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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나그네 됨
paroikiva
외국 땅에서 거주, 거류.||#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파로이키아(Pdelabriolle)는 파로이케오($3939)에서 유래했으며, '외국 땅에서 거주', 즉 '거류함'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이러한 의미를 나타낸다(시 119:5; 지혜서 19:10).||#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파로이키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만 나온다.||(a) 행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여기서 바울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파로이키아(거류)를 상기시키고 있다.||(b)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체류 기간 동안 살아야 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Bietenhard).
파로이코스
pavroiko"
이웃의, 외국인 거주자, 거류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파로이코스(Aeschyl., Thu. 이래)는 파라($3844)와 오이코스($3624: 집, 거처)에서 유래했으며,||(a) '이웃의, 이웃',|(b) '비거주민, 외국에서 거주자, 거류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파로이코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7:6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외국에서 거주자가 될 것을 언급한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b) 행 7:29에서 모세는 미디안 땅에 거류자가 되었다: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c)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성도들은 이스라엘에서처럼 이방인들이고 나그네들이지만 이제는 동료 주민들이다.||(d)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옛 이스라엘과 같이 성도들은 여전히 또 다른 형태에서 외국인 거주자들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Bietenhard).
비사
paroimiva
격언, 잠언, 현명한 말, 은유, 수수께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로이미아(Aeschylus 이래)는 파라($3844: 곁에서, 곁에서 부터)와 오이모스(길)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통상적 언어 방식에서 이탈한 말' 그렇지 않으면 `길 가에서 들은 말, 속담'을 의미한다.|파로이미아는 `대중적 지혜에 대한 경험적 진리를 짧고 요점만 꼬집어 말하는 형식으로 표현한 말'로서 널리 알려지고,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 특징이다. 속담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진리를 표현한다. 파이로미아는 대중적이며 전승적인 형태 때문에 경구, 격언보다는 덜 인위적이고 덜 전문적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Rhet. 2, 21, 1395, 17)에서는 이 경계선이 유동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생한 비유적 표현 때문에 은유를 파로이미아로 간주하였다(Rhet. 2, 11, 1413, 14). 다른 사람은 이 단어가 자주 동물이나 식물을 언급하기 때문에 우화(fable )로 간주했다(Quintilian, Institutio Oratoria , 5, 11, 21).||#2. 70인역본의 용법||파로이미아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잠 1:1에서 마샬(속담, 격언, 잠언, 비유담, 우의)을 번역했고(잠 1:1; 잠 25:1) 잠언의 제목을 표현한다. 잠언과 집회서(6:35; 8:8; 18:29 등)에서 `잠언이나 격언'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파로이미아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벧후 2:22에서 파로이미아는 `속담'을 의미한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여기서 속담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비열한 행동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b) 요한복음에서 파로이미아는 `은유' 또는 `수수께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요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요 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예수님의 목자에 대한 강화(요 10:6)와 또한 사실상 대체로 예수님의 강화들은(요 16:25) 은유로 특징지워진다. 이 은유는 후기의 분명한 계시의 말씀과 대조된다(요 16:25; 요16:29). 이것은 연대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곧 지상의 예수님께서는 수수께끼로 말씀하셨고 높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해석은 약간의 곤란한 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실제로 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특징지울 수 없고 또한 모호한 말씀과 명확한 말씀을 구별할 수도 없다. 아마 여기에서 모호하다는 말은 지적으로 어렵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말의 모호함은 그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말이란 모호하기도 하며 동시에 명백하기도 한 것이다. 이 말은 듣는 자가 지적으로 깨닫고자 노력하는 한 모호한 채로 남아있는다. "예수님의 말씀들을 믿는 사람들의 실재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말씀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지적 이해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제자들이 실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니 곧 이 말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존재를 위탁해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즉 종말론적) 존재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가 이르면' 오직 그 때라야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밝히(파레시아 parrhesia ) 말씀하실 것이다"(R.Bultmann)|(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H. Peisker).
