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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아나핍토
ajnapivptw
비스듬히 눕거나 기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핍토(trag.; pap. 등)는 아나($303)와 핍토($4098: 떨어지다, 넘어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뒤로 자빠지다, 뒤로 젖혀 기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핍토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나핍토는 식사 자리에서 기대어 비스듬히 눕거나 기대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20:28; 막 6:40; 눅 11:37; 요 6:10).||(b) 아나핍토는 비스듬히 뒤로 기대거나 의지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13:25; 요 21:2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보충하다
ajnaplhrovw
채우다, 보충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플레로오(Eur. 이래)는 아나($303: ~까지, ~에 이르기까지)와 플레로오($4137: 채우다, 성취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완전히 채우다, 가득 채우다'(틈이나 빈 공간, 또는 수를 채우는 것에 대해, Luc. Tim; Plat. Tim 등).||(b) '~에 더하다, 보충하다'(Plat., Sypm), '보충하여 채우다'(Leg.)||(c) '완전히 행하다, 전액을 지불하다'(pap), '일을 완성하다'(Jos. Ant.),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다'(P. Oxy.), 기도를 '끝내다'(orp. Herm),||(d) '충분히 만족시키다, 채우다(어떤 욕구들을 채우는 것)'(Demosth. Ep., 1, 10).(참조: G. Delling).||#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나플레로오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말레(가득 차다, 가득 채우다), 살렘(완전하다, 완성하다, 끝마치다, 회복시키다, 이행하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창 2:21에서 틈에 '삽입하거나 채우는 것'(출 23:26에서 날 수를 '채우는 것', 창 29:28에서 관습적 기간을 '채우는 것', 창 15:16에서 죄가 '가득하게 되는 것', 사 60:20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치거나 끝나는 것', 왕상 7:51에서 '일을 마치는 것(완성)'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플레로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나플레로오는 '부족한 것을 채우다, 보충하다, 정산하다'를 의미한다.|①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여기서 이 단어는 너희 행한 것에서 빠진 것, 너희가 아직 나에게 빚지고 있는 것을 보충하고 나와 너희 사이의 긴장(참조: 고전 16:18절)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빌 2:30에서 개인적인 봉사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 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위의 두 경우 모두 그 계산은 지불이 연체되어 있는 공동체의 일원들이 대표로 정산한다.|③ 살전 2: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창 15:16에서처럼 자기 죄를 항상 채운다. 비록 여기의 언급이 죄가 채워진 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유대교를 깨뜨리게 되는 하나님의 참으심의 한계 끝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유로운 이방인 선교와 대립하는 유대교에 의한 죄가 계속 증가되는 것을 나타낸다.||(b) 고전 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아나플레로오는 '(공간을) 채운다'는 의미에서 '차지한다'(occupy)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무식한 처지에 있는"이란 문구는 무식한 자의 자리를 차지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c) 아나플레로오는 '완전히 이행하거나 성취하다'를 의미한다.|①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롬 13:8-롬 13:10).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성취한다.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은 마 22:39과 병행구 요 13:34에 바탕을 둔 것이다.|② 수동태는 마 13:14에 나타난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해 닫혀 있는 것에 대한 예언자의 말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말씀의 거절로 "완전히" 실현된다.
핑계치 못하는
ajnapolovghto"
변명할 수 없는 inexcusab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나폴로게토스(Polyb., Dionys., Plut.)는 부정 접두사 %107와 아폴로게오마이($626: 스스로 이야기하다, 스스로 변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변명할 수 없는, 핑계할 수 없는'을 의미하며, 법에 항변하는 소송의 가망 없음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나폴로게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로마서에만 사용되었다.||(a) 롬 1:20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하여 '변명할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b) 롬 2:1에서 남을 판단하는 자에 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나프튓소
ajnaptuvssw
펴다, 펼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프튓소(Hdt. 이래)는 '펴다, 펼치다'를 의미한다. 두루마리 형태의 책을 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나프튓소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파라스(6566: '펴다, 펼치다' 등)를 역어로 옷을 '펴는 것'(신 22:17; 삿 8:25), 편지를 '펴는 것'(왕하 19:14)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프튓소는 신약성경에서 눅 4:17에 한번 책을 '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히브리인들의 책은 하나 혹은 두 개의 매끈한 막대에 단단히 고정된 두리마리였으며 손잡이가 있어서 말거나 펼 수가 있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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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납토(Eur., Hdt. 이래)는 아나($303)와 압토($681: …에 붙이다, 붙들어 매다)에서 유래했으며, '불을 켜다, 불붙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납토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붙다'(눅 12:49), '피우다'(행 28:2), '태우다'(약 3: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무수한
ajnarivqmhto"
무수한, 셀 수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나리드메토스(Pind., Hdt. 이래)는 부정 접두사 %107와 아리드메오($705: 세다)에서 유래했으며, '무수한, 셀 수 없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나리드메토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1:12에만 나오며, '무수한 모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충동하다
ajnaseivw
뒤흔들다, 선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세이오(Hes. 이래)는 아나($303)와 세이오($4579: 흔들다)에서 유래했으며, '(머리카락)을 뒤로 져치다, 이리 저리 흔들다, 휘두르다, 위협하다, 뒤흔들다, 자극하다, 선동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세이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막 15:11과 눅 23:5에만 나온다. 여기서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군중들을 선동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N. Hillyer).
