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penthkosthv
오순절 Pentecost||#1. 비종교적 용법.||명사 펜테코테는 플라톤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서수 펜테코스토스(50째)의 여성형이다. 여러 비문들과 오스트라카(ostraca)에서는 헤 펜테코스테(메리스)가 "50분의 1(부분)" 즉 2%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B.C. 4세기부터 전문 용어로 사용되어 모든 재화, 즉 수출품이나 수입 가격에 붙이는 2%의 과세를 의미하였다.||#2. 구약과 유대교의 용법.||(a) 70인역본의 레 23:16에는 히브리어 하밋쉼 욤을 펜테곤타 헤메라스(오십번째 날)로 번역한다. 유월절의 시작에 보릿단을 드리는 날로부터의 오십번째 날이 오순절이다. 이 절기는 보리 수확이 시작된 후 7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칠칠절'(하그 샤브오트, 출 34:22; 신 16:10)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낫을 처음으로 곡식에 대는 때(신 16:9)와 안식일 이튿날 보릿단을 흔들 때(레 23:11) 시작했던 보리 수확의 완료를 표시한다. 따라서 이 절기는 히브리어로 하그 학카치르('수확의 절기'; 한글 개역: "맥추절", 출 23:16)와 욤 합빅쿠림(첫 열매의 날, 민 28:26)이라고 불리었다.|이 오순절은 유대력에서 두번째로 큰 절기였으며, 성회로 선포되어서 모든 작업을 그치고, 지정되 장소에서 기쁜 잔치를 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무로 바친다.||(b) 오순절에 대한 유대인의 사상은 예수님 시대를 전후에 발전되었다. 오순절을 희년서 6:17-21(약 B.C. 100년경)에서 새로운 언약의 절기로 등장하며 쿰란 공동체에서도 그러하였던 것 같다(J. T. Milik; 참조: IQS 1:16-2:18). 이러한 의미가 이미 대하 15:10-12에 함축되어 있다(참조: G. Kretschmar). 이것은 특별히 오순절과 시내산의 언약 간에 관련성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출 19:1과 대하 15:10 양자가 모두 "제 삼월"(오순절이 거행된 달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마리아인들도 오순절과 시내산의 언약 사이를 이와 동일하게 연관시키고 있다(J. T. Milik, ibid.). 따라서 율법 수여에 관한 설명이 오순절의 율법 낭독으로 변하였으며, A.D. 3세기 경에는 오순절은 율법이 수여된 날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펜테코스테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3회, 사도행전에 2회, 고린도전서에 1회 나온다.||(a) 고전 16:8에서 바울은 자기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아마도 행 20:16에서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명절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행 20:16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을 성령 강림 기념일로 지켰음을 시사해 주지만, 이러한 기독교 오순절이 이미 에베소나 고린도에서 지키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쨌든 예루살렘에 있는 초기 공동체가 어떤 형태로든 유대인의 오순절에 참여했다는 것은 오나전히 가능하다. 바울이 오순절을 안에 예루살렘에 있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을 때(행 20:16),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형제들을 만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b) 누가는 행 2:1 이하에서 처음 기독교 오순절을 소개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이 오순절의 기사는 구원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 빛에서 누가가 사도행전의 시작(행 1:8)에서 정한 주제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한 약속의 성취가 있다.|따라서 그 다음에 나오는 설명에 두 가지 점이 강조되어 있다.||① 하나는 마지막 날을 위해 약속된 성령의 선물이 주어진다. 오순절과 관련된 이저적 사건들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으며, 성령의 복음은 이렇게 수여된 것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 나타난다. 따라서 성령을 찬양하고(행 2:11 이하), 선포하는(행 2:14 이하) 충분한 능력을 주셨다.||② 다른 하나는 누가가 이 사건을 교회의 탄생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의심없이 방언의 이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와 모인 무리들이 이것을 증거한다고 생각했다. 각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성령 강림의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며, 세계 선교의 원형으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유대교의 절기가 구속사에 있어서의 약속과 성취의 관계에 잘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J. H. Thayer; E. Lohse; J. D. G. Du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