술을 즐기는
pavroino"
포도주 곁에 있는, 술취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파로이노스(Lysias)는 파라($3844)와 오이노스($3631: 포도주)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는,||(a) '포도주 곁에 있는' (자),|(b) '포도주에 빠진', '술취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파로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에 2회 나온다.||딤전 3:3에서 감독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에베소와 그레데 교인들이 살던 무절제한 사회에서 술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품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켈리(Kelly)는 말했다. NEB는 여기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고 번역했고, RSV는 '술꾼, 주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번역했다.|딛 1:7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로이코마이
paroivcomai
지나가다 go by, pass b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로이코마이(Homer 이래)는 파라($3844)와 오이코마이(%269: 출발하다, 떠나다)에서 유래했으며, '지나(서) 가다' go by, pass b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파로이코마이는 신약성경에서 행 14:16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로모이아조
paromoiavzw
같다 be like.||동사 파로모이아조는 파로모이오스($3946: 같은, 유사한)에서 유래했으며, '같다, 닮다, 유사하다'를 의미한다. 파라모이아조는 단지 신약성경에서 마 23:27에만 나타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파로모이오스
parovmoio"
같은, 비슷한, 유사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파로모이오스(Hdt. 이래로)는 거의 동일하다는 의미로 '같은, 유사한, 닮은'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사되거나 비교된 물건과의 일치가 약간 부족함을 전제하고 있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파로모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막 7:13에 한번 유전과 관련하여 '유사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TR등 다른 편집본 막 7:8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주발과 잔을 씻고 이와 [같은] 다른 많은 것들을 행하니라".|(참조: Walter Bauer).
성내다
paroxuvnw
분노케하다 provoke to a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파록쉬노(Eur., Thuc., Xen.)는 본래 `날카롭게 하다'를 의미하며||(a) `계속 재촉하다, 자극하다',|(b) `화나게 하다, 분노하게 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파록쉬노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나아츠(멸시하다)의 역어로(민 14:11; 민 14:23), 그리고 하크이스(화나게하다)의 역어로(신 9:18; 시 105:29; 사 63:3), 히크치프(분개하게 하다)의 역어로(신 9:7, 신 9:22), 하라(분노로 불타다, 분노하다)의 역어로(호 8:5; 슥 10:3) 사용되었고,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파록쉬노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만 사용되었다.|행 17:16에서 수동태로 바울이 분노한 것을 묘사한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바울의 심령은 격앙되어 속으로 분노하였다.|고전 13:5에서 사랑의 한 속성은 성내지 않은 것이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격려함
paroxusmov"
격심한 불화 sharp disagreement , 격렬한 자극 ardent incitement .||#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록쉬스모스는 파록쉬노($3947)에서 유래했으며,||(a) `자극함, 격려함',|(b) `화나게 함, 첨예한 불일치, 불화',|(c) `매우 흥분한 공격'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파록쉬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케체프(격정, 격노)를 번역하는데, `격노, 진노'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파록쉬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행 15:39에서 파록쉬스모스는 `첨예한 불화'를 의미한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히 10:24에서 파록쉬스모스는 `격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노엽게 하다
parorgivzw
격노시키다 enrage, 노하게 하다 make angry.||#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파로르기조는 오직 후기의 일반 헬라어에서만 발견되며, `성나게하다, 격노하게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파로르기조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아스(`화내다, 분개하다, 분노하다)를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파로르기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성나게 하다'를 의미한다.|롬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로르기스모스
parorgismov"
분개, provocation , 분노 anger.||#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로르기스모스는 후기의 헬라어 문헌에서만 발견되며, 파로르기조($3949)에서 유래했으며, `분개, 분노'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파로기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분노'(왕상 15:30; 렘21:5), `치욕'(왕하 19:3), `모독'(느 9:18)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파로기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엡 4:26에 한번 나온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여기서 `분을 품는다'는 것보다 `분노를 계속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로트뤼노
parotruvnw
자극하다, 선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파로트뤼노(Pind.)는 파라($3844)와 오트뤼노(%270: 박차를 가하다, 부추기다)에서 유래했으며, '자극하다' to incite, '선동하다' stir up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파로트뤼노는 신약성경에서 행 13:50에 한번 '선동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강림
parousiva