혹하게 하다
ajnaskeuavzw
어지럽히다, 불안정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스큐아조(Thu. 이래)는 아나($303)와 스큐오스($4632: 그릇, 도구)에서 유래했으며,||(a) '짐을 다른 곳으로 나르기 위해 짐을 꾸리다', (어떤 다른 곳을 향해 출발할 때) '가구를 운반하다'.||(b) '잡아 벗기다, 약탈하다, (읍, 국가를) 뒤엎다, 황폐케 하다, 파괴하다.'||(c) 비유적으로, '마음을 흔들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 뒤엎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스큐아조는 신약성경에서 행 15:24에 한번 나오며,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끌려 올라가다
ajnaspavw
끌어 올리다, 당겨 올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스파오(Homer 이래)는 아나($303)와 스파오($4685: 검을 '빼다')에서 유래했으며, '끌어 올리다, 당겨 올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스파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눅 14:5에서 '끌어내는 것'을 나타낸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b) 행 11:10에서 '끌려 올라 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시 살아나심
ajnavstasi"
부활 resurrection.||명사 아나스타시스는 아니스테미($450: 일어나다)에서 유래했으며, '일어남, 부활, 위로 오름'을 의미하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타동사적 의미.|① 조상, 댐 등의 '건립', '세움'(Claud, Jos.).|② 거주지로부터 '추방'(Hdt., Polyb., Jos.).||(b) 자동사적 의미.|① '일어남', 잠에서 깨어 일어남, 아침에 침상에서 일어남(Aristot, Philo., Porph.).|중간태로 용변을 보기 위해 '일어남'(Hippocr. Epid.), '회복'이란 의미로 사용된 예는 없다.|② '위로 오름, 부활'(Thuc.), 혹은 '출발, 떠남'(Strabo.).|③ '봉기, 반란, 폭동'(Demosth).||(c) 이러한 의미들 가운데 눅 2:34에서 2(a)의 의미만이 발견된다: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여기서 패하고 흥함이란 심판과 구원을 가리킨다. 그 비유에 대해서 시 118:22-23; 사 8:14-15; 사 28:16; 롬 9:33; 벧전 2:6; 막 12:10과 병행구; 눅 20:17 이하를 참조하고, 또 그 사실적 설명에 대해 고전 1:18 이하를 보라.|그 밖의 곳에서 아나스타시스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에 대해 사용된다(막 12:18과 병행구; 요 5:29; 행 1:22; 롬 1:4; 히 6:2; 계 20:5 이하 등).|(참조: A. Oepke).
난을 일으키다
ajnastatovw
선동하다, 어지럽히다.||#1. 고전 헬라어의 용법.||동사 아나스타토오는 아나스타토스(%556: 거처에서 쫓아내다, 추방하다, 소요를 일으키다)에서 유래했으며,||(a) '집에서 쫓아내다',|(b) '선동하다, 혼란시키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스타토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에 사용되었다.||(a) 행 17:6에서 아나스타토오는 국가에서 소동과 소요를 '선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행 21:38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b) 갈 5:12에서 종교적인 오류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시 십자가에 못박다
ajnastaurovw
십자가에 못박다 crucif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스타우로오(Hdt.이래)는 아나($303: 위로, 둘러싸여)와 스타우로오($4717)에서 유래했으며, '주위에 울타리를 치다, 둘러싸다, 말뚝에 고정시키다, 십자가에 못박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아나스타우로오는 신약성경에서 히 6:6에 한번 나온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배교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과 하나가 되어 그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는 결과가 된다.|(참조: J.H.Thayer; J.Schneider).
