직한 말로서 팔레시아는 특별히 신적 지혜에 속하는 것이다.|욥 27:9 이하에서 하나님 앞에서 팔레시아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 앞에 '자유' 혹은 '기쁘고 즐거운 섬'이며, 더 이상 장애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개적 접근을 함축한다. 잠 13:5에서 팔레시아는 디카이오스(의)의 덕행이며, 즐거운 기도로 표현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팔레시아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는데, 요한의 기록에 13회, 바울 서신에 8회, 사도행전에 5회,히브리서에 4회, 마가복음에 1회이다.||(a) 마가와 요한의 기록. 요한복음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련되어 나타나며, '공개적으로(openly), 공공연하게(in public)'라는 독특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는 그의 사역을 은밀히 하지 않고 회당이나 성전 등에서 공공연히 하셨다(요 18:20 - 요 18:21; 요 7:25 - 요 7:26; 요 11:54).|①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각 구절들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공적 가르침에 있어서의 담대함을 언급한다.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라고 예수님께 강권했던 예수님의 형제들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요 7:4).|예수님의 경우에 팔레시아는 헬라어에서 원래 의미하였던 바와 같이 공적으로 나타내는 권리 또는 용기, 말하는 자유, 솔직함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의미와 같이 공적으로 실행되는 행동들을 언급한다(R.Bultmann, The Gospel of John).|이와 대조적으로 요 7:13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공공연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요 10:24; 요 11:14; 요 16:25; 요 16:29에서 팔레시아는 '명백하게 plainly' 라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예수님께서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우화나(요 11:14; 요 10:24 이하), 숨겨진 비유(요 16:29)로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또한 명백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직 신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드러내어 말씀하셨다(요 16:25; 요 16:29). 세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들로 말씀하셨는데, 이 비유들은 믿음 없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한의 이중성(dualism), 곧 생명과 사망, 진리와 거짓 등에 상응하는 팔레시아와 파로이미아(비유) 사이에는 정신적 긴장 상태가 존재하며, 이 긴장은 결단을 요구하며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② 마가복음에서 팔레시아는 막 8:32에 한번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제자들에게 주신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가리킨다: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그러나 여기서 공개적이라고 하는 것도 아직은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아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것이다. 이 사실은 막 8:32 - 막 8:33에서 보면 명백하다.(참조: 막 9:32; 막 10:32).|③ 요한일서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을 뜻한다. 요일 3:21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자는 담대함을 가진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이 담대함은 양심과 믿음 그리고 사랑(참조: 요일 3:22 - 요일 3:23)을 전제하며, 또한 성령의 선물이다(요일 3:24). 이러한 팔레시아는 기도 중에 표현된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 요일 5:15). 담대한 자는 기도에 확신을 갖는다. 그러면 여기서 그 담대함은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확신이다.|이러한 현재적인 팔레시아 외에 미래적인 팔레시아가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서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2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이와 같이 팔레시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구원의 확신, 죄의식의 정복, 기도의 능력,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여러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다(O.Michel).||(b) 사도행전. 사도행전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팔레시아와 상응하여 사도들의 솔직하고 권위적인 증거에 대해 사용되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 바울 또는 그밖의 사람들이 얼마나 담대하게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였는가 하는 것을 계속하여 전하고 있다. 이 명사는 행 2:29; 행 4:13; 행 4:29; 행 4:31; 행 28:31에 나타난다.|하나님은 사도들에게 이러한 팔레시아를 주시고, 사도들의 말을 기사와 표적으로 뒷받침하신 것이다(행 4:29 - 행 4:30; 참조: 14:3). 이 담대함은 인간이 스스로 자제하면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계속하여 구해야 하는 성령의 열매이다: 행 4: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c) 바울의 서신들. 바울도 기독교인의 팔레시아, 특별히 사도들의 팔레시아에 대하여 강조한다.|팔레시아는 기독교인의 생활, 특별히 사도의 생활의 중요한 측면을 묘사한다(빌 1:20; 엡 3:12).|팔레시아는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이하).|팔레시아는 하나님(고후 3:12; 빌 1:20; 엡 3:12)과 사람을 향한 개방성 및 솔직함(고후 3:12; 고후 7:4; 딤전 3:13; 몬 1:8)을 의미하는 것이다.|무엇보다도 고후 3:12 이하에서 문제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팔레시아는 바울이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는 베일을 벗은 바울의 얼굴로서, 이스라엘과는 달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베일을 벗은 얼굴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려있는 것이다. 이 개방적인 얼굴은 성령으로 인하여 계속적으로 변화해 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얼굴이다.|엡 3:12에서 개방성(openness)은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담대한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인간적인 차원에서는 팔레시아가 고후 7:4에서는 사랑이 애정이라는 뉘앙스를, 그리고 몬 1:8에서는 권위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딤전 3:13에서 팔레시아의 근거는 믿음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빌 1:19 - 빌 1:20에서 팔레시아는 또한 성령에 감화 받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계를 가진다: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골 2:15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팔레시아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공공연한 승리로 전세계를 향해 권세들을 드러내셨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objective relatively||(d) 히브리서. 히브리서에서 팔레시아는 상대적인 성격을 지닌다.|히 3:6에서 팔레시아는 믿는 자로서 가져야 하고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것은 소망의 대상과 관련이 있다.|내용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자유를 뜻하며, 이 자유는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받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히 4:14 - 히 4:15; 히 10:19).|히 10:34 이하에서 팔레시아는 환난 중에 인내로 보존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히 4:16에서 팔레시아는 심판자 앞에서 '담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한 것을 뜻한다".|(참조: Walter Baure; J.H.Thayer; H.-C.Hahn; H.Schl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