출현, 오심, 강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루시아는 파레이미($3918)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를 가진다.||(a) 파루시아는 '임재, 현존, 있음' presence(Aeschyl., Aristot.),|(b) '재산' property, '부, 번영' fortune, '수입' income(Plato), '군대, 병력' troops(Thuc.),|(c) '옴' coming, '도착' arrival, '강림' advent, '누군가 임석하기 위해 오는 것'(Soph., Eur., Thu., Polyb.)을 의미한다.||파루시아는 왕, 황제, 치리자와 같은 통치자의 도착에 대해서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Ptolemaic period)에서 주후 2세기까지의 군대의 도착에 대해서 까지도 전문적으로 사용되었다. 특별물품세와 각종 세금이 물품 비용을 치루는데서 강제 징수되었다. 희랍에서는 하드리안의 파루시아에서부터 새 시대가 열린다고 생각되었으며, 특별 방문기념 주화들이 한 황제의 파루시아를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서 주조되었다. 이에 상응하는 라틴어는 아드벤투스(adventus)이다. 고린도(Corinth)와 파트라스(Patras)와 같은 도시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편지를 쓰던 당시에 다스렸던 네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 주화를 주조했다. 이 동전들에는 아드벤투스 아우구스티 코린디(Adventus Aug[usti] Cor[inthi])와 아드벤투스 아우구스티(Adventus Augusti)라는 명각을 새겼다(참조: A.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 이로부터 사람들을 위해서 신들이 출현했다고 언급하는대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참조: Corp. Herm.), '나의 파루시아[parousia]는 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헬라의 신비 종교 관념들과 일치하는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파루시아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이서 8:12에 군대의 침입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파루시아는 신약성경에서 24회 나오며, 마태복음(4회), 바울서신(14회), 야고보서(2회), 베드로후서(3회) 요한일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파루시아는 문자적 의미로 '있음(현존)'과 '도착'을 의미한다. 바울만이 이러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① 고전 16:7에서 바울은 스데바나가 온 것을 기뻐하고 있다: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② 고후 7:6; 고후 7:7에서 바울은 디도의 도착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③ 빌 1:26(그리고 빌 2:12)에서 바울은 자기가 빌립보에 온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하려 함이라".|④ 고후 10:10에서 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는 질책을 바울은 겪어야 했다: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b) 마태복음 24장에서 파루시아는 그것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 나타난다.|① 마 24:3에서 제자들이 주의 파루시아의 징조에 대하여 묻는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② 예수님의 대답에서 인자의 오심은 미래의 일이며(마 24:39), 그 날짜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으며(마 24:36), 그날은 갑자기 그리고 사람들이 전적으로 현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어느 때에 임할 것이다(마 24:27; 마 24:37 이하)고 설명하신다.||(c) 예수님의 파루시아에 대한 언급과 그의 죽음과 부활과 더불어 파루시아 사상은 이 시대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것에 대한 교회의 기대와 관련을 맺게 되었다.||(d) 살전 4:15에서 파루시아에 대해 언급하는 최초의 신약성경 구절인데 이것은 바울이 인용한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의 말씀"에 대한 언급은,|① 마 24:30 이하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② 지금은 상실되어서 알려지지 않은 말씀의 인용문일 수도 있으며,|③ 은밀한 계시에 대한 언급(참조: 고후 12:1 이하; 갈 1:12; 엡 3:3; 행 21:10 이하)일 수도 있으며, 혹은|④ 바울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언명일 수도 있다(참조: 고전 2:16; 고전 7:10; 고전 7:12).(A. L. Moore).|여기에서 부활과 파루시아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이유는 파루시아가 일어날 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겪게될 불리한 점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살아있는 자가 누릴 유리한 점도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e) 고전 15:23에서도 위와 동일한 사상을 채택하여, 그 결정적 순간에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바울은 파루시아를 엄밀한 신학적 의미로 나타낼 때 대개 전치사 엔($1722)을 그 단어 앞에 사용하고 있다. 살전 4:15에서만 에이스($1519)라는 전치사가 나온다. 파루시아는 확실히 여러 범주 사람들도 포함할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이중의 부활이 있어, 그 사이에 천년왕국이 있다거나 혹은 연대순으로 체계화된 종말론적 사건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는 말은 아니다(참조: W. G. Kummel).||(f) 살전 5:23에서 바울은 주님의 파루시아를 생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결케하시는 행위만 그 날의 시험에 대비하여 신자들을 대비시킬 수 있음을 언급한다. 바울은 또한 성결을 보존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성결은 그날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보존을 뜻하는 기도가 그 날까지 연속되기 때문이다(A. E. Airthart).||(g) 살전 2:18; 살전 2:19에 보면 비록 사단의 농간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와 갈라서게 되었으나, 바울은 여전히 이 교회를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그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으로 묘사하고 있다.||(h) 데살로니가후서는 분명히 또 다른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체험되어진 그리스도의 임재와 미래 어느날에 있을(유대 묵시문학적) 파루시아 사이에는 분명한 대립이 있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 2:1-살후 2:2).|이 서신은 실제로는 여전히 미래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을 현재에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사단과 그리스도의 파루시아가 있기 전에 있을 불법한 자의 파루시아에 대해서 격렬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살후 2:8; 살후 2:9 이하).||(i) 야고보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지연됨에 따라 사람들은 그 날이 실제로 임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고보는 약 5:7; 약 5:8에서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j) 베드로후서에서 신자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파루시아를 계속해서 기대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①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② 벧후 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③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k)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참조: A. Oepke; G. Braumann; Walter Bauer; J. H. Thayer).