깊이 탄식하다
ajnastenavzw
깊이 탄식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스테나조(Aeschyl., Choeph. 이래)는 아나($303)와 스테나조($4727)에서 유래했으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리다, 깊이 탄식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스테나조는 신약성경에서 막 8:12에서 한번 나오며, '깊이 탄식하다'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엎다
ajnastrevfw
뒤집어 엎다, 되 돌아 오다(가다), 회전시키다(하다), 행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아나스트레포는 아나($303)와 스트레포($4762:돌리다, 돌아가다)에서 유래하였으며, 호머에서부터 나타난다. 이 동사는,||(a) 타동사적 의미로서 '뒤집어 엎다, 전복시키다, 거꾸로하다'.||(b) 자동사적 의미로서 '돌아오다(가다), 돌다'.||(c) 중간태와 수동태형으로도 역시 '돌다, 돌아가(오)다'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d) (한 장소에서) '이리 저리 돌다, 빈둥거리다, 우물쭈물 지내다'라는 의미가 되었다.||(e) 비유적 의미로서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걷다, 처신하다, 특별한 방식으로 살다'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Aristetus, Eth. Nic. 2,Ip,llO3b, 20; Epictetus, Dissertationes 3,15,5). 이로 인하여 이 단어는 아나스트로페($391)와 같이 윤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윤리적 의미가 고대 세계에서 전체적으로 두루 발견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나스트레포는 구약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슈브(돌다, 돌아가 [오]다)의 역어로서 87회, 그것도 문자적 의미로만 사용되고, 히브리어 할락(걷다, 행하다)의 역어로서 8회 사용되었는데, 왕상 6:12; 잠 8:20; 잠 20:7에서만이 '걷다, 행하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의 안에서, 기타 등 등)라는 비유적 의미가 적용되었다. 겔 22:30의 '바르게 행함'( 아나스트레포메논 오르도스) 이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자유 의역으로서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가 없다.|후기 유대 문헌에서와 사해 두루마리에서 히브리어 할락이 헬라어 아나스트레포에 해당하는 말로 곳곳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라는 양쪽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종종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 든가, 또는 '죄의 길을 걷는다'고 할 때, '길 way'의 비유적 용법과 관련하여 나타나기도 한다(참조: 1QS).||#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는 동사 아나스트레포가 9회, 명사 아나스트로페가 13회 나타난다. 명사형과 동사형 둘 다 복음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바울 서신에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바울 서신 이후의 것들에서 더 자주 사용되었다. 히브리서와 베드로후서에서 주로 발견된다.||(a) 동사 아나스트레포는 행 5:22에서 '돌아오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되".|암 9:11에서 인용한 행 l5:16에서도 동일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후에 자기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외에는 비유적 의미들뿐이다.|그리고 히 10:33(여기의 동사형은 일반적으로 '살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됨)을 제외하고는, 시종 생활 방식을 뜻하는 말로서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명백히 비유의 영역에 속한다. 아래서는 동사 아나스트레포와 명사 아나스트로페를 함께 해석한다.||(b) ①동사 아나스트레포와 명사 아나스트로페는 그 자체 중성 용어들로서, 한정사에 의해서만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가치 평가를 얻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의 생활 방식 또는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말(유대인에 대해, 갈1:13, 아나스트로페; 이방인에 대해, 엡2:3, 아나스트레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생활 방식에도 사용되었다(고후1:12, 아나스트레포).|영위되는 삶의 종류는 무엇이 그 개인의 사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와같은 결정 요인이 윤리적 가치 체계일 수도 있고(참조: 헬라 비문), 혹은 그 요인이 유대적 신앙이라면, 그것은 거기에 상응하는 유대적 생활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다(갈1:13, 아나스트로페). 일정한 의무의 결핍은 방종적 생활 태도를 낳게 되고, 이 때 사람은 자기의 욕망만을 따르게 되며(벧전1:14; 벧후2:7, 아나스트로페) 결국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엡4:22,아나스트로페).||②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와 동시에 그 이전의 생활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자유를 주시며 힘을 주신다. 이들은 선교 활동을 추진시킬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신앙의 유지와도 관계가 있다.