파롭쉬스
paroyiv"
곁들이는 요리, 접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롭쉬스(Antiphanes 이래)는 파라($3844)와 옵손(%19: 요리된 고기)에서 유래했으며,||(a) '곁들이는 요리, 식욕을 충족시키기 보다는 돋구어 주기에 적합한 진미나 특선 음식 요리', '보다 딱딱한 음식에 곁들이는 부식[반찬]'(Xen. Cyr., 많은 아티카 문헌),||(b) '요리나 반찬'을 의미한다(Xen. Cyr.).||#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파롭쉬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23:25; 마 23:26에 2회 나온다: "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여기서 파롭쉬스는 '접시를 씻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 접시에 남은 것(찌꺼기)을 씻어내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담대한 것
parjrJhsiva
개방, 밝히 드러냄, 신뢰, 확신, 대담함, 솔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팔레시아는 민주주의 전체 조건으로서 정치적 영역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① 모든 것을 말하는 자유(권리),|② 진리에 대한 개방성,|③ 대담, 솔직, 담백을 의미한다.|말하는 자유가 예의 없고 파렴치함이란 취지로 오용되는 몇몇 실례에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확대된 의미에서 팔레시아는 확신과 즐거움을 의미한다.|팔레시아(의 단어군)는 유리피데비스와 아리스토파네스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며, 원래 정치의 영역에 속했던 것으로, 헬라 도시국가의 완전한 시민이 누리는 민주주의의 권리를 의미한다.그러나 노예나 외국인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었다. 백성들의 공적 집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참조: Polyb., 2,38,6). 이러한 권리는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이 권리에는 남용의 위험이 있다(Rep.8,557b).||(b) 팔레시아는 개인적인 일상 업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의미는 솔직, 곧 정직이다. 휠리아(우정)에 대한 교훈이 나오는 문맥에서 이 단어는 친구와 만나는 사람이 갖는 솔직함을 나타낸다(참조: Aristot.,Eth. Nic. 9,2). 그러나 '무례, 오만, 후안무치' 등의 나쁜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c) 철학자들은 팔레시아를 정치적 자유보다 도덕적 자유와 관계 시켜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자유하는 사람은 팔레시아이다. 그러나 욕정에 지배를 받는 사람의 입술에 대해서 팔레시아는 단순히 '파렴치함'을 의미한다. 그의 팔레시아는 오직 모욕하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좋은 의미의 팔레시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공적인 인물들이다.||#2. 70인역본의 용법||팔레시아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온다.|레 26:13에서 팔레시아는 자유로운 백성을 묘사하며,|잠 1:20에서 공개적이고 솔직한 말로서 팔레시아는 특별히 신적 지혜에 속하는 것이다.|욥 27:9 이하에서 하나님 앞에서 팔레시아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 앞에 '자유' 혹은 '기쁘고 즐거운 섬'이며, 더 이상 장애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개적 접근을 함축한다. 잠 13:5에서 팔레시아는 디카이오스(의)의 덕행이며, 즐거운 기도로 표현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팔레시아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는데, 요한의 기록에 13회, 바울 서신에 8회, 사도행전에 5회,히브리서에 4회, 마가복음에 1회이다.||(a) 마가와 요한의 기록. 요한복음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련되어 나타나며, '공개적으로(openly), 공공연하게(in public)'라는 독특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는 그의 사역을 은밀히 하지 않고 회당이나 성전 등에서 공공연히 하셨다(요 18:20 - 요 18:21; 요 7:25 - 요 7:26; 요 11:54).|①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각 구절들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공적 가르침에 있어서의 담대함을 언급한다.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라고 예수님께 강권했던 예수님의 형제들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요 7:4).|예수님의 경우에 팔레시아는 헬라어에서 원래 의미하였던 바와 같이 공적으로 나타내는 권리 또는 용기, 말하는 자유, 솔직함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의미와 같이 공적으로 실행되는 행동들을 언급한다(R.Bultmann, The Gospel of John).|이와 대조적으로 요 7:13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공공연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요 10:24; 요 11:14; 요 16:25; 요 16:29에서 팔레시아는 '명백하게 plainly' 라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예수님께서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우화나(요 11:14; 요 10:24 이하), 숨겨진 비유(요 16:29)로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또한 명백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직 신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드러내어 말씀하셨다(요 16:25; 요 16:29). 