|중요한 것은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과 세례(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며 그럼으로써 또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 안에서 살게 된다. 이전의 완악했던 자기의 생활 방식을 알게 됨으로써 (갈1:13, 아나스트로페; 엡4:22, 아나스트로페; 참조: 고후6:14 이하; 엡2:1 이하; 골1:21 이하; 3:1-17), 그는 새 것을 자각하게 되고 옛 것을 버리는데 도움을 얻게 된다.|그리스도를 통하여, 순종과 경건과 성결의 새 생활(고후1:12, 아나스트레포; 벧전1:15, 아나스트로페; 벧전1:17, 아나스트레포; 벧전3:16, 아나스트로페)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격과 역사(役事)이다. 이러한 새 생활은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행위를 결정하며 그 특성을 보여준다.|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 속한 생명으로부터 자라날 때, 이러한 종류의 행동 자체는 모범적 의미를 지닐 수가 있으며(딤전4:12, 아나스트로페; 히13:7, 아나스트로페), 삶의 어떤 적절한 종말을 장식하게 된다(히13:7). 디모데전서의 기록은 "하나님의 집"(딤전3:15, 아나스트레포)인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그와같은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적 행위는 계속하여 이중적 위험을 안고 있다. 즉 이방인의 행동 방식(벧후2:8)에로 되돌아 가는 것과 율법주의가 그것이다. 율법주의란 그리스도의 인격을 고수하지 않고 그 대신 그리스도와는 관계없는 비인격적 규범이 행위에 대한 규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비교: 딤전4:1 이하에서는 독신 생활과 어떤 종류의 음식을 금하는 것을 강요하고자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박을 하고 있다).(참조: M.Dibelius and H. Conzelmann).||(c) 이 단어군은 베드로전서의 비유적 용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같이" 사는 현재를 믿음에 대한 시험의 때로 묘사하였다(벧전2:11 이하, 아나스트로페). 기독교인의 방식으로 살라는 권고는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①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 종말론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② 만유의 재판장이시며 뇌물로써 매수되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간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③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죽으심으로써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는 사실 위에 근거를 둔다(벧전1:15-18, 아나스트레포).|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생활 방식에 대한 권고는 기독교인들이 주위의 비평적인 이방인의 눈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에도 중요하다. 바울이 고후 3:2에서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자기의 "천거서" 라고 부를 수 있었듯이(자기의 반대자들이 공공연하게 여기 저기로 띄워 보냈던 천거서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는 기독교적 생활 방식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되어, 이것이 기독교인 자신들이 증거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시금석으로 여겨지고 있다.|이러한 생활 방식 자체가 주위 이방인의 의심과 비방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반대자들과 비방자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다(벧전2:12, 아나스트롭로페; 벧전3:1, 아나스트로페; 벧전3:16, 아나스트로페).|(참조: G. Ebel)
구습
ajnastrofhv
돌아 감(옴), 생활 방식, 행동, 처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나스트로페는 아나스트레포($390) 에서 파생되었으며, 호머(Homer) 이래로 광범한 의미로 나타난다. 이 명사 아에쉴루스(Aeschylus)로부터, 그리고 소크라테스 학파 이전부터 발견되며,||(a) 자동사적 의미로 '회전 a turning round' 또는 '회전 운동 turning movement'을 의미하며,||(b) 후기 시어(詩語)에서는 유일하게 '휴식처 a resting-place' 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c) 비유적 의미로서 '생활 방식 way of life, '행동, 행위 conduct'라는 의미를 가진다(Polybius, 4, 82, 11). 이로 인하여 이 단어는 아나스트레포마이($390)와 같이 윤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윤리적 의미가 고대 세계에서 전체적으로 두루 발견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나스트로페는 외경에서만(3회), 그리고 비유적 의미로만이 발견된다. 토빗 4:14서에는 '전 생활 방식에서 잘 가르침 받음을 나타내 보이라', 마카베오이서 5:8에서는 '나쁜 생활 방식, 마카베오이서 6:23에서는 '어릴 때부터의 흠없는 처신'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법에서 이 용어의 헬라적인 특성이 뚜렷이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는 동사 아나스트레포가 9회, 명사 아나스트로페가 13회 나타난다. 명사형과 동사형 둘 다 복음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바울 서신에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바울 서신 이후의 것들에서 더 자주 사용되었다. 