세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들로 말씀하셨는데, 이 비유들은 믿음 없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한의 이중성(dualism), 곧 생명과 사망, 진리와 거짓 등에 상응하는 팔레시아와 파로이미아(비유) 사이에는 정신적 긴장 상태가 존재하며, 이 긴장은 결단을 요구하며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② 마가복음에서 팔레시아는 막 8:32에 한번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제자들에게 주신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가리킨다: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그러나 여기서 공개적이라고 하는 것도 아직은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아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것이다. 이 사실은 막 8:32 - 막 8:33에서 보면 명백하다.(참조: 막 9:32; 막 10:32).|③ 요한일서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을 뜻한다. 요일 3:21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자는 담대함을 가진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이 담대함은 양심과 믿음 그리고 사랑(참조: 요일 3:22 - 요일 3:23)을 전제하며, 또한 성령의 선물이다(요일 3:24). 이러한 팔레시아는 기도 중에 표현된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 요일 5:15). 담대한 자는 기도에 확신을 갖는다. 그러면 여기서 그 담대함은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확신이다.|이러한 현재적인 팔레시아 외에 미래적인 팔레시아가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서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2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이와 같이 팔레시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구원의 확신, 죄의식의 정복, 기도의 능력,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여러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다(O.Michel).||(b) 사도행전. 사도행전에서 팔레시아는 예수님의 팔레시아와 상응하여 사도들의 솔직하고 권위적인 증거에 대해 사용되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 바울 또는 그밖의 사람들이 얼마나 담대하게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였는가 하는 것을 계속하여 전하고 있다. 이 명사는 행 2:29; 행 4:13; 행 4:29; 행 4:31; 행 28:31에 나타난다.|하나님은 사도들에게 이러한 팔레시아를 주시고, 사도들의 말을 기사와 표적으로 뒷받침하신 것이다(행 4:29 - 행 4:30; 참조: 14:3). 이 담대함은 인간이 스스로 자제하면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계속하여 구해야 하는 성령의 열매이다: 행 4: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c) 바울의 서신들. 바울도 기독교인의 팔레시아, 특별히 사도들의 팔레시아에 대하여 강조한다.|팔레시아는 기독교인의 생활, 특별히 사도의 생활의 중요한 측면을 묘사한다(빌 1:20; 엡 3:12).|팔레시아는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이하).|팔레시아는 하나님(고후 3:12; 빌 1:20; 엡 3:12)과 사람을 향한 개방성 및 솔직함(고후 3:12; 고후 7:4; 딤전 3:13; 몬 1:8)을 의미하는 것이다.|무엇보다도 고후 3:12 이하에서 문제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팔레시아는 바울이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는 베일을 벗은 바울의 얼굴로서, 이스라엘과는 달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베일을 벗은 얼굴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려있는 것이다. 이 개방적인 얼굴은 성령으로 인하여 계속적으로 변화해 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얼굴이다.|엡 3:12에서 개방성(openness)은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담대한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인간적인 차원에서는 팔레시아가 고후 7:4에서는 사랑이 애정이라는 뉘앙스를, 그리고 몬 1:8에서는 권위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딤전 3:13에서 팔레시아의 근거는 믿음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빌 1:19 - 빌 1:20에서 팔레시아는 또한 성령에 감화 받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계를 가진다: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골 2:15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팔레시아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공공연한 승리로 전세계를 향해 권세들을 드러내셨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objective relatively||(d) 히브리서. 히브리서에서 팔레시아는 상대적인 성격을 지닌다.|히 3:6에서 팔레시아는 믿는 자로서 가져야 하고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것은 소망의 대상과 관련이 있다.|내용에서 팔레시아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자유를 뜻하며, 이 자유는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받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히 4:14 - 히 4:15; 히 10:19).|히 10:34 이하에서 팔레시아는 환난 중에 인내로 보존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히 4:16에서 팔레시아는 심판자 앞에서 '담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한 것을 뜻한다".|(참조: Walter Baure; J.H.Thayer; H.-C.Hahn; H.Schl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