히브리서와 베드로후서에서 주로 발견된다. 다음에는 동사와 명사를 함께 해석한다.||1. (a) 동사 아나스트레포와 명사 아나스트로페는 그 자체 중성 용어들로서, 한정사에 의해서만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가치 평가를 얻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의 생활 방식 또는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말(유대인에 대해, 갈 1:13, 아나스트로페; 이방인에 대해, 엡 2:3, 아나스트레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생활 방식에도 사용되었다(고후 1:12, 아나스트레포).|영위되는 삶의 종류는 무엇이 그 개인의 사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와 같은 결정 요인이 윤리적 가치 체계일 수도 있고(참조: 헬라 비문), 혹은 그 요인이 유대적 신앙이라면, 그것은 거기에 상응하는 유대적 생활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다(갈 1:13, 아나스트로페). 일정한 의무의 결핍은 방종적 생활 태도를 낳게 되고, 이 때 사람은 자기의 욕망만을 따르게 되며(벧전 l:l4; 벧후 2:7, 아나스트로페) 결국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엡 4:22, 아나스트로페).||(b)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와 동시에 그 이전의 생활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자유를 주시며 힘을 주신다. 이들은 선교 활동을 추진시킬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신앙의 유지와도 관계가 있다.|중요한 것은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과 세례(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며 그럼으로써 또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 안에서 살게 된다. 이전의 완악했던 자기의 생활 방식을 알게 됨으로써 (갈 1:13, 아나스트로페; 엡 4:22, 아나스트로페; 참조: 고후 6:14 이하; 엡 2:1 이하; 골 1:21 이하; 골 3:1-골 3:17), 그는 새 것을 자각하게 되고 옛 것을 버리는데 도움을 얻게 된다.|그리스도를 통하여, 순종과 경건과 성결의 새 생활(고후 1:12, 아나스트레포; 벧전 1:15, 아나스트로페; 벧전 1:17, 아나스트레포; 벧전 3:16, 아나스트로페)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격과 역사(役事)이다. 이러한 새 생활은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행위를 결정하며 그 특성을 보여준다.|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 속한 생명으로부터 자라날 때, 이러한 종류의 행동 자체는 모범적 의미를 지닐 수가 있으며(딤전 4:12, 아나스트로페; 히 13:7, 아나스트로페), 삶의 어떤 적절한 종말을 장식하게 된다(히 13:7). 디모데전서의 기록은 "하나님의 집"(딤전 3:15, 아나스트레포)인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그와 같은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적 행위는 계속하여 이중적 위험을 안고 있다. 즉 이방인의 행동 방식(벧후 2:8)에로 되돌아 가는 것과 율법주의가 그것이다. 율법주의란 그리스도의 인격을 고수하지 않고 그 대신 그리스도와는 관계없는 비인격적 규범이 행위에 대한 규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비교: 딤전 4:1 이하에서는 독신 생활과 어떤 종류의 음식을 금하는 것을 강요하고자 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박을 하고 있다).(참조: M.Dibelius and H. Conzelmann).||2. 이 단어군은 베드로전서의 비유적 용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같이" 사는 현재를 믿음에 대한 시험의 때로 묘사하였다(벧전 2:11 이하, 아나스트로페). 기독교인의 방식으로 살라는 권고는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a)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 종말론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b) 만유의 재판장이시며 뇌물로써 매수되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간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c)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죽으심으로써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는 사실 위에 근거를 둔다(벧전 1:15-벧전 1:18, 아나스트레포).|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생활 방식에 대한 권고는 기독교인들이 주위의 비평적인 이방인의 눈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에도 중요하다. 바울이 고후 3:2에서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자기의 "천거서" 라고 부를 수 있었듯이(자기의 반대자들이 공공연하게 여기 저기로 띄워 보냈던 천거서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는 기독교적 생활 방식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되어, 이것이 기독교인 자신들이 증거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시금석으로 여겨지고 있다.|이러한 생활 방식 자체가 주위 이방인의 의심과 비방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반대자들과 비방자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다(벧전 2:12, 아나스트로페; 벧전 3:l, 아나스트로페; 벧전 3:16, 아나스트로페).|(참조: G.Ebel)